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 2562년 한국테라와다 불교 까티나 가사축제 법요식 (20191019)
(까티나가사 공양법요식 후 23:10분 이후부터 녹취하였습니다.)
"숙제를 하는 사람에게는 불행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없어져버린다."
··· 한국에 테라와다 불모지이기 때문에 거기 가서 테라와다를 알리고 정착될 수 있도록 하고, 나는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언제라고는 얘긴 않했지만.
왜 그러냐면 처음에는 가는 걸 극구 반대하셨습니다. 그냥 내 뒤를 이어서 여기서 수행센터 맡아 하지 뭐하러 한국에, 그 스님은 한국에 몇번 와봤거든. 그래서 한국 상황을 잘 알아요. 테라와다도 뭐, 여러분들도 진짜 오리지날 테라와다 맞습니까? 참 힘듭니다. 그 길을 가려면. 재가자들보다도 출가한 스님들은 더 힘듭니다.
어찌보면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시피 해나가야 됩니다. 한국에 이렇게 교단이 만들어진 게 처음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약조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 숙제하러 언젠가는 다시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스님은 마음이 조금 급해. 한국에 그래도 좀 테라와다가 조금 정착되는 모습을 봐야, 내가 또 돌아가서 내가 할 일들을 하게 되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급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누군가가 숙제를 내줬을 때, 그게 거역하지 못하는 거라 할 것 같으면 그건 반드시 해야 됩니다. 숙제를 다 끝내버렸으면 참 좋을 건데, 못 끝낸 사람은 참 답답합니다. 의지가 아니기 떄문에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양모, 부처님을 키우고 했던 분이 고따미 입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 최초로 비구니 상가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죠. 땡깡 쓰는 바람에. 나는 여기서 머리 깍고 부처님 밑에서 출가하지 못하면 나는 무슨 수를 쓰든지 나는 안 돌아간다 하고 땡깡 부리는 바람에, 그냥 부처님이 마음이 약해서 아난다 말을 듣고 해주게 되긴 됐는데, 사회에서는 굉장히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인도 사회에서는 종교사회인데 여성이 감히 출가자가 된다? 쉽게 말하면 제사장이 되는 거니까.
지금도 기독교는 아마 여자 목사 안수 안 시켜주는 것이 태반일 겁니다. 그런데 2500년 전에 여자가 그런 제사장 역할을 한다? 굉장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편안하게 제사장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거렁뱅이 같이 만날 남의 밥 얻어먹으면서 사는 그런 제사장이라. 어느 누가 좋게 볼 거라? 아무리 이분이 깨달음을 이루었고 뭐 어쩌고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른 거하고 자기하고 뭔 관계가 있어? 자기한테 법을 전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이익이 없고 도움이 없는데, 그러니까 굉장히 사람들이 비난을 많이 합니다.
우리 스님들도 안거가 끝나고 나면 은사스님한테 가서 보고를 합니다.
"스님, 이번에 제가 어디에서 안거를 잘 보내고 왔습니다. 지내는데 어떤어떤 일들이 있었고, 수행은 또 이렇게 잘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보고를 합니다. 해마다 그러는 것뿐 아니라, 돌아가실 때가 되면 반드시 스승을 찾아갑니다.
"스승님, 나는 인제 죽을 때가 다가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 인사드리고 가서 나는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자살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합니다. 보통 수행을 잘하면 자기가 죽을 때를 대부분 압니다. 어느 정도의 상태에서 언제 숨이 끊어지는지를 압니다.
부처님은 삼개월 전에 사람들한테 그럽니다. “야, 나 삼개월 후에 죽어!” 기쁘게 얘기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고, 죽음은 누구든지 받아야 되는 것인데, 나는 그걸 기쁜 마음으로 축제같이 그렇게 합니다. 지금 테라와다 불교권에 가면 누가 사람들이 죽으면 관뚜껑을 열어놓고 옆에 가서 “치즈!” 하면서 사진 찍습니다. 우리하고는 좀 많이 다르죠?
고따미 장로비구니도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나 내일 열반에 들어갑니다.” 하니까 부처님이 “야, 내가 너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그런데 네가 한 가지만 해주고 가라. 사람들이 여자라고 해서 무시를 하는데 여자라고 해서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는 걸 네가 증명해주고 죽어라.” 하고 얘기합니다.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뭔 힘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고따미 장로비구니는 거기서 삼매에 들고 신통력을 나타내고 하늘 위에서 날아다니고 걸어다니고 하는, 여러 가지들을 세상 사람들이 있는 데서 다 보여주고 마지막 말을 합니다.
“나는 저기 있는 부처님을 어릴 때부터 젖을 먹여 키워줬는데, 부처님은 나에게 불사(不死)라고 하는 죽지 않는 젖을 물려줘가지고 나를 키워주었다. 나는 인제 빚진 거 없다. 빚진 거 없으니까 내 마음대로 내가 죽고 싶을 때 죽겠다. 이 법이 소중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지금 내가 다 보여주었다. 여러분도 이것을 따라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 의지력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손가락 하나도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먹으면 그와 같이 드러나지게 됩니다. 핑계 대지 말아라는 거라. 나이 들어서, 바빠서, 뭐 다른 경조사가 있어서, 핑계 대지 말아라는 거라.
법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이 될 때는 법을 들어라는 거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될 때는 수행을 하라는 거라. 왜 자꾸 미루느냐는 거라. 고따미 장로비구니와 같이 죽음 직전에도 그런 의지력은 낼 수가 있듯이, 여러분들도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낸 숙제를 항상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뭐 냈어요, 부처님이 여러분한테? 뭔 숙제를 냈어요?
(수행자 대답 ; 방일하지 말아라)
방일하지 마라? 방일하지 말아야지 당연히, 나쁜 일 하면서 방일하지 말까?
예를 들어봅시다. 목표를 크게 잡으면 참 좋은데, 목표를 크게 잡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하면 됩니다. 성냄이 많은 사람은, '어떠한 경우도 오늘은 까티나 날이기 때문에 성냄을 일으키지 않겠다.'
부처님이 오늘 여러분들한테 나타나가지고 한 사람한테 “오늘 당신은 어떠한 경우도 성을 내지 마시오.” 그 사람은 부처님이 남긴 그 말은 그대로 기억을 해야 됩니다. 화가 날 때마다 '아, 아니다. 내가 부처님한테 약속을 했지' 화를 일으키지 않게 하자.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이 그런 것들은 스스로 자꾸 찾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런 것들이 쌓여야만이 부처님이 낸 숙제, 이 몸 받았으니까 깨달음을 이루어서 해탈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거라. 뭐하러 또 계속 이 힘든 윤회를 지속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이생에서 못하면 다음생에서도 해야 되는 숙제입니다. 다음생에 다시 이 몸을 받는다? 장담 못한다는 거라.
그리고 그런 숙제를 할 수가 있게 될 때, 해탈이라고 하는 숙제 말고, 조그만 숙제, 숙제를 하게 될 때, 본인은 본인이 바뀐 것을 알기 때문에 설혹 큰 숙제를 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죽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 나는 그것은 했으니까, 적어도 다음생에서 내가 남아있는 숙제를 마저 끝내줄 수가 있지' 하는 안심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숙제를 자꾸 할려고 해야만이 의지가 일어난다 하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말도록 하고.
그냥 한번 다 읽어보십시요 이.
그래서 "숙제를 하는 사람에게는 불행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없어져버린다."
그다음에 "모든 것이 자신의 스승이 된다."
대부분 여러분들은 그걸 스승으로 삼지 않을려고 하게 됩니다. 안 늙을려고 그러죠? 병 안 들려고 그러죠? 늙는 게 여러분들 스승이고, 병이 여러분들 스승이고, 죽음이 여러분들 스승입니다. 스승을 너무 홀대합니다. 너무 멀리할려고 합니다. 잘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 사인이 떨어졌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들고 죽게 돼있는 건데, 그걸 스승으로서 받아들이게 되면 그걸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다음에 "의지의 자기 관리방법"
그다음이 "눈앞에 일만 전념한다. 하나하나씩 해나가면 정신의 침착성이 향상된다."
어떠한 경우든지 목표를 잡았으면 그 하나를 해서 계속적으로 해서 완성을 시키도록 해야 됩니다. 완성이 되면 다음 목표를 잡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행에서도 대상이 일어나면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 봐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다음 대상을 보기가 용이해지고, 그게 바른 방법입니다.
그런데 무시해버리고 또 다른 대상을 본다?
침착성은 사라져버리고, 마음의 안정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대상들은 너무나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생겨나기는 생겨나는데, 사라지는 걸 보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수행에서 사라지는 게 먼저 보이고 나서 나중에 가야,
빠르게 변하는 것이 생겨나는 것으로만 보여지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은 거꾸로 되는 거라. 수행이.
그냥 생겨나기만 하는 게 보인다는 거라.
그마만큼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돼 있지 못하고 들떠있는 상태라는 거라.
그러니 끊임없이 대상들은 일어난다는 거라.
그러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도록 자꾸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차례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단, 주의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차례대로 진행되는데 딱 개입하는 것이, 진행되는 것을 분명하게 보는 순간 자아(自我), 나라고 하는 것이 딱 끊기게 됩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주의를 하도록 하는 것을 뒤에 적어놓았습니다.
"도거 라고 하는 것, 자아라고 하는 것, 침착하지 않는 악마에 휘둘리지 마라. 나중에는 결국 인격완성의 길로 가도록 하라."
부처님의 가르침, 수행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을 행복한 길로 인도를 해주는 것이지, 여러분을 반대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테라와다 불교를 접하면 접할수록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져야 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비록 물질적인 것, 명예에 대한 것, 이런 것들은 들쑥날쑥하고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은, 세속사는 불교가 보장을 해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부처님한테 빌어도 장사가 망할 때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을 친견하고 와도 나쁜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장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들쑥날쑥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겼다가도 없어지고, 커졌다가도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단, 그런 것들로부터 어떠한 상태가 되더라도 고요하고 침착하게 될 수 있는 것들은 우리가 보장해줄 수가 있다는 거라.
마음이 안정돼 있으면 참 편합니다. 어떠한 외부적인 자극에도, 또 어떠한 상태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끄달려 들어가지지를 않습니다.
참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상태까지는 만들도록 자꾸 노력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까티나 가사축제에 참석해주신 스님들께 감사를 표하고, 오늘 또 공양물과 여러가지 것들을 준비한 우리 도반님들, 그리고 행사를 어제부터 와가지고 계속 준비하고 한 분들, 모두에게 부처님의 가피력과 담마의 가피력, 상가의 가피력 입어, 항상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짯따로 담마 왓단띠 아유 완노 수캉 발랑.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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