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00년 일상수행법문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 - 4대요소의 인식 (2002 0928)

담마마-마까 2024. 8. 29. 10:06

https://youtu.be/et_XjeXfJk4?si=9eIOhNPAKVc6dGHu

 

*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 - 4대요소의 인식 (2002 0928)


지하철 2호선 타본 사람? (수행자 대답 : ...)

1차선 보다 빠르던가? 차량이 아무래도 3대니까 조금 빠르겠지 뭐. (수행자 : ...)

모르겠어요? 어쨌든 노선이 많아짐으로 해서 집에 가기가 좀 수월해지지. 어디 다른 데 이동하기도 좀 수월해지고, 그건 틀림없이 있을 거라. 물론 그것도 뭐 차량도 세월이 지나면 자꾸자꾸 인제 노후화되니까 뭐 이것도 느려지고 부서지고 하겠지. 그것도 부처님 진리대로 따라가는 거지 별 수 있나, 지가?

자, 그런데 꼭 시절(?)로 가는 것이 표는 낸단 말이라. ... 이번에는 여기서 만약에 서면을 간다 그럴 것 같으면 이 시간으로 계산했단 말이라. 그러니까 차 없을 때 옛날옛날에는 반나절 거리다, 아니면 하루거리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들을 했단 말이라. 한양 가고 뭐 이럴 때도 꼭 마찬가지지, 여기서 몇 키로다 하고 얘기하는 사람 있어요? 그렇게는 잘 안 한단 말이라. 시간 개념으로 이렇게 얘기들을 한단 말이라.

 

근데 시간 개념으로 볼 것 같으면 요즘은 굉장히 이게 옛날에 비하면 빠른 거지? 그러니깐 집을 구할 때도 일부러 도심에다 안 구하는 거라. 옛날에는 만약에 직장하고 집하고 2시간 거리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럼 멀리 있는 집은 못 구했거든. 도심에 있어야 된단 말이라. 그정도로 인제 교통수단도 좋아지고 또 다니는데 편해지니까 공간적으로 어떻게 돼? 더 멀리 가더라도 옛날 같은 그런 시간대에 포함이 되는 거라. 그게 인제 자꾸 좁혀진다는 거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없어져 버린다는 거라. 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그렇게 없어지니까 어떻게 돼요? ... 단지 이 시간에 있는 사람,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 자체도 점점 더 엷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라.

태종사 와야만이 진용스님을 볼 수 있다, 그렇습니까? 그래요? 이게 인제 그런 개념이 없어진다는 거라. 진용스님은 태종사 안 오더라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거라. 요즘 많이 나오잖아. 컴퓨터로 뭐 화상으로 뭐 이렇게 법문도 하고 음성으로도 나가고 하니까, 앞에 없어도 얼마든지 진용스님을 볼 수 있는 거라. 그러니까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도 이미 옛날 말이 돼버렸다는 거라.

 

그게 인제 그렇게 되니까. 어떻게 돼요? 가족이라는 개념도 점점 엷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라. 가족이란 개념은 뭐라? 내 팔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고함을 꽥 질러가지고 소리가 미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사람들, 이 사람이 옛날엔 가족이었단 말이라. 그게 틀린 말이든 옳은 말이든 그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었다는 개념이었거든.

그리고 우리 마을이라는 건 어떤 거라? 옛날에는 동구밖이라고 할 것 같으면 누가 있는지를 몰랐단 말이라. 내가 갈 수 있는 거리,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우리 마을이었다고. 국가라는 것도 꼭 마찬가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그런 공간 안에 있는 게 하나의 국가이지, 내 상상을 벗어나는 거는 국가가 아니야. 그런 개념이었는데.
지금은 가족이나 마을, 국가라는 개념이 옛날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옅어진다는 거라. 그래서 물질적으로 봐가지고는 시간이나 공간이란 그런 개념들은 이미 옛날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물론 옛날에도 그리 했습니다 옛날에도.

어떻게 했어요? 부처님이 ‘저놈이 나를 필요로 하겠구나’ 싶으면 어떻게 돼? 뿅 그 앞에 나타나가지고 부처님이 설법을 했다고 불경에 나와 있지. 컴퓨터로 생각하면 돼. ‘아, 내가 부처님이 필요하다’ 그럼 컴퓨터에 '붓다' 해갖고 엔터키 탁 누르니까 어떻게 돼? 부처님이 뿅 나타나갖고 부처님에 대해서 다 얘기를 하고 부처님이 거기서 화상으로 법문을 하게 된다는 거와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정신적으로도 옛날에는 그런 것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부처님 자신은. 물질적으로도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떠나신 분이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상가(saṅgha)의 개념이 어떤 거라요? 상가라는 것은 이건 모임체거든. 가족이나 마을이나 국가라는 이런 어떤 단체를 얘기한단 말이야.
그 단체가 어디 구역에 공간에 구애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시간에 구애를 받았습니까? 그런 게 없었거든. 그러니까 사방상가 시방상가라는 그런 개념이었단 말이라. 어디 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든 아니면 한국에 있든 태국에 있든 같은 상가권 내로서 연결이 가능했거든.

니가 어느 스님을 은사로 해서 갔으니까 어떻게 돼요? 내 문중이 되는 거라. 그 스님이 어디 가 있든. 그러니깐 그런 거리나 공간의 제약을 안 받고 다 콘트롤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거지. 이게 쉽게 말하면 그 시방상가의 개념이거든.
이 상가라는 개념도 부처님 당시 때 집단이라는 그런 공동체도 그런 것을 이미 떠난 상태였다 하는 거라.

 

그렇게 볼 것 같으면 지금의 과학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생각에 비하면 상당히 뒤떨어진 경우가 되는 거지. 근데 우리는 겨우 세계화 시대 글로벌 시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어떻게 돼? 그런 개념들을 자꾸 부숴나가고 있는 그런 상태거든. 근데 그게 인제 과학적인 면부터 인제 그렇게들 진행을 해오고 있는 거라.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물질적인 문제들이 시간과 공간을 갖다가 벗어나고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에 맞춰가지고 지금 정신적인 면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계도 그런 패턴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기독교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는 이 고해성사할 때 칸막이를 탁 해놔 놓고 한쪽에는 목사님이 계시고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계시고 한쪽 옆에서 고해성사를 했거든. 요즘은 그렇게 잘 안 한대. 그렇게 안 하고, 각각의 방에서 마이크를 통해서 하든 후진국일 때 인제 마이크를 통해서 하겠지? 뭐 음성 변조를 하든 어쨌든 간에.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컴퓨터 자판 놔놓고 두두두둑 한다는 거라. 아이디(ID)야 뭐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이건 누군지를 모르고 그렇게 인제 해나간다는 거라. 그거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가능하다는 거거든.

요즘에도 이미 그렇게 패턴들이 바뀌어 나가고 있다는 거라. 물론 칸막이를 놔놓고 하는 게 순수하기는 순수합니다. 이미 자꾸 문제들이 많아지니까, 현대화돼 나가고 물질문명화 되다 보니깐 성직자들 자체도 그렇게 자꾸 패턴이 바뀌어져 나가거든. 그러니까 그런 흐름에 성직자들이 자꾸 뒤떨어지는 거 같으니까, 문제가 자꾸 생기는 거라. 갭이 생기고. 그걸 막아주는 방편으로 이제 성직자들도 그런 물질적인 것들을 자꾸 쫓아가면서도 정신적인 면들을 갖다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경향들이 있다는 거죠. 이제 이렇게 어쨌든 바뀌어 나가고 있다는 거라.

 

그리고 지금 대부분 큰 교회나 절 같은 경우에 인터넷 없는 인터넷 홈페이지 없는 데들이 별로 없습니다. 불교계는 조금 적은 편입니다. 사실은. 교구본사에는 있다는 거라. 이제 조계종 같은 경우에는 교구본사가 겨우 다 만들어져가지고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고, 그다음에 뭐 한 수십 개 사찰 그런 것 밖이란 말이라. 사실 수천 개의 사찰이 있는데도 아직은 많이 뒤떨어집니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지금 패턴들이 바뀌어 나가고 있다는 거라.

그래서 멀리 있어서 법당을 참배 못 할 때에는 사이버 법당에 와서 참배를 하게끔 하고, 또 스님 법문이나 여러 자료들을 갖다가 섭렵해서 공부를 할 수 있게끔 하고, 수행할 수 있게끔 지도를 하고 하는 그런 거거든.

그래서 어떻게 돼? 옛날에는 그 절이 크다, 어쩌다 하고 할 때는 어떻게 돼? 공간적으로 여러 신행 요소들이 신행 공간들이 많아야만이 그 절이 크다고 얘기했단 말이라. 근데 요즘은 '큰 절이다' 하고 얘기할 때는 그걸 가지고 얘기를 안 하는 거라.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느냐? 그걸 가지고 인제 '큰 절이다, 작은 절이다' 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사람은 한 열댓 명 와도 그 영향력이 2천 명 3천 명 되는 경우들이 많거든. 그걸 가지고 큰 절이다, 작은 절이다 아니면 이름이 나고 안 나고 하고 얘기들을 하게 되는 거라.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사이버 법당이나 이런 온라인상에서 운영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창하게 잘해나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알고 보면 몇 사람이 크게 움직여 나갑니다. 움직여 나가는데 사회적인 영향은 판이하게 틀리다는 거라. 그 공간 자체가 아주 조직적으로 잘 돼 나가고 있고, 바르게 해나가고 할 것 같은 그 영향은 굉장히 큽니다. 혼자서 뭐 거기 있는 글도 퍼 가기도 하고 또 ‘어디’ 하면 금방 알고 오거든. 그래 하더라도 회원 수가 천 명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중구난방이 될 것 같으면 모르는 거라.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개념들은 우리 인제 적어도 여기 토요일날 수행하러 오는 분들은 이미 떠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미 종교계의 흐름들 자체가 그렇게 변해 나가고 있습니다. 많이 변해 왔고 앞으로는 더욱더 변해 나갑니다. 이미 세계의 흐름들 자체가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양대 극단이 무너지고 그런 사상적인 문제들이 옛날에 비하면 큰 영향을 못 미칩니다. 이제 빨갱이다 해도 요즘은 누가 거들떠도 안 봅니다. 옛날엔 빨갱이다 할 것 같으면 근처에도 안 갔어. 어디서 붉은 악마라 하고 붉은 옷을 입고 나와서 설칠 거라? 그런 시대 아니었거든.

요즘은 그런 사상적인 문제들 이런 것은 이미 많이 영향을 못 미친다는 거라. --이기 때문에 종교들 자체도 종교의 색을 갖다가 점점 더 안 띄게끔 되는 거라. 기독교 하면 요런 교리, 불교하면 요런 교리 이런 극한 대립의 양상, 또 대승불교 소승 불교 이런 어떤 대비 양상, 이런 각들은 점점더 무기해진다는 거라.
시간과 공간이 이미 허물어졌기 때문에 모든 정보의 채널이나 모든 것들을 내가 여기 앉은 자리에서 다 공유를 할 수 있는 거라. 그러니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그마만큼 많아지기 때문에 그런 어떤 대립의 각들은 점점 더 옅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라.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도 어느 곳에 있는 사람, 또는 태종사일 것 같으면 태종대 안에 있는 절 이런 개념들이 이미 엷어진다 거라.

아직은 조금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진용 스님하면 태종사에 있는 스님, 태종사 하면 태종대에 있는 절, 요렇게들 지금은 아직은 생각이 들 겁니다. 그리 하더라도 그런 개념들은 얼마 못 가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각각의 신행 단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어떤 영역들을 구축들을 할려고 많이 합니다. 그래서 어느 사찰 할 것 같으면 아, 저기는 수행하는 공간, 또 어디 할 것 같으면 법화경을 전문적으로 하는 공간, 어디 할 것 같으면 무슨 공간, 이렇게 자꾸 세분화 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 세분화 된 것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파장을 미치게끔 돼 있는 것이지. 전체 몽뚱그려가지고 어디에 있고 뭐가 하고 하는 그런 것은 이미 없어졌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 인제. ... 내 스스로 탈바꿈을 해나가야 되고, 또 우리 신행단체들도 탈바꿈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공간적인 요소, 시간적인 요소 이런 것이 바로 몸과 마음의 관계에서 1차적으로 풀어나가야 될 문제입니다. 아까도 지하철 얘기들을 하면서 물질적인 것이 앞서고 나서 정신적인 부분이 뒤따라갔다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저번 주까지 오온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문제를 다섯 가지 집합체로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몸과 마음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스님이 구체적으로 얘기를 안 했죠? 그거는 그런 구체적인 서로 상호작용의 문제입니다. ...

 

... 이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공간·인식 이 여섯 가지입니다.
근데 왜 처음에 처음부터 스님이 공간의 문제를 많이 이렇게 들먹였을까? 여러분들 지수화풍은 다 압니다.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몸이 물질이 이루어진 게 지수화풍으로 이뤄졌다는 거는 압니다. 사회의 문명 자체도 물질 전개 어느 궤도 이상 발달해야만이 공간의 요소가 허물어져 버립니다.

수행에서 지수화풍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꼭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게 땅의 요소구나, 이게 바람의 요소구나 하는 인식들이 없는 상태에서 공간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공간의 요소를 이해를 못하는 상태에서 의식이 사라지니, 사라지지 않니 하고 이해를 할 수 있습니까? 못한다는 거라.

... 몸과 마음의 관계라는 거라. 상호작용이라는 거는.

 

이렇게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도 크게 봤을 때는 어떻게 됩니까?

3단계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선사들이 위빠사나 수행에는 3단계가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거친 번뇌가 있고 중간번뇌가 있고 미세한 번뇌가 있다 이렇게 3단계로 나눈다든지, 통찰을 해나가는데 1단계가 끝나고 나면 그다음 단계 2단계로 넘어가지고 2단계에서 3단계 넘어가지고 나면 열반에 이른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에서는 중도가 뭔지 팔정성도가 뭔지를 알지를 못한다는 거라. 팔정성도가 무르익어 가야만이 ... 도의 과에 도달한다 하는 거라. 그로 인해서 열반에 이르른다. 이렇게 3단계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저번 시간에 끝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팔정도로 인해서 해탈에 이른다고 얘기했습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누구라? ... 마지막 제자가 부처님한테 와서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러지. "부처님! 다들 나는 아라한이다. 나는 깨달았다고 얘기합니다. 어떤 게 아라한입니까? 어떤 게 깨달은 겁니까?"
...아라한이고 아니고 한 게 니하고 뭔 관계에 있느냐? 부처님이 아라한이면 뭐하고 부처님이 아라한이 아니면 뭐 할 거냐? 그게 니 해탈에 이르게 하는데 영향을 미치느냐는 거라. 전혀 미치지 못하거든. 그럼 사론이고 그건 말의 장난일 수밖에 없다는 거라. 니가 진심으로 깨달음에 이를려고 할 것 같으면 니가 아라한이 되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떤 길을 밟아 가야 되느냐 하고 물어봐라. 그럴 것 같으면 내가 답해 줄게.

... 이 제자가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부처님이 그때 뭐라고 그랬습니까?

"팔정성도, 팔정성도에 의하지 않고서는 절대 번뇌를 소멸할 수가 없다. 팔정성도의 길을 가지 않은 사람들은 아라한이 아니다 하는 얘기라. 팔정성도의 길을 잘 따라가는 사람들은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니 너도 팔장성도의 길을 잘 따라갈 것 같으면 번뇌의 소멸에 이르러서 깨달음을 이루게 되느니라. 아라한이 된다. 그 팔정성도는 이러이러 하느니라" 하고 얘기를 했다는 거라.

저번 주에 얘기 안 했어요? 왜들 몰라? 다 반피들이 됐나? 저 저번 주에 내가 분명히 얘기를 했을 건데. 팔정성도에 대한 얘기를 저번 주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 중요한 게 뭐라?

 

8가지 바른 길을 가는데 바른 견해라고 얘기를 했죠. 바른 견해에 의하지 않고서는 해탈에 이를 수 없다 하는.
그런 견해를 세우기 위해서는 뭐가 선제 조건이 돼야 돼?

도사(dosa)와 로바(lobha), 어떤 것이 분노고 어떤 것이 집착하는 것인가? 감각적인 욕망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인식을 해야만이 견해가 생길 수 있다. 바른 견해가!

 

팔정성도에 대한 인식들을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해줘야 됩니다.

가끔씩 스님이 프린트물 내주면서 팔정성도에 대한 얘기는 해줬죠? 그걸 자꾸자꾸 한번 독송을 해보십시오. 독송을 해보면 그걸 정확하게 인식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그걸 달달달달 외워라 할 것 같으면 무리겠지만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수행에서 그것이 드러날 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자, 조금 전에 얘기했습니다.

지·수·화·풍과 공간의 요소와 인식 의식의 요소, 이것이 신체와 정신의 6가지 상호작용이다.

... 좌선하고 앉아 있으라 할 것 같으면 발광을 합니다. 왜 발광을 합니까? ...
이놈의 몸은 어떻게 돼? 자꾸 움직여야 되는데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니까 어떻게 돼? 죽는 거야. 우리 해인사 갈 때도 그랬거든. 출가해가지고 요즘은 이제 그러질 않는데, 1주일 동안 어떻게 하냐면 차례 자세 시켜가지고, 일주일 동안 문간에 가만히 세워둬. 편할 것 같지? 몇 시간 지나면 죽어요 죽어. 누가 오면 제발 좀 인사 좀 하게 해주래.

 

어쨌든 움직이던 몸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것 같으면 병이 나는 거라.

정신도 마찬가지라. 오만 생각하고 여러 가지 추론도 하고 이래야 되는데, 이놈의 정신을 갖다가 한 군데 딱 묶어둘라고 하니까 어떻게 돼? 고마 머리가 아픈 거라. 머리 아프고 자꾸 빗나갈라고 그러거든. 잡으면 잡을수록 빗나가려고 하는 거라.
그게 몸과 마음이라. 그러니 2시간 동안 앉아있으라고 그러면 어떻게 돼? 5분만 있으면 그냥 난리가 나는 거라. 뼈마디가 다 쑤시고 아파오고.

 

땅의 요소가 강해지기 때문에 그런다는 거라. 딱딱해오고 아파오고 하는 것.

물질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몸에서 나타나는 게 그런 것이 바로 땅의 요소라는 거라. 내가 땅의 요소에 대해서 이해할 거 같으면 이럴 때 ‘아이고 이렇게 딱딱하고 아파오더라도 이건 나에게 영향을 못 미치는 것이다’ 생각해버리면 간단해. 딱딱해오고 아파오고 하는 것은 영향을 못 미치게 된다는 거라.

 

가만히 앉아있는 거 하고, 다리를 뻗고 가만히 서가지고 있든 누워있다고 하더라도 힘이 드는 거라. 몇 시간 동안 못 있거든. 근데 여러분들 의식을 놓아버리고 4시간 동안 누워 자라고 할 것 같으면 잘 자. 손끝 하나 안 까딱거리고 잘 잔단 말이야. 왜 그러는 거라? 똑같이 그렇게 가만히 있었는데. 잠이 막 쏟아져 봐! 다리 꼬고가 아니라 다리를 들어 가지고 자라 그래도 잔다! 아픈 줄 모르고, 통증도 몰라. 그래도 그건 자는 거라.
인식의 문제입니다!

‘나의 것, 나의 몸이다’ 하는 걸 갖다가 생각을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돼?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어찌 될까? 요놈의 뼈마디가 고마 굳어버려갖고 안 펴지면 어쩔까? ... 꼿꼿하게 있다 보니까 마 뭔가에 푹 빠져들어갈 거 같고, 이러다가 내가 정신을 잃어버리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들은 어디에서 생기는 거라? 「나」라고 하는 것에서 생기는 거거든.

 

땅의 요소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별것이 아닙니다. 그런 요소가 이것이 땅의 요소구나 하는 걸 갖다가 인식하고 이해를 할 것 같으면 그다음부터는 대처하기가 수월해진다 하는 거라.

누워 자고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할 것 같으면 간단한 문제라. 아파 오는 것들도. 수행에서도 단지 이것이 땅의 요소구나 하는 걸 인식만 할 따름이라고 할 것 같으면 거기에는 나라고 하는,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를 할 수가 없다는 거라. 개입이 되지 않는다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사물의 특성만 드러나지게 되는 거라. 딱딱한 요소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고, 딱딱한 요소를 알아차리면 알아차릴수록 그 요소는 사라지게 된다는 거라. 왜? 관심을 안 가지면 사람들은 도망가 버리게 된다는 거라. 남자가 관심을 가지니까 얼굴도 끌꾸미고 그래 하는 거라. 누가 관심 안 가져봐! 왜 얼굴을 꾸며? 그것과 마찬가지라.

... ... ...

명확하게 인식을 해버리고 날 것 같으면 별 것이 아닌 것이 돼 버린다는 거라. 이게 영향을 못 미치게 된다는 겁니다. 딱딱함과 또한 부드러움의 요소들 이런 것들이 바로 땅의 요소다 하는 걸 갖다가 알기 바랍니다.

 

그다음, 물의 요소. 물의 요소는 어떻게 느낄 수 있습니까?

다리가 있으니까 어떻게 돼? 피가 안 통하는 거 같지? 뭐가 안 움직이는 것 같지? 이게 바로 물의 요소입니다. 손을 요렇게 한번 해보세요. 요렇게 강하게 꾸부릴 것 같으면 어떻게 돼? 아프죠? 왜 아픕니까? 피가 안 통하니까 아프다는 거라. 물의 요소가 어떻게 돼?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거라.

유동성. 유동성이 없기 때문에 아픈 거라. 펴주면 어떻게 돼? 그럼 다시 통하는 거라. 이건 뭐 이게 지금 당장 끊어진 것도 아닌데 왜 안 통하겠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호스를 저쪽에서부터 물을 틀어놔놓고 쭉 흐르고 있단 말이라. 요 가운데 호스를 갖다 탁 접어버렸다, 물 안 통합니다. 며칠이고 접혀져 있을 것 같으면 물은 안 통합니다. 그리하더라도 그 호스가 끊어지기 전에는 어떻게 돼? 누가 펴주려고 하면 물은 반드시 통하게끔 돼있다는 거라. 다리를 아무리 구부러져 있더라도 내 몸이 터지기 전에는 어떻게 돼? 며칠을 그리 있더라도 다리만 펴줄 것 같으면 피는 통하게끔 돼 있다는 거라.

 

1주일을 내가 그래 봤거든. 태국에서 처음에 가서 정진하는데 정진이 잘 안 돼. 이놈의 몸을 조복 받는다고 누구한테 이 몸을 묶으라고 해서 묶었어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게끔 묶어놔 놓고 1주일을 있었거든. 일주일을 있을 거 같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애? 하나도 못 움직였는데 다 굳어져 버릴 것 같지? 천만의 말씀이라. 단지 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뿐인 것이지, 다 펴지고, 정상적으로 활동을 해. 그리하니 이렇게 꼬부라져 있다 해가지고 아프고 뭔가 안 통한다 해가지고 이것으로 인해서 내가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은 가지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거라. 단지 이게 물의 요소구나 하는 것만 인식을 할 따름인 거라. 이렇게 유동성.

 

그리고 물이라는 것은 서로 결합해 줘야 돼. 결합해 줘야만이 그것이 흘러가게 되는 거라. 그런데 이게 결합력이 없어질 것 같으면 어떻게 돼? 그럼 끊어져버리는 거라. 그래서 아파오는 거라. 끊어졌기 때문에, 결합이 안 됐기 때문에. 이런 결속력 결합력들을 인식할 것 같으면 ‘아, 이것이 바로 물의 효소구나’ 하는 걸 갖다가 알면 됩니다.

손가락 탁 잘랐다, 피가 뚝뚝뚝뚝 떨어지는 거라. 아파온단 말이라. 왜 아파와? 물의 요소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고 옆쪽으로 빠져버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이걸 우리는 아픔이라고 아는 것뿐이라.

 

불의 요소. 불의 요소는 여러분들의 더 잘 알 거라.

앉아 있으니까 머리가 아파 죽겠고 막 상기되고 한다는 거라. 이게 다 불의 요소라. 어떤 사람들은 그러더만. 기가 막 이렇게 머리 위로 팍 다 올라온다고. 기가 오르는 게 아니고, 불의 요소라.

뜨거워지는 것 또는 차가워지는 것, 이런 것은 다 불의 요소입니다. 불의 요소는.

 

그다음에 뭐 남았어요? , 바람요소. 바람의 요소는 다 알죠?

배가 움직이는 건 뭐 때문에 움직입니까? 바람의 요소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바람의 요소가 없을 것 같으면 움직일 수가 없어. 다리 한 짝도 내디딜 수가 없어. 경행할 때 어떻게 합니까? 뒷발 듦 올림 나아감 할 때 뭘 느낍니까? 이 바람의 요소라.

움직일 때 모든 것이 바람의 요소를 인식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배가 팽창하고 수축하고 하는 거, 이런 것이 다 바람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식, 이런 4가지를 인식하게 될 것 같으면 위빳사나 수행하는데 물질에 대한 것들, 이 몸에 대한 것들, 마음에 대한 것들, 이런 것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엷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이 상태가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위빳사나 수행을 1단계를 성취했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1단계 성취들 다 했죠. 지수화풍에 대한 인식, 아. 이것이 바람의 요소다, 이것이 물의 요소다 해서 그것에 대한 집착을 안 할 거라고 압니다.
왜 웃노? 부끄러워서? 안 됐으면 공부들 하십시오.

 

그다음에 두 번째의 단계로 이제 넘어가게끔 되는 겁니다.

이렇게 4가지 요소가 이해가 될 것 같으면 수행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수행이 깊으니까 어떻게 돼?

집중하는 힘들도 커지고 집중하는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삼매에 대한 이해가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나진다는 거라. 그래서 사물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 점점 더 눈에 드러나게끔 되는 겁니다.

 

그래서 드러나지는 게 뭐라?

무상··무아라고 하는 삼법인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한다는 거라.

호흡을 하다 보니까 들이쉬는 숨하고 내쉬는 숨이 같은 것이 아니구나,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이 텁텁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바뀌어져 나오는구나. 아, 참 무상하구나. 내가 그대로 이 좋은 느낌 시원한 바람의 요소를 갖다가 들이쉬는 것을 그대로 있고 싶어 하더라도 그대로 있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반드시 변화돼서 나오는구나. 누구든지 태어났을 것 같으면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게끔 되는구나. 이것이 인생이구나.

 

숨 하나에서 그것을 알아차리게끔 된다는 거라. 무상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라. 들이쉬는 숨이나 내쉬는 숨 찰나찰나에 항상 아픔·불만족이라는 것을 잉태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갖다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라. 여기 어디에도 ''라고 하는 것을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 하는 걸 갖다가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라.

 

그래서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을 호흡 하나 하나에서 이해를 하게끔 되게 되니까 어떻게 돼?

점점 더 명상 관찰은 예리해지고, 그거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 더욱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러니까 어떻게 돼?

호흡 자체도 점점 더 변화돼 나가거든.
처음에 ‘들이쉼, 내쉼’ ‘일어남, 사라짐’ 이것만 알던 것이, ‘일어남’에도 일어났다가 끊어졌다가, 일어났다가 끊어졌다가 일어났다가 끊어졌다가 하는 것이 일어남 사라짐이 계속적으로 이어져 있구나를 갖다가 인식하게 되는 거라. 더 나아가서 그런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는 중간중간에 간격들도 알게 되는 거고, 비어있는 것들도 알게 되는 거고.

또 그렇게 일어남이라고 하는 하나의 포인트의 행태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거를 알게끔 되는 거라. 어떨 때는 파도 치듯이 왔다가, 어떨 때는 북 치듯이 왔다가 어떻게 왔다가, 자꾸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라.

 

마음은 이렇게 변화돼 나가는 것에 대해서 재미를 붙일 것 같으면 점점 더 몰입되어 들어가는 거라.
몰입되니까 어떻게 돼?

삼매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라.

삼매에 대해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어떻게 돼?

그 기능들이 호흡이 점점 더 엷어지고 가늘어지면서 늦어버리는 거라. 대상이 없어져 버리는 거라.

대상이 없어지면 어떻게 돼요?

마음도 그치는 거라. 집중해야 될 대상이 없는데 뭘 가지고 할 거라? 마음도 그냥 거기서 그쳐버리는 거라.

이렇게 될 때까지가 바로 통찰의 두 번째 단계라고 그럽니다.

위빳사나 수행의 두 번째 단계를 성취했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이제부터 상카라라고 하는 것, 인식이라 하는 걸 갖다가 내가 정확하게 이해를 하니까 어떻게 돼요?

···도 라고 하는 사성제가 드러나게끔 되는 거라. 이것이 고(苦)구나, 이것이 고의 원인이구나, 내가 이것을 소멸하는 것이 있고, 소멸하는 길이 분명하게 존재하는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끔 되는 거라.

이때야만이 우리는 비로소 성인의 경지에 들었다. 예류과를 성취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자, 그렇게 될 동안에 많은 과정들을 거칩니다.
처음에 위빳사나 수행하는 1단계에서는 다섯 가지 덮개, 5가지 덮개 압니까? ... 이걸 뽄으로 두나? 공부들 좀 해! 공부! 다섯 가지 덮개들을 갖다가 점점 벗겨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걸 '거친 번뇌'라고 얘기를 합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이.

 

Q.수행자 질문 : ( ... )

A.스님 답변 : ... 뒤에는 2개를 동시에 굴러야만이 정확하게 바른 길로 갈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레바퀴 하나를 굴린 데서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만 있을 거 같으면 그게 설혹 바른 길을 간다고 할 것 같으면 두 바퀴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갈 수는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 수행이 병행되면 다른 길로 새어나가지는 잘 않습니다.

수레바퀴가 2개가 동시에 굴러갈 때는 옆길로 잘 건너가질 않습니다.

근데 수레바퀴 하나가 갈 때는 옆길로 새어 나갈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수행만 한다든지 아니면 교리적으로만 인식한다든지 이럴 경우에는 틀림없이 장애들을 많이 만나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필요하게 되는 거고, 스님들이 필요하게 되는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