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빈곤함 (20140626)
어제는 밀양에 있는 태국 스님이 패스포트 기간 연장하는데 내 사인이 필요하다 해가지고 서류 만들러 밀양에 갔다 왔었어요. 가다 보니까 전화가 한군데가 왔는데, 통도사 옆에 있는 어떤 절에 전에는 가서 법문을 자주 해줬어요. 그러다가 밖에 쫓아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가지고 중단을 했거든. 그런데 어제는 전화가 와서 "스님, 감자 한 박스 보냈습니다. 감자 좀 맛있게 드세요" 하고 얘기하더라고.
그런데 목소리가 영 풀이 축 죽어있어요. 그래서 왜 무슨 일 있느냐 하니까 뭐 별일은 아닌데 주지스님이 만날 돈만 생기면 홀라당 가져가서 써버려싸서 절에는 만날 빚만 자꾸 생긴다는 거라. 잘 계시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면 무슨 지금은 한창 백중들을 하지, 아마. 뭐 하고 나면 홀라당 가져가서 써버리고 또 와서 홀라당 가져가고 하니까 의욕이 없다는 거라 뭘 해도. 그러면 그렇게 힘든데 뭐하러 나한테 감자를 보냈느냐 하니까, 그래도 스님한테 보내고 하면 기분이 좋다는 거라.
왜 그럴까? 의존해서 그렇습니다.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대로 잘 해주면 좋은데, 주지스님이 열심히 절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할 것 같으면 보기 좋을 건데 그렇게 안 하니까. 또는 나는 인제는 가서 법문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감자라도 보내주고 나면 그래도 위안이라도 삼을라고 그러는 건데 그것도 의존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런데 거기까지 그쳤으면 그러려니 할 건데, 밀양에 갔는데 밀양에 있는 그 여래원이라는 절에 절을 관리하시는 보살님도 힘들어 죽겠대 거기도. 거 왜 힘드냐? 하니까 절에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하는데도 본인은 오히려 춥다는 거라. 뭘 해도 그냥 움추러들고, 춥게만 자꾸 느껴진다는 거라. 그래서 점심공양을 거기서 차려준 것을 먹고 나서, 물을 떠왔기에, 물을 어디서 떠왔냐 하니까, 거기는 물이 산에서 쭉 내려오는 물을 받아가지고 그 물로 먹는데, 그래서 저기 받아져있는 물에서 떠왔대. 공양은 다 했으니까 그럼 물 받는 데로 같이 가자 해가지고 가보니까, 산 쪽으로 절 위에다가 탱크를 두 군데로 해놨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여기 정수 탱크에 있는 물을 한번 먹어보자 해가지고 그 물을 떠달라 해가지고 먹었어요. 먹고 나서 그 위쪽으로 한번 올라가보자 해가지고 올라가 보니까
그것도 물이 흘러오는 길들을 잘 가꿔놔야만이 좀 깨끗한 물이 받아질 건데 그 위쪽으로 가보니까 좀 지져분해. 그래서 좋은 물 들어가게 여기 좀 같이 청소하자 해가지고, 수로는 그 사람들이 뚫고 나는 자갈 같은 걸 잘 정리하고 그러고 좀 있으니까 깨끗해져. 그걸 하고 나서 물어봤어요. 아직도 마음이 춥느냐 하니까, 인제는 기분이 좀 한결 낫다는 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이 움추러들고 또 마음이 힘을 잃어버리고 하는 것들이 많이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계를 받고 나면 스님이 만날 하는 거 있죠?
Sīlena sugatiṁ yanti, Sīlena bhogasampadā,
Sīlena nibbutiṁ yanti, Tasmā sīlaṁ visodhaye.
"실레나 수가띵 얀띠, 실레나 보가 삼빠다,
실레나 닙부띵 얀띠 따스마 실랑 위소다예" 이렇게 얘기합니다.
두 번째 "실레나 보가 삼빠다" 라고 하는 의미는 뭐냐면 "이와 같은 계를 잘 지킴으로해서 몸과 마음이 부유로워져라" 부유로워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은 잘할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런데 정신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꾸 기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기르지 않고 마음이 만날 빈곤하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스님, 외롭습니다. 스님, 춥습니다. 스님, 힘듭니다." 자기는 기를 생각은 안 하는 거라.
우리는 의존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물을 하나 먹었으면 물을 자기가 공짜로 먹었다는 생각은 안 하고 물 먹은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서 자기가 깨끗하게 하는 법을 알아서 더욱 가꿔나가게 될 것 같으면 마음이 스스로 부유해집니다. 아, 나도 깨끗한 물을 먹기 위해서 뭔가를 했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두 군데에서 의존하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빈곤해지는 것들을 예를 들은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빈곤해지는 것들이 대충 뭐가 있는가 하는 것들을 알아야만이 그다음에 마음이 부유로워지게 되는 거라. 마음이 만족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음이 부유해지고 마음이 만족할 줄 아는 '산뚯티' 라고 하는 것들을 하도록 하고,
오늘은 "마음이 빈곤한 것에 대한 것들이 뭐가 있는가" 하는 것들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스님이 인색함이라고 하는 거 한번 법문한 적이 있죠?
아까워가지고, 주기 싫어가지고, 내놓기 싫어서 인색해지는 것,
그것도 마음이 빈곤해지는 원인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인색한 것은 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경우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줄 줄 알아야 됩니다.
줄 때 마음은 빈곤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저축들을 많이 합니다. 내가 가진 것들 재능이든 재물이든 아니면 마음이든 그걸 다른 이들에게 준 것이 그것이 다른 데 갈 것 같애요? 그거 다 저축됩니다. 내가 행한 행위들은 내가 받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간 다시 돌아오게 돼있습니다. 노후를 위해서 또는 다음 생을 위해서 아니면 지금 현재를 위해서 저축해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색함을 벗어나는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가 저축해둔다는 것을 알 거 같으면 적어도 나는 인색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다음에 베푸는 것들로부터 오는 기쁨이나 행복감들은 참 큽니다.
여행 가보신 분들은 알지만, 인도나 이런 데를 가면 스님들이 볼펜이나 이런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가 얘들 오면 그걸 하나씩 나눠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그거 자꾸 그런데 길들여져가지고 안된다. 그런데 안 되는 거는 맞기는 맞는데, 줄 때 그 스님 표정을 보면 그 스님은 그렇게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도, 그리고 그거 돈 얼마 안 합니다. 그런데도 이걸 나눠 줄 때, 물론 '내가 저 아이들한테 나눠준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좀 잘못된 거지만, 나눠줄 때는 그거 다시 돌려받든다는 생각으로써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나눠주는 겁니다. 그럴 때는 대부분 보면 돌려받는다는 생각이라든지 아니면 '나'라는 생각은 않고 베푼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럴 때 스님들 얼굴 보면 되게 기뻐합니다.
조금 전에도 여러분들이 보시물을 바리때에다가 공양물을 올렸습니다. 스님에게 나누어 주는 겁니다. 그런데 나누어 줄 때 스님은 얼굴은 보지는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가지고 보시물을 보는 건 아니지만, 발우 속에 넣을 때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이당메 다낭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
"이와 같은 베풀어주는 공덕으로 닙바나에 이르는 조건이 되기를, 원인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합니다. 사실을 말하면 그것으로써 내 할 일은 다했어.
그런데 조금 더 바라면 그렇게 보시하고 베푸는 사람이 분명하게 알았을 거 같으면 내가 이걸 넣고 나서 되게 마음이 좋아야 돼. 기분이 좋아야 됩니다.
'스님이 저걸 잡숫고 우릴 위해서 법을 설하겠지. 저걸 잡숫고 우릴 위해서 더 나은 조건들 더 나은 행복들을 위해서 지도해주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게 기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스님 가까이 가지도 못하겠고 하니까 이걸 덜덜덜덜 하고 푹 집어넣든지, 안 그러면 빨리 집어넣고 갈려고 쏙 하고 지가 넣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한다든지 합니다. 그러면 주는 데서 일어나는 기쁨들은 안 일어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줄 때는 그러한 기쁨들이 일어나도록 해야 됩니다.
인색함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기쁨들이나 행복감이 일어날 때 '아, 이게 너무 좋구나' 해서 내가 마음에서 인색한 마음들이 자꾸 없어져 버리게 되는 거라.
그런데 그렇지 않고 뭘 자꾸 베풀어주는데도,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색함은 꼭 같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을려고 할 거 같으면 적어도 베풀고 할 때 기쁨이나 행복감들을 자꾸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또 베풀 때 해야 되는 것, 인색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가져야 되는 마음이 충족감, 충실하게 내 할 일을 이건 반드시 내가 해야 되는 일이다 하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냥 남한테 준다는 것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다' 반드시 해야 될 것들!
물론 부처님이 모든 생명들은 평등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실제로 평등하게 다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평등하게 대하지를 못합니다. 자기보다도 아래로 보든지, 자기보다도 높게 보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낮게 높게 아니면 평등하게 대하더라도 아주 잠깐 대하게끔 됩니다.
'나'라고 하는 개념들을 항상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 하더라도 내가 충족감을 가지면 적어도 모든 것들을 평등하게 대할려는 마음들은 일어나게 됩니다. 해야 될 의무라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우리 공양간 목요일날 그리고 화요일날 책임지고 있는 산향님 보면 자기도 힘들지, 안 힘들 이유가 어딨겠어요. 여러분은 편히 공양드시고 있는지는 몰라도 준비해온 사람은 저기 양산에서 무거운 거 들고 이까지 와가지고, 그리고 남들 수행할 때 지는 수행도 못하고 부엌에 가서 달그락 달그락 거리고 있어요. 그런데도 한번도 나 공양준비했으니까 나 칭찬해도 그런 소리 한번도 안 한다는 거라.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마음이야 안 오고 싶을 때가 왜 없겠어. 그리고 남들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왜 없기야 하겠어. 그렇지만 아, 선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을 가지는 거라. 그러면 그 시간은 반드시 할려고 한다는 거라. 다른 거 다 제쳐놔놓고. 그것이 반드시 내가 그걸 해야만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들을 잘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해야 될 일들 충실하게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고 미루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야 됩니다.
죽기 전까지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게 숨쉬는 겁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것은 숨 쉬는 거 알아차리는 겁니다. 죽기 전까지는. 그걸 열심히 해야만이 거기서 충족감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쁨들이 일어나고 '아, 내가 이 호흡을 알아차리고 호흡하고 있는 게 이렇게 소중하고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그럴 때는 누가 와서 나를 건드려도 별 화가 일어나지도 않아. 누가 이것 달라고 할 것 같으면 그냥 가져가 하면서 줘버립니다.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알아서.
자신이 해야 될 일들을 분명하게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에게는 이런 충족감들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인색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색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들은, 마음의 편안함을 자꾸 가지려고 노력하라 하는 것입니다.
편안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도 하기는 하겠지. 그런데 진척이 없고, 또 일상생활 할 때도 항상 불편하고. 마음 편안하고 고요하게 가지는 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닙니다. 나도 굉장히 어려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라. 그게 아니라는 거라. 내 할 일들만 할 생각을 하면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어제 저녁에 8시 반이나 됐나, 토요일날 법회에 오는 대학생 한 명이 왔어. 와가지고 질문을 하더라고. 질문을 하는데, 다른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해야 될 일들만 하면 되는데 남의 것에 너무 신경쓰고 있는 거라. 그것도 신경 쓸 게 뭐 있어? 남이 자기를 보고 뭐라 하든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화를 일으켜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화를 일으키는 건 자기 자신인데. 그럼 자기 자신이 해야 되는 것은 화가 일어나는 것만 알아차리면 됩니다. 남이 욕을 한 것들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리고 남이 뭘 하든지 간에 나둬버리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돼. 저사람에 대해서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다 그러면 가르쳐주면 돼. 자기가 할 일은 그거라. 그사람이 성적이 잘 나오고 안 나오고 하는 것은 그사람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 그사람이 가르쳐줬는데 보답을 하든 안 하든 그사람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일에만 딱 한정을 해서 열심히 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항상 고요합니다. 밖에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한 겁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게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하고 대인관계를 맺지 않는 것도 아니고, 또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고는 있지만 나는 내 할 일들만 하면 되는 거고. 자기 일만 열심히 잘하고 있을 때는 어떠한 경우도 마음은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그것으로도 인색함이 물러나게 됩니다.
인색함이 없어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들을 얘기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색함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행한 행위들 이것들은 나는 지금 저축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축할 걸 생각해야지 빼먹을 걸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빼먹어 버리면 항상 가난하게 돼버립니다. 마음이 빈곤해져버립니다. 악한 일들을 행하고 악한 말들을 하고 나쁜 마음을 먹는 것은 자꾸 곶감 빼먹듯 빼먹는 것들입니다.
탐·진·치가 없이 행하는 여러 가지 것들은 나는 저축하고 있는 것들이라. 부자라. 부자! 그래서 보가삼빠다(bhogasampadā)라고 그럽니다. 몸과 마음이 부유해지라는 것입니다.
그게 마음의 빈곤의 첫 번째 문제점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인색함으로부터 벗어나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빈곤해지는 원인 두 번째는 의존하는 것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아까 예를 들었던 것, 의존하는 것들! 두 경우는 의존하는 것들이 대부분 집착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의존들입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물소 위에 쇠파리가 있습니다. 그 쇠파리는 소를 의존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는 쇠파리에 의존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 나도 그건 모르겠는데 아마 상호의존하고 있을 겁니다. 서로 이익이 되기 때문에. 몸에 나는 바이러스나 이런 것들을 먹어주는 역할들을 하고 또 쇠파리는 그것을 영양분으로 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상호의존하고 살아가는 경우들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기생해서 의존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나무에 뭔가가 자라가지고 그 나무를 결국엔 죽여버리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호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기생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기생해서 사는 것도 아주 나쁜 것이지만, 상호의존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일으키면 의존하는 것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물 먹는 것 이건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 거 같으면 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뭔가를 해야 됩니다. 내가 이 책을 좀 쓰고 있다 할 것 같으면, 나무를 잘라가지고 하는 건데 내가 지금 이거를 쓰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나무를 하나 더 심어야 되는 거라. 그렇게만 마음을 먹어버리더라도 의존하는 것은 많이 감소가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는 거라. 그냥 빼먹을려고 그러지.
어쨌든 의존하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상호의존을 하든 기생해서 의존을 하든 의존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의존해야 되는 것은 그런데에 의존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의존을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바른 법을 의존해야 됩니다. 그게 기준점이 돼야 되는 것이지 다른 것들이 기준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의존하는 것들을 되도록이면 피하도록 하라. 그래서 돕는 일들을 자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보다도 못한 사람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힘써 행해서 그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것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들을 열심히 자꾸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의존하는 것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의존해버리면 마음은 빈곤해져버립니다. 아까 두 가지 예를 들었지만 나중에는 허무해져버립니다. 절을 위해서 열심히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보면 자기 자신은 공덕짓는 일을 아무 것도 못하는 거라. 그 좋은 조건을 만들어놔놓고 공덕짓는 일을 하나도 못해. 여기 와서 수행을 열심히들 하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수행의 공덕들을 얻어가지 못하는 거라.
법문 들으러 왔죠? 여기 대구에서 오신 분들은. 법문 듣고 나면 모르긴 해도 다 홀라당 가버립니다. 머리에 담았다가 그냥 그대로 나중에 가면서 흘려버리게 되는 거라. 그게 실제로 내가 수행을 통해서 하든지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되는데 까먹어버리는 거라. 그 공덕들을 가지지 못하는 거라.
어떤 것에도 의존을 하면 안됩니다. 법문에도 의존하지 말고, 다른 어떤 대상들에도 의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수행을 하고, 그리고 그 수행에서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법을 잣대로 삼아서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외에는 여러분들이 의존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도움을 받는 역할 밖에는.
의존하는 버릇들을 들이면 항상 뭔가를 찾아 갈구하게 됩니다. 가난하니까, 채워지지 못하니까 자꾸 채울려고 한다는 거라. 이 절 저 절 다니지 마. 대구에서들 오는데 여기 오지 말고,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해. 인터넷에 올라가니까 거기서 들으면 돼. 틀린 얘기하는 거 아니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인터넷으로 듣고 그리고 진짜 공덕 쌓을려고 할 거 같으면 와서 공덕을 쌓는 일들, 수행의 공덕이든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공덕을 쌓는 일들을 하라는 거라. 시간 들여서 왔다갔다 하지 말고.
마음이 빈곤해지는 세 번째 원인은 부족하다고 하는 것, 부족감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다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부족하게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들도 항상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더 노력할려는 마음이 있게 되는 거고, 그래서 수행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아니고 다른 것들로 인해서 부족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거는 과해서 그럽니다.
수행에서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더욱더 노력할려는 선한 마음들을 낼 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욕심을 내게끔 되기 때문에 악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일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항상 채울려고 하게 됩니다. 다 채워졌다고 해봐. 뭐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있어?
스님은 아마 사회생활 했으면 그랬을 거 같애. 딱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설정을 해서 그 설정이 채워지고 나면 안 할 거 같애. 그거면 충분히 내가 먹고, 물론 충분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으로 먹고 그리고 내가 생활할 수가 있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가난하게 보든 아니면 아주 하찮게 보든 그것은 내가 신경쓸 부분은 아닌 거고, 그러고 나면 나머지 시간들은 나는 다른 일들을 할 것 같애. 이미 채워져 있기 때문에, 채워져 있을 것 같으면 더 이상 채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 집중수행 있으면 거기 쫓아가서 집중수행 하고, 또 어디 다른데 내가 가서 뭔가 도울 일 있을 거 같으면 그거 도와주고, 내가 선한 공덕을 쌓고 수행을 하는 시간들을 보내지 다른데 보내지는 않을 거 같애. 그런데 스님이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실제로 그럴지 안 그럴지는 나도 몰라. 그런데 그럴 거 같애.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부족하다고 여기게 되면 실제로는 10원이 필요한 데도 100원이 오히려 부족하게 되는 거라. 그것은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라. 그럴 필요 없어요. 만족하고 살 수 있는 길들을 자꾸 택할려고 해야 됩니다.
가끔씩 스님은 그런 생각을 가집니다. 내가 그래도 참 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좋으냐. 나는 그래도 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적어도 태국에 가서 공부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들은 가지는 거라.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확신들을 가지는 거라. 나는 태어난 것만 해도 너무 좋아.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부족하다는 생각을 버려보십시요. '아, 태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그런 마음을 한번 가져보도록 해보십시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몸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떡할 거라? 법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을 거 같으면 어떡할 거라? 그런데 누리고 살면서 그걸 자꾸 부족하다고 그러면 뭐 우짜라는 얘기라?
여러분들은 이 모습으로 태어나서 법을 들을 수 있는 조건만 갖춰진 것만 해도 아주 복받은 것으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족하다는 생각도 마음이 빈곤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빈곤」은 이렇게 크게 여러 가지들이 있습니다.
빈곤의 원인은 반드시 제거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만족하다고 하는 원인이 되는 것들을 더욱더 만들어내야 됩니다.
오늘은 마음의 빈곤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제거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만족한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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