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행·입선·와선·일상의 알아차림 (20180713.대구)
2. 경행
저번에 이어서 기초수행 뒤에 부분을 하겠습니다.
좌선까지는 했고 인제 경행 부분을 할 건데, 여기 사람이 많은데 만약에 이 사람들이 전부 경행을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처음에 드는 생각이 뭐라요? 경행할려고 탁 섰는데 사람이 많다, 그러면 대부분은 내가 경행할 자리가 확보돼있는가? 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행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경행에서 주의해야 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보통 여러분들이 걸어갈 때는 보면 목적지를 자꾸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디까지 간다' 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실제 발걸음에 대한 것들을 관찰을 안 할려고 그럽니다. 그래서는 안되고, 또 경행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그러니까 걸어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미리 먼저 생각들을 하는 것은 오히려 번뇌만 계속 키우게 됩니다.
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걸어가다가 두 갈래 길이 나왔다 그러면 "두 갈래 길 중에 어느 길을 갈 것인가? 하고 판단하는 것들을 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먼저 발이 디뎌지는 쪽으로 그냥 걸어가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조금 더 수행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들이 점점 없어집니다.
그대신에 실행하는 것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보고 내가 분명하게 알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걸 그냥 실행해버리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나에게 이롭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니, 앞으로 일어날 상황이 어떠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들은 없어져버립니다.
경행할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목적지는 수행대상이 아니죠? 내 밖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설혹 내가 경행하는 거리가 짧아가지고 목적지 도착 못하면 어때서? 걸어갈 때 분명하게 알아차림으로써 사람에게 부딪쳤으면 부딪쳤다고 알고 딱 멈춰서면 되는 거라. 그래서 돌아야 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돌아서고, 그냥 다시 또 돌아오면 되는 거라.
그게 바로 경행을 잘 하는 것이지, 목적지까지를 미리 상정을 하고 목표를 이미 정해버릴 것 같으면 거기에 도달을 못하면 실망하게 되고, 도달하면 또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거고, 그래서 그것은 바른 방법은 되지 못합니다.
경행하려는 목적이 분명히 정해져야 됩니다.
"수행에는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생멸하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상태에 이른 지혜가 아닐 것 같으면, 그전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경행과 좌선은 동일한 비율이어야 됩니다.
호흡을 관찰하니까 현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 보였다, 그럴 것 같으면 좌선을 더 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되기 전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좌선과 경행은 동일한 비율로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경행을 할 때 또하나 중요한 부분이 뭐냐면 뭐 때문에 경행하는가? 하는 거라.
좌선을 하면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는 힘들이 많이 커집니다. 대상이 단순하기 때문에! 그래서 집중하기에 참 좋습니다. 호흡을 하더라도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 그리고 가끔씩 나타나는 망상이라든지 아니면 통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지만 초보자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마음이 안 가도 관계는 없습니다.
'어, 망상이 일어났네' 하고 놔줘버리고 다시 또 호흡으로 돌아와도 크게 문제없고, 겨우 한시간 좌선하면서 통증이 일어나더라도 '어, 통증이 일어났네'하고 알아차리고 나서 다시 또 돌아오더라도, 호흡만 분명하게 해서 거기에 마음을 실고 있을 거 같으면 이 통증이나 망상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합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힘이 굉장히 커집니다.
그런데 수행에서 집중하는 힘들이 커지면 여러분들은 보통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잠에 떨어져버립니다. 수행이 어느 정도 대상이 단순하면서 크게 다른 것들이 일어나지를 않는데 좌선하는데 보니까 금방 잠에 폭 떨어져버리는 거라.
이런 경우들이 균형이 안 맞아서 그러는 거라.
끊임없이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집중하는 힘만 가지고는 수행이 항상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는 거라.
끊임없이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힘들은 어디서 나타나느냐면 이 경행에서 나타나는 거라.
경행을 하면 대상이 많습니다. 조금 전에 왼발이 나갔고 그다음에 오른발이 나갔지만 그다음에 다시 또 왼발이 나가더라도 이거는 다른 발이라는 거라. 그리고 알아차리는 것들이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상이 많으면 마음은 바삐 움직여야 됩니다.
그러다 보면 수행하는 힘들을 계속 북받쳐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노력의 힘들과 집중하는 힘이 균형이 맞을 때, 좌선을 하든 경행을 하든 아니면 일상생활을 하든지 간에 그것들이 균형이 맞아서 크게 무리없이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수행을 해나갈 수가 있게 되는 거라.
그래서 경행하는 목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경행을 좌선과 같이 해버린다? 예를 들면 아주 천천히 '들어올리이이임' '나아가아아암' '내려놓으으음' 이것만 관찰하고 있다, 그럼 배를 관찰하는 것 '일어나암' '사라지임' 하고 관찰하는 것하고 별다른 게 없이 돼버리게 되는 거라. 그러면 집중하는 힘만 계속적으로 커져버리지 노력하는 힘들은 커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경행할 때는 경행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노력의 힘들을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수행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 경행을 한다 하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경행에서 노력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돼요?
걷는 속도를 조금 빨리 걸어보십시요. 그리고 마음이 그걸 쫓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계속 마음이 그것을 쫓아가기 위한 노력이 있지 않으면 당연히 걸음이 느려져버립니다. 그래서 경행을 처음에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조금 빠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뒤에 「경행의 규칙」 부분이 있습니다.
누가 한번 1)번 부터 읽어 볼까요?
1) 수행자는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몸의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섭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두 손을 모아서 앞으로 잡거나 뒤로 잡습니다.
2) 경행을 하려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아무것도 없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3) 현재 서 있는 자세에서 얼굴, 어깨, 손, 종아리, 발바닥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면서 쭉 내려갑니다. 마음이 발까지 내려오면 발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4) 이제 한발 한발 걸으면서 발바닥이 닿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갈 때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걷습니다. 그다음 단계로 발뒤꿈치가 들리는 것부터 알아차려 발을 들어서 놓는 것까지 다 알아차립니다. 그다음 단계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5) 끝에 가면 반드시 서서, 서 있는 몸의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어깨의 긴장을 알아차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6) 정면을 향해 돌면서 몸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돌 때는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거나,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려는 의도에 의해 발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7) 경행을 할 때 처음에는 발의 움직임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다가 점차 무겁고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잡히면 그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어서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또 경행 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망상이라고 가볍게 알아차리고 다시 발의 움직임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8) 눈은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서너 걸음 앞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적당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몸이 긴장되어 알아차림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적당한 속도로 걸으면서 계속 발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9) 길이나 운동장에서 빠르게 걸을 때에는 발이 닿는 것만 알아차리거나, 몸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크게 주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이 나타나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예. 됐습니다.
경행하는 규칙에 대한 것을 읽었습니다.
경행할려고 딱 서면은 경행하기 전에 좌선도 마찬가지고 어떤 것을 할 때든 일상생활을 할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지금 현재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잘 볼려고 해야 됩니다.
내가 뭔가 욕심을 가지고 뭘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뭔가 서두르는 마음이 없는지, 아니면 경행할려고 할 것 같으면 경행할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들을 먼저 잘 살펴봐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이 있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서 뭔가를 해야 됩니다.
대상이 일어났을 때는 그 대상을 시작할 때는 맨 처음에 항상 명심해야 될 것이
"지금 현재 무슨 마음인가" 하는 것들을 항상 먼저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것을 알아차려야만이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직접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자기 의도가 들어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싫은 것'에 따라서 뭔가를 자꾸 하게끔 됩니다.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자꾸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 현재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릴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 적어놓은 것이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그리고 붕 떠있는 마음인지 어떤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것이 해소가 되지 않으면 차라리 서 가지고 배를 보라는 거라.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이 있나?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면, 이미 마음은 그런 붙잡고 밀어내고 하는 마음 없이 그냥 평상심의 상태로 딱 돼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상태가 딱 되고나면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자신의 몸에서 서 있는 모습들을그대로 관찰해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눈을 감고 있으면 눈을 감고 있는 왼쪽눈 오른쪽눈 관찰하고 입술 관찰하고 손이 닿아있는 것을 관찰하고 그다음에 발바닥이 닿아있는 것을 관찰하고, 하나씩 관찰해나갑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일 때 그것을 관찰하면 그냥 그대로 그것만 알아차려집니다. 손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면 손이 닿아있는 것만 본인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 것들은 일절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그러고 나서 발바닥에 마음이 가면 발바닥에 딱 오면 발바닥에 닿아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나서 몸의 상태를 관찰해서 몸이 만약에 긴장이 돼있으면 '어, 긴장돼있네' 하고 알아차리고 긴장을 풀어주고,
그래서 몸과 마음에 긴장된 것이 딱 풀리고 나면 그다음에는 걸어갈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발바닥을 딱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 그냥 걸어가면 됩니다.
처음에 걸어갈 때는 그냥 발바닥만 관찰한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발바닥이 닿고, 또 그다음 발바닥이 닿고, 그다음 발바닥이 닿고, 가볍게 이렇게 발바닥이 닿는 것만 알아차리려고 해야지, 발 전체의 모습이든지 아니면 걸어가는 형태라든지, 어떻게 내가 발을 내리고 떼는가 하는 것들을 관찰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마음을 발바닥에 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발바닥이 닿고 그다음에 또 이 발바닥이 닿아있는 것만 계속적으로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그것만 하더라도 경행할 때는 이미 나는 많은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발바닥을 알아차리는 상태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는 다시 '어, 들어올리네' '내려놓네' 하는 것만 알아차리려고 하면 됩니다.
그때도 마음은 항상 발바닥에 두라는 거라.
발바닥이 들리는 것들을 알고, 발바닥이 닿는 것들을 알고,
그다음에 다시 또 조금 더 가다가 보면
발바닥이 들리는 걸 알고, 나아가는 것을 알고, 내려놓는 것들을 알고,
마음은 발바닥에 항상 가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발을 들어올릴 때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고, 나아갈 때 움직임을 알고, 내려놓을 때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이 완전해질 때까지 그 상태를 계속 반복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만약에 거기에 가있지 않고 자꾸 생각을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데 가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일단 멈추십시요!
멈추고 나서 '어, 지금 내가 마음이 뭘 하고 있는지'를 다시 관찰해보도록 하십시요.
평온한 상태에서 경행을 할려는 마음의 준비가 돼있는지를 분명하게 보고,
또 몸의 상태가 긴장돼 있는 곳이 없는지 하는 것을 똑같이 그렇게 쭉 눈꺼풀부터 해가지고 발바닥까지 다시 또 관찰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경행을 첫 단계부터 해나가면 됩니다.
'닿았다' '닿았다' 하는 것들만 관찰하고,
'들어올리고' '내려놓는다' 하는 것을 관찰하고,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는다' 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렇게만 계속 반복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움직임에 어느 정도 완벽하게 돼있는 상태에서, "아주 가볍게 경행하는 것들을 관찰하고 있다"고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뭐로 가지고 아느냐면,
발바닥을 들어올릴 때 그다음에는 그 들어올려지는 움직임을 아는 것이 아니고 들어올릴 때의 느낌들이 일어나집니다.
그러면 들어올릴 때의 느낌을 알고, 그때도 마음은 발바닥에 가있어야 됩니다, 나아갈 때의 느낌을 알고, 내려놓을 때의 느낌을 알고,
처음 들어올릴 때의 느낌과 뒤에 들어올릴 때의 느낌은 다릅니다.
내려놓을 때의 느낌과 완전히 닿을 때의 느낌은 또 다릅니다.
그래서 느낌을 분명하게 보게 되면은 들어올릴 때의 느낌과 나아갈 때의 느낌과 내려놓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어떠한 경우든지 처음에는 그냥 움직임만 알려고 해야 됩니다.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고 나면은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 느낌을 보게 됩니다. 그 느낌들이 보여지면 그 느낌들이 다르다는 상태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들어올려질 때의 느낌과 내려놓을 때의 느낌이 다르네' 하는 것들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다시 완전하게 될 것 같으면 그다음에는 들어올려질 때의 느낌이 그냥 '가볍다' 하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틀림없이 다른 느낌들이 일어나집니다.
내려놓을 때의 느낌도 '무겁다' 하는 느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틀림없이 다른 느낌들이 일어나집니다. '가볍다' '무겁다' 하는 것은 주관적인 겁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느끼는 느낌일 뿐입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는 발을 들어올릴 때 가볍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무겁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또 내려놓을 때는 무겁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아무 느낌이 없이'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들어올릴 때 어떨 때는 가벼워지고 어떨 때는 무거워지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것이지 실재하는 것은 사실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볍다' '무겁다' 하는 것들이 완전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음이 분명히 들어올릴 때의 느낌들을 찾습니다 발바닥을 보면서.
탁 들어올려질 때의 느낌이 있고, 어느 정도 들어올려질 때의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느낌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압니다.
발을 내려놓을 때도 내려놓는 상태에서의 느낌과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알 때까지는 경행을 지속해나가야 됩니다.
쉽게 얘기하면 경행을 할 때 알아차리는 것이 좌선 때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들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
경행을 이렇게 해야만이 노력하는 힘들이 생겨나버리지, 좌선과 같이 천천히 하면서 그냥 '들어올리이임' '나아가아암' '내려놓으음' 꼭 염불하듯이 그렇게 되뇌어가지고는 경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경행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초보자들은 좌선보다도 경행에 더 치중을 해야 됩니다.
일상적으로 여러분들은 앉아있는 시간보다도 움직이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경행에 치중하지 않으면 일상생활할 때 일상의 알아차림을 거의 대부분 놓쳐버립니다. 그냥 앉아서 좌선하고 또 경행하고, 좌선과 똑같은 경행을 하면서 반복하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은 그냥 놓쳐버립니다.
놓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앉아서 할 때의 좌선은 집중하는 힘만 계속적으로 키워집니다. 수행은 집중하는 힘만 가지고는 어떠한 경우든지 바르게 굴러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경행하는 습관들을 바르게 들이도록 해야 됩니다.
현재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몸의 긴장된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 경행할 때 천천히 발바닥에 마음을 두고 발바닥에 닿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들을 조금씩 구분해서 알아차리게 되고,
그것이 완전해지면 다시 또 그 느낌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 느낌들이 분명하면 느낌들이 하나의 동작에 다른 느낌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지속해서 반복을 해나가야 됩니다.
좌선할 때, 배가 불러올 때 그냥 불러온다고 아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불러올 때 느낌들이 일어나는 것들을 압니다. 그 느낌들도 분명하게 일어나는 것이 사라지고 다른 느낌들이 일어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경행도 꼭같습니다. 느낌들이 일어났으면 끊임없이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는데 그것이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압니다.
좌선과 경행은 알아차리는 것이 동일하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좌선에서는 단순히 배가 불어오고 꺼지는 데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느낌들이 단순하게 변하는 것들이 보이지만은, 경행에서는 다른 모습들로 보이게 됩니다.
훨씬 대상들이 다양할 뿐아니라, 「나」라고 하는 것들이 단순하게 그냥 지금 현재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뿐이다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기 쉬운 것이 좌선보다는 경행일 수밖에 없는 거라.
무상한 성품을 분명히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완전하게 무상한 성품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딱 거기에 걸려가지고, 변하는 것은 분명하게 보이는데, '그 변하는 것이 뭔가?' 하고 자꾸 알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합니다.
대부분 수행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부분이 대부분 그부분에서 1차적인 고비를 맞습니다. '어, 이게 뭔가가 변하고 있는데, 변하는 이게 뭐지?' 하고 볼려고 합니다.
이미 그 이상은 볼 수가 없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것을 본다고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나」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본다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경행에서는 대상이 자꾸 달라지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것들로 인해서 그 변하는 것들을 볼려고 하는 마음들은 적어집니다. 그래서 대상을 관찰할 때 경행을 하면서 '무아'의 성품들을 관찰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좌선에서는 무상(無常)한 성품을 관찰하기가 쉬운데,
경행에서는 무아(無我)의 성품들을 관찰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무아의 성품을 분명하게 봐야만이 그 무아의 성품이 무상하게 보여지고, 빠르게 변하는 괴로움으로 분명하게 보여지게 되면서, 무아의 성품들로 분명하게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경행하는 시간들을 자꾸 늘려주는 것이 여러분들에게는 훨씬 이익이다 하는 것들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교재 「경행 수행의 실제」 부분을 쭉 보면서 경행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주의 사항을 적어놓았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너무 느리게 걸어 알아차림이 흩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걸어가도록 해야 되는 것이지, 좌선과 동일한 상태로써 경행을 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항상 경행할 때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후의 법문은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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