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심소(쩨따시카), 수행용어

위라띠 (Virati, 삼가함) :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20070113)

담마마-마까 2020. 10. 4. 15:01

https://youtu.be/er0U3-odTlU

 

[[ 교재 부분

 

< 악행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청정심소 이심소(離心所 virati-cetasika (위라띠 쩨-따시까) 3가지 >

삼가고, 즐기는 것을 끊는 것이 Virati입니다. 말로 일으키는 행위, 몸으로 일으키는 행위, 생활을 위해 일으키는 행위들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20. sammā vācā (삼마- 와-짜-:바른 말)

삼마-와-짜-(正語)는, 올바르게 말할 때 일어나는 심소입니다.

구체적으로는, <1>거짓말(무사-와-다) <2>욕설(삐수나와-짜-) <3>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는 말 <4>헛된 이야기, 라고 하는 4개의 악어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상냥한 말로 사람에게 그 말로 인해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할 때,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림 한 후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느낌을 관찰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마음챙김 하면 나쁜 말들을 하지 않게 됩니다. 말할 때 사띠를 좀처럼 할 수 없으면 「 나는 말한다, 바른 말을 한다.」라고 생각하며 올바른 말을 말합니다. 아니면 조용히 침묵하여야 합니다.

 

비록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야겠다.」라고 하는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해도, 나쁜 말을 사용하면 좋은 결과는 오지 않습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말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의 의미가 자신의 마음으로 되돌아와 마음을 더럽혀 버립니다.

결국, 바른 말은 상대를 배려하며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때와 경우를 봐가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1. sammā kammanta (삼마- 깜만따:바른 행위)

kammanta(깜만따)는 「몸으로 저지르는 행위」를 가리키며 「사회나 다른 생명에 대해서 해가 되지 않는 행위」를 말합니다.

함부로 생명을 죽이고(빠나띠빠따), 타인의 것을 훔치며(아딘나다나),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까메-수 밋차짜라), 이라고 하는 3가지 악행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뇌물을 취하거나 일도 하지 않고 급료를 받거나 하는 일도 타인의 것을 훔치는 행위입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의 행동도 올발라질 것이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완전하게 마음을 청정히 유지하지 않는 한 어떤 조건으로 인해 나쁜 행위를 할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조심하여 사회나 다른 생명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여야 합니다.

 

몸으로 범하는 일들에는 허물이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여야 하며, 선한 일이면 행하고 악한 일이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22. sammā ājiva (삼마- 아-지와:바른 생계)

사회 속에서 살아 있는 우리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무언가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며, 반대로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바른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른 생계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선택해야 하고 자연이나 사회, 생명의 파괴에 연결되지 않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생계의 수단은 많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구체적인 직업을 금하는 것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독, 술, 무기 등을 만들거나 팔거나 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비록 생계수단이라 하더라도 악행 짓는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여 바른 신심이 생기게끔 해야 합니다.

 

일을 할 때에도 가능한 한 선심소에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좋은 결과라고 해도 돈을 벌어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어 가야 합니다.

 

이 3가지는 불교도로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라고 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 3가지 심소만이라도 지키며 생활하면 청정심소가 나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 즉 아침에 일어나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하는…, 모든 일상생활을 청정심소에서 힘쓰도록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처럼 노력하면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 위라띠(Virati, 삼가함) : 바른말, 바른행위, 바른생계 (20070113)

 

자! 프린트물 한번 보십시오.

이 위라띠(virati) 부분은 그렇게 설명할 부분은 사실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팔정성도 알죠? 팔정성도 중에서 세 가지, 바른말 하는 것(sammā vācā), 바른 행동 하는 것(sammā kammanta), 바른 생활-바른 생계를 가지는 것(sammā ājiva) 이것이 위라띠(virati)에 해당이 됩니다.

보통 우리가 일상적으로 신구의(身口意)로 인해서 업을 짓는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열 가지 나쁜 업, 열 가지 좋은 업 그렇게 얘기하죠? 그 "10가지 나쁜 업을 일으키지 않게끔 하고 그것을 억제시키는 것 그것을 위라띠 라고 한다" 하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맨 처음에 '삼가고 즐기는 것을 끊는 것이 위라띠라 한다' 그렇게 돼있습니다.

문제는 열 가지 나쁜 행동들인데, 그 나쁜 행동들을 두 가지로 분류를 하라, 그렇게 얘기를 하라 하면 보통 어떻게 됩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생활로 인해서 생계를 가지므로 해서 그렇게 나쁜 행동들, 나쁜 업들을 짓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또 나쁜 생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외부적인 조건이든 아니면 내가 일으키든 결과적으로는 내가 스스로 일으키는 조건에 의해서 10가지 나쁜 행동들이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이 화내는 것, 남을 이간질시키는 것, 이런 것들이 다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가 있습니다.

 

생계와 관계된 것들은 보통 어떤 것들을 얘기합니까?

뭐 죽이는 행위라든지, 훔치는 행위라든지, 부처님이 그걸 다섯 가지로 얘기를 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재가자들이 잘못된 생계 다섯 가지, 출가자들도 네 가지가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해당이 되는 것인데, 잘못된 생계들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로 인해가지고 나쁜 결과들이 오기 때문에 그런 생계들을 바꾸라고 얘기들을 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 바꿀 수가 없으면 수행이 점진되어 나가면서 그러한 것들을 스스로가 알아차려 나갑니다. '아, 이것이 잘못된 것이구나' 아니면 '내 수행해나가는데 장애요인을 가져오는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면서 스스로 자꾸 바꿔나가죠? 지금 만약에 내가 고기 잡는 일을 하는데 당장 그 일을 하지 마라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밥 먹고 살길이 없어져 버리는 거지.

그렇지만 그것은 나쁜 생계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만이 내가 하루라도 빨리 그것을 벗어날 수가 있다 하는 겁니다. 이것을 벗어나게끔 해주는 것이 뭡니까? 위라띠(virati)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또 말로써 짓는 나쁜 행위들, 이런 행위들이 나에게도 이로움이 없고 남에게도 이로움을 주지 않고 또 그로 인해서 다른 부수물들이 따라오게 될 때,

저쪽에서 화낸다고 해서 나도 화를 내었는데 그것으로 해서 끝나버리면 화내는 것에서 끝나버리는데, 에이! 하면서 뭘 하나 툭 던져버리면 물건 하나 톡 뿌사져버리면, 이렇게 부수물들이 따라와지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것들도 어쨌든 그거 해보니까 좋은 것은 없거든. 그래서 이익된 부분도 없고 또한 그로 인해서 내가 수행해나가는데 장애요인을 가져오는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 것 같으면 스스로 바꿔야 되겠죠? 그런 것들을 바꾸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일어나지 않게끔 끊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위라띠다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이 위라띠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생계하고 관계된 것인가 아니면 생계하고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들인가 하는 것들로써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비담마에서는 그걸 또한 세 가지로 나눠놓고 있습니다. 지금 교재에는 그런 부분을 스님이 적지는 안 했습니다. 그 부분은 조금씩 해가면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맨 처음에 삼마 와짜(sammā vācā)라고 하는 바른말 부분을 한 번 보겠습니다.

조금 전에 여러분들이 뭐라고 했습니다. 오계 받을 때 맨 처음에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그렇게 했습니다.

'악한 행동 짓지 않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 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이게 밋차(micchā) 입니까, 삼마(sammā) 입니까?

지금 말한 것이 바른말입니까, 아니면 나쁜 말입니까? 삼마에 들어가죠. 바른말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기능은 여러 가지 기능들을 해나갑니다.

앙굴리말라 게송이란 게 있습니다.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에 의해서 교화되고 출가를 해서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므로 인해서 그대가 평안해지기를" 하는 짧은 게송이 있습니다.

사실은 앙굴리말라가 많이 나쁜 일들을 했죠? '태어나고 나서' 라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아! 이것이 나쁜 것이구나, 이것이 틀린 것이구나, 이게 아니다 라는 걸 알고 나서 그걸 버리고 나서'라는 얘깁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다시 태어나고 나서는 다시는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지금 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말을 하므로 인해서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행복하기를' 하는 거라.

 

그래서 남방불교에서는 애기를 가지고 나면 스님들이 가서 하는 게송이 딱 이 게송입니다. '이 게송으로 인해서 태아도 건강하고 산모도 건강해서 잘 태어나기를' 하는 마음으로서 이 게송을 합니다. 이것도 말입니다. 앙굴리말라가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로 인해 가지고, 이것은 진실된 말이라는 거라. 이런 진실된 말로 인해서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하고 바란다는 거라.

 

또한 아비담마에 보면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가 모친을 모시고 사는데 모친이 몹쓸 병에 걸렸어요. 그런데 똑 우리 옛날에 별주부전을 보면 토끼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 하듯이, 토끼의 고기를 먹으면 이 모친의 병이 낫는다 하는 얘기를 의원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이 아들이 들판에 가서 토끼를 유인해가지고 잡았단 말이라. 잡아가지고, 그전까지는 잡을려고 하고 그리고 탁 죽일려고 까지는 했단 말이라.

그때까지는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행동들을 할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게 아니거든. 이건 아니라는 거라.

 

이 얘기는 나쁜 행위 부분입니다.

어쨌든 겹쳐졌는데 이런 행위들은 나쁜 행위다 하는 걸 알고 "아니다" 해서 이 토끼를 풀어줍니다. 풀어주고 나서 엄마한테 와서 그럽니다. “어머니 내가 사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그 뒤로는 내가 나쁜 행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토끼를 보니까 죽일려는 마음까지는 있었지만 차마 죽이진 못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그 토끼 생명을 훔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이 말과 내가 그전까지 했던 행동들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했고 진실되게 행동했습니다. 만약에 설혹 어머님이 나쁜 방향으로 병이 더 도져서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나는 남의 생명을 훔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이랬거든.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고 '아! 참 우리 아들 장하구나. 참 잘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병이 나아버립니다.

 

나쁜 말에 대한 비유는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가만히 있는데 뱀이 와서 다리를 똥똥똥 감았습니다. 뱀이 다리를 감아서 물려고 하는 거라. 그때 그런 말을 합니다. 이 스님이 실제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내가 아직 한 번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남을 해치려고 하는 마음을 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도 너를 해치지 않듯이 너도 남을 해치지 말아라” 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내가 태어나서 이때까지 오계를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었다는 거라. 남을 때리지도 않았고 남의 물건 훔치지도 안 했고 또 계를 어기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그로 인해가지고 나는 그런 행위들을 한 것으로 인해서 너도 남을 해치지 말아라 하는 얘기를 하자 뱀이 스르르 다리를 풀면서 가버렸다고 그럽니다.

 

불교 경전에 그런 부분들이 꽤 많이 나오죠?

데와닷따가 부처님을 살해할려고 했을 때 술 취한 닐리기리(날라기리) 코끼리를 감화시키는 것도 부처님이 꼭 그와 같은 자애의 말을 방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들로 인해서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다른 대상들도 바르게 되어나가도록 하는 것!

이것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절제하는 거죠? 내가 나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절제해나가고 또 남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만들려고 하려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말, 와짜(vācā)에서 해야 되는 부분들이다 하는 겁니다.

조금 전에 했던 그런 좋은 말들, 그런 것들로 '삼마 와짜 위라띠'가 되도록 만들고, '삼마 깜만따 위라띠'가 되도록 만들고 '삼마 아지와 위라띠'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들이 바로 이 위라띠의 역할들이다 하는 겁니다.

 

행위, 바른 행위는 보통 뭘 얘기합니까?

여러분들 자주 하는 거 있죠? 목요일 날 하고 일요일 날 탁발합니다. 그리고 이런 금요일 날 와서 스님에게 부처님 법에 대한 얘기들을 듣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것들은 바른 행위들입니다.

 

그런 바른 행위들도 내가 오기 싫은 마음들을 절제를 함으로 해서 오게 되는 것이고, 또한 비록 지금 하고 있는 부처님한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음에 안 맞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마음을 절제하고 행위들을 절제해서 그것으로 인해서 경의를 표하는 것이고,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행위들에도 일상적으로 바른 행위들이라고 하는 것들도 이런 마음의 절제가 있어야 만이 그것이 선업으로 연결될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자! 그러면 그런 좋은 말이나 좋은 행위들이나 그런 좋은 직업들이라고 하는 것들도 쩨따나(cetanā)가 없이 가능하겠는가?

쩨따나(cetanā 의도)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의도를 내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설혹 나쁜 것이든 아니면 좋은 것이든. 이 위라띠도 꼭 마찬가집니다. 쩨따나가 없이 위라띠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절제한다는 것들도 반드시 쩨따나가 있기 때문에 절제가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쩨따나를 내가 더욱더 증장시켜 나갈려고 할 거 같으면 의도를 알아차리면 당연히 이 위라띠가 계발되어나가고 증장되어 나가겠죠.

 

그래서 위라띠 부분을 통상적으로 세 부류로 얘기를 합니다.

의도된 부분, 그다음에 실제적으로 내가 행해진 부분들, 그리고 행해진 것에 대해서 일어나는 결과들 이렇게 세 부분으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자세한 부분은 차후에 하더라도 어쨌든 이런 쩨따나가 좋은 일들 좋은 것들을 만들어나가게 한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알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위라띠라는 단어는 빨리어 경전에서, 경장 부분에서는 거의 등장을 하지 않습니다. 맛지마니까야에는 보면 위라띠 라는 단어가 딱 한 번인가 두 번인가가 나옵니다. 그 외에는 아비담마에서 쓰여지는 그런 용어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봅시다.

위라띠의 개념이 맨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삼가는 것이다 라고 그랬습니다. 삼가고 절제해서 끊는 것이다 했습니다.

도덕적인 행위가 그것이 나쁜 것이다 해서 삼가게 되는 것, 이것도 하나의 위라띠가 되겠죠? 도덕적인 행위- 나쁜말하면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고 하니까 그래서 그걸 삼가하게 되는 것, 음행을 하려고 하게 되는 것들도 삼가하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이 하나가 있을 겁니다.

그걸 보통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사마다나 위라띠(samadana virati)'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사마다나 위라띠 라고 하는 것은 뒤집어서 얘기하면 도덕적인 행위를 잘 준수해나가면 생겨나간다는 그런 뜻입니다. 위라띠가 증장되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끊을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지금 도덕적인 행위에 대해서 관찰만 잘할 거 같으면 그거는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위라띠를 증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행위를 하게 될 때 뭘 하라 그럽니까?

그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것인가를 판단을 먼저 하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판단을 하라. 그래서 옳은 것이 아닐 경우에는 버려버려라. 그것이 바른 것이라고 할 거 같으면 일어나게 하고 더욱더 증장시켜 나가도록 하라.

그것이 바로 사마다나 위라띠(samadana-virati)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뭐냐 하면 '삼빳따 위라띠(sampatta-virati)' 라고 하는 겁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알아차림하는 것으로써 끊어버리는 것.

예를 들어봅시다.

세 치 혀로 인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스님이 말을 할 때는 어떻게 관찰하라고 그랬습니까?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수행자 대답) 그것도 맞습니다. 생각을 알아차리라는 것도.

그런데 수행하는 자는 어쨌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말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의도한 부분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말은 지금 실제적으로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럼 말을 할 때는 뭘 알아차려야 됩니까? 말을 하는 걸 알아차려야 되죠!

말을 알아차릴려면 어떻게 알아차리라 그랬습니까? "입술이 달싹달싹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을 알아차리라"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기억납니까? 인제 기억나요? 말을 할 때는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이 입술이 붙고 떨어지는 부분을 관찰하라고 그럽니다. 적어도 마음이 거기에 끊임없이 있어준다고 할 거 같으면 나쁜 말을 하는 것도 내가 알아차려서 그만두게 되고, 좋은 말을 할 때도 조금 더 조리 있게 잘 얘기할 수 있게 된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그것을 끊어버리고 하는 것은 바로 이와 마찬가지다 하는 겁니다. 대상에 마음이 머물 때야 만이 그것을 끊어줄 수가 있습니다. 나쁜 것인 줄을 알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삼빳따 위라띠(sampatta-virati)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까 토끼의 예와 마찬가집니다. 토끼를 죽일려고 하다가도 토끼를 보고 살아있는 생명이란 인식을 했을 때 그로 인해서 죽이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 그로 인해서 토끼를 풀어주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삼빳따 위라띠라는 그런 뜻입니다.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사뭇체다 위라띠(samuccheda-virati)라고 하는 것입니다.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 그래서 번뇌를 끊어버리게 되는 것,

모든 악의 뿌리를 끊는다는 것이 사뭇체다 위라띠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뿌리를 끊어 버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도와 과에 이르러야 되는 거지. 여러분들은 아직 도와 과에 안 이르렀다고 할 거 같으면 반드시 도와 과에 이르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만이 엄밀하게 따지면 이 위라띠를 완전하게 완성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여러분들이 소바나 쩨따시까 라고 하는 것들을 배우고 있는 겁니다. 저번에 19가지는 '공통된 심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얘기하는 스무 번째 이 위라띠 심소 부분은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나가야 되는 것'들입니다. 어떻게?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고 바른 생계 수단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만들어나가야 되는 것들입니다.

 

우선은 그런 이 세 가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나가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기 자신이 우선은 정확하게 자기 자신의 상태를 먼저 파악을 해야 됩니다.

아닌 체도 하지 말고 긴 체도 하지 말고, 남을 속일려고도 하지 말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게 될 때, 그때야만이 이 위라띠가 조금씩 조금씩 발전을 해나갈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들이 이런 공동체, 부처님이 말한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에 들어와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하고 하는 것들입니다.

적어도 이 속에 들어오니까 그런 부분을 끊기가 쉽거든. 그런 부분을 멀리 벗어나게 해주기가 쉽기 때문에 이 공동체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여기 와서 그런 것들을 자꾸 발견해나가고 증장시켜나가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사회에 나가게 되면 법문은 그냥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정확하게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을 판단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가 하는 것들을 면밀하게 살펴서 부족한 부분들을 자꾸 바꾸어나가갈려고 해야 됩니다.

 

밑에 삼마 와짜(sammā ājiva) 부분을 한번 봅시다. 크게 의문 나는 거 없죠?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무사와다(musāvādā)-거짓말하고,

삐수나와짜(pisuṇavācā) 남에게 비방을 하고,

욕설(pharusavācā)을 하고 하는 것들,

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는 말들,

헛된 이야기들,

쓸데없는 이야기들(samphappalāpa)

이런 것들은 멀어지게 하고 끊어지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럴려고 할 거 같으면 말을 할 때 말하는 상태를 분명하게 마음챙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바른말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외부적인 자극이 들어왔을 때 내가 할 말들을 분명하게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 말을 할 거 같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외부적인 자극이 들어왔을 때는 반드시 말을 할 때는 입술을 살피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만약에 안 될 때는 입을 꼭 다물고 말을 하지 말고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갖다가 적어도 한 삼십 분만 관찰을 해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다시 입술을 관찰할 것 같으면 남을 해치는 말이라든지 남에게 해꼬지 하려는 마음들이나 비방하는 말들은 적어도 하지 않게 된다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이것으로 거의 좌우가 됩니다. 부부간도 마찬가지고 동료간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항상 이 부분을 조심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더 이 위라띠를 계발시키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삼마 깜만따(sammā kammanta) 바른 행위 부분입니다.

몸으로 저지르는 행위들이죠? 삼마 깜만따에서 몸으로 짓는 행위들에서 가장 안 되는 부분들이 뭐냐 하면 오래된 습관들입니다. 오래되지 않은 것들은 우리가 적어도 도덕적인 것들을 지켜나가면서 이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잘잘못은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들은 되도록 피할려고 하고 안 할려고 하는데, 오래된 습관들은 대부분은 그냥 묻혀갑니다. 으레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오래된 습관들을 고쳐 나갈려고 할 거 같으면 그런 행동을 할 때 그것이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먼저 판단을 해내야 됩니다.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다 할 것 같으면 행해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버려야 됩니다. 특히나 이런 오래된 습관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마음을 더럽혀버립니다. 자기 자신을 유혹하기 때문에, 그 유혹에 빠지면 선업과 불선업에 대한 인식이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행위를 할 때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사띠인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놓쳐버리면 말에서 비롯된 것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가 있지만, 행위에서 비롯된 것들은 적어도 작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띠를 놓치지 않게 해야 되는데, 그 기준점을 도덕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들을 판단기준으로 잡아라.

그래서 모든 행위들을 할 때는 먼저 마음으로 판단들을 한번 해보십시오. 이것이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 판단을 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 행위들을 하도록 자꾸 연습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바른 행위에는 사띠가 있어야 만이 됩니다.

 

그다음에 삼마 아지와(sammā ājiva) 부분입니다. 바른 생계 부분입니다.

바른 생계가 왜 중요한가? 바른 생계는 바른 직업 부분입니다. 바른 직업을 가지지 않으면 가장 큰 불이익이 뭐냐 하면 수행에 이익을 가져올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장애가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그거 봤어요? 도둑질 많이 한 사람 눈 한번 본 적 있습니까? 살인 많이 한 사람 눈 한번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 행동을 한 번 본 적이 있느냐는 거라 뭔가 불안해. 또한 눈이 한 곳에 고정돼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수행에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또한 몸과 마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큰 장애요인을 이미 만들고 있다는 거라. 죽이는 것이 나쁜 것이고 훔치는 것이 나쁜 것이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이미 죽여버리고 자기 자신을 훔쳐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바른 생계를 유지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생계수단은 바르게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맨 처음 판단기준은 수행하는데 장애를 가져오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걸 판단해야 됩니다. 설혹 바른 생계수단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얽매여버릴 것 같으면 수행을 못합니다. 수행에 방해요인을 가져옵니다. 그럴 것 같으면 그것도 바른 생계가 아닙니다. 적당하게 멈출 줄 알아야 되는데 멈출 줄을 모르고 욕망대로 이끌려가기 때문에 그것도 엄밀하게 따지면 바른 생계수단이 되지 못한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잘 한번 판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이롭게 하는 것인가.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인가, 또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익을 주는 것인가, 성스러움을 가져오는 것인가를 판단기준으로 잡아라" 하고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들을 왜 굳이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다음에 바른 생계수단인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불교 신자라고 할 것 같으면 오계입니다. 오계를 어기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것을 만약에 어기는 것들이다 할 것 같으면 멈춰야 됩니다.

 

"이 세 가지 기준점을 잡아서 생활해나가는 것이 불제자가 해야 되는 것이고 불제자가 가져야 될 생활수단이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의 안정을 해치는 그런 일들은 되도록 삼가하도록 하고 설혹 지금 그런 것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수행을 한번 자꾸 해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방해된다는 것을 스스로가 압니다. 그러면 그것을 빨리 고칠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위라띠 부분에 들어가집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위라띠들을 하루빨리 증장시키고 계발시켜나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한량없이 계발시켜 나가야 될 압빠만냐(appamanna) 부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