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중에 졸음이 왔을 때는 일반적으로 졸음과 싸우거나, 아니면 스스로 잠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이때 수행자는 잠과 싸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자버리자고 알아차림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졸음과 싸우면 졸음이 더 기승을 부려 결국에는 잠에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또 아예 자버리자고 작정한 것은 수행을 포기한 것이라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수행을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두 가지의 극단입니다.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도이며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중도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졸음이 오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 졸음이 달아나고 뚜렷한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졸음이 올 때 뚜렷한 의식을 가지려면 세 가지 조건이 성숙되어야 합니다.
수행은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 조화를 이룰 때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졸음에 대해서도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졸음에서 깨어납니다.
졸음이 올 때 노력이 지나치면 졸음과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노력이 부족하면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알아차림이 항상 유지되어야 합니다.
알아차림 하나만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라서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과 알아차림이 지속될 때 집중이 됩니다.
집중이 많으면 졸음에 빠지고 집중이 적으면 게으름에 빠져 잠에 떨어집니다.
수행은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의 세 가지 요소가 서로 적절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세 가지가 각각의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할 때 바른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상과 싸우거나, 없애려고 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세 가지의 황금분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할 때 지금 노력은 적절했는가,
지금 알아차림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지금 집중은 적절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승들은 수행을 지도할 때도 이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바른 지침을 줍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우고 많으면 빼도록 합니다.
이렇게 바른 노력을 해서 어느 순간에 졸음이 사라졌을 때 수행자들은 기쁨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뚜렷한 의식이 왔다가 언제 졸았는지도 모르게 잠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졸음에서 깨어난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졸음에서 깨어난 것을 좋아하면 이상의 세 가지 요소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때는 잠에 떨어지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잠에서 깬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지 알아차리고 수행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또 잠에서 깨어났다고 해서 다음 시간에 똑 같이 깨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순간에 모든 몸과 마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다음 조건이 성숙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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