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마다 좋은날 (Bhaddekaratta Sutta) 1. (20140821)
··· 그걸 자료로써 스님이 그렇게 해놓은 거라.
물론 그중에는 법문에 있었던 내용들도 있고, 또 새롭게 첨가되는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언젠가는 법문하려면 내용이 조금 첨가되는 부분들이 많겠지만 그건 여러분들에게 참고자료로써 드렸고, 이 다섯 가지 노력의 부분은 평상시 때 쭉 해야됩니다.
도와 과, 닙바나에 이르기 위한 것뿐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이고 이 다섯 가지는 꼭 노력해야 되는 부분들이니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거 열 장 정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어. 경전에는 딱 한 대목밖에 없거든. 이 페이지에 있는 다섯 가지만 돼 있는데, 그걸 현대말로 바르게 풀이를 하고 그 의미를 쓰다 보니까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참 많이 쓰는 것,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하는 겁니다.
'밧데까랏따(Bhaddekaratta)'라고 빨리어로 얘기하는데, "어떻게 하면 날마다 좋은날이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2회에 걸쳐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게송이 뭐냐 하면 읽어드릴게요.
「과거를 적극 쫓아가는 일 없이, 미래를 바라는 일 없이,
과거는 벌써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현상을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관찰해서,
요동하는 일 없이 동요하는 일 없이, 그것을 알아차리면 지혜로운 자가 된다.」
하는 것이 첫 번째 게송이고
두 번째 게송이
「오늘이야말로 열심히 힘써야 되는 것이지, 누가 내일 죽을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오늘 힘쓰는 자는, 죽음의 대군이 다가온다 해도 고민하는 일이 없다.
밤낮을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힘쓰는 자,
그자는 확실히 날마다 좋은 날이다.」
하는 게송입니다.
쉽죠? 그런데 날마다 좋은날 되려면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첫 번째 구절이 과거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과거에 집착 안 하고 있습니까? 힘들죠? 그게 과거에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이든, 과거에 맛있는 걸 먹었던 그 느낌에 대한 집착이든, 아니면 어떤 생각에 대한 집착이든, 뭐든지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만 집착을 합니까? 주변에 것에도 다 집착을 합니다. 너는 옛날에 공부 잘했는데 왜 요모양 요꼴이냐, 그것도 과거에 대한 집착이라는 거라.
경전에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화내는 일 없이 항상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어느 외도가 이 사리뿟따 존자를 시험하려고 탁발하러 걸어가는 사리뿟따 존자를 뒤에서 몽둥이를 가지고 탁 두들겨 패버렸어요. 머리가 터져갖고 피가 주르륵 날 거 아니라? 그럴 것 같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뭐고? 하면서 돌아보기라도 하는데 사리뿟따 존자는 그냥 가만히 걸어가는 거라.
그래서 두드려 팬 사람이 성질이 나갖고 쫓아가가지고 사리뿟따 존자를 세웁니다. 그러니까 사리뿟따 존자가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 처음 보는데요. 처음 봤지. 사리뿟따 존자하고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때사 이 사람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과연 당신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이유 없이 두드려 맞았으니까 그렇게 했을 때 당신이 화를 내고 있는지 안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두들겼다 하고.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지금 누구하고 이야기하고 있느냐는 거라. 1분 전에 두들겨 맞은 사리뿟따 존자하고 얘기하고 있는 거라, 아니면 지금 현재 이 앞에 서 있는 1분 후의 사리뿟따 존자하고 얘기하고 있는 거라. 지금 현재 사리뿟따 존자하고 얘기하고 있거든. 1분 전에는 이미 지나간 과거라는 거라.
사리뿟따 존자는 물론 아픔을 안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아픔을 느끼지만 '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피가 난다고 하더라도 크게 뭐 뇌진탕 걸릴 정도는 아니고 내가 놔둬도 피는 자연스럽게 멎게 되고 거기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싶을 거 같으면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은, 탁발하러 가는 길이면 그냥 걸어가면서 탁발하러 가는 거라. 그게 지금 해야 될 일이라는 거라. 그래서 자기는 ‘음, 아픔이 있구나’ 하고 알고 누군가 때린 것도 분명히 알았고,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내 할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걸어가는 거뿐이라는 거라.
단 1분 전에 일도 이렇게 과거가 되는데, 오래된 것들을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으면 참 괴로울 거라. 그래서 날마다 좋은날이 되기 위해서 첫 번째가 과거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 하는 내용으로 부처님이 얘기했습니다.
경전의 설명대로 할 것 같으면, "과거는 쫓아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과거를 쫓아가는 것, 그 쫓아가는 것들은 형태가 여러 가지입니다. 몸을 쫓아가기도 할 것이고, 느낌을 쫓아가기도 할 것이고, 그다음에 형성된 것들, 그다음에 충동 일으키는 것들, 그리고 인식하는 것들, 색수상행식이라고 하는 오온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각각 쫓아갈 겁니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과거에 쫓아갔던 것들이 한꺼번에 된 게 있습니까? '과거의 내 몸이 이랬는데' 하고 지금 현재 아는 것이지, 또는 '과거에 먹었던 음식의 맛이 이랬는데' 하고 아는 것이지, '과거 내가 이랬는데' 하고 아는 것들은 참 드뭅니다.
과거를 알 때 대부분 사람들은 쪼개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색·수·상·행·식으로 다들 분리해서 알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망상하는 것도 아, 과거에 이런 꿈이 있었는데 하고 아는 것도 인식하는 것도 인식으로써 아는 것이지,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모든 걸 통틀어가지고 '나'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본인 자신도 과거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의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본인도 그건 더 잘 알고 있다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대부분은 '나'라고 하는 덩어리로써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지 못한다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할 때 '과거 나의 몸은 참 건강했는데' 그리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지금 현재 필요한 것일 거 같으면 아, 내가 그렇게 건강했는데 지금은 건강하지 않다고 할 거 같으면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먹어버리면 그만인 것인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과거 나는 건강했는데 지금은 건강하지 않다. 이러면서 거기에 대해서 사로잡히게 된다는 거라.
지금 건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짜증이 일어나게 되고, 또 건강하지 않는 이유가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게 되고, 그게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좋았고 근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으켜서 지금 내가 좋은 상태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것에 집착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거기에 집착합니다.
지금도 아마 그럴 거라. 어디에 여행가면 그거 그냥 보고 할 생각을 안 하고 사진부터 찍기 바쁩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남는 게 그것뿐이라는 거라. 그러면서 돌아와가지고는 그 사진첩을 돌아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회상을 하게 되고. 집착한다는 것이 싫은 것만 집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좋은 것들도 집착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거 회상한다고 해가지고 그거 다시 거기 가서 그거와 같은 체험을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 빠져있다는 거라.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과거라는 것은 하나의 집착의 대상으로써만 자꾸 하는 습관들을 가진다는 거라.
진짜 잘 사는 사람들은 가서 사진 안 찍습니다. 또 여행 잘하는 사람들은 가면 여러군데를 가면서 많이 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가서 그냥 쉴려고들 합니다. 지금 현재 충실하는 것입니다. 그거 앨범으로 남겨둔다고 해서 그거 어디다 쓸 건데?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쓸 거라? 그거 돌아본다고 해서 좋은 추억이 있고 해서 스트레스 있을 때 그거 한번 보면서 스트레스 해소하기 위해서?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집착의 강도는 더욱더 강해져버립니다.
그것에 반비례해서 다른 것들로서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고 다른 것들로서 집착을 드러내는 것들이 더 많아져버립니다. 단순하게 그냥 사진 하나 찍은 것인데 그것이 나에게 집착을 더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할 것 같으면 하지 말아야 되는 거라.
왜?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지 지금 현재 내가 그것들로 인해서 좋고 싫음을 일으켜야 될 이유들은 되지 않는다는 거라.
몸에 대한 것, 느낌에 대한 것, 그다음에 사고작용들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여러 가지 의도한 것들, 그다음에 인식한 것들, 과거에 했던 것들은 어떤 것이든 지금 마음에 담아두면 안됩니다.
옛날에는 책을 읽으면 많은 것들을 잘 기억했는데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도 인식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떡할 건데? 그럼 지금은 그것들을 기억해야 될 것이 아니고, 나의 능력이 떨어졌으면 그마만큼 더 많이 읽으면 되는 거라. 그렇지 않고 이런 기억하는 능력들을 다른 것으로 쓰면 되는 거라.
그것이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될 것이지 과거를 기억해서 그것을 쫓아가야 되는 것들은 아니라는 거라. 그걸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집착의 강도는 강해지고 또 지금 현재를 살지 못하게 되는 거라. 순간순간 지금 현재는 자꾸 지나가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쫓는 수행자들은 과거를 쫓지 않아야 된다. 과거에 대해서 집착을 만들지 않는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과거의 집착들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현재 날마다 좋은 날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미래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집착하는 것.
살이 쪘으면 나는 앞으로 2주간 다이어트 한다. 그럼 2주간 다이어트 해가지고 원하는 만큼 살을 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만약에 살이 안 빠지면 어떻게 될까? 또는 애를 지금 열심히 공부를 시키고 있는데 우리 애는 틀림없이 서울대 합격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서울대 합격 못하면 어떻게 돼?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가지고 다이어트 한 것에 대해서 거기서 끝납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사람들은 설혹 아이가 서울대에 합격하지 못해도 잘했다 하고 끝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집착하는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못했든, 서울대를 합격하지 못했으면 불행하게 됩니다. 안 좋은 마음들로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들도 과거와 똑 마찬가지로 집착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회상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얘기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집착을 하지 말아라 하는 거라. 그래서 그렇게 안 하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하는 겁니다.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현재의 대상에 그것들을 알아차려라. 그게 여러분들이 해야 될 몫이라는 거라. 그런데 현재에 대해서 알아차리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현재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착각하지만은 사실은 현재에 대해서도 집착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겁니다.
수행 잘되면 잘된다고 집착하고, 안된다면 안된다고 집착하고.
지금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도 그만두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현재에 대해서 집착을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걸 다른 경전에서 네 가지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하면 이 몸은 '나'라고 한다는 거라. 이 몸이 '나'라고 하는 거라. 이 신체가 '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몸에는 '나' '나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알게 된다는 거라. 현재에 집착하지 않을 거 같으면 이 몸은 수시로 변하는 거라. 마음도 수시로 변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걸 그렇게 알지 못한다는 거라. 이 몸이 '나'라는 거라.
그래서 내가 좋으면 내가 더 좋아지고 싶고, 싫으면 싫은 것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거라. 괴로우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나'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 그래서 수행 잘되면 잘된다고 만족해서 거기에 머물러 버린다는 거라. 좋은 것들도 집착을 한다는 거라.
이 몸은 어떠한 경우든지 '나'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죽고 나서도 '나'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죽고 나면 그냥 다 흩어집니다. 그런데 이 몸은 '나'라고 생각하니까 죽고 나서 땅에다 묻습니다. 그리고 화장한다고 하더라도 어디 납골함 같은 데다가 넣어둡니다. 묻고 그게 영원하길 바라는 거라. '나'이기 때문에. 또 그것이 '나'의 가족이기 때문에.
마음이 빠져나가 버리고 육체가 분해되어버린 상태에서는 '나'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집착을 한다는 거라. 그래서 이 몸은 '나'가 아닙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나'라고 하는 것은 이 몸을 가지고 있다 하고 착각을 한다는 거라. '나'라고 하는 것이 이 몸을 가지고 있다는 거라.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얘기합니다. 아트만(atman)이라고 하는 것이 머무르는 곳이 이 몸이라는 거라. 이 몸이 없으면 아트만은 상주불멸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간다는 거라.
'루빠 완낭 와 아타낭(rupa vaṇṇaṁ va attānaṁ)' 그럽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이 몸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거라.
인간의 형태를 취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몸은 조합된 것일 뿐인데 그 조합된 것들은 변하는 것들인데, 변하는 것들이 어떻게,
'나'라고 하는 상주 불멸하는 것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나'라고 하는 상주불멸하는 것이 어떻게 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을 가질 수가 있느냐는 거라. 그럴 것 같으면 나의 몸도 변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지.
그다음에 세 번째, 앗따(attā)라고 하는 '나'안에 이 몸이 있다 라고 착각을 한다는 거라. 그러니까 아트만 안에 이 몸이 존재한다는 거라.
이 몸은 어떠한 경우든지 아트만에 종속돼 있다는 거라. 마음이 이 몸을 좌지우지 한다는 거라. 실제 그렇게 됩니까? 그렇지는 않죠! 상호관계적인 것이지. 그래서 그것이 확대되니까 영혼 안에 이 몸이 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영혼 안에 나의 몸이 있다 는 거라.
그다음 네 번째, 이 몸 안에 '나'라고 하는 아트만이 있다.
몸을 한없이 분해해봐요. 아트만이 드러나지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아트만이라고 하는 것도 조건따라 일어났다 조건따라 사라지는 것뿐이고, 이 몸이라고 하는 것도 조건 따라서 일어났다가 조건 따라서 사라지는 것들뿐인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자꾸 착각을 한다는 거라. 그래서 이 몸 안에 아트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아트만이 이 몸에 갇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몸을 학대해버리는 거라. 아트만을 살릴려고.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 현재 나의 몸과 나의 마음에 대한 것들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지금 현재에 집착하고 있는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가지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 합니다.
어떠한 경우도 지금 현재 나의 몸에 대해서 집착하지도 말아야 되고, 나의 느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색·수·상·행·식 어떤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수행 중에 좋은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그 느낌은 변화하는 것일 뿐인 것이고,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망상도 변화하는 것일뿐입니다. 느낌들이 일어나더라도 마찬가지고, 이 몸의 호흡을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호흡도 변하는 것들뿐입니다.
그런데 그걸 착각해버리면 호흡이 멈춰버립니다. 멈춘 것처럼 착각해버린다는 거라. 집착하고 머물러있기 때문에! 느낌도 느낌 스스로 자꾸 변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느낌을 만들어갑니다. 거기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망상하는 것도 내가 망상이 저절로 사라지고 저절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망상을 만들어낸다는 거라. 현재에 살아라고 하면서도 현재에 집착하고 있다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현재라고 하는 것은 순간밖에 없습니다. 나의 몸과 나의 마음 어떠한 것도 순간일 뿐인 것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순간일 뿐입니다. 들이쉬는 호흡이 있다는 것도 그 순간인 것이고, 그 들이쉬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순간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이미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사라져버립니다. 내쉬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도 그 순간의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 마음 자체도.
그런데도 우리는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걸 알아차리는 것들이 지속된다고 자꾸 판단을 해버립니다.
호흡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거라.
거기에 집착해버려서는 안됩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어떠한 것이든 순간에 일어났다가 순간에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를 알아차린다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를 알아차리면 어떠한 고민도 없어야 되고, 지금 현재를 알아차리면 어떠한 괴로움들도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괴로움이 있다고 알고, 내가 생각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다고 아는 것뿐인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서 고민할 이유가 없고, 괴롭다고 괴로움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거라. 본인이 고민해서 괴롭고 또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본인이 지금 현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겁니다.
단지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이 있다고 알고, 망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순간에 일어났다가 순간에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겁니다.
'나'라고 하는 것들을 착각하지 않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렇게 착각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어떤 것들을 보더라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동요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좋은 것들에 대해서 좋다고 아는 것뿐이지 좋아할 필요도 없는 거고, 싫은 것들에 대해서 싫다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 인 것이지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도 집착하지 말고 동요하지 말아라.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현재를 날마다 좋은날로 살기 위한 첫 번째의 방법이다 하고 게송에서는 얘기합니다.
과거를 쫓지도 말고 미래를 쫓지도 말고, 현재에 대해서도 집착하거나 동요함이 없도록 현재 일어난 것들을 순간순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날마다 좋은날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게송입니다.
다음 시간에 두 번째 게송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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