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념처경 법문

아짠 빤냐와로 스님의 대념처경 법문 15강. 수념처-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방법.

담마마-마까 2019. 5. 31. 18:02

https://youtu.be/-fxoquAi7uE

15강. 수념처-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방법 (20110827)

 

··· 할 수 없어가지고 아직 찾지는 못했는데, 되도록이면 거리도 멀고 진주에 있으니까 스님 매주 왔다갔다 하는게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하려니까 이직은 답이 없어. 그런데 아마 내년되면 안 찾겠어?

답이 없다는 거는 뭐냐면 매주 나와서 법문할 스님이 없다는 거라. 스님들이 와서 법문을 안 할려고 그래. 특히 대불련까지 나왔고 지금 나이들이 다들 50, 60된 사람들이면 불교계에서 잔뼈들이 다 굵은 사람들인데 그사람들 데려다놓고 앞에서 법문들을 하려니까 껄끄럽다는 거지. 껄끄럽든 어쨌든 간에 좀 해주면 좋을건데 그게 좀 잘 안되네.

 

오늘은 느낌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림 두 번째 시간이죠!

저번에 느낌에 대한 걸 대충적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오늘은 느낌 중에서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느낌 알아차릴 수 있어요? 호흡 하나 알아차리려 해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 참 힘들죠? 그런 데다가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는 건 더더구나 더 힘들 거라. 한참 생각 벌리고 있다가 '어, 내가 생각하고 있네.'하고 알아차리는 게 대부분이라.

그런데 느낌은 생각보다도 오히려 더 붙잡기 힘들고, 관찰하기 힘들고, 또 더 선명하지도 않고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느낌에 대해서 알아차리려고 할 것 같으면 더 힘들어. 물론 큰 건 알아차리겠지. 한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다리가 아프면 다리가 아프다는 고통, 맛있는 거 먹으면 맛있다 하는 즐거운 느낌들, 이런 것들은 알겠지. 그런데 미세하게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리기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렇죠! 그래도 우짤끼고? 우짤끼라? 해야 되는데.

 

그래서 대부분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호흡을 알아차리다가도, 마음에서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또 그러다가 느낌이 좀 강한 것이 일어나면 느낌에 대해서 또 알아차리고, 그러다 다시 또 호흡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반복을 합니다. 안되니까 어떻게 해? 계속하는 수밖에 없는 거라.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 알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고 시작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괴로운 느낌에 대해서 오늘 알아볼 건데, 괴로움에는 보통 통상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육체가 망가져가면서 일어나는 괴로운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것, 그러면 괴롭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하는 것도 망가져가고 무너져가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호흡하지 말라고 코를 딱 막고 있으면 그것도 괴롭게 느끼는 거고, 할 수 없게 됐으니까. 머리를 벽에다가 탁 부딪치면 괴롭습니다. 이런 것들은 여러분들 알기 쉽죠! 그러니까 다리에 피가 안 통한다 그럴 것 같으면 괴롭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괴로움들은 좀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배가 고플 때 왜 배가 고픈지 배가 고픈 초기부터 괴로움이 증가하는 것들을 알지는 잘 못하죠! 호흡을 하지 못하도록 하더라도 호흡하지 못하는 그 즉시부터 괴롭다고 느끼지는 잘 못하죠! 그런 부분은 있습니다. 그리하더라도 육체적인 괴로움은 여러분들이 알아차리기가 좀 쉽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괴로운 느낌을 관찰할 때는 육체적인 부분부터 먼저 그래서 관찰을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두 번째 괴로운 것들은 정신적인 부분이죠.

육체에 대해서 일으키는 기대, 소망들이 달성되지 않을 때 거기서 오는 괴로움들, 실망감들이라든지, 불안함이라든지, 또 슬픔이라든지 이런 것들입니다.

몸이 건강하기를 바라지만은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들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오는 괴로움들이 있습니다. 세월이 '아, 무상하다' 하면서 일어나는 괴로움들이 있는 거죠. 또 뭔가 즐거움을 준다고, 몸에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몸에서 덜컥 암이 생겨버렸다, 그럼 암이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도 있지만은 마음에서 일으키는 괴로움이 더 오히려 크게 됩니다. 또는 집 아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죽은 아이는 실제적으로는 이미 괴로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끊임없이 그 괴로움을 가지고 있죠. 그런 경우들이 정신적인 괴로움들이라.

그래서 괴로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괴로움이든 정신적인 괴로움이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은 뭘까?

왜 괴로움이 일어나요? 왜 괴로움이 일어납니까?

느낌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일어나는 거죠.

느낌이 없으면 괴로움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즉 느낌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정신적인 것들, 마음이 원인이 되는 거죠. 엄밀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 느낌이 원인이 돼서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그 부분을 항상 놓쳐버리면 안 됩니다.

육체적인 괴로움이든 정신적인 괴로움이든 느낌이 원인이라는, 마음이 원인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 됩니다.

그걸 놓쳐버리면 이 육체적인 괴로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만 노력을 하게 됩니다. 세월을 붙잡게 되는 거고, 아름답게 자꾸 꾸미게 되는 거고, 그리고 죽은 아이 돌려놓으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되는 거고.

 

자! 괴로움에는 두 가지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괴로움을 두 가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4가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조금 전에 얘기했던 육체적인 괴로움, 또 정신적인 괴로움.

그다음에 또 수행자가 괴로움을 겪는 것이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욕망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아! 수행하는데 다리 좀 안 아팠으면' 하고 바라는 거라. '수행 좀 잘됐으면' 그런데 그게 똑같은 괴로움이라는 생각들을 못한다는 거라. 그것도 여러분들이 알아차리고 나가야 될 괴로움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뭐냐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아이고! 놓쳤네' 합니다. 그것은 그 괴롭고 즐겁고 하는 느낌의 속성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느낌은 현재에 있는 것이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놓쳤네'하고 할 동안에는 이미 그 괴로움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하고 있느냐는 거라. 알아차리지 못했든 알아차렸든 이미 지나간 시간입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것은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뿐인데 그걸 붙잡고 있는 거라. 그 앞에 것들을.

이게 보통 수행자가 가지는 네 가지 괴로움입니다.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죠! 영원히 지속되는 괴로움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이 있습니까? 변화되지 않고 오래도록 그것이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가 붙잡고 있으면 오래도록 지속 되겠지. 그런데 그렇지 않을 거 같으면 괴로움 그 자체는 오래도록 지속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괴로움이라는 것은 동일하게 유지되는 법이 없습니다. 똑같이 그 괴로움이라는 성질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동일하게 유지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변하게 돼있습니다. 그게 괴로움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을 알아차릴 때는 무상으로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합니다.

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되니까! 괴로움의 있는 그대로의 속성은 영원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 않고,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게 괴로움의 특성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그렇게 괴로움을 무상으로 알아차려야 만이 갈망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라. 집착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라.

 

괴로움은 잠시라도 똑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거고, 잠시라도 머물지를 않기 때문에 빠르게 변해갑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뭐라고 했냐면 '괴로운 느낌을 화살로 보아라' 하고 적어놨습니다. 굉장히 빠르게 변한다는 거라. 화살같이 굉장히 빠르다는 거라. 그렇게 괴로움을 봐야 만이 그게 바르게 본다는 거라.

그래야만이 육체적인 괴로움이 있더라도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넘어가지지 않고, 그 괴로움이 나를 더 괴롭히질 않게끔 된다는 거라.

또한 그렇게 알아차려야 만이 그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즐거움을 탐구하지 않게끔 됩니다.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즐거움을 자꾸 찾는다는 거라. 다른 즐거움, 대체물들을. 그러니까 잘못된 길로 계속적으로 가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괴로움을 화살로 보아라하고 얘기를 합니다.

 

교재를 한번 보십시오.

괴로움을 제거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스님이 적어놨습니다.

안 가져왔어요? 안 가져왔으면 그냥 들어요.

첫 번째가 뭐라고 적어놨어요? 괴로움을 제거할 목적으로 알아차리는 방법.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는 거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그러니까 탐욕으로 수행을 한다하는 겁니다. 당연히 현상을 바르게 알아차리지 못하겠죠.

 

느낌을 극복하는 단계들이 있습니다.

맨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치가 없도록 할 것. 그것이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어떤 느낌이든 일어나는 느낌들에서 탐·진·치가 없도록 만들것.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먼저 만들어야 됩니다. 괴로워 도저히 안 되겠다. 도망을 치든지 뭘 하든지 간에 일단은 마음에서 탐·진·치가 없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그것이 괴로운 느낌이든 즐거운 느낌이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해야 되는 것이 뭐냐면 그 느낌 자체를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무상한 것으로써.

큰 전제조건은 이 두 가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우선에 알아차리는 마음에서 탐·진·치가 있으면 안 됩니다. 수행은 어떤 경우든지 탐·진·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먼저 탐·진·치가 없는 마음을 만들어야 만이 괴로운 느낌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는 거라. 그런데 괴로움을 자꾸 제거하려고 생각해버릴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다리가 아프면 다리 아픈 괴로움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리를 펴버리게 되는 거라.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욕망이 있기 때문에 다리를 펴게 되는 겁니다. 그럼 괴로운 느낌을 절대 관찰을 못합니다. 괴로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있는 상태에서.

 

그다음에 두 번째 괴로움을 제거하는 방법에 괴로움과 싸우듯이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다고 적어놨습니다.

싸우듯이 관찰을 하면 그것은 성냄입니다. 아까는 탐욕이었지만은 인제는 성냄입니다. 성냄으로써 그것을 관찰한다는 거라. '요시! 지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보자, 두고 보자' 하고 달라붙어 가지고 싸우게 되는 거라.

성질이 벌떡 나있는 상태에서 남들에게 아무리 얘기를 한다 하더라도 그 성냄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내 주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가 결합을 안 하면은 잘 살아갑니다. 감정에 물들지 않고, '나'라고 하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이 두 가지만 결합을 안 시키면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성냄을 가질 때는 이 두 가지가 결합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내 입장에서 얘기를 하게 되고, 나의 생각에서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지 절대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가 없는 거라. 그러면 알아차리는 내가 내 입장에서 이것을 알아차릴 거 같으면, '나'가 있다는 생각에서 알아차릴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그 괴로움은 계속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건 항상 지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괴로움을 관찰할 때 이걸 싸우듯이 할 것 같으면 그 괴로움이 빨리 사라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남는 거라. 오래도록 유지가 되어나가니깐 법을 보는 것이 더딜 수밖에 없는 거라.

 

바르지 못한 성향이 우리에게는 반복해서 일어나 집니다. 탐욕이나 성냄이라고 하는 것은 반복해서 항상 일어나집니다. 그런 것들을 잘 이해를 해야 됩니다.

 

괴로움을 느낄 때 저항하려고 하거나, 또 그것을 혐오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붙잡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게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잠재성향 들입니다.

대부분 보면 그렇게들 합니다. 그래서 괴로운 느낌이 있으면 괴로운 느낌을 끊임없이 그것을 자기 딴에는 알아차린다고 알아차리는데, 실제로는 성냄을 가지고 알아차리게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고 이거 빨리 벗어나야지' 하면서 퍼뜩 다리를 움직여버리든지 이래 버리는 거라.

수행의 진척이 빨리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괴로움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냐면 세 번째,괴로움의 참 성품을 알기 위해서 알아차려라 하고 얘기합니다.

 

자! 그것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한 것들을 교재에 쭉 적어놨습니다.

괴로움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몸도 긴장이 되고, 마음도 긴장이 됩니다.

그래서 먼저 괴로운 느낌 그 부분을 바로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긴장되어 있는 것들을 먼저 풀려고 자꾸 노력을 해보십시오.

아! 내가 이 괴로운 것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긴장을 하고 있는가? 이 긴장감을 먼저 이완을 자꾸 시켜주십시오. 가슴을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가슴이 뛰고, 가슴이 압박감을 느끼고 하는 것들을 편안하게 하고, 입술을 알아차림으로 해서 입술에서 오는 긴장감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긴장감들을 자꾸 제거하려고 먼저 노력을 해보십시오. 긴장감이 없는 상태에서 괴로운 부분을 멀찍이 떨어트려서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을 거기에다 바로 알아차리려고 할 것 같으면 당연히 우리는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성향으로 인해서 이것을 붙잡거나, 이것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꼭 마찬가지입니다. 긴장감을 먼저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그다음에 긴장감을 벗어나고 나면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뭐냐면, 그 괴로운 느낌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다리를 굽힌 여기에서 괴로움이 일어났다. 그럼 어떻게 돼요? 분명히 여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전체적으로 '다리'라고 판단할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정확하게 겨냥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다리 중에서 이 굽혀진 곳 중에서 가장 강하게 고통스러운 느낌이 일어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가만히 보면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한 군데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곳, 거기에다가 알아차리고,

 

그래서 긴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을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일어나는 곳에다가 마음을 갖다가 두어라 하는 거라.

그래야만이 그다음에 하는 것이 이 고통스러운 느낌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형편인지 아니면 뭐 별거 아닌지를 내가 판단해낼 수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방법은 그겁니다. 고통스러운 느낌이 일어나는 것은 그렇게 알아차리는 게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분명하게 몸의 현상과 마음의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때 그 고통스러운 느낌은 강하게 일어나지질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고통스러운 부분에다가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 고통스러운 느낌은 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알아차리면, 당연히 아픈 부위가 변하는 것을 압니다.

이 부분이 아프다가도, 또 옆에 부분이 아프게 되고, 또 다른 부분이 아프게 되고, 그리고 그 아픈 것도 한 군데서 일어나는 것이 똑같은 증세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욱신욱신하기도 하고, 묵직하기도 하고, 떼떼 쏘기도 하고, 똑같은 부위라도 그렇게 자꾸 변한다는 거라. 그렇게 알아차려야 만이 이 고통의 성품을 분명하게 내가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만이 그 고통스러운 느낌이 나에게 현재하지 않게끔 됩니다.

 

고통스러운 느낌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되면 더욱더 고통스러운 느낌은 많아집니다. 가려움이라든지, 쑤신다든지, 그리고 그 부분이 이렇게 흔들리듯이 긴장이 돼서 진동이 일어난다든지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압니다.

그렇게만 알아도 그거는 수행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알아차리는데 그 현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 변하는 것이 점점 더 빨라진다는 사실을 알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긴장하지 않고 알아차리면 그 느낌은 아주 빠른 속도로써 변하게 됩니다.

그럴 때 ''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내가 고통스럽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통 자체가 지 스스로 변화되고, 지 스스로 사라지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게끔 됩니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느낌을 알아차릴 때는 반드시 알아차리면 고통스러운 느낌은 강해집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잘못 착각을 합니다.

고통스러운 느낌이 강해지면 그것으로부터 자꾸 벗어나려고 해버립니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땐 다시 또 '! 내가 긴장하고 있는가'만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긴장감을 없애고 나서 그 부분을 지속적으로 자꾸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그 느낌이 분명하게 한 군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군데로 옮겨 다니면서 자꾸 변하고, 일어나는 현상들도 시시때때로 그 현상들이 다르다는 걸 자꾸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 고통스러운 느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려 나가면 나중에는 그 고통스러운 느낌을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면서 즉시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사라짐'만 지속적으로 일어나 집니다.

지금 현재 묵직한 느낌이 있다, 묵직한 느낌은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느낌들, 갖가지 느낌들 그것들을 알아차리면, 쑤심이면 '쑤심' 하고 알아차리면 '쑤심'이 금방 그 부분에서는 사라져버립니다. 일어나는 부분은 몰라도 사라짐은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부위에서 따가움이 일어났는데 일어나는 걸 몰라. 그런데 그 따가움을 '따가움' 하고 알아차리면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끊임없이 사라짐들만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수행을 해나갈 때는 이렇게 과정을 밟게끔 됩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느낌이든 정신적인 느낌이든 똑같은 현상들입니다.

 

* 수행 할 때 주의해야 될 것

그 고통스러운 느낌을 알아차릴 때는 피상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냥 '괴로움' '괴로움' 하면서 다리 전체를 본다든지, 아니면 마음에서 괴로움이 있다면 '괴로움' '괴로움' 하면서 마음 전체를 어디에 두는지도 모르고 피상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급하게 알아차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급하게 서둘지 말고 마음을 긴장감을 늦추고 분명하게 괴로움이 일어나는 부위에다가 마음을 두도록 하십시오. 그 마음을 둔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그래야만이 그 부위가 변하는 것들도 알고, 그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변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게끔 됩니다.

 

고통스러운 느낌이 어느 정도인지,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지 하는 그 자연적인 성품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집중력은 틀림없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느낌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느낌들도 증가하고 감소하고 하는 걸 분명하게 압니다.

똑같이 똑같은 강도로 있지 않는다는 걸 분명하게 압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느낌들도 장소를 점점 더 이동한다는 걸 압니다.

그것이 느낌의 성품입니다.

느낌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자꾸 보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면 언제 이 고통스러운 느낌들이 안 일어날까? 언제 안 일어날까요?

좀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 집중이 강해지면 안 일어납니다.

집중력이 강해져서 집중하는 대상이 괴로움을 대상으로 하는 데서 뛰어넘어서, 기쁘고 즐거움이 대상이 되었다가, 그것이 평온한 상태가 될 것 같으면, 느낌들은 사라져버립니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즐겁고 괴로운 느낌들이 그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상 자체만 아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집중력을 자꾸 키워가도록 해야 됩니다.

 

대상 자체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이런 다리의 고통스러운 느낌이나 이런 것들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들도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오로지 여러분들은 어떤 대상을 합니까? 일어나는 대상!

일어나는 대상 중에 호흡이면 호흡만 알아차리게 됩니다.

또 일어나는 대상이 평온한 상태가 돼 있다, 그럼 평온한 마음이 대상이 돼버립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알아차려 나가야 됩니다.

 

느낌은 그것이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그 상태가 될 때까지 분명하게 알아차려 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힘들겠죠? 그리해도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고통의 특성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그 특성대로만 알아차려 나가면 그렇게 되어 나갑니다.

고통에서 일어나는 육체적인 아픔이나 정신적인 괴로움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끔 자꾸 만들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 그것이 괴로운 느낌을 알아차리는 방법입니다.

쉽죠! 괴로운 느낌을 알아차리기! 그걸 이 교재에서 쭉 적어놨습니다.

물론 4선정에 가서 즐겁고 괴롭고 하는 정신적인, 육체적인 느낌이 없어진다, 어쩐다, 이렇게 쭉 적어놨지만은 조금 전에 스님이 설명한 것이 오히려 더 훨씬 이해하기 수월할 겁니다.

어떤 경우든 느낌은 무상하다고 자꾸 이해를 해야 됩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질문 있는 사람 질문하십시오.

다음 시간에 즐거운 느낌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