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번뇌를.....6. 수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네 가지 이유(조건) (20080228)
(2) 상와라(saṃvara) 제어의 장
「방어·제어」하는 것으로 없어지는 번뇌(asava saṃvara pahatabba)
통상적으로 불교에서는 마음을 많이 강조합니다. 몸보다는 마음을 많이 강조하죠!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주가 되기 때문이죠. 마음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하는 뜻으로써 마음을 많이 얘기합니다.
그래도 수행은 몸과 마음이지 마음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죠? 여러분들은 항상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 랏타빨라라고 하는 아라한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출가할 때 시지부지 출가를 했어요. 시지부지! 그냥 큰 발심을 일으켜가 출가한 게 아니고,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하루는 이렇게 저 저쪽에 보니까 부처님이 법문하고 있거든. 가보니까 부처님이 법문하니까 그 옆에서 법문을 들었어. 참 좋거든. 스님들도 앉아있는 걸 보니까 그리 여법해 보일 수가 없는 거라. 그래서 아! 나 출가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부처님한테 "나 출가하겠습니다." 하고 얘기를 하니까 아직 젊은 청년이니까 "결혼했느냐?"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러면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출가해도 괜찮다는 동의를 구하고 오너라. 그럼 출가시켜 줄게."
집에 쪼르르 쫓아가서 부모님한테 "나 출가하겠습니다."
부모가 생각하기에 기가 찬 거야. 조금 전까지 신나게 놀던 애가 갑자기 출가하겠다니까, 무슨 그전부터 출가를 생각해봤다든지 불교를 알았다면 이해가 되는데, 저게 또 불뚝 성질나가지고 그러는 갑다 생각을 하고, "출가 안된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얘기합니다.
내 출가를 허락해 줄 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출가를 허락해주라.
부모입장에서는 '니가 그래봤자 하루나 한나절이지.' 하루가 다 지나도 진짜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방안에서 그렇게 있거든. 부모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안 되겠다 싶으니까 주위 사람들한테 가서 저거 한번 달래봐라. 뭐 때문에 출가하는지는 알아야 출가시켜주든지 할 거 아니냐. 무조건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하니까. 그래서 가족 친지들이 가서 뭐 할려고 출가를 하느냐? 니가 불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면서 말려도 이 랏타빨라가 고집이 굉장히 셉니다. 그래도 출가하겠다고 하면서 말을 안 듣거든.
아버지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그 청년의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달래도록 그렇게 합니다. 어른들이 얘기하니까 말을 안 들으니까, 그래도 친구들이 얘기할 것 같으면 안 되겠나 싶어서 친구들에게 그냥 가정생활을 해라 달래라 얘기합니다. 친구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듣거든. 친구 하나가 와서 그럽니다.
아버지 저 친구는 꼭 출가를 할려고 그럽니다. 만약에 출가를 허락해주지 않으면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먹고 해서 결국은 죽어버릴 겁니다. 저 친구가 출가를 하더라도 출가한 것이지만 살아는 있습니다. 아들이 죽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살아있기를 원하십니까? 당연히 살아있기를 원한다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출가를 허락해주십시오.
여러분들 그렇게 마음먹어 본 적 있습니까? 어떤 일을 할 때. 죽은 거보다는 살아있는 게 낫잖아. 아무리 미운 내 시어머니라 하더라도, 아무리 미운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죽고 없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렇죠! 부부간에 아무리 안 좋고 치고 박고 하더라도 얼굴 맞대고 있는 것이 훨씬 낫지, 서로 아예 못 볼 거 같으면 그거 좋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출가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청년이었기 때문에 출가해가지고 금방 아라한이 됩니다. 그 나라에서는 이것이 굉장한 뉴스거리였습니다. 뭐 아무것도 모른 사람이 생떼 써가지고 출가해가지고 금방 아라한이 됐으니까! 그마만큼 의지력이 강했다는 얘기죠. 그래가지고 이 스님이 아라한이 되고 나서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옵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이 아라한을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어느 하루날 왕이 사냥을 나가자고, 어디 사냥을 나가자고 얘기를 하니까 대신이 그럽니다. 왕이시여, 사냥 나갈려고 하는 그곳에 스님 한 분이 있습니다. 왕께서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스님이니까 그쪽으로는 사냥을 안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걸 거 같으면 사냥 가지 말고 그러면 그 스님을 만나러 가자 하고 얘길 해서 그 스님을 만나러 갑니다. 가서 인제 그 스님한테 물어봅니다.
이 세상에는 출가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데 왜 출가를 합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돌려서 얘길 한 거죠. 당신은 왜 출가했습니까? 하는 얘깁니다.
여러분들도 가끔씩 스님한테 물어보죠. 지금은 나이가 오십이 다 돼가니까 스님 왜 출가했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사람 없어. 그런데 이십대 초반이나 이런 때는 왜 출가했어요? 하는 게 처음 본 사람은 대부분 그렇게 물어봐. 이 스님도 젊은 청년이니까 그랬겠지. 왜 출가했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런 의문이 듭니까? 스님을 보면. 여기 있는 스님 말고 다른 스님들도. 아마 자기 자신이 그렇게 출가를 했으면 그런 의문은 적어도 안 들겁니다.
그때 이 스님이 이 얘기를 합니다. 늙어가지 않는 사람 있느냐는 거라.
여러분들 늙어가지 않는 사람 없죠. 아무리 젊은 사람도 늙어가게 돼있다는 거라. 지금은 우리나라에 출가하는 사람 연령이 굉장히 늦습니다. 우리 때만 해도 이십대 초반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안 그러면 십대 말이나 이때가 대부분이었고, 그러니까 내 나이 정도 되는 사람은 보통 법랍이 어느 정도 되겠다. 사십 정도 될 거 같으면 법랍이 한 이십 년 정도 되겠네. 이렇게 대강 짐작을 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전에 선배들은 아주 어릴 때 출가를 했습니다. 십대나 이럴 때 출가 했거든. 그 스님들은 우리보다도 적어도 한 십 년 정도 먼저 출가를 한 스님들이라. 그래서 지금 열반하신 스님들 보면 만약에 속가 나이 팔십이다 그러면 법랍 칠십 년 이렇게 된 스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스님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나이 또래는 보통 한 이십대에 출가를 하거든. 그러니까 스님들이 자연스럽게 모르는 스님들끼리 만나도 아, 저 스님 법랍 어느 정도 되겠다 싶으니까 아, 내가 인사를 해야 될 스님이다 아니다 하는 게 표가 딱 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출가 연령이 굉장히 늦어졌거든. 삼십대 후반 돼서 출가를 많이들 합니다. 세상 물정 다 알고 그러고 나서 출가를 하는 거라. 인제 갓 출가한 스님이라도 저 스님이 내보다 법랍이 높은가 낮은가 헷갈리는 경우들이 있게 되는 거라.
인도 같은 경우에는, 부처님 당시 때 인도입니다.
어떤 경우냐 하면 출가를 언제 하느냐 하면 한참 경제활동을 할 때가 지나고 나서 모든 과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서 뒷방 신세가 됐을 때 할 일이 없거든.
그때 늙는 걸 자기가 느낄 때 출가 합니다. 지금 인도에 가보면 인도 출가자들 요기나 이런 사람들 보면 나이 젊은 사람 없습니다. 전부 나이 든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간혹 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 칠십이다 그러면 우리로 생각하면 법랍이 한 오십 년 육십년 되는 모양이다, 출가한 지 오십 년 육십 년 되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도는 우리하고는 경우가 다릅니다.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는 어떠냐 하면 때가 없습니다. 아무 때나 출가를 합니다. 나이 육십 칠십 되어서도 출가하고 아니면 아주 사미승 열 살 때도 출가하고, 아니면 이십대가 돼가지고 사미비구계 바로 받고 출가를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이로 봐가지고는 법랍을 전혀 짐작을 못합니다. 그래서 남방에서는 모르는 스님들끼리 만나면 맨 처음 물어보는 게 뭡니까? "왓사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물어봅니다. 그러니까 법랍이 어떻게 되십니까? 자기보다 법랍이 한해라도 많으면 내가 나이가 많더라도 절을 하는 거라. 그러니까 스님들끼리 만나면 맨처음 얘기하는 게 왓사가 어떻게 되십니까?
우리나라도 아마 곧 그래야 될 거라. 인제 출가 연령들도 높아지고 출가도 들쑥날쑥하니까 인제 법랍이 어떻게 되십니까 물어보고 나서 아이고, "예" 하든지, 아니면 "에헴"' 하든지 이런 판국이 됐습니다.
인도 그때 당시에는, 어쨌든 늙는 것 때문에 출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출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또 뭐냐 하면 아픈 것, 병들었을 때! 병이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경제활동도 못 하고 뭐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보통 출가를 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보통 절에 들어오는 사람들 유형을 보면 귀신이 씌었다든지, 여기 수행하러 온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머리가 좀 이상해가지고 약간, 약간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들이 막 수행하러 오고 그럽니다. 남방에서도 꼭 마찬가집니다. 위빳사나 수행하러 오는 사람들 중에 한 삼분의 일 정도는 보통 보면 뭔가 병이 있어서 병 고치려고 오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물론 속내는 병을 고칠려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중병에 걸리면 보통 보면 병원에서 하다하다 안될 것 같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어디다 의지합니까? 기도로서 의지를 하죠! 출가를 해가지고 그런 기도나 여러 가지 수행으로 인해서 이 병을 다스리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들 출가들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들 수행하러 오는 경우들도 꼭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이 들어서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오는 경우들, 그렇지 않으면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병이 들었을 때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오는 경우들도 있기도 합니다.
그다음에 또 어떤 경우냐 하면 쫄딱 망했을 때! 뭘 웃어싸? 쫄딱 망했을 때! 그거는 뭐 재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쫄딱 망한다 하는 경우에는 재산만 가지고 쫄딱 망하는 경우도 있고, 사랑으로써도 쫄딱 망하는 경우도 있고, 어쨌든 간에 쫄딱 망했을 때 옵니다.
그다음에 또 언제 또 오느냐 하면 친척이나 가족이나 아는 분 중에 누구 하나 돌아가셨을 때! 아이고 무상하다 해가지고 이리 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안 그러면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가족들 다 몰살당해 죽어버렸다. 혼자 남았는데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의지할려고 이렇게 옵니다. 옛날에는 못 먹고 못살고 하니까 어떻게 해요? 의지할려고 출가들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네 가지 때문에 사람들이 출가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 왕이 가만히 들으니까 이 랏타빨라 스님은 해당이 안 되거든. 젊고 건강하고 집에 재산이 많고, 그리고 명성을 잃은 것도 아니고 사랑에 실패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데 출가를 했거든.
그런데 랏타빨라 스님은 여기에 아무데도 걸리지 않는데 어떻게 해서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 말씀으로 인해서 출가를 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들은 예가. 그리고 그 부처님 말씀으로 인해서 출가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뭐냐면 수행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출가를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나절 잠깐 가가지고 부처님 말씀을 들었는데 고마 애가 이상하게 출가를 하려고 한다 하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라.
부처님 말씀을 듣고 나서 실제적으로 그것을 내가 실천했다는 거라. 수행했다는 거라. 수행해보니까 아! 이게 맞거든. 내가 확인했기 때문에 아! 이런 수행을 계속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고 판단해보니까 출가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출가를 하게 됐다는 거라.
그 부처님 말씀 네 가지 비유를 들어놓습니다.
네 가지로 인해서 수행하는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여러분들도 이 네 가지에 해당이 되는지 한번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행할려는 마음이 없을 때, 안 일어날 때, 일으키고자 할 때 이 네 가지를 반드시 기억들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빠니야띠 로꼬 앗두오(Upaniyati Ioko addhuvo)' 그렇게 얘기합니다.
'세상은 항상 바뀌어 간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꾸 자꾸 쇠약해져 간다.'
변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느끼기에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쇠약해져 간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점점 더 몸이 쇠약해지는 거고, 점점 더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이고, 여기 있는 꽃들도 점점 더 시들어간다는 거라. 점점 더 쇠약해져 간다는 거라.
이 중앙아시아나 인도 같은 경우에는 석굴을 파가지고 거기에다가 부처님을 모시고 스님들이 기거하고, 이렇게 동굴사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 지금 보면 굉장히 쇠퇴되어 널려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휘황찬란 했겠느냐는 거라. 변한다는 거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없어진 것들도 무수하게 있다는 거라. 그것이 진리라는 거라. 진리이고 사실이라는 거라. 쇠퇴해지는구나. 점점 더 쇠퇴해진다는 거라.
그래서 스님이 가끔 뭐라 그럽니까? 한 살이라도 나이 먹기 전에 수행하라. 한 살 더 먹으면 한보 디디기가 더 힘들어지고, 또 한 살 더 먹으면 또 한보가 더 힘들어집니다.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수행하는 길밖에 없다는 거라. 세상의 모든 것은 자꾸자꾸 쇠약해져 간다 하고 판단을 해야 된다 하는 거라. 그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을 보면 됩니다. 여러분들 마음도 쇠약해져 가고 여러분들 몸도 쇠약해져 갑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아따노 로꼬 아나빗사로(Atano loko anabhissaro)' 그렇게 얘기합니다. '세상에서 의지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팡이 하나라도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는 거라.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착각하는 것뿐이라는 거라. 아무것도 없다는 거라.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지도 않고, 주변 것도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의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라. 의지할 수 있는 게!
사물은 자기의 원리 원칙에 따라서 바뀌어나가는 겁니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라. 이 몸도 사물입니다. 변하는 속성들이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라. 내 몸도 그러는데 내 주변에 거, 아니면 내 재산, 명예 어디 다가 의지할 거라. 의지할 것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내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내 재산을 또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내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아무것도 없다는 거라.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앗사꼬 로꼬 삽방 빠하야 가마니양(Assako loko, sabbaṃ pahāya gamanīyaṃ)' 그럽니다. '이 세상 무엇 하나도 내 것이 없다.'
무엇 하나도 내 것이 없다 하는 거라. 대부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뭔가 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재산도 모으고, 뭐도 모으고, 자꾸 내 것을 만들려고 합니다. 내 것이 됩니까? 내 것이 안 된다는 거라. 언젠가는 떠나야 되는 것이고, 내 것인 것처럼 보이지마는 그것은 불안정한 것들이다. 어떤 것 하나도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라.
네 번째가 뭐냐 하면, '우노 로꼬 아띳또 딴하다소(uno Ioko atitto taṇhādāso)'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세상은 항상 채워지지 않는다.'
만족이라고는 없다 하는 거라. 만족할 수 없다 하는 거라. 왜? 갈애, 딴하(taṇhā)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항상 원하는 것이 있을 경우에는 채워지는 것은 없다 하는 거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렇게 원하는 것, 욕구의 노예로써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만족되지 않는다는 거라. 아무리 즐거운 걸 만족을 한다고 하더라도 또 즐거운 걸 찾게 돼있는 거고, 원하는 것이 있게 되면 또 원하는 게 있게 되는 것이지, 채워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는 거라.
이 네 가지를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네 가지에 다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에 출가하는 네 가지 조건들은 어찌보면 '파멸로 들어가는 길(Cattari Parijunnani)' 입니다. 그렇게 출가해가지고는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또 수행을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내거 병 고칠려고 수행을 할 거 같으면 이미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 네 가지가 꼭 마찬가지 그런 경우들입니다.
그런데 뒤에 얘기한 이 네 가지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내가 떠올려야 됩니다. '이 길은 파멸로 가는 길이 아니라 승리로 가는 길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한번 더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항상 자꾸자꾸 쇠약해진다. 약해져 간다.
세상에서 의지가 되는 것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에 무엇 하나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이 세상은 항상 채워지지 않는다. 만족이라고는 있을 수 없다.
이 네 가지를 항상 기억하라는 거라.
부처님은 보편타당한 진리를 얘기했습니다. 실제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 것은 없고,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은 없고, 또 만족하는 것은 없다 하는 거라.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의지할 만한 것은 없게 돼있다는 거라. 그게 세상의 진리입니다.
수행이 안 될 때 항상 이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자꾸자꾸 약해지는데 내가 한발이라도 더 약해지기 전에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을 일으켜야 됩니다. 내일 되면 더 힘드는데, '내일부터 수행해야지' 한발 더 힘들 짓을 왜 하냐는 거라. 지금 하라는 거라. 지금!
그 어느 것 하나도 의지할 만한 것이 없는 건데 뭘 의지할 거라?
부처님 진리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라. 세상 진리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라. 다른 걸 의지할려고 하지 말고. 그 진리를 자꾸 의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되는 거라. 의지하는 걸 다른 데서 자꾸 구할려고 하지 마라는 거라.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거라. 내 것 되지 않는 걸 왜 자꾸 찾고 원하느냐는 거라. 그거는 놔두라는 거라. 내 것이 되질 않는 거라. 내 것이 될 걸 찾아라는 거라. 내 것이 될 걸!
더욱더 선하고 공덕을 쌓고 수행 실천하고 하는 것들이 내 것이 되는 것들이라.
그리고 이 세상은 채워지지 않는 거라. 만족할 수 없는 거라.
자꾸 원하고 갈망을 할 거 같으면 그 노예밖에 안 되는 거라.
왜 넘의 집 머슴살이를 살려고 하느냐는 거라.
내 걸 내가 챙기도록 자꾸 해야됩니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 채울려고 하지 말고! 그렇게 하다 보면 그거는 노예살이 밖엔 안 된다는 거라. 이 네 가지를 항상 명심을 해서 수행들을 하고 실천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교재 편을 계속해나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 > 사띠 위빳사나[고급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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