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
[bodhipakkhiyā dhammā, 三十七助道品]
불교 수행법에는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三十七助道品]이 있습니다. 수행의 항목 수가 37가지이지만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면 14가지 덕목이 됩니다.
1. 사념처(四念處)
2. 사정근(四正勤), 사정단(四正斷)
3. 사신족(四神足)
4. 오근(五根)
5. 오력(五力)
6. 칠각지(七覺支)
7. 팔지성도(八支聖道), 팔정도(八正道)입니다.
1. 사념처(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a)
- 네 가지 알아차릴 대상 (20080124)
저번 시간에 프린트물은 나갔었죠? [성자의 마음] 해가지고.
그 차이점이 뭐든가요? 일반 뿌툿자나(puthujjana) 범부와 아리야(ariya) 성자와의 차이점이 어떤 것들입니까? 불필요한 분노나 불필요한 욕구, 그리고 '나'라는 것에 사로잡히는 것, 견해에 사로잡히는 것, 이런 것들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게 일반인들과 성자와의 차이점이다 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중심으로 해서 쭉 적어놨습니다.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쭉 적으면서 바른 삶, 인격 완성, 지혜의 완성의 길로써 살아가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하는 것들을 얘기했고, 그 뒤에 한 것이 그러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그런 성자들을 자주 접할 수 있고 그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현자·현명한 사람들과의 만남, 현자와의 교우 부분에 대해서 쭉 적어놨습니다.
오늘은 [37가지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 보통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런 현자와의 교우를 통해서 부처님이 가르치려고 했던 것,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실천수행을 통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하는 부분까지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 실천수행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어떻게 하면 수행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이 37조도품입니다.
수행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길입니다. 세간법을 초월한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인 해탈·닙바나에 이르기 위한 길이 수행입니다. 그 깨달음에 이르는 그냥 일반적인 조건이 아니고 이런 수행의 조건입니다. 실천하는 조건으로써 부처님이 서른일곱 가지를 얘기를 해놨습니다.
그래서 이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의 계발 수행법은 부처님에 의해서 매우 잘 설명된 것이며 가르쳐진 것이다. 이 수행법을 잘 받아들이고 따라서 실천 수행하여 행복과 평화로움에 이르러라. 이 세상의 이익됨과 발전을 가져오게 하라. 하는 것들입니다.
서른일곱 가지는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보통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사념처 하면 뭔지 알고, 네 가지 노력·사정단·사정근 하면 뭔지 알고, 사신족 하면 뭔지 알고,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 다들 구분해서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방식도 물론 필요하지만은, 하나하나보다는 전체적인 것을 아우르는 것들도 필요할 부분입니다. 하나씩 설명을 해나가는 부분입니다.
위사카가 담마딘나 비구니에게 물어봅니다.
"스님들이 사마디 사마디 하는데 사마디가 뭡니까?"
그 비구니는 "현상관찰을 통해서 마음이 고요하게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모으는 것이 사마디이다."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마디 입니까?"
"그렇게 집중을 모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때 얘기한 것이 뭐냐면 "네 가지 마음집중 방법으로 해나간다." 하는 겁니다.
무엇에 집중한다?
"몸에 대해서 집중하고, 느낌에 대해서 집중하고, 마음에 대해서 집중하고, 담마의 현상에 집중하는 것이다"하고 그 담마딘나 비구니가 얘기를 합니다.
그때 위사카가 다시 묻습니다.
"그렇게 집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뭡니까?"
네 가지 으뜸가는 노력(사정단), 사념처 바로 밑에 있죠!
그 네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일어나 있는 나쁜 불선업은 제거해버려라.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나려고 하는 나쁜 것들 그런 것들을 막아버려라. 차단해 버려라. 그래서 불선업은 제거하든지 차단하라.
그다음에 일어나 있는 선업은 계발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업은 계발하도록 노력하라. 그래서 선업이 될 것들은 계발을 하고 또 노력을 통해서 드러내도록 하라.
나쁜 것은 차단하고 제거해버리고, 좋은 업이 될 것은 계발하고 노력해서 드러내라 하고 얘기하는 것들이 이 사정단입니다.
"그럼 그 사정단을 어떻게 닦습니까?"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밀착하여서 그러한 아까 얘기했던 으뜸가는 노력을 통해서 계발해나가면 된다."하고 얘기합니다.
사마디는 마음집중을 으뜸가는 노력으로 일념을 만듭니다. 일체의 번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서 순수한 마음이 되게끔 하고 그로 인해서 마음이 청정해지게 됩니다. 탐심-불필요한 욕구, 진심-불필요한 성냄, 어리석음-치심 이런 것들을 다스려서 더 이상 나쁜 업, 그리고 새로운 업을 쌓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집중 수행법인 사마디 수행법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사마디 수행법에도 대상이 몸과 느낌과 마음과 담마·현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도 이것이 대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몸을 대상으로 하는 사마디 수행일 경우에는 그 대상에 몰입해버리면 되죠! 그 대상에. 하나에 일어나는 대상이든 사라지는 대상이든 그 대상 하나만 잡고 마음을 일념 집중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는 하나의 대상에 몰입해선 안 되죠? 그 대상 자체가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든지, 그 대상 자체가 참 불만족스럽구나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든지, 아니면 그 대상 자체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든지, 이런 방법들을 해야 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대상을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서 사마디 수행이 될 수 있고, 위빳사나 수행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는 명칭만 붙잡고 한 시간 동안 내내 '일어남, 사라짐'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사마디 수행을 하는 거고.
그런데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 하고 있는데 변해가는 실상을 내가 알아차리고 또 '일어남' '사라짐' 하는 실재적인 것이 빠르게도 움직이기 때문에 참 불만족스럽다 하는 것을 안다든지, 아니면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하는, 내 통제권 밖이다 하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수행을 하면서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똑같은 대상인데도.
자! 어쨌든 이런 것들을 하더라도 맨 처음 수행에서는 장애들이 닥칩니다.
다섯 가지 장애들이 항상 있습니다.
까맛찬다(kāmacchanda)라 해서 욕심,
도사, 브야빠다(vyāpāda)라 해서 진심,
티나-밋다(thīna-middha)라 해서 혼침 망상 무기력 같은 것들,
웃닷짜-꾹꿋짜(uddhacca-kukkucca)라 해서 불안하고 근심하는 안정되지 못한 마음들,
그다음에 위찌낏차(vicikicchā)라 해서 의심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이것들은 장애일 뿐 아니라 수행 대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번에 아비담마 하면서 이 부분은 다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굳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전에 아비담마 심소부분 했던 것 다시 한번 돌려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다섯 가지 장애, 다섯 가지 현상은 수행으로 극복할 수 있고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실은 이 다섯 가지도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대상에 일치가 돼 있을 것 같으면 이런 것들은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도 무상한 성품입니다.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속된다고 하는 것은 무상한 것들을 모르는 데서 나타나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제거하지 않으면 이것들로 인해서 걸려 넘어질 수가 있는 겁니다. 해탈의 길에 이르기 어렵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됩니다.
그 제거하는 방법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뭐로 할 수 있습니까? 지금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하게 알아차림하면 이 부분은 완전하게 뿌리 뽑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상을 나눠놓은 것이, 대상을 네 가지 방법으로 나눠놓았습니다.
「짜따로 사띠빳타-나(cattāro satipaṭṭhāna)」 해가지고 네 가지 알아차릴 대상, 알아차릴 장소(四念處)란 뜻입니다.
'사띠(sati)' 알아차림을, '빠(pa)' 가져가는, '타나(ṭhāna)' 장소 · 알아차릴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사념처를 닦아야 하는 이유는 스님이 쭉 적어놨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간단하게 사념처(四念處)가 뭔가 하는 것도 적어놨습니다.
몸, 느낌, 마음, 담마 그렇게 됩니다.
몸이라는 것은 어떤 겁니까? 움직이는 거죠!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앉고, 걷고, 서고, 누워있고 행주좌와(行住坐臥) 그런 행위를 할 동안에 마음이 현재 상태에 집중되고 알아차리도록 하라 하는 것이 몸에 대한 관찰입니다.
느낌도 마찬가집니다. 느낌도 지금 현재 일어나는 감각, 느낌에 대해서 마음으로써, 느낌은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아는 겁니다. 마음으로써 깨닫고 알아차리고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느낌들은 보통 사대(四大)의 형태로서 다가와지죠! 덥고, 차갑고, 부드럽고, 거칠고 하는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도 변해가는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알도록 해서 집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마음도 지금 즉시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방황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 하는것들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뇌가 일어났을 경우, 그다음에 좋은 현상들이 일어났을 경우, 기쁜 현상이라든지 즐거움이라든지 수행상에서 그런 것들이 일어났을 경우 이런 것들도 법의 현상입니다. 법의 현상들을 알아차려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 '몸·느낌·마음·법에 대해서 알아차림' 이것을 사념처(四念處)라고 얘기합니다.
수행의 기본대상은 이렇게 사념처입니다.
그 사념처를 알아차리는 도구는 무엇입니까? '사띠(sati)'입니다.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 사띠(sati)가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삼빠자나(sampajāna)'라 해서 완전하게 아는 것, 마음챙기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지혜롭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몸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은 사띠로써 알아차리는데, 몸을 알아차리는 것은 몸·느낌·마음·법이 포함이 안 됩니까? 모두 포함이 됩니다.
몸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엇이 알아차립니까? 마음이 알아차립니다.
몸을 무엇으로써 알아차립니까? 느낌으로써 아는 겁니다.
마음으로 알아차릴 때 일어나는 현상들, 법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사띠로써 몸을 알아차리더라도 신·수·심·법(身受心法)을 다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렇게 몸을 알아차리는 방법에는 통상적으로 14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예를 들면 긴 숨도 있고 짧은 숨도 있고 그럴 거 아닙니까? 몸의 더러운 걸 관찰하는 방법도 있을 거고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느낌도 마찬가집니다. 느낌을 관찰할 때는 똑같이 신·심·법이 포함됩니다. 사띠하는 데는 다 포함됩니다. 느낌을 관찰하는 것은 보통 9가지 느낌들이 있습니다. 좋고 싫고 무덤덤하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
마음에 대한 관찰도 마찬가지로 신·수·법이 포함된 사띠입니다. 마음은 16가지로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수·심이 포함된 거죠! 그것이 포함된 알아차림 방법입니다. 보통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하고 얘기합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방법을 사대문을 예로 들면 됩니다.
사대문의 어느 쪽을 통하더라도 그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게 돼있죠! 사대문 안이라는 것은 바로 열반·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에 들기 위해서 사대문 중 어떤 것을 이용해도 됩니다. 하나를 알아차리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네 가지를 다 사띠하고 있는 경우가 됩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의 성격이나 기질, 근기에 따라서 수행법을 선택하도록 그렇게 해놓았습니다. 사념처로써 선택하기도 하고, 아니면 40가지 사마디 수행법으로써 선택하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보통 사념처로써 선택을 할 경우에는, 내가 좀 감성적인 사람이 있고, 또 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을 먼저 얘기하면 이성적인데 아주 날카로운 사람이 있고 이성적인데 조금 무딘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 무디다 싶을 때는 마음에 대한 것들 심념처를 많이 하라 합니다.
그런데 이성이 발달해 있는데도 아주 날카로운 이런 사람들은 법에 대한 관찰들을 많이 하게 합니다. 그마만큼 번뇌에 많이 휩싸이거든. 그걸 관찰하기가 수월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다음에 감정적인 사람, 감성적인 사람들의 경우.
감성적이라도 조금 무딘 감성적인 사람들, 좀 지속적으로 계속, 싫증을 잘 안 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몸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합니다.
감성적이라 하더라도, 감성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욕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욕심이 많은데 조금 예민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느낌에 대한 관찰들을 많이 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하기도 하고 방법을 달리해가지고 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아름다운 것들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름다운 것은 무상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몸이 변한다든지 백골관 같은 것이라든지, 몸에 대한 부정함을 알아차리는 신념처를 하도록 하고.
그다음에 만날 즐겁고 즐거운 느낌들에 탐닉하는 경우, 미식가라든지 이런 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수념처 느낌에 대한 것들, 느낌은 참 괴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도록 해서 느낌에 대해서 많이 합니다.
그다음에 '모든 것은 영원하다' 하는 생각이 좀 강한 사람들, “나는 아무리 봐도 변하는 걸 모르겠습니다.” “항상 있는 것 같다” 이럴 경우엔 마음에 대한 관찰들을 하도록 해서 무상함을 알도록 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최고다' 그리고 나와 남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어떤 면에서는 짠돌이 같은 사람들이지? 자아에 대한 환상이 강한 사람들은 법념처를 많이 하도록 그렇게 시킵니다.
그렇지만은 이 사념처를 염처별로 수행을 하든지, 아니면 두루 수행을 하든지 하나로 다 통하죠! 하나로 다 통합니다.
그래서 꼭 이 사람이 법념처에 맞다 해서 법념처만 가지고 수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걸 기본으로 하면서 몸에 대한 관찰이든, 느낌, 마음에 대한 관찰을 적절히 알아차리면 됩니다.
법념처 하면서 안 일어나는 게 있습니까? 번뇌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번뇌만 계속 관찰할 수 있습니까? 몸도 관찰하고 느낌도 관찰하고 그때 번뇌가 일어났을 때 마음도 관찰하게 되는 거고 그럽니다.
그래서 자기한테 특별하게 맞는 방법이 틀림없이 있지만 꼭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네 가지 방법들을 통칭해서 사념처라고 그럽니다.
어쨌든 이 사념처는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입니다.
몸과 마음은 어떤 겁니까?
몸은 어떤 겁니까?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입니다.
마음은 보통 뭡니까? 마음이 머무는 곳은 뭔가가 물질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됩니다. 공간이 있어야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일어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의 여섯 가지 작용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섯 가지 작용에 대한 것들을 쭉 적어놨고.
이 몸과 마음을 관찰할 때 일어나는 것이 조금 미세하게 일어나는 특징이 있고, 또 좀 조잡하게 일어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것들은 그 밑에 얘기를 해놨습니다.
좀 달라붙는 느낌은 좀 조잡한 겁니다. 그리고 밀쳐버린다 싶을 경우에는 조금 미세하다 생각하면 됩니다. 도사(dosa)냐 로바(lobha)냐 그걸 가지고 얘기합니다.
도사(dosa)는 밀쳐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로바(lobha)는 끌어들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로써 미세한 특징과 조잡한 특징으로 보통 나누기도 합니다.
어쨌든 미세하고 조잡하다는 것은 내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느냐 아니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느냐 하는, 그런 것으로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붙잡는 것은 어떻게 되겠어요? 예. 표가 잘나죠!
밀쳐버리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겠습니까? 잘 모릅니다. 사실 잘 모릅니다. 다 밀치고 나서 '아이고, 내가 밀쳤다' 하는 것을 압니다. 화가 다 끝까지 일어나고 나서 '아이고, 내가 잘못했다' 하는 거라.
수행 할 때는 그런 부분만 조심하면 됩니다.
붙잡을려고도 하지 말고 밀쳐버릴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수행의 기본 조건입니다.
대상이 일어나면 어떤 대상이든지 '아! 쓸데없다' 해서 밀치지도 말고, 아니면 '저걸 한번 끝까지 봐야지' 하면서 붙잡을려고도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그래버리면 전부 도사, 로바가 그 마음속에 포함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그 대상을 알아차리기 힘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수행은 기본이 뭡니까? 자연스러움입니다!!!
호흡도 자연스러워야 되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자연스러워야 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붙잡지도 말고 밀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변형하고 가감하고 해버릴 거 같으면, 명확하게 알아차리기가 힘들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했을 때 몸과 마음을 잘 살펴볼 거 같으면 이 여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지(patavī-dhātu), 수(āpo-dhātu), 화(tejo-dhātu),
풍(vāyo-dhātu), 공간(ākāsa-dhātu), 의식(viññāna-dhātu) ]
그 밑에 통찰의 1단계, 2단계, 3단계 하는 부분을 적어놨습니다.
한번 여러분들이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 한번 잘 보십시오.
보통 수행할 때 어떻게 됩니까?
배를 예로 들면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하고 있으면, 위빳사나 수행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배의 모양이나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야 되죠. 배의 모양이나 형태가 드러나는 것은 사마디 수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일어남' '사라짐' 이것밖에 모르게 된다는 겁니다. 배의 모양과 형태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마음이 거기에 붙잡혀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다 할 거 같으면 배가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할 때 맨 먼저 뭣부터 알아집니까?
움직임부터 알아집니다.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일어나는 현상들, 그 움직임들을 먼저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아까 일어남 사라짐 할 때의 형태들 하곤 다르죠? 똑같은 동일한 경우가 절대 없습니다. 배가 불러오는 것도 조금 전 3초 전에 불러온 것과 3초 후에 불러온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움직임을 보더라도 동일한 움직임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움직임의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제 위빳사나 시작하는 겁니다.
이제 위빳사나 시작하는 1단계에 들어섰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하고 나면 뭐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느낌이죠!!
스님이 이때까지 쭉 강조해 왔던 거 아닙니까?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 느낌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무거운 느낌이든지 가벼운 느낌이든지 이런 느낌들이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무거운 느낌이나 가벼운 느낌들을 알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몸의 현상과 마음의 현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그걸 알 수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한뭉텅이가 돼가지고 느낌을 본다? 모릅니다! 움직임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무겁고 가볍고 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파악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겁고 가볍고 하는 사실을 알 경우에는 이미 몸과 마음에 대해서 원인 결과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가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른 겁니다.
그래서 수행할 때 움직임이 먼저 알아지고 나서 그다음에 느낌들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이 느낌들을 알았다고는 것은 이미 수행의 두 번째 단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기 때문에.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속에서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들, 두드러지는 것들, 무상이 일어나고, 고가 일어나고, 무아가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마음을 어느 쪽으로 두느냐에 따라서 한 부분이 강하게 일어나집니다.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것이 무상이든 무아든 아니면 고든.
이 상태가 되면 수행하는 데는 3단계에 진입할려고 하는 상태까지 들어갑니다.
그리하더라도 어떻게 됩니까? 조건지워진 겁니다.
조건 따라서 일어났다가 조건 따라서 사라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조건조차도 완전히 없어져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게 수행의 3단계 상카라(saṅkhāra)까지 완전히 소멸돼 버리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깊이 들어갈 경우에는 삼매에 들어가 버리는 거고, 그렇지 않고 위빳사나 해서 계속 계발해나갈 경우에는 조금 더 지혜롭게 되어서 사물의 현상을 명확하게 통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고, 고의 원인에 대한 것들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사성제라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고(苦)·집(集)입니다.
고와 고의 원인입니다.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사실 사성제입니다.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은 2성제인 것이지 뒤에 부분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고 따라가야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고와 고의 원인에 대해서만 가르친다고. 여러분들도 알아야 되고 따라가야 될 것은 고와 고의 원인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수행의 기본적인 진척 방향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은 조금 더 자유로워져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지고 어떻게 됩니까?
당장 내가 어디 찾아가는 것은 아니죠! 서울의 사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해서 내가 목적지에 도달한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대문 안으로 들어갔을 경우에는 찾아가기가 수월합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가가지고 내가 목적지 안 가고 돌아오는 사람,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는 거라. 서울까지 들어갔는데, 내가 어디 갈려고 한 데는 분명히 간다는 거라.
그래서 조금 더 도의 흐름에 들게 되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다시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고 돌아오는 길은 없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지금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깨달아라. 몸과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인지 알아차려라."
그거 외에는 없다는 거라. 그것으로 인해서 닙바나에 도달한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방법에 맞게끔 이제는 실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사념처입니다. 사념처 수행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다음 시간에는 이 사념처 수행을 조금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들을 해야 되는가? 보통 사정단, 사정근 할 때의 위리야(viriya)입니다. 위리야를 조금 더 세분해나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짜따로 삼빠 빠다나' 그렇게 얘기합니다. 네 가지 바른 노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네 가지 아까도 얘기했죠? 끊어야 될 것, 제거해야 될 것, 계발해야 될 것, 또 더 노력해서 드러내야 될 것,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좌선하고 경행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
삼보에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이 법문 글은 아짠 빤냐와로 마하테로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들에서 녹음된 것을 토대로 필사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인 공부로써 삼장법사 스님의 법문을 듣고 옮겨 적으며 되도록이면 최대한 선원장 스님의 육성을 그대로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옮긴이의 앎과 노력이 부족하여 법문 본래의 뜻과 요지를 오롯하게 담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부디 법문내용의 속뜻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감 없이 변형 없이 오롯이 전해주시는 붓다의 길따라 선원장 스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올바르고 귀중한 법문들이 설해질 수 있는 장소와 조건을 유지해주시고, 설해진 법문들을 잘 보존해오신 선배도반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시는 모든 테라와다 도반님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존재들에게 공덕이 골고루 나누어지길 바랍니다.
모든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이 가르침으로 인해 법의 눈이 열리고 지혜가 증장되어지기를
이 가르침이 실천수행으로 이어져 닙바나의 토대가 굳건해지기를
2022년 12월 다시 필사하며 담마마-마까 올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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