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구·울주선원 수행법문

수행법문- 입선·와선·일상의 알아차림 (20180713.대구)

담마마-마까 2022. 6. 6. 09:00

https://youtu.be/jc02no_zIOQ

* 경행·입선·와선·일상의 알아차림 (20180713.대구)

< 28:57 부터 입선·와선·일상의 알아차림에 대한 법문이 이어집니다.>

 

3. 입선(入禪)

 

그다음에 서 있는 수행 - 입선 부분입니다.

입선은 집중하는 힘과 노력하는 힘들을 동시에 같이 강화시켜줄 수 있는 좋은 자세입니다. 넘어지지 않게 할려면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하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또 입선에서는 서 있을 때 호흡을 관찰하기가 좌선보다도 훨씬 수월합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앉아있을 때보다 훨씬 가볍게 알아차려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힘과 노력하는 힘을 동시에 같이 키워줄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마만큼 마음이 안정돼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노력하는 힘과 집중하는 힘을 배가시켜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 있음을 분명하게 관찰하고 나서는, 바로 호흡을 관찰하면 됩니다.

서 있음을 분명하게 관찰하지 못하면 서 있는 상태를 쭉 관찰하면 됩니다.

서 있을 때 눈꺼풀부터 해서 발바닥까지 닿아있는 것을 분명하게 관찰을 하고,

거꾸로 다시 또 관찰하고,

그래서 서있는 상태를 분명하게 관찰하고 나면 다시 호흡을 알아차려나가고,

그래서 노력하는 힘과 집중하는 힘을 같이 배가시켜주기에는 굉장히 좋습니다.

그래서 서 있는 수행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입선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4. 와선(臥禪)

 

그다음에 와선 부분입니다.

누가 와선 하는 방법- 아침에 일어날 때 알아차리기 한번 읽어보십시요.

 

와선하는 방법

1) 아침에 일어날 때 알아차리기

① 누운 자리에서 잠을 깬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② 누운 상태에서 일어남, 사라짐의 호흡을 얼마간 알아차리다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예. 일어날 때 잠에서 깨어서 바로 일어나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기 전에 현재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볼려고 하라.

 

흐리멍텅하면 아직 정신을 덜 차려가지고 '흐리멍텅하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릴려고해야 됩니다. 그것이 마음의 상태가 분명하게 될 때까지 그 마음을 계속적으로 관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분명하게 '어, 내가 깨어있다' 하고 분명하게 알게 될 때까지 그것을 관찰하고,

다시 누워있을 때 호흡을 다시 관찰하고,

그래서 마음이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서,

다시 일어난다고 알면서 일어나도록, 습관을 들여야 됩니다.

 

그렇게 습관을 들여야만이 잠을 잤다가 일어날 때 호흡이 들이쉬면서 일어나지는 건지, 내쉬면서 일어나지는 건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마음이 깨어있지 못하면 숨을 들이쉬는지 내쉬는지를 모릅니다.

잠에 들 때도 마찬가집니다.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고 그것이 깨어있지 못하면 호흡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못 일어나니까 자명종을 새벽 4시에 해놨다가, 4시 10분에 해놨다가, 4시 20분에 해놨다가, 지속적으로 해놔가지고 울리면 툭 쳤다가, 다시 또 툭 치고, 왜 그러고 있어요?

그냥 한번 해서 깨어나든지 그렇지 못하면 그냥 자. 그것이 오히려 이로운 것이지 그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그대로 한 30분은 또 지속을 합니다. 시간이 아까운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다고 해가지고 그게 잠이 보충되는 것도 아니고, 깨어난 것도 아니면서 그 상태를 유지를 합니다. 차라리 깨어날 때 분명하게 마음이 깨어난 상태를 볼 것 같으면 그 30분의 이득보다도 훨씬 더 이득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딱 깨어났을 때 마음의 상태를 먼저 관찰하도록 습관을 자꾸 들여야 됩니다.

마음이 분명하게 깨어나는 걸 탁 볼 거 같으면 잠에서 깨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걸 분명하게 알아야만이 '호흡이 어느 상태에서 먼저 잠에서 깨어날 때 알아차려지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면 단축할수록 이롭습니다.

 

와선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날 때는 항상 이것을 명심해서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마음의 상태를 자꾸 분명하게 보고, 호흡의 상태를 볼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움직일 때는 움직일려고 하는 의도를 보고,

움직임의 상태를 보고,

이걸 지속적으로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날 때는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깨어날 때 분명하게 깨어나지고,

분명하게 깨어나졌으면 그다음에는 마음이 뭘 하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뒤에, 저녁에 자기 전에 알아차리기하는 것을 읽어보십시요.

 

2) 저녁에 자기 전에 알아차리기

① 잠자리에 누운 상태로 잠을 청하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② 침대에 닿아있는 몸의 부분 부분을 알아차려 내려갑니다.

③ 그다음 얼굴, 목, 가슴, 배를 알아차리다가 배에서 호흡이 잡히면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알아차리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듭니다.

 

잠자리에서 깨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잠자리에 들 때도 현재의 마음의 상태, 괜히 뭔가 근심 걱정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내일에 대해서 계획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관찰하고 나서,

그것이 없는 상태에서 '아, 마음이 분명하게 아무것도 걸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의 상태가 돼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다음에 누워있기 때문에 머리부터 해서 닿아있는 것들을 천천히 관찰해나갑니다.

머리가 닿아있구나, 어깨가 닿아있구나, 엉덩이가 닿아있구나, 발뒤꿈치가 닿아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관찰하고,

다시 또 뒤꿈치부터 머리까지 다시 또 닿아있는 것을 관찰하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어야 되는 것이지,

마음이 뭔가를 계획하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면 사나운 꿈을 꾼다든지 잠을 푹자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관찰하고 닿아있는 것들을 관찰하고 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관찰하라는 거라.

처음에는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다가 그냥 스르르 잠이 들어버립니다. 어느 상태에서 잠이 들었는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지금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관찰하고 나서, 닿아있는 것들을 가볍게 관찰하고, 배를 관찰하면 배가 불러오는 상태에서 잠이 들었는지 배가 꺼지는 상태에서 잠이 들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배가 불러온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날 때는 마음이 어느 상태에서 깨어나지게 되겠어요?

불러오는 상태에서 잠이 들게 되면 배가 꺼지는 상태에서 마음이 그것을 관찰하면서 깨어나지게 됩니다. 배가 꺼지는 상태에서 분명하게 잠자리에 들었을 거 같으면 배가 불러오는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분명합니다.

 

물론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숨을 계속적으로 쉬고 있습니다. 쉬고 있는데 마음은 그 상태를 분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잠자리에 들 때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느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었는지 어느 상태에서 깨어났는지를 기억하게 되면, 나중에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됐을 때라도 내가 숨을 들이쉬면서 죽음을 맞는지 숨을 내쉬면서 죽음을 맞는지 분명하게 기억을 하게 됩니다. 분명하게 알아차립니다.

 

그런 상태일 거 같으면 설혹 내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생은 분명히 좋은데 태어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어디에 태어날지를 모릅니다.

죽을 때 자신이 분명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죽으면 확신이 듭니다. 내가 다음에는 어떤 상태에서 다음에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날지 천상으로 태어날지 그것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쁜 상태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확신을 가집니다.

 

그래서 와선은 중요한 것이 뭐냐면 일어날 때도 중요하고 깨어날 때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은 죽음의 순간에 어떤 상태로 죽을지를 분명하게 알게끔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숙련되다 보면 자신의 죽음이 어느 정도 지나서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아, 내가 일주일 뒤에 죽을 거 같다' 아니면 '내일 죽을 거 같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게끔 됩니다. 미리 대비를 할 수 있게끔 됩니다.

 

그래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앉아서 하는 수행, 서서 하는 수행, 걸어가면서 하는 수행, 누워서 하는 수행,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행 자체가 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반복돼야만이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계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습니다.

 

 

5. 일상생활에서의 알아차림

 

일상생활은 이것보다도 훨씬 알아차릴 것이 많습니다.

똥 눌 때도 알아차려야 되고, 옷 입을 때도 알아차려야 되고, 밥 먹을 때도 알아차려야 되고, 좌선에서 경행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순간들도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잠자리에 눕는 형태들도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그 모든 것들은 일상의 알아차림입니다.

숨을 들이쉬면 들이쉰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보면 본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들리면 들린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일상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 어떻게 알아차릴 거라?

일상수행할 때 앉고 서고 걸어가고 누워서 하는 수행 이 4가지들은 일상에서 자꾸 반복해서 수행하지 않으면 일상의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자꾸 수행하는 시간과 수행하지 않는 시간이 분리되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4가지 수행 포지션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일상에서는 하나씩 하나씩 잡아나가면 됩니다.

오늘은 밥 먹는 것만 알아차려 보겠다.

오늘은 들리는 것만 알아차려 보겠다.

오늘은 옷 입고 옷을 벗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려 보겠다.

오늘은 신발을 벗고 신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려 보겠다.

 

하나씩 하나씩 잡아나가면 그것들이 잡혀나갑니다.

잡혀나가는 것은 집중하는 힘과 노력하는 힘이 균형이 맞아질 때, 일상생활은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돼나가게 됩니다.

그것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행···와 입니다.

그것이 될 때 일상의 알아차림이 돼나간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기억하도록 해야 됩니다.

 

29페이지 보면

첫 번째가 일상생활이 모두 수행의 기회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육근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아니면 동작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모든 것들이 수행의 대상이고 수행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행위를 알아차리도록 하라.

 

일상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이 2가지는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수행의 기회다 하는 것과,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것을 알아차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일상의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야만이 아, 오늘은 내가 먹는 것들을 알아차려야 되겠다 할 때 바르게 먹는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숟가락을 드는 것들을 알고, 입에 넣는 것들을 알고, 씹는 것들을 알고, 내려놓는 것들을 알고, 어떤 맛인지를 알고, 맛에 내가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고, 싫어하는지를 알고, 그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려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뒤에 낮에 활동하면서 알아차리는 것

그런 것들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뒤에 일상의 알아차림이 주는 이익 부분,

그 이익은 여러분들이 좌선하고 경행할 때에 얻어지는 이익과 동일합니다. 결코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좌선했을 때 '아, 참 좋았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한 이익들을 그대로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 좋은 이익들을 왜 일상생활에서 자꾸 다 놓치려고 하느냐는 거라.

 

일상의 알아차림은 좌선과는 조금 다릅니다.

바삐 움직이는 것이 있고, 생각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띠만 있을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삼빠자나-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들이 함께 있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것이 함께 있을 때 '아, 내가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하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대상이 변하는 것들을 그대로 그냥 알아차리면서, 그대로 내가 인지하고 인식한다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팔을 뻗었으면 팔을 뻗었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내가 '팔을 뻗었네' 하고 분명하게 탁 알아차렸을 때 팔이 뻗어지는 상태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팔을 구부리면 팔을 구부린다고 알아차리면서 '팔이 구부러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만이 지금 내가 팔이 구부러져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끔 됩니다.

 

그래서 분명한 앎이 알아차림과 같이 할 때 일상생활에서는 거기에 라고 하는 것이 없이 분명하게 그것만 있다는 것을 알게끔 됩니다.

그런 생활들이 계속 반복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36페이지 ➀번부터 ➇번까지 누가 한번 읽어보십시요.

 

무릎에'통증'이라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➀ 무릎에 통증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립니다.

➁ '통증''통증'이라고 「명칭」을 붙이며 그 통증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➂ 그 통증이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합니다.

 

대개 알아차림 하면 통증이 증가하다가, 지속하다가, 그리고는 서서히 사라집니다.

수행자의 관찰이 면밀히 진행된다면 통증이란 실재하는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빤냐띠)이며, 사실적으로 실재하는 것(빠라맛타)은'열'혹은'쑤심'혹은'저림'혹은'땡김'이라는 현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알고 이해하게 되는 담마 중의 하나입니다.

 

통증의 내용이 만약'쑤심'이라고 알았다면,'통증'에서'쑤심'으로 명칭을 바꿔서 관찰해야 합니다.

➃ 실재하는 현상으로 쑤심이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➄'쑤심''쑤심'이라고「명칭」을 붙이며 그 쑤심의 현상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➅ 그 쑤심이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합니다.

쑤심이 처음에는 약하게 진행되다가 점점 강해졌고, 열이 발생하였고, 한참 후 서서히 약해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쑤심이 일어난 그 부위가 뻐근하였는데 쑤심이 사라짐에 따라 점차 뻐근함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실제로 확연하게 알았다.

➆ 그래서 쑤심이 실재적인 현상이며 고유한 성품임을 이해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행관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렇게 하여 쑤심의 통증이 사라지면 즉시,

➇ 배의 '일어남''사라짐' 현상관찰로 돌아옵니다.

 

예. 현상이 일어나면, 여기에 한 예를 들어놨습니다.

무릎에 통증이 있으면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먼저 해야 됩니다.

'어, 통증이 일어났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통증이 일어났네' 하고 알아차릴 때는 배의 일어남 사라짐은 없습니다. 그냥 통증이 일어난 것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어, 통증이 일어났네' 알고, '통증'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러면 그 통증이 어디 부위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건지 아니면 조금 더 깊이 있는 건지, 아니면 요쪽 옆에 있는 건지 통증이 있는 부위를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됐을 때 그 통증이 실제로는 통증이 아니고, '쑤시는 현상'으로써 알아차려지게 된다든지, 아니면 뭔가 '바늘로 콕콕콕 찌르는 느낌'으로 알게 된다든지, 아니면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으로 알게 된다든지, 특성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그냥 단순하게 '쑤심'이라고 하나만 적어놨습니다.

통증이라고 다 똑같은 통증이 아닙니다. 통증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것은 누르는 느낌이라든지, 쑤시는 느낌이라든지, 찌르는 느낌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실재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면 그 느낌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쑤심이라고 알 것 같으면 '어, 쑤신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았을 때는 실재하는 성품으로 알았을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그 '쑤심'의 강도가 변하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단순히 '통증'이라고 알아차리면 그 강도가 바뀌질 않습니다. 그냥 통증만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왜? 관념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실재하는 것은 반드시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실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변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볼려고 해야 됩니다.

쑤심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봤을 때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아, 이게 사라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사라지고 또 다른 것이 일어났으면 다른 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렇게 봐야만이 진짜 실재하는 고유한 성품을 내가 분명하게 볼 수가 있고,

그럴 때 수행에서는 기쁨이 일어나게 됩니다.

'! 내가 실재하는 것을 봤다'는 거라.

이렇게 될 때까지 그 대상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수행을 관념적으로 자꾸 할려고 하지 말고,

실재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의 상태나 몸의 상태들을 만들고,

그리고 마음이 그 실재하는 성품에 가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그러고 나서 실재하는 성품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리고 실재하는 성품들이 변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그 변하는 것이 수행이 무르익으면 무르익을수록 빨리 변해지게 되는 거고,

그 대상들이 인제는 일어나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들이 쑤심이 계속적으로 쑤시는 것들이 다르게 사라지는 것만 보이게 된다든지,

이런 식으로 수행이 자꾸 변해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것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들도 보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도 분명하게 알게끔 되고,

나중에는 평온하게 그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그 상태가 될 때까지는 끊임없이 그 대상을 관찰해야 됩니다.

하나의 대상에서 위빳사나 16단계들이 쭉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대상들이 자꾸 바뀌면서 그 지혜의 단계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대상으로도 충분하게 된다는 거라.

 

실재하는 것들만 알아차리게 되면 분명하게 그 대상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들을 볼 수 있게끔 됩니다. 그래서 그 대상들을 보더라도 평온한 마음이 될 때까지, 그냥 그 대상은 대상일 뿐인 것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끔 되면, 이제는 어느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마음은 평온한 상태를 항상 유지해나가게 됩니다.

그 상태가 될 때까지는 끊임없이 대상을 알아차리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