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대구·울주선원 수행법문

수행법문-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1 (20180601.대구)

담마마-마까 2022. 6. 2. 09:10

https://youtu.be/5RS6BFd7JAk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1 (20180601.대구)

[수행교재-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청법게송과 청오계문 독송 후 4:57 이후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프린트물이 두 개죠? 하나는 저번 붓다의 날 붓다의 길따라 선원에서 법문한 자료입니다. 하나는 앞으로 한 3~4회에 걸쳐서 할 기본적인 수행에 대한 이해들을 간추려 놓은 자료입니다.

오늘은 그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힘이 없으니까 이해를 해주세요. 죽이 그렇게 힘이 없어가지고 먹고 나서 한두 시간 지나면 힘이 쭉쭉 빠져요.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부분입니다.

 

첫 번째가 1.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고 적어놓았습니다.

스님들이 포살을 할 때 게송을 이렇게 합니다.

게송을 쭉 독송을 하다가 탁 틀리게 되거든요. 틀리면 거기서 장로스님이 "스도옵(stop)! 너 여기서 틀렸어!" 하고 지적을 합니다. 그러면 이때까지 한 것은 무효!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는 거라.

왜 그럴까? 틀렸다는 것은 그 부분을 몰라서 틀린 것이 아니고, 알고 있는데 정신이 다른데 가있다든지, 그래서 그 부분에서 장음을 단음으로 발음을 했다든지, 아니면 다르게 발음을 했다든지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뭔가 할 때 틀리는 부분들을 잘 한번 보십시요. 몰라서 틀리는 경우는 거의 잘 없습니다. 알고 있는데 그 부분을 틀리게 됩니다.

 

그럴 때는 항상 장로 스님이 "스토옵(stop)!" 하고 합니다. "잠깐만!" 한다든지, 그렇게 딱 멈춰세우고 나서 "이 부분은 틀렸어" 하고 지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스님은 '어, 내가 여기서 틀렸구나'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의 짧은 게송이든 짧은 경을 외우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합니다. 빨리어를 외울 때 짧은 문장을 하나 가르쳐줍니다. 그럼 그 문장을 안 보고 외우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래십호」가 있다. 그럼 한번 해보십시오.

「 이띠 삐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윗자-짜라나삼빤노- 수가또- 로-까위두- 아눗따로- 뿌리사담마사-라티 삿타- 데-와 마눗사-낭 붓도- 바가와- 」

그렇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다 외우지 못하면 중간에서 '어, 뭐지?' 하는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든지, 아니면 외우더라도 이 순서가 똑바로 안 되고 뒤죽박죽이 돼버립니다.

 

그럼 이걸 외울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그럼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거라.

그러면 계속적으로 그 부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 부분을 다 외워지게 됩니다.

그때야 인제 "그래 '바가와' 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다, '붓도'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다" 하는 것들을 들려주게 되는 겁니다. 띄어야 될 때는 띄우고, 붙여야 될 때는 붙여야 되는데, 그걸 못할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수행에서도 꼭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은 사띠의 대상이 여러분들 몸과 마음이라는 걸 이미 누누히 알고 있습니다. 밖의 것이 대상이 아닌 걸.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띠하고 있어도 탁 놓쳐버리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 30분 동안 좌선하기로 했다, 아니면 30분 동안 경행하기로 했다, 탁 놓치면 어떻게 해야 돼요?

', 내가 놓쳤네' 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 되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30분에서 10분 했다, 그럼 '놓쳤네'하고 알아차리고 나서 딱 멈추고, 다시 그때부터 '일어나고 사라짐'를 하든지 아니면 '왼발 오른발'을 하든지, 그때부터 다시 또 타이머가 작동을 하게 되는 거라.

 

놓침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시간은 점 점더 늘어날 겁니다. 마음 입장에서 볼 거 같으면 굉장히 귀찮은 일입니다.

스님들도 보름에 한번씩 포살하는 거 처음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귀찮아 죽겠어요. 제발 좀 안 틀렸으면. 안 틀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합니다. 부지런히 노력해가지고 한 번에 탁 끝나면 "이야! 잘했다!" 이렇게 합니다.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걸 안 틀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수행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움직임을 알아차리는데 중간에 탁 알아차림을 놓쳐버렸다, 그러면 그때부터 스톱을 하고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마음이 계속적으로 분발을 하게 되고, 또 분발하는 마음이 집중하는 마음하고 딱 결합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집중하는 힘들도 커지고 노력하는 힘들도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의 맨 처음은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려고 해야 됩니다.

꼭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행할 때도 마찬가지고 일상생활할 때도 마찬가지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듣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다 사띠한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탁 놓쳐버리면 다시 해야 됩니다.

누군가가 절친한 사람이 얘길했다, 그러면 잘 기억을 못하면 "어, 뭐라 그랬어? 다시 한번 얘기해봐" 그렇게 해가지고 다시 듣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움직임의 전체를 알 수가 있어야 되는데,

움직임의 전체는 시작하는 부분을 잘 알아야만이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보면 시작하는 것들을 놓쳐버립니다.

호흡을 할 때도 호흡은 한참 이미 시작이 됐는데도 그때 알아차려가지고 호흡을 관찰을 합니다. 경행을 할 때도 이미 뒷발은 들려있는데 들린 줄도 모르고 멍청하니 있다가 발이 휙 들릴 때 '들어올림' 하고 있다는 거라. 대부분은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됩니다.

시작 부분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시작 부분은 어떠한 경우든지 멈춰지는 게 있고 그러고 나서 시작 부분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시작 부분을 알려면 '멈춤'을 알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멈춰지고 시작이 되고, 멈춰지고 시작이 되고, 멈춰지고 시작이 되고, 하는 것들을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그게 안되면 강제적으로라도 해야 됩니다.

호흡이 있고 멈췄다는 걸 알고 시작을 하게 되고, 발도 멈췄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고 나서 발이 나아가는 걸 알고. 그래서 멈추는 걸 자꾸 알려고 노력을 해야만이 움직임의 시작 부분을 잡아낼 수가 있습니다.

수행이 잘 될 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이 잘 될 때는 그냥 그대로 알아차리면 되는데,

 

수행이 잘 안 될 때는 반드시 멈추는 걸 자꾸 해야 됩니다.

또는 대상을 놓쳤을 때, 대상을 놓쳤을 때는 먼저 대상을 찾으려고 하지말고 지금 멈췄다는 걸 분명하게 인식하려고 해야 됩니다.

마음에 대한 관찰을 분명하게 하면 대상을 놓쳤을 때 일어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럼 '어, 지금 무슨 마음이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나서 다시 호흡으로 탁 돌아가면 호흡하는 것이 탁 보여집니다.

그게 뭐냐면 멈춘 것을 아는 것입니다.

 

대상은 시작하는 부분을 분명하게 알려면 멈추는 걸 자꾸 볼려고 노력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부분을 알면 그 움직임들의 전체를 다 따라가게 됩니다.

처음 할 때는 그걸 변화하는 것들을 알려고 노력한다든지 어떤 느낌이 있는지 알려고 한다든지 그걸 할려고 하지 말고, 그 움직임을 그냥 그대로 따라간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움직임을 알아야 그다음에 다른 것들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의도가 있다는 것도 알고,

느낌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것이 변하는 것도 알고 하는 것이지,

그걸 하지 못하는 상황,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것은 전부 개념화돼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고, 처음 할 때는 앉아서 좌선하는 것보다는 경행하는 시간을 좀 많이 하도록 하고, 그리고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을 자꾸 알려고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것은 뭔가가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가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1페이지 마지막에 보면

「움직임의 '시작'을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내가 얼마나 그 움직임에 마음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시작을 분명하게 알면 그 움직임에 마음이 있는지 아닌지를 내가 분명하게 알게 된다 는 겁니다.

 

「또 움직임을 놓쳤을 때는 그 놓친 것을 알게 돼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노력하는 마음과 집중하는 마음 그리고 사띠가 균형을 맞춰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대상에 마음이 가있지 못하면 그건 수행해봐야 헛수행이 돼버립니다.

개념에 가 있다든지 아니면 몸과 마음의 밖에 마음이 가 있다든지 이러면은 수행은 진척이 없어져버립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일어나는 대상에 마음이 가있도록 해야 됩니다.

 

일어난 대상은 반드시 일어났으면 시작이 됐으면 끝나는 부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면 시작이 된 것을 분명하게 알고, 진행과정을 알고, 끝나는 것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도 수행 대상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신·수·심·법 이라고 하는 것들, 이 4가지 중에 어떤 것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고, 이 4가지 중에서 하나가 일어났을 때는 그것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것도 처음에는 움직임으로써 알려고 자꾸 노력하고,

느낌이 일어나는 것도 그 느낌이 움직임으로써 알려고 해야 되고,

마음도 마음이 지금 어떤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그 마음이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알고 사라지는 것들을 보게 되면 그것도 '움직임'이라는 것입니다.

 

움직임은 그것들이 변하고 있는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것을 알고 하는 것 그것이 '움직임'입니다.

마음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현상들이 일어나고 현상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느낌들이 일어나고 느낌들이 사라지고 하는 것을 보는 것,

여러 가지 행위들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들을 아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움직임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맨처음 여러분이 기본적으로 반드시 이해해야 되는 것들은, 그 움직임의 모든 과정들을 알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하라! 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

경행을 하다가 움직임을 놓쳤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다시 또 시작을 하는 거라.

저기까지 원래 가야되는데 가지 못하고 이 한두발짝에서 놓쳐버리면 다시 또 돌아와가지고 또 가야 되는 거라.

돌아올 때는 돌아오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오는 거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시작을 하는 거고, 계속적으로 그렇게 했을 때 마음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합니다.

 

마음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그 전체과정들을 알려고 했을 때 마음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힘들이 강해지면서 사띠도 더 오래도록 놓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수행에서의 첫 번째 부분입니다.

 

거기 2페이지에 보면 그러기 위해서,

모든 움직임을 알기 위해서 「좌선보다는 경행을 먼저 할려고 자꾸 노력을 하라.」

그렇게 돼있습니다.

경행은 다른 것보다 대상이 많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그 움직임들이. 그리고 그 움직임 들에서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들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마음이 무겁다, 대상에 착 가라앉는 느낌이 있다, 아니면 좀 잠이 온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경행을 좀 빨리 해야 됩니다. 가볍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고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둔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경행을 좀 빨리 할 것 같으면 마음이 활기를 찾게 됩니다.

 

몸과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것들은 경행이 가장 좋습니다.

그게 조절되지 않으면 마음은 대상에 가 있지를 못하게 됩니다. 대상에 가 있더라도 자꾸 벗어나게 됩니다.

그럼 끊임없이 '지금 뭘 하고 있지?' 하고 뜬금없이 또 알아차려야 되고, 그때 마음의 상태가 어떤 건지를 또 알아차려야 되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대상에 올려면, 자꾸 쳇바퀴 돌듯이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게 됩니다.

 

그게 수행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대상을 끊임없이 알아차리게 될 때, 수행의 진척은 빠릅니다. 마음이 자꾸 대상을 옮겨다니게 되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가지고 수행에 진척이 진전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정도의 집중력과 노력하는 힘들이 생길려고 할 것 같으면, 움직임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수행에서 분명하게 찾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또 어느 정도 수행을 해나가면 마음이 안정돼있다, 그럴 것 같으면 가볍게 걷는 것보다는 좀 더 천천히 걷는 것이 좋습니다.

가볍게 안정돼있기 때문에 좀 더 천천히 걸으면 대상들은 그마만큼 더 많아집니다.

'왼발' '오른발' 하던 것이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하나에도 3가지로 나눌 수 있고, 다시 또 6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12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계속적으로 늘어납니다.

대상이 늘어나는데 산만해지지 않고 마음은 아주 가벼워지고 또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게 민첩해지면 계속적으로 더 느려지는 것이 좋습니다.

 

호흡을 관찰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호흡은 느려집니다.

어느 순간에 아주 가볍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분명하게 보일 것 같으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멈춰지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분명하게 깨어있습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면서 고요한 상태가 돼있다는 걸 압니다.

그럴 때의 호흡은 점점 더 느려져가지고 거의 쉬지 않는 상태가 돼있다는 걸 압니다.

멈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움직임은 어떤 경우든지 생기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대상은 항상 있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렇게 천천히 하는 훈련들이 될 때까지는, 우선 처음에는 움직임의 전체과정을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전체과정을 알게 되면 움직임, 몸의 움직임이든, 마음의 움직임이든, 신체의 움직임이든, 이것들이 점점 더 느려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무조건 느리게 알려고 한다?

아니면 호흡을 아주 가늘게 할려고 한다?

그럼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전과정을 먼저 분명하게 알려고 하다 보면은,

자신이 경행에서 천천히 걸어야 되는지 좀 더 빨리 걸어야 되는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게 몇초 단위 정도로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되는 건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몸에 무리가 없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끊어지지 않게끔 될 때까지는 끊임없이 움직임의 전체과정을 자꾸 알려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면 전체가 다 느려집니다.

몸도 느려지고 마음도 느려지고.

느려진다 해가지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상 자체가 좀 더 알아차리는 것들이 그마만큼 많아져도 몸과 마음에 무리가 없어지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 상태가 될 때까지는 전체의 움직임을 먼저 알려고 하십시요.

그게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 움직임에도 단계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끔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2단계가 움직임의 단계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고 적어놓았습니다.

 

무리가 없는 상태에서 천천히 하게 될 것 같으면 단계들이 보입니다.

들어올리는 것은 나아감과 같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내려놓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본인이 분명하게 압니다.

왜? 나아가는 시작 부분을 알고, 나아가는 끝을 알기 때문에!

나아가는 끝이 탁 끝나고 나면 그게 멈추고 나서, 내려가는 시작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나아가는 과정과 내려놓는 과정들은 분명하게 다르다는 걸 압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느낌들도 다르지만 움직임도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천천히 하는 것이 되고 나면,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움직임의 단계를 알려고 해야 되지, 아직 움직임의 전체 과정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단계들을 구분할려고 할 것 같으면 뒤죽박죽이 돼버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그겁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하고 오른발이 다른 줄은 압니까?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왼발을 들더라도 오른발이라고 명칭 붙일 수가 있습니다. 별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다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다르게 알아차려도 큰 문제가 안 생깁니다.

이미 내려가고 있는데도 자신은 '나아감'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은 분명히 다른 데도, 이미 내려놓고 있으면서도 나아가고 있다고 하고, 그러면서도 발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지게 되는 거고, 나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려놓고 있다는 거라.

그거는 뭐냐면 아직 움직임의 전 과정들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게 돼서 일어나는 부작용들입니다.

 

마음을 관찰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어, 지금 무슨 마음이 일어났지?' '화가 일어났구나' 화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의 전체과정들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다음 마음이 불쑥 일어나는 거라. 그러니까 "화도 일어나지고 욕심도 같이 일어나지는데요" 이렇게 착각을 해버린다는 거라.

마음은 어떠한 경우든지 두 개를 동시에 일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가 사라져야만이 다른 것들이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그 전체과정을 알지 못하니까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착각을 해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움직임의 전 과정들을 먼저 분명하게 알려고 하라.

그러고 나서 그것이 되고나서 행동하고 말하고 그다음에 수행에서의 포지션들이 점점 더 가벼워지고 천천히 하게 될 때, 그때는 자연스럽게 그 움직임의 단계를 구분하는 상태로 넘어가지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움직임의 단계를 아는 것은, 그것들의 앞의 단계와 그다음에 오는 단계들이 분명하게 다른 것들을 알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알아야만이 앞에 단계들을 버려버리게 됩니다.

버려버리지 못하면 그다음 단계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화가 일어나더라도 화를 분명하게 알아차렸으면 그다음 단계에 뭐가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 그것이 일어나는 것들을,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이 일어나는 것들을 알게 되면 화를 버려버리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러면 나에게는 화가 없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욕심만 있을 뿐입니다.

 

단계들을 구분하는 상태가 되면 지금 현재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에 마음을 둘 수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앞의 움직임의 전체 단계를 알 때는 그 움직임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버려야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단계를 구분하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분명하게 이것을 집착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내가 버려야만이 다음 것이 내 것이 되고 내가 그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단계 단계가 다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상태까지 진행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조금 더 현재 일어나는 것들에 마음을 둘 수가 있게 됩니다.

 

그게 되고나면 그다음에 3단계는 의도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도 이 발이 걷고 있는 것이고, 이 몸에 횡격막이 수축 팽창하면서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들이지만, 이것들은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가 걷기 싫은데 걷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고 싶어가지고 그러한 욕망이 없는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 마음이 먼저 앞서서 마음이 그것들을 할려고 했을 때 그다음에 그것들을 뒷받침해주는 행위들이 일어나게 돼있습니다.

아무리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들이 있고, 나아가는 것이 있고 내려놓는 것들이 있다는 단계들을 안다고 하더라도, 나아가고 나서 내려놓을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멈춰있습니다. 멈추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그게 단계를 구분하는 상태가 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그 각각의 단계 마다에는 반드시 의도가 먼저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도가 있어야지만이 그다음 것들이 일어납니다.

 

수행은 이 세 가지만 기억을 하면 됩니다.

 

첫 번째가 1.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단계가 움직임의 단계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3단계는 의도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일상 생활은 모든 것들이 이렇게 돼야 됩니다.

그래서 안 될 때는 첫 번째 단계로 다시 돌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의도를 알았다고 해가지고 그게 익숙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의도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은 아닙니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경을 읽다가 틀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듯이, 처음으로 다시 또 돌아가도록 해야 됩니다.

반복적으로 이것들을 계속 하다가 보면은 이거 외에는 다른 것들은 안 할려고 합니다. 실제적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불필요한 것들을 자꾸 하게 되면은 그걸 자꾸 줄일려고 먼저 해야 됩니다. 불필요한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행하고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지게 됩니다. 한 번 보십시요.

일상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진짜 불필요한 것들이 거의 99% 입니다. 쓸데없이 근심걱정 만들어내고, 쓸데없이 뭔가를 행하게 되고, 쓸데없이 뭔가를 말하게 되고. 그런데 자신이 행하는 것들은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럼 또다시 그걸 강화하기 위해서 또 쓸데없는 것들을 또 해야 된다는 거라.

일평생 그러고 살아왔는데 인제는 좀 멈출 때도 됐지 않았느냐는 거라.

불필요한 것들을 되도록이면 줄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게 지금 1강에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될 부분입니다.

2강은 생략하고 다음 시간에 3강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힘이 좀 부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