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붓다야나선원법문

애매하게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한 4가지 원칙 (20150508. 대구)

담마마-마까 2021. 10. 20. 09:00

https://youtu.be/G2RGNpyFZ_M

* 애매하게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한 4가지 원칙 (20150508. 대구)

 

먼저 오늘 법문 들어가기 전에 붓다의 날 행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아서 그걸 먼저 좀 정리를 할게요. 우리 카페에 그런 글들이 올라온 게 있던데, 그걸 보면서 스님도 참 할 일들이 없다. 이게 조금씩 다르면 “우리는 이날 보냈는데 여러분들은 그날 보내니까 서로 축하합시다” 이러면 그냥 끝날 부분인데 뭐 저렇게 얘기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UN에서 나온 공식 문서에 「웨사카뿌자데이」 라고 영문으로 나온 게 있습니다.

그걸 번역을 해보면 「웨사카뿌자데이는 불교의 가장 큰 행사인데, 인도력 음력으로 여섯 번째 달 보름이 시작하는 날이 웨사카뿌자데이이다. 하는데 그게 보통 통상적으로 양력 5월 달에 해당이 된다.」 그리고 그 뒤에 뭐라고 적어놓았느냐면 「예외적으로 어떤 때는 인도력 일곱 번째 혹은 여덟 번째에 해당이 될 때도 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붓다의 날이라고 하는 웨사카뿌자데이는 양력으로는 5월달 중에 해당이 대부분 되는데, 예외적으로 다르게 된다, 될 때도 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이라는 것도 틀린 거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UN에서 인정한 웨삭데이가 해마다 2005년도에는 5월 23일, 2006년도에는 5월 13일, 2007년도에는 5월 2일, 그다음에 2009년도에는 5월 8일, 2010년도에는 5월 27일, 이렇게 각각 조금씩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5월 초가 되기도 하고 말일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데, 올해는 6월 1일로 돼있습니다. 내년에는 5월 21일로 되고, 그래서 그거는 이미 공식화되어 있는 겁니다. UN에서 인정한 날이 올해는 6월 1일 입니다.

 

단지 왜 이런 차이가 나느냐 하는 것 때문인데, 스리 담마난다 스님도 뭐라고 글을 썼느냐면 웨사카뿌자는 5월 달에 행해지는 게 통상적인 건데, 4월 하순이 될 수도 있고 6월 초순이 될 수도 있다 하고 얘기를 하는 부분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웨사카는 '웨사카 보름날에 행해지는 것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다르게 해석할 필요는 없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느냐 하면 인도력하고 우리나라력하고, 또 버마력하고, 태국력하고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 인도력 같은 경우에는 1년을 12달로 분류를 해놓지를 않습니다. 24달로 분류를 해놓습니다. 24달이라는 건 뭐냐면 보름이 한달 단위입니다. 보름부터 시작이 돼서 달 이빠져나가서 초하루까지 된다, 그럼 이게 보름간이 되는데 이걸 「백분」이라고 얘기해서 이게 한달입니다.

그다음에 초하루부터 해서 달이 서서히 차올라 와가지고 보름까지 된다, 이걸 「흑분」이라고 그럽니다. 쉽게 말하면 한달 안에 「백분」이 하나 있고 「흑분」이 하나 있고 하는 그런 형태들을 띠게 돼있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백분, 흑분을 계산을 하다 보니까, 백분 같은 경우에는 보통 보름간 되는데, 흑분 같은 경우에는 보름이 될 수도 있고 14일이 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비구들에게 "포살을 하는 날은 14일이나 15일날 해라" 하고, 한달에 한번씩 그렇게 하라 했는데, 그건 왜 그러냐하면 흑분이 14일이 되기도 하고 15일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력으로 환산을 해보면 한달이 29일도 되고 30일도 되고 그렇게 되는 형태들을 띠는 건데, 그런데 한달이 그렇게 계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흑분, 백분을 계산을 해보니까 인도력으로 계산해 보면 한달이 29.53일이 됩니다. 이걸 12개로 곱해보면은 1년이 354.36일이 됩니다. 365일이 아니죠? 한 11일 정도 빠지게 됩니다. 그럼 이 빠지는 걸 뭐로 메꿔야 돼? 윤달을 넣을 수밖에 없는 거라.

 

그래서 윤달이 3년 아니면 4년에 한번씩 윤달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윤달을 언제 넣느냐 하는 것이 나라마다 다른 거라.

쉽게 말하면 윤달을 넣을 때 달의 기준을 춘분에 둘 것이냐?, 춘분을 1년의 시작점으로 둬가지고 그때부터 계산 해가지고 빠지는 해에다가 윤달을 두는 경우가 있고,

또는 어떤 경우에는 황소자리에 태양이 지나는 때를 시작점으로 해가지고 윤달을 두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다 차이가 나요. 쉽게 말하면 우리 부산 같으면 춘분에 해가 요쪽에 떴다, 그런데 서울에서 보면 요쪽에 안 뜨고 이쪽에 떴다, 지역마다 이게 다를 수밖에 없는 거라.

황소자리도 꼭 마찬가지라. 이 지역에서는 요기에 떠 있는데, 여기에 떠 있을려면 다른 지역에서는 그 다음달이 될 수도 있다는 거라.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실은 딱 정해진 게 없습니다. 인도력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인도에서도 인도력이 각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또 인도력을 계산하는 것이 아까 한달에 백분이 하나 있고, 흑분이 하나 있다고 했잖아요. 백분을 시작점으로 하는 데가 있고, 흑분을 시작점으로 하는 데가 있다는 거라. 이게 또 차이점이라는 거라. 그러니까 각 지역마다 다 다르는 거라. 그러니까 인도 남부 같은 경우에는 백분을 시작점으로 해서 일년이 시작되는 거로 잡고, 인도 북부 같은 경우에는 흑분을 시작점으로 해서 계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도에서도 1957년도에 삭까월이라 해서 그것을 기준점으로 해서 통일을 해버립니다. 하도 많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인도력이 하나로써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옛날에 불교가 전래된 나라에서는 그 방식을 안 따르는 거라. 옛날 방식 자기들이 유지해왔던 방식대로 그대로 따르게 되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윤달을 넣는 해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윤달이 언제 있었어요? 작년에 있었죠? 올해는 윤달이 없죠? 그런데 버마 세친파나 또 세친파에서 건너간 스리랑카에 아마라뿌라 종파 같은 경우에는 윤달이 올해에 있습니다. 윤달이 언제 있냐하면 아디 아살라하 라고 해가지고 요즘말로 할 거 같으면 유월달에 윤달이 끼어있습니다.

 

그런데 윤달은 우리 같으면 중국력으로 할 것 같으면 유월달일 거 같으면 유월이 먼저 되고 나서 그다음 달에 윤유월이 되는데, 인도 같은 경우에는 반대입니다.

윤유월이 먼저 되고 나서 그다음에 유월이 되는 형태들을 띠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미묘하게 좀 차이가 납니다.

태국 같은 경우에는 작년 9월달에 윤달이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까 작년에 태국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상가에서 회의가 있어요. 9월달이면 해제하는 달인데 윤달이 끼어있으니까 윤9월, 그다음에 9월이 되잖아요. 그러면 해제할려면 한달 뒤가 되는 거라. 이것 가지고 상가에서 말이 많았었는데 결국 통일하기를 어쨌든 3달을 하고 끝내자. 그래야 다른 나라하고 형평성이 맞아진다. 해가지고 앞달을 해제하는 달로 정했었어요.

 

그런데 태국은 그게 가능한 게 뭐냐면 태국은 종파가 2개 종파가 있는데 2개 종파 중에 종정은 한 사람밖에 안됩니다. 이번엔 요 종파에서 종정 맡았으면 다음에는 이 종파에서 맡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승단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승단에서 결정할 것 같으면 2개 종파에서 다 따라야 되는 거라.

그래서 태국에서는 이견이 생길 여지가 없어지는데, 버마나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이런 종정 형태가 없어요. 종정이 각각의 종파에 종정이 따로 있어요.

스리랑카에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3개라고 하는데 시암니까야파에서도 2개로 나눠져있으니까 공식적으로는 종정이 네 분이라.

버마 같은 경우에는 9개 종파가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종정이 9개라. 그러니까 이게 다 다르는 거라.

 

그러니까 자기들이 고유하게 받아온 계산하는 방식들이 태국 하나만 그 나라에서 통일되어 있지, 다른 나라에서는 다 달라요.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도 이번에 붓다의 날이 언제냐 하면 어떤 데는 6월 1일, 어떤 데는 5월 3일 입니다. 버마도 어떤 데는 5월 3일, 어떤 데는 6월 1일 이렇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태국 하나만 6월 1일로 전부 통일되어 있는 거라.

 

그런데다가 UN에서도 6월 1일로 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인원수를 따져보면 버마의 87%가 수담마 파입니다. 수담마파가 86%를 차지하는데, 수담마파는 6월 1일로 그대로 정해놨습니다. 계산하는 게.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게 시암니까야, 시암파입니다. 시암파가 한 80% 정도 되는데 가기에도 6월 1일로 정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다수는 현재 6월 1일을 붓다의 날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UN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그날 전후로 해가지고 전세계에 있는 불교도들이 다 모입니다. 그래서 붓다의 날 행사를 하는데 그날은 6월 1일 전후로 아마 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 테라와다불교에서도 6월 1일을 기점으로 잡은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5월 3일로 기점을 삼은 종파들은 문제가 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느냐면 그렇게 하다 보면 그 뒤에 7월 1일이 결제날이 돼버리는 거라. 그런데 다른 데는 다 7월 27일이 결제날입니다. 결제날이 안 맞아. 그대신에 해제날은 동일하거든. 그게 뭐냐면 해제날은 10월 27일로 동일해.

 

그러니까 붓다의 날을 5월 3일로 했을 경우에는 7월 1일이 결제가 되니까 4달을 결제를 해야 되는 판인 거라. 이 난제가 생깁니다. 태국 같으면 아마 이것 가지고 토론해가지고 앞에 윤6월로 안치고 그냥 6월로 치자 해갖고 7월 27일인가 31일인가 나도 모르겠는데, 그날을 결제날로 아마 잡을 거라. 7월 27일이 아니고 7월 31일 입니다.

앞에 가 될 것 같으면 7월 1일이 되고 뒤에 가 되면 7월 31일이 됩니다. 아마 그렇게 결정할 겁니다. 저기에는 그렇게 안 되니까 자기 종파 그냥 그대로.

그 대신에 아마 모르긴 해도 4달을 결제할 것 같으면 그 뒤에 후안거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 거 같으면 다섯 달이 돼버립니다. 이게 굉장히 난제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아마 4달을 다 지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경우에는 아마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윤6월은 뛰어넘어버리고 그냥 6월에 결제를 동일하게 지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그런 자기가 소속돼있는 종파들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황소자리를 태양이 통과할 때가 웨사카의 보름날로 한다고 하는 그거는 맞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역별로 다릅니다. 우리나라 하고 중국하고 인도하고 태국하고 버마는 그 통과하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어디다 기준을 잡을 거라? 그래서 사실은 그거는 안 맞는 겁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그냥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음력 4월 보름을 붓다의 날'로 통용해서 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다가 UN에서 지정한 날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 날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따르고 나는 우리 방식대로 하겠다면 그 방식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라. 그런데 단지 우리 방식이 맞다, 니 방식이 틀리다 하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은 어불성설이라.

그거는 말이 안 되는 거고, 그거는 꼭 부처님이 하지 말아라는 것을 하는 거하고 마찬가지다 하는 거라. 의식의례에 딱 매여가지고 그걸 가지고 논쟁하고 토론한다는 것은 사실은 부처님 제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단지 이날 한다면 “이날 하시오. 축하합니다.” 이날 할 거 같으면 “이날 하시오. 축하합니다.” 그러면 되는 거라.

그렇게 생각해야 이해하기가 편하지, 그걸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다 할 거 같으면 그것도 참 남부끄러운 얘기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방식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황궁 12궁도 12궁으로 하는 데가 있고, 13궁으로 하는 데가 있고, 그다음에 황도도 황성 황도로 되어 있고 회기항성 황도로 돼있고 이게 다 다르다는 거라. 나라마다 다 다르다는 거라. 여러분이 아마 이해하기는 좀 어려울 건데 그리합니다.

그리하더라도 삭까월로 이미 인도에서 57년도에 하나로써 통일했기 때문에 인도도 그 방식을 따릅니다. 그래서 인도도 똑 마찬가지로 붓다의 날 행사는 6월 1일로 치르게 됩니다.

 

그 점은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거는 사실은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뭐 그렇게 치면은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음력 4월 8일로 치르면 그건 다 틀린 건가? 그거는 그 문화들이고 그 풍습들입니다. 그건 그것대로 인정을 해주고 존중을 해주면 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테라와다불교권 뿐아니라 원래 전세계에서는 동일한 붓다의 날을 사실은 쇠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점으로 잡는 것들이 보통 뭐냐면 UN에서 인정하는 붓다의 날로 잡고 있습니다. 원래 붓다의 날은 남방 테라와다불교권에서는 1950년에 이미 다 인정이 돼있습니다. 56년, 57년 이렇게 가면서 76년까지 쭉 각각의 나라들에 다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다가 UN에서 붓다의 날로 인정한 게 1999년 입니다. 그 이후에는 UN의 기준을 전부 전 나라가 따르도록 사실은 UN에서는 권고를 한 겁니다. 그런데 나는 안 따르고 우리 방식대로 하겠다 하면 그냥 그리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간단합니다. 이해가 됐죠?

 

제발 우리 부산도 마찬가지고 여기 대구도 마찬가지고 하찮은 일을 가지고 논쟁거리 삼지 말아라는 거라. 필요 없는 것들이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설혹 이것이 맞고 저것이 틀리면 뭐할 거라? 그건 의식인데. 의식 날짜 가지고 뭐 그렇게 따질 게 있어? 그리고 실제로 부처님이 태어나고 한 날짜들 역사학자들이 다 조사를 해봤는데 사실은 아직도 확정되지를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내게 맞다, 니게 맞다 하고 얘기를 할 수가 있어? 그거는 아주 어불성설이라. 됐죠?

 

그래서 올해는 UN에서 6월 1일로 정해놨기 때문에 우리 교단에서는 6월 1일에서 가장 가까운 날 31일날 마하보디 선원에서 하기로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의문나는 게 있는 경우? 그래서 제발 글을 쓸 때는 좀 신중해야 됩니다. 확정되지 않는 것들, 그리고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해가지고 그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들을 가지고 아, 이것이 맞다고 다른 것을 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들이 얘기하는 것들도 틀린 것들도 많습니다.

 

어쨌든 붓다의 날 부처님 오신 날은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것은 테라와다 불교도들은 부처님 탄생한 날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탄생하고, 성도하고, 열반하신 날, 3대 큰 날을 기념하는 날이 붓다의 날이라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도 공식적으로 웨삭데이, 뭐 위사카뿌자, 뭐 이렇게 써도 되는데, UN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날은 그냥 「붓다의 날」입니다. 붓다의 날이라고 우리도 통일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저번에 유인물 책자 만들 때 「붓다의 날, 담마의 날, 상가의 날, 까티나의 날」 이렇게 용어를 아예 통일해버렸던 이유가 그런 이유들입니다. 붓다·담마·상가의 날이라고 해서 그날들을 공식적으로 부르는 것이 사실은 맞습니다.

왜냐하면 빨리어 정확한 명칭은 「위사카뿌자」 인데, '위사카뿌자의 날'이라고 쓰는 나라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다 그냥 스리랑카든 태국이든 다 그걸 줄여가지고 자기들이 '위사카'를 부르는 말이 '웨삭'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웨삭데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사실은 그거는 그 나라에서 맞는 것들인데,

 

어쨌든 부처님 태어나고 성도하고 열반하신 것이 가장 큰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은 '부처님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태어난 날입니다.

부처님의 날이기 때문에 「붓다의 날」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법을 설한 날은 담마를 펼친 날이기 때문에 「담마의 날」이고,

그다음에 스님들이 전체 모여가지고 빠띠목카하고 찬탄하는 자자의 날 같은 경우에는 「상가의 날」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그다음에 그렇게 안거가 끝난 스님들한테 가사를 올리는 날은 「까티나의 날」이라고 그럽니다. 까티나는 사실은 번역하기 힘들어가지고 '까티나의 날‘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모르죠. 지금은 UN에서는 붓다의 날이라고 공식화되어 있는데, 또 불교도의 힘이 커지면 담마의 날도 생기고, 상가의 날도 생길지 어떻게 알아?

 

23: 25~~~

자! 오늘은 「애매하게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한 4가지 원칙」 입니다.

 

적어도 이거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어가지고 얘기를 했습니다.

어찌보면 헛되이 시간 보내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들 시간을 한번 가만히 보십시오. 그냥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우리 여기는 여성분들이니까 자식들 때문에 하루에 반 이상 시간을 투자했다,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자기 자신으로 봤을 때는 ‘어, 내가 뭐하고 살았노’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겁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수행을 했으면, 아니면 그 시간에 내가 공덕을 쌓았으면, 오히려 더 큰 이익이 있을 건데, 그거 지지고 볶고 한다고 그냥 다 시간보내고, 어떤 남자들은 직장에 등급 높아지는 것, 아니면 돈 모으고 이런 데 시간을 다 보내고 나면 나중엔 아, 참 허무한 것들이라. 그렇게 얘기들을 합니다.

그런 것들은 적어도 피해야 되지 않을까, 그걸 하지마라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기준들을 분명하게 확립을 해두면은 살아가는 데는 적어도 그래도 불교적으로는 살아갈 수가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첫 번째 천한 행위는 모두 그만둡시다.

 

여러분들은 항상 그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탐·진·치가 오염된 상태로 있지는 말아라.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그런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떤 경우든지 그것은 천한 행위다. 그래서 그거는 당장 그만두어야 된다.

그런데 이게 불교적인 관점하고 사회적인 관점하고는 다릅니다. 천한 행위를 어떤 것을 천한 행위라고 할 것이냐? 하는 거라. 일정 부분은 공통분모들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살생하지 마라. 그러면 그건 천한 행위라, 살생하는 행위는. 그런데 나는 고기 잡아야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일 거 같으면 그 사람은 그것은 천한 행위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사회적인 기준하고 불교적인 기준하고는 완전하게 동일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충돌할 경우에는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될 것이냐?는 거라.

불교를 기준잡아야 됩니다. 지금은 어쩔 수없이 그냥 고기를 잡고 먹고 살지만 하루빨리 고기잡는 것을 그만두고 다른 것으로 바꿀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그런 기준점이 없을 거 같으면 이거는 천한 행위 아니니까 나는 계속한다는 마음을 먹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살생을 하면서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준점은 두 가지 입니다.

··치에 의해서 오염된 상태로서 행하는 것들은 천한 행위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사회적으로 이것은 천한 행위라고 관습화된 것들은 천한 행위입니다.

 

물론 이 두 번째 것은 지역마다 나라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그것은 변할 수가 있는데, 앞에 첫 번째 것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기준점으로 잡아야 되는 것은 앞에 것들을 기준점으로 잡아야 된다는 겁니다.

살아가면서 어쨌든 몸과 말과 마음으로 탐·진·치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들을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이건 절대적인 겁니다. 그것들은 마음속에서 항상 이것은 천한 행위라는 거라. 비천한 것, 내가 화를 냈다, 내가 비천한 짓 하고 있는 거라. 거렁뱅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내가 하고 있다는 거라.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만이 화내고 하는 것들을 ‘어, 내가 이거 잘못하고 있네’ 하고 빨리 그칠 수가 있게 되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 게을리해선 안 된다.

 

게으르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목적이 뭔가? 왜 살고 있느냐는 거라.

목적을 잃어버리면은 그냥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빠져버립니다. 맛에 탐닉하는 사람은 그게 나쁜 줄도 모르고 그냥 그거 먹어요. 나중에 배불러가지고 아이고 배 아파 죽겠다 이러면서. 그거에 그냥 탐닉해버리게 된다는 거라.

또는 수행하는 사람이 목적을 잃어버리면 앉아서 편안한 거 그냥 즐기고 앉아있어요. 한 시간 내내 아무런 현상도 없고 대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마음도 없는데도 그냥 좋아가지고 그냥, 편안하니까. 목적을 잃어버리는 거라. 그게 전부 다 게을러지는 것들입니다.

 

마음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렇게 게을러지려고 그럽니다. 게을러질려고 마음은 언제든지 준비가 돼있다는 거라. 그러면 내가 정신차리지 않을 거 같으면 수행을 하든, 아니면 일상생활을 하든, 뭐 어떤 것을 하든 간에 게을러지는 마음들은 항상 일어난다는 거라.

그러면 다시 자꾸 다잡아야 됩니다. 수행하다가 그냥 고요함에 푹 빠져있다, ‘어, 내가 또 게으름부리고 있네’ 하고 분명하게 딱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고, 또 일상생활 할 때도 뭔가 탐닉하고 있다, 아니면 뭔가 싫은 마음들이 일어난다, 그건 게을러져 있는 겁니다. 게을러지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서 스톱을 하지 못하는 거라. 멈출 힘이 없으니까 그냥 그대로 가게 되는 거라. 그래서 내가 게으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게으름 부리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용납을 해선 안됩니다.

게으름 부릴 경우에는 어리석음이 점점 더 심해져버립니다.

자기가 윤회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그 윤회의 고통을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거와 마찬가지 상태라는 거라. 여러분 살다가 죽겠죠? 그럼 또 다음 생을 맞습니다. 그냥 으레 그런 줄 알게 됩니다. 그거 끊을 생각을 안 하는 거라. 그리고 좀 더 좋은 조건이 될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를 못하는 거라. ‘그냥 이렇게 하지 뭐.’

여기도 수행하러 와가지고 그냥 오늘 그렇게 하지 뭐. 그러고 또 그냥 갑니다. 또 일주일 뒤에 또 옵니다. 계속 그렇게 해가지고는 그 사람은 정신적인 성장을 할 수가 없는 거라. 기회가 닿을 때, 반드시 지금 해야 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게으름 부릴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되는 것은

 

시기! 게으름 부릴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되는 것은 시기입니다. 지금 여러분 시기 다 놓쳤어. 솔직히 얘기하면. 공부할 시기는 빨리빨리 돌아갈 때, 그리고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될 때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시기 다 놓쳐버렸다는 거라. 시기 놓쳤다 해가지고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열심히 게으름 부리지 말고 해야 되는 거라. 그렇다고 너무 한숨 쉬지 말고.

 

그다음에 두 번째가 변명! 자기 나름대로 그냥 변명을 하는 거라. 아이고, 오늘은 바쁘니까, 오늘 뭐 으짜니까, 이러면서 자꾸 변명거리를 만들고, 변명거리가 없으면 또 다른 마음속에서 변명거리를 만들어낸다는 거라. 그러면서 게을러지는 습성들이 더 자꾸 생겨나도록 만드는 거라.

 

그래서 시기와 변명 이것은 어떤 경우든지 필요하지 않다는 거라. 지금 그렇게 알았을 때가 가장 빠른 시기이고, 그리고 지금 자신을 분명하게 볼 때 변명거리를 찾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가 게으름부리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세상의 다양한 잘못된 사고에 조종당하지 않게끔 하라.

 

조금 전에 얘기한 붓다의 날 그것도 마찬가집니다. 주의·주장·사고 거기에 그냥 딱 얽매여버리는 거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요즘은 미디어들 홍수입니다. 그러면 그걸 또 그냥 믿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휩쓸려가는 거라. 그거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겁니다.

테레비 하나도 안 보고 사는 우리도 얼마든지 잘 삽니다. 요즘 연속극이 뭐 하는지 뭐 어쩌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혀 내 중 생활 해나가는데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라. 여러분은 안 그걸 것 같애요? 그거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데도 그거 없으면 불안한 거라. 뭔가 이 사람하고 얘기할 때 그 부분을 모르면 어떻게 할까? 모르면 어때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조종당해버리면 안 되는 거라.

 

특히나 요즘은 그걸 조종하도록 만듭니다. 물건 하나 만들어도 잘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요즘은 어떻게 광고를 때려가지고 이걸 좋게 만들어서 포장하는 것만 신경쓴다는 거라. 그러면 사람들이 거기에 그냥 혹 가버리는 거라. 이게 물건이 좋고 안 좋고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라. 그래서 옛날에는 좋은 물건 만들어놔 놓으면 두고두고 자기 죽을 때까지 그거 팔아먹고 살았는데 요즘은 아무리 좋은 물건 만들어도 이런 홍보가 없으면 그냥 굶어 죽어. 그게 지금 현대사회인데 거기에 그냥 놀아나고 있는 거라.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럴 필요 없이, 사회적인 것도 마찬가지고 불교적인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사고나 주의·주장들에 그냥 휩쓸려 가버릴 것 같으면 정작 내가 해야 되는 것은 까먹어버립니다.

그러면서 그 반대적인 마음들, 남을 시기·질투하고, 남을 미워하고, 자꾸 분란만 일으킬려고 하고, 이런 것들 마음만 자꾸 일어나는 거라. 그러니까 싸움하는 사람들은 만날 그런 것만 찾아다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라. 그런 것들에 놀아나지 않게끔 반드시 마음단속을 하라는 거라. 그게 세 번째 부분입니다.

 

그다음 네 번째는 쓰레기 모으지 마라.

 

왜 모읍니까, 쓰레기? 그 쓰레기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지식, 불교적인 것도 마찬가집니다. 불교적인 지식도 지식입니다. 그 지식으로만 알려고 합니다.

여기는 그런 게 별로 없는가? 필요 없는 것들 쌓아놓는 것이 많습니다.

이게 언제 사용이 될지, 한 번도 사용이 안 되고 그냥 폐기처분 될 지, 아니면 가끔 사용될지 그것도 모르고 이것은 언제 필요한 것이다 하고 모아두는 것들입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자꾸 모아둘까? 불안하기 때문에! 모아두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불안감이 더 커집니다. 미래에 대한 보장들이 없기 때문에. 불안할 필요가 뭐 있어? 자기가 부처님 법 따라 잘 살아가고 있으면 불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연금 들어놓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덜컥 지금 아파놔놓으면 돈도 없는 상태에서 애들이 내버리면 우짤까?

스님들도 그런 생각들을 한다는 거라. 그 불안감이라고 하는 것들이 정신적인 질병, 정신적인 원인이 된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거라. 모아두는 게 문제가 아니고, 그 정신적인 원인으로 인해서 불안감들이 더욱 더 증폭된다는 생각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개미나 또는 벌은 무조건 모아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안 모으면 죽기 때문에. 꿀을 모으지 않으면 걔들은 죽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네들이 모으는 건 이해가 돼.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거 안 모은다 해서 죽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왜 자꾸 그러느냐는 거라. 저 밑에 곤충들이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왜 그 일들을 계속 해나가느냐는 거라.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지금부터는 모으지 마라. 필요한 것만, 이게 지금 내한테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만 생각을 하고, 필요 없을 거 같으면 그게 아무리 고가이든 아니면 아무리 다음에 유용하게 쓰여질 것이든, 그거 나한테 가질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필요한 사람들 필요한 곳에다 다 줘버리라는 거라.

물건, 그다음에 명예, 모든 것들이 꼭 마찬가지라는 거라.

 

얼마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이사장 마치고 나니까 지금 이사장님이 요렇게 공로패 해가지고 줍니다. 속으로 ‘아이고, 저놈의 자식, 뭐 한다고 저런 걸 하나 만들어갖고 성가시게 만들어가지고...’

아니나 다를까 그거를 선원에다가 떡 갖다놨다. 그랬더니 우리 선원에 식구들이 그거를 탁 거기다가 펼쳐 놔. 그래서 차마 우리 식구들이 있는 데서 그거 없애지는 못하겠고, 없는 저녁에 살그머니 가져다가 내버렸어요. 나에게는 필요가 없는 거니까. 내가 그거 있다고 해가지고 내 명예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필요 없는 것들, 그것이 있든 없든 간에 나의 본질은 바뀌지를 않는다는 얘기라. 그럼 여러분들은 그걸 찾아야 되는 것이지, 외부적인 치장하고 외부적으로 이렇게 나를 아름답게 만들고 하는 것들은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부처님이나 깨달은 분들한테는 자취가 없어요. 자취가. 새가 허공을 날아가면 발자국을 남기지 않듯이 자취가 없습니다. 적어도 그렇게는 돼야 될 거 아니라?

 

이 네 가지는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야만이 그냥 무작정 사는 것들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됐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