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은 근본적인 것을 치료해야 됩니다. <일상의 생활과 수행> (20190803)
수행 좀 하고들 있어요? 왜 대답들을 안 해?
참 쉬운 것은 아닌데, 그래도 그 길밖에 없으면 어떡할래요?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계속 해나가야 됩니다. 그 방법밖엔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것은 만날 도돌이표가 돼버립니다.
요즘에 와서 계속 주변의 환경들을 보면서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수행을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그게 선원에 와서만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애.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거 다 까먹고 있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와서 수행 좀 열심히 한다고 하고 가기는 하지만, 그게 계속 이렇게 되돌이표만 될 것 같으면 문제에 부딪쳐버리면 수행할려는 마음을 일으키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다른 일에 휩싸여 버리는 걸 많이 봅니다.
얼마 전에 스님 한 분을 만나가지고 점심을 같이 공양을 했는데, 그래도 수행 열심히 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 들여다보니까 이 스님도 다른 스님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는 것 그거에만 계속 집중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한테 하나 여쭤볼게요.
우리 선원 앞에 땅을 지금 가계약 한 것 아시죠? (예)
뭘 여러분은 원하게 될까? 대부분 사람들은 저기 땅을 샀으니까, 저기에다가 수행처소 만들면 좀 편하게 와서 숙박하면서 수행하면 좋겠지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통 가지는 생각들입니다. 그게 뭐 어떤 사람들은 또 거기서 견해가 달라가지고 그 수행처소는 일반인의 수행처소가 되어야 된다, 아니면 스님들 상가들을 위한 처소가 되어야 된다, 시마홀을 만들어야 된다, 그 견해가지고 또 싸움을 하겠지만, 대부분 땅이 생기면 거기에 수행처소를 짓는다 하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걸 빨리어 용어로 '앗사'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계속 괴로움의 수렁텅이에 휘말린다는 생각을 보통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에 집착을 하게 되고, 그 집착이 어떨 때는 이루어지고 어떨 때는 안 이루어지고 하겠지만은, 어쨌든 그렇게 계속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게 없어져버리면 그렇게 괴로워할 일도 없어지는데'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질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얼마 전에 만났던 스님도 여러분과 똑같은 그런 괴로움의 수렁텅이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신나서 얘기를 하는데, '아, 여기다 뭐 하고, 뭐 만들고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 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
살아가면서 원하는 거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살 수는 없을까?
대상이 일어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알아차리면서 살아가면 참 편하고 좋을 건데. 병에 걸려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우리 선등 회장님도 지금 다리 무릎 연골이 안 좋아가지고 다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게 망가져 가고 기능을 못하니까, 또 다시 재생을 하겠지만, 그걸 탓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면 참 좋을 건데,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걸 할려고 하질 않는다는 거라.
또 요즘 스님이 많이 느끼는 게 뭐냐면 근원적인 문제를 자꾸 해결할려고 해야 되지, 지엽적인 것 그리고 지금 드러난 것들만 자꾸 해결을 할려고 해가지고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된다 하는 거라.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법은 실제로는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데, 사람들은 그 수행법을 가지고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려고 합니다.
당장에 번뇌가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려서 없애고, 화가 일어나는 것들 알아차려서 화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고, 계속 그런 패턴에서만 머물고 있다는 거라.
그런데 괴로움은 끊임없이 계속 다른 방법으로 다르게 패턴을 바꿔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어느 정도의 상태가 되기 전에는 또 똑같은 문제에 계속적으로 죽을 때까지 반복을 한다는 거라. 본인은 수행을 한다고 하고 또 본인은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거라.
스님이 유산균을 누가 의사가 갖다주는 것이 있어가지고 그걸 매달 먹고 있는데, 그걸 먹으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면 몸의 세포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안에 있는 크론병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완화가 돼나가고 있구나 하는 걸 직접 피부로 느낍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보통 얘기하길 장이 건강하면 다른 장기들이 건강해진다 하는 걸 스님이 직접 그걸 느끼고 있거든.
여러분이 사띠를 하는 것으로써 그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 것 같으면 사띠 안 하고 살 재간이 있는가 하는 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뭔가 원하는 것이 있고 지금 당장의 급한 것들만 자꾸 해결할려고 하는 거라. 지엽적인 것들.
일정한 흐름을 탁 바꾸지 않으면 이게 개선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게 부처님은 "무지의 흐름"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뭔가를 원하고 뭔가를 실현해나가고 하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근본적인 문제를 자꾸 해결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분명한 사띠를 지닌 채 무상·고·무아를 자꾸 체험해나가려고 할 때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들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한달에 한번씩 스님한테 와서 공양올리고 가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사띠 몇번 더 챙기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상·고·무아에 대한 성품을 분명하게 보게 될 때 마음으로 우러나서 스님에 대한 고마움이 표해지는 거고, 그것이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연결되는 것이지. 억지로 뭔가를 자꾸 하고, 지금 현재 당장 해야 될 일들, 지금 원하는 것들, 이루는 것들 그것에만 자꾸 매달리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수행은 근본적인 것을 치료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수행이 근본적인 것을 치료를 해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지금 당장 일어난 것들 해결하는 데만 급급한 거 아닌가?
망상이 일어난 거, 번뇌가 일어난 거, 욕심이 일어난 거, 성냄이 일어나는 거, 물론 그건 다스려야 되는 거라. 그런데 그거 다스리는데만 자꾸 마음이 뺏기다 보면 그걸 다스리면서 보게 되는 무상·고·무아는 보려고 하질 않게 됩니다. 사띠의 힘도 약해지고, 집중하는 힘도 약해지고, 그러면 근원적인 문제는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라도 늦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를 자꾸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법문 없이 "수행 조금 더 열심히 하십시요" 하는 말로써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18~2022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중수행] 오온을 분리해서 보게 될 때 무아를 이해할 수 있다. (20190824) (0) | 2022.05.21 |
---|---|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네 가지 방법 (20190817) (0) | 2022.05.20 |
[집중수행] 상카라를 구분해 보자! (20190727) (0) | 2022.05.18 |
2019년 우안거 입재_말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 (20190713) (0) | 2022.05.17 |
생각이나 망상, 판단에 빠지지 말아라.-사띠의 기본2 (20190706) (0) | 2022.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