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올바른 삶의 방법을 선택하는 가이드 라인 (20170511)

담마마-마까 2022. 4. 22. 09:00

https://youtu.be/Ijqa-WARCUI

* 올바른 삶의 방법을 선택하는 가이드 라인 (20170511)

 

오늘은 「올바른 삶의 방법을 선택하는 가이드 라인」이라는 제목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뿐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수명이 아마 짧을 겁니다.

왜 남자들이 짧을까?

(수행자 대답 : 남자들이 고생을 많이 해가지고요)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을 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경전의 어디를 봐도 남성의 수명이 짧은 그 이유를 경전에 부처님이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수명이 짧은 것은 보통 보면 신·구의·(身口意)와 관계돼있습니다.

남자들은 슬픈 게 있고 그래도 꾹 눌러 참습니다. 여자들은 감정표현을 마음에 있는 것들을 그냥 그대로 펑펑 울든지 이렇게들 합니다. 마음이 왜곡되게끔 하면은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깁니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업의 영향도 미치지만, 온도도 영향을 미치고, 또 먹는 음식물 자양분이라고 그러죠? 자양분 같은 것도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마음이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그런 것들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요인입니다.

마음이 콘트롤이 가능하면은 좋은데 보통은 보면 콘트롤은 가능하지 않는데 눌러 앉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게 폭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수명을 짧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또 그것들이 스트레스가 돼가지고 수명이 짧아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말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는 것들도 마음의 콘트롤을 해서 말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자들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은 금방 저 사람이 무슨 말하고 있나 하는 것이 드러나는데, 남자들은 그걸 속입니다. 속여서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 얘기만 듣고는 그것을 정확하게 판단하는데 좀 무리가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행동하는 것도 꼭 마찬가지죠.

 

어찌 보면 이런 세 가지가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을 가지고 하는 3가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지기도 하고,

 

또 4번째는 여러분은 관계가 없긴 한데, 열심히 일했기는 한데 그것으로 인해서 수명이 짧아지는 것은 아니고, 일하고 나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딴짓한다고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고 그렇게 경전에는 나와 있습니다.

어쨌든 수명이 짧아지는 것들하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들이 여러분들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을 먹고 하는 것들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명이 짧든 길든, 남성이나 여성이나 관계없이 이 3가지를 정확하게 바르게 할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할 때도 본인이 정직하게 생각하고 본인이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거고, 행동하고 말하고 마음먹고 하는 것들도 어떠한 경우든지 악한 행위들, 악한 마음을 품고 말하고 하는 것은 안된다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3가지를 잘 방어하고 잘 조절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그래도 이생에서 잘 살아가게 되고, 궁극에는 아라한에 이른다" 하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올바르게 살아가는데 가이드 라인이 되는 것들은 이걸까?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을 선한 방향으로 하는 것 이것일까? 그게 여러분들의 가이드 라인입니까?

그것도 맞습니다. 쉽게 풀어서 그것이고, 좀 어렵게 말을 하면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어제 그제가 대통령 선거였죠? 대통령 선거 때 스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종이 딱지 날아온 것 번호 적힌 거 그거 하나만 들고 동사무소를 갔어요. 그런데 신분증이 없다고 안 된대. 그래서 아침에 일찍 하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다시 와가지고 다시 신분증을 가지고 또 갔어요. 나를 나타내주는 증명은 신분증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을 나타내주는, 여러분들을 증명을 해주고 권위를 세워주는 것들은 과연 뭐가 있을까? 의사도 의사면허증이 없으면 병원을 개원할 수가 없고 거기에 따른 병 진료를 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의사를 증명해주는 것은 그 증명서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각각의 증명서들을 요구를 합니다. 그게 그 사람을 나타내주는 것들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개개인뿐 아니라 각각의 단체도 마찬가집니다.

 

가끔씩 범어사 스님들이 여기에 잘 찾아옵니다. 스님은 별로 오고 가고 하는 것은 개의치는 않는데 나중에 지나고 나면 '아이고, 또 쓸데없는 시간 보냈네' 하는 때가 많습니다. 신세 한탄을 하는 소리들이 많기 때문에. 범어사 신도회에 관음회는 좀 부자들이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모양이라. 관음회에 들 입장이 안 되는데, 관음회에 들기 위해서 억지로 뭔가를 보시해야 되고 뭘 해야 되고 하는 그런 것들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그 사람은 범어사 관음회 신도다 아니면 간부다 하는 것들이 권위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들려고 하는 거라, 무리를 해서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개개인이든 아니면 그 조직이든 권위를 세우려는 것은 그것들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보통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재가자뿐 아니라 출가자도 마찬가지죠.

 

출가자도 여기 한국에서 한국 테라와다 불교 상가를 구성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들입니다. 개개인으로 있을 것 같으면 누가 다른 데서 승려로서 인정을 해주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계를 받은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한국 테라와다 불교가 생긴 것은 그게 첫째 이유였습니다. 스님들이 스님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사회적으로부터 그것을 인정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서 승려들이 모이면 해야 될 일들이 있습니다. 포살을 하든 자자를 하든 뭘 하든 여러 가지 행사를 하든 해야 될 일들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사실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뺏기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리해도 그것들이 있어야만이 그 테라와다 스님으로서 봐주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은 출가자든 재가자든 그런 것들을 권위를 세워주는 것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리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부처님이 말한 진리의 입장에서는 그게 필요한 것일까? 하는 것들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여성 출가자 중에 가장 먼저 출가한 분이 마하 빠자빠띠 고따미 라고 하는, 부처님한테는 어릴 때 양모와 같은 그런 분입니다. 마야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마야부인의 동생인 고따미가 부처님을 직접 키웠습니다. 어찌 보면은 어머니와 같은 분입니다. 그런 분이 부처님한테 출가할려고 많은 여인들과 같이 출가하려고 왔을 때 결국은 부처님은 여덟 가지 조건을 제시를 하면서 그것들을 따를 것 같으면 출가를 허락한다 하고 출가를 해주게 됩니다.

그게 비구니 팔경계라고 하는 겁니다. 초기 때 비구니를 출가시키기 위해 맨처음에 생겼던 것이 그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후대에 출가한 비구니들 같은 경우에는 정확하게 비구니 계목에 의해서 출가를 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정식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정식으로 출가를 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스승도 없었지, 부처님은 그냥 "인정한다"고 한 것이지 내가 네 스승이 되주겠다, 아니면 비구니가 되기 위해서 계를 설해주는 계사스님이 되어준 것도 아니고 이런 여러 가지 조건들이 안 맞는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부처님이 그걸 하면서 출가한 비구니는 비구들 스무명이 있는 곳에서 다시 또 출가의식을 행해야 된다 하는 조건이 뒤에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여러 가지를 봤을 때 고따미 비구니 같은 경우에는 그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를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고따미 비구니 스님이 주관하는 어떤 행사나 포살, 자자, 법회나 이런 때 비구니 스님들이 가기를 꺼려하게 됩니다.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맨 처음에 여러분들에게 들려줬던 "몸과 말과 마음을 잘 조절해서 제어한 사람들, 이 3가지를 잘 방어하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살아갈 것 같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뿐 아니라, 그렇게 조절할 때 번뇌가 떨어지는 걸 자기 자신이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내가 지금 현재 아라한에 이르렀다, 자기 자신이 수다원에 이르렀다 하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을 한다는 거라.

"본인이 아라한에 이르렀다고 본인이 분명하게 알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아라한이다. 그러한 아라한일 경우에는 내가 인정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계를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구니임에는 틀림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지금 현대에서도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비구니가 없습니다. 비구 승단에서 인정을 못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구 승단이 좀 보수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도 지금 현재는 정확하게 비구니 계를 줘가지고 출가를 할 수 없고, 자기 스스로 내가 옷을 입는다든지 아니면 부처님이 내 머리를 깍아준다든지 이런 것은 통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스무명이 넘는 비구 스님들이 비구니들에게 계를 줘야 되는데, 그 승단 교단에서는 그걸 인정을 안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와 같이 그렇게 계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출가한 분이 아라한이 돼서 비구니 상가를 재건할 수 있는 인원이 만들어지면 그것은 적어도 비구니 교단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고 해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라한이 되어서 그분들이 처음에는 4명 5명이 되면 최소한의 것들은 행할 수가 있고, 조금 더 그런 아라한들이 생겨나서 20명 이상이 될 것 같으면 완전하게 비구니 교단이 형성이 되게끔 됩니다.

가끔 저희들도 농담삼아 그렇게 얘기합니다. 빨리 수행해가지고 아라한이 되어라. 자꾸 왜 우리를 비구니로 인정해주지 않느냐 하고 말하지 말고, 아라한이 되는 것이 급선무다 하는 얘기를 가끔씩 하게는 됩니다.

 

아라한이 되기 위한 과정도 마찬가지로 신·구·의(身口意)를 잘 다스리는 것이고, 부처님이 "삶의 지표로 살아가는 것 그게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삶의 지표로 살아가는 것들도 신··(身口意) 세 곳을 잘 다스리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게 어찌 보면은 가이드 라인입니다.

 

세속적으로 말하는 권위를 세울 수 있는 것들, 여러 가지 증명이라든지 아니면 뭐 출가해서도 무슨 법사자격을 얻었다든지 삼장법사 자격을 얻었다든지 뭐라든지 이런 것들로 인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삶의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져있을 거 같으면 그 삶의 목표에 따라서 살아가야 되는 것들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아까 예를 들었지만은 관음회에 들었다, 관음회에 간부가 되었다, 그러면 그분은 불교를 믿고 또 그 회에 속하게 된 것은 자아를 전부 잃어버리기 위한 건데 오히려 자아를 더 내세우는 꼴이 돼버립니다.

 

출가한 분이 어떤 것들로 인해서 나는 어떤 자격을 얻었다 하고 내세워야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자격을 얻은 것은 뭔가 번뇌들이 점점 더 떨어져 나가고 자아의식이 점점 없어져야 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인데, 그걸 내세우면서 더욱더 그런 것들이 더 늘어나는 형태들을 띠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적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절대적인 권위가 되지 않는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은 부처님이 말하는 「올바른 삶의 방법의 가이드 라인」은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 전제조건이 뭘까?

얼마 전에도 테라와다 스님이라고 하면서 오신 스님이 한분 있었는데, 옷 입는 방식이나 말하는 것이 테라와다 스님 같지가 않아. “스님, 어디서 계를 받으셨습니까?” 하니까 어디서 받았다고 하는데, 마침 그 계를 받을 때 다른 스님 한 분이 있었는데 혹시 그 스님을 아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잘 몰라.

“스님 가사 입은 것이 테라와다 방식에 잘 맞지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아랫가사는 입지 않고 윗가사만 훌러덩 걸치고 대승불교 스님같이 그러고 왔더라고. 안에는 한국 승복을 입고. 그래서 맞지 않는다 이러니까, 스님 왜 나를 의심을 하느냐고 막 나한테 호통을 치고 가더라고.

그럼 뭐라요? 테라와다 스님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그 스님이 정직해야 되는 거라. 거짓말을 한다든지 남을 속일려고 한다든지 그렇게 해서 그것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올바르게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은 어떠한 경우든지 정직해야 됩니다.

수행에서 조금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가기 위해서도 스승에게 자기의 상태를 정직하게 얘기해야 됩니다. 여러 가지 경험한 것 그것 가지고만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으면 그사람은 점점 더 새로운 특별한 경험한 것들만 자꾸 얘기를 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수행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은 자기 사정을 정확하게 보지를 않습니다. 수행을 할 때도 어떠한 경우든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정직할 것과 솔직할 것! 이것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될 조건의 전제조건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솔직하게 “아, 나는 이런 것은 잘 못합니다.” “아, 나에게는 탐심이 많습니다.” “나에게는 진심이 많습니다.” “나에게는 게으름이 좀 많습니다.”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아야만이 그것을 고쳐나가는 단추를 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전제조건이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다가 보면은 스승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스승이 있을 때는 스승에게 얘기하면 되는데, 이와 같이 정직하고 솔직하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를 할 것 같으면 그 스승도 올바른 답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계속 수행하십시요” 그렇게 얘기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자기의 상태를 얘기를 하고 수행에 대해서 얘기를 할 것 같으면 스승들은 그것에 대해서 잘 인도를 해주게 됩니다.

"먼저 배우고 스승이 된 분들은 존경을 해야 된다" 하고 얘기들을 합니다. 존경할 조건들을 갖추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들입니다. 그분들이 더 출가한지 오래된 스님이든 아니면 나보다 불교를 많이 아는 사람이든 그것으로 인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조건들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들입니다. 존경할 조건들이 되기 때문에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러한 스승들이 없을 경우에는 여러분들이 뭘 지표로 해서 살아가게 되고, 뭘 지표로 해서 수행을 하게 됩니까?

부처님이 계실 때는 부처님이 그걸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부처님이 없으면 우리는 뭘 의지해서 삽니까?" 하고 물어봤을 때 부처님이 대답한 것이 "담마(Dhamma, 법)와 위나야(Vinaya, 율)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아,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에 맞는 것인가? 부처님이 말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인가? 그게 담마와 위나야 입니다.

 

기본적으로 오늘 오계를 받아지녔습니다. 이것이 오계에 어긋난다 할 것 같으면 나는 바르게 잘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담마에 맞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담마와 위나야에 비추어서 그것들을 비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시고 나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은 담마와 위나야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많이 배워야 되겠죠? 담마가 뭔지? 또 어떤 것이 위나야 인지? 너무 많습니다. 경전도 팔만사천 가지가 된다고 그러고, 위나야도 여러분들이 지금 오계, 팔계라고 하지만 그 세세한 항목을 모릅니다. 오계의 세세한 항목도 잘 모르는데 출가한 스님들의 그것보다 많은 세세한 항목들 그걸 다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매일 공부해서 몇십년을 공부해도 그걸 마칠둥말둥 합니다. 언제 그거 붙잡고 있을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공부해가지고 박사되가지고 교수될려고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일반인들은 사실은 그건 무리라는 거라.

 

그걸 알기 때문에 부처님이 보다 쉽게 얘기한 것이 바로 신··(身口意) 입니다.

말하는 것들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는가? 말을 할 때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말을 하고 있는가? 남을 해치려는 마음 없이 남에게 연민심을 지니고 말을 하고 있는가? 행동할 때도 마찬가지고, 마음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고.

"자기 자신이나 남을 해치고 또 해코지하고 하는 마음이 없이 신구의를 행할 때 그 사람은 잘 살아가는 사람이다. 깨달은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으로 인해서 업을 짓는 행위들은 하지 않는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가이드 라인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담마와 위나야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자꾸 배워야 됩니다.

말하는 것도 실제로는 쉬운 게 아닙니다. 이때까지 그냥 잡담하는 것들 그것이 나쁜말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몰랐을 경우에는 그냥 잡담만 그냥 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말들을. '네가 화를 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다' 하고 생각할 것 같으면 그것이 나쁜 말인지도 모르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배우기는 배워야 됩니다. 말을 하는 것 하나만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하고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들, 의도를 가지는 것들도 많이 배워야 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있습니다.

그것들은 서서히 배워나가야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에 두어야 되는 것은 나에게 자애가 있는가? 자애가 있는 상태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딱 그거 하나만 마음에 지니고 있을 거 같으면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서 담마와 위나야에 어긋나는 것들은 있을 수가 없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가이드 라인은 분명히 정하십시요.

그래서 그냥 세속적인 권위를 세우는 것들, 아니면 출가자의 권위를 세우는 것들에 만족하고 그것에 머무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나아가야 되는 바른 삶을 설정할 수 있을 때, 그 가이드 라인을 잘 세우게 될 때 그분은 부처님 가르침 대로 따라가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큰 권위는 담마와 위나야 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말하고 행동하라!

그것이 바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는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