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2020년 붓다의 날_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말자(20200509)

담마마-마까 2022. 5. 25. 09:00

https://youtu.be/YmU4pZ0I6Zk

* 2020년 붓다의 날_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말자(20200509)

 

오늘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게송을 먼저 좀 하고,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산향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고, 빠니디님 남편분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그랬다고 합니다.

게송에 그런 게 있습니다.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ṁ vūpasamo sukho."

"웁빳지뜨와- 니룻잔띠 떼-상 우-빠사모- 수코-"

"태어난 존재들은 누구든지 죽음을 맞게 돼있다."

게송을 그대로 하면 "이러한 것들의 완전 멈춤만이 누구든지 진실한 즐거움이다" 하는 뜻입니다.

어떻게 멈춰야 될까? 이걸 잘못 이해하면 안 되는 게 변하는 것들입니다. 태어났으면 죽음을 맞게 돼있고, 화가 일어났으면 그게 사라지기도 하고 변하는 것들이고, 죽고 태어나고 변해가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져라. 그게 "완전 멈춤"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고요하게 마음을 가지게 될 때 그때만이 진실한 즐거움이 온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기분들 막 일어나죠? 파도치듯이 막 들이칩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지지 못하면, 그냥 그게 바로 반응이 와서 화가 들이치면 화를 일으키게 되고,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미워하는 것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났으면 사라지는 걸 알고 있는데, 지금 파도치고 하는 것들을 고요하게 마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괴로운 거라.

고요하게만 가지게 되면 즐거웁게 될 건데, 그러한 것들을 극복했다는 즐거움도 있고, 그러한 대상들에 대해서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구나 하는 것들로 인해가지고 즐거움이 일어나고, 그게 "웁빳지뜨와 니룻잔띠 떼상 우빠사모 수코" 라고 하는 게송입니다.

 

스님들이 항상 돌아가신 분들께 하는 게송이 그 게송입니다.

Aniccā vata saṅkharā, 아닛짜- 와따 상카라-,

uppāda vayadhammino. 웁빠-다 와야담미노-.

Uppajjitvā nirujjhanti, 웁빳지뜨와- 니룻잔띠,

tesaṁ vūpasamo sukho. -상 우-빠사모- 수코-.

 

일어나고 태어난 것들은, 형성되어진 어떤 것들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어쨌든 일어난 것들은 참 무상한 것들이라는 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들 언젠가는 소멸하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생멸의 법칙입니다.

원인을 지어서 일어났으면 반드시 그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원인·결과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돌아가신 분들도 그와 같습니다. 금방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분들은 마음이 울적하고 할 건데, 또 그러한 기분들도 세월 지나면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남과 같은 마음이 일어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 내가 그것 때문에 울적해 해야 돼?

마음이 고요할 때 나는 괴로운 것이 아니고 적어도 행복한 상태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게 될 때 내가 돌아가신 분께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지, 울적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못다한 것들 또는 슬픈 것들 이런 것들을 자꾸 회상하고 떠올려가지고, 나에게도 괴로움이 가중되고 그러한 마음은 다른 이들에게 살아있는 분뿐 아니라 돌아가신 분께도 설혹 회향이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는 겁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어떠한 상태에 도달하더라도 외부적인 자극이 있어도 나는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지닌 여러분조차도 언젠가는 생멸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자! 다같이 따라서 하십시오.

"idaṃ me ñātīnaṃ hotu, sukhitā hontu ñātayo."

"이당 메 냐띠낭 호뚜, 수키따 혼뚜 냐따요."

"돌아가신 분들이 잘 살아가기를, 돌아가신 분들이 행복하기를."

 

편안하게 앉으십시요.

시작부터 좀 마음에 부담이 되는 소리를 했죠? 오늘은 무엇 때문에 모였죠?

부처님 오신날 기념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태어난 날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는.

테라와다에서는 붓다의 날이라고 해서 태어난 날이 아니고, 태어나고 성도하고 죽음을 맞은 열반의 날 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태어났죠? 성도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악한 일도 하고 선한 일도 하고 할 겁니다. 부처님은 성도한 과보로써 해탈에 이르렀지만, 여러분은 성도는 못하고 과보를 지었으니까 그 결과를 받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몸을 버리고 죽음을 맞았듯이 여러분도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러분은 태어났을 때 다들 기뻐했습니까? 안 기뻐했어요? 태어난 사람은 모르겠지. 해마다 생일 때 누군가가 기뻐해줍니까? 주변에 그렇게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참 행복한 겁니다. 잘 살아가는 겁니다. 부처님 한번 봐봐요. 2600년동안 매해마다 생일밥 잡숫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신 분이라. 탄생을 축하할만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2600년 가라면 안 가겠죠.

 

살아있을 때라도 적어도 여러분이 태어난 날은 축하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남들에게 무조건 잘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본인이 항상 마음을 선하게 가질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신에게 밀려들어오는 것들은 쓰나미 같이 확 몰려들기 때문에, 그때는 감당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지혜가 있으면 적어도 감당은 안 될지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팔이 부러지든 설혹 내가 죽음을 맞게 되더라도, 마음이 괴로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이 나에게 닥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선한 일들만 하고 싶은데, 때로는 악한 말도 내뱉어야 되고, 안 하면 좋겠지만 그것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항상 마음을 아,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적어도 내뱉기 전에 탁 멈추게 된다는 겁니다. 고요한 마음을 해치는 상태가 되면 딱 멈출 줄 알게 될 때, 괴로움을 나는 안 받는다는 겁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아갈려고 생각하지 말고, 남들에게 참 잘 태어나신 분이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선도 악도 초월해버리는 상태 해탈에 이르렀으면 참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악한 행위들은 짓지 않고 선한 행위들을 지을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나보다는 남을 자꾸 배려할려는 마음들을 가지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알았겠지만, 참 보잘것없습니다.

조그만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참 힘들게 살아갑니다.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남들도 꼭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아주 작은 미생물이든, 몸집이 큰 형체를 지닌 동물이든 똑같은 존재입니다. 다 불안전하고 다 불완전하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든지 내가 가진 것들이 그것이 옳다고 내세워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불완전한 것들인데 뭘 맞다고 자꾸 내세우려 하느냐는 거라. 다툼을 줄여나갈려고 하고 누구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이해하고 용서를 하면서 평등하게 볼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남들에게서 축복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더욱더 노력하여서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해탈에 이를 수 있는가를 발견해내가지고 그길을 갈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분법적으로만 자꾸 생각을 하면은, 선원에 오면 수행하고 선원에 와야만이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는 아닙니다.

스님은 곳곳에서 보면서 그것들이 법문하는 것들이 들립니다. 그것들이 법문하는 재료가 된다는 것이 보여지게 됩니다. 책을 읽고 내가 경험해야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행도 여러분의 일상을 벗어나서 특정한 시간이나 특정한 장소에서 할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것은 부처님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남들에게서 축복받을 일이 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지금 내가 할 것들이 뭔지를 분명하게 해나가도록 자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부처님도 죽음을 맞았듯이 여러분도 죽음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지 자꾸 살펴야 됩니다. 미련이 남지는 않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무얼 많이 갖추어놔가지고 내 가족들이나 주변 분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잘 살도록 만드는 것이 미련을 안 만드는 것입니다.

아니면 내가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서, 어떠한 상태에 도달하더라도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른 것이지, 답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자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데 속박당한 상태로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해탈에 이르지 못했으면 속박돼있습니다. 작은 속박을 버리고 큰 속박에 매여버리고, 본인은 그 속박에서 자유롭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속박에 매여버리게 되는 겁니다.

 

부처님 당시 때 욱가세나 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일화는 여러분들도 아마 잘 알 겁니다. 곡예사, 줄 위에서 재주를 넘는 분입니다. 재주를 잘 넘으면 사람들이 좋아라 하고 박수쳐줍니다. 거기에 속박돼버리면 남들이 좋아라 하고 하는 것들만 계속 찾아다닙니다. 그런 것들만 계속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의 시선을 부처님에게 돌려버립니다. 욱가세나가 줄 위에서 줄 타고 있는데도, 아무도 사람들이 보지를 않습니다. 아까 얘기했죠. 기분은 쓰나미처럼 확 밀려온다고.

아주 나쁜 마음이 확 일어나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 나는 똑같은 재주를 넘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환호 해주지 않는 것에 속박되어 있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공양을 올렸습니다. 오늘 공양 올렸는데 나에게 왜 좋은 일이 안 일어날까? 속박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그 결과는 언젠가는 나타나게 돼 있는데,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거라.

늙고 병들고 하는 것들, 죽음까지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내가 지은 행위는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려고 그럽니다. 불가능한 것들을 자꾸 원하게 되는 겁니다.

욱가세나가 그러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처님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너는 너의 생각에 속박되어 있다.” 여러분들도 어떠한 것들에도 속박되지 않으면 좋은데, 가장 조심해야 되는 것이 지금 일어나는 생각들에 속박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속박되다' 라는 것을 빨리어로 보통 '상요자나(saṁyojana)' 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그런 넓은 의미에서의 상요자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조그만 조그만한 것들, 기분이든 뭔 가족이든, 무엇이든 속박되는 것들을 얘기할 때는 '요가(yoga)' 라는 단어를 씁니다.

'유가행파'라고 옛날에 쭉 있었죠? 그 '유가'가 '요가'를 음역한 단어입니다. 요가(yoga)라고 하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만 알고 있는데, 그런 의미보다는 '조건에 의해서 원인·결과로써 묶여버리는 것'들입니다. 비슷한 것들이면 서로 잡아당깁니다. 그럼 그 두 개가 묶여버립니다.

 

여러분들 어머니나 여러분들 자식이 있으면 여러분들 가족이라는 것으로 얽어버리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당했을 때와 내 가족이 어떤 일을 당했을 때는, 그래서 거기서 일어나는 마음이 틀리게 됩니다. 요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얘기할 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얘기할 때는 요가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욱가세나도 꼭 마찬가지로 환호해줘야 되는데 환호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딱 얽매여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오늘 같은 날은 그런데에 속박되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불편합니다, 속박되어 있으면. 우선 내 자신에게 탐·진·치가 일어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일들을 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좀 더 편안하게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어쨌든 오늘은 붓다의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고, 또 코로나 사태 때문에 오랫동안 법회를 못 본 것도 있고 해서, 간단하게라도 「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말자」 하는 제목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속박의 재료가 되는 것들을 자꾸 버려버리고 속박되지 않도록 자꾸 해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들로 인해서 큰 것들에 속박됐으면 그것의 위험성이 분명히 보면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편안하면 편안한 것에 속박돼버립니다. 조금 전에는 힘들게 사띠한다고 고생해서 그것으로부터도 벗어난 줄 알았더니, 편안한 것에 꽉 묶여버립니다. 그것의 위험성을 또 알아야만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눈에 속박되지 않고 귀에 속박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안·이·비·설·신까지는 잘할 줄 아는데, 의에 딱 묶여가지고 속박돼버립니다. 큰 것의 속박도 똑같은 속박입니다.

 

그것의 무서움을 알고 그것의 괴로움을 자꾸 볼려고 노력할 때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야만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줄을 본인이 분명하게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가 자꾸 되도록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