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정아버지 첫 제사가 있어 아침부터 부산을 떨면서 갔습니다.
올케와 조카들이 한참 전을 부치는 중이었고, 늦게 합류한 출가외인들이 함께 하니, 제사와 손님맞이 음식준비는 일찍 끝납니다.
우리 친정집은 방파제와의 거리가 10미터가 채 안됩니다.
집안에서 바다속으로 낚시대를 던질수 있을만큼 바닷가에 붙어있는 집입니다.
잠시 여유가 있어 바람도 쐴겸 집 옆 방파제로 향했습니다.
오늘 바다는 짠냄새도 거의 없고, 얼굴에 와닿는 바람결에 칙칙한 소금기도 거의 없고, 햇볕은 따뜻하고, 바닷물에 반사되는 태양빛은 살살 부드럽게 눈을 간지럽히고, 바닷가 같지않은 쾌적함이 사방천지에 가득합니다.
느긋하게 걷다보니 맨발로 걷고 싶어집니다.
신발벗고 빨래거리 귀찮지않게 양말도 벗어서 뒷짐진 손에 맡기고 걸어봅니다.
따뜻한 기운과 함께 뭉특한듯 뾰족한듯 다가오는 시멘트에 박힌 조각돌들이 발바닥에 닿습니다....
오래전에 조성된 이 방파제는 바닥이 자갈섞인 시멘트로 포장되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닳고 닳아 매끄러울거 같은데 맨발에 닿는 감촉은 사뭇 다릅니다.
아픈듯 안아픈듯 적당히 자극되어 기분좋은 느낌이 이어집니다.
몇 발자욱 걸으니 점점 자세가 안정되어 갑니다.
천천히 한발 한발..발꿈치부터 새끼발가락이 닿는 순간까지 순차적인 근육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모래와 자갈의 모양들이 눈에 보이듯 느껴집니다.
특히 한걸음의 끝자락에 새끼발가락이 바닥에 닿으면서 누르고 지지해주는 힘이 기분좋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내 온몸의 무게가 실려있음이..
그럼에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또렷한 십원짜리 동전크기의 정도로 바닥에 닿는 그곳에서 지구 중심과 닿아있음이 느껴집니다.
더 천천히 걸어봅니다.
한발이 거의 닿고 새끼발가락이 닿을 무렵 다른발도 들어올려지는걸 보면 아주 천천히 걷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바닥으로 부터 따뜻함이 위로 올라오고 기우뚱거리지 않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편안함과 안정감이 이런거구나 싶습니다.
좀더 걸으니 갑자기 두팔을 벌리고픈 충동이 느껴지고 두팔을 벌립니다.
가슴도 앞으로 내밀고 싶어집니다. 앞으로 내밀며 열어봅니다.
깊이 들이쉬는 숨에 바다가 온몸으로 들어옵니다. 내쉬는 숨에 바다와 섞이는 나를 봅니다.
하늘도 호흡과 함께 들어오고 섞여갑니다.
모든 것이 드나드는, 바람도 드나들고 빛도 드나들고, 따끗함도 드나들고, 하늘도 바다도 드나들고, 모두 열리고 소통되는 듯 맑고 가벼운 느낌만 있습니다.
아! 이런것이 하나됨이구나..
갑자기 희열감이 가슴밑바닥에서 부터 올라옵니다.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오고 퍼져나갑니다.
걸음은 더 느려지고 감각은 더 미세해지고 예리해지고..
발바닥에 닿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 그 중 어느 한 점으로 마음이 집중되고 그 순간 온몸이 확 열립니다.
그러면서 몸은 어디로 갔는지 확 트여있는 듯 터져버린 듯 다 열려버린듯 형체의 느껴짐이 없습니다.
좀전에 보였던 바다며 하늘이며 내 육체며 이런 것들의 구분이 없습니다.
단지 환하고 밝은 그리고 공기처럼 가벼운 그런 느낌들만...
단지 하나로써...
그리고 그걸 환하게 아는 마음만 있으니...
할아버지 제삿날이라고 외손주들이 다 모여듭니다.
망중한에서 깨어났지만(깨어졌지만) 그냥 웃음이 한가득 흘러나옵니다.
왠 사색을 즐기냐고 딸이 의아한듯 묻습니다.
조카도 내 얼굴을 쳐다봅니다.
응, 걸으니 너무 행복하구나.....
집으로 들어가 언니에게 반시간동안 행복한 명상을 즐기고 왔다고 농담처럼 건넸습니다.
무슨 땡볕에 명상이냐고, 명상을 하려면 선선한 아침저녁으로 해야지...
당장에 핀잔아닌 핀잔이 되돌아오고 언니 동생들 모두 우습다며 웃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 조금 넘어있습니다.
내가 사차원인가 봅니다 했더니 이번엔 조카들이 배를 잡고 웃습니다.
그래도 나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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