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집중수행 법문

집중수행 법문1 (20170224.경주 마하보디선원)

담마마-마까 2022. 4. 6. 09:00

https://youtu.be/hIZ1EwnhpBk

* 집중수행 법문1 (20170224.경주 마하보디선원)

 

수행 처음 참가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봐요. 집중수행 처음 참가하시는 분은?

그러면 다들 집중수행은 반 정도는 해봤죠? 수행처마다 수행하는 방법이 조금씩 차이는 날 겁니다. 이번 집중수행은 4박 5일이죠?

4박 5일 동안 할 동안에 기존에 본인이 해왔던 수행방법을 그대로 해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번 수행기간 동안에는 시키는 대로 한번 따라해보겠다 할 것 같으면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해도 됩니다. 그것은 본인이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스님이 할 일은 나는 내 할 일만 열심히 해줄겁니다.

여러분들이 그 방법으로 하실 분들은 그 방법대로 하고, 또 다르게 특히 여기 마하보디 선원은 요 근래에는 심념처 수행을 하기 때문에 심념처 수행방법대로만 하겠다 할 것 같으면 그 방법대로 해도 됩니다.

 

인원이 많아도 이 정도면 이렇게 하십시요.

좌선을 할 때 1시간 좌선을 하고, 1시간 경행을 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좌선할 때는 벽을 보고 전부 앉으십시요. 이쪽 저쪽 저쪽 저쪽으로 해서 각자 정면 벽을 향하도록 하고 가운데는 전부 비워두십시요. 그렇게 해서 앉도록 하고,

좌복을 되도록이면 바깥으로(벽 쪽으로) 바짝 붙여놓고 좌복을 움직이지 마십시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두고, 그대로 일어나서 경행을 하고, 그대로 다시 돌아와서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좌선을 하고 하는 형식을 취하면 됩니다.

 

집중수행하러 왔죠? 그냥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수행을 할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되도록이면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줄여야 됩니다. 좌복 하나 개고 제자리에 갖다 놓고 경행하고 다시 또 가져오고 이런 불편함조차도 전부 다 없애버리십시요. 집중수행 할 때는.

그냥 그대로 두고 천천히 일어나서 천천히 경행을 하고, 다시 천천히 모든 걸 알아차리면서 좌선해보도록 해보십시요.

 

그래서 모든 24시간, 잠잘 때 빼고는 나머지는 전부 수행하고 연관될 수 있도록,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는 여기서 나갈 때도 마찬가지고 공양할 때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들을 전부 수행하면서 알아차림 없이 행하지를 말아라. 그러면은 알아차림이 없으면 즉시 중단을 하고 멈춰서서 다시 알아차림을 유지를 하고 나서 다시 시작을 하도록 하고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심념처 수행하시는 분들은 경행을 하더라도 일상적인 속도로 걷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가르치는 방법은 그렇게 걷도록 시키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천천히 걸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천천히 하십시오.

 

아까 빠알리어 할 때는 발음이 잘 안되니까 내보다 뒤늦게 발음을 하더니, 한글로 하라니까 내보다도 더 앞서가지고 막 하더라고. 그걸 보면서 '마음이 아직 급하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급하게 마음을 먹지 마십시요.

여기 오면은 천천히 하십시요. 모든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하나가 끝나고 그다음 하나씩! 그렇게 천천히 하도록 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게 인제 좌선하고 경행할 때 여러분들이 취해야 될 포지션들입니다.

 

기본적인 것들은 수행처에 왔으니까 여러분들이 알 겁니다.

휴대폰 사용 안 되죠! 반납하라고는 안 할게요. 그리해도 수행시간 동안엔 어떠한 경우든지 휴대폰 사용하는 것은 금지! 그리고 책 읽는 것 금지! 여기 나간 프린트물 잠자기 전에 읽으십시요. 그 외에는 읽는 것조차도 금지, 모든 것들은 금지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명심을 해야 되는 것은 수행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지 대중들이 많이 있다고 해가지고 수행이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단 하나 지켜야 될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자기 처소에서 수행하는 것은 금지입니다. 모든 시간은 저기 수행 일정대로 여기 법당에서만 가능합니다. 법당에서 모두 다 같이 수행을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 지켜주면은 적어도 4박 5일 집중수행 할 동안에 수행은 잘 되나갈 겁니다.

 

단, 경행을 하는데 좀 더 느낌에 대한 수행을 좀 더 많이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경행을 해도 관계없습니다. 단지 그럴 분들은 신발을 벗고 경행하십시요. 겨울이기 때문에 힘들죠? 그게 안 되면 여기서 하십시요. 여기서도 되도록이면 양말 신은 것들을 벗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벗는 것도 또 힘들고 하기 때문에 신고 하더라도 관계는 없습니다.

그대신에 발바닥 밑에 한 점에다가 마음을 두고 경행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수행시간은 여기 외에는 허용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 그러면 초보자들도 있기 때문에,

제가 가르치는 수행방법에 따라서 수행에 대한 걸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줄게요.

여러번 들은 사람들도 있고 또 다른 수행법으로 인해서 새롭게 듣는 분들도 있겠지만 특히 초보자들은 마음을 딱 열고 들으십시요.

 

집중수행을 와서 본인이 해야 될 것은,

좌선하고 앉아서는 배를 관찰하는 것,

경행할 때는 발바닥에 마음을 두고 발을 나아가고 내려놓고 들고 할 때 그 움직임이나 느낌을 보는 것 걷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

이 두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좌선하고 앉아있으면 배가 불러오면 불러오는 것을 알고 꺼지면 꺼지는 것을 알고, 요것만 알려고 해야지, 좌선 1시간 동안에 다른 것들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을 알아차리고 또는 뭔가 보이는 대상이 있으면 '보임'하면서 알아차리고 이런 것들을 일절 하지 마십시요.

지금은 집중수행 기간이기 때문에, 집중수행기간 동안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집중하는 힘을 키워줘야만이 사띠가 커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을 모든 걸 다 알아차릴려고 할 것 같으면 집중수행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거는 평상시 때 일상생활 할 때 하시면 됩니다. 집중수행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딱 요것만 하십시요. 다른 거는 일절 안 한다고 생각을 하십시요.

 

앉아서 있을 때는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불러올 때 '일어남'하고 알아차리고, 꺼질 때 '사라짐'하고 알아차리고. 요거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을 하십시요. 설혹 놓쳐도 관계없습니다. 놓치더라도 다시 또 시작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요것만 한다고 생각을 하고,

경행을 할 때는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면서 발바닥 밑에 한 점에 마음을 두고,

들어올릴 때 들어올린다고 움직이는 것을 알고, 나아갈 때 나아가는 것을 알고, 내려놓을 때 내려놓는다는 것을 알고 이 움직임을 알든지,

들어올릴 때의 느낌이나 나아갈 때의 느낌이나 내려놓을 때의 느낌 이것을 알든지,

어쨌든 움직임이나 느낌 둘 중에 하나만 안다고 생각을 하십시요. 걸어갈 때는 그것만 알도록 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수행방법! 이 2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요!

심지어 손을 하나 올리는 것들도 올리지 마십시요. 심지어 하품을 할려고 하더라도 하품도 하지 마십시요. 그냥 참고 그냥 보십시요. 보고 그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앉아있을 거 같으면 그냥 호흡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일어남' '사라짐'만 관찰하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집중수행은 일상적인 수행하고는 분명히 다릅니다.

일상적인 수행에서는 그 움직임만 따라가더라도 사띠는 얼마든지 개발돼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면 보이는 대로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아니면 걸어가면 걸어가는 대로 그 움직임만 분명하게 알아차릴 것 같으면 사띠는 계속 깨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집중수행할 때는 그거하고는 다릅니다.

집중수행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집중하는 힘이 생겨나지 않을 거 같으면 마음은 당연히 벗어나버립니다.

 

그런데 집중수행이 여러분들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한 4박 5일 동안 그렇게 집중을 수행한 힘으로 인해가지고 일상적인 알아차림을 할 때 일상적인 알아차림이 월등하게 잘 된다 하는 것들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집중수행과 일상적인 생활은 발란스를 조금씩 맞춰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 그러면 집중수행하는 법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까 집중수행 할 때는 뭘 해야 된다고 그랬죠?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는 힘을 키우라"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는 힘을 키우려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까 빨리어 예를 들면 '나모 땃사' 라고 합시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huddhassa.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핫또 삼마-삼붓닷사."

처음 하는 사람은 요걸 따라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 읽고 나서 잊어버리고 '모' 읽고 잊어버리고 '땃' 하고 읽고 잊어버리고 '사' 하고 들어가야 되는데 앞에 게 걸립니다. '땃' 하고 나서 잊어버리고 그다음에 '사' 하고 읽으면 틀림없이 한 자는 읽을 수 있는데, 요걸 하나는 놓아버리지 못하고 그다음 거를 읽으려하니까 버벅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나, 모, 땃, 사, 바, 가, 와, 또," 이렇게 읽어지는 게 아니고 이상하게 읽어지게 됩니다.

집중하는 것은 '나모 땃사' 라는 글자가 있으면 이것을 전체를 대상으로 집중을 해버릴 거 같으면 이 글자는 드러나지지를 않습니다. 무슨 글자인지.

 

그런데 한 글자씩 "나, 모, 땃, 사" 할 것 같으면 그 글자는 뚜렷하게 드러나지게 됩니다. 드러나졌다가 사라져버리고, 그다음 글자가 드러나지고 사라지고, 그다음 글자가 드러나고 사라지고 하게 됩니다.

그렇게 집중을 해야만이 그 글자를 "나, 모, 땃, 사, 바, 가, 와, 또," 이렇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중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이걸 잘 따라 읽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대상에 대해서 집중할 때는 어떻게 집중해야 돼?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 전체를 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대상 전체를 볼려고 할 것 같으면 집중하는 것이 '나모 땃사' 전체를 집중해서 보는 거와 꼭 마찬가지가 돼버립니다. 퍼져버리게 되면 그거는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렴풋이는 알게 되는데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럼 집중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하나에 포인트를 둬가지고 집중'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글자를 읽을 때 '나, 모, 땃, 사' 이렇게 읽어나가면 '나, 모, 땃' 하고 나서 '사' 하면은 앞에 '땃'은 잊어버리고 내 머릿속에는 없습니다. 오로지 '사' 밖에는 모릅니다. 앞에 거는 당연히 사라져버리는 상태가 됩니다.

집중을 할 때 한 포인트에 하더라도 꼭 마찬가집니다. 한 포인트에는 계속적으로 대상은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 대상을 붙잡고 있을 거 같으면 또 마찬가지로 버벅거리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냥 자연스럽게 가고, 마음을 거기에 둔다고만 생각을 하면 됩니다.

 

# 좌선수행 할 때

 

그래서 앉아있을 때 뭐만 하라고 그랬어요?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만 알아차리라고 했습니다. 손을 여러분들 한번 여기에다 딱 대어보십시요.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합니까?

가장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데, 거기에다 딱 마음을 둘려고 해야 됩니다. 거기에다 두고 배가 불러오면은 '일어남'하고 알아차리고, 배가 꺼지면 '사라짐'하고 알아차려보십시요. 손을 그대로 두고.

 

'일어남'하고 알아차린 걸 놓아버리지 않으면 '사라짐'이라고 하는 것들을 알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하나가 끝나고 나면 그것은 놓아버린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사라짐만 알려고 해야 됩니다.

오직 하나만 안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일어남' 하나 알고, '사라짐' 하나만 알고, 이것만 한다고 처음에는 생각을 하면 됩니다.

'땃' 알고 '사' 알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하고만 알고, 꺼질 때 '사라짐' 하고만 알고, 다시 또 일어나면 '일어남' 하고 알고, 꺼지면 '사라짐'하고 알고, 그것만 할려고 자꾸 해보십시요.

 

그런데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그렇게 할려고 할 것 같으면,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집중하고 고요함하고는 같이 가게 됩니다. 마음이 고요하게 돼있지 않으면 이게 안됩니다. 그럼 예를 들어봅시다.

배가 일어날 때 '일어남' 하고 알아차리고, 배가 꺼질 때 '사라짐' 하고 알아차리는데, 뭔가 생각이 일어났다, 아니면 뭔가 통증이 있다, 이럴 것 같으면 어떻게 되요? 마음이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데 가있다는 얘기거든.

그럼 평상시 같으면 일상적으로 할 때는 거기 가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집중수행 할 때는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거는 무시를 하십시요. 일어난 것들은.

 

지금 현재 마음이 고요한가만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요. 마음만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요.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고 있는가만 분명하게 보고, 다시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준비가 돼있으면 다시 즉시 배로 마음을 가져오십시요. 그래서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하고 알아차리고, 배가 꺼질 때 '사라짐'하고 알아차리고.

 

쉽게 얘기하면 다른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지금 현재 집중수행 4박 5일 동안 여러분들을 크게 위협하고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들은 1시간 좌선하고 1시간 경행해서 없습니다. 절대 없습니다! 1시간 동안 다리 구부려서 앉아있다고 다리 병신 안 되는 거고, 막 망상이 일어난다고 해가지고서 여러분들이 그 망상에 끄달려가지고 반미치광이가 되고 그런 법은 없습니다.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럼 아예 그거는 지금 현재는 무시해버리십시요!

 

나중에 가서 이틀째 지나고 3일째 갈 때는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그때 얘기하겠습니다. 지금 현재는 그런 거 그냥 무시를 해버리고 그냥 앉아서는 여기에 마음이 고요한 상태만 돼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남' '사라짐'만 알도록 하십시요.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고요해져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는 반드시 중간 중간에 확인을 해야 됩니다.

고요해있지 못할 거 같으면 숨을 조절을 하게 됩니다.

가끔씩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알아차리고 있는데, 숨을 깊게 푹 쉰다든지 아니면 숨이 아주 가늘게 변한다든지 거칠어진다든지 이럴 것 같으면 알아차리는 것을 즉시 중단해야 됩니다.

 

중단을 하고 아, 지금 무엇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고요한 상태가 되고 있지 못한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몸이 고요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일어남' '사라짐' 하다가 그것을 순일하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그것을 즉시 중단을 하고, 몸이 지금 앉아있으면 '앉아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 오른쪽 눈꺼풀 닿아있는 게 긴장이 돼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왼쪽 눈꺼풀 닿아있는데 그것이 닿아있는데 긴장이 돼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입술이 닿아있는데 입술이 긴장돼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 여기가 긴장돼 있는가, 여기가 긴장돼 있는가? 하면서 닿아있는 부분 오른쪽 눈꺼풀, 왼쪽 눈꺼풀, 입술, 양쪽 손, 양쪽 무릎 그다음에 엉덩이 이걸 하나씩 하나씩 관찰하면서 긴장이 돼있는지 아닌지를 하나씩 하나씩 한 포인트씩만 짚어나가도록 해보십시요.

그렇게 해서 그것만 알아차리더라도 마음은 금방 고요해진 상태가 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숨으로 돌아오십시요.

그러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이 순일하게 자연스럽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걸 '일어남' '사라짐' 하고 알아차리도록 하고.

그게 수행하는 포인트를 응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명칭을 붙일 때하고, 명칭을 붙이지 않을 때 차이가 없어야 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데 들이쉬는데 '일어남'하고 명칭을 붙일 때 하고, 숨을 들이쉬는 걸 그냥 그것만 알아차리고는 상태하고, 그래서 숨을 들이쉬는 줄을 분명히 아는 상태하고 '일어남'이라고 알아차리는 상태가 똑같은 상태로써 그 움직임이 느껴져야 됩니다.

 

내쉼도 꼭 마찬가집니다. '사라짐' 하고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리는 것이 숨을 내쉴 때 내쉬는 것하고 똑같이 동일하게 상태가 되어야 되는데, 만약에 그렇게 되지 못하고 명칭을 떼고 나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이 그 움직임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그럴 것 같으면 그사람은 명칭을 떼고 해야 될 것 같이 생각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시 명칭을 붙여줘야 됩니다. 아직은 명칭을 뗄 때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순일하게 되어나가는 사람은 명칭을 붙일 때와 명칭을 뗐을 때 그 차이가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하는 사람은 명칭을 붙이고 했을 때보다도,

명칭을 뗐을 때 훨씬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쉬워집니다.

당연히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명칭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이 가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들하고 분리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 명칭을 떼버린다? 그럼 그사람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한 5번 하고 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사라져버립니다. 알아차리는 것이 오하려 더 희미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내가 명칭을 떼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들이나, 명칭을 붙이면서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낄 때까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명칭을 붙여서 그 호흡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수행하면서 자신이 명칭을 떼야 될 때가 아닌데도,

명칭을 떼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칭을 뗌과 동시에 수행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버리게 됩니다. 마음은 명칭을 붙이고 있으면 마음은 그래도 선한 마음을 유지를 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명칭을 떼면은 두세번 할 때까지는 선한 마음이 있다가 그 마음은 당연히 떨어져버리고, 선하지 않는 마음, 조금 더 알아차리려고 하는 마음이라든지, 아니면 나태할려고 하는 마음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당연히 일어나서 그게 딱 자리잡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규칙적으로 되지를 않고 자꾸 끊어지고, 또는 한참 뒤에 '아, 내가 호흡을 잊었네' 하고 알게 되고, 이렇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그럴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명칭을 떼든지 명칭을 붙이든지 동일하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명칭을 붙인다고 마음을 먹고 수행을 해야 됩니다.

 

언제 명칭이 떨어져나가게 될까요?

예류과에 이르기 전에 떨어져나갑니다. 대상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현상으로 구분되는 상태가 되고 나면은 명칭은 의미가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중급의 초입에 올 때까지는 어떤 경우든지 명칭을 붙여야 됩니다.

쉽게 얘기하면 지금 스님이 가르치는 수행법들이라고 할 것 같으면,

움직임에 대해서 분명하게 움직임을 완전하게 이해를 하고,

움직임의 시작부터 해가지고 움직임이 끝나는 데까지를 분명하게 알고,

그러고 나서 움직임 하나 끝나고 나서 멈추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그것이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다시 다른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명칭을 붙여라. 그게 정답입니다.

 

조금 전에 얘기한 것을 이해를 못할 건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합니다. 지금 현재 불러올 때 '일어남' 하면서 알아차리면 되고, 배가 꺼질 때 '사라짐' 하면서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데 '일어남' 하고 알아차릴 때 일어나는 시작부터 알아서 일어나는 끝까지 마지막까지 '일어남' 하면서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 그게 끝나고 나서 사라짐의 시작부터 시작해서 사라짐이 끝날 때까지 '사라짐' 하면서 알아차리고, 요렇게 돼야 됩니다.

이게 모든 움직임을 따라가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분명하게 따라가면 '일어남' 하고 나서 '사라짐' 했는데, '일어남' 하고 나서 일어나는 것이 탁 끝나고 나서 뭔가 간격이 있는 것처럼 멈추는 것이 보입니다.

바로 사라지는 것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짧은 찰나에 '착칵' 하는 것이 있고 나서 사라짐이 시작돼서 사라짐이 끝난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마찬가지로 사라짐이 있고 나서 배가 꺼지고 나서, 또 잠깐 찰나적으로 뭔가 '착' 멈추는 것이 있고, 나서 다시 배가 불러오면서 '일어남' 하면서 알게 되는 거라.

그래서 일어나고 멈추고, 사라지고 멈추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그 상태가 지나야만이 그다음에는 '일어남' 하고 나서 끝나고 나서, 그 멈추는 것이 내가 마음에 의도를 내지 않을 거 같으면 사라짐이 시작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 멈출 때 사라짐이라고 하는 것이 있겠다고 '사라짐'이라고 하는 의도를 내야만이 '사라짐'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는 호흡이 되더라도 나는 명칭을 붙이지 않게 되는 거라.

그 과정을 다 겪을 때까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명칭은 붙여야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호흡이 요렇게 들이쉬었다가 요렇게 내쉰다' 그럼 시작 때부터 해가지고 요렇게 들이쉬고, 멈추고 나서 다시 사라지는 것이 요렇게 있고, 또 멈추고 나서 의도가 있어가지고 다시 또 일어나는 것이 있고, 또 의도가 있어가지고 사라지는 것이 있고, 요런 상태까지 다 될 때까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고 나서는 명칭은 떼도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명칭은 반드시 붙여라 그럽니다.

 

그런데 수행해보면 얼마만에 그런 상태에 될까? 며칠 만에 될 거 같애요?

이틀이면 가능합니다! 이틀이면 명칭을 떼고도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들을 그냥 마음이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자사자 할 때! 죽자사자 할 때! 이틀 동안만 그렇게 해보십시요.

그렇게 하고 나면 아, 이게 그때까지는 명칭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전에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배가 불러올 때 '일어남' 하고 명칭을 붙일 것인가?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수행을 할 때 처음에 앉자마자 바로 배가 불러오면 '일어남' 하고 알아차리고, 배가 꺼지면 '사라짐' 하고 알아차린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이게 포인트가 안 맞습니다.

쉽게 말하면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으로 그걸 알아차리는 것이 동일하게 싸이클을 맞춰야 되는데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 맞추는 훈련을 그 명칭을 붙이기 전에 먼저 해야 됩니다.

 

배에 다시 손을 한번 올려보십시요.

명칭 붙이지 말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이 느껴집니까?

그냥 명칭 붙이지 말고 그냥 마음을 거기에만 둘려고만 하십시요.

배에서 느껴지는 것만, 그 움직임만 알려고 해보십시요.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이 느껴집니까? 알겠죠? 그걸 느끼고 나야만이 명칭을 붙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앉자마자 바로 명칭부터 붙일려고 그럽니다.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을 자기가 분명하게 알아야만이,

그다음에 거기에 명칭을 붙이도록 해야 됩니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돼있으면 돼있을수록 그것이 뚜렷하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게 됩니다. 우선 그 상태를 먼저 만드십시요.

안 되면 손을 대고서라도 배가 불려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느끼고 나서, 자연스럽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이 느껴진다고 알게 될 때, 그때 손을 떼고 해도 되고 그대로 붙이고 해도 되고, 명칭을 거기에다가 살포시 갖다 붙인다고 생각을 하십시요.

그렇게 해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이렇게 명칭을 붙이십시요.

 

그러다가 다시 뭔가 핀트가 좀 어긋난다 싶으면 그때는 명칭을 다시 또 떼야됩니다.

떼고나서 그냥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만 또 느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어느 정도 되면은 다시 또 거기에다가 명칭을 붙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게 좌선수행 할 때 여러분들이 해야 될 포인트입니다.

 

다른 거 필요없이 오늘하고 내일까지는 그것만 할려고 해보십시요.

만약에 하다가 호흡을 그렇게 알아차리니까 되게 기쁩니다. 전부 무시하십시요! 통증과 마찬가집니다. 모든 것들을 다 무시하고, 아무리 좋고 하더라도 "스님! 스님! 나 어쩌고 저쩌고" 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그냥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그냥 지금 현재는 이 시간 동안은 그냥 '일어남' '사라짐'만 있다고 판단하고 그것만 하도록 해야 됩니다.

통증이 일어나든 생각이 일어나든, 아니면 그것에 대해서 딱 붙어가지고 아주 잘돼가지고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처럼 느끼든 뭘 하든 다 무시해버리고 그냥 그것만 자연스럽게 할려고 하시면 됩니다.

 

# 그다음에 경행.

 

지금 처음 하시는 분과 조금 해보신 분들은 차이가 날겁니다.

두 가지로 나눠가지고 얘기하겠습니다.

아직 초보적인 사람이다, 수행자다 그럴 것 같으면 이렇게 하십시요.

발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면서 명칭을 붙이십시요.

속도나 이런 것은 조금 있다가 얘기하겠습니다.

아까 배를 할 때 배의 '한 포인트'라고 했죠? 배의 '한 점'이라고 했죠? 거기에다가 마음을 둔다고 생각하고 하라고 했듯이, 경행을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발의 발바닥 밑에 '한 포인트'에다가 마음을 둔다"고 마음을 먹으십시요.

그렇게 해가지고 여기에다가 딱 붙여있다고 칩시다.

손을 이렇게(발 모양처럼) 다같이 해보십시요. 그대로 뒷발부터 해가지고 그대로 이렇게 들어올려보십시요. 요렇게 드는 것이 아니고 아니면 이렇게 드는 것이 아니고, 올라가는 것은 그대로 올라간다고 생각하십시요. 발을 뒤(뒷꿈치)가 들리고 앞발(앞꿈치)이 들리면서 그대로 올라가십시요.

 

그리고 다시 그대로 여기가 수평이 되게끔 그대로 나아가십시요. 그다음에 발을 그대로 내려놓으십시요. 발바닥이 거의 동시에 닿는다고 생각되도록 딱 내려놓으십시요.

발을 들 때는 대부분 이렇게 똑같이 들리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이게 어긋나져 있기 때문에 항상 뒷발이 조금 먼저 들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앞발이 들리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져버립니다. 주의해야 될 부분입니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경행을 하면서 갈 때는 뒷발 들면서 앞발 들면서 그대로 이렇게, 이렇게 된 상태에서 다시 발을 편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올라오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그대로 나아가고 그대로 내려놓으십시요.

 

그러면서 이거는 '들 어 올 림' '나 아 감' '내 려 놓 음' 그렇게 한번 해보십시요.

지금 스님 따라 하면서, '들 어 올 림' '나 아 감' '내 려 놓 음' 하면서 다른 쪽 손에 신경 쓴 사람 있습니까? 없죠! 경행은 그렇게 해야 됩니다.

디딘 발에는 1퍼센트도 마음이 가서는 안 됩니다. 이거는 그냥 디디고 있을 뿐입니다. 절대 여기에 마음이 안 가면 몸이 기우뚱거리지 않습니다. 여기에 마음이 가는 순간 기우뚱 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움직이는 발에 모든 마음을 쏟는다고 생각하고 '들 어 올 림' '나 아 감' '내 려 놓 음' 하면서 그대로 딱 디디십시요.

 

'내려놓음' 하고 나서 '디딤' 하고 한번 더 확인을 해주십시요. 그러면 발의 중심이 이쪽으로 딱 가집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발을 '들 어 올 림' '나 아 감' '내 려 놓 음' '디딤' 하면서 무게중심이 이쪽으로 딱 가도록 하고, 쉽죠? 호흡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경행도 그렇게 쉽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할 경우에는 이거 외에는 다른 것은 일절 없습니다.

들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이 발에 마음이 가있지도 않습니다.

그럼 당연히 여러분들이 예를 들어서 경행을 할 경우에는 앞에 시선은 두고 있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소리가 들리더라도 그게 소리가 들려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끝에 가서 멈출 때 일부러 가서 멈출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그냥 가서 부딪치십시요.

지금 현재는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내려놓을 때 그게 부딪치는 것이든 아니면 나아갈 때 부딪치는 것이든 아니면 몸이 앞으로 나가있으면 몸이 부딪치는 것이든 부딪치고 나서 '부딪쳤다'고 알고 그대로 멈추면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되는 것이지, 경행포인트가 여기 끝인데 이미 요만큼 와가지고 멈출라고 마음을 먹어가지고 발을 들어올리고 내려놓고 그전에 딱 멈춥니다.

초보수행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집중수행에서는.

그냥 가서 부딪치십시요. 괜찮습니다. 뭐 몸 손상당하고 하는 것은 크게 없을 거니까 그냥 가서 부딪친다고 생각하고 그냥 가서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할 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이것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십시요.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그리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설혹 내가 몸이 불편해가지고 옆으로 삐딱하게 나갔다가 다른 사람하고 부딪치더라도 그냥 부딪치면 거기서 멈추면 됩니다.

그것뿐이지 더이상 뭘 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할려면 경행을 할 때 지그재그로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경행은 이쪽부터 해서 저쪽까지면 그냥 여기로 왔다갔다 하면 됩니다. 일자로, 일자모양으로! 한시간 내내 일자로만 왔다갔다 하면 됩니다.

 

그 동남아시아 가보신 분들 경행처 봤죠? 경행처 그냥 일자로 쫙 돼있습니다. 그 앞에 가보면 마지막 둔덕, 턱을 딱 만들어놨어요. 거기 가서 탁 부딪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 부딪치라고 그렇게 만들어놓은 겁니다. 그래서 그냥 왔다갔다 하면 됩니다. 여기는 자연스럽게 벽이 있기 때문에 가서 부딪친다고 생각하고 왔다갔다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발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는 이것만 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되게 쉽죠!

 

그런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좌선에서 배가 불러오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고 그 움직임을 완전히 따라가야만이 멈추는 게 있고, 그다음에 배가 꺼질 때 사라짐이 시작돼서 사라짐이 있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경행도 꼭 마찬가집니다.

 

발을 들어올리는 시작부터해서 발이 완전히 들어올려질 때까지 딱 하고 나서, 끝나고 나서 '끝남'이 있는 것을 알아야만이, '나아가짐'이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될 겁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면 초심자들이 처음에 할 때는 두 가지를 혼용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들어올리면서 나아가지게 되고, 나아가지면서 내려놓게 되고.

그래서 그냥 그대로 구분을 하라는 거라.

구분하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멈추는 것들을 모릅니다.

위빳사나는 현상들을 구별하는 겁니다.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별하게 되고, 앞의 현상과 뒤의 현상을 구별할 수 있어야만이 위빳사나 수행을 잘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안 하면 위빳사나 수행이 아니고 그냥 사마타쪽으로 딱 넘어가버리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발을 그대로 들어올리고, 그대로 나아가고, 그대로 내려놓게끔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리고 나서 나아가기 전에 '멈춤'이 있고, 나아갈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아가는 것이 시작되게 될 수 있도록, 자꾸 훈련을 해야 됩니다. 배와 꼭 마찬가집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모든 움직임을 따라갔을 때는,

그 움직임의 끝에는 '멈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멈춤은 내가 새로운 '의도'를 내기 전에는 다른 움직임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배든 뭐든 어떠한 것이든 그와 같은 상태로써 이루어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좌선과 경행도 그와 같이 해야 됩니다.

 

초심자는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걸어갈 때는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그거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경험자들이 그다음에 문제입니다.

경험자들은 이미 이것을 그대로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더 세분화시켜 주어야 됩니다.

 

여기서 경험자라고 하는 것은 그 경행을 할 동안에 마음이 경행에만 가있는 시간이 적어도 반 이상이 될 때를 얘기하는 겁니다. 반 이상이 되지 않을 때는 초보자와 마찬가지로 3단계로 해야 됩니다. 그게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경험자들은 그다음부터는 배를 관찰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낌에 대해서 관찰을 해야 됩니다.

발을 들어올릴 때 일어나는 느낌, 나아갈 때의 느낌, 내려놓을 때의 느낌,

배가 불러올 때의 느낌, 배가 꺼질 때의 느낌, 이 느낌을 알려고 해야 됩니다.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아서, 그것들에 대해서 하나의 움직임이 있고 나서, 멈추고 나서, 다음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상태일 것 같으면, 자연스럽게 느낌이 여러 가지가 일어나는 것들이 보입니다.

 

가끔씩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럽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관찰하고 있는데, 뭔가 새로운 느낌들이 '뽈똑뽈똑'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고 얘기하는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배가 불러오는 것이 그냥 '일어남' 하고 알아차리려고 하는데, 자꾸 '뽈똑뽈똑 뽈똑뽈똑' 일어나집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때는 움직임을 놓고 '느낌'을 봐야 됩니다.

 

경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발을 들어올릴 때 발을 들어올려지는 움직임이 보여지는게 아니고, 발을 들어올릴 때의 느낌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은 알 수가 있습니다.

손을 딱 붙였다가 손을 한번 들어보십시요. 느낌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 느낌이 있습니까? 다시! 떼는 순간부터 해서 여기까지 올린다고 생각했을 때, 여기까지 올릴 때의 느낌이 같은지 다른지를 한번 보십시요. 다른 게 느껴지는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느낌'을 봐야 됩니다.

 

만약에 느낌이 있기는 있는데 손이 떨어질 때만 느껴지고, 이 위로 올라올수록 느껴지는 것이 없다 할 것 같으면, 그런 사람은 '움직임'을 봐야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손을 떼는데 뗄 때의 느낌하고 그다음 느낌하고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라든지 아니면 이게 뭔가 느낌이 또 다르게 보여진다든지 이럴 것 같으면 그사람은 '느낌'을 봐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이렇게 움직임을 관찰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은 호흡을 관찰할 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남' '사라짐' 하고 관찰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일어남 할 때 '일어남' '일어남' '일어남' '일어남' 여러 가지로 일어남이 툭툭, '일어남'이 여러 가지가 있는 걸 관찰대상으로 해야 됩니다. 또 사라질 때 사라짐으로 한 번만 명칭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사라짐' '사라짐' '사라짐' '사라짐' 여러 가지로 쪼개가지고 사라짐을 명칭을 붙이면서 관찰을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경행을 할 때도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할 때는 들어올리는 것을 여러 개로 쪼개어 나누어져야 됩니다.

나아갈 때도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

내려놓을 때도 '내려놓음' '내려놓음' '내려놓음' '내려놓음'

몇 번을 쪼개어가지고 명칭을 붙이면서 그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볼려고 해야 됩니다.

 

느낌에 대한 것들이 분명하게 보여지기 전에는, 배를 하든 아니면 경행을 하든 움직임을 먼저 분명하게 먼저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움직임이 분명해질 때 느낌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그 포인트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마하시 같은 경우에는 '왼발' '오른발' 그다음에 '들어올림' '내려놓음' 2단계,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3단계, 그다음에는 6단계로 해서 '뒤꿈치 들어올림' '앞꿈치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닿음' '누름'

이런 식으로 구분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스님이 수행지도 할 때는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느낌이 보일 때는 들어올릴 때 뒷발 들리고 앞발 들리고 하는 것들을 통틀어서 그냥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들어올림' 이렇게 알아차려도 관계는 없습니다.

명칭일 뿐입니다. 그리고 나아갈 때도 그냥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 하면서 알아차려도 됩니다.

단지 3단계로 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6단계 아니면 12단계로 했을 때 그 사람들은 거의 동일하게 걷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3단계가 조금 더 빠르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이지 크게 차이나는 것은 없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경행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보다도 현저하게 느려야 됩니다.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집중수행 할 때부터 모든 것들은 전부 천천히 해야 됩니다.

문고리를 하나 잡을 때도 천천히 잡을려고 하고 천천히 당길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그걸 그냥 쉽게 손을 잡고 땡길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 좌선, 경행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 그다음에 또 하나가 와선입니다.

 

누워서 하는 수행입니다. 집중수행 때는 와선을 하는 기회는 잠에서 깨었을 때 하고, 잠이 들기 직전에 하고, 이 2가지 외에는 와선이 없습니다.

일상적인 수행에서 와선은 필요한 것인데, 집중수행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머리를 땅에 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집중수행할 때 와선하는 것은 잠자리에 들고 나서는, 깨어날 때 관찰을 이렇게 하십시요.

이렇게 지금 누워있으면 깨어났으면 깨어났다고 먼저 알아차릴려고 하십시요.

먼저 손발을 움직일려고 하지 말고 깨어났다고 분명하게 먼저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손을 올린다고 생각하고 알아차리고, 그렇지 않으면 깨어났다고 알아차리고 나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려서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려고 하고,

그래서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고 나면, 그다음에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깨어날 때 집중수행하는 동안에 해야 될 것들입니다.

 

이걸 계속 훈련하지 않으면 일상수행할 때 깨어날 때, 깨어나는 걸 어떻게 깨어나는지를 모릅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깨어나는 건지, 숨을 내쉬면서 깨어나는 건지, 아니면 깨어날 때 의식이 어떤 상태에서 깨어나지는지 모르게 됩니다.

잠들 때도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하다가 숨을 들이쉬다가 잠이 드는지 내쉬다가 잠이 드는지를 모르게 된다는 거라.

죽을 때도 꼭 마찬가지가 돼버립니다.

 

집중수행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잠자리에 들고나서 깨어날 때는 먼저 움직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내가 깨어났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먼저 인식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일체 움직이지 말고!

'깨어났음' '깨어남' '깨어남'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 호흡으로 바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에 따라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적어도 1~2분 정도 하고 나서 '아, 이제 움직여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천천히 '몸을 일으킴' 하면서 쭉 일으키라는 거라. 그렇게 해서 일어나도록 해야 됩니다.

 

잠자리에 들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잠자리에 들어서 완전히 누워서는 손을 배에다 올리고 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그대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그대로 관찰하도록 하십시요.

그대로 관찰하다가 잠들 시간이 될 것 같으면 인제는 '잠이 듦' '잠이 듦' 하면서 잠에 딱 들어야 됩니다.

이게 훈련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다가 아니면 '일어남' 하고 나서 '잠이 듦' 이라고 하면 바로 잠에 탁 떨어지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훈련을 해야만이 나중에는 잠이 들 때 평온하게 잠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이 들기 전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모든 것을 다 끝내고 나서 손을 올리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몇번을 분명하게 하고 그러고 나서 '잠이 듦' '잠이 듦' 하면서 잠에 들도록 하십시요.

 

집중수행할 때 와선은 이것 뿐입니다. 다른 때는 와선이 없습니다.

일상생활 할 때 와선은 있습니다. 일상생활 할 때 경행하고, 일상생활할 때 여러 가지를 알아차리고 하는 것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집중수행 기간 동안이기 때문에 그것만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하나 빠진 것들이 뭐냐 하면, 경행을 할 때 돌 때 입니다.

돌 때는 서있는 상태가 되고 나서 돌아야 됩니다. 두 다리가 완전히 서있고 나서 '서있음' 하면서 발바닥 밑에 한 포인트에서 느껴지면 느낌으로써 서있다는 것을 인식할려고 해야 됩니다. '서있음' 하고 인식을 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 의도적으로 '돌고자함' 하고 마음을 내고 발을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요.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이렇게 해야 되지, 이걸 그냥 이렇게 이렇게 돌리면 안됩니다.

발을 그대로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아마 두번 아니면 세 번 나누어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해야만이 180도를 돌게 됩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완전히 돌고 나서,

다시 서있을 거 같으면 '서있음' 하고 알아차리고,

알아차리고 나서는 다시 배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고 1분이라도 알아차리고 나서,

 

왜 그러냐면 가만히 서있을 때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누워있을 때 관찰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아주 수월하게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관찰하기가 수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경행을 할 때는 내가 걸을려고 하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은 수행은 내가 뭔가 자꾸 할려고 해가지고는 핀트가 어긋나게 됩니다.

 

그런데 '멈춤'이 있을 때 배를 관찰하는 것은 그것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경행을 하더라도 처음에 경행을 할 때 바로 '가고자함' 하고 마음먹고 나서 바로 가는 것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배를 관찰해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거 같으면, 대상을 알아차릴 때 대상을 붙잡거나 뭔가를 더 알려고 하는 마음들이 없이 그냥 관찰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다음에 경행을 하더라도 발이 나아가질 때 그냥 나아가지면 나아가지는 대로 그대로 알아차릴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멈춤이 있으면 멈췄다고 '서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나서 배를 먼저 관찰하라.

그래서 배를 먼저 관찰하고 나서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발을 들어올리고 돌리고 내려놓고', 이렇게 해서 다시 멈추고,

그러면 '서있음' 하고 알아차리고, 배를 또 한 1~2분 관찰하고,

그러고 나서 왼발 오른발 할 때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이렇게 관찰을 하도록 하면 됩니다.

 

7시가 다 되어갑니다.

그래서 수행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설명들만 했습니다.

맨 처음에 얘기했지만 좌선했을 때는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할 때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움직임만 분명하게 알아차릴려고 하라.

걸어갈 때는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만 알아차릴려고 하라.

이 2가지만 이번 집중수행에서 한다고 마음먹고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쉽죠? 내일까지는 그렇게 우선 해나가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전에는 주제를 스님이 줄겁니다. "망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망상을 알아차립니까?" 하고 물어볼 겁니다. 그래서 오전에 여기 10시로 돼있죠? 10시에 전체 문답 1시간 동안 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참조를 할 것은 참조를 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스님이 만약에 주제에 대해서 만약에 "망상이 일어났을 때 요렇게 요렇게 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입니다." 하면서 결론을 내주는 방식으로 할 겁니다.

 

그래서 한 특정한 수행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그것들을 결론 내리면서 하는 방식으로 공동으로 문답하는 형식을 1시간 동안 진행을 오전에는 하고, 오후에는 오후 3시부터는 2시간 동안은 개별문답 시간입니다. 개별문답은 저 위에 스님 처소에 와서 한사람씩 와서 개별문답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 시간표대로 못해도 관계없습니다. 그대로 그냥 따라하면 됩니다.

자! 질문있는 사람 질문하십시요.

 

 

[질의응답]

Q. 수행자 질문 : 스님, 경행을 할 때 앞에 벽이 있으면 '듦 나감 놓음' 이것만 생각을 하라고 그러시는데, 그것만 하지만 잘 못하니까 벽이 있으면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자꾸 서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더라도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인위적으로라도 무조건 끝까지 그냥 가고 그대로 다하는, 닿게 되면 닿았다는 것을 알고 서고...

 

A. 스님 답변 : 예를 들어봅시다. 내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없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눈을 감은 상태에서 경행을 한다고 해보십시요. 어떻게 될까? 부딪치겠죠? 그와 같다고 생각을 하십시요.

처음에는 부딪치는게 있으니까 가다가 멈춰서겠죠? 그러면 그다음에 다시 할 때는 아예 눈을 감고 경행을 해보십시요.

(수행자 : 너무 삐뚤게 나가든데요)

관계없습니다. 그냥 가서 부딪쳐보십시요. 크게 문제가 안됩니다.

 

왜 그 얘기를 했느냐면 그런 마음으로 경행을 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중간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멈추겠다고 마음을 내고 나서 그 가까이 가서 멈출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초심자들은 그런 불필요한 것들을 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하지 말고 가서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그냥 하라는 거라. 뽀띨라 스님의 예와 같이 다른 거는 다 막고 하나만 열고 그 마음은 이 발바닥에만 있을 거 같으면 다른 건 다 닫아버릴 거 같으면 그냥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마음으로 초심자들은 집중수행할 때 하라는 거라. 만약에 예를 들어서 눈을 감고 해가지고 부딪치는 것이나 이런 것이 겁이 나서 미리 서버린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경행을 안 하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자 : 스님, 제가 뜻을 잘못 전달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어떤 큰일이 있을까봐 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만 열고 나머지는 다 닫으라고 그러시는데 다 못닫으니까 안 닫겼더라도 보이지만 그냥 무시하고 그냥 하라는 말씀이시죠.)

 

억지로라도 닫아라는 겁니다. 멈췄으면 어쩔 수없이 멈춘건데 그러고 나서는 다시 또 일부러 가서 억지로 부딪칠 필요는 없지만 만약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면 부딪쳐 보라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눈을 감고 해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방법은 뒤로 경행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발을 이때까지는 앞으로 나아갔는데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할 때 뒤로 해서 나아가지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할 거 같으면 지가 부딪쳐집니다. 그렇게 해도 크게 무리가 없으면 뒤로 경행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라도 해가지고 다른 문을 다 닫고 하나만 열고 하는 수행법을 자꾸 훈련을 해보라는 뜻입니다.

 

Q. 수행자 질문 : 저도 아까 말리까님 같은 그 마음이 있어서 스님이 설명을 해주셨지만 저 앞에 가면 분명히 해왔던게 있어가지고 멈춰설 거 같은데, 다 막는다 하는 그런 게 조금 저한테 덜 다가와집니다.

 

A. 스님 답변 : 이게 수행이 진행되면 어떠한 과정들로 진행이 되냐하면 처음에는 장애들이 극복이 되나가는 상태로서 바뀝니다. 그래서 다섯 장애들, 열가지 장애들 이런 장애들은 극복을 해나가는 상태에 이르릅니다.

장애들이 극복이 되어나가고 나면 그다음에는 번뇌가 떨어져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번뇌가 어느 정도 몇가지가 툭 떨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뭐가 진행이 되느냐면 나라고 하는 것들이 점점 엷어지는 것으로서 바뀌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것이 탁 사라져버리는 상태가 되면 인제는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수행의 과정은 그러한 과정들을 겪게끔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 '나'라고 하는 것을 수행에서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그렇게 해보라는 거라. 그런 의미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여러분들이 선택하십시요. 가서 부딪치지 않고 그냥 멈춰서면 멈춰서는 대로 그냥 해도 됩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거는 나중에는 극복해야 될 부분입니다. '존재욕구'라고 하는 것들은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어가지고 이게 조금씩 엷어지면 번뇌가 떨어지는 것들도 많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Q. 수행자 질문 : 스님, 좌선을 할 때도 아무리 배만 '일어남' '사라짐'을 알고 있어도 사실 보낼라고 보내는게 아니라 다른 것들 큰 자극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런데 물론 그거를 꼭 안 잡고 있을 수 있으면 배로 빨리 돌아오면 되기는 하는데, 그거를 안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A. 스님 답변 : 그게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의도적으로라도 오늘 내일까지는 전부 무시를 해보십시요. 무시해버리고 빨리 호흡으로 돌아오도록 하십시요. 호흡으로 돌아올 때는 그러한 것들이 일어난 것들을 알고나면 바로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만들고 나서 호흡으로 돌아오도록 해보십시요. 그래서 호흡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나서 호흡을 명칭을 붙이도록 그렇게 해보십시요. 그렇지 않고 밖으로 나간 마음을 바로 돌려가지고 명칭을 붙일 거 같으면 명칭이 발란스가 안 맞아집니다. 그 부분만 조심하도록 하십시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