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리어 발음법. 테라와다 불교신자가 되는 조건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130322_1)
아직 점심 시간이 안 됐어. 조금 이따 해도 되는데.
그런데 그냥 그렇게 외우는 데도 효과들을 가지더라고. 스님의 경험을 봐서 조금 부탁을 하고 싶어요. 적어도 기본적인 것은 외워라. 삼보예찬 붓다·담마·상가에 대한 예찬이죠. 그다음에 삼귀의 오계. 아주 기본적인 것, 그것에다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경전 하나! 우리나라 같으면 반야심경이나 이런 것들인데, 보통 많이 외우는 게 망갈라 숫따(Maṅgala Sutta) 같은 거 라따나 숫따(Ratana Sutta) 뭐 그 다음에 까라니야 멧따 숫따(Karaṇīya Metta Sutta).
이런 것들인데, 최고 많이 외우는 게 인제 보통 망갈라 숫따(Maṅgala Sutta)입니다.
근데 이번 시간에 이번 학기에 이걸 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망갈라(Maṅgala)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망갈라라는 의미 자체가 우리 한국에서는 그걸 의미를 갖다가 그냥 '길상' '행복' '축복' 뭐 이렇게 얘기들을 하는데, 망갈라 의미는 그런 게 아닙니다.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행복을 가져오는 조건' '길상이 오게끔 만들어주는 그런 원인이 되는 것' 이런 것이 사실은 '망갈라'라는 의미입니다. 행복 그 자체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해야 된다 하는 거, '요렇게 요렇게 해야 된다' 이게 인제 망갈라라.
그리고 나에게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할 것 같으면 뭘 뭘 지키고 뭘 뭘 하지 말아야 된다 할 때, 뭘 뭐를 얘기하는 거 이걸 갖다가 망갈라라고 그러는 거라.
쉽게 말하면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행위 자체를 망갈라(Maṅgala)라 그래요. 그렇게 이해를 해야지 그냥 뭐 경전 그거 외운다 해가지고 나는 행복해진다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안 되고 그 경전에 쓰여진 대로 나쁜 사람 안 만나고 좋은 사람 자꾸 만나야 된다. 그게 망갈라다 할 것 같으면 지속적으로 나쁜 사람 안 만날라고 하고, 나에게 좋은 도반이 되고 좋은 법을 전할 수 있는 곳들은 자꾸 가서 수행하려고 하고, 이렇게 행위하는 것 자체, 이런 걸 망갈라라고 그러는 거라.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망갈라 숫따를 좀 많이 읽고,
그다음에 많이 있는 게 멧따 숫따(Metta Sutta). 그러니까 멧따 가타도 있고 멧따 숫따도 있고 까라니아 멧따 숫따도 있고 그다음에 멧따 바와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읽는 게 까라니아 멧따 숫따(Karaṇīya Metta Sutta) 보통 여러분들이 얘기하는 '멧따 숫따' '자비경'을 얘기 합니다.
자비경도 이렇게 나중에 구성내용 자체를 보면, 내가 자비로워지려면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해야 된다. 그러면 그렇게 그렇게 하고 나면 나에게는 요런 요런 이익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까 내 마음은 어떻게 되고, 나의 생활을 어떻게 바뀌고, 나는 어떤 경지에 이르른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다 마치게 된다. 하는 그런 기승전결로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그냥 뭐 자비로워지고 내가 항상 자애가 충만되기를 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사람들에게 남에게 뭘 해주려고 하지 말고, 남에게 해줄 수 있는 마음들을 가져라. 지녀라는 거라. 그럼 내가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 같으면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주고 싶은 사람 대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우러난다는 거라. 이게 이게 바른 것이지, 내가 뭘 해주고 싶다 해가지고 이렇게 해주고 나면 내가 그 마음이 안 됐을 때는 그걸 다시 받으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거는 전혀 불교적인 게 아니라. 모든 경전들이 이렇게 이루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스님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이번 학기 동안에는 요 기본적인 거 요거는 익히자.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회향게송, 돌아가신 분한테 회향해도 좋고 아니면 모든 일체중생한테 회향해도 좋고 어떤 경우든지 회향하는 게송 이것 정도는 하자!
그렇게 인제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렇게 자기가 딱 묶어요. 묶어가지고 적어도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아침에 뭐 한 10분 하면 될 거고 저녁에도 한 10분, 하루 중에 그 정도 시간을 못 빼겠어?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방식들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거기다 하나 더 인제 욕심을 내자고 할 것 같으면 밥 먹기 전에 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빠띠상카- 요-니소- 삔다빠-땅 빠띠세-와-미." 하면서 하는 게송입니다. 그 계송을 빨리어는 내가 기대는 안 할게. 한글, 한글로 마음속에서 한번씩 읽고 공양을 하면 적어도 밥 먹을 때 그냥 함부로 먹지는 않아. 수행하면서 먹을라고 그러는 거고 그렇게 하게 됩니다.
고것까지만 해주면 아마 이번 20시간이죠. 20시간 끝나고 나면 ‘그래도 내가 참 잘했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밥 먹기 전에 하는 게송]
"제가 공양 받은 음식에 대해 바른 생각으로 관찰합니다.
맛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요, 배부르게 먹기 위함도 아니요,
몸을 살찌우기 위함도 아니요, 보기 좋게 가꾸고자 함도 아니요,
다만 이 몸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키며,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수행을 돕기 위함이니:
이와 같은“바른 관찰로써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만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은 일으키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허물없이(비난받지 않고) 평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수행을 위해 이 공양을 받겠습니다."
이제 할 시간이 됐으니까 시작합시다.
그리고 하다가 그 전 시간이든 아니면 이 과목하고 관계없는 것이든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십시오. 다른 스님에 대한 배려도 좀 해야 되겠지만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해드리도록 그렇게 할게요.
사회자 : 지금부터 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398쪽입니다.
아직 여러분들이 이거 방식을 잘 모르니깐, 오늘은 제가 한번 인도를 해볼게요. 요 방식을 알아놨다가 다음에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하는 빨리어를 잘 보고 그대로 해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시요.
빤냐와로 스님 : 지금부터 법회를 시작하겠습니다.
Handa mayaṁ buddhassa bhagavato pubbabhāganamakkāraṁ karomase.
(한다 마양 붓닷사 바가와또- 뿝바바-가나막까-랑 까로-마세-.)
이제 우리 모두 부처님 그 존귀하신 분께 먼저 존경의 예를 울리겠습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3번)
그 분,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께 예배드립니다. (3번)
Handa mayaṁ tiratanānussatinayaṁ karomase.
(한다 마양 띠라따나-눗사띠나양 까로-마세-.)
이제 우리 모두 삼보의 의미를 회상하는 게송을 독송하겠습니다.
Yo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요- 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그 분,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윗자-짜라나삼빤노-, 수가또-, 로-까위두-,)
지혜와 덕행 함께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아눗따로- 뿌리사담마사-라티, 삿타- 데-와마눗사-낭, 붓도-, 바가와-띠.)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스승,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입니다. ( 일배 )
Yo so,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요- 소-, 스왁-카-또- 바가와따- 담모-,)
그 분, 존귀하신 분에 의해 잘 설해진 위없는 담마,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ayiko,
(산딧티꼬-, 아깔-리꼬-, 에-히빳시꼬-, 오-빠나이꼬-,)
즉시 확인할 수 있고, 결과 바로 나타나니,
와서 보라 초청하여, 닙바나로 인도되는 진리,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빳짯땅 웨-디땁보- 윈뉴-히-띠.)
지혜로운 이 스스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 일배 )
Yo so, s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요- 소-, 수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그 분, 진지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Uj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우주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Ñāya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냐-야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올바르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Sāmīci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사-미-찌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여법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Yadidaṁ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야디당 짯따-리 뿌리사유가-니 앗타 뿌리사뿍갈라-,)
이분들은 네 쌍의 대장부요, 여덟 무리의 성자들,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에-사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이분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이니,
Āhuneyyo, pāhuṇ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아-후네이요-, 빠-후네이요-, 닥키네이요-, 안잘리까라니-요-;)
공양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환영할 가치 있는 분들,
보시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합장 공경할 가치 있는 분들이며,
Anuttaraṁ puññakkhettaṁ lokassāti.
(아눗따랑 뿐냑켓땅 로-깟사-띠.)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복을 심는 대상입니다. ( 일배 )
사회자 : 스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큰절 3번)
사회자 : 다 같이 청법 게송과 청 오계문을 독송하겠습니다.
[대 중] 부처님께서는 비록 완전한 닙바나에 드신 지 오래되었을지라도,
이 법회에 동참한 대중 모두, 존경하는 스님께 예경 드리고,
저희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부처님의 진리를 청하옵니다.
제가 들어 알기로, 이 세상 중생들 가운데
욕망이 적고 번뇌가 적은 이들이 있사오니,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주시옵소서!
May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
Dutiyampi may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
Tatiyampi may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
마양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
두띠얌삐 마양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
따띠얌삐 마양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설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설하여 주십시오.
세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설하여 주십시오.
[스 님] Yaṁ ahaṁ vadāmi taṁ vadetha. (양 아항 와다-미 땅 와데-타.)
[대 중] Āma bhante. (아-마 반떼-.)
[스님의 선창 따라서]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3번)
그 분,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께 예배드립니다. (3번)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붓당 사라낭 갓차-미.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담망 사라낭 갓차-미.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상강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스 님] Tisaraṇagamanaṁ niṭṭhitaṁ. (띠사라나가마낭 닛티땅.)
[대 중] Āma bhante. (아-마 반떼-.)
[스님의 선창 따라서]
①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살아있는 생명 해치는 것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② Adinnād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주지 않는 물건 가지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③ Kāmesu micchācār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까-메-수 밋차-짜-라-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잘못된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④ Musāvād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무사-와-다-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⑤ Surāmeraya majja pamādaṭṭh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수라-메-라야 맛자 빠마-닷타-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대 중] Imāni pañca sikkhāpadāni samādiyāmi.
(이마-니 빤짜 식카-빠다-니 사마-디야-미.) (3번)
[스 님] Sīlena sugatiṁ yanti, Sīlena bhogasampadā,
Sīlena nibbutiṁ yanti, Tasmā sīlaṁ visodhaye.
(실-레-나 수가띵 얀띠, 실-레-나 보-가삼빠다-,
실-레-나 닙부띵 얀띠, 따스마- 실-랑 위소-다예-.)
[대 중] Āma bhante. (아-마 반떼-.)
편하게 앉으십시요.
마지막 시간에 회향 게송할 때도 그와 같이 하면 됩니다.
이거 녹음될 거니까 앞에 첫째 부분만 한번 해볼게요.
공덕을 회향하는 게송 독송
Handa mayaṁ puññā anumodanāgāthāyo bhaṇāmase.
(한다 마양 뿐냐- 아누모-다나-가-타-요- 바나-마세-.)
이제 우리가 지은 공덕을 회향하는 게송을 독송하겠습니다.
① Imāya dhammānudhamma patipattiyā Buddhaṁ pūjemi.
(이마-야 담마-누담마 빠띠빳띠야- 붓당 뿌-제-미.)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는 것으로써,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② Imāya
이런 식으로 하고, “사-두” 그렇게 하면 됩니다.
자! 오늘 할 것, 빨리어 독송법입니다.
2학년 1학기 때 빨리어 문법이 있죠? (예) 그걸 제가 할지 김재성 교수가 할지 아직 정확하진 않는데, 지금 현재는 김재성 교수로 해놔 놨어요. 2학년 1학기, 2학기에는 스님은 또 수행에 대한 걸 해야 되니까, 2과목을 할 수가 없어서 해놔놨습니다.
변경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는데 거기에서 조금 더 자세히 배우도록 하고, 우선 이 경전을 독송해야 되니까. 독송법이라도 알아야 뭘 할 거 아니라. 그래서 독송법에 대한 걸 다 하지는 못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만 적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요 부분은 반드시 여러분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기 바랍니다.
나라마다 독송하는 게 조금씩 틀리죠. (예) 틀릴 겁니다.
그런데 기본원칙은 있습니다. 그 기본원칙까지 어겨가면서 독송법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기본법을 여러분들이 배우고 나서 그러고 나서 자신이 판단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바르다 할 거 같으면 그 방법 하면 되는 거고, 틀리다 할 것 같으면 바른 방법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각 나라별로 하는 것들을 다 비교해 가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하질 못하고,
우선 빨리어가 뭡니까? 불교 경전에 쓰여져 있는 언어가 빨리어죠. 이건 우리 한글 같은 그런 의미를 지닌 겁니까? (아니요. 부처님의 원음입니다.) 뭐 부처님의 원음이든 아니면 진용 스님의 원음이든 글이 아니죠.
빨리어는! 글이 아닙니다. 말입니다. 글로써 된 게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 때도 글로써 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언어는 쉽게 말하면 고급스럽게 글로써 쓰는 언어를 하지 말고 각자 나라에서 쓰는 말로써 법을 설하라. 하고 합니다. 경전을 독송하더라도 그렇게 하라는 거죠. 그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도 빨리어로 가지고 독송할 때하고 밑에 한글로 독송할 때는 의미 전달이 틀리죠. 조금 더 가슴에 더 와닿는 거는 내가 아는 말,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의미 전달이 쉽습니다.
또하나 뭐가 있을까?
스님이 버마 스님이 여기 와서 법문을 하고 또 통역관의 옆에서 통역해 줬을 때 그걸 듣는 소리하고, 그냥 한국 스님이 직접 통역 없이 내 나라말로 이렇게 했을 때, 물론 법문을 잘하고 못 하고의 차이도 있겠지만은 똑같다고 봤을 때는 우리나라 스님이 우리말로 그냥 바로 해주는 것이 훨씬 내가 듣기에도 좋고 이해하기도 수월합니다.
그래서 법이 정착이 되려면 2가지를 먼저 해야 되는 거라.
자기 나라 말로 그 경전들을 독송하고 그걸 이해할 수가 있어야 되는 것이고,
또 자기 나라 스님이 자기 나라 사람이 출가해서 법을 설하게 됐을 때,
그래서 그 상가가 우선이 됐을 때 그 법은 거기에 정착을 하게 된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중에 인제 빨리어는 어쨌든 부처님이 내가 일본 갔으면 일본말로 해야 되는 거고, 쉽게 말하면, 내가 미국에 갔으면 영어로 해야 되는 것이지, 거기서 미국에서 한국말로 하고 통역을 하는 것 이것을 부처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얘기라. 자기 나라 말로 하라 했으니까.
그런 거기 때문에 여러분들 나이 드신 분들은 글을 읽을 줄 몰라도 말하고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죠? 내가 어릴 때부터 쭉 들어왔고 익혀왔던 거기 때문에. 빨리어는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갖다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왜 빨리어라는 이름이 생겼느냐 하면, 물론 빨리어의 기원이 어디냐 해서 학자들마다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마가다 언어다, 웃제니 언어다, 무슨 바세짜 언어다 뭐뭐. 그거는 어떻게 보면 그 빨리어를 글자로 써져있는 문장을 가지고, 쉽게 말하면 마가다 언어에는 뒤에 끝에 명사의 끝에 그 남성형이 e에로 되는데, 왜 여기는 빨리어는 Buddho붓도하고, o오로 돼 있느냐? 그러니까 이거는 마가다 언어가 아니다. 뭐 어쩌니 저쩌니 싸움박질을 해쌌는 거라.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그건 핀트를 잘못 맞추고 있는 거라. 빨리어는 아까 뭐라 그랬어요? 말입니다. 말! 말은 자꾸 바뀌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갖다가 인정하지 않고 문자로서만 해석할려고 할 것 같으면 이미 잘못 알고 있는게 되는 거라. 그래서 그게 마가다 언어든 웃제니 언어든 아니면 뭐 서북부 언어든 아니면 스리랑카에서 만든 언어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 자체가 부처님이 설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거라.
우리가 만약에 부처님이 설한 말씀이 아닐 거 같으면 여기서 배울 이유가 뭐 있어? 여러분들은 부처님 말씀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빨리어로 된 경전을 스님이 법을 설해 줄 것 같으면 여러분이 듣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갖다가 'buddha bhasa붓다 바사'라고 그럽니다. '부처님의 말씀' 빨리어는 부처님이 말씀입니다.
물론 빠탈리뿌따(Pataliputra)에서 3차 결집하고 나서 그것을 마힌다 장로가 가져왔으니까 그걸 갖다 빠탈리뿌따의 약자를 따라서 빨리어라고 이렇게 부르고 있지만은 빨리어라고 부르든 한글이라고 부르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한 것인가, 아닌가?
그래서 빨리어는 여러분들이 이해할 때 그것이 마가다 언어다, 아니면 무슨 언어다 그렇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이다" 하고 이해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게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이 가져야 될 마음입니다.
자! 그러면은 그 빨리어는 당연히 글자로 써진 것은 후대에 써졌겠죠.
맨 처음 빨리어로 써진 게 언제 써집니까?
우리 불교역사에서 1차 결집부터 지금까지 6번의 결집이 있습니다. 1차 결집은 부처님이 열반하고 나서 3개월 후에 결집을 했고, 2차 결집은 그 후에 열반하고 나서 100년 뒤에 했고, 3차 결집은 아소카 왕 때 한 200년 조금 넘어 지나서 했고, 그러고 나서 3차 결집 때는 부처님 열반하고 나서 200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이게 인제 스리랑카로 불교가 전래가 됩니다. 그게 인제 기원전 3세기죠.
근데 기원전 1세기가 딱 되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전부 이런 식으로 말로써 전달된 거라. 말로써 이 사람에게 저 사람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합송해가지고 이렇게 전달이 되니까.
근데 만약에 그 경전을 알고 있는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 경은 아예 인제 없어져 버리게 되는 거라. 글자가 아니니까. 그 위기가 기원전 1세기 때 스리랑카에서 닥치게 됩니다.
그때 패엽경에다가 이제 글을 말로써 써진 걸 갖다가 기록을 하게 됩니다. 그게 인제 4차 결집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문자로 써지기 시작한 게 기원전 1세기 때 써지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불교가 물론 부처님 당시 때부터 각 나라별로 이렇게 퍼져나갔지만, 실제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스리랑카에서 전래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각 나라별로.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이 언제 창제됐어요? (세종대왕) 세종대왕 때죠. 기원후 1400 몇십년 아마 될 겁니다. 그러면 그전까지는 우리나라 글이 없었죠. 이거 남의 글로 쓰는 거죠? 남의 글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해요? 뭐 그냥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각 나라에서도 자기 나라 글자가 만들어지는 게 뭐 기원전부터 있었던 게 아닙니다. 대부분이 보면 기원후입니다. 그래서 1100년 1200년 이 사이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글자들을 갖다가 문자화하게 됩니다.
그러니깐 구전되어 오는 것들을 갖다가 자기 나라 문자로만 기록을 하게 된 거는 또 1000년이 흐르고 나서라는 얘기라.
왜 그럴까? 싱할라에서는 기원전 1세기 때 패엽경에 자기네 싱할라 말로 썼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말로 '붓당'이라고 썼다. 우리는 이거 읽을 수 있지만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걸 읽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 이거 모르는 사람들은 만약에 이렇게 적어놔 놓으면 이걸 못 읽습니다. 그와 똑같은 거라.
근데 태국이나 버마에 전해진 불교들은 스리랑카에서 자기 나라 말로 이렇게 적은 거기 때문에, 이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거라. 이걸 읽을 재간이 없어. 그리고 이걸 해석해낼 재간이 없는 거라.
그럼 어떻게 해요? 자기네들 방식으로 그걸 그냥 기억하고 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러다가 1000년 지나고 나서 자기 나라 말들로 기록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세월이 다 지나고 나서 20세기가 됐을 때 그럼 그렇게 패엽경으로 써진 경전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살펴보니까 스리랑카에 있었죠. 또 태국에도 있고, 버마에도 있고, 캄보디아에도 있고, 요렇게 있게 되는 거라.
그런데 이렇게 있는 것들을 갖다가 모아가지고 싹 조사를 해보니까 틀린 부분이 거의 없더라는 거라. 그마만큼 구전되어 와서 전해져 온 것들이 굉장히 정확하다는 거라.
글자로 만약 이게 전해져가지고 그걸 의미 파악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전해졌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임의로 나중에 또 첨가하고 빼고 할 것들이 아마 굉장히 많았을 건데, 그런 것들이 없었다는 거라.
그래서 빨리어는 각각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옛날에는 이름을 깜부자라고 그럽니다. 깜부자 언어로 기록이 돼있고, 태국 같은 경우에는 씨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안 그러면 란나 타이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란나 타이어로 기록이 돼 있고, 버마는 버마어로 기록이 돼 있고, 스리랑카는 옛날에 싱할라 언어로 되어 있고. 그러니까 각자의 글자가 다 틀릴 거 아니라.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걸 읽을라고 하니까 그게 읽어져? 자기 나라 옛날 그것도 고어로 써놨는데.
자기 나라 사람들은 고어로 써놔 놓으면 자기들도 못 읽어요. 지금도 싱할라 패엽경들 스리랑카 스님한테 읽어보라면 못 읽어요. 태국에 란나타이어로 써져있는 거 우리는 이제 그걸 배웠으니까 그걸 읽는데, 그냥 태국 사람들한테 읽어보라면 못 읽어요. 지금하곤 또 틀립니다.
그런데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니까 정확하게 일치를 하더라는 거라.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돼 있으니까, 우리가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걸 읽을려고 할 것 같으면 뭐로 써진 걸 읽어야 되겠어요? 한글로 써진 걸 읽을 수밖에 없어. 근데 한글로 쓸려고 하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지어낸 소리인지 아니면 아닌지 그걸 갖다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많이 이용하는게 로마나로 써진 것, 로마나로 써진 걸 가지고 지금 공부들을 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이지, 빨리어가 로마나로 써져있는 건 아닙니다.
자, 그게 인제 빨리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어서 "빨리어 발음법. 테라와다 불교신자가 되는 조건"에 대한 내용으로 법문이 이어집니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다음장에 올립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12~2013 담마스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리어 발음법. 테라와다 불교신자가 되는 조건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130322_1) (0) | 2024.11.15 |
---|---|
빠릿따(paritta, 보호경 혹은 보호게송)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130315_2) (2) | 2024.11.14 |
2013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담마스쿨 개강법회_「테라와다 불교의 신행 생활」_빤냐와로 스님법문(130308_1) (2) | 2024.11.12 |
수행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테라와다 수행자가 되도록 하라_빤냐와로 스님법문_한국테라와다 하계집중수행법문_120810 (1) | 2024.11.10 |
「다툼」 _빤냐와로 스님법문_테라와다 법석(法席) (120323) (0) | 2024.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