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집중수행 법문

집중수행법 (20170224.대구)

담마마-마까 2022. 4. 5. 09:00

https://youtu.be/tQQ59jEOs0g

* 집중수행법 (20170224.대구)

<초급과정, 중급과정, 고급과정까지의 단계적인 상태와 수행방법 설명>

 

이거는 오늘부터 4박 5일 동안 경주에서 하는 「집중수행 기본교재」로 쓰려고 준비해서 만든 겁니다. 경주 가시는 분 누구누구 있어요?

가서 자세하게 듣도록 하고, 대충 얘기를 하겠습니다. 수행에 대한 요약을 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이 여기 선원에 가서 하는 수행이든 아니면 경주에 가서 하는 집중수행이든 그것은 집중수행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집중수행을 할 때는 집중해서 그것만 할려고 해야 됩니다.

다른 걸 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어디 수행처를 가더라도 휴대폰도 하지 마라, 책도 보지 마라, 다른 소일거리 하는 것들도 하지 마라, 오로지 그냥 수행만 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왜 그럴까?

일상생활에서도 똑같이 호흡을 관찰할 수 있고 걸어가기도 하고 움직임도 있고 똑같은데, 왜 집중수행처에서는 집중수행 할 때는 그걸 하지 마라 그럴까?

 

첫 번째 이유가 대상을 놓치지 않기 위한 훈련입니다.

집중수행을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하고 있는 대상들 일어나고 있는 대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자꾸 훈련하는 과정들입니다. 그게 잘 되어나가면 일상생활에서도 대상들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즉시 놓치지 않고 잘 알아차려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집중수행에서는 다른 것들을 일체 못하게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모든 것들을 느리게 하라" 그렇게 하게 됩니다.

 

특히 스님이 가르치는 방식에서는 "느낌에 대한 관찰을 할 때는 더더욱 더 느리게 하라" 그럽니다.

그래서 앉는 것도 그냥 푹 앉는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 앉는 것들을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천천히 앉도록 하고, 일어설 때도 천천히 일어서서 경행을 하도록, 그래서 좌선 - 경행 - 좌선 - 경행 이외에는 일절 없는 것처럼 하도록 만듭니다.

좌선할 때는 움직이는 것이 뭡니까? 호흡하는 것, 그럼 호흡을 관찰하고, 경행할 때 움직이는 것은 다리가 움직입니다. 그래서 다리를 관찰하도록 하고.

 

그래서 "그 움직임을 먼저 분명하게 관찰하도록 하라." 하는 뜻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것들은 되도록이면 다 줄여버려라. 할 수 있으면 귀도 막아버리고 눈도 막아버리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일부러라도 그걸 다 닫아버려야 됩니다.

전에 뽀띨라 장로에 대한 일화를 얘기하면서, 오소리를 잡기 위해서는 다른 출구(문)를 다 막아버리고 오직 하나의 문만 열어놔 놓고 그것을 지켜보면서 나올 때 즉시 잡아야 된다, 그래야 오소리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다른 감각기관들은 다 닫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집중수행을 하는 때는.

 

수행의 기본은 마음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가 되어야만이 대상을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감각기관이 열려져있어버리면 마음은 금방 더러워져버립니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럼 대상이 일어나면 항상 왜곡하게 돼있고, 아니면 대상을 놓쳐버릴 가능성들이 커져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기관을 지금 현재는 정확하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하면은 닫아버리는게 가장 최선의 방법입니다.

 

수행문답이나 아니면 전체 토론이나 이런 거 외에는 일체 말도 하지 말고, 그다음에 마음을 산란하게 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책을 읽는다든지 휴대전화를 쓴다든지 이런 것들은 아예 하지 말아라는 거라.

오로지 지금 현재 움직이고 있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거기에다가 마음을 실을 수 있도록 하라는 거라. 그래서 수행의 기본적인 요건 첫 번째가 감각기관이 닫히고 나면은 마음은 당연히 뭔가를 할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고 좀 더 쉬워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의 첫 번째는, "모든 움직임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어쨌든 집중수행 할 때 좌선 1시간 하고 경행 1시간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할 때는 그 모든 움직임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배가 불러오면 불러온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꺼지면 꺼진다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것을 '왼발' '오른발' 할 때 그걸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 그래서 모든 움직임을 분명하게 자꾸 알아차릴려고 하는 것들이 우선시돼야 됩니다.

 

그리해도 그게 잘 안 되죠? 잘 안 될 때는 그대로 딱 중지해야 됩니다.

호흡을 하다가도 중지하고, 호흡을 중지할 수는 없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것들을 중지하는 거고, 걸어가다가도 걸음을 딱 멈추고 그대로 서서 그러고 나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로 인해서 마음이 더러워지는지 아닌지를 잘 봐야 됩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즉시 중단을 해야 됩니다.

다시 마음이 고요해지게 되면은 다시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도록 하고!

그러한 것들을 반복적으로 계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모든 움직임에 그대로 마음을 실어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서 모든 움직임을 먼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호흡이 배가 불러오면 배가 불러온다고 분명하게 알고, 배가 꺼지면 꺼진다고 분명하게 알고, 그 외에는 다른 것은 일절 없어야 됩니다.

지금 현재는 그 움직임만 따라가더라도 벅차는 상태이기 때문에,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면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만 분명하게 알고, 그렇게 해야지 디디고 있는 발에 마음이 가 있는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면서 앞에 있는 대상들이 보인다든지 이래버려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닫고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것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만 있는 거고, 앉아 있을 경우에는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만 알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 모든 움직임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건 하기 쉽죠? 그거는 그렇게 어렵진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까?

기대 안 하면 됩니다! 기대만 안 하고 하면 그냥 마음은 지가 알아차립니다.

뭔가 자꾸 기대를 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보입니다. 걸어갈 때도 왼발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면 되는데, 기대를 하기 때문에 내가 요만큼 갔다는 것을 알게끔 되는 거라. 그리고 벽에 부딪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는 지금은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디딘 발을 알아차릴 이유가 없는데 그 서있을려고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뭉뚱그려지고 움직이지 않고 할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발이 나아가는 것들을 잘 모르게 되는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기대하면 안됩니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은, 모든 것들은 지금 현재 이것뿐이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 발이 들어올려지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요것밖에 없다 하고만 딱 단정을 내려버리면 됩니다. 그 외에 기대할 것도 없고, 그리고 그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자꾸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앉아있을 때는 다른 거 안 하고 그냥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만 하게 되는 거고. 걸어갈 때는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이것만 계속하게 되는 거고.

이렇게 계속 해나갈 때, 이렇게 해나가야만이, 그 움직임을 그대로 적어도 단 1분만이라도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1분만이라도 계속해서 그 움직임만을 파악을 했을 때야만이,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들이 그 움직임은 반드시 시작하는 것이 있고 끝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발을 들어올려지고 나서 끝나야만이 발이 나아가는 것이지 끝나지 않고 발이 나아가는 법은 없다는 거라. 배가 불러오는 것이 끝나야만이 배가 꺼진다는 게 있다는 것을 알지, 불러오는 게 다 불러와지지 않고 꺼지는 법은 없다는 거라.

 

시작함과 끝나는 것을 분명하게, 그 끝나는 부분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숨을 들이쉬는 처음부터 알게끔 되고, 그리고 끝나는 마지막까지를 분명하게 그 움직임만 아는 거라. 배가 쭈-욱 불러와지고 끝나지고, 그다음에 다시 배가 꺼지는 시작부터 알고 쭈-욱 꺼지고 마지막에 꺼지는 것을 알고.

발을 들어올리는 처음부터 해서 처음부터 들어올려져가지고 완전히 들어올려지고 나서 끝나고 나서, 발이 나아가기 시작해서 발이 나아가지고, 이런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위빳사나라고 하는 것은 현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별하고 구분하는 것들이 우선시 됩니다.

이게 무상한 것이면 무상하다고 구별할 수가 있어야 되고, 이것이 괴로움이면 괴로움인 것으로 구별할 수 있어야 되는 거고, 이것이 무아이면 무아인 것을 분명하게 구별해서 알 수 있는 것.

마찬가지로 발이 들어올려지는 것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을 거 같으면 그 들어올려지는 것과 나아가는 것들에 대해서 구별할 수 있는 능력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발을 들어올려질 때 아는 마음과 발이 나아갈 때 아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모든 움직임을 순일하게 잘 따라가게 될 것 같으면,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두어야 되는 것들이, 그러한 모든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끔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물질적인 현상도 하나의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나서 다른 물질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정신적인 현상도 일어나고 사라지고 나서 또 다른 정신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 그것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게끔 됩니다.

 

지금은 그것이 무상·고·무아라고는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물질적인 것들과 정신적인 것들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고, 물질적인 현상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과 그다음에 물질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때 그것들을 분명하게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의 두 번째가 바로 "처음 시작하는 것과 끝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되는 단계"까지 넘어가져야 됩니다.

 

발을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할 때 또는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뭘 알아차려야만이 이렇게 구별하기 쉬워질까?

어떻게 알아차려야 그걸 구별하기 쉬워질까? 느낌을 보도록 해야 됩니다.

발이 들어올려질 때의 느낌과 내려놓을 때의 느낌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호흡은 배가 불러올 때의 느낌과 꺼질 때의 느낌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움직임을 분명하게 따라가서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시작하는 점과 끝나는 점을 아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자연스럽게 그 느낌들을 알게 됩니다.

움직임도 느낌의 종류입니다.

 

단지 지금 현재 사띠가 약해가지고 움직임만 안다고 할 거 같으면 그 움직임만 알면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아야 되는 거고, 내가 지금 사띠의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냥 발이 들어올려지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하는 것들을 움직임으로써만 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만 알면 됩니다.

 

단지 발을 들어올릴 때 들어올려지는 처음부터 해서 끝까지 분명하게 알고, 그다음에 발이 나아갈 때 나아가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알게 되고, 그런데 이게 똑같은 것이 아니고 끝나고 나야 그다음 것이 있다는 걸 움직임으로써만 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렇게만 알면 됩니다.

배가 불러오는 처음부터 시작해서 배가 쭈-욱 불러와지는 움직임이 있고 끝나고 나서 배가 꺼진다고 알 것 같으면 배가 꺼지는 움직임을 알고 있다, 그 움직임만 알아도 됩니다.

 

움직임을 아느냐? 아니면 배가 불러올 때 어떤 느낌으로 불러와지느냐? 배가 꺼질 때 어떤 느낌으로 꺼지는가? 팽창하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수축하는 느낌도 있을 수가 있고 여러 가지 느낌들이 있으면 그 느낌들의 각각을 그냥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아차릴 때 느낌으로 알든지 움직임으로 알든지 그것은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단지 알아차림이 좀 더 깊어지면은 그 움직임은 적어지고 느낌이 좀 더 강해집니다. 그런데 사띠의 능력이 많이 떨어질 거 같으면 지금 현재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그 움직임을 먼저 알게 됩니다. 단지 그 차이인 것뿐이지 그것이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틀리다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대신에 시작하는 것을 끝까지 끝나는 것을 분명하게 따라갈 거 같으면 그거 하나는 압니다.

그것이 움직임이든 느낌이든 지금 현재 나에게 있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은 그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뿐이다. "물질적인 것이 일어나고 사라졌고, 정신적인 것이 일어나고 사라진 것 그것밖에 없다" 하고 분명하게는 알아야 됩니다.

배가 불러오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불러와져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졌다는 것만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뿐이다 하고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한참 동안 진행되다가 보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하나의 현상이 끝나고 나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다음 현상이 없다는 걸 압니다.

배가 불러오고 나서 꺼질려고 하는 마음의 의도가 일어나지 않으면 꺼지는 것이 없다, 발이 들어올려지고 나서 나아갈려고 하는 의도가 없으면 발은 절대 나아가지지 않는다 하고 알게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의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알게 될 때, 그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 시작하는 것들이 연결될 때 그때 의도가 탁 일어난다는 것을 압니다. 뭔가 분명하게 멈춰있는 상태를 알게 될 때, 그 멈춰있을 때 뭔가 할려는 마음들이 팍 일어나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리고 나서 들어올려지는 것이 끝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나서는, 그다음에 의도가 일어나야만이 발이 나아가는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전에는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구별만 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걸 구별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압니다.

마음이 일어나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대상이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그것을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그리고 그것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또 마음이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야만이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게 수행의 기초부분에서 처음에 여러분들이 경험해야 될 부분들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만이 집중수행을 할 때 그래도 한시간 동안 앉아있을 거 같으면 어느 정도의 수행은 효과들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중수행을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다른 것들을 할려고 하면 안됩니다.

어떠한 것들이 나타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전부 다 무시해버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가장 좋습니다!

지금 현재 능력이 안 돼서 그것이 일어난 것들을 모르고, 아니면 일어난 지를 한참 있고 나서 알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내 능력이 그렇게 안 되는 걸 갖다가 그걸 따라가면서 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마음은 고요한 상태가 깨져버립니다.

 

뭔가 망상이 일어났다, 선한 망상이든 좋은 망상이든 나쁜 망상이든 망상이 일어났으면 마음은 깨집니다. 마음은 요동치게 돼있습니다. 좋은 거면 그걸 붙잡을려고 하게 돼있는 거고, 싫은 거면 그것을 밀쳐낼려고 하게 됩니다.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밀어내거나 붙잡아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하게 되는 거라. 그러면 그것이 강하지 않을 때는 처음에는 아예 무시를 해버리라는 거라.

그리고 좌선 1시간, 경행 1시간 하면서 그러한 거 없이 대상을 알아차려도 충분한 시간은 됩니다.

 

위빳사나는 수행의 대상이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 모든 것들이 대상이다" 해서, 그 대상이 일어나는 즉시 그냥 그대로 알려고만 할 것 같으면, 마음은 계속적으로 고요함은 깨져버리고 또다시 또 돌아오고 또다시 돌아오고 할 것 같으면, 그렇게 1시간 동안 할 거 같으면 크게 진척을 보질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할 때는 전부 막아버리고 차단을 해버리고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어느 정도의 집중된 힘이 생기기 전에는 사띠는 반드시 약합니다.

알아차리는 것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중해서 그것만 알아차려서 해도 시원찮은데 집중하는 힘까지 없으면 사띠의 힘들은 당연히 따라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집중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초심자들은 대부분 이 집중하는 것들을 하지 못해서 수행이 깨져버립니다.

그런데 나중에 수행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날 것 같으면 집중수행을 해보면 보통 한 몇일 정도 지나고 나면은 집중이 너무 강해서 또 수행이 깨져버립니다.

며칠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집중하는 것들을 줄여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중할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손가락이 이렇게 있다. 손가락을 볼 때 손가락 전체를 다 보는 것이 집중하기가 좋아요? 아니면 하나의 포인트를 잡고 보는 것이 집중하기 좋아요? (포인트를 잡고 볼 때) 포인트를 잡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수행을 할 때 집중을 할 때는 배를 하더라도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야 되는 거고, 다리를 하더라도 다리 중에서 가장 현저한 곳, 만약에 발바닥이면 어쨌든 발바닥을 디디고 놓고 하는 데, 발바닥 밑에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서 집중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집중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넓게 집중을 해가지고는 집중이 안 됩니다.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서 집중을 할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적어도 그렇게 해나가면 처음에 집중수행을 할 때 어느 정도의 효과는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죠?

 

일상생활에서 만약에 그렇게 했다 할 거 같으면 아마 실수하는 것 투성이일 겁니다.

걸어가더라도 어디에 부딪치고 뭐 누가 옆에서 뭐라 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할 때는 모든 것들이 대상이 됩니다.

모든 것들을 다 열어놔야만이 가능합니다.

단지 마음이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야 만이 일상생활에서는 그것들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즉시 일어난 것들 그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다른 것들은 당연히 그때는 놓아버린 상태가 되고. 그래서 걸어가면서도 소리를 들을 수가 있고 걸어가면서도 대상을 볼 수가 있게끔 됩니다. 그럴려면 마음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할 때 걸어가는 것과 집중수행 할 때의 경행하면서 걸어가는 것은 분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동일하게 놓아버리면 안 됩니다.

 

어제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앉아있을 때 배를 관찰하라고 하니까 일상생활하면서 배를 관찰하면서 그냥 걸어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더라고. 그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집중수행 할 때의 그 방법을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하는 것으로 또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다는 거라.

 

일상생활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이 고요하게 돼있는 데에 치중을 해야 되는 것이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수행하는 것들에 치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선하게만 계속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그래서 그 선하게 일어난 것들이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만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느낌이라든지 그 변화라든지 이런 것들을 보는 것보다 "움직임을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그런데 집중해서는 그 움직임만 봐가지고는 마음은 어떤 경우든지 벗어나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하나의 포인트를 잡고 느낌을 보라. 그리고 그 느낌의 변화들을 보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사띠의 힘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스스로 조절을 하게 됩니다.

어느 대상을 선택할 것인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앉아서 배만 관찰하고 있겠다 할 거 같으면 누가 옆에서 소리질러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거라. 그걸 내가 선택을 안 하기 때문에. 배만 선택해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뭔가 대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눈을 뜨고 있어도 그 대상은 보이질 않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 수행에서는 몸에서 여러 가지 반응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도 그에 맞게끔 현상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이때 나타납니다.

집중이 잘되지 않으면 그러한 현상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나는 수행을 많이 했는데 아직 그러한 현상들을 경험하지 못했다' 할 것 같으면 '아직은 나는 집중하는 것이 부족하구나' 그러면은 하나의 대상만 집중해서 알아차릴려고 하는 훈련들을, 쉽게 말하면 "집중훈련 수행법"들을 더욱 더 해야 됩니다.

 

그게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첫 부분들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초급과정부분에 대한 설명들을 쭉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일상생활과 집중수행을 해서 수행하는 시간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그러면 일상생활하면서도 점점 더 집중수행의 이로운 점들을 분명하게 인식을 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틈만나면 집중수행을 자꾸 할려고 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몇시간씩은 좌선 - 경행을 할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필요없는 부분들을 하지 않고 수행하는 시간들을 늘리려고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패턴이 바뀌어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제는 자기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러면은 기초적인 단계는 일단은 뛰어넘은 상태가 됩니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중급과정으로 넘어가지게 됩니다.

 

중급과정으로 넘어가면은 "느낌에 대한 관찰"들을 하도록 합니다.

그 느낌에 대한 관찰도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만 분명하게 관찰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좌선을 하고 있으면 일어나는 갖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망상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하기 싫어하는 마음에 대한 것들, 그리고 이걸 계속해야 되나 하는 의심에 대한 것들, 또는 다리 통증에 대한 것들, 그리고 마음이 즐겁고 고요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수행을 하면 우울해진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이런 것들을 느낌으로써 그대로 자꾸 알아차려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느낌에 대한 관찰, 중급과정에 들게 되면은 가장 먼저 오는 것이 '수행은 굉장히 괴롭다'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수행은 쉬운 게 아니다!"

이게 중급과정을 졸업할 때가 되야만이 수행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졸업하기 전에는 굉장히 괴롭습니다. 대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분명하게 그 느낌들을 알기는 아는데 괴로운 거라. 왜 괴로울까? 수행이 왜 괴로울까? 그냥 하기 싫어서 게으름부리고 괴롭다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괴로운 거라. 그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여러분은 평생 살려고 할 겁니다. 안 변할려고 하기 때문에. 그거는 무수하게 지금까지 세월동안 윤회해오면서 여러분들이 더 살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윤회 안 했겠지. 그런데 계속적으로 그것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윤회를 하게 되는 거라. 그게 보입니다. 중급과정에서 이 괴로운 실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상을 관찰하면 계속적으로 관찰하면 사라지고 관찰하면 사라지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들어. 괴로워! 그래서 나에게는 괴로움만 계속적으로 다가와지게 되는 거라.

그런데 그게 무상에 대한 성품인지 고에 대한 성품인지 무아가 좀 엷어지면서 하는 건지, 그건 아직은 모릅니다. 그리해도 수행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여기서 보통 사람들이 수행을 놓아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는 수행을 하면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새로운 것들이 자꾸 발견됩니다.

발이 들어올려지는데 희한한 느낌들이 일어나지거든. 발을 내려놓는데 희한한 느낌들이 일어나집니다.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 배가 불러오는데, 배가 꺼지는데, 그러한 느낌들이 지속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 수행을 계속 해나갈 거 같은데, 실제로는 보면 괴로움이 느껴져가지고 수행을 중단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즐겁고 좋은 것들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은 거기서 수행이 딴 방향으로 새버린다는 겁니다.

 

수행대상에서 벗어나버리고 그 새로운 것들이 일어난 것들을 자꾸 알려고 합니다.

뭔가를 자꾸 또 알려고 해요. 이거 다음에 뭐가 일어날까? 물론 알아지기는 합니다. 그런데 실재하는 것들이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조작해서 일어나가지고 알아지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거라.

그럼 수행대상하고 관계없이 자꾸 관념적으로 빠지고 오히려 마음은 더 황폐화되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것들 새로운 것들이 일어나더라도 수행은 결국은 종지부를 찍게끔 됩니다.

 

그래서 중급단계에서는 수행의 스승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초급에서는 실제적으로는 그냥 하나의 대상을 딱 잡아가지고 꼬집어가지고 그것만 쭉 해나가면 큰 문제는 없어요. 벗어나봐야 크게 벗어나지를 않게 됩니다.

그런데 중급과정으로 넘어가면은 이때는 조그만 거 하나라도 나에게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그때 수행스승이 바로 잡아주지 못하면 그 사람은 수행하고는 벽을 쌓게 됩니다.

또는 스승을 찾아서 자꾸 돌아다니게 됩니다.

어느 수행코스에 가서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러면 그 수행하는 데만 또 찾아갑니다. 그런데 가서 그걸 경험할려고 한다고 해도 그게 경험되지나 다시? 안 되지! 그렇게 반복해서 몇번 하다 보면 그다음엔 수행을 놓아버리게 되는 거라.

 

이런 중급과정을 겪고 나면은,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들이 '수행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된다'는 마음이 딱 들게 됩니다.

 

#내가 죽음이 오기 전에는 수행을 계속해야 된다는 고급과정으로 넘어가져버립니다.

 

고급과정으로 넘어가면은 그때는 어떠한 것이든 대상이 평온하게 보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물질적인 것들이나,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나, 또는 외부적인 자극으로 인한 대상이든, 아니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상이든 어떤 것이든 그 대상을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똑같이 볼 수 있게끔 됩니다.

 

그 어떤 것에도 편견을 가지는 법도 없고, 그 어떠한 것에도 그냥 그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상태로만 보아지지 다른 것으로써는 보지 않게끔 된다는 거라. 관념은 이미 떨어져나가버린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수행은 순일하게 될 뿐만 아니라 수행하는 것들이 좋습니다. 즐겁습니다. 그래서 '평생동안 그냥 이렇게 수행만 하고 죽어도 여한은 없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거기서 끝나버릴 것 같으면 그대로 수행만 해도 좋은데,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은 그다음엔 반드시 자신에게 의무가 생겨버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의무들!

여러분도 부모가 됐으니까 부모로서 해야 될 의무들이 있죠? 자식에게. 싫은 마음이 일어나고 좋은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걸 해야 되는 거라. 해야 되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어떨 때는 안 할 때도 있고, 내팽겨칠 때도 있지만 그 의무들을 져버리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그러면서 점점 더 성자의 위치로서 올라가지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게 보통 수행을 하면서 진행되는 과정들입니다.

 

그 중간중간에 일어나는 것들이 힘의 균형이 맞아야 되는 것들도 일어나지게 되는 거고, 개발되어 나가는 것들이 어떤 것이 개발되어나가고, 그다음에는 어떤 것이 개발되어져나가고 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각지 부분들이 개발되어 나가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상태에서는 '아, 내가 이 상태에 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자기 자신이 인식하고 알기도 하고, 그런 과정들이 진행이 되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수행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은 처음 시작하는 부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집중수행하는 것들은 자꾸 훈련을 해주어야 됩니다.

집중수행하는 시간들이 없으면 일상적인 것들로 가지고는 단계를 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와가지고 여기서 1시간 2시간 하고 나면 땡 쳐버린다, 이렇게 해버릴 거 같으면 수행은 10년이 가도 진척이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집중수행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집중수행을 자꾸 하도록 해야 되는 거고, 또 일상생활 중에서도 집중수행하는 시간을 강제적으로라도 만들어서 자꾸 더욱더 늘려나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이 균형이 맞아질 때 수행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진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