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8 붓다야나선원법문

성냄을 다스리는 법 (20180323. 대구)

담마마-마까 2022. 8. 4. 20:28

https://youtu.be/WUW-wg5pmiQ

* 성냄을 다스리는 법 (20180323. 대구)

 

오늘은 「성냄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짧게 하고 다른 스님들이 간단하게 법을 좀 전하고 그리하겠습니다.

 

성냄의 종류에는 뭐가 있을까?

성냄이 있을 거고, 그게 강한 분노든 아니면 조그마한 것이든 어쨌든 성내는 것들이 해당이 되고, 또 뭐가 있을까? 짜증 부리는 것, 싫은 마음들, 또 뭐가 있을까? 후회하는 것, 인색한 것, 질투하는 것, 그런 건 경전에 다 있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 두려움들, 미워하는 것들, 고민하는 것들, 또 하나는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 사회에 대한 적응이든 가족에 대한 적응이든 뭐 모임에 대한 적응이든 어떤 경우든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다 성냄의 영역에 속합니다. 참 많죠?

(수행자 질문 : 폭력이 수반된 것도...)

그것도 성냄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것은 브야빠다 라고 해서 강한 성냄입니다. 행동으로 폭력을 쓰든 아니면 마음에서 이미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솟구치든 그것은 강도의 차이이지 똑같은 영역에 속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일어나지던가요?

성이 났다, 그럼 먼저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내가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든 간에 대상을 아예 까마득하게 잊어버립니다. 아니면 다른 일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마음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잘 못하게 되든지 중지를 하게 되든지 실수를 하게 되든지, 일차적으로 먼저 마음이 흐트러져버리게 됩니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마음이 흐트러지고 나면 틀림없이 몸에서는 반응이 일어납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든지 호흡이 가빠지든지 얼굴에서 경련이 일어나든지 뭐든지 일어납니다.

 

사실은 이 과정들을 지켜봐가지고 알아차리면은 그다음엔 화를 잡을 수가 있는데 대부분은 이 과정들을 잘 모르고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대부분은 뭔가 말이든지 아니면 싫어하는 마음이 탁 일어났다든지 아니면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든지 그러고 나서 인제 알게 됩니다. 이미 그때에는 그걸 잡기에는 조금 힘이 들어버립니다. 물론 그때 잡을 때의 방법들을 주석서에는 갖가지 방법들을 설명을 해놓기는 해도, 적어도 여러분들이 수행자라고 할 것 같으면 일어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고 그것들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겁니다.

 

냐냐뽀니까 스님의 책에 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경전을 근거해서 물론 썼는데, 좀 창작돼가지고 써놓은 게 좀 있어요. 뭐냐 하면, 그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먹이를 뭐로 가지고 먹고 살아요? 음식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화를 내는 성냄을 먹이로 먹고 사는 무리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그 무리는 여러분들이 화를 내면 낼수록 세력이 더 강해질거고 그 대신에 여러분들은 점점 더 화를 콘트롤 하기가 힘들어져버리게 됩니다.

 

화를 내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습니다.

명예를 훼손했다든지 뭔가를 잃어버렸다든지 이런 세간법으로 인해서 화가 일어나기도 할 거고, 아니면 감각적인 욕망이 일어났을 때 화도 같이 동반되기도 할 거고, 방법(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쨌든 그런 것들은 대부분 보면 화를 더 낼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어졌고 또 그것들이 어찌 보면 여러분들이 화를 콘트롤 하는 것들을 점점 더 약화시켜주는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달리 얘기하면 화를 먹고 사는 무리가 틀림없이 있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화를 먹고 사는 게 여러분들 화만 먹고 살까? 갖가지들을 먹고 살겁니다. 천상에 있는 신들한테도 화가 없다고는 얘기를 못합니다. 여러분들보다 덜 내는 것뿐 인 것이지. 그분들도 윤회하는 세계에 있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라. 그러면 천상의 무리들의 화도 먹이가 될 수 있는 거고, 고통스러운 세계에 있는 무리들은 화가 더 많지 행복한 마음이 더 많겠어요? 그러니까 그 무리들의 화를 먹이로 해서 살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그 무리들이 먹이로 삼고 있는 게 이런 성냄이라고 할 것 같으면 적어도 그걸 알 수 있는 부류는 여러분밖에 없다는 거라.

천상신들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고, 물론 천상의 우두머리 정도 될 것 같으면 그것을 잠재우는 법을 알아서 잠재울 수는 있지만 여러분들 같이 ‘아, 이게 나를 먹이로 삼고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성냄으로 인해가지고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견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싸움해가지고 이겼을 거 같으면 자기가 이긴 것처럼 보이고, 전쟁에서 이겼을 거 같으면 승리했다고 할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오는 피해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입는 정신적인 피해들은 어떡할 거라? 잠깐의 그 기뻐하고 승리하는 그것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어야 되느냐는 거라.

 

왜 그렇게 될까? 그런 여러 가지 전쟁들이나 다툼들이나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성냄은 왜 그렇게 일어나게 될까?

대상을 대상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대상과 대립할려고 하는 것들 때문에.

성냄은 그것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여러 가지 종류가 있든지 간에 그것을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그것과 대립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잠재우기 참 수월합니다.

 

뭐가 가장 다스리기가 쉬울까?

성냄의 종류 아까 얘기했지만 초조부터 해가지고 불안, 또 성냄, 미워하는 것, 인색한 것, 참 많은데 뭐부터 다스리기가 참 수월할까? 여러분은 어때요? 뭐가 가장 수월하든가요?

스님의 경우에는 불안감이 더 다스리기가 수월합니다. 불안한 것이 사라지면 성냄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크게 요동치는 법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눈 많이 왔죠? 제가 있는 웅촌은 도로가 차단이 됐어요. 아예 차가 이틀 동안 다니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이 나가지도 못하고, 밑에 마을은 괜찮은데 위에 마을은 그랬습니다. 이틀 동안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부니까, 나중에 되니까 옆집 사람이 왔더라고 저쪽 밑에 있는 사람이. 못 있겠다는 거라. 바람 소리가 너무 세가지고. 아무도 오지 않는데 뭐를 그렇게 무서워하냐니까 못 있겠다는 거라. 그래가지고 그 사람은 걸어서 마을 밑으로 내려가더라고. 그런데 스님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거라.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내 혼자서 눈을 쓸면서 자연하고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은 거라. 두려워하는 것들이 없을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조그만한 거라도 두려운 것이 일어났으면 두려움의 실체를 보지 못하면 그것에 탁 생각이 휩쓸려버립니다. 애들이 꼭 귀신 얘기 듣고 나면 그날 밤에 꿈꾸면서 오줌싸고 하는 것하고 꼭 마찬가집니다. 어른이 되었다 해가지고 그것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형태로서 두려움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의 실체를 보면 크게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생각일 뿐인데, 그 생각이 사라지는 것만 정확히 보기만 하면 두려워하는 것들이 사라져버립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성냄은 많이 감소돼있습니다. 실제로.

 

또는 출가한 스님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여러분들 같으면 뭐가 하기 수월할까?

인색한 부분들을 다스리기가 참 수월할 겁니다. 오늘 스님 세분 온다 했으니까 공양물도 훨씬 더 많이 만들어야 되고 또 봉투 넣는 사람은 봉투도 하나만 하면 되는데 봉투도 세 개 해야 되고, 그게 부담스러운 사람은 못 와요.

그런데 가진 것들을 내가 아까워하지 않고 스님들한테 올린다는 생각을 가질 거 같으면 와서 기쁘게 올릴 수가 있는 거라. 간혹 그중에는 다음에는 스님들이 많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색함은 나누는 것으로서 베푸는 것으로서 많이 감소시켜줄 수가 있습니다.

그게 생활화되어있으면, 물론 출가자하고 다르게 재가자들은 너무 베풀어도 문제가 되지만 출가자들은 그게 크게 문제가 안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살 수 있는 무리들이기 때문에. 베풀고 나서 베풀었다는 생각조차도 탁 잊어버릴 것 같으면 베풂이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베푸는 습관을 한번 가져보십시요. 그러면 성냄이 일어나는 것이 참 많이 감소되었다고 할 겁니다.

 

또 여러분들이 하기 쉬운 것들이 뭐가 있느냐면 생각하는 것들을 뭐든지 좋고 긍정적인 것들로 하는 거라. 긍정적인 생각만 많이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서 아니면 그 대상에 대해서 좋은 것들을 할려고 하고 좋은 말들을 자꾸 할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성냄이 일어나는 것들이 많이 감소되어집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그런 것들을 자꾸 많이 할려고 해야만이 성냄이 일어나는 것들을 다스려나갈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써놓은 것들은 실질적으로 수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것들, 그리고 주석서에서 써놓은 것들, 또 스님이 경험한 것들에 대한 것들을 쭉 적어놓은 것들입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것만 얘기를 하겠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부분들,

성냄이 있으면 성냄이 있는 것들을 먼저 분명하게 알아차려라.

두 번째는 어떠한 경우든지 성냄이 말이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게끔 꽉 붙잡아두어야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러한 마음들을 자애의 마음으로 바꿀려고 자꾸 노력하라.

세 가지 패턴들로 적어 놓았습니다.

 

성냄이 있을 때 성냄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

보통 성냄이 확 일어나고 나서 성냄이 있다고 알게 되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성냄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까?

(수행자 대답...)

물론 사띠하고 있으면 사띠가 예리해져있으면 성냄이 일어날 때 분명하게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띠가 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답은 사띠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험들이 있어야만이 성냄이 일어날 때 성냄이 일어난 걸 알까? 경험들이 중요합니다.

(수행자 대답...)

그것은 이미 성냄이 한창 진행되고 나서의 일입니다. 대상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뭔가를 붙잡고 있는 겁니다. 그건 성냄의 다른 영역입니다. 본인은 그것이 나쁜 거고 나쁜 마음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반드시 수행자들이 해야 되는 것은,

대상이 변하지 않을 거 같으면

, 내가 성냄이 알아차리는 마음에 같이 있는지,

아니면 집착하는 마음이 같이 있는지,

아니면 게을러지는 마음이 같이 있는지분명하게 볼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대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틀림없이 세 가지 마음들 중에 하나가 결합이 돼있습니다. 그걸 자꾸 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들이 수행하면 대부분 초보자들이 경험하는 것이 뭐냐면 , 스님 수행하다 보니까 배가 뽈록뽈록합니다.” 아니면 배에서 뭔가 바람이 휙 통하듯이 뭐가 바람이 부는 느낌이 듭니다.” 갖가지 현상들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현상들은 알았는데 그 현상들이 성냄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는 생각들은 못 한다는 거라. 그러한 현상들이 있을 때 , 이게 성냄이구나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많이 노력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성냄이 일어났을 때 성냄이 일어나는 것을 정확히 보지를 못하는 거라.

갖가지 대상들이 일어난다, 가장 좋은 것은 대상이 저절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면 되는데, 대부분은 보면 그것이 갖가지 현상들로서 보입니다.

 

탐·진·치가 없는 마음에서 사띠하는 마음만 분명하게 있는 상태일 거 같으면 대상은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밖에 안 보이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띠의 능력에 따라서 천천히 변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사라지는 것만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주 빠른 속도로 해서 따라잡지 못할 정도가 될 때도 있고 하지만은, 어쨌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보입니다, 대상이.

그래서 그 어디에도 그것들에 집착할려고 하는 마음들은 없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데, 대부분 그렇게 보지 못하고 현상들로서 보게 되는 거라.

기뻐하는 거라. 아, 내가 수행하는 것이 너무 좋다. 그러면서 수행에서 갖가지 대상들이 일어나고 하는 것들이 보인다는 거라.

 

수행은 대상들이 잘 보인다고 해가지고 그것이 수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각적인 욕망에 휩싸여가지고 그것이 강화된 사람들은 성냄이 일어나는 것이 쉽듯이, 수행에서 자꾸 현상들만 자꾸 보이게 된다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탐·진·치가 강화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라, 다른 한편으로는.

현상들을 많이 볼려고 하지 말고 무상··무아의 성품들을 분명하게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수행의 답은 그겁니다.

 

사띠하는 게 왜 사띠를 하는데? 대상에 집착하는 것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보기 위한 겁니다. 이게 ‘아, 참 무상하구나’ 하는 것들을 알고 ‘아, 이것이 참 불만족스럽구나’ ‘이것들은 자연적인 성품이라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구나’ 하고 분명히 알려고 자꾸 하지 않고, 그것들을 강화시킬려고 하지 않고, 현상들만 자꾸 쫓아가게 되는 거라.

배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들, 또 정신적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들, 그 니미따든 기쁨이든 평화로움이든 그 현상들만 자꾸 쫓아갈려고 하는 거라.

 

현상은 대상일 뿐입니다.

배도 하나의 대상이듯이 그것들도 하나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 대상들은 반드시 똑같이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 그 대상들을 다시 무상 고 무아로 볼려고 해야 되지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 대상을 붙잡는 순간 나에게는 성냄이 강해지고 탐욕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을 할 때 대상을 자꾸 있는 그대로 봤을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자꾸 경험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봤을 때 어떠한 현상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안 일어나집니다.

성냄도 성냄을 분명하게 대상으로서 보게 됐을 때 성냄이 사라지는 걸 보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성냄이 일어나는 것들이 적어지게 되고 빨리 다른 것으로 대처하게 된다든지 더욱 나아가면 아예 성냄이 없는 마음이 지속되게끔 됩니다.

 

성냄을 다스리는 법은 실제적으로는 딱 하납니다.

성냄을 대상으로서 분명하게 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 대상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 됩니다.

 

10페이지나 되지만 이것을 한번 쭉 읽어보십시요. 여러분들 수행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적어 놓았기 때문에 ‘아, 이럴 때는 이렇게 대처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볼 수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스님은 여기까지 하고 다른 스님들 얘기도 좀 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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