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붓다야나선원법문

2015년 우안거 법문 및 우안거 게송 독송 (20150807. 대구)

담마마-마까 2021. 11. 21. 09:00

https://youtu.be/PtzbJIWDHX8

* 2015년 우안거 법문 및 우안거 게송 독송 (20150807. 대구)

 

우안거 입재일이 한 5일 정도 지났죠? 해제도 5일 정도 지나서 할 겁니다.

오신 분들은 다 안거 할려고 온 거죠?

나중에 공양할 때 사사나 스님도 같이 준비해주십시오. 떼짓사라 스님도 전화가 왔던가요? 같이 준비해주십시오.

 

자! 프린트물 보십시오. 대구에서는 안거를 처음 지내게 됩니다. 안거가 끝나야 수계명을 받을 건데, 나중에 “한번 빠졌는데 스님 봐줘요” 하는 소리 하지 마.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니까 땡깡부려도 그건 안 되는 거니까.

 

불교에는 "세 가지 계절이 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동남아시아나 인도 같은 경우에는 세 계절이 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무슨 계절인지 알아요? 더운 계절, 비 오는 계절, 그다음에 추운 계절! 자기들은 그렇게 얘기하는데, 서양인들이 봤을 때는 '더운 계절', '더 더운 계절', '미치도록 더운 계절' 그렇게 얘기합니다. 농담인데, 불교의 재가자든 출가자든 혼자만 있을 거 같으면 계절을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고 다 모임을 만들고 있어요. 여기도 붓다야나 모임, 그다음에 스님들도 스님들의 모임인 상가라는 모임, 이렇게 모임들이 있는데 그 모임은 항상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공동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임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동일한 지역에 거주해야 된다는 것, 하나.

여기에도 대구가 동일한 지역이라고 봐야 되죠? 물론 멀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는 그 한두명 가지고 거기서 하나의 그룹을 만들 수가 없으니까 여기서 같이 해야 되는 거라. 그렇게 봤을 때는 동일한 거주, 대구라는 거주를 가지게끔 되는 거죠.

 

출가한 스님들도 마찬가집니다. 혼자 독립해서 수행하고 숲속에 있는 스님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주처가 어디냐 하고 물어보면 "내가 속해 있는 곳은 어느 사원이다" 하고, 매번 그 사원에 가서 포살 행사를 하고, 무슨 행사가 있으면 거기 가고 하니까, 우리나라 같으면 본사 같은 그런 형태들을 띠고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다른 곳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본사에 행사가 있으면 항상 거기에 가서 같이 하게끔 됩니다. 그걸 '동일한 거주처'라고 하고 그게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 기본적인 조건은 뭐냐면 동일한 시마(sīma), 시마라고 하는 것은 계단(戒壇)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만약에 여기 붓다야나 선원이 계를 줄 수 있는 시마홀이 여기로 지정이 돼있다고 할 거 같으면 여기서 출가를 하고, 여기서 수행생활을 하고, 여기서 공부를 하고 이렇게 하게끔 됩니다. 만약에 경주에 시마홀이 건립됐다면 또 경주에서는 경주의 동일한 시마 구역내에서 거기서 그렇게 하게 됩니다. 부산이면 부산.

그래서 '시마' '동일한 경계구역'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몇키로를 잡느냐 하면 20km 이내에 있을 때, 그리고 20km를 벗어날 때는 다른 시마홀들을 건립할 수 있게끔 그렇게 돼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안거를 지낸다는 것은 여기서 동일한 게송을 하고, 재가자들도 여기서 동일하게 거기에 거주하는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이렇게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여기가 아니면 동일한 시마 경계구역 내가 아니면 부산이면 부산에서 해야 되고, 경주면 경주에서 해야 되고 그렇게 됩니다. 이번에 경주에 가서 안거하는 사람 있어요? 대구는 아무도 없나? 부산 같은 경우에는 한사람이 있어가지고, “너는 그럼 매번 경주에 와. 매주마다” 그렇게 하니까 안 간대. 다시 여기서 스님을 봐야겠다는 거라. 자기는 몰랐다는 거라. 왜그러냐 하면 어떤 경우에든 두 군데 겹칠 수는 없거든.

그래서 시마홀을 정할 때는 경계를 겹쳐가지고는 어떠한 경우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갔다가 저기에 갔다가 할 수는 없게끔 되는 거라.

그래서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것을 "하나의 무리다" 하고 얘기를 하게끔 됩니다.

 

그럼 그 하나의 무리가 재가자이든 출가자이든 그 무리가 세 번의 동일한 형태들을 띠게끔, 일년 해서, 평상시의 생활이 있고, 우기 때 안거 생활이 있고, 안거가 끝나고 나면 '짜리따'라고 해서 유행의 시간이 있고, 이렇게 세 부류로 그렇게 나눕니다. 이걸 불교에서는 "세 계절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평상시 스님들은 가사, 그다음에 탁발하는 것, 그다음에는 머무르고 있는 거주처, 아플 때 병원가고 하고 이런 것들, 약품 이런 것들이 동일하게, 동일한 거주처에 있을 때는 동일하게 혜택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국 테라와다불교에서도 동일한 범위라고 간주를 하기 때문에 스님들의 건강검진을 누구든지 다 받게 했습니다. 차례대로 해서 누구 받고 나서는 누구 받고 이런 식으로 해서.

그게 이 필수품 4가지는 동일하게 분배해야 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한테 가사를 많이 갖다줬다, 동일한 거주처에 있을 거 같으면 그거는 나 혼자서 그걸 독식할 수 없는 거라. 그거는 동등하게 분배해야 되는 거라. 그러니까 가사를 내가 많이 받았다 해가지고 내가 다 독차지할 거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라. 음식물도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음식물을 받았지만은 그걸 받아서 내 혼자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여기에 누군가 찾아오면 동일하게 갈라먹어야 되는 거라.

그러니까 동일한 구역에 있다, 동일한 시마-결계구역에 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들을 지닙니다. 네 가지 필수품들은 골고루 분배하게끔 되고, 그게 인제 일상적으로 평상시 때 하는 형태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여기에 그 필수품들을 누가 조달해요? 여러분들이 조달하게끔 되는 거라. 여러분들이 탁발을 올리더라도 만약에 내혼자 있으면 내혼자 먹어도 되는데 다른 스님들이 올 거 같으면 나하고 분리해가지고 나는 맛있는 거 주고, 그 스님들에게는 맛없는 거 주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 동일하게. 만약에 가사를 올릴 일이 있을 거 같으면 만약에 여러 스님들이 왔다 할 거 같으면 동일하게, 재가자들은 4가지 필수품들을 올릴 때는 그 구역 내에 있는 스님들일 것 같으면 동일하게 그렇게 해야 된다 하는 겁니다.

그거는 재가자들이 항상 명심을 해야 될 부분입니다.

 

내가 법문을 한다고 해가지고 나한테만 뭘 많이 주고 다른 스님들한테는 안 준다, 그럴 거 같으면 다른 스님들은 삐져. 왜 그런지 알아요? 동일한 거주구역 내에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 그러니까 삐질만하니까 삐지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다음에도 항상 주의를 해야 되는 것들이라.

우리 가끔씩 까티나 행사하고 하죠? 그럴 것 같으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님한테만 가서 탁 공양물 주고 와버리는 거라. 되도록이면 그렇게 하지 말아라 하는 거라. 형편이 어려울 경우에는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건데, 그리 하더라도 그건 동일하게 분배를 해야 되는 거라. 열 명의 스님이 왔으면 열 명의 스님에게 동일하게, 작은 거라도 동일하게 분배를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항상 명심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평상시 때는 그렇게 살아가면 좋은데. 우기 안거철이 되면 경우가 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두 번째가 뭐냐면 "우기" 라고 하는 기간입니다.

 

우기는 몇개월 입니까? (삼개월) 삼개월? 맞아요? (석달 안거하니까...)

그래서 "안거는 두 종류가 있다"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전안거하고 후안거가 있다"하고 얘기합니다.

우리 음력으로 치면 음력 6월 보름에 시작해가지고 9월 보름에 끝나면 삼개월이 되죠? 그걸 전안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후안거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치못해가지고 그때 안거를 못할 경우에, 그럴 경우에는 한달 뒤 7월 보름에 시작해가지고 10월 보름에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는 이번에는 공부 열심히 해볼란다 해가지고 전안거 후안거를 통합할란다, 그럴 거 같으면 전안거에 시작해가지고 후안거 끝날 때까지 하게 되니까 어떤 사람들은 4개월을 할 수가 있습니다. 누구 4개월 할 사람 있어요? 재가자들은 아무 이상이 없어요, 4개월 해도.

 

그런데 대부분은 전안거로 6월 보름에 시작을 해서 9월 보름에 끝나게 됩니다. 특히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만 빼고.

왜 그러냐 하면 9월 보름이 끝나고 나면 9월 보름에서 10월 보름까지는 '까티나 가사' 기간입니다. 만약에 후안거를 했으면 10월 보름에 끝날 거 같으면 까티나 가사를 받을 자격이 안 됩니다. 그럼 매일 어디 갈 때마다 이거를 들고 다녀야 되는 거라. 이 상가띠를. 안 들고 다니는 스님들도 많지만. 그 다섯 가지 특권이 5개월 동안 유지되는데, 5개월 동안은 이거 안 가지고 다녀도 되는데, 특권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이걸 만날 들고 다녀야 되는 거라.

그런 불편한 것들도 있고, 어디를 이동하고 하더라도 내 가서 자기 마음대로 공양을 할 수도 없고 그런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까티나는 반드시 할려고 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안거는 전안거에서 다 끝나게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게 보통 3개월 아니면 4개월이다 하고 우기기간을 그렇게 얘기됩니다.

 

인도 같은 경우에는 우기 때 강수량이 1년 동안 내리는 비의 80%에서 85%가 내립니다. 3개월 동안에. 우리의 지금 양력 7, 8, 9월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일반 재가자들도 나다니기가 좀 힘이 듭니다. 특히 인도 같은 경우에는 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있습니다. 곳곳이.

그런데 부처님의 활동지역은 보면 동서로 이렇게 돼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남북으로의 길이보다 동서의 길이가 더 길거든. 그래서 요쪽에서 이쪽으로 갈려고 할 거 같으면 반드시 강을 지나가서 가야 되는 거라.

그런데 여러분들 계곡이나 강들을 알겠지만 비가 오면은 갑자기 급류가 되는 거라. 그럼 사람이 다칠 수가 있는 거고, 특히 인도 같은 경우에는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지만 비가 한번 오면 스콜 같이 한번에 확 내리기 때문에 걷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에는 다른 종교에서는 나다니는 걸 피하고 있습니다. 지 안 죽을라고. 그리고 자기가 안 죽을라고 하는 목적도 있고, 벼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우리하고는 다르게 거기는 수경재배를 합니다. 물에다가 볍씨를 요렇게, 땅에다가 볍씨를 톡 꽂아놔놓으면 물이 반반하게 차가지고 그것으로 해서 씨가 발아해가지고 벼가 되는 형태를 띱니다. 그걸 수경재배 방식으로 합니다.

그런데 물이 없을 때는 여기가 논이다 하는 것을 아는데, 물이 반반하게 차 있으면 이게 논인지 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라. 그럼 막 밟고 다니면 어떻게 되겠어요? 볍씨가 다 죽어버리는 거라. 그래서 농작물들의 피해를 방지할 목적, 이 두 가지 목적으로 그 사람들은 강 중에서 안거를 지내게 돼있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뭐가 주목적이라요?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하기 위해서 한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안거가 필요 없는 거라. 안거에 들어가 있으면 그 지역밖에는 못하잖아. 다른데 법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안거 때는 갈 수가 없으니까 못하는 거라. 그래서 불교에서는 처음에는 안 했어요.

부처님이 성도하고 나서 보통 12년이 지나고 나서 안거를 처음 시행을 하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얼마나 다른 데서 욕을 했을 거라? 저 부처님 제자들은 농작물 다 밟아 죽인다. 하고 그랬을 거 아니라. 그러니까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부처님이 우리도 안거를 지내자 하고 하게 됩니다.

 

그걸 보면은 아무리 진리를 전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관습들을 해치는 상태에서는 진리를 전하지는 않는다 하는 거라.

진리를 전하는 것이 좀 더디고 못 전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의 관습을 거슬러가지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거라. 지척거리인 데다가 특히 재가자들이 그런 얘기들을 했을 때 출가한 스님들이 그 얘기를 듣는 거라.

 

출가한 스님들도 사실은 자기가 농사짓고 사는 것도 아니고 죽으면 어때서, 출가한 스님이. 그것과 관계가 없지만 재가자들의 얘기를 듣는 게 출가자의 몫이라. 합당하다 싶으면 그것에 따라준다는 거라.

모든 계율들이 제정된 것들이 그런 목적으로 해서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재가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부처님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랬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얘기했을 때 부처님이 그걸 받아들여서 전체 스님들에게 알려주는 그런 형태들을 띠게끔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 우리 불교도 결제를 하자 해가지고 안거 결제를 했는데 할 일이 없는 거라. 만날 법 전하러 다니다 보니까 한 자리에 있으니까 여기 대구 같으면 한 열댓명 오는 사람들에 만날 전하는 그거 뭐 별거 없거든.

그것도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많은 스님들이 있으면 삼개월 해봐야 법문을 한번 할동말동 할 정도가 되니까 스님들이 그럽니다.

“그렇게 법을 전하는 시간 외에는 나머지 때는 전부 묵언을 하자”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스님들 생활이 똑같습니다. 탁발하고 갖다 와서 밥 먹고, 모여서 밥 먹든 아니면 혼자서 밥 먹고 나서, 오후에 다시 수행하고 저녁때는 티타임 해가지고 차한잔 먹고, 그러고 나서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수행할 사람은 수행하고 만날 동일하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거든.

그래서 삼개월 동안에 그렇게 해가지고 지냈어요.

 

그러고 나서 부처님한테 가서 “부처님 우리 결제 잘 지냈습니다.”

“그래. 너희들 결제 지내는데 거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느냐?”

“예! 불편함 없이 잘 지냈습니다. 재가자들이 맛있는 거 많이 주고 해서 잘 먹었습니다.”

“그래. 어찌 지냈느냐?”

“우리들은 말 안 하고 열심히 수행만 했습니다.”

부처님한테 칭찬 들을 줄 알았는데 부처님은 “이 바보 같은 놈들아!”

삼개월 동안 머물러 있다고 할 경우에는 너희들끼리 서로 법을 얘기해가지고 서로 탁마할 줄 알고, 그리고 잘잘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너는 이런 이런 것은 바로 고쳐야 된다, 이런 것은 참 잘한다." 이렇게 서로 독려해주고 서로 질책해줄 줄 알아가지고, 그래서 서로 참회하고 또 자기가 잘한 것들은 더 열심히 할려고 마음을 먹고 이래야 되는 것이지, 말 안하고 벙어리 같이 있는 그게 무슨 결제냐 하고 부처님이 뭐라 합니다.

그 뒤부터는 인제는 결제방식이 바뀝니다.

 

그 뒤부터는 어떠한 경우든지 아침저녁마다 잘잘못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스님! 내가 혹시 말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마음으로 잘못한 게 있으면 그 잘못 지적해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그걸 받아들여서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이런 이런 거 잘못했다, 다음부터는 하지 말아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또 장로스님이 “그래. 네가 그렇게 했으니까 나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얘기해봐라” “스님도 이런 이런 거 잘못한 게 있습니다.” “그래. 그럼 알겠다. 나도 몰랐는데 앞으로 그런 거 안 할게” 이렇게 서로 참회를 합니다.

 

그러면서 법에 대해서 담론들을 하게 됩니다. “수행의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이런 상태가 나오는데 이게 맞습니까?” 또 “이거 내가 수행하고 있는 거, 아니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암송하고 있는데 이것이 맞습니까?” 서로 탁마하는 거라.

그러니까 안거 기간 동안에는 내내 경 읽는 소리가 그 사원에 진동을 하는 거라. 스님들이 몇 사람씩 모여서.

 

그런데다가 자기가 정하는 거라. 아,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 만약에 「까라니야멧따 숫따」 할 거 같으면 “까라니야 맛타 꾸살레나~~” 하면서 하는데, 그 「까라니야멧따 숫따」를 내가 이번 안거기간 동안에는 반드시 암송을 하겠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해가지고 그 한 구절만 탁 들어도 ‘아. 너무 좋다’ 하는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겠다. 할 거 같으면 그걸 하기 위해서 만날 외우게 되는 거라. 그걸 공부하게 되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경을 암송하는 소리가 진동을 하게 되는 거라.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고 잘한다고 하지 “수행하는게 싫어” 이렇게 소리는 안 한다는 거라. 왜? 안거 동안에는 그게 허물이 되는 거라. 부처님이 법에 대해서 담론하고 법에 대해서 토론하고 그리고 서로 경책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라.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수행한다 해가지고 “이번에 내가 아라한 될 거다” 하고 마음을 먹었으면 잠도 안 자고 내내 수행을 합니다. 어떤 스님들은 옆에 자고 있어도 그거 방해된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거라.

 

각각의 다른 방식들을 하고 있어도 그게 가능한 게 뭐냐면 같이 모여있는 동일한 경계내에, 동일한 구역내에 있으면 화합이 우선이라는 거라. 자기가 조금 양보하고서라도 바른 것, 맞는 것들을 하고 있을 거 같으면 서로 용인해주고, 서로 독려해주게 돼있는 것이 그게 화합된 무리라고 하는 거라. 그게 우선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거라.

그래서 3개월이 딱 지나고 나면 나는 수행해서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고, 나는 경전에서 어느 정도 알게 되고, 그다음에 계율을 배우고 공부하고 한 것이 어느 정도 진척이 있고 해서 3개월 지나면 확 달라집니다. 다른 기간보다도 훨씬 그게 바르게끔 되는 거라. 많이 또 하게끔 되는 거라.

 

재가자들도 마찬가지겠죠. 그 기간동안 스님들이 저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해가지고 3개월 동안 우리는 이런 것을 하겠다 해가지고 자기들이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일절 3개월 동안 나는 술 안 먹어.” “나는 이번 3개월 동안에는 매번 불재일날은 반드시 참석해가지고 공양 올리겠다.” 아니면 “이번 3개월 동안에는 내가 이런 바라밀이 부족하니까 그 바라밀을 닦는데 노력하겠다”

바라밀도 열가지 바라밀,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내가 반드시 닦겠다 해가지고 결정심, 아딧타나를 내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번 3개월 동안 스님들 같이 나도 공부하고 어느 경전을 외우겠다. 또는 나는 수행을 매일같이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 자기가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훨씬 이익입니다. 그래서 시간나면 사원에 가서 수행을 하는 거라. 가가지고 거기서 공부하고 수행하고 다 참여 못할 때는, 그럼 우리끼리 몇 사람, 우리끼리 몇 사람 이렇게 조직해놓고 또 그날은 가가지고 그렇게 하게 되고. 그래서 결제 때가 되면 출가한 스님이든 재가자든 절이 박작박작박작 거리는 거라.

눈이 반짝반짝반짝하게 됩니다. 그게 결제라는 거라. 그렇게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재가자들도 바라밀을 성숙하기 위한 참 좋은 시간이고, 또 공덕을 쌓기에도 참 좋은 시간이고, 또 수행에 진척이 있기에도 참 좋은 시간들이다 하는 거라.

 

출가한 스님들이 유행시기에 밖으로 나가서 법을 설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여기서 얻게 됩니다. 결제 때가 되면 법문하는 시간들이 훨씬 많아집니다.

어떻게 되느냐면 불재일 전날 저녁, 불재일날 오전, 불재일날 오후, 불재일날 저녁, 일주일에 4번 입니다. 기본적인 것이 일주일에 4번입니다. 그게 뭐 한 곳에서만 이루어져요? 여기 큰법당이 있으면 큰법당에서 한번 이루어지고, 또 저 저쪽에 사람들이 모여서 수행하고 있는 곳이 만약에 (---)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자리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법문하고, 곳곳에서 그런 것들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법석이 이루어지게끔 됩니다.

 

그래서 재가자들도 일반적인 때에 절에 가는 것과 우기 때 절에 가는 것은 신심이 많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합니다. 사람들도 많이 모여있고 또 바른 일들을 자꾸 하는 것들이 많아지거든. 그래서 재가자들도 결제는 되도록이면 지키도록 하라.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은 결제가 되면 한 살이 많아져서 올라가지는데, 그걸 법납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재가자들은 그게 없어요. 여러분은 쌔가빠지게 결제를 해봐야 그게 연수로써 법납으로써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올라가지든 안 가지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걸 함으로 인해서 내가 그마만큼 성취를 많이 할 수가 있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도 반드시 그런 결제들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결제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나가게 됩니다.

 

이 승원이 갖추어진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부처님 당시 때는 부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만날 부처님을 따라다닌다는 거라. 그 무리가 점점 늘어났을 거 아니라. 그래서 우리 대승경전에 보면 1250여명의 비구들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부처님 뒤를 졸졸졸졸 따라다니는데, 한 곳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더라도 비 피할 곳도 없잖아. 이런 승원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까. 부처님이 처음에는 그걸 허용을 안 했으니까. 그러니까 적어도 그 많은 무리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자리는 있어야 되겠다 해가지고 나중에 승원을 건설하는 것을 허용을 하게 했던 겁니다. 그러면서 안거가 시작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뭐냐면 많은 사람들이 출가를 하다 보니까 나이가 법납이 많은 사람도 있고 인제 막 출가한 사람도 있는데, 이걸 가르쳐야 되는데 계속 이동하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은 적습니다. 한곳에 딱 머물러가지고 인제 출가한 스님들 전부 모여! 해가지고 딱 모아가지고 한 번에 딱 교육하는 게 효율적이지,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다 할 거 같으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거라.

 

불교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정해집니다. 제자는 어떠한 경우든지 스승의 곁을 5년간 떠날 수 없게끔 돼있습니다. 그걸 '동주 비구'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한 곳에 같이 머물러 있는 비구라는 뜻입니다. 출가한 스님은 반드시 5년간은 그 스승 밑에서 배워야 됩니다. 습의 사용도 배워야 되고 경전도 배워야 되고, 수행하는 것도 배워야 되고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5년간은 못 떠나게 됩니다.

 

나도 처음 스승의 곁을 떠난 게 거의 10년 가까이 됐을 때 스승이 허가를 해줬어요. 다른 수행법도 좀 배우고 싶은데 가도록 허락을 해줘야 가지. 버마 가서도 좀 배우고 다른 나라 가서도 다른 수행법들도 좀 배우고 싶었는데 스승의 가르치는 수행법을 먼저 마스터 하도록 해서 10년 정도 지나고 나서야 그때사 “가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최소한 5년에서 10 간은 그 스승 밑에서 그 법대로 완전히 마스터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거주할 공간이 필요하게 되는 거라.

 

그다음 세 번째 이유가 출가한 스님들이 여러 스님들이 모여있으니까 갖가지 일들을 해야 됩니다. 보름마다 한번씩 빠띠목카라고 해가지고 계율을 암송도 해야 되고, 또 어느 일들에 대해서 스님들이 모여가지고 이것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결정도 해야 되는 거고, 누가 또 잘못한 것들이 있으면 잘못한 것들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것도 결정해야 되는 거고, 출가할 사람이 있을 거 같으면 출가는 그냥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마홀이 있는 곳에서만, 가람이 필요한 거라.

그래서 그런 곳들에서 한 곳에 모여가지고 출가자들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해야 되고, 그리고 뭔가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잘못한 것들을 지적하기 위한 것도 해야 되고, 부처님 당시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그걸 암송하기 위해서 결집도 그런 한 곳에 모여서 해야 되는 거고 그리해야 되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이런 거주처가 필요하게 되는 거라.

 

이런 여러 가지 조건으로 인해서 거주처가 반드시 필요한데 단, 이런 거주처가 있으면 문제가 뭐가 생기냐면 계속 안주할려고 하는 거라. 안 그러면 그게 자기 거 같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라. 여기 붓다야나 선원, 내 거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라. 다른 스님들이 머무르려 할 거 같으면 "여기 머물지마!" 자기 거 같이 그래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자기가 어디 나갈 때는 다른 사람한테 열쇠가 어디 있다고 알려주지도 않고 잠가버리고 가버리는 거라. 자기 거니까.

그래서 반드시 안거가 끝나고나면 출가한 스님들은 반드시 유행을 하라.

 

그래서 안거가 끝나고 나서 하나의 계절로 정해진게 짜리따라고 해서 유행의 기간이 있습니다.

 

유행의 기간은 각각의 스님마다 다릅니다. 보름하는 경우도 있고, 한달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두달 하는 경우도 있고 각각 스님마다 다릅니다.

이번에 나는 저 선원에 머물면서 내가 집착하는 게 많았다, 그럴 것 같으면 그 집착을 끊어내기 위해서 유행을 오랫동안 하는 거고, 그걸 태국이나 동나아시아 같은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압바나(Abbhāna) 마낫따(mānatta)' 하러 간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안거 동안 한 것들에 대해서 자기가 좀 돌아보고 집착하는 것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참회하러 가는 시간들을 가진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홀로 떨어져가지고 인제 갓 출가한 스님들한테도 삼배드리면서 그러면서 그 기간 동안을 지내고 오는 거라.

 

그래서 아, 내가 이렇게 집착하는 것이 많았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내가 이마만큼 잘못한 게 많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거라. 그걸 짜리따 시기라고 합니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도 그곳에서 법을 설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비구가 아닌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비구의 상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렇게 세 계절이 있게 됩니다. 평상시의 계절이 있고, 그다음에 우기의 계절이 있고, 그다음에 유행의 계절이 있고, 이렇게 세 계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유행의 계절은 그렇게 알 필요는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꼭 명심해야 되는 것은 안거의 기간 이것은 되도록이면 지키도록 하라는 거라. 그래서 안거를 지킨다는 것은 그마만큼 소중한 겁니다.

 

이게 인제 부처님 제자들이 세 가지 생활방식에 대해서 스님이 언제 글로 써놨던 것입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여러분들에게 프린트물을 내주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이런 안거가 되었으면 출가자든 재가자든 한 곳에 같이 머무르게 됩니다. 그럼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해야 될 일이 있고,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물론 출가자 서로 간에 해야 될 일이 있고, 재가자 서로 간에 해야 될 일도 있습니다.

 

재가자들은 재가자 서로 간에 해야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이 선원의 유지·보수하고 하는 것은 재가자들의 몫입니다. 그러면 안거 삼개월 동안 이걸 유지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서로 당번을 정해야 되는 거라. 서로 우리 이번에는 당번을 정해가지고 무슨 요일엔 누가 와서 청소도 좀 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을 좀 더 배려하도록 하고 이런 것들을 서로 정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선원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와가지고 수행하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해주는 것이 이 안거 때 여러분들이 담당해야 될 몫입니다.

 

그리고 출가자가 재가자들에게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출가자가 재가자들에게 할 일은 첫 번째가 복전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그럼 공양을 올리는 건 복의 밭에다가 씨를 뿌려가지고 더 많이 뻥튀겨가지고 가져가기 위한 건데, 그런데 이 밭이 쓸모가 없는 밭이면은 아무 소용이 없는 거라. 그래서 복전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스스로 열심히 닦아야 되는 거라. 닦지 않고 이걸 받기만 할 거 같으면 재가자들 헛일 시키게 되는 거라. 그래서 출가자가 재가자들에게 해야 될 것은 안거기간 동안에 이 복전이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을 해야 되는 거라.

 

그래서 경에는 뭐라고 하느냐면 「비바사론」 이라고 하는 경전인데,

불교가 쇠퇴하는 이유는 재가자가 출가한 스님들한테 보시를 못해서 보시하는 게 없어가지고 불교가 망하는 것이 아니고, 출가한 스님들이 복의 밭이 못되기 때문에 불교가 망한다고 합니다. 존경받을 만한 일들을 하지 않고 존경받을 만한 상태가 되지못할 때 불교가 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조계종 꼴이라.

그게 첫 번째라.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자기 스스로 복전이 되도록 스스로 만들어라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면 법시(法施)라고 합니다. 재가자들에게 법을 전하는 것.

부지런히 재가자들을 이끌어주고, 경으로 이끌어주든 아니면 수행으로 이끌어주든 정신적인 부분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법을 전하는 것들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가끔씩 자기 혼자 수행한다고 그걸 게을리하는 스님들이 있습니다. 그거는 안되는 것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이 두 가지 일들입니다. 복전이 되는 일과 법을 전하는 일.

 

그래서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해가지고는 그건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할 일을 등한시 하는 거라. 출가자 역할을 못하게 되는 거라.

우리 해인사에 있을 때는 지금은 돌아가신 법전 스님이라고 계셨어요, 다른 밑에 있는 스님들도 다 법문을 하고 하는데 법전 스님이 자기는 법문을 안 하겠다고 그렇게 했어요. 실제로 그랬었어요. 그래서 다른 밑에 있는 스님들이 되게 불만이 많은 거라. 나중에 종정이 되고 나서는 법을 설하게 됐는데, 사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라.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추고 나면은 반드시 법을 설해야 됩니다. 법을 잘 설해서 하라고 하겠어요?

자기의 견해를 붙이지 않고 훈련을 하지 않을 거 같으면 나중에 머리가 크고 나면 부처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말을 전하게 되는 거라. 자기의 견해를 가지고 부처님 말이라고 호도를 하게 되는 거라. 그럴 때는 이미 머리가 커 있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으니까 밑에 사람들도 대들지도 못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자꾸 법을 전하면서 위에 있는 선배들한테 좀 찐빠도 먹고 재가자들한테 타박도 맞고 이리해야 "어, 이거 내 견해 전하면 안 되겠다. 부처님 말씀만 전해야 되겠다" 그렇게 견해를 세우게 되는 거라.

그게 출가자가 재가자들한테 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이게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재가자한테 법을 전해도 안 되는 거고, 전할 필요도 없고, 내가 재가자들한테 복전이 될 이유도 없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일까?

그걸 불교용어로 복발(覆鉢) 해라. '바리때를 엎어버린다' 하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몇년 전인지는 모르겠는데 미얀마 군부 세력들이 스님들을 총으로 쏴죽여버린 적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버마 상가에서 결정을 했어요. "군인들한테는 어떠한 경우든지 보시도 받지 말고, 탁발도 하지 말아라." 그래서 군인들이 있을 때는 그 바리때를 딱 엎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군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거라.

그렇게 하고 나면 국민들이 어떻게 돼요? 그전에는 국민들이 군부세력들에 대해서 잘한다고 했었는데, 그뒤부터는 국민들이 군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게 바뀌게 됩니다. 그전에는 수지가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었는데 딱 그러고 나서는 지금 버마 체제가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그나마 저렇게 바뀐 게 스님들이 복발을 했기 때문에.

 

그게 뭐냐면 부모님을 죽인 사람들일 경우, 그다음에 출가자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경우 죽이거나 다치게 하거나, 그다음에 출가자들을 이간질시키는 경우, 그다음에 삼보를 비방하는 경우, 이런 경우에는 상가에서 결정해가지고 "저기는 바리때 엎어."

실제 태국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어떤 분 한 분이 되게 돈이 많았던 모양이라. 그래가지고 절을 크게 지었어. 그래가지고 스님들을 살도록 했어. 처음에는 마음이 좋았지. 그런데 그뒤에는 어떻게 하느냐면 거기에다가 자기의 궁전 같이 자기의 별장을 절 안에다가 크게 지어갖고 스님들을 불러갖고 자꾸 시봉을 시킬려고 그러네. 스님 이것 좀 해. 저것 좀 해. 자기 종도 아니고. 그러면서 스님들한테 니는 이거 나쁘다, 니는 이거 뭐 어쨌다, 싸움박질도 자꾸 시키고 하니까, 그 절에 있는 스님들이 결정을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든지 이 절에 머물 수 없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도 이 재가자가 뭔가를 하고 할 때는 그걸 받지도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대꾸조차도 하지 말아라."

그걸 뭐라고 하느냐면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별중' 저 사람하고 말을 걸 수도 없고, 걸지도 말고, 그러니까 투명인간 취급을 해버리라는 거라. 저 사람이 말을 걸어도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처럼 해버리는 거라. 지나가더라도 모른 채하는 거라. 어떠한 것도 이 사람은 없는 것처럼 취급을 해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이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 거라.

 

그래가지고 그 스님들은 숲속에 가서 머물렀어. 그럼 그게 소문이 안 나나? 소문이 나지. 그러니까 재가자들이 와서 그 사람을 죽일놈 살릴놈 하고,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스님들 있는 곳에 와가지고 “스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이 절에서 떠나겠습니다. 다시는 이 절에 안 오겠습니다. 스님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가고 나서 다시 스님들이 와서 머물게 됩니다.

재가자들도 재가자들의 역할을 할 때 스님들이 복전이 되는 것이고 법을 전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역할을 못할 거 같으면 소용이 없는 거라.

스님도 그런 경우가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니까 이거는 자기들 놀기 위해서 내 법문 들을려고 하지, 그리고 법문 듣지도 안 해. 딱 시간 정해가지고 “스님 20분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20분 할 동안에 그거라도 들을 거 같으면 괜찮은데 안 들어요 안 들어.. 전혀 그런 거는 안 듣고 대승적인 생각만 계속할려고 하는 거라.

그러면서 계속 시비만 할려고 하고 “스님 왜 불성이 있는데 스님은 왜 자꾸 나가 없다고 합니까?” 하면서 시비걸려고 하고, 그래서 그 뒤로는 너희들에게는 앞으로는 어떠한 경우라도 너희들에게는 안 온다 하고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너그들 시비걸려고 들고 싸우고 하는데, 다른 데도 바빠 죽겠는데. 그게 재가자들도 명심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안거 기간동안 해야 될 게 있습니다.

 

첫 번째가 재가자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 선원에 사원에 스님 한 분이 머물든 두 분이 머물든 아니면 많은 스님들이 머물든 상가의 일원으로 그 스님을 봐야 되는 것이지 개인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개인으로 봐버릴 것 같으면 그 스님으로 인해서 마음이 동요돼버립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상가의 일원으로 봐야 됩니다.

 

그게 첫 번째고, 그다음에 두 번째가 재가자들은 출가자들한테 삼보에 대해서 공경의 마음을 자꾸 가지고 자꾸 그걸 키울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출가한 스님 개인을 보더라도 상가의 일원으로 볼 것 같으면 그 상가는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는 대리인입니다. 그럼 부처님하고 동일한 거라. 그리고 부처님이 가르친 법을 그대로 전하기 때문에 법하고도 동일한 거라. 그래서 삼보가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봐야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삼보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그 스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가 여러분들이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은, 그 상가의 일원인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하는 것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걸 안 함과 동시에 그것은 그 스님이 머물지 마라는 얘기와 마찬가집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한국은 그렇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절에서 농사짓기도 하는데,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농사지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농작물들을 심고 할 수도 없습니다.

더더구나 공양물을 받을 때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은데, 쌀을 생쌀을 가져오는 것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조리되지 않은 음식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조리되지 않은 음식은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일 같은 것도 규정이 있습니다. 받을 수 있는 게 있고, 받을 수 없는 게 있는 거라. 그 정도인데 생쌀은 그냥 먹을 수 없습니다. 조리를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출가한 스님들은 조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조리하지 않은 음식은 안 돼.

하물며 그런데 저기 가서 풀 뽑고 농사 짓는다? 그거는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그럼 뭐로 가지고 먹고 살아라는 거라? 여러분들 갖다 주는 거 가지고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런데 안 갖다 주면 스님보고 나가라는 소리지.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출가한 스님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데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다음에 상가의 화합을 깨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말아라.

괜히 이 스님한테 가서 “저 스님 어떻고 저떻고...” 이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오늘 밖에 지금 사사나 스님 와있는데 내가 뭐 때문에 왔는지 알아. 틀림없이 저 해피스님하고 싸워가지고 나한테 고자질하러 왔을 거라.

그거는 가능해. 출가한 스님들끼리는. 출가한 스님들끼리 어느 스님에 대해서 아, 이거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얘기하는 거는 가능해. 그런데 재가자가 출가한 스님한테 가가지고 다른 스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건 그건 있을 수가 없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재가자들은 출가자들의 일에 관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머리 깍아야 되는 거라.

그 대신에 그 잘못한 것들이 있으면 상가에 모임이 있을 때 상가에 의뢰를 하면 됩니다. "이런 이런 일이 있는데 상가에서는 이걸 적법하게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하고 상가에 의뢰를 해야 되지, 곧바로 개인 스님한테 가서 고자질해갖고 이간질시키려고 하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재가자에게 있을 수가 없는 거라. 알겠죠?

그래서 재가자들도 반드시 출가자들한테 해야 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또한 재가자들 간에는 가장 기본되는 게 화합! 두 번째가 자비!

화합과 자비가 없는 이런 안거들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기본 베이스로 기본 바탕으로 두고 안거를 해야 됩니다.

그게 바탕이 되야만이 자기가 결정한 것들을, 아까 얘기했죠? 이번 안거 동안에 나는 어떤 경전을 공부해서 완전하게 이해하고 외우도록 하겠다, 모르는 거 있으면 스님한테 물어보라는 거라. 그거 빨리어로 외우도록 한번 해보라는 거라. 아니면 내가 이번 기간 동안에는 수행을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거라. 스님이 여기 없으면 내 전화번호 알잖아. 내 전화로 하든지 아니면 부산으로 전화하라는 거라. 그리고 이번 안거기간 동안에 나는 공덕 쌓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겠다, 그거 공덕 쌓는 일을 하라는 거라. 이번에 내가 안거기간 동안에 화내는 게 좀 많은데 화내는 걸 반드시 다스리겠다, 그것을 화내는 것을 다스리라는 거라. 그런 식으로 자기가 딱 결정을 해가지고 안거를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거라.

그러기 위해서 기본 바탕은 화합과 자비! 이것이 기본 바탕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 그게 안거에 대한 것들입니다.

 

인제 여러분들은 안거 들어가기 위해서 안거게송을 할 것인데 하기 싫은 사람 지금 나가도록 해. (하하하) 할 거라 다? (예!)

 

그러면 서로 먼저 참회하는 것부터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14페이지 보면서 [도반간에 서로 용서를 구하는 게송]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 두 사람씩 하고, 한 사람 남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끝나고 나면 다른 사람하고 같이 해요.

 

그리하는데 서로 삼배를 하고 후배스님이 도반1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 선배스님이 도반2를 합니다.

그리고 앉을 때는 두 사람 간에는 팔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두 사람이 같이 뻗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한 사람만 뻗었을 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그렇게 딱 붙어가지고 앉도록 하고, 그래가지고 서로 삼배를 먼저 해요.

그리고 나이 적은 사람이 도반1을 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 도반2를 하고, 14페이지에 있는 것을 읽으십시오. 빨리어가 안되면 한글로 그냥 하십시오.

 

[도반간에 서로 용서를 구하는 게송] 독송~~

 

【도반 간에 서로 용서를 구하는 게송】

 

도반1 : Ahaṁ bhante sambahulā nānāvatthukāyo āpattiyo

āpajjiṁ tā tumha mūle paṭidesemi.

(아항 반떼- 삼바훌라- 나-나-왓투까-요- 아-빳띠요-

아-빳징 따- 뚬하 물레- 빠띠데-세-미.)

도반님, 저는 다른 소소한 계율과 더불어 여러 원인들로 여러 차례

잘못들을 저질렀으니 이것들을 참회합니다.

도반2 : Passasi āvuso tā āpattiyo.

(빳사시 아-우소- 따- 아-빳띠요-.)

도반님, 그 잘못들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까?

도반1 : Āma bhante passāmi.

(아-마 반떼- 빳사-미.)

예! 도반님,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반2 : Āyatiṁ āvuso saṁvareyyāsi.

(아-야띵 아-우소- 상와레이야-시.)

도반님, 앞으로는 그러한 것을 삼가야만 합니다.

도반1 : Sādhu suṭṭhu bhante saṁvarissāmi.

(사-두 숫투 반떼- 상와릿사-미.) (3번)

도반님,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도반2 :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

잘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서로 바꾸어서 함)

도반2 : Ahaṁ āvuso sambahulā nānāvatthukāyo

āpattiyo āpajjiṁ tā tumha mūle paṭidesemi.

(아항 아-우소- 삼바훌라- 나-나-왓투까-요-

아-빳띠요- 아-빳징 따- 뚬하 물-레- 빠띠데-세-미.)

도반님, 저는 다른 소소한 계율과 더불어 여러 원인들로 여러 차례

잘못들을 저질렀으니 이것들을 참회합니다.

도반1 : Passatha bhante tā āpattiyo.

(빳사타 반떼- 따- 아-빳띠요-.)

도반님, 그 잘못들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까?

도반2 : Āma āvuso passāmi.

(아-마 아-우소- 빳사-미.)

예! 도반님,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반1 : Āyatiṁ bhante saṁvareyyātha.

(아-야띵 반떼- 상와레이야-타.)

도반님, 앞으로는 그러한 것을 삼가야만 합니다.

도반2 : Sādhu suṭṭhu āvuso saṁvarissāmi.

(사-두 숫투 아-우소- 상와릿사-미.) (3번)

도반님,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도반1 :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

잘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절 세번씩 합니다.

 

"이것들을 참회합니다" 할 때, "그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까?" 할 때

그 계목들을 얘기해줘도 괜찮습니다.

“니 화내는 거 니가 잘못하는 거 알고 있나?” 하고 얘기해도 됩니다 이.

 

그러고 나서 이쪽을 보고 앉으십시오.

조금 전에 한 [도반간에 서로 용서를 구하는 게송]은 항상 여기 오면 법회가 시작하기 전에 두 사람 간에 항상 그걸 먼저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15페이지 이 [우안거 게송]은 오늘만 하고 나면 끝입니다 이.

자! 합장하고 스님이 하는 것을 따라서 하십시오.

 

【우안거 게송】

Imasmiṁ vihāre imaṁ temasaṁ vassaṁ upema(upemi).

(이마스밍 위하-레- 이망 떼-마상 왓상 우뻬-(우뻬-).) (3번)

저희들은(저는) 안거 석달동안 이곳 사원 구역 내에서 수행결제하며 머물겠습니다.

잘 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그다음 7페이지 보십시오. [스님께 용서를 구하는 게송] 하십시오.

 

[스님께 용서를 구하는 게송]을 독송하겠습니다.

 

[대중]

Ācariye, pamādena dvārattayena kataṁ sabbaṁ aparādhaṁ

khamathu no(혼자일 때: khamatha me) bhante.

(아-짜리예-빠마-데-나 드와-랏따예-나 까땅 삽방 아빠라-당

카마투 노-(혼자일 때: 카마타 메-) 반떼-.)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제가) 다른 이들에게 조심성 없이

마음과 말과 몸으로 행한 모든 나쁜 일들을 참회합니다.

 

[스님]

Ahaṁ khamāmi, tumhehipi(혼자일 때: tayāpi) me khamitabbaṁ.

(아항 카마-미, 뚬헤-히삐(혼자일 때: 따야-) 메- 카미땁방.)

스님은 여러분들(당신)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당신)도 스님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대중]

Khamāma(혼자일 때: Khamāmi) bhante.

(카마-(혼자일 때: 카마-) 반떼-.)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저)도 스님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인도자]

이제 [절을 벗어날 때의 게송]을 독송하겠습니다.

 

[대중]

Sattāhakaraṇīyaṁ kiccaṁ mevaṭṭhi tasmā mayā gantabbaṁ.

Imasmiṁ sattāhabbantare nivattissāmi.

(삿따-하까라니-양 낏짱 메-왓티 따스마- 마야- 간땁방.

이마스밍 삿따-합반따레- 니왓띳사-미.)

저는 안거 결제 기간 중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급한 일을 보러 갔다가 일곱 밤을 넘기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잘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스님께 삼배올림)

 

스님께 삼배를 올리겠습니다.

 

자! 여러분들은 그 뒤의 것을 쭉 하고 마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더라도 12시 전에 공양들을 해야 됩니다.

 

뒤의 것은 [예경문]만 하면 됩니다.

[자자게송]은 마지막 날에만 하는 거고, [우안거 게송]은 첫날에만 하는 거고,

[예경문]은 매일 하는 거고, 여기까지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