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백신 -괴로움, 번민이라는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20141114)
인류는 역사 이래로 두 가지의 큰 고민과 함께 인간사를 구성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두 가지의 고민은 육체의 병과 마음의 병입니다. 육체의 병은 과학이나 의학의 발달에 의해 오늘날에는 불치라는 암까지도 정복하려고 하기에 이르렀지만, 마음의 병에 관해서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그때와 거의 변함없이 지금도 동일한 상태로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의 병은 인류 전체뿐만 아니라 불교의 입장에서도 모든 생명체를 괴롭힐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마음의 문제라고 하면 우리는 곧 정신적 문제를 생각합니다. 마음의 문제도 정신의학의 영역에서 오늘날에는 또한 급속한 진척을 보이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문제란 마음의 괴로움, 고민, 슬픔, 분노 등 통속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이기 때문에 만족감, 애정, 흥분 등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탐욕, 분노, 무지, 질투, 원망, 불만, 불안, 공포, 무기력, 나태, 스트레스, 싫증, 초조함, 갈등, 불쾌감, 수치, 아만심, 실망감, 열등감, 완고함, 피해망상, 과대망상, 조울증, 긴장, 야망, 불신, 후회, 죄악감 등 무지하게 많습니다, 모두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마음의 병에 대해서 「마음의 오염(더러움)」이라는 의미의 「번뇌」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 「번뇌」에는 1500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오염(더러움)」이 마음의 병을 만든다고 하면, 1500가지의 「오염의 조합」에 의해서는 마음의 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됩니다.
「신체의 병으로 골치를 썩이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지만, 마음의 병에 골치를 썩이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만큼 「마음의 더러움」의 문제는 이 세상을 사는 인간에게 최고로 중요한 일로, 마음이 어떤 식으로 해서 「번뇌」라는 세균에 감염되어 가는지를 고찰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더러움은 어디서 발생하여, 어디에서 당신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일까요?
신체의 병의 경우는 외부로부터도, 내부로부터도 원인이 발생하지만, 마음의 더러움은 당신의 내부,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것 외에 원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체와 생명체의 존엄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와 외부(환경)의 존재를 관찰하여 알 수가 있지만, 물체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마음」이라고 하는 기능인 것입니다. 모든 감각 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로부터 마음은 자극되어 「느끼고, 알고, 인식하고, 존재감‥」이라고 하는 진행과정을 거쳐서 판단해 갑니다. 정보 그 자체는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나 마음을 맑게 하는 작용을 하는 어떤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정보에 자극되어 마음을 더럽히는 것도, 맑게 하는 것도 모든 것은 자신의 생명체의 독자적인 판단, 태도에 맡겨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앞에 보석을 두었다고 합시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도 「와! 예쁘다」 「아! 갖고 싶다」 「비싸서 살 수 있을까?」 「값비싼 저것 한 개만 있어도 부자가 될 텐데..」 「이런 것이 뭐가 좋다고 그럴까?」 「음, 보석에는 관심 없어」 「도둑맞지 않게 조심해야겠구나!」……. 시각이라고 하는 감각 기관이 여러분에게 가져온 정보로부터 여러분의 각각의 마음이 판단한 감상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가져옴에도 불구하고, 보석이라고 하는 물체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사가 없습니다. 감상은 여러분 각각의 마음의 판단에 의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상이라는 것은 정말 의도적인 마음을 움직일 의사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까요?
예를 들어 책, 음악, 영화, 학문, 그리고 또 지금 이렇게 여러분이 듣고 있는 설법 등은 어떻습니까?
좀 더 다른 예를 들면 어느 미인이 당신을 유혹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했다고 합시다.
유혹당해? 말아? 혹은 그 미인을 싫어해버릴까? 유혹되지 않기 위해 다른 일에 마음을 집중할까? 등 당신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흐트러집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번뇌는 밖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유(상념, saṅkappa)입니다. 밖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은 “욕구”가 아니다.」
그럼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면 마음의 더러움을 막을 수 있을까요? 마음의 더러움이 되는 원인을 배양하지 않고 끝나는 것일까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의 차단은 우선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비록 이론상으로 정보를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해도, 더러워진 상태의 「마음」은 그 더러워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은 다른 정보에 자극되어 「마음」으로 식별 작용을 일으켜, 그것에 따라 새로운 애착, 증오라는 감정이 싹터서, 더러움을 차례대로 배양해 버리는 마음의 병을 만들어 갑니다.
마음의 더러움은 그 더러움의 종류에 의해 감각기관에 의해 초래된 정보를 왜곡된 형태로 색안경을 낀 상태로 독촉하고 끝냅니다. 그 결과 마음이 그 식별 작용에 저항할 수 없게 되어 동요해지고, 더러움도 심해져 병에 빠져들게 됩니다.
식별 작용의 자극을 받은 마음을 항상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 정보를 접촉하는 그것이 마음이 건강한 유일한 치료법이기에, 마음을 수련하는 방법은 위빳사나 수행법 밖에 없습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를 보는 습관을 이 수행법으로 몸에 익혀야 합니다. 모든 외부의 정보에 대해서, 또 식별 작용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사띠(Sati)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번뇌라는 비가 스며들지 않게, 잘 이은 집의 지붕처럼 끊어짐 없이 사띠(Sati)하는 마음을 제대로 두는 것이다. (Dhammapada No. 13 &14)
● 모든 외부의 정보를 마음으로 접촉할 때 우선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 마음의 병은 사람의 고민, 괴로움을 증가시키는 근본이다.
• 다섯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는 마음을 격렬하게 하여, 마음에 일어나는 사유나 상념에 의해 동요되어 더러워진다.
• 개념이나 외부의 정보 그 자체는 마음을 더럽히는 일도, 맑게 할 수도 있다.
• 마음의 모든 고민, 괴로움의 원인은 「우리 마음속」에 있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 항상 자신의 신체와 마음의 번민을 알아차리며(Sati) 자신을 지켜, 청정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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