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불기 2564년 까티나 축제_수행이 잘 안 되는 원인. 수계명 설명 (20211106)

담마마-마까 2022. 6. 15. 09:20

https://youtu.be/gIXEuydd1cM

* 불기 2564년 까티나 축제_수행이 잘 안 되는 원인. 수계명 설명 (20211106)

(31:25 부터 51:50 까지 법문을 설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수계 받을 사람 두 사람 있는데 두 분 다 왔어요? (예! 다 왔습니다.)

올해 같이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을 때라도 불교 역사에서 까티나 행사는 항상 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가 여러분들이 듣기에는 어떨런지 몰라도, 테라와다 불교가 이어져온 것은 상가에 의해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상가의 스님들이 없으면 테라와다 불교는 소멸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상가 스님들이 안거를 지내고 까티나 가사를 받지 않으면은 계율 위반입니다.

그 까티나 의식을 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은 그해 동안은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대로 외출도 못하고, 나가서 탁발해서 공양청을 받을 수도 없고, 또 이 가사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데 가서. 가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따로 있는데 전혀 허용이 안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은 이렇게 까티나 날짜를 지정해서 까티나 의식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불교역사에도 이것만을 가지고 하나씩 점을 찍어가지고 불교연대를 측정한 기록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기 2564년 이렇게 하는 것 중에 하나의 방법으로 까티나 가사를 치른 해에 점을 하나씩 찍은 표식이 발견되면서 어느 정도 아, 이게 부처님 입멸 후에 몇 년이 지났구나 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단위가 되기도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마만큼 까티나 가사 축제, 가사 의식은 테라와다 불교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그런 겁니다.

 

오늘은 수행을 잘하신 분도 있고, 잘하지 못한 분도 있고 하기 때문에,

수행이 잘 안되는 분들은 뭐가 원인이 있어 수행이 잘 안됐을까?

하는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뒤에 시간은 또 수계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짧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눈뜨고 있을 동안에 계속 사띠가 이어지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사띠가 다들 그러면 끊어져버리고 사는 거라?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한다고?

그걸 인제 부처님이 "게으름 피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뭔가를 열심히 했을 때 그것의 끝이 있을 경우에는 그거는 게으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하는 일들 중에 끝이 있는 것이 있어요? 수행을 제외하고? 수행을 하면 어쨌든 수다원이 되고 아라한이 되고 해서 이생에서 해야 될 일들을 다 끝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제외하고 밥을 먹는 거? 밥 다 먹고 나면 배부르면 끝난 거 같죠? 그런데 좀 있으면 배고프면 또 먹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들, 아이를 가르치고 기르고 회사생활을 하고, 끝이 있습니까? 죽을 때까지 끝나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끝이 없는 것들을 반복해서 해야 되는 것들은 생활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것이지만, 그게 여러분들이 주가 돼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것만 했을 경우에는 부처님은 틀림없이 “게으름 피웠다” 하고 얘기합니다.

인제 그만 게으름들 피웁시다 이! 그래도 그 하는 일들을 하면서 그것이 밥을 먹는 일이든 옷을 입는 일이든 회사에 일을 하는 일이든 사띠를 놓치지 않고 할 거 같으면 그것은 어쨌든 끝나는 부분입니다.

 

우리 선원 식구 중에서도 조금 조금씩 향상되어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그 생활 속에서 시간을 내서 수행을 할려고 하고, 그러면서 조금 조금씩 나아지는 부분들이 보여요. 어떤 경우에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띠가 그래도 거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아주 소수지만은!

적어도 그렇게는 돼야만이 어느 정도 게으름피우지 않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있는 형태가 되게 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하고 살까? 경전에는 세 가지로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첫 번째가 마나(māna)라고 하는 것, ()이라고 하는 아만(我慢) 자만(自慢) 그렇게 얘기하는 마나 부분입니다!

자꾸 비교를 할려고 한다는 거라. 나는 수행을 이렇게 했는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것이 맞다 틀렸다' 하고 자꾸 사리분별을 하게 되는 거라. 또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왜 나는 이렇게 수행이 안 될까?' 하고 또 사리분별을 한다는 거라. 어떤 경우에는 자아가 강했을 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아가 강해서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자아는 내려놔야 됩니다. 수행은 비교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수행합니까? 자기 자신이 수행합니다. 다른 누가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판단해서 '아, 사띠가 이럴 때는 끊어진다' 할 것 같으면 자신이 스스로 돌아보려고 해야 되는 것이고,

또는 내가 열심히 수행하는데도 진척이 없을 거 같으면 뭐가 문제인가 하는 것은 스스로 자꾸 돌아봐야 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사람들이 수행하는 법을 그대로 따라 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것들을 비교해가지고 자꾸 분석한다든지 이럴 것 같으면 사고는 될지는 몰라도 수행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가 뭐냐면 스스로를 의지하고 있긴 있는데 '나는 이만하면 됐어'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남들한테 나쁜 소리 안 듣고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수행만 해도 충분해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 시간을 정해놔놓고 그 수행 시간만 수행을 할려고 그러지, 나머지 일상생활에서는 전부 사띠를 놓쳐버리고 있다는 거라. 사띠해야 된다는 생각 자체를 까먹어버린다는 겁니다. 왜 스스로에게 만족을 하고 스스로에게 자꾸 비교를 하면서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나는 정당하다, 합리적이다’ 하고 판단을 내리느냐는 거라.

그런 것들도 반드시 배제를 해야 됩니다.

 

요점은 '마나'가 없이 살려고 할 거 같으면 지금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사띠하고 있는가, 없는가?만 판단을 하라는 거라.

사띠하고 있지 못할 거 같으면 일단 나는 지금 게으름 피우고 있다는 거라. 그리고 여무는 수행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쳇바퀴 도는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는 거라. 쳇바퀴 도는 삶을 계속 살고 있다는 거라. 결론을 짓지 못하고 끝이 없다고 할 거 같으면 그것은 수행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는 거라.

본인이 판단해서 조금 조금씩 향상되어 가는 것이 스스로가 보여야 된다는 거라. 그래야만이 조금 더 노력할려는 마음이 생기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또 힘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경전에는 마음의 침묵이라고 돼있습니다.

가끔 그런 경우들을 봅니다. 수행하면서 본인이 어떤 경험을 했을까 하는 걸 자꾸 사고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그게 필요합니다.

아, 내가 이런 걸 했기 때문에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스승에게 문답도 해야 되고, 또 스스로 기록해서 다음의 단계를 위해서 넘어가야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때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사띠하고 있었느냐는 거라.

 

깨달은 분들도 수다원부터 아라한까지도 사고는 합니다. 그런데 망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에 대한 것들을 사고를 하면서 대부분은 망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린다는 거라. '아, 내가 잘했어' 아니면 자기 스스로 그것들을 분석해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주관이 개입돼가지고.

그거는 망상이지 사고가 아니라는 거라.

사띠가 있을 경우에는 그것이 사고의 영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사띠하지 않고 사고를 한다? 그건 전부 망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그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냥 침묵해버리라는 거라. 수행할 때 말도 안 하고 말도 침묵하고, 몸도 안정되게 해서 침묵해야 되는데, 사고는 왜 침묵을 안 하느냐는 거라. 마음이 침묵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부분은 단계단계들이 크게 스님의 도움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사띠만 하고 있을 거 같으면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걸 보고하려고 하다 보니까 대부분 거기에 빠져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차라리 그런 단계보다, 특히나 12월 초순, 아직 날짜는 안 정해져 있지만, 12월 첫째주 토요일이 며칠이죠? 4일? 그거는 지나고 아마 갈 거 같네. 그거 지나고나면 스님이 또 태국 들어가서 한 3개월 정도 거기서 머물다 와야 됩니다.

여러분 문답도 잘 안 하지만은 어차피 스님이 없으면 문답도 안 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사고할려는 패턴들을 거의 바꿔라는 거라.

왜 그러냐면 대부분 보면 수행의 현상에 대해서 사고를 하다 보면 대부분 거기에 따라갑니다. 따라다니게 됩니다. 여러분들 망상했을 때 기억을 합니까? 망상이 한번 탁 일어났다가 탁 사라져버리던가요? 망상이 계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대부분은 보면. 왜 그래요? 일어나면 사띠를 했으면 그게 사라져버릴 건데 사띠를 못하니까 망상을 따라다니는 거라. 망상을 따라가면서 또 망상을 일으키게 되는 거고.

 

수행해서 진척이 있는 것은 금방 탁 떠오릅니다. 그것만 기억하고 끝내야 됩니다. 그걸 계속 따라가고 '아, 이래서 이렇지, 저래서 저렇지' 하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망상에 따라다니는 형태가 된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 공부 못하는 애들 보면은 굉장히 산만합니다. 왜 그래요? 다양한 대상을 따라잡는다는 거라. 그냥 그 책 보고 있으면 책을 보고 있으면, 되는데 이것도 봤다가 저것도 봤다가 손을 들었다가 눈도 깜빡했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다양한 대상을 따라다닙니다. 집중이 안 되면 공부를 못하게 돼있습니다.

 

수행도 꼭 마찬가집니다. 다양한 대상을 따라다니면은 수행은 거기서 스톱 돼버립니다. 그래서 사고를 할 때도 그속에는 반드시 사띠가 있어야 된다는 것들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게 안 될 때는 침묵하라!

전혀 그리해도, 수행문답을 못하고 하더라도 침묵만하고 사띠만 하고 있을 것 같으면 수행에서 문제 될 부분은 없습니다. 대부분은 그걸 잘 돌파해서 넘어갑니다. 그리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죽지도 않습니다. 다시 살아납니다. 그 부분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잘하면 사마디에서는 보통 텅 빈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상이 없는 것처럼. 그게 마음이 침묵하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적어도 그런 상태에까지는 도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대신에 하나 주의해야 될 것은 뭐냐면, 침묵하라 해가지고 모든 걸 차단할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육근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은 어떤 경우든지 그걸 막아버리면 안 됩니다.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은 그대로 받아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단지, 여기에서 주의해야 될 것은,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데, 알아지게끔 자꾸 할려고 합니다. 그걸 분석을 할려고 한다는 거라. 보이면 보인다고 알아차리면 되는데 보이고 나서 ‘저게 뭐지?’ 하는 생각을 가지니까 이게 ‘무슨 꽃이다 무슨 꽃이다’ 하게 되는 거라.

 

내가 이런 패턴이다 해가지고 눈을 자꾸 감으면 어떻게 돼요? 이 대상을 만나면 이 대상을 모릅니다. 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해야 될 것은 마음의 침묵을 한다고 해가지고 육근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들,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그걸 다 막아버릴려고 해서는 안 되고, 일어나면 그것을 반드시 그냥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생각이 일어났으면 '생각'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생각이지?' 하면서 '이게 왜 일어나지?' 이렇게 발전시키지 말고, 생각이 일어났으면 '생각'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만 할 거 같으면 여러분들에게 마음의 침묵이 유지되면서, 마음의 침묵이 유지되면은 마음이 굉장히 밝아지고 맑아지고 가벼워집니다. 대상이 금방금방 알아차리면 사라지고 알아차리면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 상태가 되도록 해야만이 대상이 나에게 다가와집니다. 실제 일어나는 대상이 나에게 다가와집니다.

 

그다음 세 번째, 경전에서는 방일하지 마라하는 겁니다.

아까 얘기했죠. 알아차림이 없으면 방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이 없는 것일 거 같으면 그것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상으로는 불교에서는 그것을 방일하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본인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는 본인이 스스로 자꾸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조금 더 여무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수행을 하고 있다는 미명하에 아만도 그냥 가지고 있고, 마음의 침묵도 없이 사고를 하고 있고,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사띠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건 수행하는 방향이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열심히 노력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항상 명심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후 수계의식이 진행됩니다.

 

<수계자 빨리어 수계명 설명> (1:03:55 이후부터 )

두 사람은 수계스승이 빤냐와로입니다.

장복숙님은 수계명이 담마라띠입니다. 따라서 해보십시오. 담마라띠. (담마라띠)

그다음에 이홍정님은 수계명이 담마딘나입니다. 담마딘나. (담마딘나)

 

* 담마라띠(Dhammarati) :

담마라띠는 빨리어 경전에 보면

"삽바다나 담마다나 지나-

삽바라사 담마라사 지나-

삽바라띠 담마라띠 지나-" 그렇게 나옵니다.

"모든 베푸는 것 중에 중에 법보시가 최고이고,

모든 맛 중에 법의 맛이 최고이며,

모든 즐거움 중에 법의 즐거움이 최고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법의 즐거움을 누릴려고 할 것 같으면 법의 맛을 분명히 봐야 됩니다. 그리고 법의 소중함도 알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법의 소중함을 알고 법의 맛을 보고 나면은 그 법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다 하는 뜻입니다.

그럴려면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상태에 도달해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띠가 자동으로 될 수 있는 상태까지는 도달해야만이 법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본인이 판단해서 아직 덜됐다 싶으면 더욱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고, 도달했다 할 거 같으면 그냥 법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서만 머물지 말고 빨리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자꾸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 담마딘나(Dhammadinna) :

이홍정님은 담마딘나입니다. 담마라는 용어를 가지고 지어주는 것을 좋아해서 그중에서 그래도 가장 맞춤이 담마딘나입니다.

담마딘나는 비구스님으로서 굉장히 유명한 스님입니다.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스승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무서움을 일으키게 해서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들어준 것으로도 유명하고, 법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남에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도 유명한 스님입니다.

이홍정님은 본인이 공부를 경전 공부는 참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런데 경전공부 해가지고는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전공부 한 만큼 본인이 반드시 수행실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담마딘나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두 사람 수계명을 가르쳐줬습니다.

스님이 인정하는 게송을 할 동안 합장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