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붓다야나선원법문

사후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조건 (20150605. 대구)

담마마-마까 2021. 11. 1. 09:00

https://youtu.be/_a50nCqnTb0

* 사후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조건 (20150605. 대구)

 

오늘은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가끔씩 스님들이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아띠도나짜리(atidhonacāri)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서가지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죄를 짓는 일들도 많고, 또 마음관찰 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특히 스님들 간에 “너는 아띠도나짜리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경우는 뭐냐면, 뭔가에 집착하는 것이 많은 것. 출가해서도 가족에 대한 집착들, 출가해서 가사나 이 바리때에 대한 집착들, 또 탁발해가지고 음식 가져오면 맛있는 거 자기 먹을라고 막 챙기는 거 보면 “아띠도나짜리 같은 놈아” 이렇게 얘길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재가자든 출가자든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하고 이렇게 경전에서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방황하고 하는 거 없죠? 또 그렇게 많이 집착하고 하는 그런 것도 별로 없죠? 그런데 그런 거는 없는데 잘 안되는 것이 뭐냐면, 그냥 흐리멍텅하게 사는 것! 알아차리지 않고 그냥 시간 보내버리는 것들! 그것도 아띠도나짜리입니다. 방황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헤매버리는 경우들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을 방치하면 안됩니다. 마음은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니고 증장시켜야 되는 것이고, 알아차려야 되는 것들입니다. 방치해버리면 어디 떨어진다고?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거라.

지옥에 안 가려면 반드시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오늘 제목은 「사후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조건」에 대한 얘기입니다.

 

맨 첫머리에 보면 상식적인 인간이 천상에 태어난다 그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누가 천상에 태어납니까? (상식적인 사람)

어떤 상식적인 사람? 가끔씩 여기 만약 사후에 지금 성불한다고 그랬는데 그건 조금 글을 잘못 쓴 거 같애. 극락왕생한다고 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보통 누가 돌아가시고 나면 출가한 스님이든 재가자든 돌아가시면 “극락왕생하소서” 이렇게들 얘기를 하거든. “극락왕생하소서” 한다고 해가지고 극락왕생되어집니까? 만약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전혀 지금 이생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어져버리게 됩니다. 마지막에 가서 극락왕생 제사 한번 지내버리면 되지 뭐가 걱정이겠어?

 

그런 것은 아니죠? 극락왕생하려면 그마만한 조건을 갖춰야 극락왕생하는 것이지 그걸 갖추지 않고 극락왕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보면 아까 같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려고 하면 조심해야 되는 게 있고, 또 극락왕생하려면 갖춰야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냥 시간 보낸다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극락왕생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불교적인 삶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사후의 일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에 따라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 하고 얘기를 하는 부분입니다.

 

불교 수행자 출가한 스님중에서 신통제일로 유명한 분이 목갈라나 존자입니다.

목갈라나 존자가 어느날 천상에 올라갔어요. 올라가서 천신들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여기 어째 오게 됐어요? 하고 물어봅니다. 여러 천신들에게 물어봤는데 목갈라나 존자가 봤을 때는 저분이 저것 가지고 천상에 왔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거라.

한 천신한테 물어보니까 나는 아무것도 복 지은 것도 없고, 남의 밑에서 일하고 이랬는데 그래서 스님들한테 탁발을 한번 해줬어, 아니면 다른 어떤 좋은 일들을 했어? 그렇지는 않았는데 딱 하나 한 것은 있다는 거라. 그게 뭐냐? “어떠한 경우도 나는 거짓말은 안 했다.”

또 어떤 천신에게 물어보니까 “아, 나는 누가 두들겨패든 뭘 하든 간에 아이고, 그려려니 내가 잘못해서 그려려니 하고 생각하고 화는 한번도 안 냈다.”

또 어떤 다른 천신한테 물어보니까, “나는 누가 뭐 필요하다고 할 것 같으면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조그만 거지만 나눠줬다.”

아주 쉬운 것들이라는 거라.

 

특히 테라와다 불교권 내의 재가자들은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많이 합니다. 재가자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출가자들은 그리했다면 큰스님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하면 천상세계에 태어날려고 하는 마음도 욕망이라는 거라. 욕망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출가를 했는데 욕망을 지니고 산다면 그건 출가한 스님들 큰스님들이 안 뭐라 하겠어? 그래서 되게 뭐라 합니다.

천상세계를 바라지 말고 해탈할려고 해라 하고 계속 얘기들을 하는데, 재가자들한테 가르칠 때는 그렇게 얘기를 안 합니다.

 

보통 보시·지계·생천 그렇게 얘기를 하죠? 보시(報施) 지계(持戒) 생천(生天)! 그래서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걸 참 좋아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죽고나서 극락왕생하는 거하고 꼭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거 아니라? 죽고 나서 극락왕생하기를 바라지 뭐 지옥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 없잖아. 다들 윤회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거니까 극락왕생하기를 바란다는 거라. 여러분들과 똑 마찬가지로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도 그렇게 얘기를 한다는 거라.

 

그런데 경전에서 보면 그런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쉬운 게 어떤 거겠어요? 열심히 노력해가지고 정당한 방법으로 돈 얻어가지고 부모님 잘 모시고 밑에 애들 잘 길러내는 것, 그런 사람은 천상에 태어난다는 거라.

정확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 몸에서 빛이 나는 세계, 그걸 천상세계 중에서 욕계천상세계 광희천이라고 있습니다. 몸에서 빛이 나는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하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전에는 부처님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가지면은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쉽게 말하면 삿다(saddhā)라고 하는 믿음이, 빠사다(pasāda)라고 하는 마음이 깨끗하고 바른 마음을 쓸려고 하는 것으로서 바뀌기 때문에 그 빠사다에 인해가지고 그렇게 깨끗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법에 대한 것, 상가에 대한 것,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더라도 천상에 태어난다 하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참 쉽죠?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뭐 여러분들한테 사회생활을 하지마라 그래? 뭘 출가해가지고 수행만 하라 그래?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은 쉽습니다. 그래서 첫머리에 상식적인 사람이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라고 해놨습니다. 아주 상식적인 사람!

그런데 대부분 그 상식들을 못 지켜서 문제인 거라. 욕심 안 부릴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또 평생 가면서 사소한 것이지만 거짓말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고, 그리고 사람들한테 나를 내세울려고 한다든지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거라. 여러분들은 그런 거 보면 전부 비상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상식적인 사람이 천상에 가는 것은 틀림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려운 거 같아도 그렇게 어려운 부분은 사실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한테 가서 목갈라나 존자가 천상세계에서 보고 앙케이트 설문조사 다 한 것을 가지고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천상세계에 가니까 이런 것들이 있던데 진짜입니까? 그렇게 간단한 겁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네가 봐놔놓고 뭐 그리 의심할 게 있느냐? 그대로 아니냐?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이 경전을 설하게 된 겁니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천상세계에 가는 조건은 이것 말고도 다른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런 조건들이 있는데 그래도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것, 다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이 3개 중에 하나만 하더라도 틀림없이 죽고 나서 여러분들은 극락왕생하게 됩니다.

 

첫 번째가 삿짱 바네-(saccaṁ bhane)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 그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경전에 "사람들은 사람들마다 입 안에 독기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고 얘기합니다. 독기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말을 하면 독기를 가지고 한 번씩 찍는 거라. 뭐를 찍어도 찍어. 자기를 찍든지 남을 찍든지. 그러니까 말 한번 잘못 툭 뱉어놓는 게 얼마나 상처가 된다는 겁니까?

 

그런데 주석서에는 뭐라고 돼있느냐면 요즘말로 하할 것 같으면 기관총, 자동적으로 탁 땡기면 도르르르르륵 나가는 기관총, "말은 기관총과 같다" 하고 주석서에는 나옵니다. 이렇게 말을 탁 시작을 해놔놓으면 자기도 모르게 도르르르르륵 나간다는 거라.

독기는 사람을 안 죽게 할 수도 있지만 기관총은 총알에 맞으면 그냥 죽어 사람이. 그마만큼 말이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건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걸 자꾸 잊어먹고 산다는 거라.

 

경전에 또 뭐라고 나와있느냐면 "내가 하는 말들에 인해서 상대방의 인생이 좌우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참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할 거 같으면 그 사람은 진짜 안 예쁜데도 난 예쁘다 생각하고 마음을 예쁘게 쓰고 하다 보면 예뻐지게 된다는 거라.

식물에게도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고 그럽니다. 하물며 여러분들이 인간에게 하면 얼마나 그 영향을 받겠어? 미운놈 미운놈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진짜 미운 짓만 하게 된다는 거라.

내가 하는 말에 의해서 그 사람은 일생이 죄우됩니다. 말 함부로 하면 안 돼! 그래서 말은 어떠한 경우든지 말의 요령, 말하는 방법에 따라서 말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경전에 「말하는 방법」이 쓰여진 게 있습니다. (우다인경. A5.159)

첫 번째가 뭐냐면 '아누뿝비 까타(anupubbi kathā)' 그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보통 말을 할 때 결론부터 탁 얘기합니다. 누가 뭔 얘기하면 내가 얘기할 땐 “이 나쁜 놈아” 하고 결론부터 먼저 얘기합니다. “그거 너 틀렸어”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거라. 말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 순서에 따라서 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할 때 서론, 본론, 결론의 형태로 밟아가야 그게 글이 되는 겁니다. 논문이 되고, 여기 쓰여져있는 조그만 것도 마찬가집니다. 앞에는 항상 서론 형식으로 쓰고 그다음에 본론으로 가고 나중에는 결론을 내려주고 이런 형식으로 쓰는 것이지, 조그만 한장의 글을 쓰더라도 그렇게 한다는 거라.

말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먼저 탁 결론 내놔놓고 거기에다가 자꾸 다른 결론들 가져와갖고 또 붙이는 거라. “너 옛날에도 나쁜짓 했지?” 뭐 어쨌지? 결론만 거기다 자꾸 갖다 붙이는 거라.

말은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순서적으로 하라는 거라. 순서적으로!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얘기만 해야 되는 것이지, 그거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것 가지고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라.

 

그게 인제 '부처님이 말을 하는 다섯 가지 법'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오법이라고 그러는데 그게 첫 번째입니다. 순차적으로 할 것!

순차적으로 해야 그걸 들을 수가 있는 것이지 결론부터 먼저 던져줘버리면 그 사람은 억하심정이 들어가지고 그거 들을려고 하겠어? 아예 안 들을려고 한다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면, '빠리야-(pariyāya)'

순차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방편을 써서 얘길하라는 거라.

“나는 이렇게 해서 참 마음이 상한다. 그런데 너가 그렇게 내한테 얘기할 것 같으면 내가 마음이 상하는데, 나도 너한테 그렇게 말할 것 같으면 너는 마음이 안 상하겠느냐” 이런 식으로 방편을 써서 얘기해야, 바로 그 사실을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방편을 써서.

그런데 여기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방편은 거짓되게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암에 걸려있다. 방편 써가지고 “음,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 그걸 방편이라고 할 거 같으면 그건 아니라는 거라. 그건 거짓말인 것이지 방편이 아니라. 방편을 쓴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얘기하는 거라. 그 사람에게 위문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림을 그려준다든지 아니면 만화를 그려준다든지 뭘 하든지 간에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된다는 거라. 만약에 예를 들어서 암에 걸렸다 그럴 것 같으면 “그래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생명인데, 너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중한 병에 걸려있다. 그래서 지금 너가 해야 되는 것은 뭐 어떻게 어떻게 병원 치료 잘해야 된다.” 하면서 정확하게 사실을 얘기해줘야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거기다 대놓고 방편을 쓰지 않고 “너 말기암이란다” 하고 턱 얘기해놓으면 이 사람은 그냥 가슴이 툭 무너져버린다는 거라. 어떤 경우든지 충격이 가지 않게끔 방편을 써가지고 사실을 얘기해야 됩니다. 그걸 방편이라고 합니다. 알기 쉽게 그리고 충격이 덜 가게끔 얘기하는 걸 방편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아눗다야따-(anuddayatā)'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든지 ‘아유, 저 불쌍한 것’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말을 해야 됩니다. 저 불쌍한 놈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해야 되는 것이지, 저 사람을 흠집내기 위해서 저 사람을 모함하기 위해서 이렇게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려면 저 불쌍한 사람을 그 고통으로부터 끄집어내주기 위해서 내가 먼저 자비의 마음을 지니고, 그리고 저 사람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연민심을 지니고 말을 하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이게 기본 조건이 돼야 되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 '아미사(āmisantar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얘기하더라도 대가를 바래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까 너가 이렇게 해줘야 된다 이런 법은 없다는 거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나는 내가 할 일들만 한다는 생각으로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아누빠핫짜(anupahacca)'

내가 이것을 말함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해침을 당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해침을 당한다든지 이래서는 안된다는 거라. 둘 다 완벽하게 충족되고 저 사람은 행복하게 될 지 몰라도 내가 그것으로 인해서 속상해한다면 그것도 안 되는 거고, 반대의 경우도 안되는 거고, 나도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침을 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해침을 당하지 않는 것.

 

이게 말하는 방법 다섯 가지다 하고 경전에서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말할 때는 되게 조심해야 되는 거라.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보면 그냥 무심결에 툭 툭 던져버립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말은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그런데 바른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되는데, 거짓말하는 거는 진짜 나쁜 거라.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인 것이지 그것이 선의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방편을 써가지고 바르게 알려줘야 되는 것이지 거짓말을 해가지고 그 사람을 안심시켜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도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특히 수행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출가자에게 옷을 벗길 수 있는 조건 중에 하나가 뭐냐면 수행해서 "나는 이런이런 상태에 이르렀다" 하고 거짓되게 말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옷을 벗겨가지고 쫓아내는 행위에 해당이 됩니다. 그마만큼 거짓말하는 것은 안 좋다고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뭐 재가자들은 안 그럴 것 같애요? 가끔씩 여기선 안 그러지만 다른데 가서 수행문답을 해보면 자기 체험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건데 엉뚱한 걸 얘기한다든지 아니면 부풀려가지고 애기한다든지 이렇게 합니다. 그거 전부 거짓말에 해당이 되는 거라.

아까도 얘기했지만 말하는 것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렇게 다섯 가지 오법을 가지고 말을 해야 되는 것인데, 그 어디에도 해당이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짓말하면 안됩니다 이! (네!)

어떠한 경우든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자 질문 : 스님 우리들이 보통 유머 삼아 농담 삼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하거든요. 예를 들면 나무꾼이 사슴 숨겨주는 거 그런 것들...

스님 답변 : 거짓말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은 불교에서는 용납이 안됩니다. 그리고 빨리어 경전 어디를 보더라도 나무꾼이 사슴을 숨겨주기 위해서 거짓말했다 하는 경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리고 옛날 선사들이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 그런 법은 없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게 돼있는 겁니다. 일반 재가인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하얀 거짓말? 굳이 거짓말이 어떻게 하얄 수가 있어? 그거는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거짓말 안 하는 건 쉽잖아? 아까 얘기했지만 그런 순서에 인해가지고 바르게 얘기하면은 거짓말 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짓말 안 하면 되게 편합니다. 편하고 내가 뭐 흠잡을 일 안 했고, 그러니까 그렇게 말할 상태가 아니다 할 것 같으면 그냥 입 다물어! 괜히 툭 툭 던지면서 엉뚱한 얘기들을 하고 엉뚱하게 거짓말하고 그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그게 오히려 말의 침묵이라고 하는 거라.

바르게 말할 조건이 아닐 거 같으면 침묵하라.

 

두 번째 나 꿋제이야(na kujjheyya)」 「화내지 않는 것!

 

성내면 다른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을 낸다고 하는 것은 너와 내가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들을 알아야만이 성을 낼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도 내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자기 자신한테 성내는 놈이 있나? 자기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라. 자기 자신이 해코지 당하지 않고 사랑스럽듯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렇게 보아주어야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길러야 되는 평온한 마음, 평등한 마음들을 지니도록 자꾸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그렇게 성을 낸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하는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가지고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까짓 거 그거 뭐라고 그거 하나 제어 못 해? 그거 전혀 제어 못 할 거 없습니다.

 

수행한다는 게 감정을 제어하고 그리고 평온한 마음을 지녀야만이 수행이 시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시작하는 것부터 이미 잘못하고 있다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그러니까 앉아있으면 뭔가 고통스러운 느낌이 있으면 그거 못 참는 거라. 성질이 나니까 이걸 거부할려는 마음 때문에! 성이 나니까 이걸 못 참는 거라. 평온한 마음을 가져야만이 이것을 극복할 뿐 아니라 그 평온한 마음으로 인해서 닙바나에 이르는데 그럴 조건조차도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는 거라.

 

그러면 수행하다 보면 계속적으로 장애가 일어나는 부분이 있는 거라. 아픈 통증만 일어납니까? 망상도 일어나고, 모든 것들이 일어납니다. 평상시에 자신이 그런 성내는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수행을 하다 보면 장애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장애도 물론 수행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런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그 장애가 수행대상이 되질 못 해. 오히려 그거에 그냥 먹혀버리지. 그럼 수행도 안 돼, 성내는 것은 자꾸 강해질 거 같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별로 안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거 안된다는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성내는 것들은 하지 말아라! 오죽했으면 부처님이 성내는 사람은 너는 내 종자가 아니다 하고 애길 했겠어? 불교를 배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라. 부처님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이라는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성내는 것은 하지 말아라.

 

그래서 수행 안 해도 좋아. 항상 그냥 자애의 마음을 지니도록 하십시오. ‘아, 내가 성냄으로부터 벗어나고, 해침으로부터 벗어나고,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런 것들로부터 항상 평온한 마음을 먼저 자꾸 가지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하는 마음들을 자꾸 가지고. 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떠한 경우든지 아까와 같이 말을 할 때도 자애의 마음으로 말을 해야 되는 거고, 행동할 때도 자애의 마음으로 행동을 해야 되는 거고, 마음도 자애의 마음을 항상 지니도록 해야 됩니다.

 

자애의 마음만이 이 성냄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지, 성냄은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가 없는 거라. 다른 방법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내지마! 성 안 내는 거 쉽잖아. 자애의 마음만 지니고 있으면 되니까. 일평생 그것만 하면 돼. 그러면 여러분들은 극락왕생하게 된다는 거라.

 

그런데 대상을 자꾸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만이 그대상에 대해서 성냄이 없어집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이 고집하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냄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냄으로 인해서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것도 함부로 툭툭 던져버립니다. 그래서 사물을, 대상들을 자꾸 있는 그대로 보라는 거라.

 

세 번째 닷자- 압빠스밍 삐 야-찌또-(dajjā appasmiṁ pi yācito)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 입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습관들을 들이면 탐욕심은 없어지고 자애가 증장되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나누어준다, 베푼다 하는 것을 보통 빨리어 용어로 -(dāna) 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보시하는 사람을 '다나까'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경전에는 다나까에 대한 것은 크게 좋은 것으로서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베풀어주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내가 별 필요없는 것을 남한테 주는 것은 그거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거라. 그런데 진짜 자기한테 필요한 건데도 다른 사람들한테 베풀어주는 것은 힘들다는 거라.

 

경전에 보면 "다나까가 될려고 하지 말고 다나빠띠가 돼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주인답게 베풀어주는 사람을 '다나빠띠'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베풀어주는 것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그럽니다.

베풀어주는 것의 종이 되는 사람, 베풀어주는 것의 친구가 되는 사람, 베풀어주는 것의 주인이 되는 사람.

종이 된다는 것은, 주고 나서도 아까워. 여러분들이 여기 오늘 탁발을 했습니다. 주고 나서 스님이 자기 거 안 먹으면 나쁜 마음이 드는 거라. 종이 되는 거라. 여기에 매여져 있기 때문에. 그거는 그냥 다나까 밖에는 안된다는 거라.

 

그다음에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냥 일반적으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들은 베풀어줄 줄은 아는 것. 그러고 나서 뭐 그 사람이 그거를 가지고 뭘 어떻게 내가 공양을 한 것에 대해서 많이 먹든 많이 안 먹든 별 신경 안 쓰고 ‘그래도 스님 잡쉈네’ ‘하나라도 잡쉈네’ 이러고 말아버리는 거라. 거기에 대해서는 얽매여 있지는 않지만 이거 주든 안 주든 나의 삶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들, 그걸 친구가 돼있는 경우다 하고 얘기합니다.

 

주인이 되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진짜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인데 저 사람도 필요하다 싶으면 그냥 줘버리는 거라. 경전에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빵 한조각 가지고 하루 살아가는데 그날 쌔가빠지게 일해가지고 빵 한조각 겨우 사가지고 딱 먹을려고 하는데 누가 출가한 스님이 탁 지나간다. 아, 이걸 못먹겠는 거라. 고마 눈을 질끈 감고 바리때에 넣어주어버리는 거라. 그럼 그날은 그 사람은 굶어야 되는 거라. 그것으로 인해서 죽지는 않지만 나는 하루종일 배고픔에 시달려야 되는 거라. 그걸 베푸는 자의 주인이 되는 자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 퍼주라는 것이 아니고, 나도 지금 필요하지만 당신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냥 베풀어줘버리는 거라.

 

그런 면에서 보면 출가한 스님들은 참 그런 것들은 잘합니다. 태국 같은 경우에는 뭘 하느냐 하면 출가한 스님들이 우리나라는 절에 머물면 보시금이 나오잖아. 태국이나 이런 데는 보시금을 나눠주는 게 없습니다. 오히려 출가한 스님들이 절에 기부를 해요. 나 이번달 전기세 좀 낼게. 하고 좀 내고 매달 얼마씩 이렇게 기부들을 합니다. 그리해야 전기세도 내고 뭐도 하면서 운영을 해나가는 거라. 지금 나는 부산에 있으면서 가스 LPG 가스죠, 그다음에 우리는 기름으로 때야 되니까 기름 넣고 하는 거 저분들이 한번도 하지 안 해. 떨어지면 내가 그냥 넣어. 그거 어쨌든 있어야 밥이라도 사람들이 와서 끓여 주는 거고, 사람들이 왔을 때 뜨뜻하게 좀 앉아있기라도 하고, 그냥 그거 하는 거라.

 

물질적인 것 그것만 하는 줄 알아요? 경전의 역사를 쭉 살펴보면 보시자 이름을 쭉 적어놓은 것을 보면 반 이상이 출가한 스님들이라. 출가한 스님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데도 오히려 그렇게 베푸는 것의 주인이 되는 거라. 그것만 해? 물질적인 것만 해? 정신적인 것도 계속적으로 베푸는 거라. 어디서 법을 설해달라 할 거 같으면 자기가 아파 죽겠는데도 가는 거라. 어떨 때는 ‘아휴, 좀 초청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도 초청하면 어쩔 수 없이 가야 되는 거라. 그것이 베푸는 것의 최고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다나까가 되는 것보다는 다나빠띠가 되라고, 베푸는 자의 주인이 되라 하고 얘기를 하는 거라.

 

그다음에 뭐가 되라고 하느냐면, '다나 상 위빠가라또'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베풀고 나서 "베푼 것을 회향할 줄 아는 자" 조금 베풀었다, 아니면 아까워갖고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베푼 것에 대해서 자기 혼자만 좋은 거 가져갈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같이 나누는 마음을 가지는 것.

부처님도 과거생부터 그렇게 했다고 그러죠? 공덕 조그만한 거 지을 때마다 아깝든 어쨌든 그 베푸는 것의 주인이 됐든 종이 됐든 간에 베풀 때마다 그 물을 나무에다가 쪼르르르르 따르면서 “이 공덕을 증명하십시오. 이 공덕이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지기를, 회향되기를” 하고 합니다. 그걸 얘기하는 겁니다.

같이 나누는 겁니다. 좋은 거 맛있는 거는 나눠먹어야 맛있지 맛있는 거 자기 혼자 먹으면 맛없어. 자꾸 나눌려고 해야 됩니다.

좋은 일을 할 때는 그래서 같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나눌려고 하는 것!

그게 베푸는 것들입니다.

 

간단하죠? 아주 쉽잖아? 천상에 태어나는 거. 이게 천상에 태어나는 법입니다.

이 세 가지는 뭐하고 연결 돼있느냐 하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자애! 자애하고 연결이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자애롭게 말을 하게 되는 것. 그럴 때 진실한 말들이 됩니다. 그래서 자애수행 하는 거와 꼭 마찬가지로 자애를 길러주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말하지 않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우뻭카! 평등한 마음, 평온한 마음을 항상 증장시켜 주고, 우뻭카 수행을 일상생활화할 수 있는 것이 되게 됩니다.

 

그다음에 화내지 않는 것들은 이름 그대로 자애수행 하라는 것들입니다. 자애가 있어야만이 화를 내지 않게 됩니다.

그다음에 누가 필요하다고 할 거 같으면 나눠주는 것들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연민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까루나 수행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그걸 가지고 유용하게 쓰는 것을 보면 기쁨이 일어나게 되는 무디따, 기쁨의 수행이라는 거고.

그리고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보게 되면 우뻭카 수행을 하게 되는 것.

 

쉽게 말하면 이 세 가지는 멧따 · 까루나 · 무디따 · 우뻭카는 자·비·희·사 사무량심을 증장시키는 방법입니다.

사무량심을 증장시키면 어디에 태어난다고 그랬어요? 범천! 천상이라도 저기 높은데 범천 세계에 태어납니다. 완전히 갖춰지면 범천 세계에 태어나는데 완전하게 안 갖춰지더라도 천상에 태어난다는 거라.

그래서 사무량심을 완전하게 갖추면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만 남겨놓게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닙바나에 이르는 마지막 열쇠만 찾으면 되는 거라. 그마만큼 소중하다는 거라.

 

일상생활에서 만날 우리는 수행만 통해가지고 멧따·까루나·무디따·우뻭카 수행을 할려고 한다는 거라. 일상생활을 하는 거는 다 놓쳐버리고! 사실은 사무량심을 닦을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많은데 그걸 다 놓쳐버린다는 거라. 어느 시간이 많아? (일상생활) 일상생활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거라.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해가서 사무량심을 키울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은데 그걸 왜 자꾸 놓쳐버리느냐는 거라. 꼭 천상에 태어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무량심을 키우면은 이생에서 행복하게 되는 거고, 이생에서 바르게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는 거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완전하게 갖추어지면 인제는 마지막 열쇠만 찾으면 되는 거라. 닙바나의 문은 열려있다는 거라. 잊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천상 세계에 태어나는 조건 세 가지 잊지 말고!

하나라도 하라는 거라. 하나라도!

하나라도 해가지고 천상세계에 태어나고 안 태어나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이생에서 적어도 이거 하나는 내가 성취했다 하는 그런 것으로, 죽을 때 돼서 만족감이 들도록 하라는 거라. 알겠죠?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