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08~2010 일상수행법문

악처에서 벗어나는 법 2. (20100826)

담마마-마까 2021. 3. 22. 09:10

https://youtu.be/Y-Q9K-nBfk8

* 악처에서 벗어나는 법 2. (20100827)

 

자! 오늘은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악처의 문을 닫는 법에 대한 얘기를 저번 목요일 탁발법회 시간에 했습니다. 조금 전에 여러분들 탁발했죠? 탁발하고 나면 서원을 세우기를 뭐라고 서원을 세워요? 그 뭐 볼라고 해쌌지 말고, 그냥 '스님, 이 공양 잘 잡수십시오' 하고 그렇게 서원 세워요? (수행자 대답)

 

대부분 태국 버마 스리랑카 이런 데는 스님들이 탁발을 하고 살아가는데 탁발을 해줄 때 재가분들이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나서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 공양 올리는 공덕으로 인해서 죽고 나서 사후에 천상에 태어나기를'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서원을 세우는 게 뭐냐면 '사악처-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라고 하는 네 악처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기를' 하는 것이 두 번째로 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하는 게 뭐냐면 만약에 '다음생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 할 거 같으면 풍요롭게 태어나기를' 합니다. 풍요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뭐냐면 건강하게도 태어난다는 거고 그다음에 부유롭게도 태어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아픈 병치레 하지 말고 또 의식주 별로 걱정 없이 그렇게 살기를 하는 바람을 가지죠.

 

그러면서 또 하는 게 뭐냐면 '그 풍요로운 재물에 대해서 내가 결코 집착하지 않기를' 하고 바랍니다.

 

또 하나 그 뒤로 말하는 게 뭐냐면 '그 풍요로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기를' 하고 바랍니다. 아무리 풍요로운 게 있다고 하더라도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고, 집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가서 뭐라고 하느냐면 '이러한 바라밀 공덕바라밀을 점점 더 쌓아가지고 해탈에 이르는 길을 실천할 수 있기를' 하고 바랍니다.

그게 보통 탁발공양 올리고 나서 서원을 세우는 것들입니다.

 

언제 하느냐면 탁발공양 올리고 나면 보통 스님들이 찬팅하죠? 스님들이 이와 같은 공덕으로 뭐 어떻게 하시오 하고 공덕게송을 해줍니다. 그때 일반인들도 이 마음을 가집니다.

물론 이렇게 빨리 마음속에서 이렇게 염을 하고 나서 스님이 해주는, 기도라고 해야 하나 우리말로 하면, 기원하는 것을 듣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항상 이 마음을 가집니다. 만약에 스님이 탁발을 해주지 않으면 탁발공양 올리면서 이 마음을 항상 가집니다. 그렇게 합니다.

 

탁발 올릴 때만 그렇게 하겠어요? 여러 가지 다 그런 마음을 가지죠. 그러니까 계행을 내가 잘 지킨다, 또 특히나 오늘 같은 날에는 여러분들에게는 우뽀삿타(Uposattha)의 날이죠? 우뽀삿타의 날 같은 때 계행도 지키고 그다음에 수행도 하고 이럴 때도 마찬가지로 마치고 나면 이런 마음을 항상 가집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아침 저녁에 여러분들 뭐합니까? 적어도 부처님한테 절은 하지? 안 해? 응 잘했어. 오늘부터는 아침저녁으로 그래도 부처님한테 인사는 할 줄 알아야지. 삼보에 대해서 예경을 하고 할 때 예경이 끝나고 나면 이걸 항상 독송을 합니다. 마음속으로 해서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참 단순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게 뭐냐하면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좀 더 잘 태어나기를' '잘 태어나더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하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악처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하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또 하나는 뭐냐면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이 윤회를 끊을 수가 없으니까 근본적인 것은 '내가 수행해서 빨리 해탈하기를'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게 거의 그런 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알고 있습니다. 사악처로부터 벗어나고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다른 길이 없다는 것. 내가 해탈해서 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걸 여러분들도 알고 그쪽 나라에 있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거라.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오늘같이 목요일마다 와가지고 탁발공양 올린다고 해서 내가 사악처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아. 그런데 그거는 공덕이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거라.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우뽀삿타 날 와서 수행을 열심히 하는 거고, 또 평상시에도 하는 거고 자꾸 이렇게 닦는 역할들을 하는 거라.

 

그렇게 하는데 근본적인 것은 해탈을 목표로 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생에서 해탈을 못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될까? 이생에서 해탈을 못 하면? 사악처에 떨어질까?

해탈을 목적으로 해서 나아가는 길들의 여러 가지들을 합니다. 공덕을 쌓는 것이든 아니면 수행을 하는 것이든 하는데, 그것은 죽음이 온다고 하더라도 다음생에서 그걸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대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은 공덕들이 많을 거 같으면 다음생에 사악처에 떨어지는 것보다 인간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큰 거고, 공덕 쌓은 게 적을 것 같으면 사악처에 떨어질 가능성이 큰 거고, 그런 것들입니다. 죽고 나서 만약에 이생에서 지은 공덕들이나 이생에서 쌓은 수행들이 전부다 없어져버린다 하고 만약에 가정을 하면, 그럴 것 같으면 우리가 할 이유가 없잖아.

 

업은 의지로 인해서 일어나지는 겁니다. 의지로 인해서 짓는 것들이고 의지로 인해서 그 과보들이 드러나지는 그런 결과들을 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의지로써 행한 공덕들, 내가 의지로써 행한 수행들 이런 것들은 다음생에서 그 과보들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공덕을 쌓았으면 공덕에 대한 과보들이 드러나지는 것이고, 설혹 내가 해탈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요만큼의 도와 과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과보는 업의 결과는 드러나지게끔 돼있는 것이지 드러나지지 않고 숨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것만 그러겠어요? 악행지은 것은 안 드러나지고 숨겨질 수 있을 것 같애요? 그것도 안 되겠죠! 내가 공덕을 쌓지 않고 불선업을 많이 쌓았다. 그럴 것 같으면 반드시 그 결과는 드러나지게끔 됩니다.

이게 불교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꼭 이생에서 해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탈을 목적으로 이렇게 공덕을 쌓고 해나가면 그 결과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테라와다불교 신도들은 누구든지 알고 있다는 겁니다.

 

간혹 여러분들 태국이나 이런 데 가서 보면 얼굴이 굉장히 밝고 한 걸 많이 보죠?

왜 그렇겠어요? 삶은 오히려 우리보다도 훨씬 못합니다. 더 가난하고 우리보다도 더 건강하지 못하고 오래 살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적인 부분이나 여러 가지 환경 조건들로 보면 우리보다 훨씬 못합니다. 그런데도 얼굴이 그렇게 밝을까?

그게 뭐냐면 해탈을 목적으로 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설혹 불행한 일이 있고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금방 잊어버리는 겁니다. 잊어버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을 생각을 하는 거라.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지금 내가 다른 사람 어려운 걸 도와주는 걸 한다. 그럼 도와줘. 그것으로써 행복을 찾는 거라. 그게 공덕을 쌓는 일인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런 공덕행들이 밑바탕이 되지 않고는 해탈에 이르지 못한다는 거를 알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은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마음이 항상 기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게 테라와다 불교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밝은 이유들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꼭 해탈을 목표로 해서 나아간다고 하면 설령 이생에서 해탈하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공덕을 쌓는 일들을 자꾸 하게끔 된다는 겁니다.

 

그럼 어떤 것들이 공덕을 쌓는 일일까?

누가 태국, 버마 사람들 말할 때 싸우는 것 본 사람 있어요? 별로 아마 없을 거라. 놀기 좋아하고 하더라도 말을 하고 할 때는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한번 가만히 보세요. 조분조분 얘기들을 하지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의 말에는 욕설이 거의 잘 없습니다. 없을 수는 없지. 그런데 우리 같이 막 입만 열면 욕이 되고 하는 그런 거는 없다는 거라. 평상시부터 그렇게 길들여져 온다는 거라. 말을 할 때 욕을 하지 않고, 남에게 감정을 건드리는 그런 말이라든지, 아니면 남을 이간질시키는 말이라든지, 아니면 언성을 높여가지고 싸우는 말을 한다든지, 이런 말들을 하지 않는다는 거라.

 

그런 말로써 이미 제어들을 해나가고 있다는 거라.

그게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공덕을 쌓는 행위들을 해탈을 목표로 해서 공덕을 쌓고 있는데 그거 안 할려고 한다는 거라. 그래서 간혹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남의 일에 관여를 잘 안 할려고 합니다. 관여를 안 할 수밖에 더 있나? 나쁜 일들에 관여를 할 것 같으면 지도 나쁜데 자꾸 물들어버리는데 뭐하러 관여를 할려고 할 거라? 남 싸우는 일을 가가지고 니가 잘났니 하고 시시분별 해줘봐야 그것이 시시분별이 되겠어? 오히려 같이 싸움에 말려들어가는 거라. 그러니까 그런 일을 아예 안 한다는 거라.

 

말만 그렇게 합니까?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행동하는 것도 나쁜 행위 안 할려고 그럽니다. 특히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불교신도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걸 물고기 잡는 일 이런데 종사하느냐 안 하느냐. 물고기 잡는 일 한다 할 거 같으면 니 앞으로 절에 오지 말래.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나쁜 행위 할려고 하는 것들을 자꾸 멀리 할려는 거라. 나쁜 행위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의 생명을 죽이는 거라든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 안 한다는 거라. 몸으로 짓는 행위들도 나쁜 행위가 되는 거고, 공덕을 낳지 않는 것들은 안 할려고 한다는 거라.

 

그리고 인제 마음도 마찬가집니다.

마음도 항상 고요한 마음을 가질려고 하지 마음이 이렇게 백팔십도로 바뀌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 그렇게 많이 하죠? 금방 웃었다가 금방 울었다가 합니다. 조그마한 경계 하나에도 이렇게 왔다갔다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안 할려고 한다는 거라. 왜? 쉽게 변한다는 걸 누구든지 잘 알기 때문에. 쉽게 변하는 건데 뭐하러 그렇게 좋아한다고 마음이 홱 휩쓸렸다가 또 싫어한다고 마음이 홱 휩쓸리고 이렇게 하느냐는 거라. 그거 안 할려고 한다는 거라. 그래서 대부분 보면 감정의 폭들이 좁습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게 뭐냐면 생활 자체가 내가 뭘 목표로 해서 나아가느냐 하고 마음으로 결정되어 있는 사람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 하고의 차이라는 거라.

 

부처님의 말은 산딧티까(sandiṭṭhika) 라고 했습니다. 확인할 수 있다는 거라. 내가 지금 실증할 수 있고 누구든지 와서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진리라는 거라. 진짜 그렇다는 거라. 말이나 행동이나 마음을 그렇게 공덕 쌓는 일을 하다 보니까 아, 좋은 일들이 생기고 내 자신이 우선 좋거든. 그러니까 그걸 그대로 그냥 따라해나가는 거라. 그렇게 해도 모든 사람들이 해탈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거는 이 시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부처님 당시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주고 하는 때도 다 해탈에 이르고 하는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 하면 누구든지 다 편한 것들을 찾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다 고통스런 것들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살아가는 방법들을 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해도 부처님 말씀을 해탈을 목표로 해서 네 가지 악처에 떨어지지 않을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실천하게끔 되고 실천으로 인해서 아, 이 길이 바른 길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그래서 고요해지고 항상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걸 갖다가 부처님이 산딧티까다 하고, 바로 경험되어지고 실천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바라문에게 "바라문아, 나는 정자각자이고 바르게 깨달음을 이룬 자이고 나는 의사다" 하고 얘기합니다. 바르게 깨달음을 이룬 자이고 의사다 하는 거라. 중생들의 의사라는 거라. 아주 뛰어난 더 없는 의사라는 거라. 의사는 약을 지어줄 때 내년에 이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약을 지어주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부터 바로 효과 본다는 것이지 시간을 두고 기다리지 않는다는 거라.

부처님이 말하는 의사라는 건 그런 개념입니다.

바르게 깨달은 분이 가르치는 것들은 내가 지금 즉시 이익이 있고 행복해지는 것들이라는 것이지, 죽고 나서 사후에 악처에 안 빠진다? 죽고 나서 다음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여러분들이 어떻게 확인할 거라? 없으면 어떡할 건데? 그때사 아이고, 내가 참 잘못했다 하고 후회하고 말 거라? 그거는 부처님이 아니라는 거라. 지금 내가 즉시 경험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거라. 사후에 악처에 빠지든 안 빠지든 현재 내가 그런 방법으로 따라가다 보니까 내가 좋고 내가 이익이 있고, 내가 행복해진다는 거라.

 

그러니까 당연히 다음 세상에서 내가 나쁜 경우에 당히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바로 경험할 수 있다는 거라. 어떻게 경험해? 수행을 통해서! 내가 실천하는 것으로 인해서 경험한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남에게 좋은 말 할 거 같으면 좋은 결과 온다는 거 압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마만큼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법 따라서 실천할 것 같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 온다는 것을 안다는 거라.

 

그게 인제 부처님이 말한 방법인데, 수행을 해나가다 보면 누구든지 무상하다는 것들을 알게끔 됩니다. 그렇죠? 조금만 해보면 들이쉬는 숨은 변해서 나오게 돼있다는 걸 압니다. 변하니까 아, 무상하구나 하고 압니다. 무상하구나 하고 안다고 해가지고, 그거 안다고 해가지고 깨달았다고는 얘기 안 하죠?

 

무상한 것도 종류가 여러 가집니다. 비유를 해놓기를 뭐라고 얘기해 놓았느냐 하면, 멀리서 보니까 하나의 선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라. 그런데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게 그냥 일반 선이 아니고 선이 구불구불하다는 거라. 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 구불구불한 게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중간중간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라.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게 개미가 기어가는 거였다는 거를 보게끔 된다는 거라. 그게 실재적인 것들을 보게 되는 거죠.

어쨌든 무상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레벨이 있습니다.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면 높일수록 점점 더 명확해지고 그게 분명해지는 거하고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 무상한 것들을 어디까지 봐야 되겠어요? 이때까지 안 보이던 선이 보인다고 해서 그거까지만 보고 말 거라? 그렇지는 않죠? 그게 분명하게 개미가 기어가는 형태다 하는 것들을 볼 때까지 봐야 되는 거라.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중간에서 끝내버립니다.

자기 자신이 착각하면서 아, 내가 다른 사람이 못 보던 거를 봤다는 거라. 그래서 거기서 수행을 탁 중단할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탐진치가 나쁘다는 거를 알고는 있는데, 스스로의 자만이 나쁘다는 거는 생각을 안 한다는 거라. 가장 나쁜 게 뭐냐면 탐진치 보다도 스스로의 자만입니다. 자신이 체험해서 일어난 자만심들이 더 큰 나쁜 결과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선이 보인다 해서 아, 선이다 하고 만족할 게 아니고, 그 선이 뭔가 하는 것을 다시 더 뚜렷하게 보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은 뭐라고 그럽니까? 생중계하라는 거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에 마음을 갖다 붙여서 알아만 차려주면 분명하게 그게 선이 아니고 나중에 결국 아, 개미가 기어가는 거였구나 하는 것을 안다는 거라. 그게 수행이라는 거라. 그렇게 자꾸 돌리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위빳사나를 뭐라 그럽니까? 무상한 성품, 무상한 것들이 내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다가 분명하게 마음을 기울여서 알아차려 주는 것 그게 위빳사나라는 거라. 지금 현재 생중계를 하지 않을 거 같으면 생방송을 하지 않을 거 같으면 안된다는 거라.

 

이렇게 명상을 수행해나갈 때 무상한 성품을 알았다고 해서 중단하면 안됩니다. 마지막 끝까지 해탈에 이를 때까지 분명하게 봐야 됩니다.

무상한 것만 그렇습니까? 고(苦)도 마찬가지고 무아(無我)도 마찬가집니다. 분명하게 완전하게 알 때까지 계속적으로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든지 게으름에 빠지게 된다는 거라. 그것에 만족하게 되고. 그래서 그것 자체에 집착하게 된다는 거라. ··치를 잡착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이 수행은 무르익습니다. 그리고 탐··치에 얽매이지 않도록 자꾸 만드는 것이 수행하는 겁니다.

수행하면서도 이렇게 자꾸 게으름에 빠진다든지 이렇게 자꾸 자기 자신이 자만에 빠지면 오히려 탐·진·치에 얽매이는 것보다도 더 나쁜 결과가 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꾸 현재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단지 알아차리면 됩니다. 알아차리면 그것이 내가 집착할 대상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압니다. 그걸 뭐라고 합니까? 빤냐띠가 아니고 빠라맛타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실재적인 것들을 아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만족해버릴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개념을 붙잡게 되는 거라. 왜 자꾸 개념이나 이런 것들에,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지 마라 라는 거라.

해탈했다, 열반은 그러면 변하지 않는 것들인 것 같애요? 살아가면 변하게 돼있습니다. 살아가면 변하게 돼있다는 거라. 무상·고·무아의 성품에는 열반도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무상·고·무아의 성품에 들게끔 돼있다는 거라. 그렇게 해나가야만이 공덕을 쌓아서 악처에 떨어지는 일들을 방어할 수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불재일이라든지 일반적인 날 때 이 선원에 오면 맨 먼저 하는 것이 삼귀의 오계, 삼귀의 팔계를 받습니다. 계목으로써 단속을 해나간다는 의밉니다.

그러고 나면 뭐 합니까? 오늘 같은 날은 열두 시 이후에는 음식을 못 먹도록 하죠? 감각기관을 단속한다는 뜻입니다. 화가 일어난다 아니면 욕망이 일어난다, 그리고 먹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이런 감각기관들을 스스로 단속하라는 거라.

그다음에 살아가는데 청정해지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아, 이것은 부처님이 하지 마라는 행위였지. 그럼 하지 말도록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또 뭘 단속해야 되느냐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단속해야 됩니다. 이건 내가 진짜 살아가는데 필요해가지고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든지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가지고 있는 것들, 그러니까 필수품들에 대해서 스스로가 자꾸 단속을 해야 됩니다.

 

이런 네 가지 기능들이 갖추어질 때만이 수행을 하더라도 바르게 수행해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을 해나갈 때 바로 몸과 마음에 대한 일들을 해나가게 됩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현상들을 순간순간 고요한 마음으로 삼매가 되게끔 해서 알아차려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어떤 것도 붙잡을려고 하지 않고 움켜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거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나간다는 거라.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지혜가 계발되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이 그 지혜를 열여섯 단계로 나눠놨습니다.

대부분 처음에 뭐합니까? 정신과 물질적인 것들을 구별하게 되죠! 아, 이것은 '일어남' '사라짐' 하고 있는 배의 움직임이 물질적인 것이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거구나. 그렇게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게 되는 거고.

 

'나'라고 하는 존재가 바로 이렇게 정신적인 현상과 물질적인 현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나'라고 하는 것이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니구나. 조건 따라서 사라져버리는구나. '일어남' '사라짐' 하고 있을 때 누가 저기서 누구야 하고 부르면 마음은 거기로 가버린다는 거라. 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질적인 현상과 관계없이 마음은 거기로 가버린다는 거라. 이게 다 '나'라고 할 것 같으면 마음은 여기에 계속 있어야 된다는 거라. 그런데 그렇지 못한다는 거라. 조건 따라서 정신적인 것도 일어나고 조건 따라서 물질적인 것도 일어난다는 거라. 그걸 먼저 구분을 하게끔 된다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아, 이것이 원인이라서 이런 결과들이 일어났구나. 들이쉬는 게 원인이 돼서 내쉬는 게 일어났구나. 그걸 알아차리는 마음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별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그런 지혜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그렇게 하다 보니까 현상들을 좀 더 바르게 알아간다는 거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거고. 현상을 바르게 안다는 것은 아, 이것도 기쁨의 현상이고 이것도 들뜸의 현상이고 이것이 결코 도와 과가 아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가 있다는 거라. 분명하게 알게끔 된다는 거라. 그런데 그전에는 조그만한 걸 발견해도 내가 도통한 것처럼 날뛰었다는 거라. 그런데 인제는 현상을 구분해서 바르게 알게끔 된다는 거라.

그것들도 우연히 발생한 것도 아니고 내가 또 만든 것도 아니라는 거라. 조건 따라 일어나고 조건 따라 사라지는 결과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지 무슨 외부적인 대상물이 그걸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라는 거라.

 

그렇게 분명하게 알다 보니까 이게 생멸하는 거라. 일어나고. 일어났으면 반드시 사라짐이라는 거라.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짐이라는 현상들이라는 거라. 그러니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점점 더 빨라지게 되니까 거기에 집착 안 하려고 하는 거라. 그러니까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해지게 되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너무나 빠르면 인제는 그냥 무너져버린다는 거라. 그냥 그것이 전체가 와르르륵 와르르륵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는 즉시 사라져버린다는 거라. 알아차리는 즉시 사라짐만 계속 일어난다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그것이 공포로써 다가와진다는 거라. 아, 이렇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내 혼자뿐이구나 하는 그런 공포들이 다가와 진다는 거라.

 

공포들이 다가와 지면 그다음엔 이렇게 살아가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참 위험하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경우엔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 그럽니다. 그거는 하나의 경계라.

 

경계들이 일어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렇게 공포스러운 것이 지나고 나면 이제는 역겨워지게 됩니다. 왜? 모든 것들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 자체를 벗어날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들 자체가 현상들이 역겨워진다는 거라.

 

역겨워지면 그다음부터는 뭘 하냐면 내가 빨리 해탈해야지 하는 지혜들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했을 때만이 인제는 바르게 정상적인 궤도를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킴과 동시에 좀 더 대상에 대해서 깊이 있게 관찰하게 됩니다. 벌로 안 보입니다. 그전에는 그냥 마음을 거기 기울였는데 인제는 대상 자체가 그냥 드러나 집니다. 드러나 지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좀 더 깊이 있게 관찰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들을 자꾸 가지게끔 됩니다.

평등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물을 한번 봐봐요. 흘러가다가도 돌이 있든지 이끼가 있든지 그걸 스무스하게 타고 넘어간다는 거라. 그렇게 현상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하다 보면 딱 현상과 합일하는 그런 수순하는 지혜들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됐을 때만이 범부 중생의 삶에서 성인의 경지로 탁 넘어가지게 됩니다.

그게 보통 지혜의 1단계부터 12단계까지 이렇게 순차적으로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도와 과의 지혜들이 점점점점 열리게 됩니다.

그렇게 도와 과의 지혜까지 합해가지고 16단계로 나눠집니다. 대부분 여러분들이 수행에서 어떤 경우들은 경험했던 것들이고, 또 앞으로 경험해야 되는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단계들을 겪어가다 보면 인제는 도와 과에 들어가게끔 됩니다.

 

여러분들은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먼저 수다원을 목표를 해야 됩니다.

그렇죠? 아라한이 목표가 될 수가 없겠죠? 수다원을 목표를 해야 됩니다.

수다원을 목표로 할려면 모든 현상들은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는 것들을 자꾸 이해할려고 해야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기 때문에 집착할 것들이 없어집니다. 지금 일어나는 감정, 일어나는 생각, 그리고 내가 지금 일어나서 가지고 있는 소유물들 내 주변 친척들, 가족들 그것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자꾸 이해하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 어떤 것들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마찬가지로 내 주변의 어떤 것들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들을 자꾸 인식할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어떻게 돼요? 첫 번째 족쇄가 풀어집니다.

내 몸이 항상 존재한다. 내 것은 내 것이다 하는 그런 유신견, 그게 유신견입니다. 특별한 것들이 존재해가지고 계속된다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탁 떨어지는 겁니다. 끊어져야만이 아, 부처님 법이 확실히 맞구나. 법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들을 탁 끊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아무리 찾아봐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뿐이라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인제는 의심 안 한다는 거라. 그래서 이렇게 해가지고 세 가지 족쇄들이 떨어져나가게끔 됩니다.

이런 식으로 수다원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수다원에 이르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돼요? 모든 현상들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구나 하고 자꾸 받아들여야 됩니다.

 

네 가지를 다 할려고 했는데 시간이 다 안 돼고, 어쨌든 여러분들은 수행을 합니다.

위빳사나를 실천하고 있는데 왜 합니까? 부처님이 원하는 거죠!

부처님이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실천되지 않는 것들은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실천하지 않을 거 같으면 그거는 불교인이 아니라. 그거는 부처님이 원하는 거라. 또 내 자신이 원하는 거고. 내 자신도 내가 실천하지 않을 거 같으면 그거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걸 더 잘 알고 있다는 거라. 내 자신도 원하고 부처님도 원하고 또 여러 성인들도 원하는 건데 그걸 안 할 이유가 어딨어요? 그래서 수행을 자꾸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 해야만이 여러 가지 수행의 이익들이 있다는 거라.

우선 건강해지는 거고 그다음에 오래도록 살게 되고 또 바르게 죽을 수가 있고, 그다음에 수행의 이익 중에 네 번째가 뭐냐 하면 사악처에 떨어지는 걸 막는다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사악처의 문을 닫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 노력하는 방법을 사념처로써 얘기합니다.

몸에 대해서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들이 여섯 가지,

그다음에 느낌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방법이 아홉 가지,

그다음에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열여섯 가지,

법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다섯 가지

합쳐가지고 서른여섯 가지로 사념처경에서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 할 수는 없죠? 하나만 해도 됩니다. 하나만 해도 자꾸 하다 보면 이 36가지가 다 똑같은 결과를 낳게끔 되는 거고, 똑같이 나아가게끔 됩니다. 그래서 우선에는 내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알아차림을 자꾸 유지해나갈려고 해야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내가 체험하려고 해야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을 생멸지를 경험했다고 그럽니다.

생멸지를 경험해버린 자만이 사악처에 떨어지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경전에 분명하게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들 1초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렸으면 1초간 생멸지를 경험한 거라. 그것이 1분간 경험되면 일 분간 생멸지를 경험한 거라. 생멸지를 자꾸 경험하도록 해야 됩니다. 모든 현상들은 일어나고 사라지는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될 때 그것을 인식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악처로부터 점점 더 벗어나게 되는 거라.

 

자! 시간이 됐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 가지 악처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됩니다. 법의 본래의 능력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도록 하고, 사악처로 떨어지는 모양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해를 하도록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그런 과정들을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공덕을 쌓고 수행정진을 해서, 생멸하는 것들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을 자꾸 벗어나도록 해서, 도와 과에 이르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네 가지 악처로부터 벗어나고, 사악처의 문을 닫는 길이다 하는 것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