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구·울주선원 수행법문

수행법문-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2 (20180608.대구)

담마마-마까 2022. 6. 3. 09:00

https://youtu.be/H_iYFH5_uFk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2 (20180608.대구)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두 번째 부분입니다.

지금 수행법 설명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곳들을 중심으로 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심념처 수행하는데 심념처 수행만 하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신념처 수행하는데 신념처만 수행하도록 한다든지 이런 방법은 아닙니다. 신·수·심·법을 다같이 수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듣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저번에 나눠준 프린트물의 뒷부분입니다.

 

두 번째 시간 「수행의 시작」 하는 부분은 크게 여러분들이 할 필요성은 없습니다.

수행하기 전에 먼저 계를 자꾸 지키도록 하라 하는 부분이 주가 되고, 앉아있을 때든 걸어갈 때든 수행할 때 뭘 주안점을 두고 수행을 해야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것들이 돼있고, 또 수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장애들이 나타나는데 어떤 장애들이 있는가 하는 것들만 간추려 놓은 부분이기 때문에 읽어보면 크게 문제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늘은 그 뒤에 오늘 내준 프린트물로 가지고서 간단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행을 하는데 어떠한 수행을 하든지 이와 같은 순서로 하면 적어도 사띠는 놓치지 않는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수행한다 하면서 사띠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보면 사띠 안 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호흡을 관찰한다, 호흡이 아주 편안하고 좋거든. 그런데 본인은 분명히 호흡을 관찰하고 있는데, 사띠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주 편안하고 좋다는 것 때문에 사띠의 힘이 약해져가지고 나중에는 본인이 착각을 하게 됩니다.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데 그걸 끝까지 보는 것이 아니고,

약간 들어오는 것을 알고 약간 나가는 것을 아는데,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그냥 사띠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것들이 마음에서 일어나서 그것에 대해서 좋아하는 마음이나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남으로 인해가지고, 사실은 사띠를 하는 것들은, 대상을 알아차리는 사띠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자신은 사띠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면서 그냥 호흡관찰하는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스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사띠를, 대상을 안 알아차려도 좋다. 대상을 안 알아차려도 좋은데,

먼저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하고 자꾸 얘기를 합니다.

 

마음은 대상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하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붙잡지만 않고 그대로 놔둬버리면 실제로는 어떤 대상이 일어나든 사라지든 그것들은 금방금방 알게끔 됩니다. 쉽게 말하면 그런 마음의 상태가 먼저 되어야 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을 시작할 때 특히 몸에 대한 관찰이나 느낌에 대한 관찰을 하는 사람들은 억지로 먼저 몸이나 느낌을 관찰할려고 합니다.

명칭을 붙인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명칭을 안 붙이더라도 억지로 그 호흡이 있는 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한다든지, 그게 안 되면 의도적으로라도 빠르게 아니면 길게 하면서 호흡을 알아차릴려고 하고 대상에다가 자꾸 마음을 갖다 붙일려고 합니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틀린 것은 아닌데 초보자들이 하기에는 불합리한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금방 상기가 된다든지, 어떠한 대상을 알아차리더라도 내가 마음을 강하게 기울이지 않으면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약해져버린다든지, 이런 오류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것보다는 지금 현재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들이 우선이 돼야 됩니다.

 

지금 소리 듣고 있죠? 그럼 여러분들 마음은 어디에 가있어야 됩니까?

소리 들리는데 가있어야 되는데, 소리 들리는데 가있을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무슨 소리 할 줄 알고 여러분들이 거기다가 마음을 기울일 겁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그냥 마음이 대상이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리는 마음만 돼있으면 소리들리는 것들이 금방금방 들립니다. 그런데 '소리를 듣겠다' 하는 마음이 강해져버릴 것 같으면 소리 듣는 게 자기가 원하는 것만 듣고, 원하지 않는 것은 안 듣게 됩니다. 또는 소리 들리는 것들이 자기의 주관을 섞어서 다르게 해석을 해버릴 수가 있습니다.

 

1) 마음 알아차리기

 

그래서 마음이 먼저 '어떤 마음의 상태들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띠를 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려야 되는데 이미 마음이 그런 상태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항상 일어납니다.

그래서 처음에 수행을 시작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마음이 '지금 어떤 마음의 상태인가' 하는 것들을 먼저 자꾸 알아차려야 됩니다.

 

특히 대상이 나타나면은 그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먼저 하지 말고 '알아차릴 마음의 상태가 돼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보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대상을 알아차릴만한 마음의 상태가 돼있으면 가만히 놔두더라도 자연히 마음이 그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생각이 많으면 소리가 안 들립니다.

또는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이 강해지면은 그것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마음을 가만히 내둬버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그게 뭐냐면 「첫 번째 마음 알아차리기」 라고 적어놓은 부분입니다.

 

지금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들을 자꾸 알게 됐을 때, 미세하지만 '아, 이게 탐심이구나' '이게 진심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럼 그게 몸에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는 거고, 그것이 있을 때 사띠하는 것들이 어떤 역효과들이 있다는 것들도 본인이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사띠를 자꾸 왜곡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몸도 망가진다는 사실을 자꾸 망각을 해버리게 됩니다. 경행을 하든 좌선을 하든 일상적인 것들을 하든 듣고 보고 냄새맡고 모든 것들에 가장 먼저 우선돼야 되는 것이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수행자 질문 : 스님, 제가 얼마 전에 심한 어지럼증이 일어났었거든요.

그때 ‘어떻게 해야되나’ 하고 제 마음에게 물었어요. 그래서 119를 불러야 되나 이런 마음이 일어난 걸 보고, 지금 내가 수행중이라면 그 어지럼증을 계속 알아차리고 어지러우면서 있어야 되는 건지, 아니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119를 부른다든가 이런 것을 해야 되는지 그걸 생각했어요.

그때 마음은 편안했는데 내가 마음을 일으키는 건지, 아니면 문제를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것이 지혜인지를 몰랐어요. 그걸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님 답변 : 먼저 어쨌든 어지럼증이 지병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어지럼증이 일어났을 때는 먼저 몸을 편안하게 앉든지 눕든지 하는 것들이 우선이 돼야 되겠죠. 그렇게 하고 나서 어지럼증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걸 바로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하고 그걸 바로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그때 지금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수행자 질문 : 그때 제 마음은 ‘이렇게 하다가 죽어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님 답변 :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그것은 벗어날려고 하는 거고, 또는 마음이 어지럼증이 안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일어난다든지 할 것 같으면 밀쳐낼려고 하게 되는 거고, 그리고 어지럼증이 일어난 것들을 '이게 뭐지' 하고 알아차릴려고 할 것 같으면 움켜쥘려는 마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마음들이 안 일어나도록 먼저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우선은 지금 몸이 충격을 받을 일은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가 딱 되고 나면은, 지금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만약에 어지럼증이라고 할 것 같으면 어지럼증을 관찰하면 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마음만 편안하게 할 것 같으면 이미 어지럼증은 반 이상은 이미 날아가고 없습니다.

그렇게 대상을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마음이 왜곡된 상태에서 그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할 것 같으면 자신의 방식으로 자꾸 하게 됩니다.

 

수행자 질문 : 그럼 그것만 어지러운 상태만 알아차리면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스님 답변 : 아니죠. 그렇게 하고 나면 어지러움이 오면 어지러움이 오는 것들이 보입니다. 어지러움이 항상 똑같은 어지러움이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어지러움의 상태들도 바뀌고 강도도 바뀌고, 그리고 느낌들이 일어났으면 그 느낌들도 변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태만 바르게 돼있으면 그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그대로 보여버립니다. 그러면 어지럼증은 크게 나한테 영향을 안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자꾸 대상을 알아차리고 할 것 같으면 그 대상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벗어날려고 하는 마음이 강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대상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안 그러면 아주 느리게 어지럼증이 없어집니다.

그거는 내가 알아차려서 어지럼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어지럼증이 사라지는 형태들이기 때문에, 그 양태들을 따라가는 것뿐인 것이지 사띠가 강해지는 부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행자 질문 : 그럼 병원에 가야 된다, 안 가야 된다 하는 판단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스님 답변 : 그거는 그렇게 하고 나서, 그렇게 해도 어지럼증이 안 사라진다 할 것 같으면 그러면 내가 전화를 해가지고 병원에 가야 되는 것이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만약에 어지럼증이 사라졌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어지럼증을 어느 정도는 극복을 해내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크게 병원에 안 가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또 그런 게 나타나더라도 나는 그것을 극복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이지,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있는 그대로 자꾸 볼려는 훈련들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됐습니까? (예)

 

아마 모르긴 해도 그때 어지럼증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곡된 상태에서 그걸 알아차리기 때문에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든지 호흡이 가빠진다든지 아니면 몸에 열이 난다든지 이런 현상들이 더불어 일어나지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거는 뭐냐면 실제로는 어지럼증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어지럼증을 관찰한다는 이름하에서 내가 그것들을 밀어낼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몸에서 그런 반응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이 수행대상이긴 한데, 자신의 몸과 마음은 어떠한 경우든지 고요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편안한 상태로. 물론 거기서 어지럼증이라든지 여러 가지 장애들이 일어날 수는 있습니다.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몸이나 마음이나. 그리하더라도 그것은 또하나의 대상일 뿐인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서 몸이 호흡이 가빠진다든지, 마음이 왜곡된다든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가 마음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잘 안되는 부분들이 뭐냐면, 우리 육체적인 것들에서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면 그 마음을 알아차려서 그 마음들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을 잘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참 관찰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자신의 견해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부딪치거든요. 그러면은 자신은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고 하는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볼 거 같으면 이미 이 사람은 언성이 높아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아니래. 화를 안 냈대. 또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보여요.

 

쉽게 말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고요하게 잠재울 수 있는 것들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는 참 힘이 드는 부분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거는 해야 됩니다.

그럴 때는 그 대화하는 이런 것들을 중단하고서라도 마음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거기에 그냥 그대로 끄달려 들어가버립니다. 그래서 자꾸 자신의 의견을 계속 내세우게 되는 거고, 자신은 편안하게 하는 것처럼 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라.

 

불행하게도 그런 것들이 오히려 지위가 높다든지, 아니면 출가했다는 사람들이 더 강합니다. 일반 재가자들은 오히려 그게 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냥 받아들이지' 합니다.

그때의 재가자들의 마음의 상태와 출가자들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보면은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나 사고들이나 망상들이 일어났을 때 그것들을 먼저 잠재울려고 자꾸 노력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지질 않는 거라.

그거는 잘못된 방법이기 때문에 그거는 빨리 바꾸어야 됩니다.

그럴 때는 누군가 지적을 하더라도 말이 안 들어갑니다.

 

어쨌든 육근(六根) 중에서 오근(五根)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을 먼저 관찰할려고 하지 말고, 그때의 마음의 상태를 먼저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먼저 계속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마지막 의근(意根)에서 일어나는 것들도 그렇게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법을 분명히 압니다. 오히려 그게 나중에는 더 수월합니다.

육체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더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 상태가 완전하게 되면 좋은데 그렇게 안 돼서 자꾸 평상시 때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걸어간다든지 모든 일상 생활에서, 일상생활에서 좌선을 한다든지 뭘 듣는다든지 맛본다든지 모든 것들에 항상 그것들을 먼저 하도록 자꾸 노력을 해나가야 됩니다.

 

2) 몸 알아차리기

 

그게 1차적으로 돼나가면 자동적으로 되는 게 사실은 마음이 그렇게 되고 나면 몸이 안정이 됩니다. 몸이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마음과 마찬가지로 몸도 가벼워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럴 때 마음을 ', 몸이 어떤 상태지?' 하고 보면 참 편안한 상태가 돼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안됐을 때는 우선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게 되는 것들은 어느 정도 됐는데, 완전하게 안 됐더라도 그때는 몸이 편안한 상태를 자꾸 만들도록 해야 됩니다.

 

우 조띠까 스님 같은 경우에는 수행하기 전에 자꾸 몸이 좌선했을 경우에 몸이 닿아있는 것들을 자꾸 알아차리라고 그럽니다. 입술이 닿아있고 팔이 닿아있고 그때 이것들이 편안하고 부드러운가 하는 것들을 자꾸 알아차리도록 하라고 그럽니다. 안 되면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지속적으로 하라고 합니다. 일정부분 맞습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면은 몸도 더불어서 편안하고 고요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안 될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이 되고 나더라도 빨리 몸으로 전환시켜 줘야 됩니다.

오히려 초보자들은 마음보다는 몸이 고요해지고 편안하고 가벼워지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쉽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마음도 완전하게 착 가라앉아 있다는 걸, 그리고 대상을 금방금방 알아차릴 상태가 돼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1)번 2)번은 뭐냐면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몸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하는것들이 항상 먼저 되도록 해야 됩니다.

말을 하기 전에도 그것이 먼저 되고 나서 말을 할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되고, 듣는 것도 그게 되고 나서 들을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되고,

조금 안 들으면 어때?

그리고 조금 천천히 하면 어때?

지금은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 먼저 하고 나서 하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이게 나중에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되고 나면 즉각적으로 바로 몸이 안정이 되는 것들이 바로 느껴집니다. 그러면 대상을 바로 알아차리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그게 1)번과 2)번 부분입니다.

 

3) 가장 두드러진 대상 (주대상)을 알아차리기

 

그다음에 세 번째, 그렇게 되고 나면 마음은 죽을 때까지 대상 없이 마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상이 일어난 것들이 분명하게 보여집니다. 그런데 실제로 1)번 2)번이 어느 정도 잘 갖춰진 상태면 대상이 굉장히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나는 호흡을 알아차릴려고 하는데도 호흡 뿐아니라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대상들이 굉장히 많이 느껴집니다. 오히려 산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상이 많다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런데 아직 마음의 메카니즘을 모르기 때문에, 찰나 간에는 하나의 마음이 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들이 더불어 다 보여집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 동시에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대상은 굉장히 많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빨리 캐치해야 되는 것이 뭐냐면 가장 강한 대상이 뭔가?

지금 가장 강하게 내가 이 대상을 일정한 수준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 뭔가 하는 것들을 알아야됩니다.

걸어갈 때는 당연히 걷는 것들을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또 이렇게 법문 들을 때는 법문 듣는 것이 주 대상이 돼야 되는 것이지 보는 것들이 주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빨리 주대상이 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1)번 2)번이 되고 나면 가장 큰 대상이 호흡인 걸 분명히 압니다.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게 아주 스마트하게 보여집니다.

그 주대상을 분명하게 찾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됩니다.

내가 마음을 내어서 주대상으로 다가가서 그걸 알려고 하지 말고 마음이 스스로 주대상을 찾는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대상들이 여러 개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강한 것을 따라서 움직이게 돼있습니다. 그러면은 가만히 놔두면 마음이 그 주대상으로 마음이 가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그 주대상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다른 것들이 일정 수준에서 방해가 된다고 할 것 같으면 다른 것들은 다 닫아버려야 됩니다. 인위적으로. 주대상이 잘 보일 때는!

그래서 법문을 들을 때 수행 잘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스님들은 대부분 보면 그냥 눈감고 있습니다. 눈감고 그냥 그 소리만 듣습니다. 그 소리가 법문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그거하고는 관계없이 자신은 듣는 것들에 집중합니다.

 

실제적으로 다른 크게 일어나는 주대상 외에 다른 대상들이 있지만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가가지고 '아, 이것도 일어났네' '저것도 일어났네' 하고 알아차리다 보면 굉장히 산만해져버립니다. 그리고 집중하는 힘들도 커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것들을 그냥 일정부분은 주대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보일 때까지는 차단시켜라 하고 얘기합니다.

실제적으로 그러한 부차적인 것들을 차단시켜도 큰 문제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내가 여기서 저기까지 경행을 하겠다.

예를 들면은 크게 장애되는 것이 없단 말입니다. 걷고 있는 움직임을 주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럼 벽에 부딪치는 것은 닫아야 됩니다. 그러면 다 닫고 나면 그냥 경행하면서 가서 발이 앞에 가서 벽에 탁 부딪친다든지 이마가 살짝 벽에 닿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그 대상을 닫아놨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탁 부딪쳤을 때는 그게 오히려 큰 대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부딪쳤다는 것을 분명하게 탁 압니다.

그걸 모를 경우에는 부딪쳐도 어디 손톱이나 발톱이 깨지도록 탁 가서 부딪치는 거라.

 

그런데 마음이 예리하게 깨어있을 때는 부딪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은 그대로 탁 멈춥니다. 살짝 부딪친다 해도 탁 멈출 수가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지금 현재 대상에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는 이익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다른 대상들을 다 닫고 있어도.

 

그래서 1)번 2번 3)번은 뭐냐면 수행에서 어떤 수행을 하든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몸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주대상을 분명하게 자꾸 알아차리는 것, 이것들은 끊임없이 반복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4) 대상에서 움직임과 느낌을 알아차리기

 

그러고 나서 밑에 것들은 내가 지금 사띠의 상태나 아니면 무엇들을 알아차리느냐에 따라서 알아차리는 방법들이 달라집니다. 빨리 걷고 있으면 움직이는 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할 것이고, 사띠하는 힘이 아직 떨어질 것 같으면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느낌보다는 움직임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그러니까 뭘 알아차리느냐 하는 것은 그뒤에 부차적인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느낌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내가 꼭 느낌을 알아차려야 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라. 움직임으로 알아차리면 어때서? 나는 오히려 그것이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오히려 더 편안하고 고요해지고 가벼워진 상태를 유지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냥 그대로 하면 돼요.

명칭 안 붙이고 하고 있으면 더 편안하다 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하면 돼요.

 

그래서 1)번 2)번 3)번은 수행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되는 부분이고,

 

그다음에 4)번이 뭐냐면 그러한 대상에서 뭘 알아차릴 것이냐 하는 것은 본인이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상에서 뭘 알아차릴 것이냐 하는 것은 본인이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움직임이든 느낌이든 아니면 그냥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든, 아니면 열반의 상태든 그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지금의 상태에 따라서!

해탈에 이른 분들은 움직임이나 느낌보다는 지금 해탈의 상태에 있다는 것들이 알아차릴 대상이 됩니다.

아주 천천히 하는 습관이 들어있으면 움직임보다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을 할 때는 또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훨신 더 낫습니다.

 

어떠한 상태 자신의 사띠의 능력이나 집중력에 따라서 그것은 자꾸 바뀌어져야 됩니다.

또는 자신의 몸이 수행하는데 지금 몸을 유지하고 하는 상태가 안 되어 있을 것 같으면 즉시 전환을 합니다. 느낌이 변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있다가도 아,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데 힘이 많이 딸리고 있다, 몸으로 인해가지고. 그럼 즉시 중단을 합니다. 중단하고 느낌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들이쉬고 하는 것만 알아차려줍니다. 그렇게 해서 몸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줍니다.

회복시켜 주고 나서 다시 또 느낌으로 돌아가는 거고.

 

그것들을 자기 자신이 자유자재로 응용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일정부분은 지속적으로 반복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꼭 자신이 내가 심념처이기 때문에 심념처의 방법으로 하겠다, 아니면 수념처이기 때문에 수념처의 방법으로 하겠다 하고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나중에는 결국에는 보면 그것들이 다 아우러지게 돼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그것들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들이 반드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기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그렇게 해가지고 수행이 잘 되면 좋은데, 어떠한 경우든지 장애는 일어나게 돼있습니다. 장애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수행을 잘하면 장애가 있는지조차도 모릅니다.

수행이 잘되니까 장애가 일어나는 겁니다.

', 내가 이마만큼 그래도 향상됐네'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앉으면 그냥 졸린다, 앉으면 망상이 생긴다, 내가 수행할라고 하니까 그게 가능한 겁니다. 평상시 때는 잘려고 해도 잠이 안 옵니다. 알아차림 없이 있으면.

 

그러니까 본인에게 먼저 '아, 그래도 수행에 진척이 있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만이 장애가 일어났을 때 그 장애를 장애로써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 이게 왜 일어났어?'하고 마음을 먹으면 이 첫 번째 두 번째가 아예 안 되버리는 거라. 그러면 다시 첫 번째 두 번째로 돌아가야 됩니다.

'어,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지?' '몸이 지금 편안한지' 하는 걸 먼저 봐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장애들을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그렇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부분 장애들은 '아, 내가 수행 잘해서 일어났다'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아, 이게 또 왜 일어났어?' 하면서 자꾸 그것들 하고 싸울려고 하게 됩니다. 잠이 오면 잠 안 잘려고 부단하게 노력을 하게 되고.

 

대상하고 싸워가지고는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는 이겼을지 몰라도 좀 있으면 또 나타납니다. 계속 그거하고 싸우면서 시간 다 보내는 거보다는 그것보다는 차라리 대상을 대상으로써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크게 장애가 안 되면 어떨 때는 '내가 니보다 강하다' 하고 마음을 먹으면 무시해버리기도 합니다. 무시해버리고 그냥 다른 대상을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하시 같은 경우에는 장애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강도나?" 하고 자꾸 물어보는 이유가 뭐냐면, 장애가 크게 수행에 영향을 안 받는다 할 것 같으면 냅둬버리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무시해버리라는 겁니다. "그냥 무시해버리고 그냥 호흡만 해라." 또 다른데 심념처 하는데 가면 "그것도 대상이니까 대상으로 봐라" 하는데, 안 보이는 걸 어떡 할 거라? 안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 대상을 장애로써 자꾸 인식하기 때문에 대상으로 안 보여지게 됩니다.

대상으로 보일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되는데, 호흡도 대상이듯이 장애도 대상입니다. 호흡은 수행을 잘하든 못하든 일어나는 거지만 장애는 수행이 잘 될 때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먼저 '아, 그래도 참 잘했다' 하고 용기를 줬을 때 마음은 조금 더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편해집니다.

그 장애도 호흡과 마찬가지로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대상이다 하고 마음을 딱 먹게 될 때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수월하게 됩니다.

장애는 실제적으로는 큰 문제가 안 됩니다.

대부분 일어나는 다섯 가지 장애 얘기를 하지만, '수행 잘하면 장애가 안 일어난다', 그건 순 거짓말입니다. 수행 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도 그냥 하나의 대상으로 보면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대상이 자주 바뀝니다.

그 대상이 장애라는 대상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그렇게 자꾸 마음을 먹고 알아차리도록 해서 그것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안 미칠 때가 될 거 같으면, 다시 현재 지금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을 보고 나면은, 주대상에 탁 돌아옵니다. 호흡이면 호흡, 걸어가는 거 하고 있으면 걸어가는 거, '어, 내가 걷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걷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6) 수행 중 가끔 마음과 몸의 자세를 알아차리기

 

그다음에 여섯 번째가 그리하더라도 몸과 마음은 언제든지 좋고 싫어하는 것에 자꾸 빠집니다.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생뿐 아니라 계속 살아오면서 윤회하면서 그것이 습관되었기 때문에 좋고 싫어하는 것에 계속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자꾸 몸과 마음을 살펴봐야 됩니다.

 

몸의 자세가 어떻는지, 대부분 걸을 때 보면 자세가 구부정하게 돼있다든지, 아니면 게으름 부릴 수 있는 몸의 자세가 돼있다든지, 그러면 '어, 그렇게 돼있네' 하고 천천히 다시 또 펴면 됩니다.

또 그럴 때 마음을 보면 마음이 뭔가를 밀어낼려고 한다든지 붙잡을려는 마음, 수행을 강하게 할려는 마음이 있다든지, 그런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럼 그것들을 또 놓아버리려고, 놓는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수행하는 중간중간에 몸과 마음에 대해서 자꾸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중간중간에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수행이 잘 될 때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될 때는! 금방금방 대상이 일어났으면 사라지고 할 거 같으면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될 때는 예를 들면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는데 호흡이 한시간 내내 편안하고 고요하고 하는데, 내가 사띠를 분명히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그대로 보이기는 하는데, 이게 변하는 것은 모르겠거든.

그럼 그럴 때는 다시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갖다가 체크해야 됩니다.

마음이 지금 게으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몸의 상태가 게으름 부릴 수 있는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걸 다시 교정을 하고 나서 호흡을 알아차리면은 그전에 알아차리던 호흡하고 분명하게 다른 것들을 알게 됩니다.

 

이게 어떤 수행을 하든지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이 항상 명심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좌선수행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다음에 또 연결되는 것 경행수행법에 대해서 일상적인 수행법에 대해서 얘기하게 되는데 그것도 꼭 마찬가집니다. 그거는 이 방법이 중심이 되어서 좌선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 거고, 경행은 이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하고 얘기가 되는 부분입니다.

이거는 기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자꾸 하도록 하고,

그리고 수행은 오력의 균형이 맞아야 됩니다. 다섯 가지가 균형이 맞을 때 수행의 향상 폭은 훨씬 큽니다.

 

대부분 수행처에서는 예비수행이라고 해서 4가지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4가지 중에 자기에게 맞는 것들을 택해서 하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탐심이 많은 사람, 아니면 신심이 강한 사람, 아니면 뭔가를 알려고 하는 지식욕이 강한 사람, 자아의식이 강한 사람 이런 것에 따라서, 안 그러면 증오하는 마음이 남을 미워하고 꼬아서 얘기하는 버릇이 많은 사람, 이런 사람들에 따라서 수행하는 법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합니다.

이 4가지를 다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고, 본인에게 맞는 것들을 택해서 하도록 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예비수행은 4가지를 간추려 놨습니다.

지금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것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딱 한 문장만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부정함에 대한 것」도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이렇게 관찰하는 것보다는 차리리 밑에 방법

이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들이 흘러나온다.

눈에서는 눈꼽이, 귀에서는 귀지가,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침이나 가래를 한꺼번에 토해낸다.

몸에서는 끊임없이 땀과 때를 배설한다.

이렇듯 이 몸뚱이는 더럽고 악취를 풍기며 온갖 오물로 가득차 있다.

이걸 회상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좋더라는 거지.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것들」

나의 삶은 불확실하다.

죽음만이 확실하다.

나는 확실히 죽을 것이다.

나의 목숨은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이 짧은 4개의 게송만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경각심은 훨씬 더 크게 일어나더라는 거라.

 

그래서 그렇게 간추려 놨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어느 정도 예비수행으로써 하고 나서, 본수행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들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보통 수행을 시작하면 예비수행을 하기 전에 1)번부터 6)번까지를 쭉 해보는 것을 5분 정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1) 마음 알아차리기

2) 몸 알아차리기

3)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기

4) 대상에서 움직임과 느낌을 알아차리기

5)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기

6) 수행 중 가끔 마음과 몸의 자세를 알아차리기

 

그러고 나서 다시 간단하게 다시 한 2~3분 아니면 5분 정도는 예비수행을 잠깐 하고,

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 몸의 상태나 마음의 상태를 보면 아주 고요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주대상, 앉아있으면 호흡이면 호흡이든, 걸어갈 때는 경행가는 발바닥이든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면 아주 잘 보여집니다.

그런 방법들을 동원을 해서 수행을 하면 될 것입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