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fWJ3VKwa10?si=5TYscBy4bdNh65i7
* 2013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담마스쿨 개강법회_「테라와다 불교의 신행 생활」_빤냐와로 스님법문(130308_1)
이제 오늘부터 매주 금요일 날이 담마스쿨이 열리는 날입니다. 2년간 진행이 되죠. 2년간 다닐 수 있겠어요? (예)
「테라와다 불교의 신행 생활」이라고 돼있는 게 제가 맡은 과목입니다.
재미없는 과목입니다. 재미없는 과목인데 꼭 필요하다 해서 이 부분을 스님이 맡았습니다.
테라와다 방식하고 대승불교의 방식은 많이 좀 틀립니다. 그런데 아직은 테라와다 상가라고 구성이 돼서 교단이 있지만 널리 대중적으로 알려지질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모릅니다. 법회에서 어떻게 진행을 해야 되는지, 또 일반 재가자들이 스님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스님들은 재가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심지어 절하는 법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절을 하기야 하겠죠. 그런데 조금씩 틀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바르게 좀 교정을 하고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인식시켜주는 시간이 테라와다 불교의범 및 신행 생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 어찌 보면 딱딱하고 재미없는 과목이죠. 그런데 아마 진행을 하고 나면 조금 보람은 있는 과목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스님에 대해서 믿음을 가진다' 아마 이것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 수행법이 들어온 지가 벌써 십몇 년이 됐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 따라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수행법을 쭉 해오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선 어느 정도 믿음은 가지는데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이해는 하긴 하는데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질 못합니다.
이해를 하고 나면 그다음에 뭘 해야 됩니까? (수행자 대답 : 실천..) 실천합니다.
그런데 바르게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천할 것 같으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자기의 방식만 고집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툼이 일어나는 일들을 자꾸 만들게 되고 이렇게 돼나갑니다. 그래서 확신이 들도록 해야 되는데, 그 확신들이 바르게 형성이 안 될 때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담당해야 될 몫이 아마 그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누구든지 이 테라와다의 담마스쿨에 와서 강의를 듣고 법문을 듣고 나면, 이해하는 폭들이 거의 똑같아지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들도 똑같아져서, 거기서 하는 행위들도 그 비슷하게 돼 나갈 때, 어떤 사람은 수행법은 이게 옳다고 그러고 어떤 사람은 이게 옳다고 그러고, 나는 이 길이 맞다 그러고 너는 이 길이 맞다 하는, 이런 것들이 없어지고 하나의 길로써 이렇게 쭉 나아가지게 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마 진행이 될 거라고 봅니다.
자! 스님 따라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사."
(수행자 다같이 :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사) 3번.
사-두 사-두 사-두!
자.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나모- 땃사 바가와또-" 하고 했는데 지금 발음은 좀 정확한 것 같습니까?
경전을 독송할 때 기본적인 것은 우선 발음이 정확해야 됩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방식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씩은 틀립니다. 그래 하더라도 장음을 길게 읽어야 될 걸 짧게 읽지는 않습니다. 짧게 읽어야 될 걸 길게 읽지도 않고, 받침이 들어가서 읽어야 될 것을 받침을 빼버리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조금 전에 스님이 이 독송을 하고 하니깐 따라하기 쉽죠? 그거는 인제 하나 된다고 해봅시다.
그럼 여기에 이 "나모- 땃사 바가와또-"라고 하는 의미가 뭔 의미인가 하는 걸 갖다가 이해를 한 상태에서 그걸 읽었을 때는 어떨까?
마치고 나서 "사-두!" 라고 했을 때 그 "사-두"의 감흥은 틀려질 겁니다. ‘아! 진짜 좋다. 내가 갈 길이 이것이구나’ 하고 확신들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나모 땃사' 이렇게 할 것 같으면 똑 한국에서 다라니 읽는 거하고 별반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불교의 가르침은 어떤 경우든지 감추어진 것들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다라니라는 것이 없다는 거죠.
그럼 모든 것들을 이해를 한 상태에서 그것을 독송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든지 그것들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것도 바른 방법으로 바르게!
자, 그것까지 또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스님이 독송할 때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이렇게 하면서 여러분들이 ‘아! 진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그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진짜 이익이 있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모 땃사 바가와또" 이렇게 독송을 하는 거하고, 그냥 ‘아이고, 저놈들은 얘기해 줘봐야 뭐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나모 땃사 바가와또" 이렇게 하는 거하고, 조금 틀리겠죠. 많이 틀립니다. 독송을 할 때에도 꼭 이와 같습니다.
독송을 할 때 자비의 마음이 거기에 들어있지 않으면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물론 경전은 독송을 하면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이익은 있습니다. 근데 그 이익이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 그리고 이해한 상태에서 하는 것하고는 많이 틀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정확하게 독송을 하고, 이해를 하고 나서 독송을 하고,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독송을 하라"
그게 인제 독송의 기본 원칙입니다.
여러분들 이때까지 그렇게 안 해왔죠?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마 두 번째 시간이 될 겁니다. 여러분들 독송하는 시간이 좀 많아질 겁니다. 그러니깐 외우고 와야 될 시간도 아마 참 많아지게 될겁니다.
주의해야 될 점이 있습니다.
요즘 불교 TV에도 최고 인기 있는 것들이 노래 가르치는 것, 찬불가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님 법문보다도 그게 더 좋아. 테라와다 불교에서 우리 한국의 찬불가식으로 독송하는 거 혹시 본 적 있습니까? 요즘 '자애송' 뭐'까라니야멧따 숫따' 그다음에 '망갈라 숫따' '라따나 숫따'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운율을 넣어가지고 하는 게 있습니다.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요? 대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테라와다 불교 국가에서는 운율을 주기는 주는데 한계를 딱 줍니다.
그게 음악적으로 흘러가서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안 돼!" 하고 금지를 하고 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는 어떤 경우든지 이성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확신을 가지게끔 만드는 게 테라와다 불교의 몫인데, 감정에 호소해가지고 ‘아! 너무 좋다’ 하고 눈물 질질 흘리고 막 기뻐하고 웃고 이런 것들은 바라질 않는다는 거라.
물론 테라와다에도 운율을 넣어가지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스님이 할 때도 운율이 있죠. 그거는 빨리어의 운율입니다.
예 그걸 쪼끔 더 길게 하고 짧게 하고 그다음에 높게 하고 낮게 하고는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음표를 줘가지고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독송을 할 때는 그것들은 참 주의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을 하나씩 배워 나가고, 또 여기 있는 스님 시간 말고 다른 스님들 또 다른 법사들 시간들에 동참을 해오는 이유가 왜 그럴까? 뭐 얻을 거 있어서 왔어요? 뭐 얻을 거 있어요? 있으니까 왔겠지.
여기 오는 것도 2시부터 「테라와다 법석 - 테라와다 담마스쿨」이 열린다는 걸 믿기 때문에 아마 왔을 겁니다. 그렇죠? 그렇지 않으면 2시에 오질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모일 것을 믿기 때문에 스님들은 이 자리에 와서 또 법문을 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조금 전에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 이렇게 한 것은 그 부처님이 진짜 뛰어나고 위대한 분이고, -물론 완전한 이해는 가지진 않았지만은-, 그래서 그분이 설해진 가르침은 내가 따라야 될 길이고 그분이 깨달으신 깨달음은 세상 누구든지 나아갈 수 있고 증득할 수 있는 거기 때문에 나도 가능하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걸 믿기 때문에 내가 이 게송을 하는 겁니다. "나모 땃사"를. "그 부처님한테 귀의합니다."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도 실제로는 내가 부처님만한 경지에 이르르지 않았고, 부처님의 설한 가르침을 완전하게 내가 이해를 하지 못했고, 부처님과 같이 뛰어난 덕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불완전합니다. 미래의 일이죠 그거는. 그런데도 믿음을 가집니다. 그렇죠? 그게 인제 가장 먼저 전제될 전제조건입니다.
그런데 재가자들은 그렇다고 치고 스님들은 어째서 그럼 여기에 왔을까? 큰스님이나 뭐 이사장 스님이나 아니면 어른 스님들이 “이놈의 자식 안 오면 때려” 이러니까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온 스님도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대부분은 자발적이게 됩니다. 스님들이 모이니까 당연히 그냥 가집니다.
물론 안 오는 스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상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안 오는 것이지, 그리고 상가 생활들을 경험을 안 해봤기 때문에 안 오는 것이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온 스님들은 자발적으로 와지게 됩니다. 왜 그럴까?
조금 더 여러분들보다는 지혜롭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없어도 매주 상가 깜마 하는데, 이번 달에 스님이 상가 깜마 안 해줘도 뭐 별 영향을 안 받아. 왜? 믿음을 대체하는 빤냐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혜가 있기 때문에 믿음을 대체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 빤냐가 완전히 지혜를 대처하게 돼 버릴 것 같으면 인제는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는 뭘 믿습니까? 자기 자신을 믿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할 때도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의지처로 하라" 그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 법회에서 담마스쿨에서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적다 할 거 같으면은, 또 그런 확신이 안 든다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요?
법을 설하는 분이 평소에 행해왔던 행실들 평소에 해왔던 언행들 이런 걸 가지고 유추해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여기 있는 스님이라고 칩시다. 빤냐와로 스님은 항상 가니깐 프린트물 주고 법문을 요렇게 요렇게 하더라. 그렇게 하니깐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기가 수월하더라. 평상시 내가 해왔던 것들을 토대로 해서 나에게 그런 마음이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드니깐 여기 오게 되는 거라.
그런데 만약에 그런 것들을 갖다가 스님이 어떨 때는 하고 어떨 땐 안 해버렸다, 그럴 것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한 믿음도 적어져 버리게 되겠죠.
그런데 항상 가면 항상 이 방식대로 이렇게 이렇게 해주더라. 그래서 믿을 수가 있다 라고. 똑같은 거라. 잠깐 그러는 것이 아니고 항상 이 방식대로 하더라. 그런데다가 그렇게 그 방식대로 이렇게 해주는데 어떠한 상황이 돼도 똑같은 방식이더라.
예를 들어서 스님은 유명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근데 되게 유명해졌다. 티비에도 나가고 오락프로에도 나가고 뭐도 하고 이래 가지고 되게 유명해졌다.
그럴 것 같으면 법회에 아까 어느 스님은 30명 이상이 아니면 법문을 설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30명이 안 되면 법문 안 해. 요즘은 30명이 아니라 300명이 안 되면 또 안 한다고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유명해졌을 때와 유명하지 않았을 때가 차이가 난다 할 것 같으면 그것도 믿을 건 못 되는 거라. 그럼 저 스님이 언제 유명해지면 우리는 그냥 부처님 법 전해주고 우리를 갖다가 조금 더 이익되게 하는 것들은 없어져 버릴 거 아니냐는 거라. 여기 있는 스님들은 다 그러지는 않을 것 같죠? 유명한 스님도 없을 뿐 아니라 설혹 유명해진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을 홀대하고 버리는 분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테라와다 스님들은 항상 훈련합니다. 법을 설하는 훈련.
작은 인원에서, 또 주제가 없는 상태에서, 또 아주 엄한 자리에서, 여러 상황에서 그런 훈련들을 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자리에서 법을 설하는 스님들은 유명의 유무를 떠나서 한결같이 여러분들에게 법을 전해 줍니다.
그걸 마하 까루나(mahā kruṇā)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서 법을 설했던 것이 그 마하 까루나 때문입니다. 큰 연민심을 지니고, 저 고통스럽게 헤매고 있는 저 중생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거라. 그래서 그것을 건져낼려고 내가 힘이 들어도 그것들 행해 왔는 거라.
부처님과 같은 상태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 살아가는 스님들이기 때문에, 법을 설할 때도 그와 같이 설합니다. 모든 조건들이 여러분들이 믿을 만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여기서 법을 설하는 분들은 믿어야 됩니다. 믿고 따라야 됩니다.
근데 확신은 없죠? 확신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들은 확신을 가지지 못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일반 범부 중생들이 가지는 믿음입니다.
근데 가장 좋은 건 어떤 거라고 했어요? 확신이 들었을 때!
부처님의 열반에 든다는 소리를 듣고 어떤 스님은 부처님의 열반 모습을 볼려고 하지 않고 자기 혼자 수행을 합니다. 왜 그럴까? 부처님이 존경스럽지 못하고 믿음을 주지 못해서일까? 아니죠.
그것은 자기의 수행에 또 자기의 깨달음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시간에 수행을 하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이 들기 전에 부처님과 똑같은 열반의 상태를 경험할려고!
그게 스승에 대한 예의라.
여러분들이 이 법석이 이 담마스쿨이 좋다고 할 것 같으면 법을 설하는 스님들보다도 더 뛰어난 경지에 이르러야 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부처님의 제자답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확신이 드는 상태가 됐을 때를, 지혜가 이 믿음을 대처하기 때문에 그때는 이 법석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여러분들 끊임없이 존경하는 부처님 그리고 그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스님을 통해서 들어야만 됩니다. 그래야만이 그 길이 바른 길로 나아가지게 되는 것이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책을 가지고 이해한 상태에서 수행을 하고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모가 나게 됩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수행자 대답 : 예)
자! 그래서 그런 날이기 때문에 오늘은 앞으로 있을 테라와다 법석의 담마스쿨 날은 여러분들에게는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몸을 청정하게 하고 말을 청정하게 하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날입니다.
이런 날은 무슨 날일까? 불교에서 이런 날은 무슨 날이라고 그래요. (수행자 대답 : 불재일)
불재일이라고 그럽니다. 우뽀사타(Uposatha, 포살)날이다.
재가자들이 불교 신자가 되면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1주일에 1번씩 불재일을 지켜라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은 테라와다 불교 신자입니까? 근데 불재일을 지켜본 사람 얼마나 될까?
그날 스님들에게 내가 신구의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말도 조심하고, 마음도 성질 안 부리도록 만들고, 그리고 행하는 것들도 탁발공양 올리든지 해서 바른 행위를 하고, 또는 와서 수행하고 법문 듣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렇게 해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어쨌든 이 금요일 날은 여러분들은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신구의를 청정하게 하는 나의 불재일이다. 나의 우뽀사타 날이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이 날이 기다려집니다. 얼마나 좋은 날인지 아세요?
여러분들 공덕 쌓는 날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보다 더 좋은 상태가 되기 위한 날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더 공덕은 쌓여져야 되는 거고, 배운 만큼은 이익이 있고 행복해져야 되는 겁니다. 저 멀리 있는 빠리닙바나 아니면 닙바나 그것만 목표로 해서 달려가는데 이 가정들이 행복해지지 않고 이익이 있지 않게 될 것 같으면 그거는 헛수고하고 있는 거라.
오늘 배웠으면 오늘만큼은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행복해져야 되는 거고, 그래서 좋은 마음을 낸 것들이 좋은 공덕이 돼서 좋은 결과들이 올 거라고 여러분들 알아야 되는 것들이라.
뒤에 보면 스님이 한번 독송해 보겠습니다.
"빠닥키낭 까-야 깜망 와-짜 깜망, 빠닥키낭, 빠닥키낭 마노- 깜망 빠니디-떼- 빠닥키나-"
몸으로 짓는 바른 행위는 행복을 가져오고, 바른 말로 짓는 행위도 행복을 가져오고, 바른 마음 바른 뜻으로 짓는 행위 또한 행복을 가져오니, 그대에게 바른 서원 또한 행복을 가져오기를.
원을 한번 세워보십시오.
'매주 금요일은 내가 몸과 말과 마음을 청정하고 깨끗하게 공덕을 쌓는 날! 이날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 그날은 욕심 적게 버리고 게으르지 않게끔 살고 화내지 않고 그렇게 살겠다.' 하고 서원을 세워 보십시오.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세워야만이 이 금요일은 매주 여러분들에게 불재일이 됩니다.
부처님도 '이 자리에서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 하고 서원을 세우고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금강석이 됩니다. 금강석과 같이 아주 단단한 자리 단단한 결의를 다지고 앉은 자리라는 겁니다. 그 길상초가 무슨 단단할 거라고 그게 금강석이 되겠습니까?
금요일은 여러분들은 이런 금강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결의를 다져야 됩니다.
매주 금요일 시작하면 이 결의를 먼저 딱 하고, 그래서 '오늘은 나는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것, 이익이 오고 행복이 오도록 하겠다. 나는 이렇게 서원을 세웁니다. 부처님 잘 봐주세요' 이렇게 하라고. 알겠죠?
"수낙캇땅 수망갈랑 수빠바-땅 수훗티땅 수카노- 수무훗또-짜 수잇탕 브라흐마 짜-리수"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했을 때만이 이 시간들이 이 시간들이 최고의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입니다.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시간이 여러분들에게는 가장 최상의 시간입니다.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것보다도 귀중한 시간들입니다.
그런 법을 설하는 스님들도 가장 최상의 순간에 최상의 법문들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스님들을 부처님을 대신해서 뵐 수 있다는 것, 부처님을 대신해서 부처님 법을 갖다가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시간은 여러분들은 어느 시간하고도 바꿀 수가 없는 시간들입니다.
매주 금요일은 이러한 날입니다. 이러한 날이기 때문에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수행해서 바르게 테라와다 불자가 되도록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뒤에 3페이지 4페이지는 여러분들이 읽고, 모르는 부분은 다음 시간에 질문할 수 있도록 하고, 다음 시간에는 스님 시간은 빠릿따라고 하는 것들이 될 겁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십시오. 빠릿따(parittā), 빠릿따 의례, 빠릿따 의식 이렇게 돼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틀립니다. 빠릿따가 뭔지 알아와 오십시오.
그래서 그걸 가지고 스님이 프린트물을 내주고 여러분들하고 토론회 시간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매주 스님의 시간에는 이러한 식으로 진행이 돼 나갈 겁니다.
질문 있습니까? 없죠.
자! 그러면 사-두 한번 3번 해봅시다.
사-두 사-두 사-두!
항상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아가는 불자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수키 혼뚜!
https://alfl6843.tistory.com/397 테라와다불교의 신행생활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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