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소욕지족은 인생의 안전대책 (20151217)

담마마-마까 2022. 1. 20. 09:00

https://youtu.be/etQV88p9gro

* 소욕지족은 인생의 안전대책 (20151217)

 

태국 가기 전에 마지막 법회죠?

오늘은 「소욕지족은 인생의 안전대책」이라는 제목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어제 스님들이 찾아왔었어요. 그래서 점심 먹으러 부산대 이쪽에 갔는데 내가 딱 좋아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음식을 선택 안 하고, 그 집은 딱 한 가지만 해요. 혹시 가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요쪽에 기와집으로 부산대 앞에 있는데.

가면 사람만 몇명 있는지만 물어보지 음식은 뭐 선택하는지 물어보지를 안 해요. 김치찌개 하고 밥만 딱 줘요. 반찬도 없어요. 그러니까 가서 밥에다가 김치찌개 덜어가지고 먹으면 돼. 그래서 선택할 필요없이 가면 자동적으로 “한 분입니까?” 하면 “예!” 그러면 갖다 주면 그냥 그거 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조금 적기는 해. 반찬이 없다 보니까.

 

어제 스님들을 거기 모시고 갔거든. 그런데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라. 반찬도 아무것도 없고 그러니까 그거 먹고, 먹을 때는 아무 소리 안 하고 있다가 돌아서 나오면서 내 뒤에서 저들끼리 얘기하는데, “오늘 우리 밥 먹은 거 아니다 이. 나가서 또 먹자 이!” 이럽니다. 그래서 그 얘기 듣고 속으로 ‘아이고, 저것도 스님이라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 해가지고. 그리고

어제 대구 누구야? (수행자 대답 : 말리까) 아, 말리까님이 와가지고 공양 올렸는데, 그래서 속으로는 그리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부처님 때는 어땠을까 하는 것을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 거 있죠? 부처님도 탁발을 나갔는데, 탁발을 아무 것도 못했어요. 그래서 돌아오니까 마라가 "다시 가봐라. 그러면은 사람들이 다시 탁발을 해줄 것이다." 하고 하니까, 부처님이 그때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법을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만족으로 해서 그걸 음식으로 해서 이미 먹었다. 그래서 다시 나갈 필요가 없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굶어도 그런 말을 하면서 "빠꼬다나" 라고 하는 용어를 씁니다. "이미 가졌기 때문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굶어도 부처님은 다시 나가서 탁발해가지고 올 생각을 안 하고 그냥 하루 굶으면서 법으로써 만족하고 그렇게 사는데, 기껏 먹여놨더만 뒤돌아서서 "오늘 밥 먹은 거 아니다 이!" 이렇게 하는 걸 보니까 좀 마음은 불편한 것들은 좀 있더라구.

 

그게 어디 그 스님들만 그러겠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지. 물론 스님 입장에서는 가깝기도 하고 특히 음식 여러 개 차려놓고 이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래서 그냥 한 그릇에서 비벼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델 간 건데, 어찌 보면 밥그릇에 비벼 먹는 것이 음식에 대한 욕구들은 상당히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종국적으로는 음식에 대해서는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서 욕구를 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욕심을 가지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욕심이 없는 사람을 위한, 욕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법이다" 하면서 '압삣차또(appicchata)'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게 '소욕(少欲)'이라는 뜻입니다.

'지족(知足)'이라고 할 것 같으면 '산뚯티(santuṭṭhi)'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산(san)'은 '여러 가지'를 뜻하는 '상'이고, '뚯티'라고 하는 것은 '만족'이라는 뜻입니다. 만족이 여러 가지가 형성돼서 어떤 것에도 만족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게 '지족'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있는 것으로써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아까 부처님 같이 탁발 못해주면 못해주는 대로 하루 굶는다 해가지고 활동 못해가지고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으로써 만족하고 법으로써 만족을 느끼면서 그냥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거라.

뭐 맛없는 밥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크게 몸에 영향을 해치는 것이 아닐 것 같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먹는 게 되는 거. 그런 거를 산뚯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보통 소욕지족은 하나로써 써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볼 것 같으면 두 가지 용어입니다. '소욕'은 욕구를 적게 가진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요구하는 것이 없다, 요구하는 것이 적다" 하는 뜻입니다. 욕구하고 요구하고는 다릅니다. 뭔가 내가 더 필요한 것들을 원하는 것 그걸 '요구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요구하는 것들이 없고 적은 것들을 소욕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소욕이라고 용어를 풀이하면 용어에서는 조금 문제가 있는데 원어에는 조금 어긋나는 그런 뜻입니다. 소욕이 아니고 소요라고 해야 됩니다. 「소요지족」이라고 해야 아마 원어 뜻에는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소욕지족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하고는 생각을 안 합니다.

물! 필수불가결한 거죠? 공기! 필수불가결한 겁니다. 물, 공기, 그다음에 음식 이런 것들은 필수불가결한 건데,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보면 몸을 위한 것이지 마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물이나 공기가 없다고 해서 못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마음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들을 여러분들은 뭘 갖추고 있느냐는 거라. 마음을 위한 것은 실제적으로는 소욕지족이 필수불가결한 것인데도 다른 것만큼, 깨끗한 물이라든지 맑은 공기라든지 이런 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스님도 물건이 살 거 있어가지고 마트에 가 보면 마트에 파는 게 전부 음식 파는 것, 옷 파는 것, 그다음에 일상생활용품들 파는 것, 전부 그것들뿐입니다. 그러니까 몸을 위한 것이지 마트 어디를 보더라도 마음을 위한 것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마트에만 그렇습니까? 어딜 가더라도 그걸 파는 데는 없다는 거라. 그마만큼 사람들은 뭔가 육체를 위해서 하는 일들은 하는데, 마음을 위해서 하는 일들은 자기 스스로 그걸 알고 그것들을 깨우치지 않으면 힘든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계속적으로 더욱더 그렇게 될 거라는 겁니다. 물론 인스턴트도 만들어지고 조금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자꾸 만들어지고 하지만 그것은 이 몸을 위한 것이지 마음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항상 명심을 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에 해당이 되지만, 그렇지만 마음을 위한 항목들은 내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항상 해야 됩니다.

 

몸은 유효기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몸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일정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몸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항상 생·노·병·사 라고 하는 것은 항상 따라다니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을 유지하고 이 몸을 지켜주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마음이 없을 거 같으면 그것은 몸이라고 안 하고 그냥 물체라고 얘기합니다.

물체와 여러분들의 생명체를 구별하는 것은 마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마음이 없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냥 물질 물체인 거지 그걸 몸이라든지 아니면 생명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적어도 살아가는 생명체라고 할 것 같으면 마음의 소중함을 항상 기억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왜? 몸은 어차피 생노병사를 겪게되어 있고 유효기간이 딱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들을 항상 가져야 되는데, 그런데 그런 몸이라고 하더라도 잘 사용을 해야 됩니다. 그럴려다 보니까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몸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만 계속적으로 합니다. 조금 더 편리하고, 조금 더 맛있는 것, 조금 더 몸에 좋은 것,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한 것 이런 것들만 계속적으로 찾게 됩니다. 그게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그리하더라도 그러한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마음이 있어야 몸이 있듯이 마음이 항상 앞서기 때문에, 마음이 바르지 않을 거 같으면 그거 먹는 것은 오히려 독이 돼버린다는 거라. 예를 들면 성질 확 부리면서 아무리 맛있는 거 먹어봐봐? 그 먹은 것은 몸의 영양분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몸을 해치는 것으로 돼버립니다. 딱 취해버린다든지 이렇게 돼버립니다.

 

거식증 환자 아시죠? 먹을려 해도 먹지 못하는 거. 왜 못 먹을까? 마음이 앞서있지 않을 거 같으면, 몸이 앞서있을 거 같으면 그거 먹을 거라. 그런데 마음이 음식을 거부해버리는 거라. 거부해버리니까 몸이, 아무리 입에다 집어넣더라도 마음이 싫어하니까 그냥 몸으로 뱉어낼 수밖에 없는 거라.

마음이 앞서게 되는 것이지 몸이 앞서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많이 먹는 것도 배가 불러있는데도 누워서도 주워 먹을거리가 있으면 또 주워 먹게 되는 거라. 마음이 자꾸 시키게 되는 거라.

 

마음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몸을 위해서 마트에 가서 아무리 뭘 좋은 걸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는 그것은 몸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된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아무리 깨끗한 물, 아무리 좋은 환경조건들, 또 아무리 좋은 음식들이나 아니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크림, 크림이라 그러나? 크림 같은 거 이런 것들을 바른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바르게 서있지 않을 거 같으면 그것은 오히려 독으로써 작용을 해버린다는 거라.

소욕지족의 마음이 없을 거 같으면 그것은 몸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 소욕지족을 모르는 상태에서 몸만 신경 쓰다 보면 결국은 그것은 단명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경전에 뭐라고 나오느냐면 "장수를 기대하면서 소욕지족을 모를 것 같으면 단명한다" 그렇게 나옵니다.

오래 살고 싶은데 소욕지족하는 법을 모르고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따라서 그냥 움직이다 보니까 오히려 몸을 해치는 꼴이 되어서 빨리 죽게 돼버리는 거라. 음식 잘 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거는 뭐 유기농 음식 먹어야 되고, 자기 몸에 맞는 거 먹어야 되고. 스님이 지금 오십중반 넘어섰는데 그렇게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더 골골거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빨리 죽어. 자기 몸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신 몸을 모르는 경우들이 많더라는 거라.

 

스님도 몸을 위해서 유기농 음식점에 가서 뭔 식품 같은 걸 사와 가지고 먹기도 하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없을 거 같으면 안 사먹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반 마트에 가서 일반음식 그냥 사옵니다. 그게 맞는 거지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가끔씩 음식점을 보면 맛있는 집은 줄을 쫘악 서가지고 있습니다. 한 시간이나 기다리는 거라. 그래서 왜 저러고 있을까? 그냥 옆집에 가면 지금 바로 밥 먹고 갈 수 있는데. 내 같은 경우는 옆집 가서 먹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줄을 기다리면서 또 그 밥을 먹으면서도 불편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다리면서 먹어야 되느냐 하는 거라. 그리고 그렇게 해가지고 그것이 맛이 없을 거 같으면 그것가지고 또 불편해하게 됩니다.

 

안 그러면 그걸 안 먹고 또 다른 집에 갔다. 다른 집에 가면 저 맛있는 걸 먹어야 되는데 이걸 먹어서 맛이 없다고 그러는 거라. 이걸 먹어도 불편하고 저것도 그렇고 왜 그러고 있느냐는 거라. 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릴 동안 편안하게 마음을 가져가지고 그냥 먹고, 그것이 맛이 어떻든 그냥 몸을 위해서 먹고, 안 그러면 또 다른 집에 가서 먹더라도 그냥 몸을 위해서 먹어버릴 것 같으면, 어떤 것을 하더라도 별 무리가 없이 그냥 맛있게 먹고 올 수 있는데 그리 안 하는 거라.

그래서 그걸 보면서 참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죽을 짓을 지금 계속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렇게 하지는 말아야 됩니다.

 

왜 이렇게 되느냐면 번뇌라고 하는 것은 육체를 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드시 번뇌는 육체를 속입니다. 합리화시켜버립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번뇌가 일어났을 거 같으면 '그 맛있는걸 먹어야만이 내가 건강해진다'는 생각으로써 그 번뇌가 일어난 것을 속여버리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줄을 서고서라도 먹어야 되는 거라.

또는 이쪽 집에 가서 음식을 먹을 거 같으면 그것도 똑같이 번뇌가 자신을 속여버리게 됩니다. 당연히 줄이 없는 집은 맛이 없으니까 줄이 안 섰겠지. 그런데 그냥 먹으면 될 건데 맛이 없다고 하게 되는 거라. 그럼 맛이 없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저걸 못 먹어서 이것이 더 맛이 없게 하는 번뇌가 또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번뇌가 또 자신을 속여버리게 되는 거라. 번뇌는 반드시 자신을 속여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식으로 합리화를 자꾸 시켜버린다는 거라.

 

몸이 이렇게 탐·진·치라는 번뇌로써 오염돼있을 거 같으면 몸은 병들어버리게 됩니다.

몸이 병든 상태에서 그것을 아무리 한다고 해가지고 그 몸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아무리 맛있는 걸 많이 먹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번뇌에 오염돼있는 상태에서 그걸 먹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단명할 수밖에 없는 거라.

아무리 좋은 집에 산다고 해가지고 그사 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고 보장할 수가 없다는 거라. 조건이 좋다고 하는 것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좀 더 좋은 조건이 된다는 것뿐이지, 그런데 그 좋은 조건은 마음에서 소욕지족이라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거 같으면 그 조건은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는 거라.

 

경전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병든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살해하지 말아라."

마음으로 번뇌가 일어나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시키는 것들은 전부 자신의 몸에 침투하는 세균이라고 보라는 거라. 세균과 같이! 세균이 들어왔는데 그것들이 몸을 안 해칠 거 같애요? 몸을 해치게 된다는 거라. 바이러스가 들어왔으면은 그것부터 먼저 몰아내야 만이 그다음에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바이러스를 몰아내지 않고는 그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라.

단편적인 예로 감기 들었다 그러면 감기를 먼저 나아야 되는 거라. 감기를 나아야만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지 감기 들은 상태에서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거라. 그래서 감기 들었으면 약이나, 아니면 쉬든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감기를 먼저 떨어뜨릴려고 한다는 거라.

 

그렇게 하면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암 환자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금방 이해를 합니다. 암 환자에게는 진짜 영양분이 풍부한 장어 같은 거나 이런 것들을 먹이지 마라 그럽니다. 그 영양분이 암에게로 가서 암이 오히려 더 증식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래서 그 암을 없애기 전에는 그렇게 기름지고 진짜 영양분이 풍부한 것들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거라. 그래서 식이요법들을 자꾸 동원들을 해가지고 암부터 먼저 몰아낼려고 하는 거라. 그게 맞는 방법이거든.

몰아내고 나서 그다음에 원기를 보충하는 여러 가지 영양소들을 먹도록 해야 되는 것이지, 자신의 몸에 들어온 세균들을 먼저 몰아낼 생각들을 안 한다는 거라. 안 한 상태에서 그냥 먹게 될 것 같으면 그것은 자신의 몸을 망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생노병사를 더욱 더 단축시켜버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거라.

 

가끔씩 사회에서 그런 번뇌의 병이 들어가지고, 번뇌가 병이 든 줄 모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얼마 전에도 뉴스에 나오는 게 자신의 아이를 죽여가지고 어디다 버리고, 또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자살을 해버리고, 그 병든 마음이 자신을 시키는 겁니다. 마음이 병들어놔 놓으면 그것을 거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암세포가 꽉 들어차 버리고 암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돼버리고 나면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버리게 되는 겁니다. 죽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그것들을 보면서 참 마음이 병드는 것이 저렇게 무서운 것인데 왜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할까? 하는 거라.

 

적어도 여러분들 몸이 어차피 생노병사를 겪어야 되지만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오래도록 살려고 할 것 같으면 소욕지족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라는 겁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거고, 몸이 다시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 불가분의 관계에서 바이러스라고 하는 것들이, 탐·진·치가 들어가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어떤 경우든지 몸과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주도권은 항상 마음에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마음이 항상 앞서가는 것이지 마음을 제어하지 않을 거 같으면, 그 몸은 오히려 더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압삣차따(appicchata)'라고 하는 소욕, 아까도 얘기했지만 '욕구'가 아니고 '요구하는 것이 적은 것'입니다.

욕구는 반드시 다스려야 됩니다. '아, 욕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욕구를 끊어야 되는 거고, 욕구는 버려야 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은 필요한 것들은 요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그 필요한 것들도 갖추어야 되는 것이지만 요구하지도 못하게 돼있습니다. 내가 만약에 식사를 밥을 먹어야 된다, 나는 볶음밥 먹고 싶다고 해서 볶음밥 먹고 싶다고 요구하지도 못해. 누군가 주는 사람이 볶음밥을 안 주고 국수 줄 것 같으면 그냥 국수 먹어야 되는 거라. 국수를 먹든 볶음밥을 먹든 몸에 필요한 것은 그것으로 충당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국수를 준 것이기 때문에 그걸 먹고 그 필요한 것들은 충당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은 요구하질 못하게 되는 거라.

출가한 스님들은 필요한 것들은 갖추기는 갖추어야 되는데 요구하지는 못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재가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들은 요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요구라고 하는 것은 필요한 양만큼만 요구를 해야 되는 것이지 필요 이상 요구를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필요 이상 요구를 해버릴 것 같으면 그거는 욕구로 빠져버리게 되는 거라.

요구하는 것과 욕구의 차이점은 뭐냐면 적당한 것을 모르게 되는 거라. 욕구를 가지는 것은 적당함을 모릅니다. 계속 원하는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들입니다.

“엄마 나 신발이 다 떨어졌어. 신발 필요해.” 그래서 신발이 다 떨어져서 신발 사줬는데, “나 이거 안 신어. 나이키 사줘!” 그러면은 그것은 욕구로 바뀌어버린다는 거라. 정당하게 요구를 했는데 그것이 나이키가 아니고 다른 뭐다, 그럼 만족을 못하는 거라.

 

요구한 것에 대해서 갖추어졌을 때는 그 형태가 갖추어졌을 때는 그냥 거기서 분명하게 만족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압삣차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요구하는 것들이 적어지는 것, 요구하는 것들이 나중에 더이상 없어지도록 만드는 것. 그런데 요구하는 것이 계속 자꾸 있어져서도 안됩니다. 필요한 것들은 분명히 갖추어져야 되는데 그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욕구'가 생겨날 가능성은 더 훨씬 커지기 때문에. 그래서 출가한 스님은 아예 요구조차도 못하게끔 하는 거라. 출가한 스님들 같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요구하는 것이 적도록 해야 됩니다.

그걸 '소요'라고 그럽니다. "적게 요구하라." 요구하는 것들을 적게끔 하라.

 

그러고 나서 하는 것이 '지족' '산뚯티(santuṭṭhi)'라고 그럽니다.

지족이라고 할 것 같으면 보통 기뻐하는 것으로서 오해할 수 있는데 그거는 기뻐하는 것은 '만족하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을 얘기하게 됩니다. 요구하는 것이 적고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것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나는 기쁨이 일어나는 거라. 나이키를 안 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새 신발을 신어져서 걸어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게 됐다 해가지고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나는 기쁨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그걸 산뚯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좋은 것들을 갖췄다 해가지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만족하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들을 산뚯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소욕지족은 여러분들이 어떠한 경우든지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소욕지족이 인생의 안전대책이다." "이것이 있으면 불행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얘기하는 겁니다.

 

주의해야 될 것은 불만이 일어나는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은 항상 주의를 해야 됩니다.

내가 불만을 일으키는 곳에서는 항상 마음이 돌아다니다가 거기에 탁 걸리면 그부분에서 또 불만을 탁 일으키기 때문에! 꼭 바퀴에 흠이 난 곳에 가서 바퀴가 탁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만을 일으키는 곳에서는 반드시 또 불만들을 일으키게 되는 거라.

자신이 한번 생각해보라고. 소욕을 안 했기 때문에 지족이 안 일어나는 거라. 그래서 거기서 불만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 요구하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더 이상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들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불행해지지를 않게 되는 겁니다. 요구하는 것이 있으니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들이 일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자신에게 불만이 일어나는 것들을 잘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것들은 대부분 보면 자신이 뭔가 원하는 것이고 요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누이' 하고 시누이만 생각하면 탁 불만이 일어난다. 자신에게 시누이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는가? 바라는 것이 없으면 불만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만족은 소욕이 될 때 만족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소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족하길 바란다는 것은 그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항상 불만을 느끼는 것, 불만이 일어나는 것을 항상 조심하도록 해야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 항상 그것들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더 오래살고 싶고 건강하고 싶다고 할 것 같으면, 항상 체크를 해야 되는 포인트는 소욕과 지족입니다.

요구하는 것들을 줄이는 것, 그리고 불만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것!

요구하는 것들을 줄이고 불만을 느끼지 않고 살면 적어도 그 생은 편안해지고 오래 살 수 있게 됩니다. 소욕지족이 여러분에게는 오히려 맛있는 걸 먹고 또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다 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소욕지족은 여러분의 인생의 안전대책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데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