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구·울주선원 수행법문

수행법문- 좌선 구체적인 실천방법 (20180706.대구)

담마마-마까 2022. 6. 3. 09:10

https://youtu.be/vTok06OyKGA

* 좌선 구체적인 실천방법 (20180706.대구)

 

오늘은 「초급 과정 - 좌선」 부분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을 때 알아차리기가 쉬운 게 뭐가 있을까? 몸이 움직이지 않고 눈도 감았고, 이런 선방에 있으니까 소리도 들리지 않고, 냄새도 맡지 않고, 그러면 대부분 생각을 하기 쉬운 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뭔가를 알아차릴려고 하는 것, 화두면 화두, 아니면 수를 센다든지 해서 하나 둘 셋 넷 한다든지 이렇게 할 겁니다. 그게 알아차림이 조금 쉬울 수가 있습니다. 간단하니까, 그렇죠? 만약에 "이뭣고?" 한다, "이뭣고?" 그거 알아차리는 것, 쉬운 방법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경험을 해봐서 알겠지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참 힘이 듭니다. 마음보다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뭔가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몸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수월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그게 사마타 수행이든 위빳사나 수행이든 이렇게 보면 됩니다.

몸이라고 하는 말뚝을 딱 박아놔놓고, 그리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몸이라고 하는 말뚝에다가 칭칭칭칭 감아가지고 딱 붙여놓는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그럼 그 붙여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띠(sati)라고 하는 알아차림입니다. 마음이 항상 대상에 있도록 하는 거라. 그게 만약 몸을 대상으로 할 것 같으면 몸이 말뚝이 되는 거고, 마음이 대상일 거 같으면 마음이 대상이 되는 거고 하는 그 차이가 있는 것이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이 대상에다가 탁 갖다 붙이는데 이 대상이라고 하는 게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대상으로 할 거 같으면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마타 수행을 하든 위빳사나 수행을 하든 처음에 초보자들한테는 그 말뚝의 역할을 하는 것을 "몸으로 하는 것이 더 훨씬 수월하다" 하고 얘기합니다.

 

몸이라고 하는 데다가 마음을 갖다 붙이는데 그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까, 소리가 지금 들리지도 않습니다.

보통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로 하는데,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나겠죠? 망상도 하겠죠? 그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건 마음의 영역이고, 또 뭐가 일어나질까?

여러분들이 숨을 안 쉬면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면 숨은 아무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숨은 들이쉬고 내쉬고 하고 있습니다.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뭘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걸 알 수 있습니까?

콧구멍을 통해서 숨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안다든지, 아니면 가슴을 통해서 가슴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을 안다든지,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안다든지, 아니면 이 피부 같은데 따끔따끔따끔하는 느낌들이 있으면 '아, 피부도 숨을 쉬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안다든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호흡은 끊임없이 여러분들이 하게끔 되어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가지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가지고 호흡마저도 중단하는 경우는 멸진정에 들 때나, 아니면 죽은 자의 몸이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든지 호흡은 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럼 가장 쉬운 것이 그 호흡이 주대상이 되어야 됩니다.

? 호흡은 실재하는 것들이니까.

 

부처님 수행법은 어떠한 경우든지 개념을 쓰지 않습니다.

수를 하나 둘 셋 넷 센다, 그건 개념입니다. 실제 수가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뭣고 라고 하는 것을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그것도 개념이 됩니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부처님의 수행법에는 속하지 않는 형태라는 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개념을 써서 수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지만 호흡을 하고 있으면 그 호흡이 주 대상이 될 수가 있는 거고.

 

또 여러분들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럼 생각이 대상이 될 수가 있는 거고, 또 앉아있으니까 여러 가지 가려움들도 일어나지고 아니면 몸에서는 고통스러운 느낌들도 있는 거고, 그런 것도 실재하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것도 대상이 될 수 있는 거라.

그리고 앉아있으니까 공부하기 싫으니까 졸린단 말이라. 그럼 그 졸음도 실재하는 현상이라는 거라. 그럼 졸음이 왔을 때의 느낌이 어떤 건지, 졸음이 왔을 때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 건지, 이런 것들도 수행의 대상이 될 수가 있는 거라.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해가지고 대상이 없는 것이 아니고, 대상이 참으로 많습니다, 실제적으로는.

이거 전체가 대상이 되는데, 그 대상에다가 사띠라는 끈을 연결해가지고 마음을 거기다가 착 갖다 붙이는 거라.

이 간격을 얼마만큼 줄이느냐 하는 것이 수행을 잘하고 못하고 하는 차이뿐입니다.

 

딱 완전하게 갖다 붙여놓으면 두개가 떨어지지 않고 한몸 같이 돼버립니다. 하나 같이 돼버립니다.

그런데 이 끈이 약하다든지 느슨해져버릴 것 같으면 이게 말뚝에 정확하게 마음을 갖다 붙이지 못하니까 들뜨는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더 풀려버릴 것 같으면 아예 말뚝하고는 관계없는 곳에 마음이 가있게 되는 거라.

그래서 앉아있을 때 대상이 없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버려야 된다는 거라. 실재하는 대상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저번 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수행을 할 때의 원칙」에 대한 것을 쭉 설명을 했습니다.

"우선 몸과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라" 하는 얘기를 먼저 했습니다.

몸에서도 긴장하는 것이 없도록 천천히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마음도 지금 내가 뭔가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끔 가볍게 돼있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로써 있도록,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대상을 먼저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우선 몸과 마음이 그런 상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대상을 가볍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마음이 뭘 할려고 하는지만 볼 것 같으면,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마음이 생겨났으면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마음이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어디에 가있는가"만 볼 것 같으면 그 대상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호흡에 가있으면 호흡을 알아차리면 되는 거고, 보는데 가있으면 보는 걸 알아차리면 되는 거고, 소리가 들릴 거 같으면 마음은 소리에 가있습니다. 소리들리는데 가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하고 있는 걸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서, 그 알아차리는 것이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호흡도 들이쉬고 나면 반드시 내쉬어야 되는 거고 소리들리는 것도 들렸으면 반드시 안 들리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는 거라. 끊어진다는 거라. 보는 것도 항상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봤다가 대상이 사라지든지 아니면 내가 마음이 바뀌어버릴 것 같으면 그 대상은 안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그 대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되도록 만들고 나서, 그다음에는 대상에 대해서 마음을 거기다 착 붙여주는 훈련들을 합니다.

그 방법의 차이가 각각의 수행처에서는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순륜 스님 같은 경우에는 호흡을 강하게 하도록 합니다, 일부러. 마음을 거기다가 호흡에다가 붙여주기 위해서 아주 강하게 빠르게 하도록 합니다.

또 어떤 데서는 명칭을 붙여가지고 들이쉬면 '일어남'이라고 명칭을 붙이고, 내쉬면 '사라짐'이라고 명칭을 붙이고, 명칭을 가지고 거기다가 강하게 붙일려고 한다든지 하는 거고, 그래서 각각의 수행처들은 그렇게 방법들을 정해놓은 겁니다.

 

그 대상에다가 마음이 탁 달라붙어가지고 오래도록 그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거라.

안 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되는 거라.

다시 처음부터 아, 몸이 편안한지, 마음이 고요한지 먼저 알아차리고, 마음이 지금 뭘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나서, 가볍게 돼있는 걸 알고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고.

자꾸 반복해서 왔다갔다 왔다갔다 해야 되는 거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수행이 잘돼고 있다고 해가지고 계속 잘돼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또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장애물이 나타나기도 할 것 같으면 이제는 그것이 대상이 돼버린다는 거라.

고통스러운 것이 있으면 고통이 대상이 돼버리는 것이지, 호흡이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망상을 하고 있으면 망상이 대상이 되는 것이지 호흡이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그 장애들을 대상으로써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자꾸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죽은 모습 보면 피하고 싶죠? 장의사는 어떨 거 같애요? 피하는 것이 아니고 좋아합니다. 자주 그 대상을 접하게 될 것 같으면 밀어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장애를 자주 만날 것 같으면 그 장애를 갖다가 밀어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장애를 자꾸 하나의 대상으로써 인식하게 됩니다.

사실은 장애가 일어나면은 장애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걸 대상으로 해가지고 실패를 하더라도 그거는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 장애는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장애를 대하는 마음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들이라는 거라.

장애를 대하는 것이 그냥 대상으로써만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그 장애라고 하는 대상은 아주 재미있는 대상이 됩니다. 오히려 호흡은 단순하지만 그런 장애들은 아주 다이나믹 합니다. 아주 재미있게 바뀌어나가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럼 오히려 더 재미가 있어요. 그러면 그 대상이 부처님의 진리를 알아차리는데 더 효과적인 역할들을 하고 있다는 거라.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장애가 일어났는데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면, 그 장애를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 아니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 것들을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그게 주대상이 되어버리는 상태가 되는 거라.

주대상이 바뀌었는데도 바뀌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게 아니고 장애를 알아차릴려고 할 것 같으면 그거는 수행이 뒤죽박죽이 돼버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다시 또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그런 것이 없으면 다시 또 장애를 알아차리든지, 장애들이 사라지고 없으면 다시 호흡이든지 하는 것들을 주대상으로써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그러고 나서 수행이 잘 돼나가고 있으면 본인이 ', 내가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가끔씩은 확인을 해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관습적으로 그냥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수행을 잘하고 있지 않는데.

예를 들면 고요한 상태에서 한 30분 이렇게 했다, 본인은 수행 잘하고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대상을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대상이 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본인은 좋은 거라. 편안하고 고요하고 좋거든. 좋아하고 있는 것에 끄달려 들어가 있는 상태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본인은 수행 잘하고 있다고 해가지고 '아, 참 수행 잘했다' 착각을 하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자꾸 그것들을 확인을 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대상이 분명한 것인지, 그 대상이 변하는 것이 지금 보이고 있는 것인지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대상이 시작됐으면 끝나는 것이 있고 멈추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아, 내가 수행을 잘하고 있구나' 대상을 분명하게 지금 보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지, 소멸되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수행을 잘못하고 있는 것들이라. 어떠한 경우든지 사라지는 것들이 보이고 새로운 것들이 일어나는 것이 보여야 되는 거라.

 

그게 안될 때는 각각의 수행처에서는 테크닉들을 동원을 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데 중간에다가 '멈춤'을 넣어라.

'일어나고' '멈추고' '사라지고' '멈추고'

그렇지 않으면 느낌이 일어났으면, 일어나고 하고 나서 몸의 느낌 닿아있는 부분을 보고, 또 호흡이 사라질 때 사라지고 나서 끝에 닿아있는 다른 부분을 보고, 이런 식으로 테크닉들을 자꾸 동원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면 그것은 대상은 분명하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인데 지금 본인은 그걸 볼려고 하지 않고 조용하고 고요한 상태에 머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 중간중간에 몸의 상태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다시 잠깐이라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게 쉽게 말하면 저번 시간에 얘기했던 수행의 전체적인 흐름입니다.

좌선수행에서도 꼭 마찬가지고, 경행 수행에서도 꼭 마찬가지고, 일상에서 뭔가를 알아차리는 것도 꼭 마찬가지 방법입니다.

 

1. 좌선

 

여기에 적어놓은 게 좌선을 시작할 때의 부분부터 보겠습니다.

1) 바른 자세로 앉습니다. 하고 돼있습니다.

 

자세가 여러분들 수행대상이 됩니까, 안 됩니까?

(수행자 대답 : 자기가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를 하고 있어도 그것은 관계없잖아. 어떤 자세를 하고 있어도 그것을 볼 수가 있잖아. 의자에 앉아있든 아니면 다리를 쩍 벌리고 있든, 그게 뭔 관계가 있어요? 남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결가부좌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꼭 굳이 그럴 필요성은 없다는 거라. 본인이 결가부좌가 가능하고 그걸 오래도록 유지할 것 같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을 거 같으면 편하게 앉으면 됩니다.

 

자세는 일단 어떠한 경우든지 모양과 형태이기 때문에 수행의 대상은 되지 못합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가끔 돌아볼 수 있는 상태가 되고, 그 자세로 인해가지고 일어나는 현상들은 자세하고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현상이 대상이 되는 것이지 자세가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착각을 해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내가 지금 수행대상으로 삼아야되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지, 모양이나 형태가 대상이 돼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개념이 대상이 될 수가 없듯이 모양이나 형태도 여러분들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단지 자세는 호흡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세, 어떻게 하니까 호흡이 자연스럽게 되는지를 판단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배를 축 가라앉히면 호흡이 자연스럽게 된다 할 것 같으면 그렇게 앉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허리를 릴렉스하게 쭉 펴주는 것이 호흡이 자연스럽게 된다 할 것 같으면 그렇게 앉아야 되는 겁니다.

사실은 자세는 특별하게 정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처음에는 평발자세로 앉았다가 반가부좌가 되고 결가부좌가 되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많이 앉는 훈련이 돼가지고 몸이 그렇게 길들여져 가는 것이지, 결가부좌 했다고 해가지고 호흡이 자연스럽게 되냐면 꼭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호흡이 가장 자연스럽게 될 수 있는 자세를 자신이 빨리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세가 불안정하면 쉽게 잠이나 망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편하게 그냥 의자에 앉아있는다든지 아니면 다리를 그냥 편안하게 양반다리로 앉아가지고 수행을 할 것 같으면 수행은 되긴 되는데 금방 몸이 졸음에 떨어진다든지 망상이 일어나기 쉬워지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노력하는 힘이 강할 것 같으면 그 자세도 관계없습니다. 본인이 노력하는 힘이 아직은 많이 약하다 할 것 같으면 조금은 자세를 잘 정돈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삼각점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엉덩이가 분명하게 땅에 닿아있고 양쪽 무릎이 바닥에 닿도록 해서 삼각점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몸이 안정돼서 오래도록 유지하게 해주는 자세입니다.

되도록이면 그게 평발자세가 됐든 가부좌자세가 됐든 관계없이 무릎 바깥쪽이 자꾸 땅에 닿는 훈련들을 자꾸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앉아있으면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양쪽 무릎을 자꾸 밑으로 내리는 훈련들을 합니다. 그게 자세가 안정되게 하는 겁니다, 오래도록 좌선을 하기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바른 자세로 앉는 훈련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대신에 수행은 두 가지 대상을 한번에 알아차릴 수가 없죠?

그럼 안·····의 중에 나머지는 전부 닫는 훈련들을 해야 되는 거라.

처음에 안될 때는 귀에 솜이라도 막고, 코에 솜이라도 막고, 눈도 감고, 냄새나 소리나 보는 것들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눈에 힘이 들어가도록 하면 안 되겠죠? 그래서 살그머니 눈을 닫는다든지, 귀도 솜을 막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소리를 안 들을려고 마음을 자꾸 대상에 가있도록 할려고 한다든지. 그렇게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대상에 가있도록 하는 훈련들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은 자꾸 소리나 귀나 눈으로 자꾸 가게 돼있다는 거라.

 

마음은 빨리 다른데로 이동을 할려고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하나의 대상에 지속적으로 계속하는 훈련들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른 자세라고 하는 것은 대상에 오래도록 머물도록 하고 오래도록 수행을 하기 위한 도구이듯이, 안·이·비·설·신·의도 꼭 그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본인이 생각할 때 자꾸 마음이 다른 데로 벗어나고 또 대상들이 장애들이 많이 일어나고 할 것 같으면 강제적으로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럴 때는 사마타 수행을 좀 한다든지 해가지고, 그냥 다 무시해버리고 소리가 들리고 눈에 보이고 하더라도 다 무시해버리고, 코끝에서 숨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만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알아차린다든지, 그래서 하나의 대상에 오래도록 머물려고 하는 훈련들을 중간중간에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몸도 안정이 돼있듯이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대상도 지속적으로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게 첫 번째 1) 바른 자세로 앉는다 하는 부분입니다.

 

2)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게 되고 나면 자세가 안정되고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상태가 되고 나면 편안합니다.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합니다.

그때의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래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리라 그럽니다.

현재 지금 마음이 어디에 가있는지, 호흡에 가있는지 아니면 다리에 가있는지 아니면 내가 수행할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건지.

마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모를 것 같으면 대상을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어, 마음이 지금 호흡에 가있네' 그렇게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어, 내가 수행을 강하게 할려고 하고 있네' '욕심이 있네' 할 것 같으면 욕심을 버릴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거기 가있네' 해가지고 그걸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호흡을 알아차릴려고 하고 있는데 마음이 눈에 가있을 거 같으면 아니면 귀에 가있을것 같으면 그 호흡을 알아차릴 수가 없는 거라. '거기 가있네' 할 것 같으면 다시 또 '돌아와야지' 하고 마음을 내고 호흡으로 돌아오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볍게 '마음이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를 알고 '마음이 여기에 있네'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 마음은 끊임없이 대상을 찾아 움직일려고 합니다.

그때 그 대상이 내가 수행에 적합한 대상인지 아닌지를 본인이 판단을 해야 됩니다.

수행에 적합하지 않는 대상에 가있을 거 같으면 '어, 거기 가있으면 안되지' 하고 다시 돌려야 되는 거라. 그게 지금 현재의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릴 때 가능한 것들이라.

 

대부분 보면 심념처에서 이 방법들을 많이 동원을 합니다.

지금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 탐심이 있는 것인지, 진심이 있는 것인지, 어리석고 나태한 마음이 있는지를 자꾸 알아차리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어쨌든 탐진치가 있는 마음에서는 주대상인 호흡을 알아차린다? 그거 바르게 알아차릴 수가 없는 거라.

그럼 탐··치가 없는 상태로 만들고 나서 호흡으로 돌아와야 되는 거라.

그리고 본인이 지금 마음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 같으면 그것은 주대상에 가더라도 그냥 오토매틱화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거라.

 

그렇게 해서 마음을 현재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면 그다음부터는 몸을 직접 알아차려집니다.

 

3) 몸을 직접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어쨌든 지금 좌선에서는 몸에다가 마음을 탁 갖다 붙여야됩니다.

그러면 지금 몸의 자세를 가지고, 몸을 직접 알아차리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눈꺼풀부터 해가지고 입술, , 엉덩이 보통 크게 4부분으로 닿아있습니다.

눈꺼풀 한번 닫아보실래요. 눈꺼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눈꺼풀이 닿아있기 때문에 아는 것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눈꺼풀이 닿아있다는 것을 압니다.

눈꺼풀이 닿아있을 때 그 느낌들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겁니다.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으로 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떨리는 것으로서 알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눈을 닫고 있는데 뭔가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각각 다를 거라.

 

느낌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느낌은 실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주관적인 것들입니다.

그럼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 그럴 것 같으면 '따뜻함이 있네' 해가지고 따뜻함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아니면 '떨림이 있네' 하면서 떨림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 따뜻함이 가만히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에서 따뜻함을 볼 것 같으면 그 따뜻함도 강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떨리는 것도 강도가 달라지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변하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떨림이 계속 있는 것이 아니고 떨림이 멈추고 그냥 따뜻함으로 바뀌기도 하고, 따뜻함이 다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달라지면 그전에 따뜻함이나 떨림이라고 알아차렸던 것들을 빨리 가벼움이라든지 아니면 무거움이라든지 이런 것으로 바꾸어서 알아차릴려고 해야됩니다.

그래서 그 느낌도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볼려고 해야 됩니다.

눈꺼풀 하나도 그와 같고 입술도 마찬가지고, 손에 닿아있는 것도 느낌도 마찬가지고, 엉덩이도 마찬가지고, 각각의 것에는 각각에 맞는 느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걸 차례대로 보면 눈꺼풀부터 해가지고 '어, 떨림이 있구나', '어, 떨림의 강도가 달라지네', '어, 떨림이 가벼운 것으로 바뀌었네', 이렇게 분명하게 알고.

다시 입술로 넘어가고, 입술에서도 '아, 입술이 축축한 것이 있네', 아니면 '따뜻하네', 아니면 '떨림이 있네'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게 다시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그다음에 손에서도 똑 마찬가지라. '어, 손에서 뭔가 띠띠띠띠 하는 느낌이 있네' 아니면 '손에서 뭔가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은 느낌이 있네', 아니면 '손에서 뭔가 드르르 떨리는 진동 같은 것들이 느껴지네' 그리고 '그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네' 하는 것들도 알게 되고.

엉덩이도 마찬가집니다. 엉덩이도 '단단한 것들이 느껴지네', 아니면 '무겁네' '쑤시네' '떨리네' 하는 것들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거라.

 

몸의 느낌을 이렇게 알아차리면, 왜 이렇게 아느냐면 몸에다가 마음을 딱 갖다 붙이기 위한 훈련들입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대상에 자꾸 알아차리려고 할 것 같으면, 호흡을 알아차릴 것 같으면 마음은 금방 벗어나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꾸 훈련들을 하다 보면 대상이 항상하지 않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거라. 또 실재하는 대상에다가 마음을 갖다 둘 수가 있는 거라.

 

그래서 처음에 수행할 때는 지금 현재 몸의 상태에서 몸의 느낌들을 차례대로 이렇게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4) 현재를 알아차립니다.

 

그다음에는 지금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주대상인 호흡으로 갔다, 이때 명칭을 붙일 사람은 명칭이 필요한 겁니다. 그전에는 명칭이 필요 없습니다.

인제는 대상을 오래도록,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오래도록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 겁니다.

그럴 때는 인제는 주대상에 갔다, 호흡이다, 그러면 숨을 들이쉴 때 '일어남'하고 알아차리고, 그래야 이 일어나는 명칭을 배가 불러오는 시작부터 해서 마지막 불러올 때까지 딱 할 수가 있는 거라.

명칭과 실재하는 것들이 딱 일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에 선행 동작들이 없을 거 같으면 대부분은 이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렇게 동원을 하더라도 아직 일치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본인이 확인을할려고 할 것 같으면 "1분 동안에 호흡을 몇번 하고 있는가를 자꾸 체크하라" 그럽니다, 스승들은.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이걸 하나로 쳤을 때 1분 동안에 몇번 하고 있는지? 어떨 때는 16번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19번 하기도 하고. 그럼 19번 할 때의 마음의 상태는 한번씩 호흡이 짧아져있는 다른 상태들이 있습니다.

 

호흡이 13번 14번 할 거 같으면 내가 의도적으로 호흡에다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명칭을 붙일려고 하기 때문에 호흡이 느려져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럼 그 상태가 계속 될 거 같으면, 호흡이 느려져있는 상태에 명칭을 그대로 붙일 거 같으면 나중에는 상기가 계속 일어나버립니다.

호흡이 빨라져있는 상태에서 명칭을 그대로 붙일 거 같으면 마음이 계속 들떠가지고 현상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장애들이. 수행하는 것이 싫어져버리는 거라.

 

그 상태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 정확하게 호흡의 상태에 명칭을 붙이고 있는지 없는지를 호흡을 본인이 자꾸 체크를 해야 됩니다. 1분 동안에 몇번 하고 있는지를 체크를 해가지고 "아, 내가 지금 이렇게 호흡하는 것이 가장 상기도 안 일어나고, 들떠서 싫어하는 마음이 안 일어나기도 하고, 붙잡을려고 하는 마음도 없이 편안하게 호흡한다" 하는 것을 본인이 자꾸 체크해가지고 그 상태를 자꾸 유지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명칭은 정확하게 거기에 딱 길이에 맞게끔 됩니다.

그래서 현재를 자꾸 알아차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5) 몸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그다음에 몸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몸의 호흡을 알아차릴 수 없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호흡을 강하게 해도 됩니다. 또 의도적으로 손을 배나 아니면 코에다 대고 해도 됩니다.

자신이 그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앉아있을 때는 배에다가 살그머니 손을 대고 있으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명칭을 붙이지 말고, '아,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먼저 인식을 해야 됩니다. 마음으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손을 뗐을 때 다시 호흡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 것을 알 거 같으면 그때사 명칭을 붙여가지고 '일어남' '사라짐' 하고 알아차리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수행이 어느 정도 순조롭게 되면 반드시 장애는 일어납니다.

 

6)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알아차립니다.

 

그게 19페이지에 수행중 나타나는 장애를 알아차린다. 하는 부분입니다.

장애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이때까지는 호흡이 주대상이었다고 할 거 같으면 인제는 장애가 주대상이 됩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여기에는 '망상이 일어났을 때', 그다음에 '졸음이 왔을 때', 그다음에 '괴로운 느낌이 있을 때', 이런 것들을 잘 넘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들을 적어놓았습니다.

이 대상도 관념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은 이 장애가 일어나면 그 장애들을 이때까지는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렸다가, 그 장애들이 일어나면 그 장애들을 대부분 관념적으로 자꾸 할려고 그럽니다.

졸음이 왔으면 '졸음' '졸음' '졸음' 합니다. '이뭣고' '이뭣고' 하는 것하고 다른게 하나도 없어져버립니다.

 

부처님의 수행법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졸음이 일어났을 때의 느낌들을 볼려고 해야 됩니다.

망상이 일어났을 때의 느낌들을 가슴을 통해서 본다든지 해가지고 느낌들을 볼려고 해야 됩니다.

고통스러운 것이 있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그게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강도가 얼마나 쎈지, 이게 어떤 상태로 쑤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찢어지는 느낌이 있는 건지 그걸 볼려고 해야 되는 것인데, '고통' '고통' '망상' '망상' '졸음' '졸음' 이러고 앉아있다는 거라.

 

대상은 대상의 고유한 특성들이 있습니다.

거기서만 나타나는 특성들이 있고, 그 대상이 일어났으면 대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길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길을 분명하게 볼려고 해야 됩니다.

따가움이 있는데도 '무겁다' '무겁다' 하고 앉아있을 거 같으면, 이미 그 길을 차단하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리는 거라.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대상을 멀찍이 떨어뜨려라" 하는 것은, 장애들이 있을 때 마음이 거기서 자꾸 왜곡들을 하기 때문에 대상을 떨어뜨리라, 떨어뜨리라 그럽니다.

떨어져서 봤을 때 내가 그 장애가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이 보인다는 거라.

 

장애가 일어났을 때 그것도 하나의 대상으로써 인식하는데, 그 대상은 실재하는 것들로써 인식할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거기 보면 '가려움이 있을 때', 이렇게 쭉 다 적어놓았습니다.

만약에 안될 때는 22페이지 마지막에, 6)번에 마지막에 보면

 

"이런 때에는 일단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마음을 개방합니다.

그 위에서 지금 현재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알아차림 하면 됩니다.

혹은 대상을 순차적으로 관찰합니다."

 

안될 때는 탁 그걸 놔버려야 됩니다. 탁 놔버리고 지금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뭔지를알려고 해야 됩니다. 졸음이 있더라도 졸음 중에서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뭔지를 알려고 할려면 일단은 탁 놔버려야 됩니다.

졸음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을 탁 놔버리고, 가만히 그냥 있어보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이 지금 현재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어! 쑤시네'

졸음이 올 때 '쑤시네' 하고 알게 됩니다. 그때 그걸 '쑤심'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장애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그 장애가 일어난다든지 그것이 사라지지 않을 거 같으면 일단 그걸 탁 놓고 보십시요.

놓고 봤을 때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탁 알아차리려고 하고, 그러면 다른 또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그럼 또 탁 놓아버리고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7) 좌선 중에 이따금씩 몸의 자세를 살펴봅니다.

 

그다음에 7)번이 좌선 중에 이따금씩 몸의 자세를 살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수행을 잘하고 있으면, 목이 이렇게 꺽여져있다든지 아니면 허리가 구부정한다든지 아니면 손의 자세가 흐트러져있다든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것을 잘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빨리 다시 몸의 자세를 회복시켜주어야 됩니다.

 

지속적으로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래 처음에 했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안되면 다시 '음, 목이 꺽여져있네' 하고 알아차리고, 목을 천천히 편다고 알아차리면서 천천히 펴주고, 허리가 긴장이 많이 돼가지고 '뻣뻣하네' 할 것 같으면 긴장을 풀어준다고 마음을 먹고 긴장을 풀면서 서서히 척추가 척척 쌓이듯이 이렇게 알아차려주고,

그렇게 몸의 자세를 다시 바르게 하고 나서 대상을 알아차리면 훨씬 관찰하기가 수월해진다는 겁니다.

 

이게 대략적으로 좌선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좌선수행도 수행의 기본적인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없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하면 됩니다. 많이 하면 본인이 지금 현재 어떤 상태로 내가 알아차려야 되겠다 하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냥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현재 대상이 그냥 계속 사라지는 것만 관찰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대상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든지, 본인이 그 상태에 맞는 것들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상태들은 경험들을 해봤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 다음에는 다음에 뭔가 또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주 많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