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다 숫따 (Kāmadasutta) (20140527)
오늘은 경전을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상응부경전에 나오는 「까마다 숫따」 라는 겁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때에 얼굴이 아주 묘한 까마다 천인이 새벽에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한 후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온몸에 광명을 비추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어렵나이다. 세존이시여! 매우 어렵나이다. 여래시여!"
그때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배우기 비록 어렵다고 하지만 계율과 삼매를 두루 갖추고 멀리 떠나서 집 없는 데서 한가로이 살아 고요함을 즐겨라."
그러자 까마다 천인은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 고요하게 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다시 대답하기를 "얻기 어려운 배움을 얻어 계율과 선정을 두루 갖추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열심히 마음의 평온함을 익히거라."
까마다 천인이 다시 아뢰기를 "부처님! 선정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나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 대답하기를 "선정에 머무르며 마음을 결정하여 죽음의 얽힘을 끊고 성자의 길따라 나아가거라."
까마다 천인이 다시 아뢰기를, "부처님! 도의 길을 가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다시 대답하기를 "가기 어려운 그 험한 도의 길도 갈 때는 편안히 가나니, 성자가 아니면 거기서 떨어져서 발은 위로 향하고 머리는 밑으로 향하느니라. 그렇지만 성자들은 정직하게 가기 때문에 험한 도의 길도 저절로 평탄해지느니라."
이렇게 얘기하자 까마다 천인은 기뻐하면서 합장했다.]
하는 그런 경입니다.
간단한 경입니다. 상윳따 니까야 2-6번이니까, 오늘은 이것에 대한 풀이를 조금 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부처님 가르침은 실천하기 어렵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실천하기 어렵습니까? 어째서 어려워?
(수행자 대답 : 욕계에 미련이 많으니까요)
욕계에 미련이 많다고 해서 실천하기 어려운 건 아니잖아. 실천할려고 안 해서 어려운 거겠지. 모르는 것들은 아니잖아. '도둑질 하지마라' 하는 거 모르는 것은 아니잖아. 도둑질을 안 해야 되는데 도둑질을 할려고 하고, 아주 미세한 생물이라 해도 죽이지마라 했는데도 그거 실천 안 하고 그냥 죽여버리는 거라. 마음을 자꾸 평온하게 가져라. 고요하게 가져라 해도 마음은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그렇잖아.
사실은 실천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실천하는 법을 몰라서 어려운 것도 있고, 실천하는 법을 알지만 그것을 실천할려는 마음을 내지 않아서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겁니다.
"둑카라 바와(Dukkara bhāva)" "실천하기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실천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실천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부처님이 뭐라고 했느냐면
맨 먼저 계율을 지켜라 하고 얘기합니다.
계를 확고하게 갖추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는 겁니다. 계를 지키지 않으니까 마음이 자꾸 방황한다는 거라. 마음이 수행할려는데 딱 집중하도록 해야 되는데 그렇게 못한다는 거라.
마음이 오늘은 스님 법문 듣고 경전 읽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거기에 실천이 되도록 해야 되는데, 마음이 고요해 있지 못하고 방황해 있기 때문에 지금 할 일들 딴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따라서 뭐가 또 생각나면 그거 해야 되는 거라. 그러니까 그거 할 시간이 없는 거라.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고 마음이 방황하고 평온해지지 못한다는 것은 부처님 제자이면 반드시 지켜야 될 계율들을 바르게 지켜나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최고 먼저로 해서 부처님이 계율을 지키면 실천할 수 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자꾸 배울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실천하기가 또한 힘이 든다 하고 얘기합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남의 소리도 안 들어오게 돼있고, 자기가 또 으뜸이다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으면 남들에 대해서 무시할려고 하게 되고, 그건 정해진 이치입니다. 자기가 부족하다 생각이 들고 자기가 배울 게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할 거 같으면 마음은 자꾸 그걸 배울려고 하고 부족한 것들을 채울려고 하게 된다는 거라. 배우는 마음을 가져라는 거라.
우리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항상 배우는 자입니다. 불환과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아직 배우는 자입니다. 그럼 불환과에 이르른 사람도 아, 내가 아직 이루어야 될 것들이 남았다. 더 배워야 된다는 생각으로써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됩니다. 하물며 일반 범부중생들은 더더구나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아직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하는 거라. 그래서 그걸 '유학자'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아있다는 거라. 배울 것이 있는데 왜 배울려고 안 하느냐는 거라. 마음을 그렇게 해야만이 우선 실천을 자꾸 하게끔 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가 속박되는 것들로부터 벗어날려고 자꾸 노력하라.
저번 토요일날인가 아마 그런 얘기를 한 걸로 아는데 '통나무에 대한 비유'를 했을 겁니다. 이쪽 기슭에도 걸리지 말고 요쪽 기슭에도 걸리지 말아라 하는 애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 대상에 속박돼버리면 대상에 대해서 아름답다 아니면 추하다 예쁘다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눈이라는 것에 대해서 속박이 돼버릴 것 같으면 대상에 대해서 항상 알음알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눈에도 속박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상에도 속박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혀에도 속박되지 말고 혀로 인해서 맛보는 대상에도 속박되지 말아라. 혀에 대한 대상에 속박될 것 같으면 항상 비싼 것 찾을려고, 항상 뛰어난 것 찾을려고, 혀에 속박될 것 같으면 맛보는 것이 맛있는 것들만 자꾸 더 먹을려고 한다는 거라. 맛없는 것은 안 먹을려고 한다는 거라. 그래서 혀에도 속박되지 말고 혀로 맛보는 대상에도 그 음식들에도 속박되지 말아야 된다는 거라.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하고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속박돼서도 안 되고 눈·귀·코·혀·몸과 마음에도 속박돼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때 일어나는 대상일 뿐입니다.
몸 지혼자서 존재를 할 수도 없고, 마음 지혼자서도 존재를 할 수도 없고, 눈 지혼자서도 존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속박돼버리면 이 마음은 항상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이 몸도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각각의 기관도 병이 들면 힘들어 하게 됩니다. 영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딱 붙잡혀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밖의 대상과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한 대상들에도 또한 속박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게 첫 번째 부분입니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길입니다.
왜? 왜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실천해야 될까? 이런 것들은 얻기 어렵지만은 얻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들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고, 더욱 더 노력하여 열심히 배울려고 하는 것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고, 속박되는 것들에 대해서 속박되지 않을려고 하는 것도 얻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 번째 까마다 천신이 얘기한 실천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얻을 가치가 있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두 번째, 만족하기 어렵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둘라바 라반띠(Dullabha labhanti)"
만족하기 어려운 거는 틀림없습니다.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참 드물 겁니다. 그리해도 만족하고 살 줄 알아야 됩니다. 만족할 줄 모르면은 마음은 더욱 더 가지고 싶고, 더욱 더 뭔가를 원하게 돼있습니다.
만족하기 위한 것 첫 번째가, 수행하기를 좋아해야 됩니다. 수행하는 걸 즐겨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 같으면 항상 불만족스럽습니다. 수행을 자꾸 하다가 보면 대상에 대해서 집착하지도 않고 대상을 멀리하지도 않고, 마음이 수행에서 오는 이익을 알고 수행에서 오는 편안함과 행복을 알게 됩니다. 이거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데 다른 것들을 찾을려고 안 한다는 거라. 그 다른 것으로 인해서 만족을 얻을려고, 그것으로써 내마음을 채울려고 하질 않는다는 거라.
마음에 불만족한 것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수행으로써 아, 내가 고요함을 알고 수행의 행복을 알 거 같으면 그 불만족은 금방 달아나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수행을 즐기지 않으니까 자꾸 다른 것들로 해서 만족을 얻을려고 한다는 거라.
수행에 중독이 되다시피 자꾸 해야 됩니다. 수행을 안 하고 산다는 것들은 참으로 힘드는 것이다. 괴로운 것이다. 수행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하는 생각을 자꾸 가지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마만큼 수행에서 오는 이익과 행복이 크다는 거라. 그것으로써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몰아내야 됩니다.
그다음에 만족할려고 할 것 같으면 마음에서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도와 과의 행복은 굉장히 큽니다. 그거 한번 얻을려고 마음을 먹어봤어요? 그렇지 않으면 삼매에서 오는 행복을 얻을려고 해봤어요? 그렇지 않으면 사무량심이 항상 가득해가지고 천인과 같은 마음으로 지낼려고 하는 것들을 얻을려고 해봤어요?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해야 됩니다. 얻기 쉬운 걸 얻어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만족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었을 때는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사무량심이 항상 충만되게끔 할 거 같으면 다른 것으로 인해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뛰어난 삼매에서 얻어지는 만족은 사무량심보다도 더 훨씬 큽니다. 그것보다도 도와 과를 얻었을 때 오는 만족은 삼매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보다도 훨씬 더 크다는 거라. 그런 것들을 자꾸 얻을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할 때 마음을 제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거 하나 얻었을 때 아, 이거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 한단계 수행이 뛰어넘으면 내가 아직 더 얻어야 될 것들이 남아있다 하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 자꾸 제어를 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어렵기 때문에 마음은 더욱 더 제어해 나가야 됩니다.
이렇게 만족하다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이 수행하기를 좋아해야 되는 것이고, 마음이 얻기 어려운 것들을 얻을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것들을 얻은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려고 하는 마음들을 자꾸 제어해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그리하더라도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다 하고 하는 겁니다.
"두사마-다하 사마-다한띠(Dussamādaha samādahanti)"
마음은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침착해있으면 적어도 마음은 제어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감각기관들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들에 대해서 침착하게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릴려고 할 것. 적어도 그것만 알아차리더라도 마음은 제어할 수가 있습니다.
맛보면 맛본다고만 알고 있어도 맛있는 걸 찾으려고 하고 맛없는 걸 안 먹을려고 하는 마음은 일으키지 않게끔 된다는 거라.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그 감각기관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릴 것.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길은 이겁니다.
다른 걸로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을 삼매를 통해서 억누를 수는 있고 마음을 다른 곳으로 향하도록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것들이 또 나타났을 때 그것을 제어할 수 방법은 없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제어할려면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또 마음을 제어할려고 할 거 같으면, 지금 이 순간에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마음을 먹어보십시오. 죽음의 그물을 찢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눈앞에 닥쳤는데. 죽음의 그물을 찢을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평온한 상태에서 분명하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만이 죽음의 그물을 찢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오는 공포, 죽음에서 오는 두려움들, 그것을 제거해버리면 죽음에 대한 그물은 찢어져나가버립니다.
죽고 살고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살아있을 때 지금 내가 뭘 해야 되는지를 분명하게 압니다. 그러면 죽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늙어가는 것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병드는 것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좋은 것들을 가지지 못하는 것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 그것을 수용하게 될 때 그 그물을 찢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까마다 천신이 얘기를 한 것 네 번째, 마음을 제어한다고 하더라도 도의 길로 가기에는 어렵고 험하다 하고 하는 것입니다.
"둑가마 위사마 갓찬띠(Duggama visama gacchanti)"
도의 길을 가기에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렵더라도 가야 되는 길입니다. 어떻게? 바르게! 가끔씩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산에 올라가는데 이 길로 가면 어떻고 저 길로 가면 어떻느냐고, 또는 천천히 가면 어떻고 빨리 가면 어떻느냐고, 그 길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길을 잘못 들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가고자 하는 산 정상으로 가는 게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게 됩니다.
천천히 가면 어떻겠느냐고 그러지만 천천히 갈 동안에 받을 그 고통들은 다 어떻게 할 거라. 하루빨리 거기에 도달해야 되는 거고, 바른 방법으로 가야만이 그 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도의 길을 가기는 어렵지만 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바른 방법으로 가야 됩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어떤 이익들을 주고 어떤 위안을 준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빠져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게 됩니다. 바른길을 알았으면 그길따라 그냥 가야됩니다. 속도가 느리다고 할 것 같으면 더욱 더 노력해서 빨리 갈려고 해야 됩니다. 바르지 않는 길을 가게 될 것 같으면 반드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도의 길을 갈 것 같으면 도의 길에 맞는 바른 방법으로 가야 됩니다. 그게 부처님이 말한 '팔정도의 길'입니다.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른길로 가도록 하라.
그다음에 두 번째, 바른 길로 가더라도 험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그 험한 길도 하나의 대상으로서 받아들여라는 겁니다.
나는 바르게 바른길로 열심히 가고 있는데 왜 이렇게 나쁜 일들이 자꾸 일어날까? 아니면 뭔가 일이 잘 안될까? 험한 대상을 만났을 뿐이라는 거라. 어떻게 돌부리에 안 채이고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거라. 그런 것은 없다는 거라.
아무리 잘 닦아놓은 평탄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걸어가야 될 길입니다. 그 길은 자신에게는 처음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항상 가시덤불이 있고 돌부리에 채이게 돼있습니다. 험한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단지 그 바른길에서 만나는 험한 것들도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고 자꾸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또 넘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것을 넘어가지 못하면 또 다른 길로 빠져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도의 길로 가기 위한 세 번째가, 아무리 험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평온하면 그 길은 평탄한 길이 된다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걸어간 길이 가시밭길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가시밭길에 따라서 울퉁불퉁해지는 법은 없습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더라도 성자들과 부처님은 평온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걸어갑니다.
그럼 그 길은 험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평온한 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험한 길을 만나면 거꾸로 간다는 거라. 험한 길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거라. 마음이 험한 길에 따라서 마음이 험하게 출렁거리게끔 된다는 거라.
마음이 평온해지면 그길은 반드시 평탄해집니다.
화를 만났더라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버릴 것 같으면 그 화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끔 됩니다. 험한 길을 만났더라도 마음이 고요해져 있으면 그 험한 길은 나에게는 평온한 길이 돼버립니다.
탐·진·치 라는 각각의 좋지 못한 일들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은 그것에 따라서 요동치지 말고 항상 평온함을 유지하라. 그러면 그 탐진치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아니라 내가 가는 길에 방해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성자들도 평탄하지 않는 길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도의 길을 가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길은 갈만한 가치가 있다 하는 겁니다.
이게 「까마다 경」입니다. 점차적으로 수행해나가고 따라가야 될 길입니다.
실천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실천할 수 있는 길이고, 마음이 만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만족하게 살 수 있는 길이고, 마음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제어할 수 있는길이고, 도와 과의 길이 멀어 보이더라도 도와 과에 이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영웅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들을 헤치고 그 목표를 도달했을 때 영웅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실천하지 못하고,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길을 가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까마다 경은 그것을 부처님이 바르게 일러준 그런 경입니다.
여러분들도 각각에 따라서 내가 지금 현재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이런 방법으로 하고, 내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이러한 방법으로 하고,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이러한 방법으로 하고, 도와 과에 이르는 것이 멀다고 자꾸 느껴지면 이러한 방법으로 해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그에 맞는 결과가 나와서 마음이 점점 더 그 길을 따라가는데 기뻐하게 되고 그래서 최종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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