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도주로 (20081111)
마음은 여러분들의 귀에다가 집중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당시 때 부처님의 시자 중에서 메기야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 후반기 25년간 시봉을 하기 전에 일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자꾸 듣다 보니까 굉장히 수행을 하고 싶거든. 그래서 부처님한테 “부처님 저는 저 숲에 들어가서 수행하겠습니다.”
부처님이 그럽니다. “내 옆에 시자가 하나 있어야 되니까 시자가 한사람 올 동안까지만 기다렸다가 숲에 들어가서 수행하라.” 그런데 메기야는 못 참겠는 거라. 수행이 하고 싶어서. 또 부처님한테 간청을 하고, 또 간청을 하고 해서 부처님도 어쩔 수 없이 “수행하러 가라” 하고 보냅니다.
숲에 들어가서 수행을 하려다보니까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거라. 온갖 생각들도 떠오르고 두려움도 일어나고 근심걱정도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수행을 못하겠는 거라. 도저히 안 되겠어서 부처님한테 다시 갑니다.
그때 인제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쌓아온 습관들로 인해서 자꾸 나도 모르게 이런 망상들이나 아니면 번뇌라든지 괴로움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일어난다."
여러분들도 그럴 겁니다, 어릴 때부터 번뇌 없이 살아온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어릴 때는 부모님이 주는 용돈이 적니 하는 불만부터 해서, 학교성적이 잘 안 나와서 또 고뇌하고, 또 좀 커서는 하는 일이 잘되고 안 되고 해서 또 생각에 많이 빠지고, 또 내가 받고 있는 봉급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적은 것 같아서 또 생각을 하고, 또 결혼해서는 부부간에 잘 화합해야 되는데 의견들도 안 맞고 그래서 사이가 나쁜 것 같아서 또 생각합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는 외로워서 또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그럽니다.
사람의 일생이 어찌 보면 이런 고민이나 불만족의 연속입니다. 살아가면서 계속적으로 그런 불만족이나 불평들의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태어남과 동시에 확실하게 죽음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태아 때부터도 어머니가 약간만 부주의하고 잘못해도 바로 유산해버립니다. 어머니 밖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건강한 것 같아도 조그마한 세균, 바이러스로 인해서 쉽게 병이 들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것 같은 내 몸의 세포들도 어느 순간 돌연 암세포로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백혈구가 많아도 문제고 적어도 문젭니다. 이렇게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위험에 빠져있게끔 돼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더라도 밖에 외부적인 것으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아니면 피곤해가지고 과로해서 죽음을 맞기도 하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죽음에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죽음을 피할려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왔습니다.
문명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런 죽음을 피할려고 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과학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종교들을 믿어서 사후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하더라도 현재까지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거라. 그래서 절망하고 실망하게끔 되어있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죽음을 피할 방법들을 찾아서, 종교적인 것이든 과학이든 수학이든 이런 방법들을 동원해가지고 하고 있는 거라. 이런 방법들이 지금뿐 아니라 과거부터 계속 진행되어왔던 것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런 불안감들이나 초조함 들이나 그런 절망감 같은 것들을 항상 가지고 있게 되는 거라.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거라.
숲속에 들어가서 수행하면 금방 깨달음에 이를 것 같은데 막상 시작해보니까 안 그렇거든. 불안하고 초조하고 오만 망상들이 다 떠오르고 한다는 거라.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는 거라. 우리 인류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왔던 것들인데 무의식중에서 계속 증장시켜 왔던 것들인데.
꼭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에서도 이런 무의식 속에 잠재돼있던 괴로움들이나 불만족들이나 초조감들로 인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한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고,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불만족이나 초조나 괴로움들을 갖다가 없애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합니다. 스포츠를 한다든지 예술을 한다든지.
그걸 부처님은 뭐라고 했냐 하면 '"노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울음소리일 뿐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자신의 내부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불만족,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들을 갖다가 감추기 위해서, 그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즐겁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하고 얘기합니다. 마음의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노래라고 부처님은 얘기합니다. 춤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 춤이다 하고 그럽니다. 여러 가지 기교를 부려서 춤을 추고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하지마는 그런 마음 깊숙이 있는 불만족이나 상처들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괴로움이나 불만족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 하고 얘기합니다.
받아들이려고 하다 보니까 그것을 탈출하기 위해서 만든 도구들인 춤이나 노래나 이런 것들로부터 멀리 벗어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잠깐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마는 오히려 더 깊숙이 침잠해 들어가는 것뿐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이런 수행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런 생각들, 또는 불만족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존재할려고 하는 욕구들로 인해서 불안함과 불만족이 일어납니다. 질투하고 원망하고 화내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상념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피할려고 하지 말고 마음의 더러움을 자꾸만 알아차려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통과해야 만이 최종적인 목표인 해탈에 도달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맑고 깨끗하게 자꾸 유지할려고 하더라도 자꾸만 빠져나갑니다. 도망을 칩니다. 공부해야 될 아이들한테 아무리 공부하라고 하더라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더 놀고 싶어 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나쁜 습관, 길들여져 왔던 습관들이 수행을 해나가는데도 플러스 작용을 하지 않고 마이너스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띠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서 자꾸 그런 것들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수행 중에 자꾸만 졸음이 온다든지 망상이 일어난다든지 잡념이 일어난다든지 아니면 화나는 것이 일어난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사람은 좋은 것들이라고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자애라든지 서로 도와주는 거라든지 아니면 그냥 만족할 줄 아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을 자꾸 실천할려고 하더라도 강제로 하지 않으면 마음은 거기로부터 벗어나 버립니다. 싫어하거나 괴로워하는 마음 또는 지금 있는 좋은 것 또 싫은 것으로부터 도망칠려고 하는 마음들, 이런 것들을 잡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내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되고.
과거생부터 지금까지 쌓아왔던 그런 행위들로 인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의식중에 그런 번뇌 망상들을 잠재해 오고 있다는 거라. 그걸 한꺼번에 끊을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그거하고 싸울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죽음하고도 싸우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하듯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들도 싸울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해야 됩니다.
불교를 실천하는 이 위빳사나 방법도 그래서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런 것들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벗어날려고 하고 싸울려고 하고 할려고만 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 하는 겁니다.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번뇌 망상과 괴로움에 자꾸 끄달려 들어가게끔 돼있다는 거라. 평온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것이 마음이라는 거라.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거라. '아! 이게 마음이구나.' 그럴려면 그러한 괴로움을 넘어서는 방법은 다른게 없다는 거라. 일어나더라도 내가 끊임없이 그냥 그것 채로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릴려고 자꾸 하라는 거라.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그러면서 그것을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라.
수행 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 졸음이나 여러 가지 상념들이나 이런 것들은, 그건 당연히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십시요. 그걸 먼저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요.
없는 것이라고, '왜 이게 일어나지' 하고 생각을 할 거 같으면 이미 수행 대상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그냥 그대로 알아차릴려고 자꾸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수행 열심히 잘되는데도 거의 끊어짐이 없이 알아차리고 있는데도, 어떨 때 가끔씩 불쑥불쑥 이런 것이 튀어나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어떨 때는 안 일어나게 할 수가 없는 거라. 투쟁을 했거든. '더욱더 열심히 해야 된다. 요놈이 나타나기만 해봐라. 내가 반드시 잡아낼 것이다.' 안 되는 거라.
'아! 이것은 지금 이생에서 나의 문제만은 아니구나. 인간이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진행되어왔던 것들, 죽음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하는 것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투쟁한 결과로써 마음에서 불안감이나 초조함이나 이런 것들이 잠재해 왔구나' 하고 어렴풋하게 알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먹어 버리면 이런 것들하고는 싸우질 않습니다. 설혹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버릴 것 같으면 적어도 이차적인 화살은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은 기초수행을 하는 단계입니다.
하다가 보면 수행이 안 될 때 금방 포기해 버릴려고 하고, 또 내가 수행할려고 마음을 먹으면 또 다른 일들이 방해를 합니다.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하는 것을 알고, 일어나는 현상들, 있는 그대로의 성품들을 자꾸 볼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리가 여러분들 곁에 툭 떨어지듯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 > 수행기초[초보수행반] 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bhāvanā)_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20110523) (0) | 2020.01.18 |
---|---|
무엇에 의지하면 안전할 것인가? (20081118) (0) | 2020.01.12 |
몸을 의지해서 수행하라 / 사념처, 아수바(부정관), 사대요소...(20080909) (0) | 2020.01.12 |
육근_육문(六門)_감각기관 / 닿음포인트, 주대상(20080902) (0) | 2020.01.12 |
위빳사나 바와나- 위빳사나수행의 기본원칙 3가지(20080728) (0) | 2020.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