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세상에 변하지 않는 4가지 법칙이 있다. (20220402)

담마마-마까 2022. 6. 16. 09:00

https://youtu.be/iBMKuF_Z31M

* 세상에 변하지 않는 4가지 법칙이 있다. (20220402)

(4:50이후부터 녹취하였습니다.)

 

아직도 스님 목이 완전하지가 않아가지고 오늘은 짧게 하겠습니다.

태국에서도 요즘은 탁발을 잘 못합니다. 워낙 이젠 방역들이 강해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절 안에 탁발물을 가져와가지고 공양을 차려주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비구스님들이 조리를 못하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스님들이 공양할 수 있게끔 해주는데, 아무래도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자기 집앞이나 마을 앞에서 하고 있다가 절에 오려니까 힘들거든. 그럼 아무래도 좀 짜증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보시를 올리는데도.

 

누누이 스님들이 얘기합니다. "재가자들은 보시를 올릴 때 보시 올리는 사람과 그리고 보시받는 사람과 보시 물품과 그리고 보시를 올리는 행위들이 청정해야 된다" 하는 얘기들을 합니다. "4가지가 청정해야만이 이익되고 공덕이 된다"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어쨌든 그게 잘 안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선 본인이 힘이 드니까 그렇게 합니다.

 

하루는 큰스님 한 분 하고 여러 스님들하고 같이 다른 곳에 공양청이 있어서 가는데, 태국은 우리나라 하고 다르게 마을이나 이런 곳에 통제하는 곳들이 참 많아요. 못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 마을을 돌아서 다른 집으로 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가는 스님들도 힘들다는 거라. 힘들다는 표현을 조끔씩 얘기를 하는데, 그 큰스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4가지 법칙이 있다.

 

가장 큰 것이 '깜마니야마(kamma-niyāma)', '깜마니야마' 라고도 하고 '깜마깜맛따' 라고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업의 법칙'입니다. 자신이 지은 행위들로 해서 자신이 받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조금 전에 보시 올릴 때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했으면 선한 결과를 받았을 건데, 짜증나고 하니까 선한 마음이 안 일어나는 거라. 그러니까 보시를 하면서 청정한 마음이 되지 못했으니까 자신이 악한 마음이나 아니면 짜증나는 마음이 생겼으면 그것에 대한 과보를 본인이 받게 되는 거라. 선한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 말고도 '우뚜(utu)-깜맛따' 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태어났으면 늙게 돼있고 죽게 돼있는 것.' 모든 것은 그런 이치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지 그걸 거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태어났으면 늙고 병들게 돼 있고 죽음을 맞게 돼 있고, 또 그것에 따라서 새로운 태어남을 받게 돼 있는 거고.

 

그리고 '비자(bīja)'라고 해가지고 그걸 보통 '씨앗'으로 얘기하는데, 씨앗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씨앗에 비유를 하면은 그럴 겁니다. 여기에 씨가 날아와서 탁 떨어지면 이게 발아가 돼가지고 큰 나무로 성장을 할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죠. 땅도 좋아야 되고, 적당한 기후와 물과 바람과 이런 것들이 맞아야만이 잘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는 씨앗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기는 한데,

 

여러분은 그런 것보다는 자신이 지은 행위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자신이 받는다는 것으로 알아야 되는 것이 오히려 더 합당한 이치일 겁니다. 악한 행위를 지었으면 악한 결과를 받게 돼 있는 것이지, 선한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는 겁니다. 그런 위험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래서 선한 결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선한 행위를 지어서, 그 선한 행위들이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도록 자꾸 해서, 악한 결과들이 드러나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이 '씨앗이라고 하는 법칙(bīja niyāma)'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좋은 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면 '찟따 담마따(citta dhammata)'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유한 성질의 법칙'입니다.

 

거기서 인제 큰스님이 지적한 게 뭐냐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마음은 생겼다가 사라지죠! 그것도 찰나 간에 생겼다가 찰나 간에 사라져버립니다! 그게 선한 마음이든 악한 마음이든. 여러분들 아비담마를 공부했으니까 마음이 89가지 가 있고 하는 그런 얘기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음들은 무엇을 조건으로 인해서 생겨났을까? 마음을 그냥 놔둬버리면은 그냥 생겼다가 사라져버릴 뿐입니다.

이게 지금 나무죠? 나에게 생긴 것은 '나무라는 마음'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나무라고 인식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걸 '책상이라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책상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럼 그 마음은 실체가 없는 마음입니까? 자기 고유의 것이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 고유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것도 아니고, 자기 것이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되거든. 단지 그 마음은 일어났다가 다른 것들이 일어나면서 사라져버리는 것뿐입니다. 찰나 간에.

 

그래서 보시를 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이나 그리고 보시 물품이나 할려는 마음들이나 이런 것들이 청정해야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이것도 다 '찟따 담마따'라는 영역에 속한다는 거라. 보시자도 그때 마음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거라. 물질적인 현상도 마찬가지고 마음도 마찬가지고, 그 보시하는 물품도 마찬가지고, 보시받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보시할려는 마음도 마찬가지고, 단지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뿐이라는 거라.

 

대상을 그렇게 봐야만이 그게 출가한 사람의 자세이지, 가는 길이 불편하다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그게 출가자의 마음이냐는 거라. 네가 있다는 마음이 오염돼있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도 일어나지 않느냐? 마음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자신이 인정을 해야 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보통 특히 수행자들은 화가 일어나면 화가 일어났다고 알아차리고 또는 욕심을 부리면 아니면 게으르면 게으르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이유를 들면, 오늘 울력을 좀 한다고 칩시다.

그럼 손이 더러워져 있습니다. 손이 더러워져 있는데 이걸 뭔가를 집었다, 이게 안 더러워집니까? 그래서 이게 여기 묻은 이 자국만 깨끗하게 치우면 손은 깨끗해지는 거냐는 거라. 손이 더러워져 있으면 손이 더러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손을 먼저 씻어야 되는 것이 먼저 해야 될 일이라는 거라. 그런데 이 손을 씻지는 않고 이것만 자꾸 닦아버리는 거라.

 

마음에 악한 마음이나 나쁜 마음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자꾸 제거할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기는 한데, 아예 그런 것이 일어나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라는 것은 근본적인 오염이 돼 있는 오염의 발생 원인인데, '나'라고 하는 것들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모든 것들을 볼려고 할 것 같으면, 사물이나 대상을 자기의 견해로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되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은 이미 더러워져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유신견이든 자아이든 뭐든 간에.

본인이 더러워져 있으면 빨리 그것을 깨닫고 아, 이걸 빨리 없애도록 노력해야 된다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본인이 더러워져 있든 아니든 그것이 본인이 본인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것은 이미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빨리 여러분들도 수행을 할 때 나쁜 마음이 일어난 것들을 내가 알아차릴려고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빨리 봐서 "집착할만한 대상이 아무것도 없고, '나'라고 하는 것들은 조건지워진 것뿐이다" 하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서 그 어떤 것들에서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꾸 만들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