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위빳사나[기초수행반]

기초수행15. 마음관찰1. 수행 시 고려되어야 할 것들 (20071221)

담마마-마까 2020. 1. 5. 16:11

https://youtu.be/K8jOfz_tKTw

 

* 기초수행15. 마음관찰1. 수행 시 고려되어야 할 것들 (20071221)

 

수행을 할려면 여러 가지 고려해야 될 것들이 좀 많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나에게 맞는 수행주제를 택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좀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또 화를 내는 것들이 좀 많은 사람도 있고, 또 천성적으로 조금 느린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게끔 자기가 수행방법을 지도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수행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 중에 하나입니다.

 

두 번째 고려되어야 할 것들이 뭐냐 하면 수행하기에 적당한 장소인가?

수행하러 선원에 왔는데 수행은 안 하고 떠들고 있다든지, 아니면 집에서 수행할 때도 번잡하기만 하고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안 된다 할 경우에는 수행할 만한 적당한 장소는 아닐 겁니다. 장소도 고려를 해봐야 됩니다. 물론 위빳사나 수행은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든 할 수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초심자에게는 장소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에 들어가집니다.

 

그다음에 또 중요한 부분이 뭐냐 하면 같이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벗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이곳에 와서 수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하는 것들은 알 겁니다. 혼자서 열심히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대화를 하더라도 수행에 대한 얘기들이나 법에 대한 얘기들을 용이하게 할 수가 있고 또 그런 식으로 수행을 해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벗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하나 또 중요한 것들이 뭐냐 하면 음식물입니다.

소홀하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인데 많이 먹지 않고 맵고 짠 것들을 좀 가리고 하는 것이 수행에는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먹는 음식의 1/3정도 줄이는 것이 적당한 음식의 양입니다. 그리고 음식도 되도록이면 자극성 있는 것들을 가려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마띠까 마따라고 하는 부처님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어떻게 해서 깨달음에 이르게 됐는가 하면, 어느 많은 무리의 수행자들이 수행할 장소, 결제할 수 있는 장소를 고르고 있는 때였는데, 마띠까 마따가 이 사실을 알고 자기가 수행처를 제공해 줄테니까 여기 와서 수행하십시오 하면서 자기 마을에 스님들을 초청을 합니다. 그 스님들은 적당하다 싶어서 부처님한테 수행주제를 받아가지고 많은 벗들과 함께 그 장소에 가서 수행을 합니다.

스님들이 수행을 하면서 마음을 먹기를 뭐라고 먹느냐면, 우리가 어렵게 이 자리에 와가지고 수행을 하는데 부처님의 고마운 것도 알고 또 이렇게 시중해주는 마띠까 마따를 비롯한 사람들의 고마움도 알고 하니까, 우리가 이번 결제기간 동안에 열심히 수행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일체 말도 하지 말고 따로따로 떨어져서 수행하자 해서 수행을 해나갑니다.

 

어느 날 마띠까 마따가 스님들한테 공양을 올릴려고 와보니까 아무도 없거든. 다들 방에서 수행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일인가 해가지고 물어보니까 한사람이 이 종을 치면 스님들이 다 나올 것이다. 종을 치니까 스님들이 나오는데 한 곳에 모여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각자 숲이든지 방이든지 각자각자 수행을 하고 따로따로 이렇게 나오거든. 그래서 속으로 그렇게 합니다. '스님들이 싸웠나?' 그래서 왜 이렇게 하느냐 하니까 "우리가 여기서 수행을 더 열심히 해나갈려고 그렇게 각각의 맞는 장소에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띠까 마따가 물어봅니다. "아, 참 장하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수행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한 스님이 "가부좌를 하고 편안하게 앉아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합니다." 또 어떤 스님은 "이 몸이 참 더러운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털부터 해서 손톱 발톱 이런 몸의 각각의 기관들을 관찰을 해서 그 더러움을 알아차려서 이 몸에 대해서 집착심을 버려버리는 것으로서 수행을 합니다."

어떤 스님은 "이 몸은 죽음에 이르면 나무토막보다도 못한 참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이 몸이 썩고 부패하고 진물이 나고 또 벌레가 생기고 또 그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뼈만 남게 되고 그 뼈마저도 뒹굴게 돼서 뼈다귀들은 개나 이런 것들이 물어가게 되고, 이런 몸이 죽음에 이르고 나서의 현상들에 대해서 관찰하면서 이 몸에 대한 집착심을 여의게 하는 수행을 합니다." 하고 각각이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마띠까 마따가 물어봅니다. "그러면은 그 수행은 출가인들만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재가인들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그럼 수행을 하겠습니다."하고 마음을 먹고 수행을 해나갑니다. 그런데 마띠까 마따는 집중력도 뛰어날 뿐만아니라 선근공덕들도 많이 쌓아온 분이라서 금방 깨달음에 이르거든. 아나가미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좀 더 공부를,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더욱더 배려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수행에 진척이 없거든. 왜 그런가 하고 살펴보니까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사람들마다 각각 자기에게 맞는 수행주제를 받아가지고 하고 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러분들에게도 자기에게 맞는 수행주제가 따로 주어질 겁니다.

수행주제도 각각 다 부처님이나 상수제자들한테 받아서 맞게 하고 있고, 수행하는 장소도 이마만큼 훌륭한 곳도 없고, 그리고 다들 공부하는 스님들끼리 모여있으니까 도반들도 좋은 도반들이 모여져 있는데, 딱 하나 틀린 것이 뭐냐면 음식, 먹는 것 가지고 장애가 되어서 수행에 진척이 없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 각각의 스님들에게 맞는 음식들을 줍니다. 결국 그 스님들은 그것까지 다 갖춰지고 나서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결제가 끝나고 나서 아라한이 된 이 칠십 명의 스님들이 부처님한테 가서 이번 결제에는 마띠까 마따가 있는 마을에서 이렇게 잘 보냈습니다. 하는 얘기를 하는데 그 옆에 있던 한 스님이 듣고 '아! 나도 거기 가서 수행해야 되겠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마띠까 마따가 있는 데를 갑니다.

가면서 생각을 하기를 '아, 내가 그 장소에 가는데 도착하기 전에 방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았으면 좋겠다'하고 마음을 내고 거기에 가는데, 마띠까 마따는 이미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스님이 올 것을 대비를 해서 장소를 깨끗하게 청소를 해두거든. 그것뿐 아니라 이 스님이 이렇게 생각을 하면 마띠까 마따가 이미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미 준비를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 스님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마띠까 마따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물어봅니다. "마띠까 마따님은 신통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의 마음을 읽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띠까 마따는 즉답을 회피합니다. "다른 스님들도 그렇게 그런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하면서 이렇게 회피를 합니다.

그래서 이 스님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것을 마띠까 마따가 다 알 것을 생각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수행을 해서는 안 되겠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나쁜 마음도 다 알 거고, 욕을 할 거 같으면 욕하는 마음도 다 알 것이고 이런데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 싶어가지고 부처님한테 갑니다.

 

그때 이제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네가 딱 하나만 할 것 같으면 절대 마띠까 마따가 네 마음을 알지 못한다."

"뭘 하면 됩니까?"

"마음을 알아차려라. 네가 무슨 마음을 내고 있는지 그 마음만 알아차릴 거 같으면 마띠까 마따가 절대 네 마음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마띠까 마따가 있는데에 와서 마음에 대해서 관찰을 해나갑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이 일어났다고 알아차리고, 또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고, 이런 수행을 해나가서 결국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통상적으로 마음이 앞서서 행동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들은 대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말을 하지도 못하고 행동도 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모든 행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아픈 것을 아는 것은 마음인 것이고, 또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것을 아는 것은 마음이고, 또 내가 손을 하나 뻗는다고 하더라도 뻗도록 명령내리는 것은 마음으로 인해서 손이 뻗어지는 것이지 육체 스스로 뻗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서가고 마음이 주인일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쁜 마음을 먹을 거 같으면 나쁜 행동이나 나쁜 말을 하게 돼서 나쁜 결과가 따라오게 되고, 좋은 마음을 먹으면 좋은 말이나 좋은 행동을 해서 좋은 결과가 따라오게 되고 그래서 행복하게 되고.

수레가 지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황소가 끌기 때문에 수레가 움직여나간다고 하는 것을 몸과 마음의 관계로써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그 마음을 관찰하는데 등한시 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이런 마음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하는 것들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비근한 예를 한번 들어봅시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에는 통상적으로 네 가지 방법들을 동원해서 알아차립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먼저 해보겠습니다.

자! 스님이 앞에 있는 연경이를 보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대상이 있단 말입니다. 그럼 연경이가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얘기하는 겁니다.

내 마음을 연경이에게 향해서 볼 것 같으면 어떤 마음이 일어나겠습니까?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다음에 두 번째 내 마음을 연경이를 보고 있는 이 눈에 인식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연경이를 볼 경우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는가?

또 하나는 연경이라고 하는 대상과 이 눈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인식하는 마음,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마음을 둘 것 같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는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한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대상에 마음을 주어버립니다.

그러죠? 꽃을 본다고 할 거 같으면 꽃에다가 마음을 향한다는 거라. 그러니까 꽃이 예쁘다, 아니면 탐스럽다, 시들었다 하고 아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고, 꽃이 예쁘다고 할 거 같으면 '아! 예쁘다' 하면서 만질려고 하고 아니면 그걸 꺽을려고 하고. 마음이 대상을 향해버릴 거 같으면, 밖의 대상이죠. 대상을 향해버릴 거 같으면 마음이 더욱더 발전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마음을 대상으로 향하지 않고, 대상을 보는 것은 뭡니까? 눈입니다. 마음을 눈 쪽으로 향할 거 같으면 어떤 결과가 나는가? 쉽게 말하면 저 보이는 대상, 꽃이라고 하는 대상이 눈으로써 빨려들어와야 됩니다. 그럼 눈에다가 마음을 둘 거 같으면 적어도 급격하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대상에 대해서 아름답다, 아니면 꽃이 피었다, 추하다 하는 생각은 일어나지만 거기에 빨려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 생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도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우니까 그 냄새를 맡고 싶다 하는 마음도 일어날 것이고 아니면 꺽고 싶다 하는 마음도 일어나겠지만, 전자보다는 천천히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마음을 대상에 빼앗겨버릴 거 같으면, 대상 쪽으로 향해가지고 나갈 거 같으면 생각이 급속도로 발전돼나가는데, 눈에다가 마음을 둘 것 같으면 급격하게 발전해나가지는 않는다는 거라. 왜? 마음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하고 실재하는 곳 하고는 다른 겁니다. 다른 거기 때문에 여기에 둘 것 같으면 적어도 분절되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을 급격하게 빼앗기지는 않습니다.

 

그다음 세 번째, 어차피 내가 저 꽃을 안다고 하는 것은 밖에 있는 꽃이라고 하는 대상과 이 눈이라고 하는 것이 만나가지고 그 빛으로 인해가지고 눈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일어나지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그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갖다가 알아차릴거 같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하게 알아차릴 때는 꽃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 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내 눈이 뜨여져있다는 것도 압니다. 인식을 하고 있을 거 같으면 더욱더 대상에 빨려들어가지 않는다는 거라.

 

그 인식하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가 일어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사실을 안다는 거라.

조금 전에는 '아! 꽃이 피었네' 하고 알다가, 그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그다음에는 '아! 아름답구나' 하고 알다가, 그다음에는 '아! 탐스럽구나'하고 알다가, '아! 꺽고 싶구나'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거라.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자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경우에는 이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어떻게 합니까? 대상에 마음을 줍니다.

수행할 때는 대상에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에 해당되는 것, 눈에다가 마음을 두는 법. 이것도 완전하게 틀린 방법은 아닙니다. 급격하게 움직여나가는 대상들일 때, 바뀌어나가는 대상일 때는 눈 아니면 코, 입 이런 감각기관에다가 마음을 두는 수행들을 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차를 가지고 운전을 해나간다. 이럴 때는 그 감각대상에다가 마음을 두는 법을 해나가면 큰 실수는 없어집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할 때 그리하죠. 그럴 때 뭐 하라 그럽니까? 발걸음 걷는데! 그래서 감각기관에다가 마음을 둘 거 같으면 적어도 마음을 밖으로 빼앗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감각기관에만 둘 거 같으면 문제가 뭐냐 하면 변해가는 실상을 잘 모릅니다. 사물의 실상은 어쨌든 변해가게 돼있다는 거라.

 

그럼 변해가는 실상을 알려고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감각기관과 밖에 있는 대상, 그걸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라고 그렇게 보통 얘길 하죠! 그것이 만나서 일어나는 인식, 인식에다가 알아차림을 둘 거 같으면 변해가는 실상을 알기 때문에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에서는 반드시 이것을 중점적으로 해야 된다 하는 것이 알아차림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들입니다.

 

자!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이!

연경이를 한번 예를 들어보자. 스님이 지금 이렇게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연경이는 지금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됩니까? (수행자 대답)

내가 말하는 것에 두는데 마음을 어디다 두느냐는 거라. 이 소리에다가 둘 겁니까? 아니면 소리는 어디를 통해서 들어옵니까? 귀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러면 귀에다가 마음을 둘 것이라? 아니면 그 소리가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갖다가 아는 마음에다가 둘 것이라? 어디다 둘 것이라?

 

아는 마음에다가 둘 것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는 마음에다가 둘 것 같으면 내 소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맞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마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스님 말을 이해를 할려고 할 것 같으면 그 소리에다가 귀를 기울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소리에 기울일 것 같으면 마음을 빼앗겨 버리게 됩니다. 그렇죠? 그러면 그 방법을 쓰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소리가 들리는 나의 귀, 귀에다가 이렇게 마음을 딱 둘 것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귀에만 둘 거 같으면? 집중을 귀에다가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들리는 것들이 분절되어서 들립니다. 소리가 파동으로써 탕탕 치는 것으로만 들리게 되버립니다.

 

그러면 마음에다가 둘 거 같으면 그 소리가 들리는 마음에다가, 소리를 알아듣는 마음에다가 둘 것 같으면 그 마음을 알아차려나가는 거라.

마음을 알아차려나가니까 어떻게 돼요? 그 소리도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만약에 '꽃을 보고 있다' 이렇게 할 거 같으면 '꽃'은 '꽃'대로 그냥 들리고, '을'은 '을'대로 들리고, '보'는 '보'대로 들리고 그렇게 됩니다.

'꽃'이라는 단어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나서, '을'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는 것으로만 들려버린다는 거라. 그렇게 인식을 합니다.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만 알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 대상을, 마음을 갖다가 알아차리는 것이 어디에다가 대상을 둘 것이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법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 세 개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훈련들을 한번 해보십시오.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 여섯 가지,

그리고 여기에 맞게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하는 여섯 가지 대상,

그리고 그 대상과 감각기관이 만나서 일으키는 인식-아는 것-아는 마음입니다. 이 아는 마음에다가 알아차림을 두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한번 집에서 훈련들을 한번 해보십시오.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마음은 통상적으로 육체에서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이 다 포함이 돼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은 무궁무진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세 가지를 가지고 공부들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단계는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의 원인에 대한 것들에 대한 2단계로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