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백중법회_우란분절의 의미와 마라나눗사띠 (20140810)

담마마-마까 2021. 8. 9. 08:54

https://youtu.be/u3jaghFMtP0

* 백중법회_우란분절의 의미와 마라나눗사띠 (20140810)

 

··· 그러면 누가 죄를 많이 지어가지고 아귀계에 태어났다 그러면 우리가 그 아귀계에 태어난 자를 거꾸로 매달아놓으면 그 죄가 똑똑똑 떨어져서 언젠가는 다해서 아귀계에서 벗어나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진 게 이 '우란분절'의 의미이고, '울람바나(Ullambana)'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울람바나'라고 하는 용어가 인도의 주변에도 많이 붙어있습니다. 이란어에서도 보면 '아반'이라고 하는, '아바나'라고 하는 용어가 있어요. 'avana' 인데 '아바나'라고 기록은 되는데 '아반'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아반' 이라고 하는 게 무슨 뜻이냐면 '천적으로부터 구해주는 자'라는 그런 뜻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지내는 걸 이란에서 자기들 용어로 아반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천적으로부터 구해준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여러분들도 제사를 지내면 돌아가신 분들이 다 극락왕생 하기를 바라는 거와 꼭 마찬가집니다. 거기에 있는 나쁜 상태에서 좋은 상태로 보내드린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빨리어에 비슷한 게 있습니다. '아바 람바나(Avalambana)' 라고 하는 게 있는데, '울람바나' 할 때 '울' 다음에 '람바나'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아바'라고 하는 것이 다릅니다. 아바, 'ava'니까 '아와'죠? 아와나라고 하는 것은 '거꾸로 매단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람바나'는 '매달려 있는 것들'이고, '감소된다'는 그런 뜻인데.

그래서 아와람바나 라고 하는 것은 '거꾸로 매달려서 죄가 감소된다'고 하는 의미는 그 단어적인 의미이고, 그 근본적인 뜻은 '의존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뭔가에 의존해야만이 산다'는 그런 뜻입니다.

 

대승경전 우란분경에 보면 여러분들이 이 백중날 왜 공양물을 올리는지 하는 의미들을 잘 알 겁니다. 그거는 상세히 설명을 안 해도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부처님 혼자서도 어쩌지를 못하니까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을 초청해가지고 그분들에게 공양을 올리면서 그 스님들이 가지는 마음, 저 어머니가 빨리 이 아귀계에서 벗어나기를, 그래서 행복해지기를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짐으로 인해가지고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지옥 아귀계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게 우란분경의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부처님, 그러면 마지막에 미래세에도 누가 아귀계에 태어나면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누가 물어보니까, “그래 맞다 미래세에도 부처님 제자들에게, 출가한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려서 그 스님들의 힘으로 이렇게 아귀계에 있는 분들을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경 어디에도 “저기에다 과일 많이 차려라” 하는 법이 없습니다. 저기에다 과일 차리는 게 아니고 아까 탁발 했듯이 스님들한테 공양을 올리라는 거라. 그래서 그 스님들의 힘으로 벗어나게끔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그 기본적인 정신은 아주 맞습니다. 제사를 해도 제사상에 기본적인 거 몇 가지만 딱 놓지 음식물을 놓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스님들에게 공양올리는 것, 조금 전에 탁발하는 형태, 그다음에 조금 전에 한 이 가사보시, 가사 보시해서 공양을 올리는 것들, 그리고 또 하나는 스님들이 법문을 통해가지고 공양하는 형태, 이런 형태들로써 제사들을 대신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은 좀 기분 나쁘겠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대한 얘기들을 좀 해야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 경전에 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분명하게 구분을 시켜 놓습니다.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라고 그러죠! 아,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거라. 여러분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지금 여러분이 뭘 해야 될 거 같애요? (수행자 대답 : 죽음에 대한 준비) 죽음에 대한 준비? (수행자 대답 : 예)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하는데? 수의를 갖춰놓으면 돼? (수행자 대답 : 아니요) 그러면? (수행자 대답 : 생각을 잘하고 잘 살아가야죠)

그렇지. 그게 맞습니다. 생각을 잘하고 잘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어떤 경우든지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빨리 좋은 일 많이 해야 그래도 죽고나서 다음 세상이 있다고 그러면 좋은데 태어날 거 아니라? 만약에 다음 세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 열심히 잘 살았으니까 죽고나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이고, 저사람 잘살았다”는 소리는 할 거 아니라. 본인도 ‘아, 그래도 내가 잘살다 가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고. 그러니까 사실은 그게 정답입니다.

 

열심히 잘 살아야 되는데, 잘 사는데 기본적인 밑바탕을 가지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간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되는 거라. 내 곁을 떠나간다고 하더라도 가야 될 이치에 따라서 간 것이기 때문에 그거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거라.

 

그래서 경전에는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우리식으로 표현할 것 같으면,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그 눈을 맞으면 우리는 눈이 차갑다고 합니다. 눈이 차가운 거 가지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라. 그런데 만약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데 그게 뜨겁다고 할 것 같으면 ‘어, 이거 이상하다’ 하고 생각 한다는 거라.

그래서 만약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데 그게 뜨겁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괴로움으로써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지, 정해진 이치에 따라서 눈이 내린 것이 차갑다고 하는 것은, 우린 전혀 그걸 가지고 슬프다고 생각도 안 하고 이상하다고도 생각도 안 한다는 거라.

그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죽을 운명에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라. 뭐 때문에 그래야 되느냐는 거라.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를 하시는 분들은 보통 그런 마음들을 항상 가지게끔 됩니다.

경전에 것을 좀 설명을 해드릴게요.

아들하고 아버지가 밭에 가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이 아들이 좀 사띠가 부족했던지 뱀이 옆에 있는 것을 모르고 밭일하다가 뱀에 탁 물려가지고, 그것이 독사였기 때문에 그냥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어요. 아버지가 그 옆에 가보니까 아들이 죽어있거든.

그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할까? 아이고, 아들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살려낼라고, 이미 죽은 아들인데도 살려낼라고 난리를 치고 빨리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는데, 이 아버지는 태연하게 거적대기 가져와서 아들을 딱 덮어주고 밭일을 하는 거라.

 

밭일을 하는데 저쪽에서 다른 농부가 지나가거든. 그 농부한테 그럽니다. 새참 가져올 때가 됐으니까, 저기 우리집 가는 길이면 우리집 마누라한테 오늘은 새참 두 사람분 가져오지 말고 한사람분만 갖다주라 하시오. 그러면서 한사람분 새참만 가져오고 향과 꽃도 같이 가져오라고 얘기해주시오. 하고 얘기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부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누군가 한사람이 죽었구나’ 두 사람분이 필요한데 한사람분에다 향과 꽃을 가져오라고 하니까.

그러면은 똑같이 마라나눗사띠 안 하는 사람은 난리가 나는데, 이 얘기를 들은 부인과 또 딸과 그리고 그 죽은 아들의 부인은 똑같이 밥을 하고 그러고 나서 태연하게 꽃과 향을 가지고 거기를 갑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셨으니까 인도에서는 화장을 하니까 장작을 쌓아놓고 화장을 하는 거라. 화장을 하고 나서 꽃과 향을 올리고 자기들은 그 옆에서 밥을 먹는 거라. 가족 모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희한한 거야. 불꽃놀이를 하면서 옆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까. 그래서 물어봅니다. 뭐 좋은 일 있느냐고, 고기 타는 냄새가 나는데 바베큐 해먹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아뇨. 우리 아들이 죽어서 화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태연하게 얘기합니다. 그 사람들이 깜짝 놀래는 거라. 아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밥을 먹고 있느냐는 거라. 그것도 서로 얘기해가면서.

 

“당신은 아들을 사랑하지 않느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때 아버지가 한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다가 목숨이 다하면 이 세상에 이 몸을 버려두고 가버린다. 마치 뱀이 낡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그러는 것을 내가 왜 한탄하고 슬퍼해야 되는가? 내 아들은 지 운명대로 왔다가 자기가 가야할 세계로 간 거 뿐이다는 거라.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어버린 저 몸을 보고 그거 슬퍼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거라.

 

그래서 죽은 아들의 어머니한테 또 물어봅니다. 어머니는 뭐라고 하느냐면, 저놈의 자식은 내가 오라 하지도 않았는데 지가 왔다는 거라. 그리고 내가 가라하지도 않았는데 지는 갔다는 거라. 지 스스로 왔다가 지 스스로 가는 걸, 지맘대로 가는 걸 거기에 뭐 한탄할 이유가 있느냐는 거라.

지가 오고 싶어서 왔다가 지가 인연이 다돼서 가버린 건데, 여러분들 코앞에 바람이 왔다갔다 한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슬퍼하느냐는 거라.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따라 가는 거라는 거라.

 

다시 여동생에게 물어봅니다. 형제간엔 그래도 우애가 있겠지 생각을 하고 물어봅니다. 여동생은 뭐라고 하느냐면, 내가 오빠 죽었다 해가지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고 있는다 해가지고 나한테 뭔 이익이 있느냐는 거라. 오빠를 살려낼 수 있느냐 아니면 내가 배고픈 걸 해소할 수 있느냐는 거라. 아무 이익도 없는 일을 왜 내가 해야 되느냐는 거라.

 

죽은 아들의 부인에게 똑같이 물어봅니다. 아이가 밤하늘에 있는 별을 보고 엄마 저 별을 따줘 이렇게 생떼를 쓰면 그 별 따줄 수가 있습니까? 없다는 거라.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라. 죽은 걸 살려낼 수 없는 거하고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러면 아이를 달래야 되는 것이지 그 별을 딸 수는 없다는 거라. 그럼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것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지 돌아가신 남편 옆에서 울고불고하면서 살려내라고 할 일은 아니라는 거라.

 

그리고 한사람 더, 그 집에서 일하던 하인에게 또 물어봅니다. 일하는 분은 뭐라고 하느냐면, 물병이 탁 깨져가지고 물이 흘러버리면 그 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는 거라. 그와 같이 내가 존경하고 내가 모시던 분이지만 이미 가버린 것은 어쩌지 못한다는 거라.

 

마라나눗사띠를 하는 분들은 이런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저기에 있는 분들같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해야 될 것은 지금 현재 죽음에 대해서 항상 잊어버리지 않도록 마라나눗사띠를 하고, 그리고 내가 해야 될 일들을 분명하게 열심히 해야 되는 것이 여러분들 몫이라는 거라.

 

형태 있는 모든 것들은 부서지게 돼있습니다. 부서지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거라.

그런데 우리는 왜 오늘 여기 모여가지고 이렇게 의식을 합니까? 간단한 의식이지만. 그걸 여기에 스님이 쭉 써놓은 내용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스님에게 공양올리고 가사올리고 한 공덕들로 인해가지고 그 돌아가신 분들에게 '그 돌아가신 분들이 빨리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하는 마음들을 가졌습니다.

 

그 돌아가신 분이라고 하는 것은 아귀계에만 해당이 됩니다. 설혹 여러분들의 친척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 천상세계에 태어나고 아니면 다시 인간계에 태어나고 아니면 축생계에 태어나고, 지옥에 태어나고 하더라도 그분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먹이가 다르기 때문에! 아귀계만이 살아있는 가족 친지들이 주는 마음들, ‘아, 저사람이 행복하기를’ 하는 마음을 내가 내면 그 마음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라는 거라. 그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고, 여기 와서 먹을 수도 없을 뿐아니라 설혹 아귀계에 갖다 준다고 하더라도 그걸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래서 목련존자 어머니도 목련존자가 바리때에 가득 준 음식을 먹을려고 입으로 가져가면 전부 타버린다는 거라. 그것이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목련존자가 진작 알았으면 ‘어머니 행복하십시오’ 하는 마음을 내었으면 어머니는 그걸 먹이로 삼았을 거라. 그래서 내가 조금 더 행복해졌을 거라.

 

돌아가신 아귀계에 태어나신 분은 여러분들 친척들 가족들만 해당 되는 게 아닙니다.

경전에는 7대라고 그렇게 돼있습니다. 7대의 조상까지가 여러분들 친척에 해당 된다 하고 나옵니다. 대부분 아마 7대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지. 설혹 무수한 세월 동안 지나오면서 나와 인연 닿았던 분들 중에서 아귀계에 태어나신 분들은 내가 지금 이 공양 올린 음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고 공양 올리면서 낸 마음들, 이 마음들을 먹이로써 그 아귀계로부터 탈출을 하게끔 됩니다.

 

그러니 의식과 의례는 실제로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친다는 거라. 다른 세계는 아예 영향을 못 미치고, 그나마 그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아귀계에 태어난 존재들인데, 아귀계에 태어난 존재들도 의식과 의례로써 그걸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의식과 의례를 하면서 여러분들이 일으키는 마음들로서 그것을 구제할 수가 있는 거라. 의식과 의례가지고 그걸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 사실을 여러분들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공양물을 올릴 때에 여러분들이 주의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가끔씩 스님들께 공양을 올린다 하면서도, 맛있는 거 해줄라고 물론 그런 마음을 냈겠지만 살아있는 생선을 자기가 토막을 쳐가지고 그걸 요리해가지고 스님한테 올립니다. 그걸 스님은 모릅니다. 그걸 살아있는 걸 직접 죽여 갖고 공양을 올렸는지 아니면 이미 죽은 냉동고기 사가지고 올렸는지.

어쨌든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스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는데, 살아있는 고기를 장만해가지고 공양을 올린 그 분에게는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영향입니까? 생명을 죽였다는 거라.

 

그래서 경전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비록 돌아가신 분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였다면 어떠한 이익도 없다.

어떠한 이익도 없다는 거라. 그 이익만 없이 쌤쌤이 되면 괜찮은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생명을 죽인 것에 대한 과보는 네가 받는다는 거라. 기껏 좋은 일을 하려거 해놔놓고 왜 나쁜 과보 받을 일들을 하느냐는 거라. 공양물을 올리더라도 어떠한 경우든지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가지고 올리는 것들은 아주 작은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피하라는 거라.

집에서라도 제사를 지낸다고 하더라도 설혹 살아있을 때 그분이 어떤 걸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드리기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 올릴 것 같으면, 그거는 어떤 영향도 없고 어떤 이익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쁜 과보만 쌓이게 됩니다. 그걸 항상 생각을 해야 됩니다.

 

재미있는 우화가 있는데 경전에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자기 부모님을 위해서 해마다 양을 잡아가지고 양고기 요리를 올리는 왕이 있었어요. 그날도 양을 하나 잡을라고 그 놈을 물가에서 씻어가지고 잡을라고 하는데 희한하게 이 양이 웃거든. 경전에서 그렇게 얘기합니다. 웃는 거라. 그러다가 좀 있드만 막 슬피 울어. 그러니까 잡을라고 하는 사람도 이게 희한한 거라. 왜 웃다가 울다가 미친 양도 아니고 왜 저럴까 싶어가지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그 왕에게 가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웃은 이유는 나도 옛날에 돌아가신 울엄마 맛있는 음식 해줄라고 뭘 하나 잡아가지고 죽여가지고 올렸다 하는 거라. 그런데 그 과보로 나는 500생을 갖다가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거라. 그런데 계산해보니까 이번이 마지막 500번째라는 거라. 그러니 얼마나 기쁠거야?. 지 죽는게.

그런데 왜 또 우느냐 하니까 너는 또 나 죽이고 나면 너는 또 500생 동안 나하고 똑같이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야 되는 거라. 그러니 안 슬플 수가 있느냐는 거라.

조그만한 생명이라도 나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 죽인다고 하는 것은 그마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라.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하다는 거라.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런 악행에 대해서 결과를 안다고 할 거 같으면 다신 안 죽이려고 그럽니다. 어제도 청주에 있는 김oo씨가 전화가 왔어요. 촌에다가 집을 지어놓으니까 말벌들이 거기다가 집을 짓는 모양이라. 그래서 전화가 와서 스님 말벌들이 이렇게 막 와서 드나들지를 못하는데 이거 우짜면 좋습니까? 죽이지 말고 떼내라 하니까, 안 죽이고 떼낼 방법이 없습니다 하는 거라. 그런데 이게 높이 있으니까 자기도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작대기를 가지고 그걸 떼낼려고 하니까 지가 벌한테 다 쏘이겠고, 이거 우짜면 좋습니까? 그래서 119에 전화하면 소방관이 와서 그걸 떼어준대. 그래서 그리 할까요? 그러는 거라.

그래서 물어봤어. 그럼 119가 와가지고 그냥 얌전하게 잘 떼냐? 하니까 벌을 다 죽여버린대. 벌을 다 죽여가지고 그 벌집을 제거를 하는 모양이라. 그럼 너는 벌 죽이라고 동네방네 외치는 것밖에 더 되느냐? 그러니까 119에 신고해서 하지 말고 틀림없이 촌에는 그 말벌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수소문 해가지고,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자기들이 보호망을 쓰고 그리하더라도 말벌을 죽이지 말고 다른데 가서는 어찌할 값에 말벌을 죽이지 말고 말벌집만 떼 달라. 그래서 말벌집 안에 있는 애벌레나 그 벌들은 전부다 날려보내주고 말벌집만 가져가라 하고 얘기해봐라. 하니까 그리 해보겠다는 거라.

자기가 직접 죽이는 것도 안 되고 남을 시켜서 죽이지도 말아야 되는 거라. 죽인다는 과보는 굉장히 큽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이런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 그 생각을 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편리하고 말벌한테 안 쏘이기 위해서 그거 죽여놔놓으면 나중에 그 과보는 어떡할 건데?

 

이 양 같이 500생 동안 남한테 죽임을 당하는 과보를 받을 거라? 그거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있느냐는 거라. 죽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당장 죽음에 이르른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느냐는 거라.

지금 당장 여러분들이 죽음에 이르른다고 할 거 같으면 여러분들이 내가 지금 나쁜 일 할 수가 있고, 다른 것들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느냐는 거라. 오직 유일하게 여러분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항상 자애의 마음을 가지는 것. 내 자신에 대해서 자애를 가지고 다른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자애를 가지는 것. 그것이 여러분들이 해야 될 몫이라는 거라.

 

백중이라고 해서 의식을 크게 하고, 과일을 많이 차렸다고 해서 그것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딱 하나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항상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모든 생명들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설혹 돌아가신 분들이 아귀계에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분들이 , 내가 이렇게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는 이 공덕들을 돌아가신 분에게 회향합니다.’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그 공덕을 그 아귀계에 있는 분들이 받게 되는 거라.

그래서 그 공덕의 영향으로 그분들은 자기가 직접 안 했지만 공덕을 회향받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들을 받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그 아귀계에 있으면서 조금 더 고통스럽지 않고, 그리고 하루빨리 그 아귀계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더 좋은 세상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거라. 그런 결과들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은 어쨌든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모인 날입니다. 그 의미들을 분명하게 알고 나중에 경전 독송할 때도 그냥 의례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선한 마음을 자꾸 일으킬려고 해야 됩니다. 모르는 빨리어라 해가지고 그냥 싫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차라기 그럴 거 같으면 모르면은 한글 그냥 읽어. 한글만 그냥 조용하게 마음속으로 읽으면서 경전 독송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중에 따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경전을 독송하면서 내가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항상 경전을 독송하도록 해서, 그렇게 공덕을 쌓았으면 나중에 공덕회향 게송하면서 그 공덕들을 돌아가신 분들께 바르게 회향시켜줄 수가 있습니다. 알겠죠? (수행자 일동 : 예)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경전독송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