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불교 입문. 경전

찬승공덕경

담마마-마까 2015. 7. 17. 23:35

  


                       "찬승공덕경"


아함경에서 간략히 뽑아 큰 덕을 갖추신 스님들을 찬탄합니다.

나의 말을 들으소서. 

세존께서 넓고 긴 혀로써 천신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스님네를 찬탄하셨다네.

(해설) 『찬승공덕경』은 스님들은 불법승의 삼보 중에 승보에 들어가기 때문에 큰 덕을 갖춘 스님들을 찬탄한 가르침입니다.

 대영박물관장 돈황본, s. 153호로 발견되어 『대정신수대장경』제85권 고일부 ․ 의사부 No.2911. pp. 1456~458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견고한 땅이 온갖 만물 너그럽게 실어주고 유정과 유정이 아닌 종류들을 유지하듯이 말법세상 속에서

출가한 이들은 승보에 항상 머무는 것 또한 이와 같다네.

(해설) 승보는 승가의 스님들이 보배라는 뜻입니다. 보배는 귀하다,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여 물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깨달음의 미묘한 결과를 추구하길 뜻함은

혼탁하고 고통받고 더러운 세계에서도 여래의 맑고 깨끗한 대중에 항상 머무는 것이요.

스님 가운데는 네 가지 결과를 구하는 이도 있고 이미 얻은 이도 있나니

이러한 여덟 무리 모든 성인도 화합승가 가운데 늘 끊임이 없으시네.

(해설) ‘네 가지 결과’는 수행의 결과로서 깨달음의 네 가지 증득된 성인의 경지입니다.

그러나 도와 과의 경지로 나누면 여덟 단계의 깨달음의 성인이 있게 됩니다.

즉, ‘여덟 무리의 모든 성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①수다원도 ②수다원과 ③사다함도 ④사다함과 ⑤아나함도 ⑥아나함과 ⑦아라한도 ⑧아라한과입니다.

대승의 10지의 경지와 비교하자면 초지부터 8지의 경지에 배대가 됩니다.

어떤 이는 언제나 두타행으로써 걸식하고 산 속에서 고요를 즐기는 수행자

언제나 미세한 계율까지도 여래깨서 엄히 내리신 가르침을 범하지 않으시네.

어떤 이는 깊고 넓은 지혜를 널리 배우고, 생각을 쉬는 선정을 익히시는 수행자

이 모두 출가 대중 속에 모여 있으니 온갖 시냇물이 큰 바다로 모여듦과 같네.

수승하고 미묘한 보배이신 대덕스님들은 중생들의 공덕의 씨앗 길러내시고 인간과 천국이라는

뛰어난 열매를 맺게 하니 붓다와 가르침과 스님들 보다 나은 것 없다네.

선한 마음으로 스님들께 물 한 모금 떠드려도 얻은 복덕은 큰 바다보다 더 크리니

허공중의 미세먼지 오히려 헤아릴 수 있지만 스님들께 베푼 복덕은 다할 날 없다네.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올 미래의 괴로움 벗어나기를 구하려하는가.

생사의 가난하고 궁핍한 고해에서 벗어나려하는가.
마땅히 신속하게 지극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스님들께 법문을 듣고 사유하고 수행하는 좋은 인과 지어야 하리.

스님들은 가장 미묘한 복의 밭이라 어떤 이가 여기에 공덕의 씨앗 심기만 하면

다음 생에 얻는 깨달음의 수확 헤아릴 수 없어 구름이 큰 비를 머금고 있음과 같네.

베푸는 이는 받는 자를 헤아리지 않나니 평등하게 받들고 베풂에 두 마음 없어라.

이런 사람이야말로 능히 감당할 수 있으니 사람과 천국 중에 뛰어난 과보를 받을 수 있네.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하신 큰 연민을 가지신 붓다의 제자로서 모든 스님들은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분별할 수 없어라.타고남은 재속에 안 보이는 불씨처럼.

겉으로 엄한 계율을 범한 듯 나타내지만 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공덕 감추었으니
응당히 믿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따르며 성현이니 범부이니 헤아리지 말아야 하네.

혹 번듯하게 위의를 갖춰 밖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탐욕을 버리지 못한 듯 보이기도 하여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범부라고 하지만, 거리낌 없는 속내는 성스러움 자체라네.

껍질에 싸여있는 네 가지 암라 과일처럼 익었는지 생짜인지 가려내기 어렵듯이

붓다의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계를 가지고 있는지 계가 없는지 분간하기 어렵다네.

이러한 까닭에 모든 이에게 은근히 권하노니, 스님들을 헐뜯고 욕하는 것을 듣지 말라.

만약 고통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면 늘 공경 존중하는 마음으로 스님들 복 밭에 깨달음의 씨앗 심어야 하리.

만약 천국에 태어나 행복 누리고자 하거든 또한 당연히 스님들께 공양하라.

범부의 천하고 낮고 속된 마음으로 붓다의 제자들을 시비분별하지 말라.

만일 어떤 청신사와 청신녀들이 잠깐이라도 믿는 마음 내어
평등한 마음으로 비구스님들에게 공양 올리면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좋은 과보 얻으리라.

만일 스님들에게 삿된 생각 일으키면 오는 세상 틀림없이 삼악도에 떨어지니

붓다세존께서 친히 범음으로 설하시고 그 말씀 펼치심이 진실하여 조금도 거짓이 없다네.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혀를 자르거나 몽둥이를 휘둘러서 그 몸을 부술지언정 잠깐이라도

성난 마음으로 붓다의 청정한 스님들을 헐뜯고 비방하지 말라.

차라리 뜨거운 큰 쇠구슬을 삼키고 입속으로 맹렬히 타는 불꽃을 토해 낼지언정 장난삼아 던지는

말 한 마디라도 출가한 청정한 수행승을 욕하고 꾸짖지 말라.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 스스로 찔러 상하게 하되 팔다리를 자르고 살과 가죽을 벗겨낼지언정

장난삼아 웃으면서 어리석은 이를 조롱하지 않아야 하거늘 어찌 하물며 비구스님들 때리고 욕하겠는가.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두 눈을 뽑아 여러 생 눈먼 과보 받을지언정

청정 행을 닦으면서 욕심을 떠나는 수행승을 미워하는 눈으로 보지 말라.

차라리 절과 탑을 헐어 버리며 칠보 사리탑을 불살라 태울지언정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나쁜 말 하거나 여래의 청정 대중을 비방하지 말라.

불탑을 훼손한 사람은 스스로 지옥에 떨어져 영겁토록 온갖 고통 받게 되지만

대중스님의 잘잘못을 말하기 좋아하는 이는 자기와 많은 대중 이끌고 악도에 떨어지네.

이런 까닭에 지혜 있는 이는 잘 생각하여 스님들을 가벼이 여겨 교만한 마음 내지 말고
스스로 구업의 잘못을 조심하고 잘 막아서 이 스님은 계를 지키고, 저 스님은 파계했다 입에 올리지 말라.

한마디 모진말로 출가한 스님을 헐뜯으면 당연히 지옥에 떨어져 극심한 고통 받게 되며

지옥에서 벗어나 사람 몸을 받더라도 눈멀고 귀 먹어 언어장애 과보 부른다네.

세상에는 어리석고 용렬한 사람 많아 비구와 비구니의 여러 허물을 이야기하다가

이로 인해 죽은 뒤에 악도에 떨어져서 영겁토록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덕인다네.

대비하신 세존께서 대중을 예의로 대하시고 화합하는 대덕스님들이라 존중하고 공경하시며

모든 부처님들도 항상 은근히 치하하시거늘 하물며 범부들이 스님들을 가벼이 여기겠는가.

세상에는 신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붓다의 제자 스님들을 숭앙하고 존중하다가도

불법승 삼보의 장단점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스님들을 원망하고 삿된 견해를 일으키니

이로 인해 착한 사람들 물러나게 되면 여래의 청정승가 파괴하는 죄가 되어

현세에 일천의 세존 출현함을 보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거듭 생각해야하네.

오랜 옛날 구가리 비구는
한 마디 독설로 스님들을 꾸짖고 발설지옥에 떨어져서 혀 바닥에 밭 갈기로 고통이 수만 번이네.

또한 옛적 가섭 부처님의 어떤 제자가 한량없는 세간 사람들을 비방하고 욕하다가

그 악업으로 목숨이 다해 죽어서는 혀 바닥에 밭가는 지옥의 고통을 받았다네.

스님이 분노를 품고 여러 사람 비방하더라도 오히려 한량없는 구업의 과보를 부르는데,

하물며 계행 없는 세속불자가 스님들을 욕하고서도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풀과 나무, 기왓장 등등에 이르기까지 욕하고 꾸짖지 않는데

하물며 청정하게 출가한 사람, 탐욕 떠나는 선한 법을 닦는 자를 비방하랴

설사 탐욕의 불길이 마음을 태워 맑고 깨끗한 계를 범했을지라도 오래잖아 신속하게

스스로 참회하여 없앤다면 여래의 성스러운 대중의 자리에 들어간다네.

어떤 사람이 잠시 미혹하여 그 길 잃었더라도 눈 있는 자는 다시 바른 길을 찾게 되듯
비구도 세존께서 금하신 것을 어겼을지라도 잠시 범한 허물 능히 없앨 수 있다네.

어떤 사람 평지에서 헛발로 넘어졌다가도 발이 있어 다시 금방 일어나듯이

비구가 설령 잠깐 계법을 어겼어도 비록 범한 것 오래지 않아 다시 보완할 수 있네.

세간에서 금으로 만든 그릇은 비록 깨져도 금의 값어치는 그대로지만

나무로 만든 그릇이 새는 일 없다 하더라도 깨진 금 그릇과는 비교할 수 없듯이.

금계를 파한 비구에게 비록 계행은 없어져도 처음 출가한 이 보다는 공덕이 뛰어나거늘
백 천 만억 흰옷 입는 불자들이 공덕이 많다한들 계행 없는 스님이라도 견줄 수 없네.

출가한 부처님의 청정한 제자는 여래의 말법시대의 법을 이어 감당할 만하지만

만 가지 한량없는 덕이 속인에게 있다 할지니 그들로서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성스러운 가르침 펼칠 수 없어라.

최하의 계를 범하고 깨뜨린 스님에게라도 공양 올리면 만 억의 수승한 과보를 얻게 되니
그러므로 천상과 인간에서 존귀한 과보 받으리라고 부처님은 언제나 찬탄하셨다네.

이러한 까닭으로 은근히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부처님의 승보 대중을 비방하지 말라.
금생에 익힌 나쁜 인연 때문에 내생에도 악업을 이루어 또 다시 부처님 비방하리.

이러한 몸과 입과 뜻의 악업 때문에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 씨앗, 영원히 끊어지고

마땅히 지옥, 축생, 아귀의 삼악도에 떨어져서 억겁토록 고통 받아 쉴 수 없으리.

청정한 대중에 바른 신심 일으키면 스님들 비방할 죄가 없으며

언제나 구업으로 짓는 허물을 막을 수 있다면 부처님 승보 대중을 말하지 않네.

누구든지 스님들을 꾸짖고 욕한 허물 있다면 지성으로 어서 빨리 참회할지니

만일에 스님들께 교만심을 품었다면 오는 세상 괴로움 받아 반드시 후회하리라.

스님들에게 찰나의 공덕만 있어도 그 복을 대지로도 수용할 수 없거늘

하물며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부처님의 엄한 계율 굳게 잘 지키고 있음에랴.

계행을 가진 이의 공덕의 과보는 붓다께서 한 겁 동안 모두 말씀을 해도 못하시거늘

하물며 범부들이 그 끝을 알겠는가. 쌓은 복이 허공 같아 헤아릴 수 없어라.

마땅히 석가여래의 승보 대중은 한없이 넓고 큰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음을 알라.

그러므로 재가자는 스님들을 때리고 욕하고 비난하지 말라.

비록 출가수행자가 계 어김을 보았을 때도 그 뜻을 넉넉히 하여 헐뜯지 말아야 하리니
마치 푸른 초원에 들어가 꽃을 따되 예쁜 것만 골라 따고 마른 가지와 잎은 내버려 두듯이.

넓고 크고 청정한신 부처님 진리의 바다에 올곧게 계율을 지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이도 많거니

그 가운데 비록 위의를 깨뜨리는 이가 있다 해도 신도들은 비방해서는 안 된다네.

비유컨대 밭에 새로 씨앗 뿌릴 때 그 가운데 잡초도 또한 있듯이

한결같은 좋은 복 밭으로만 공경하여 가려 뽑는 분별심을 내서는 안 된다네.

그래서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 제어하사 출가 대중 훼방함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셨으니 이로써 모든 하늘에 태어나는 즐거움을 받으리라.

부처님 햇살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으나 승보가 진리의 등불을 전하고 이어 밝히니

용왕이 단비를 내려 온 누리 대지의 어린 싹들을 골고루 적셔 주는 것 같네.

청정한 화합 승보도 또한 이와 같아 부처님의 미묘한 법의 비를 내리시어

메마른 모든 생명을 촉촉이 적셔주고 좋은 싹, 공덕 씨앗을 기른다네.

다겁 생에 좋은 복 밭에 뿌린 착한 씨앗으로 부처님 제자 되는 스님들

현자 성인의 법 바다에 함께 살면서 미묘하고 신비로운 해탈의 감로 맛보고 있네.

세존의 말법 시대에 가르침을 지니고 전해 시방 모든 국토를 두루 다니며 교화하여

모든 중생 이익 되게 하면서 부처님 진리의 수레바퀴 끊임없이 구르게 하네.

부처님 가르침이 오랜 후에 없어지려 할 때에 큰 절 작은 절 다 무너지고 보탑이나 성상마저도

모두 황량해진다면 공양하려하나 공양 올리기 어렵다네.

벽화나 스님의 형상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부처님 바른 가르침 들을 수 있겠는가.

사람 몸 받기 어려운데 사람으로 태어났고 부처님 가르침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이렇게 만났네.

미묘하고 좋은 복 밭 스님들을 만났는데 오는 세상 공덕 씨앗을 심지 않으리.

다음생의 길 멀고멀어 도달하기 어려우니 양식을 비축해서 앞날을 준비해야하리.

좋은 복 밭에 씨 뿌리지 않으면 닥쳐오는 험한 길의 양식이 필요하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 잘 생각해 살펴서 부처님 말씀대로 출가스님들을 베풀어야 한다네.

경전의 말씀 의지하여 간략히 승보를 찬탄하니 그 공덕 헤아릴 수 없어 허공보다 크도다.
일체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나니 다음 생에 모두 함께 미륵부처님 만나기를 원하노라.

      원허 지운스님의 자비선 명상 문자서비스........... 2015. 4. 23 ~ 2015.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