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위빳사나[기초수행반]

기초수행24. 법념처5. 오장애_악의_분노 (20080229)

담마마-마까 2020. 1. 9. 21:21

 https://youtu.be/Uxj5FJ3Fsyo

* 기초수행24. 법념처5. 오장애_악의_분노 (20080229)

 

이 시간에도 분노에 대해서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분노는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무지가 따라오게 됩니다. 이렇게 무지는 이성과 반대의 감정인 것입니다.

 

분노의 불씨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무지가 밖으로 드러나서 행동을 개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화내는 것에 대해서 부채질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 올바르다,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잇달아서 상대방의 결점이나 실수들을 찾아서 망상을 하게 됩니다. 그 망상이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외부로 향한 분노의 경우입니다.

안으로 향한 분노의 경우는 자기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을 떠올려서 망상하게 됩니다. 어떤 망상을 하더라도 그 망상은 무지의 증거입니다.

 

망상의 결과인 감각적인 욕망 즉 욕구보다도 이 분노는 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는 본능적으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관리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분노가 나타나는 순간에 금방금방 알아차려서 없애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분노 그 자체는 극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없애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은 불행한 사건들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불합리한 일들이 이 세상에는 가득합니다. 만약에 화내는 것으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라면 이미 우리는 완전한 세계에 살아있어야겠지요. 옛날에도 세상은 불공평했고 괴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불공평한 사건들로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사람들은 싫은 사건, 싫은 일들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그 분노에 따라서 보복을 하게 되고 보복할 수 없는 경우는 원망하거나 해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분노에 의해서 자신이 불행해지고 괴로움만 배가된다고 하면 분노를 잘 이해해서 진리를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래야 만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공덕을 순간순간에 쌓게 되는 것입니다.

 

아라한들이나 부처님처럼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날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분노를 그 자리 그 자리에서 알아차림으로 없애면 위대한 덕을 쌓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화내는 자신을 미치광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돼버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마약에 빠져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살인자나 악한 인간이 돼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분노는 사라집니다.

 

부처님은 분노가 일어난 마음을 '폭주하는 마차'에 비유했습니다. 난폭하게 달리는 말은 자기 자신이 마차를 끌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 마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은 당연히 위험하게 됩니다. 이걸 현대적으로 말하면 달리고 있는 차의 브레이크와 기어가 갑자기 듣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그럴 때 두려워하거나 감정적이 되거나 곤란해 하면 안 되겠지요. 그때야말로 이성과 침착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속도로에서 100키로나 달리는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서 그 차를 큰 사고 없이 멈추려고 할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자리에서 즉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려워하거나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 되죠.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중앙분리대에 몸체를 살짝살짝 받든지, 아니면 높은 오르막 같은 것이 있으면 그쪽으로 차를 몰든지, 그동안에 끊임없이 크락숀을 울려서 주위에 위험을 알려주는 방법 등을 다양하게 동원을 해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분노를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 종류입니다.

상대방의 분노를 없애는 것과, 자신의 분노를 없애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더라도 내 자신은 항상 밝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 상대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혜롭게 됩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이 화내는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은 '화내는 것은 맹독과 같이 나 자신을 파괴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쁘기 때문에 내가 화내버린다 하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애와 지혜라고 하는 두 개의 주춧돌 위에 쌓아올리는 열반이라고 하는 행복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히빳시꼬(ehipassiko)" "조사해보고 확인해봐라. 실천해봐라."

부처님이 모든 인류에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내용은 진리이고 사실이므로 그렇게 조사·확인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망상이나 개념이나 관념이나 미신들에 조롱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버려버리고 진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평온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때도 사람들은 괴로워하거나 고민하거나 하고 싶지 않고, 행복하게 되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진리를 발견하지도 않고 탐구하고 실천할 여유도 없이 초조하게들 살아갑니다.

부처님이 이 상태들을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중부경전에 보면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생로병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로병사를 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생로병사의 길을 찾아서 죽어가고 있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구는 하지만 그 요구와 다른 것을 찾고 있다 하는 뜻입니다. 괴로움을 싫어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괴로움에 매달리고, 가난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가난은 없어졌지마는 돈을 버는 동안 결코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지한 사람들의 삶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근심에서 근심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분노에 이기기 위해서는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며 자신을 공격한다고 하면 자신도 화를 내고 분노를 분노로 돌려주는 것은 간단합니다. 어떤 무지한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무지하고 감정에 조종되고 있는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화를 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뭐야?'라고 생각하면서 분노를 똑같이 돌려 줍니다. 그래서 더욱더 화가 일어나고 증폭돼버리게 됩니다.

 

분노가 불타는 것으로서는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은 감정적인 분노에 화내며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어난 분노를 관찰을 하게 됩니다.

분노는 불길과 같은 것입니다. 화내는 사람도 분노의 대상도 파괴하는 감정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상대가 아무리 나빠도 자신은 화내지 않고 침착하게 있으면, 자신의 마음이 상대방의 분노의 불길로 불타지 않게 되고, 상대방의 분노도 자신으로부터 다시 분노라고 하는 연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분노의 불길도 사라지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내는 상대에 대해서 분노라고 하는 연료를 공급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도 최소한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죠. 분노에 대해서 화로 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도 성장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도 바르게 행동한 것이 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데 세상은 이 진리를 모르고, 눈에는 눈이라고 그 가르침이 올바르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약을 마시면 건강하게 된다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하면, 또는 괴로움을 극복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에서 승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화내는 것에 대해서 분노로 돌려주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말한 마음의 법칙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이런 악행들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알아차림으로 선행을 한다면 악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른 것에 의해서만 악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에 대해서도 또한 자기 자신의 마음에 잠복하고 있는 이런 분노라고 하는 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중부경전에 부처님은 이렇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거짓말 하지만 우리들은 거짓말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힘쓰자.

세상은 살생하고 하지만 우리들은 살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힘쓰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화내지 않는 것으로서 승리할 수 있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악의를 가지는 것은 펄펄 끓는 물과 같구나 하고 판단하십시오. 끓는 물에서는 자기 자신이 그 물에 데일 뿐입니다. 이렇게 분노하는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조차도 없게 됩니다. 병이 들고 한 것은 반드시 회복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악의를 가지고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에 대한 병으로부터 하루빨리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혼침과 게으름, 망상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