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수행하는 이유 「통나무의 비유경」 (20140524. 토요청년법회)

담마마-마까 2021. 5. 28. 21:06

https://youtu.be/MIEI1IaYDgo

* 수행하는 이유 「통나무의 비유경」 (20140524. 토요청년법회)

 

그런데 왜 수행들은 안 해? 수행하는 시간들에는 안 왔다가 법문할 때 되니까 우르르르 몰리는데 시간들이 잘 안나나? (수행자 대답) 법문만 훌쩍 듣고 갈려고? 그래. 그런 마음이라도 가지는 것도 감사해야지 뭐. 안 그렇겠나. 너희들 학생들이 뭐 놀러가기도 바쁘지, 와서 법문 듣는 일들을 별 하겠다고 생각을 하기야 하겠나.

그래도 시간이 되면 자꾸 수행을 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법문만 자꾸 들을려고 하면, 물론 그게 원인이 돼서 언젠가는 수행도 하고 그것이 자기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서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자기 먹을 거는 자기가 챙겨야 되는 거라. 자기가 챙길 줄 모르면 가까이 놔줘도 그게 있다는 것은 알지만 챙겨 먹지를 못해.

스님과 같이. 냉장고에 아무리 맛있는 거 있어도 꺼내먹을 줄을 몰라. 그걸 안 배워가지고. 누가 만날 차려주는 것만 먹고 또 내가 나가서 탁발해서 먹다 보니까 내가 챙겨먹을 줄을 몰라. 내 방에도 보면 선물이 뭐 영양제 뭐 잔뜩 있는데 못먹어. 챙겨먹는 버릇이 안 들어놓으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수행할 수 있을 때 수행을 해서 여러분들 것이 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돌파해나갈 수가 있게 됩니다.

 

자! 오늘은 경전 한 구절을 가지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기에 있는 게 태국 수코타이 사진입니다. 저기를 갈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보통 통상적으로 비행기 표를 끊어가지고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 그게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겠지? 그런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돼? 태국까지 못가고 일본까지 갈 돈이 있으면 일본까지 갔다가, 일본에서 접시 몇장 좀 닦아서 돈 벌어가지고 다시 또 어디까지 가고, 이런 방법도 있을 거고. 또 어떤 경우에는 보트 타고 가는 수도 있을 거고, 안 그러면 걸어가는 방법이 있을 거고,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시간적으로는 많이 차이가 나고 하더라도 저기에 가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저기에는 가겠지. 이 생에서 못가면 다음생에라도 가겠지. 그렇잖아요.

그런데 저기에 가야 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엉뚱한 데로 가버립니다. 일본 가서 접시 닦다가 그냥 접시 닦는 공장장으로 그냥 살아버립니다. 또는 걸어가다가 편안하고 좋은데 있으면 거기서 그냥 머물러버리게 됩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적어도 여러분들은 부처님 법을 배우고 또 수행하면서 목표는 잃어버리면 안돼.

뭔 목표들 가지고 있어요? 왜 스님한테 와서 법문 듣고 수행 지도받고 해요?

왜 그래? (수행자 대답 :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어서 수행합니다.)

음, 평온함 고요함 마음이 항상 청정하게 유지를 하는 것, 범천과 같은 생활이다 이. 그것도 좋은 방법,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깨달음의 상태도 그런 마음 상태일 것이고, 또 그렇게 될려고 부단하게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목표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목표들은 뭐가 있어요? 왜 공부들을 하는 거라? 목표도 없어? 말을 못하겠어? (수행자 대답 : 행복하게 살려고 공부합니다.)

음, 행복하게, 행복한 삶, 그냥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만 계속해봐. 그럼 행복할 거라. 음, 맞아. 그것도 맞는 부분이지. 행복한 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것들이라. 그래서 행복하지 않는 것들은 하지 말아야 되고, 행복하지 않는 원인이 되는 것들은 하지 말아야 되고.

남에게 나쁜 말을 해가지고 지가 행복할 수는 없겠지. 나쁜 마음 품어서도 행복할 수는 없는 거고. 나도 행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하지 않게 되는 거라. 그럼 너는 앞으로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말을 할 때나 행동할 때나 마음을 가질 때 행복하지 않은 것들을 하면 안 돼. 그게 목표니까! 그러다 보면 어쨌든 선한 일들만, 선한 말들 선한 마음들만 가지게 되겠지. 그러니까 저울추가 요쪽으로 선한 쪽으로 쭉 기울여져서 살도록 그렇게 되도록 해야겠지.

 

물론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을 가지는 것,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 그것도 하나의 목표가 되기는 하는데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죠? 부수적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은 됩니다. 깨달음에 이르고 나면 행복한 생활을 사람이 되는 거고, 깨달음에 이르고 나면 맑고 고요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부수적으로 얻어질 수는 있는 것들입니다.

 

부처님한테 누군가가 물어봤습니다.

"부처님, 어떤 분한테 내가 보시하면 좋겠습니까? 어느 분한테 보시를 올리면 가장 공덕이 크겠습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어떤 분일까?

 

첫 번째가 부처님과 같은 아라한. 완전하게 깨달은 사람에게 보시를 올리는 것.

쉽게 말하면 그런 분들은 집착이 없는 분이라고 경전에 나와있습니다. 그런 번뇌를 완전하게 제거를 해버렸기 때문에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라. 설혹 내걸 뺏어가든 아니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거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거라. 집착 안 할 수 있나? 쉬운 건 아니겠지? 그래도 집착하지 않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아라한들 그런 분들한테 공양 올리고 하면 최고 좋다.

 

그런데 부처님, 그런 분이 내 옆에 없으면 우짭니까? 그럼 누구한테 올려야 됩니까?

그렇게 하니까 두 번째로 제시한 게, 항상 알아차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뭘 하든지 내가 뭐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똥 싸면 똥 싸는 줄 알고, 밥 먹으면 밥 먹는다고 알고, 걸어갈 때는 걸어간다고 분명하게 알고,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는 분에게 공양을 올리라.

그것도 쉬운 거는 아니지? 깜빡깜빡 놓칠 때들이 많지? 너는 깜빡깜빡 놓치는 것이 아니고 깜빡깜빡 알아차리는 거지? (ㅎㅎㅎ)

그지? (수행자 대답 : 예!)

음, 큰일이다. 우짜노. 그래도 그 시간을 깜빡깜빡하는 시간을 더 늘려주려고 자꾸 노력해야 돼. 그래서 그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도록.

 

그래서 그렇게 항상 알아차리는 사람이 그런 분이 있으면 참 좋은데 또 그렇지도 않단 말이라. 그런 분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세 번째로 얘기한 것이, 나의 것이라는 집착을 안 하는 사람들.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적어도 여러분들 그거는 할 수 있지? 아직은 여러분들 가진 게 적어서, 그렇잖아. 대학생들이고 학생들이니까 가진 게 적으니까 내 거라고 하는 것은 크게 많이 없을 거라고 봐. 그래서 누가 주변에서 뭐 좀 빌려달라 할 거 같으면 금방 빌려줄 수가 있고, 누가 또 필요하다고 할 것 같으면 금방 줄 수도 있고 그렇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그 집착이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손해와 이익을 자꾸 구분하게 되면서 손해나는 짓을 안 할려고 그럽니다. 나의 것에 대한 집착들이 더 많아집니다.

 

적어도 이걸 목표로 해도 괜찮습니다. 이 세 가지를!

난 항상 알아차리는 자가 되겠다.

번뇌가 아예 소멸된 자가 되겠다.

나의 것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없도록 하는 자가 되겠다.

그걸 목표로 해서 그 방향으로 쭉 나아가도 관계는 없습니다.

적어도 그런 분들에게는 공양올릴 가치가 있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또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부처님이 설한 경이 있습니다. 뗏목에 대한 비유,

'통나무에 대한 비유'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통나무가 강에서 저쪽 바다로 잘 떠내려가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

바다라고 하는 것은 경전에 비유하기를 바다는 '윤회'를 뜻하기도 하고, '닙바나'라고 하는 '열반'을 뜻하기도 합니다. 경전이 뭘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조금 달라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좁은 데서 더 넓고 걸림이 없는 곳으로 갔으니까 윤회보다는 열반이라고 봐야 되겠죠, 닙바나.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이 통나무가 갈 때 장애요인들이 뭔가 하는 것을 부처님이 비유로 설한 것이 있습니다.

부산 같은 경우에는 낙동강을 따라서 쭉 가서 바다로 빠지려면 낙동강 강 이쪽 기슭이 있고, 요쪽 기슭이 있을 겁니다. 이 통나무가 이쪽 기슭에 가서 콕 쳐박혀도 안 되고 저쪽 기슭에 가서 콕 쳐박혀도 안됩니다. 강 이쪽 저쪽을 피해야만이 물을 따라서 흘러내려가지는 겁니다.

 

그래서 맨 첫 번째 해야 되는 것이, 강 이쪽 언덕 또 저쪽 언덕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통나무는 부서지고,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바다까지 가는 시간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통나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 자신을 얘기합니다. 여러분들 몸과 마음들이라는 거라. 여러분들이 다쳐서 갈 수 있는 상황이 못돼버리면 바다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쪽 기슭과 저쪽 기슭, 그걸 경전에서는 뭐라고 비유하냐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대상들이라고 합니다.

눈이 있으면 보이는 대상이 있고, 귀가 있으면 들리는 대상이 있고, 코가 있으면 냄새 맡는 대상이 있고, 혀가 있으면 맛보는 대상이 있고, 이 몸이 있으면 접촉하는 대상이 있고, 마음이 있으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망상이나 이런 대상들이 있다는 거라. 그 대상 어디에도 걸리지 말아라는 거라.

 

어떤 스님이 지금 스님이 입고 있는 이 승복을 보고, 이게 지금 태국제거든. 바느질이 다른 것에 비해서 상당히 탄탄하게 잘되어있어. 그래서 잘 터지지가 않아. 잘 해지지가 않아. 이걸 이렇게 보더니 “스님, 가사 참 질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만지는 거라. 탐난다는 거지. 보여지는 대상에 탐심을 일으키게 되는 거라. 좋으면 그렇게 되는데 만약에 꾀죄죄하게 더러운 거면 어떻게 돼? 보여지는 대상에 대해서 싫어하고 피할려고 하고 안볼려고 하게 되는 거라. 눈에서 보여지는 이 대상, 대상으로 인해서 나는 이미 마음에 딱 걸려져 있는 거라. 좋고 싫다는 것이 딱 걸려져가 있는 거라. 예쁜 거 보면 가지고 싶지? 이미 보여지는 대상에 마음이 거기에 딱 걸려버리는 거라.

 

강 이쪽 기슭에 딱 걸려가지고 내려갈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거라. 그거 하지 말아라는거라. 부처님이.

어? 좋다 싫다는 것이 일어나면 '아! 좋다'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라는 거라. 싫다는 것이 있으면 싫다는 것이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좋고 싫다고 하는 것을 떠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이게 좋다 하는 생각이 있으면 이걸 가지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해서라도 이걸 가질려고 한다는 거라.

그래서 그 스님한테 옷하나 뺏겼어. 줬어. 안 주면 두고 두고 “아, 좋다” 하면서 이럴까 봐서.

 

그런데 주고 나서도 줬다는 생각을 안 해버리면 나는 뺏긴 게 아냐. 나는 똑같애져버렸어. 그런데 그 스님은 이미 거기에 딱 걸려있기 때문에 새로운 거 하나 좋은 걸 얻었기 때문에 좋다는 것에 딱 걸려서 인제는 내려갈 생각을 안 해. 바다로. 아마 모르긴 해도 그것도 아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시간 다 보내게 될 거라.

그게 없었으면 아무런 번뇌가 안 일어났을 건데, 그놈의 것 좋은 생각이 일어나는 바람에 좋은 거 하나 새로 가져가지고 그거에 딱 걸려 있는 거라. 그러니 또 색깔이 틀리니까 여기에 맞는 거 또 뭐 티도 사야 되겠다, 밑에 것도 어떻게 하면 하나 또 얻을 수 있을까? 또 망상 피우게 되는 거라.

 

꼭 여러분들 깔맞춤 한다고 그러지? 예쁜티 사놓으면 밑에 바지도 하나 또 깔맞춤 할려고 하고, 그거 없었으면 그럴 생각도 없었을 건데. 좋은 메이커 하나 뭘 구해놓으면 그거에 맞는 다른 거 또 좋은 메이커 구할려고 할 거라.

왜 보여지는 대상에게 그렇게 매달려가지고 있느냐는 거라. 그게 무슨 이익이 있다고. 자신을 오히려 번잡스럽게 만들 뿐이라. 번잡스럽지 않아도 될 걸 갖다가 왜 스스로 지옥으로 들어가느냐는 거라.

 

그다음에 보는 대상인 눈. 눈은 뭐 괜찮을 거 같애요? 뭔가 예쁘다 하는 것들은 뭐로서 예쁘다고 하는 거라. 눈에 보였기 때문에 예쁘다고 하는 거라. 그러면 그 예쁘다는 마음이 일어난 것이 안 좋다 해가지고 이 눈을 파내버릴 거라?

한국 스님들 그런 스님들이 있어. 연비한다는 거 꼭 마찬가집니다. 이 몸에 대해서 이 몸은 하잘 것 없는 거기 때문에 이 몸은 가짜기 때문에 진짜를 개발하기 위해서 연비 하는 거라.

그럼 여러분들은 눈을 통해서 예쁘다고 했으니까, 그 눈을 파내야 되는 거라. 파낼 용기 있어요? 없지.

그러면 눈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은 보여진다고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거라. 마음을 어디에다 두면 눈을 통해서 보여지는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좋다 싫다 하고 집착하는 마음이나 밀쳐내는 마음이 없을까?

 

눈에다 두라는 거라. 눈에다! 보여지는 저 대상에게 자꾸 두니까 마음이 그쪽으로 가버리니까 당연히 눈을 통해서 그 대상이 들어오게 되는 거라. 알아차림을 여기 안 두고 있고 엉뚱한 데다 두고 있으니까 어떻게 돼? 그걸 보고 눈에서 마음에서 아, 예쁘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거라. 알아차릴 대상을 여기에다 둬봐.

저 대상이 와서 맺히도록 여기에다 둬봐. 그러면 보여진다 하고 알아차릴 것 같으면 적어도 그 보여지는 대상에 대해서 예쁘다는 생각은 안 일어나. 왜 마음을 엉뚱한데 알아차림을 둬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을 집착하는 마음이나 싫어하는 마음들을 일으키고 있느냐는 거라.

 

눈을 파내야 될 것이 아니고 마음을 여기에 두어야 되는 거라. 먹고 있을 때는 혀에다가 입에다가 마음을 둬야 되는 것이고, 냄새 맡을 때는 코에다 둬야 되는 것이고, 소리 들릴 때는 소리를 말하는 저 앞에 사람에게 두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내 귀에다 마음을 두어야 되는 거라. 그래야만이 그게 그냥 들리기만 하고 보이기만 하고 맛보는 것만 알게 되는 것이지, 맛보는 것에 인해서 ‘맛있다,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거라.

보여지는 대상, 보는 눈, 이것은 이렇게 해서 자기가 거기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된는 거라. 걸려버리면 거기서부터 나아가는 길들은 점점 더 느려지게 되는 거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목표를 잃어버리는 거라.

미식가들은 맛있는 것이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어디 가서라도 그걸 먹을려고 합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을려고 얼마나 또 오래살려고 그러느냐는 거라.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걸 목적으로 삼아버린다는 거라.

 

왜 돈을 버는데? 대부분 목적을 얘기를 못합니다. 이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또는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보시하기 위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목적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런데 그걸 잃어버린 사람은 무작정 합니다. 무작정 돈만 벌려고 합니다. 뭐 할지도 모르고. 나중에 그러다가 지 하나도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죽음을 맞게 되는 거라.

걸려지는 대상, 이쪽 기슭과 저쪽 기슭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 또는 여섯 가지 감각 대상 거기에 얽매여지지 않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여러분들은 똑바로 바다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그 통나무가 물에 가라앉지 않으면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어떨 때 물에 가라앉을까? 물의 부력보다도 통나무가 그 부력을 견딜 수 있는 무게가 더 무거우면은 당연히 가라앉겠지. 쉽게 말하면 나무가 오래 돼가지고 물을 많이 먹었다. 그럼 당연히 통나무는 가라앉게 되는 거라.

여러분은 언제 가라앉을까? 언제 가라앉을 거 같애? 어떤 대상에 대해서 집착하게 되면 가라앉아버립니다. 자기는 사실은 별거 아닌데, 자기가 잘났다고 해버리면 가라앉아버립니다.

 

집착한다는 것은 어려운 거 같으면서도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주는 버릇들을 한번 자꾸 해보십시오. 그러면 집착 안 합니다. 줘버리라는 거라. 그러니 주는 것이 그게 얼마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그 행복을 모르니까 자꾸 집착하는 거라. 요즘 그런 거 많이 하죠. 재능기부라 해가지고, 자기가 잘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들입니다. 거기에 맛이 들린 사람은 계속 할려고 그럽니다. 거기에 돈이 생겨, 뭐가 생겨, 아무것도 안 생기는데도 너무나 좋거든. 나눠준다는 것이. 그러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라. 아! 전에는 내가 이렇게 행복한 적이 언젠가 하는 걸 생각할 정도로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는 거라.

 

나누어주는 것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되는 작용, 나눠주면 나눠줄수록 집착하는 것들은 적어진다는 거라. 재능 기부하는 사람들 재능만 기부할 거 같애요? 다른 것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재능 기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에 대한 집착도 더 엷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집착을 덜 하게 되요.

그런데 집착하는 사람들은 안 그래요.

이것에 대해서 집착할 것 같으면 다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게 되는 거라.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뿐 아니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집착을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거라.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건데도 그냥 컵 하나 깨면 금방 신경이 날카로워져 버립니다. 그전까지 이 컵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못미치고 의미가 없는 컵이었는데도 집착하는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것들이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그것만으로도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이 컵이 하나 깨지는데도 나는 이미 화를 내고 있다는 거라.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마음에 달라붙는 본드와 꼭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안 떨어집니다. 하나가 집착을 하게 되면 또 다른 것들은 또 다른 형태로써 집착하는 마음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라. 반대로 나누어주는 버릇을 해놔놓으면 이게 떨어져 나가면 요게 떨어져나가는 거와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무게가 가벼워져야만이 바다로 잘 흘러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집착하는 것들은 버려버릴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왜? 여러분들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여러분들 자신 아주 보잘 것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나 그런 착각을 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아주 보잘 것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뭐 그렇게 여러분들 내세울 게 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비방할 게 있어?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더 못한데. 자신이 훌륭하다 뛰어나다 하는 생각을 아예 버려버려야 됩니다.

 

그다음에 모든 존재들은 평등하다 하는 거라. 평등하지 않은 인간은 없습니다. 또 평등하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설혹 그것이 아주 작은 생명체라고 할지라도 나와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생명체도 살려고 하게 되고 괴롭힘 당하지 않을려고 하게 됩니다. 그 생명체도 오래도록 살려고 하고, 그 생명체도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라게 돼있습니다. 나와 똑같습니다. 내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또는 망상을 많이 하게 되면은 대부분 집착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리석어지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에. 망상 많이 하는 사람치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망상 많은 사람치고 뭔가를 이루어놓은 사람도 없습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 지금 해야 될 게 뭔지를 나둬버리고 망상하고 있는 거라.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내 할 일들은 금방금방 내 앞에서 사라져가고 있는데도 그거 눈치 못채고 있는 거라.

 

집착하지 않는 성향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자꾸 가벼워져야 됩니다.

 

항상 스님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모아두는 것, 또 집착하는 것 이런 것은 하지 말아라. 모아두는 것은 쓰레기를 모아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요할 것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집착할 거 같으면 내 것이 될 거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착각한다는 거라. '모아두면은 나에게 유익할 것이다.' 붙잡고 있을 거 같으면 이것이 내 것이 될 것이라 합니다. 자기 것이라는 것조차도 없는 존재인데 자기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는 게 참 잘못한 것이라는 거라.

니도 애인이 니곁을 떠나가겠다고 말하면 붙잡지마. (수행자 대답) 없재? (ㅎㅎㅎ)

없으니까 쉽게 그렇게 얘기하지.

누군가가 내 곁에서 떠나간다 할 거 같으면 그것도 붙잡을 성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내줘야 되는 것들이지. 또는 내 곁에서 나의 물건이 없어진다 해서 그거 붙잡을 성질이 아닙니다. 붙잡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건 다시 또 나에게 돌아올 인연이 되면 돌아오게 될 것이고, 또는 더 좋은 조건이 돼서 더 좋은 인연들이 만들어지는 것들이라는 거라. 단지 집착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병폐들을 분명하게 알아라는 거라.

 

무거워져버리면 통나무는 가라앉아버립니다.

여러분은 붙잡으면 바로 거기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성장하는 것들은 딱 정지해버립니다. 그걸 분명하게 알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그 뒤에 것은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 문답 >

수행자 질문 :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사람에게 잡혀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스님 : 그 사람이 여러분을 집착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거기에 사로잡히질 않습니다. 그 사람이 붙잡든 말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돼. 여러분들은 밖에 마음을 두고 마음을 써야 될 것이 아니고, 지금 내 마음에서 집착하는 마음이 있는지, 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는 것들만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하고 두 번째 하고 얘기할 때, 눈은 볼 때는 여기에 마음을 두어야 되는 것이지 밖에 둬서는 안 되는 거라. 저 사람이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거기에 가있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가있어야 됩니다.

 

수행자 질문 : 집착을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집착을 안 하려고 하는 것에 몰입하게 되면 그것도 집착이 아닌가요?

스님 : 맞습니다! 집착하지 않을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집착이 됩니다.

그런데 집착하지 않을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은 언제든지 마음은 집착하게끔 돼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도인이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도인 흉내 낼려고 하면 안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아직 마음이 자유롭게 돼있는 법을 알지도 못하면서, 뭔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뭔가 발을 떼는 노력조차도 그걸 집착이라고 판단해버릴 것 같으면, 자기는 아직 도인이 되지도 않았으면서 지 혼자서 이미 도인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라.

도인입니까? 아니라는 거라. 그러면 도인이 아니면 도인이 아닌 걸 자기 상태를 알고 자기가 이거는 노력해야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지, 그것조차도 집착이라고 판단을 해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

그게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는 부분입니다.

 

주변에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그런 상태에 이르르지 않았으면서도 그런 상태라고 착각하는 것, 또는 그런 상태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다” 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스님들에게 가장 큰 죄 네 가지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자기의 상태를 거짓되게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 “나는 도인이다” 하고, “나는 깨달았다” 하고, 깨닫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스님들은 옷을 벗겨가지고 쫓아내버리는 벌을 당합니다. 가장 큰 죄악이라는 거라.

쉽게 말하면 자신의 상태를 어떠한 경우든지 속이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분명하게 자기 자신이 알아야 된다는 거라.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그걸 자신이 덮어버리고 도인인 채, 아니면 집착이 없는 채 한다고 해서 집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집착이 있다고 한다면 아, 내가 집착이 있다고 분명하게 알고 집착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 나는 요렇게 요렇게 하겠다 하고 그 노력들은 해나가야 되는 거라. 그러니까 말로만 가지고 장난치려고 해선 안돼. 그게 오히려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수행자 질문 : 집착을 사람이 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단체적으로 제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으면 해야 되는 의무감이나 해야 할 일들이 있잖습니까? 거기서 제가 강요당하는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스님 : 손해본다는 생각을 가지면은

수행자 : 아니 손해는 아닌데요

스님 : 그럼 그냥 해. 집착하는 것이 자기한테서 집착하는 마음만 없으면은

 

수행자 :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거기서 내가 벗어나고 싶은데 그사람이 집착하는 느낌에서 벗어나버리면 질타와 이때까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이런 것부터 해서

스님 : 그거는 그 일이고, 그리하더라도 그 대상이든지 아니면 그 단체가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또 이렇게 계속 집착하는 상태로 만들어준다, 그걸 내가 극복하고 견디어나갈 힘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나는 거기서 빠져나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그속에서 똑같이 집착하게끔 되고 또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 똑같은 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럴 힘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속에서 집착없이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럴 힘이 없을 거 같으면 당연히 거기서 빠져나와야 됩니다.

 

수행자 : 빠져나왔을 때에 일어나는

스님 : 그것은 자기 자신이 빠져나와야 될 때는 그것을 감수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경제적인 부분이든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불리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감수해야 될 부분입니다.

빠져나왔을 때의 이익이 그 감수할 부분까지도 상쇄할만한 충분한 값어치는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게 값어치가 없다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빠져나오지를 않는 겁니다.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은 거기서 오는 이익들은 경제적인 이익이나 다른 이익들이 없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그동안에는 나는 항상 좋습니다.

 

내 인생을 살면서 왜 내가 내 맘대로 내가 편안하게 살고 즐겁게 살지를 못하느냐는 거라. 그런 사람들하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은 즐거워.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하고 있을 때는 내가 무슨 경제적인 이익이나 이런 것들은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시간이 괴로운 시간인데 왜 자기 인생을 괴롭히고 있느냐는 거라.

빠져나오는 것이 훨씬 자기에게는 더 큰 이익이 있습니다.

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