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정진/위빳사나 수행과 알아차림

위빠사나 수행과 알아차림의 확립

담마마-마까 2013. 6. 12. 11:05

 


1. 위빠사나 수행

 

위빠사나 수행은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네 가지 대상에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오온의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통찰하는 지혜수행입니다.

 이 수행법은 『디가니까야』의「대념처경」에 나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신, 수, 심, 법이라는 네 군데의 알아차릴 대상은

최고의 목적지인 열반을 향해 올라가는 네 곳의 계단과 같습니다.

 

1) 몸에 대한 알아차림

신념처는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적인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에서는 호흡과 행주좌와의 자세, 분명한 앎, 32가지 몸의 부정(不淨)함,

지수화풍 4대 요소를 알아차리는 수행방법이 있습니다.

 

2)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

수념처는 현재의 경험하는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감관을 통해 좋고, 싫고 덤덤한 느낌을 경험합니다.

이 느낌은 그 순간만 실재하는 것이며, 이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지 않으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만일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을 놓치면 그 순간 갈애와 집착이 일어나 업을 생성하고,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면 갈애와 집착을 끊어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합니다.

 

3)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

우리는 매순간 대상과 부딪쳐서 일어난 어떤 마음으로 신구의(身口意) 3업을 행합니다.

심념처는 현재의 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마음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며 조건에 의해 소멸한다는 것과 마음은 항상하지 않고 찰나 생멸하며 변한다는

무상(無常)을 알 수 있습니다.

유신견이 강한 사람은 심념처 수행을 해서 생멸하는 마음의 무상한 성품을 보면

지금까지 내 마음이라고 붙잡았던 유신견은 개념일 뿐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법에 대한 알아차림

법념처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질적‧정신적 현상을 단지 법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법으로 본다는 것은 그 현상을 내 것으로 집착하지 않고

한순간의 현상으로 객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지금 경험하는 망상, 통증, 졸림, 싫증, 의심 등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법에는 다섯 가지 장애처럼 수행자가 싫어하는 현상도 있지만 칠각지처럼 수행자가 좋아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법념처는 이처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모든 현상을 단지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지금 경험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법의 성품을 통찰합니다.

 

5) 신, 수, 심, 법은 항상 함께 있지만 그 중 지금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수행은 이 알아차림이 이어져서 그 대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일어나는 대상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사라지는 대상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상을 알아차리며 지낸다." 는 구절이 모든 수행 주제 마다 반복됩니다.

즉 대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지 못하면,

이것은 마음이 현재의 대상에 집중하는 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 뿐,

아직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6) “몸에 대하여 몸을 알아차린다.”는 경전의 가르침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몸을 단지 몸으로 볼 뿐 밉다, 곱다, 가볍다, 무겁다 등으로 좋아하고 싫어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대상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몸을 단지 몸으로 볼 뿐 내 몸이나 내 아이의 몸이라고 몸을 소유 개념을 가지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신견 없이 몸을 다만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셋째, 몸을 단지 몸으로 볼 때 대상에 대한 망상이나 근심걱정이 올라오지 못해서

현재의 대상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요함이 생깁니다.

이는 마음은 한 순간 하나라서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을 때 불선한 마음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넷째, 몸을 단지 몸으로 볼 때 모든 움직임은 의도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

이것은 몸을 움직이는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다섯째, 이렇게 알아차릴 때 어리석음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바로 자신의 감정이나 고정관념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7) “더 높은 지혜와 알아차림을 위해 필요한 정도까지 알아차림이 확립된다.

이제 그는 갈망과 그릇된 견해에 의하여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지낸다.”는 말씀은

수행자가 제대로 된 위빠사나를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나는 수행한다, 수행하는 것은 나다, 내 집중력은 매우 좋다, 알아차림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8) “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의 세상에서 그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수행자가 오온의 어느 것도 나, 나의 몸, 나의 느낌, 나의 마음이라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하여 몸을 알아차리며 지낸다.”라는 말씀은

수행자가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할 때 바른 견해로 신념처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직 대상을 알아차리는 집중에만 매달려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대상을 알아차리면서 지낸다.”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알아차림을 확립하면 반드시 대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볼 수 있도록

대상을 객관화해서 알아차려야합니다.

 

2. 알아차림의 확립

 

대장로 모곡 사야도께서는 염처수행의 단계를

알아차림의 확립과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과 알아차림의 확립으로 이끄는 길로 나누셨습니다.

 

1) 알아차림의 확립(satipaṭṭhāna) 

알아차릴 대상(신, 수, 심, 법)에 마음을 겨냥하여 알아차림을 실행하는 단계입니다.

현재의 호흡, 움직임, 느낌, 마음, 온갖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알아차리기 위해

대상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을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합니다.

 

2)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satipaṭṭhāna bhāvanā)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이어서 알아차림의 확립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대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는 단계입니다.

즉 몸, 느낌, 마음, 법이 일어났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런 알아차림이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이며,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3) 알아차림의 확립으로 이끄는 길(satipaṭṭhāna gāminīpaṭipadā) 

이 단계는 조건 지어진 현상에 대한 지혜로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혐오스럽다고 아는 것입니다.

오온이 괴로움이라고 알아서 오온에 대한 집착을 소멸하고 업의 형성을 소멸로 이끄는 길,

열반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3. 두 단계의 통찰

 

빨리어 아누싸띠(anussati)기억, 알아차림으로

대상과 하나가 되어 마음이 대상에 집중된 것으로 사마타의 알아차림입니다.

아누싸띠는 근본집중인 선정을 얻습니다.

 

빨리어 아누빠사나(anupassanā)알아차림과 함께 알아차림의 지속으로

대상의 성품을 통찰하는 수관隨觀의 알아차림입니다.

이는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해서 무상, 고, 무아를 아는 위빠사나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수행자 수시마에게

수시마여, 도과를 성취하는 것은 집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위빠사나의 지혜로 인한 것이다.

위빠사나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바람직한 결과를 이룰 수 있으며

오로지 이를 통해서만 도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이어서 “실로 진리 안에 머무는 지혜[法住智]가 먼저이고,

이후에 열반에 대한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如實智見]가 먼저 오고 다음으로 열반에 대한 지혜가 뒤따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행자는 꿰뚫는 통찰력으로 일어남과 사라짐의 현상이 고통일 뿐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나서 그 다음으로 조건 지어진 현상[有爲法]은 불쾌하며 혐오스럽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갈애가 소멸하여 열반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반은 두 단계의 통찰을 거쳐서 마지막 단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4. 세 단계의 지혜

 

또한 붓다는 초전 법륜경에서 고집멸도 사성제를

진리의 지혜(Sacca-Ñāṇa), 실행의 지혜(Kicca-Ñāṇa), 수행의 지혜(Kata-Ñāṇa)

세 단계의 12가지 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지혜(Sacca-Ñāṇa) 진리를 아는 지혜

1)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를 아는 지혜,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를 아는 지혜,

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런 진리를 아는 지혜,

4)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런 진리를 아는 지혜입니다.

 

실행의 지혜(Kicca-Ñāṇa) 실행할 것을 아는 지혜

1)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는 바르게 잘 이해되어야 한다고 아는 지혜,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는 버려져야한다고 아는 지혜,

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런 진리는 마땅히 실현되어야 한다고 아는 지혜,

4)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런 진리를 마땅히 닦아야한다고 아는 지혜입니다.

 

수행의 지혜(Kata-Ñāṇa) : 진리를 완수한 것을 아는 지혜

1)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를 완전하고 바르게 이해했다고 아는 지혜,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는 이미 버려졌다고 아는 지혜,

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런 진리는 이미 실현되었다고 아는 지혜,

4)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의 성스런 진리를 이미 철저히 닦았다고 아는 지혜입니다.

 

붓다께서는 이처럼 사성제에 대한 12가지 지혜를 스스로 깨달아서 일체지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곡 사야도께서도 수행자들에게 길고 지루한 사마타의 길을 따라가지 말고

지름길인 사념처를 닦는 위빠사나의 길로 갈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바람직하게 사는 길은 선하게 사는 것이고,

이것을 실천하여 완수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먼저 사념처에 주의를 고정하는 사마타 수행으로 장애를 제거한 뒤

다시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궁극의 해탈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입니다.

 

 

                                               한국명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