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나를 보호하는 법들 (20190907)

담마마-마까 2022. 5. 22. 09:00

https://youtu.be/yjaK8g8wmkA

* 나를 보호하는 법들 (20190907)

 

한 아마 한 두 달 전인 것 같은데, 떡갈나무 씨가 하나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걸 가져와서 저 마당에다 심어놨었어요. 그걸 또 송천님은 쏙 뽑아버린 거 아닌가 몰라. 그런데 한 한 달 전부터 싹이 올라와서 한 뼘 정도 키 넘어 자랐어요. 그런 거 보니까 떡갈나무가 이제 잘 자라겠다라는 마음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 떡갈나무를 보면서 곰곰이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게 만약에, 씨가 껍질이 단단한 게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특히 여기는 벌레들이나 개미들이나 뭐, 쥐 같은 이런 것들이 많아서 단단하지 않으면 아마 그거 먹어버리지, 그거 남아있지 못했을 거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자기가 살려고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서 그렇게 커나가는 것을 봅니다.

 

한 3일 전이죠? 여기 스님이 지붕 위에 올라가 가지고, 낙엽들이 많이 떨어지고 소나무잎이 많이 떨어져가지고 하니까 배수가 많이 막혀요. 그래서 그걸 좀 싹 걷어냈거든. 걷어내고, 높다 보니까 내려오는데 누가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사다리가 이렇게 휘청해가지고 넘어가요. 그게 넘어가는데, 그냥 내가 안 다칠려고 하다가는 사다리 하고 같이 넘어가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놓아버렸어. 뭐, 조금 지붕에서 높기는 해도 뭐 떨어져도, 그냥 다리나 부러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놓아버리고, 그냥 그대로 내려오는 것을 관찰하면서 이렇게 딱 착지를 했는데, 그게 아마 지붕 높이가 한 4미터는 될 거라. 그런데 하나도 안 다치고 그냥 떨어졌어.

 

그래서 나를 보호하고 있는 거는 뭘까, 하는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여러분을 보호해주는 것이 과연 몇 개나 될까? 그 떡갈나무도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단단한 껍질을 만들고 있는데, 여러분은 과연 살아가면서 얼마만큼 여러분을 보호해줄 수 있는 걸 가지고 있느냐는 거라. 한번 누가 얘기해 봐요. 뭘 가지고 있어요? 계를 지키는 거? 그것도 여러분들을 보호해주는 것들입니다.

 

며칠 전에 요 앞에도 벌초를 했거든. 벌초를 누가 하고 있는데, 우연히 포행 나갔다가 그 벌초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냥 벌초만 하면 될 건데, 뱀이 기어가니까 꼭 그걸 쫓아가서 그걸 죽이더라고. 그래서 그분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을 물지 않았는데 그걸 왜 꼭 죽이느냐.” 자신이 그것을 죽이면 언젠가는 또 그런 해코지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니까, “아 예, 스님.” 하고 말은 하는데, 그렇게 귀담아 듣는 것 같지는 않아.

 

그런데 그 인과법칙은 분명한 거거든. 자신이 지은 행위에 대해서 결과를 받게 돼있는 겁니다. 죽이는 건 나쁜 거고, 누구든지 살려고 하고 누구든지 행복하게 되고자 하는데, 그걸 누가 해코지하고 죽이고 하면 좋아하나, 당연히 원한심을 갖게 되고 자신도 그와 같은 걸 반드시 보답을 받게 돼있는 건데. 마찬가지로 계를 잘 지키는 것도 여러분을 보호해주는 단단한 껍질이 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수행자 같은 경우에는 사띠 같은 것들이 여러분들을 보호해주고 있겠죠.

그런데 사띠가 무르익었을 때, '아, 사띠가 나를 보호해주는구나' 하고 알지, 사띠가 무르익기 전에는 이게 나를 보호해주는 건지, 아니면 억지로 하고 있는지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르익을 만큼 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동적으로 사띠가 되도록.

사띠가 되면 이익이 뭐냐면, 첫 번째가 그겁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거라. 당연히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으니까 나쁜 행위를 안 하는 거라. 그래서 그런 사띠들도 깨달음에 이르게 해주지만은, 직접적으로 여러분들을 보호해주는 껍질이 돼나가기도 합니다.

 

그거 말고도 경전에 일곱 가지로, 어떨 때는 다섯 가지로, 여러 가지로 얘기를 해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스님이 위에서 사다리에서 떨어질 때, 어떤 거 먼저 버렸어요? 그냥 살려고 하는 마음을 탁 버려버리니까 자연스럽게 그냥 떨어집니다. 떨어질 때 또 사띠를 하게 돼고.

 

며칠 전에 또 어느 스님이 와가지고 “스님, 스님은 어떻게 해가지고 빨리어를 그렇게 외우게 됐습니까?” 하고 물어봐요. 여러분은 빨리어 문장을 얼마나 외우고 있어요? 담마락끼따님, 몇 개나 외우고 있어요? 자애경은 외우고 있는 가요? (대답 : 삼보예찬만.) 삼보예찬. 반야심경은 외우고 있어요? (대답 : 아니요) 그것도 못 외우고 있어요? (대답 : 예) 큰일이다.

왜 안 외워질까?

스님이 태국에서 공부할 때는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해야 됩니다. 절박하니까. 나는 부처님 말씀이 뭔지를 알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그걸 안 가르쳐주니까, 그것이 너무 알고 싶은 거라. 오히려 절박하면 그것들을 외우게 됩니다. 쉽게 얘기를 하면은, 그것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그것을 외우려고 하면 외워집니다.

 

그런데 스님이 또 못 하는 게 뭐냐면, 사람 얼굴을 구별하는 거, 또 누구 이름을 기억하는 거. 또 그 사람이 신상이 어떤지, 전화번호가 어떤지 이런 거 기억하는 거, 아예 못 합니다. 내 번호조차도 깜빡깜빡합니다. 그건 왜 그럴까? 다른 거는 잘 외우면서 그거는 왜 못 외우게 될까.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까.

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재미가 있고 흥미가 있으면 외워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못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도 공부할 때 공부하는 방법이, 놀이식으로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고 그럽니다. 그것도 일견 맞습니다.

 

그런데 맨 첫 번째가 그겁니다. 긴장감을 가지는 것. 이거 아니면 죽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것들이 외워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이것이 아니면 죽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것들을 가지려고 하게 됩니다.

 

또 하나, 지금은 아침을 먹은 사람이면 지금 밥 먹어라 하면 별로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침을, 어제 저녁 먹고 아직 안 먹고 굶은 사람이면 지금 밥 먹어라 하면 되게 맛있습니다. 비워져 있을 때 배를 채워줄 때 맛있게 먹게 됩니다.

여러분이 집착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들은 외우기도 힘들어지고, 또 여러분들을 단단하게 껍질을 보호하는 것들은 점점 더 엷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을 합니다. 뭔가 많이 가지고 많이 집착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나를 보호해주겠지. 그런데 그거는 역으로 얘기하면, 그것이 여러분을 죽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행을 할 때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어떤 것도 집착하지 말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관찰하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관찰하라는 뜻입니다. 집착할 대상이 없어야만이 대상을 분명하게 사띠를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보호하는 껍질을 만들려고 할 거 같으면은 그러한 대상들이 점점 없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집착할 수 있는 대상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착할 대상이 없어야만이 여러분들이 안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이 지붕에서 떨어지면서 맨 처음 느꼈던 것이 그겁니다.

'아, 내가 죽는 살든 그게 무슨 관계 있어? 그리고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다리라는 거, 그것이 나를 죽일 수가 있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면은 그걸 놓아버린다는 거라.

눈앞에 있는 것들만 자꾸 생각을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조금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려고 할 거 같으면 그렇게 집착하는 것들을 점점 놓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런데 참 잘 안 되는 부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억지라도 자꾸 그렇게 해야 됩니다.

 

놓고 나면은 오히려 놓여지는 대상도 행복하고 자신도 행복합니다.

대부분은 너무 잡고 있어서 문제가 되지, 그것을 놓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는 겁니다. 특히 수행하는 사람들은, 대상에 대해서 붙잡을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상을 붙잡는 순간, 그것은 수행은 거기서 딱 중단을 하게 됩니다. 좋은 것이 있든 나쁜 것이 나타나든 그것은 대상일 뿐이라는 거라. 그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거 자체가 단단한 무언가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소는 뭘 한 번 먹고 나면 그것을 위에 저장했다가 다시 끄집어내서 한 번 더 씹습니다. 어떤 게 맛있을까? 처음에 씹었던 게 맛있을까, 아니면 그걸 끄집어내가 다시 되새김질하는 게 맛있을까? (수행자 대답 : 되새김질하는 게 맛있죠.) 왜 그럴까요? (수행자 대답 : 맛을 음미를 하니까요.) 맛을 음미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을 할 때 대상을 알아차릴 때가 행복합니까, 아니면 수행에서 대상을 알아차리고 나서 '아, 내가 이런 순간이 있었지' 하고 그걸 되돌아보고 있을 때가 즐겁습니까? (수행자 대답 : 처음 알아차릴 때)

 

알아차릴 때가 즐겁습니까? 이게 얘기가 틀린 거라. 처음이 맛있을 수도 있고, 뒤에 되새김질 하는 게 맛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여러분은 되새김질은 하고 있습니까? 얼마만큼 수행에서 즐거움을 알아서 그것을 다시 회상을 하면서, 아니면 법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희열감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거라.

 

가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스님 법문 들으면 참 좋습니다. 한 번 들을 때, 두 번 들을 때마다 자꾸 자꾸 달라집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렇게 권하고 싶어요. 한 번 듣고 나서, 그것이 자기 것이 되었을 때는 그것을 다시 회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법문 들을 때의 기쁨이나 희열감 못지 않게 자기 것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기쁨이나 희열감도 그와 못지않다는 거라.

 

기억은 어떤 것이 더 오래가겠어요? 되새김질을 하면 할수록, 두 번 하고 세 번 하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기억하는 것은 더 잘 됩니다. 여러분을 보호해줄 수 있는 단단한 껍질도, 되새김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러분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막들은 더욱 더 두꺼워진다는 겁니다.

 

그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법이 돼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스스로 체험하고 스스로 경험한 법들이 돼야 됩니다. 남이 아무리 가르쳐주고 남의 법문을 아무리 듣더라도, 한 번의 기쁨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면은, 계속해서 그것들을 끄집어낼 수가 없다는 거라.

 

법이 여러분들을 보호해주려고 할 거 같으면은, 법이 자기 것이 되어서 그것을, 법을 활용할 수가 있고 되새김질을 해서 다시 끄집어내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때, 그 법이 여러분들을 보호해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고, 또 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하는 것들도 한 번으로 그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 스님이 문장을 외울 때, 숨 한 번에 한 줄씩 외웠습니다. 그다음에는 숨 한 번에 두 줄씩 외웠습니다. 나중에는 숨 한 번에 한 바닥을 외우게 됩니다. 점점 그게 바닥이 늘어납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동안에.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되풀이하지 않으면은 그것은 자기 것이 될 수가 없는 거라. 그러한 법은 여러분들에게 진짜 좋은 것들을 가져다줍니다.

 

여기들은 부모들이 많으니까, 아마 이해하고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들 자녀들을 보면은, 네거티브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려고 하고.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남에게 말을 할 때든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또 행동하는 것들이 부정적인 게 많습니까, 긍정적인 것이 많습니까? 긍정적인 것들이 훨씬 많아야 됩니다.

 

똑같은 현상인데도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긍정적이 될 때, 그 사람은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 긍정적인 것들이 여러분을 또한 보호를 해주게 됩니다.

여러분을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말고도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그러한 것들을 빨리 찾아서 그 껍질을 단단하게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만들수록 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또 그 법 따라 살아가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위의 법문을 필사해주시고 나누어주신 부유님께 감사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