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구·울주선원 수행법문

수행법문- 수행의 실제 (20180414. 울주)

담마마-마까 2022. 6. 2. 09:00

https://youtu.be/0KTy3od3Bcc

* 수행의 실제 (20180414. 울주)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부터 예비수행까지]

 

저번 시간까지 "계를 잘 지켜서 마음을 청정히 하라" 하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수행의 대상은 몇개일까? 위빳사나 수행은 수행의 대상이 몇 개라?

(수행자 대답 : 신·수·심·법 4가지입니다.)

4가지? 또 다른 사람은?

(수행자 대답 : 오온에서 일어나는 대상은 전부가 대상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상이 여러 가지일 때는 위빳사나 수행쪽으로 흐르기가 쉽고,

수행이 단순하면 사마타 수행으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호흡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면 들이쉬고 내쉬고 아주 단순하죠? 이것만 관찰하고 있으면 사마타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데서 들이쉴 때의 느낌이 여러 가지 팽창한다든지 아니면 따가움이 있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들을 관찰하면 위빳사나 수행으로 전환이 돼버립니다.

 

그걸 이렇게 보면 됩니다. 빨리어 용어에 '아누 사띠' 라고 하는 게 있고, '아누 빠사나' 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비수행에 보면 '붓다 아눗사띠' 그다음에 '마라나 아눗사띠'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오늘 하는 수행교재 뒷부분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대상, 단순한 대상을 끊임없이 그것을 알아차려나가는 것, 그걸 따라나가면서 끊임없이 알아차려나가는 것은 사마타 수행쪽에 가깝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상이 여러 개일 때는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아까도 얘기했지만 신·수·심·법이든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든 이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인데, 그런 대상이 여러 가지일 때는 위빳사나 수행쪽에 흐르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을 하더라도 대상이 여러 가지라 해가지고 꼭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이 여러 가지다, 그러면 그 여러 가지를 알아차리더라도 대상이 많다는 것뿐이지 그 속에서 무상·고·무아의 성품으로 보지 못하면 사마타 수행으로 흘러가버립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 "위빳사나 수행은 무상··무아를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대상을 알아차릴 때 그걸 변하는 것으로써 알아차리게 된다든지, 그다음에 그 대상을 불만족스럽게 알아차린다든지, 대상이 빠르게 변해서 아, 그속에 어떤 특정한 개체가 없다고 알아차린다든지 이렇게 알아차리게 될 때는 그것은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보면은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위빳사나 수행을 하면서도 사마타 수행으로 흐르기가 쉽습니다. 체질적으로 그렇습니다. 경행하는 것보다는 앉아서 수행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거의 99%가 그렇습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무상··무아로 알아차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힘을 좀 키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는데, 본인이 침착하지 못한 성격들 또는 망상이 많은 성격들 이런 분들은 처음에는 사마타 수행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이롭습니다.

우선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고요하게 만들어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사마타 수행을 좀 어느 정도 했다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그다음에 위빳사나로 전환하는 것들이 오히려 맞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인제는 위빳사나 수행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한번 수행을 한다고 치고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어보십시요.

지금 마음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알겠습니까? 마음이 뭘 하고 있어요?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어요? 아니면 소리를 들을려고 하고 있어요?

 

1. 마음이 있는 것을 분명하게 먼저 알아차려야 됩니다.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 마음을 수행대상으로 가져와주질 못합니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해버리면 몸에다가 호흡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서 호흡에다가 마음을 자꾸 갖다 붙이려고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먼저 '어, 마음이 뭘 하고 있지?' '마음이 어디있지?' 하는 것들을 먼저 고요하게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2. 그러고 나서 이 마음을 몸에다가, 주대상이 몸이면 몸에다가 살짝이 갖다 붙이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어, 마음이 소리를 알아차리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알면, 아니면 마음이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마음을 호흡이면 호흡에다가 한번 살짝 붙여보라고. 살짝이!

호흡하고 있는걸 마음이 알아차리고 있는가? 하고 마음에다가 탁 갖다 붙이라는 거라. 그러면 그 호흡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마음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지 못하면, 다시 마음이 달아나면, 몸에서 일어나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됩니다.

중단하고 다시 가만히 놔두라고.

편안하게, 처음부터 다시!

머리끝부터 해서 엉덩이까지 천천히 몸의 긴장을 먼저 풀고,

그러고 나서 다시 마음이 긴장되어 있는가를 한번 보고 나서 '마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가도록.

그래서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나서 호흡이라고 하는 대상, 아니면 걷고 있으면 걷고 있는 대상에다가 갖다 붙일려고 해야 됩니다.

 

이게 기본적인 순서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다음에 몸을 알아차리는 것!

 

3. 그런데 몸을 알아차리는데, 몸에 알아차릴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처음에 호흡을 바로 알아차리기가, 처음에는 한두번 알아차릴 수가 있는데 그다음에는 다시 흩어져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대상을 많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띠가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나 두 개의 대상을 하면 얼마 못 가서 마음이 달아나버립니다. 그러면 대상을 많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호흡이면 들이쉬고 내쉬고 앉아있음을 보고 그다음에 닿아있음을 보고.

다시 일어나고 사라지고 앉아있고 닿아있는 다른 데를 또 보고.

또 들이쉬고 내쉬고 앉아있고 닿아있는 세 번째 것을 보고.

이런 식으로 대상을 자꾸 옮겨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실재하는 대상에다가 마음을 일치시켜주는 훈련을 자꾸 해야 됩니다.

 

그런데 대상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산만해져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대상을 한 서너개 정도만 해주고 나머지는 전부 생략을 해버리면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앉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려 주는 것,

아니면 '앉고 닿음' 하나 부분 두드러진 거 하나만 알아차리는 것,

이런 식으로 3개 아니면 4개 정도를 알아차리도록,

가볍게 그 대상에다가 마음이 살짝 가서 엿본다 생각을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4. 그 대상은 처음에는 움직임으로 알아차리고, 그뒤에는 느낌으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대상을 움직임으로 알아차리고 있으면

들이쉬었으면 '들이쉼' 하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내쉬었으면 '내쉼' 하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앉아있으면 '앉음' 하고 알아차리고, 닿아있으면 '닿음'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느낌으로 알아차리면

들이쉼' 할 때 들이쉴 때의 각각의 느낌들이 있습니다. 그 느낌 중에 두드러진 느낌, 팽창이면 '팽창한다'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들이쉼'이라고 할 때 '어, 숨이 팽창하고 있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내쉼' 할 때 숨을 내쉴 때 '어, 이게 수축하고 있는 느낌이다' '수축하고 있구나' 하고, 쪼그라드는 느낌이면 '쪼그라드는 느낌이구나' 하고 분명히 알아차려야 됩니다.

'닿아있다'고 알아차릴 때는 '아, 이게 닿아있으니까 딱딱하구나' 하고 알 것 같으면 '딱딱하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됩니다.

앉아있을 때는 '앉아있다'고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이게 무거우면 '무겁다'고 알아차려야 됩니다.

 

"지·수·화·풍 각각의 요소로써 알아차리게 되는 것"들을"느낌으로 알아차린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 느낌이 무거움인지 가벼움인지 자기는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할 때는 느낌으로 알려고 하지 말고, 먼저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끔 움직임으로써 보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대상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수월해지면, 그다음에는 느낌으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이 과정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됩니다.

 

하다가 안 되면 다시 처음으로 다시, 마음부터 먼저 알아차립니다.

마음이 어떠한 경우든지 고요해지고 가볍게 돼있지 않을 거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대상이 무거워져 있고 졸음이 올 거 같으면, 그 마음을 먼저 몰아내고 나서 수행을 해야되는 것이지, 억지로 몸의 대상이라고 하는 데로 갈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먼저 가볍고 고요하게 먼저 만들어나가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무엇이 원인이라서 마음이 이렇게 무겁고 가라앉는가? 하고 알아차려야 됩니다.

밥을 먹고 나서 몸이 아직 소화한다고 제기능을 못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내가 수행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몸이 많이 피곤해서 마음이 둔해져버린 건지, 그걸 먼저 알고 그것들을 먼저 고치고 나서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다른 방법을 써야 됩니다.

앉아서 좌선하는 것보다는 경행하는 것이 수월할 때가 있을 거고, 아니면 수행하는 것보다 경전을 독송하면서 마음을 깨워주는 것이 나을 때가 있을 거고, 경전을 독송하는 것도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 대상에 마음을 갖다 붙여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가벼워진 상태에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항상 먼저 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물론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세밀하게 알아차릴 필요성은 없습니다. 지금 현재 마음이 뭘 하고 있는지만 분명하게 알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만 알 정도가 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1번부터 4번까지를 순차적으로 자꾸 반복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아마 이렇게 순차적으로 반복해도 30분이나 1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5. 그다음에 수행을 하다 보면 항상 장애들이 일어나집니다.

그 대상들을 호흡을 알아차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장애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졸음이 온다, 그것을 이겨낼려고 자꾸 하지 말고!

하나의 대상으로 호흡을 자연스럽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가볍게 되고나서 호흡을 알아차리니까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졸음이 오는 것도 졸음이 오는 것을 호흡과 마찬가지로 대상으로 알아차리게 될 때 그 대상은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졸음이 온다 할 때도, 마음이 졸음이 오는 것들은 일단 놔두고,

마음이 먼저 가벼워진 상태를 먼저 만들려고 하고 나서 졸음을 보고,

다시 또 가벼워진 상태를 만들고 나서 졸음을 보고.

그러면 졸음이 똑같은 졸음이 아니라 그 졸음이 강도가 다르든지 아니면 느낌이 다르든지 각각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이 졸음이라고 하는 장애도 호흡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대상일 뿐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각각의 장애들을 대상으로써 자꾸 아는 훈련들을 계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이런 방식을 하고 나서 되풀이해서, 몸과 마음에 대한 것들을 자꾸 알아차리도록 하면 됩니다

 

6. 몸의 상태가 지금 내가 수행하는데 적당한 상태가 돼있는지,

마음의 상태도 적당한 상태가 돼있는지 이걸 하나씩 하나씩 자꾸 점검해보면 됩니다.

 

가끔은 수행하다 보면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기도 하고,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딱 긴장돼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럴 때마다 몸도 마찬가지 마음도 마찬가지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됩니다.

구부러져 있으면 다시 편안하게 바로 펴야 되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긴장돼있으면 긴장된 마음도 놓아버리고 다시 또 편안하게 만들어야 되고.

 

이런 6가지 과정들을 끊임없이 반복을 해주면 됩니다.

 

1) 마음 알아차리기

2) 몸 알아차리기

3)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기

4) 대상에서 움직임과 느낌을 알아차리기

5)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기

6) 수행 중 가끔 마음과 몸의 자세를 알아차리기

 

적어도 이렇게 하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훈련들은 돼나갑니다.

이런 상태가 됐을 때 기초적으로 수행하는 마음이 갖추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 밑에는 「예비수행법 4가지」를 적어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태 앞의 상태가 유지가 된 상태에서 예비수행, 간단하게 얘기하면 사마타 수행입니다.

하나의 대상에 쭉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가는 수행을 하면 금방 삐띠(pīti)들이 일어납니다.

금방 대상에 몰입돼가지고 환희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편안한 상태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한 게 이 4가지 예비수행입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예비수행까지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실제적으로 위빳사나 수행에 들어가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싶어 하겠지만 많은 이들은 그렇게 안됩니다.

문헌상으로도 그렇게 안 되게끔 돼있습니다.

또 실제 수행을 해보면 이런 방식을 하지 않으면 수행을 할 때 처음에는 한참 동안 애를 먹습니다.

 

예비수행은 4가지를 적어놓았습니다.

'붓다 아눗사띠', '멧따 바와나', '아수바 바와나', 그다음에 '마라나 아눗사띠' 그렇게 4가지 입니다.

앞에 두 가지는 항상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뒤에 두 가지는 가끔씩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평상시 때 마음이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멍청하게 있을 때는 차라리 앞에 두 가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붓다눗사띠' 하고 '멧따바와나'는 자주 하면 자주 할수록 삼매를 개발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수행할려고 하는 의지나 또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들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항상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앞 시간에도 얘기를 했듯이 멧따는 말을 할 때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수행도 부처님에 대해서 예경하는 마음이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을 했을 때와, 그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수행을 했을 때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대부분 멧따를 지닌 채 호흡을 관찰하는 자들과 멧따없이 그냥 호흡을 관찰하는 자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훨씬 수행이 깊어집니다.

이 두 가지는 통상적으로 자꾸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멧따바와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들로만 적어놓은 겁니다.

자애수행도

'내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하는 방법, 이게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이게 되고 나면 그다음에 '함께 수행하는 이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나중에는 '모든 존재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하는 식으로 차차 늘려나가면 됩니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하는 것들이 나에게 가득차도록 만들어서 그것이 흘러넘칠 때 그걸 "멧따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나간다" 하고 얘기합니다.

퍼져나가는 것은 내 속에는 없이 밖으로 비추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 가득 찼을 때 그것이 흘러넘치는 것을 퍼져나간다"고 얘기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내가 멧따가 충만되도록 만들고 나서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는 방식을 택하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다음 세 번째, 부정함에 대한 것들

보통 앞에 것들을 많이 하는데, 그것보다는 그 밑에 있는

이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온다.

눈에서는 눈꼽이, 귀에서는 귀지가,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침이나 가래를 한꺼번에 토해낸다.

몸에서는 끊임없이 땀과 때를 배설한다.

이렇듯 이 몸뚱이는 더럽고 악취를 풍기며 온갖 오물로 가득차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 몸은 절대 깨끗하지 않고 이 몸은 부정한 것이다" 하는 생각, 그래서 이 몸에 대한 집착을 자꾸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죽음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

나의 삶은 불확실하다.

죽음만이 확실하다.

나는 확실히 죽을 것이다.

나의 목숨은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이 4개의 게송은 반복적으로 계속 해주면 됩니다.

그래서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고 알아서 분명하게 노력을 하게끔 됩니다.

 

이 4가지 수행까지를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 딱 앉아서 바로 예비수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가장 좋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마음이 뭘하고 있는지부터 먼저 알아차리고 해서, 순차적으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해서 고요해진 상태에서 예비수행에 들어가도록.

 

보통 이 예비수행까지의 과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하다가 보면 점점 이 시간이 줄어들겁니다.

그런데 처음에 할 때는 이 과정까지만 몇번 반복하고 나면 한시간이 금방 훅 지나갑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이 시간이 점점 짧아집니다.

그럼 나머지 시간은 바로 위빳사나 수행으로 뛰어들어도 무방한 시간이 돼버립니다.

아니면 이 시간을 아예 없애버리고 바로 위빳사나로 뛰어들어도 무방한 시간이 돼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이게 전제조건이 된 상태에서 위빳사나 수행을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부터 예비수행까지를 간단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질의응답>

수행자1 질문 : 스님, 스님이 법문하실 동안에 귀에다가 집중을 해서 듣고 있는데, 이해는 됐다는 정도지 다 듣고 나면은 구체적으로 기억을 못하고 알았다는 정도밖에 안되는데요.

스님 : 사띠가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가 이어져야만이 기억하는 힘들이 생겨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띠하는 것들이 위빳사나로 흐르지 않고, 사마타 수행으로 흐르기 때문에 자꾸 끊어져버립니다.

대상이 연속되지 않고, 대상이 하나의 대상에 머물르기 때문에 그다음 것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사마타 수행을 너무 많이 했으면 사마타 수행보다는 위빳사나 수행으로 전환을 해야 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수행자1 질문 : 저는 계속 한마디 한마디 단어 하나 하나를 따라서 듣고 있다는 데도 사마타 쪽으로 흐른다는 말입니까?

스님 : 그렇죠. 대상이 자꾸 끊어져버리면 그것은 사마타 수행쪽으로 흐른 겁니다.

그래서 대상은 반드시 이어져야 되는 거고,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에서 사띠는 사띠와 삼빠자나가 겸해지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되어야 되는 것이지 이어지는 것이 없으면 그것은 그 사띠는 하나의 대상만 알아차리는 사마타 쪽으로 흘러가버린다는 겁니다.

 

수행자1 질문 : 단어 하나하나를 붙들지는 안 하고 그냥 흘러가는데요?

스님 : 본인은 안 붙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붙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끊어지고, 그다음 것들이 연결이 안 되고 또 단편적으로 돼버리고 또 단편적으로 돼버리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맞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띠의 힘이 아직은 이것을 지속적으로 계속 연결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든지 딸리든지 그렇습니다.

 

수행자2 질문 : 움직임을 알아차리다가 느낌을 알아차리다가 이렇게 교대로 할 수는 있습니까?

스님 답변 : 되도록이면 그 방법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산만해져 버립니다.

움직임이 완전해지면 그 다음에는 느낌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인이 상태에서 아직 완전해지지 않았는데 굳이 느낌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