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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살라행(kusala) 이란 무엇인가?

담마마-마까 2016. 6. 29. 00:31


꾸살라행(kusala) 이란 무엇인가?


선악을 가리키는 말은 불교에서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꾸살라(kusala)·아꾸살라(akusala), 또 하나는 뿐냐(puñña)·빠-빠(pāpa)입니다. 꾸살라와 뿐냐는 선(善), 아꾸살라와 빠-빠는 악(惡)입니다.


 뿐냐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좋은 행위로 「덕, 공덕」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불교에서 공덕을 쌓은 사람은 확실히 좋은 결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반대의 빠-빠라는 말은 원래 「버려지다, 부정된다.」라는 의미로 해선 안 된다고 결정되어 있는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빠-빠를 하면 확실히 나쁜 결과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살생, 도둑질, 삿된 행위, 속임수, 잡담, 욕설, 일구이언, 탐욕, 분노, 사악한 견해의 십악이 빠-빠라고 자주 경전에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3가지인 탐욕과 분노와 사악한 견해가 가장 무거운 빠-빠라고 합니다.

 

 꾸살라라고 하는 것은 선행이라고 하는 것으로 「능숙함」「재주있음」이라고 하는 의미인데 반해, 아꾸살라라고 하는 것은「거칠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가벼운 의미인 것입니다. 재주있다라고 해도 대단한 의미는 아니며 넓은 의미에서의 선행입니다. 즉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는 꾸살라, 불행을 가져오는 행위는 아꾸살라, 삶의 방법이 서투르면 불행하다라고 할 정도로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뿐냐(공덕)는 꾸살라(잘한 행위)에 포함되지만, 모든 꾸살라가 뿐냐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는 것은 꾸살라이지만 거기에 따라 세상도 행복하게 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즉 뿐냐는 업이 되고 결과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행위입니다.


 경전에서는 보통 뿐냐보다 꾸살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뿐냐에 대해 말하면 종교적으로 치우쳐 버립니다. 불교에서는 종교적인 이야기는 가능한 한 삼가고 있습니다. 덕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야기하면 굉장히 엄격해져 버립니다. 원리주의와 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선 안된다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때야만 뿐냐·빠-빠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해탈에 이를 때까지의 행위는 꾸살라입니다. 인생을 정말로 능숙하게 사는 사람은 해탈까지 가 버립니다. 꾸살랏사 우빠삼빠다-(kusalassa upasampadā)라고 하는 것은 「꾸살라로 살아가라, 꾸살라로 해탈에 들어가라」라는 것입니다.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라」라는 것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라 」라는 것은 이상한 것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으로 「선한 공덕을 행하라」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위를 하여 「능숙한 삶의 방법을 살아가라. 잘 설해진 시스템에 따라 실천하라」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 가르침은 명령형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라, ~하지 마라」라는 말투가 아니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 좋을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자신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그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의 책임으로 올바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진용스님. 붓다의 길따라 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