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쓸데없는 반응을 막는 방법 (20220806. 우안거 탁발법회)

담마마-마까 2022. 9. 18. 13:18

https://youtu.be/ukbnYtwmoEA

* 쓸데없는 반응을 막는 방법 (20220806. 우안거 탁발법회)

(5:50 이후부터 녹취하였습니다.)

 

오늘은 「쓸데없는 반응을 막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우리 선원에 수행자들 중에 조금만 더하면 결과가 나올 거 같은데 안 나오고 계속 그자리에 맴돌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보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먼저 한마디를 좀 하겠습니다.

 

"어떠한 경우도 세속적인 생각이나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라!"

 

삼매에 들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깨달음의 단계에서 어느 정도 상카루뻭카냐냐에 도달할 때가 되면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예를 들면 이 앞에 꽃이 있죠. 때가 되면 꽃이 지거든요. 그러면 세속적인 언어로 하면 꽃이 지면 '꽃이 지었다' 하고 압니다. 그런데 세속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하라는 얘기는 뭐냐면, 이걸 보고 '참 무상하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말을 할 때도 일반적인 대화하는 식의 대화를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냥 통상적으로 '밥 잘 먹었느냐?' '어디 가느냐?' 아무 의미 없는 것들입니다. 일절 그걸 중단하도록 해야 됩니다.

 

차라리 그렇게 말할 동안에 마음속에서 담마에 대한 것들을 자꾸 숙고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담마에 대한 얘기, 법에 대한 얘기가 아니면 안 할려고 자꾸 습관을 들여야 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면, 지금은 대장장이가 그렇게 많지가 않은데 대장장이 같은 경우에는 쇠가 달구어지고 나면 이 쇠를 정제할 때까지는 딱 시간이 정해져있습니다. 3분이면 3분, 5분이면 5분 그 시간 동안에 이걸 어떤 식으로든 쳐가지고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원하는 강도를 만들어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건 다시 또 달구어야 되는 거라.

 

수행에서 일정한 부분에 탁 도달할려고 하는데 하지 못하는 건 대부분이 보면 계속해서 쳐야 되는데 치지 못하고 중단을 해버리는 거라. 담마에 대해서 자꾸 고려하고, 무상·고·무아라고 분명히 자꾸 알아차릴려고 하고, 세속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되는데 세속적으로 반응(자극)들이 있을 거 같으면 그냥 거기에 대해서 반응들을 해버리는 거라.

 

그런 습관이 자꾸 되다 보니까 수행하면 일정한 수준에서 탁 넘어가야 될 때 두려운 거라. 겁이 나는 거라. 죽는 법은 없으니까 그냥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넘어서야 됩니다. 그 단계에서는.

 

스님도 그런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하면 되는데, 조금만 하면 되는데' 하면서도 못 넘어가지는 거라. 그럴 때마다 스승님이 하는 얘기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불에 달구어진 쇠를 달구는 대장장이라고 생각해라. 지금 하지 않으면 이 쇠는 다시 달구어야 된다."

 

수행하다 일정 수준에 가서 자동적으로 사띠가 되지 못하면 다시 또 미끄러져 버리는 거라. 그럼 다시 또 해야 돼. 계속적으로 그걸 반복하고 있다는 거라.

마음에 경각심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수행이 잘 돼나갈 때, 잘 안 돼나가면 몸이 피곤하면 좀 쉬기도 하고 마음이 번잡하면 또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기도 하고 이렇게 조절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일단 마음은 고요하고 안정은 돼있는데 그 이상을 넘어가지지 못하는 거라.

 

그게 마음속에서 담마에 대해서 마음을 확고하게 가지고 담마 이외에는 일절 생각하지 않고 담마 외에는 일절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다음에 마음속에서 ', 이게 잘못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

 

그 두 가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딱 다급하게 먹어야 됩니다.

불에 달구어진 쇠를 달구는 대장장이라고 스님은 생각하라고 합니다. 언제 쉴 시간이 있고 언제 때가 됐다고 밥 먹을 시간이 있어? 지금은 우선은 이 쇠를 두드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도, 자꾸 그걸 놓쳐버리는 거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만 놓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자꾸 사고쪽으로 빠지고 망상쪽으로 빠져버리는 거라. 그래서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그런 분들이 수행문답을 해보고 하면 몇몇이 보여요.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을 다급하게 먹고 그 상태를 넘어서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쓸데없는 반응을 막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반응이라는 건 뭐죠? 외부적인 자극에 대한 것,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들입니다. 그거에 대해서 대응하다 보면 분노가 일어나기도 하고 아니면 「나」라고 하는 것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렇게 돼버립니다. 그게 밖으로 표출돼버리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반응을 한다는 것 자체는 이렇게 마음을 먹어보십시요. "마음이 새어나가는 것과 같다." 하는 겁니다. 풍선에 바람이 새어나가듯이 마음이 새어나가는 것과 같다 하는 겁니다. 마음이 새어나가면 갑자기 그걸 복구하려면 힘이 듭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조금만 누가 툭 건드려도 바람이 푹 빠지듯이 되면은 그 공은 결국엔 못쓰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것 중에, 그런 반응을 하고 있는 것 중에 꼭 그렇게 쓸모있는 것들이 있어요?

스님도 지금은 투지폰이 부서져가지고 안 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데, 스마트폰 기능이 그냥 투지폰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뭐 카톡을 해, 뭐 페이스북을 해, 뭘 해? 아무것도 안 하거든. 그냥 전화 오면 전화 받고 전화 걸고 메세지 오면 메세지 받고 메세지 보내고 이 기능 외에는 안 합니다. 그 외에는 스님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한번 보십시요. 얼마나 자극이 많습니까? 과연 그게 다 필요할까? 그런 자극들이? 그게 없으면 뒤쳐지는 것 같죠? 옛날에는 마음이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어요. 적어도. 게으름을 부리든 잠을 자든 뭘 하든 마음이 쉬는 시간이라도 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피시, 뭐 하면서 마음이 쉬지를 못하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마음을 조련하고 마음을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들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는 거라.

?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 길들여지지 않으면 반응하게 돼있습니다. 그게 기본 원리입니다.

그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적으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살게 되는 거라. 어떨 때는 스님도 가다가 보면 길가인데도 그냥 스마트폰 하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길 갈 때는 그냥 걸어가면 좋을 건데, 걸어가는 것만 알아차리기만 해도 바쁠 건데, 그 두 가지를 다할려고 하는 거라. 그래서 누군가가 경적을 탁 울리면 깜짝놀랩니다. 두 가지를 다 못하고 있다는 거라.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는 것이 '뭔가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마음에 충족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충족되는 법은 없습니다.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없습니다. 만족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한번 가만히 보십시요. 끊임없이 자극을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마음은 더 많은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이거 다 싫증이 나도록 신물나게끔 다하고 나면은 이건 안 하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또 다른 식으로 반응을 하게 돼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요구를 하고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이걸 불교용어로 갈애라고 그럽니다. 갈망하고 원하고 하는 것들을 계속적으로 가지는 것. 갈애가 있으면 수행을 하는 방향하고 정반대의 방향으로 자꾸 나아가게 됩니다. 조금씩들 여러분들 생활패턴들을 바꾸어줄려고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패턴으로만 계속 가면 그냥 길들이지 않는 마음 그냥 그대로 따라가게끔 되는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로 수행을 하다 보면 마음에서 '아, 참 내가 잘하고 있다'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만족감이 드는 상태가 돼야 되는데, 뭔가 욕심을 내면서 그것으로서 만족감을 만들려고 합니다. 만족감이라도 그것은 마음의 만족과 욕심의 만족은 경우가 다릅니다.

하나는 멈출 수가 있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평온하게 지낼 수가 있지만, 반대쪽은 멈출 수도 없고 그것으로 인해서 고요해지지도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자극을 자꾸 구할려고 하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자극을 구하면 구할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또 욕망은 더더욱 커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오는 여러 가지 정보나 자극들을 자꾸 더 원하게 되는 거라. 그러다 보니까 하나만 가지고는 만족이 안 되는 거라. 그러니까 두 가지 일을 아니면 세 가지 일을 하게 되는 거라.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하게 되는 거고, 밥 먹으면서 수다를 떨어야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만족을 못하는 거라. 왜? 욕망이 자꾸 만족을 부추기는 거라.

 

그런데 마음이 그런 반응을 하는 것들로 인해서 편안한 것을 자꾸 추구를 하다 보면 그렇게 바뀌지만, 다시 한번 잘 생각을 해보면 내가 수행하면서 조금 길들여졌을 때 마음이 편한 상태들이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대상을 알아차리면서 거기에 집중함으로 인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지는 상태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억지로라도 그렇게 대상에다가 마음을 갖다 붙이면서 그것을 알아차릴려고 사띠할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은, 어쨌든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따라갈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여러분들이 자꾸 조절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어떠한 경우든지 하나에 집중하는 훈련들을 자꾸 해보십시요.

두 가지를 동시에 자꾸 할려고 하지 말고, 하나에 집중할려고 해보십시요. 뭔가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일에만 집중할려고 해야 되지 일하면서 자꾸 말 할려고 하지 말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되고 또 대화들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욕망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자꾸 나아가면 그 마음은 길들여지지 못합니다. 두 가지 일을 바쁘니까 같이하면 빨리할 거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틀리는 경우들을 참 많이 봅니다.

 

그게 실패로 돌아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거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게 실패로 돌아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도 그렇게 할려고 합니다.

그러지 말고 하나만 집중해서 한번 해보라는 거라.

마음이 하나에 집중하면 마음이 욕망의 굴레로 빠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고요한 쪽으로 자꾸 흐르게 된다는 겁니다.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면 더더욱 집중하게 되고 그 일에서 능률이 더더욱 오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외부적인 자극이 자꾸 오고 마음이 갈등을 하더라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들은 여러분들이 자꾸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요.

반응하지 않는 마음을 연습하는 첫걸음은,

지금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정리하는 것.

뭘 할려고 하는 거죠, 지금? 걸어가는 겁니까? 그러면 걸어가는 거라고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러고 걸어가야 됩니다. 지금 마음이 걸어가면서 뭔가 다른 것을 또 할려고 한다?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파악을 해야 됩니다. '어, 이건 아니지. 하나에 집중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하나에 집중하는 거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요.

지금 일어나는 마음의 반응이 어떤 건지를 한번 보십시요.

감정인지 아니면 감각인지 아니면 사고인지 그거 한번 구분해보십시오.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뭔가 싫은 느낌인지, 아니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그냥 망상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뭔가 자꾸 생각을 굴려가지고 뭔가를 할려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이게 욕심이 있는지 아니면 분노가 있는지 아니면 망상하는 것인지 하는 것들로 구분을 해봐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파악을 하지 않으면 그걸 계속적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을 계속적으로 따라가게 되고, 분노가 일어나면 분노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잘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감각· 감정· 사고 중 하나로 분명하게 구분하라. 쓸데없는 감정이나 사고 · 생각하고 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런데 휩쓸리지 않도록 자꾸 만들어라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 욕심이 있는지 분노가 있는지 망상이 있는지 하는 것으로 구분하라. 나누어라는 거라. 거기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욕심에서 일어나는 반응들, 아니면 분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 그 반응들이 일어나는 것들을 차단을 해야 됩니다.

분노가 일어나면 남에게 싫은 마음이 일어나게 돼있는 거고, 욕심이 일어나면 뭔가를 또 행동을 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그 실재하는 것들을 나둬버리고 망상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일어나는 괴로움들은 참 많습니다. 그러한 습관으로 자꾸 빠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이 뭔지를 분명하게 자꾸 나누고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어떠한 경우든지 감정이 일어나든지 욕심이 일어나든지 아니면 분노가 일어나는지 이럴 것 같으면 느낌이 있습니다, 몸에서. 앞에 부분에서 분명히 나누었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이 있습니다. 그 감각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스님 같은 경우에는 한참 공부하고 할 때 가슴을 참 많이 봤습니다. 가슴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노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눈이 파르르 떨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고, 또는 입술이 딱딱해지는 것들이 있을 수가 있고,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가슴, 심장이 있는 데, 심장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이 가장 빨리 일어납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다른 반응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재빨리 가슴의 느낌·감각을 보면 그 감각이 어떤 감각인지 분명하게 구분을 하게 됩니다. 뜨거워지든지 아니면 떨리든지 쑤시든지 할 것 같으면 즉시 그것들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관찰을 하면 그게 사라집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자신이 일어났던 감정이나 아니면 망상이나 아니면 분노를 보면 그 분노는 사라지고 없는 게 딱 보여버립니다.

 

쓸데없는 것들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가슴의 느낌·감각을 관찰하는 것이 참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에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아직 예리하지 못해서 그게 안 된다 할 것 같으면 차라리 복부·배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배가 일어나고 꺼지고 하는 것을 보면서 감정이나 분노가 일어났을 때의 복부의 느낌은 고요하고 편한 상태에 있을 때의 복부의 느낌하고는 다릅니다. 빨리 그 느낌들을 캐치를 해야 만이 정확하게 사띠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사띠라고 하는 것은 그런 반응들이 일어나지 않고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것들입니다. 자칫 착각해버리면 분노가 일어나면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사띠한다고 착각을 해버린다는 겁니다. 배가 갑자기 딱딱해지면 그 딱딱해지는 것을 관찰한다고 알아차린다고 잘못 착각을 해버린다는 겁니다.

그것은 분노가 일어나서 생긴 현상인데, 분노의 현상인데 그걸 사띠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버린다는 거라. 그거는 풀어줘야 되는 것이지, 그것은 사띠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반응하지 않는 연습들은 여러분들이 지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한 훈련이

첫 번째, 어떠한 경우든지 하나씩 하라.

하나에 집중하는 훈련들을 지속적으로 계속 해야 됩니다. 마음은 자꾸 두 개를 할려고 하고 빨리빨리 할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현대 사회에서.

그럴 때마다 꾹 그 마음을 눌러야 됩니다. '나는 하나만 할거야' 그러고 하나만 집중해서 자꾸 하는 거라. 하나가 집중되면 그것이 점점 빨라지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러면 그 집중하는 것이 '아, 맞구나' 하는 것들이 내가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이게 맞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마음은 또 금방 여러 개를 할려고 하게 되고 번잡하게 왔다갔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배를 지속해서 관찰하면 되는데 관찰하는 것이 안 되고 계속적으로 마음이 조그만 자극에도 반응을 하게 되니까 여러 가지들을 사띠를 하는 것처럼 자꾸 흩어져 버리는 겁니다.

별 의미 없는 것들은 그냥 버려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데에 그냥 집중을 하면 됩니다. 소리가 들리든지 뭐가 보이든지 별 의미 없는 것들, 그냥 무시해버리고 그냥 걷는 데다 집중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는 훈련들을 꾸준하게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망상에 반응하지 말아라.

망상은 대부분 기억입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든 아니면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든 그거는 다 관념적인 기억에 속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망상에 반응해선 안 됩니다. 망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에서는 수행이 진행되고 잘되면 잘될수록 망상은 적어지게 되는 거고, 그래서 계획하고 하는 것들도 적어지게 되고 생각하는 것들도 적어지게 됩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아직 수행이 깊지 못할 경우에는 망상은 끊임없이 계속 일어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거기에 반응해버리면 수행은 거기서 스톱 돼버립니다.

 

간혹 사람들이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어, 이게 뭐지?' 하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망상입니다. 또는 '어, 이게 촉인가' '어, 이게 상카라인가'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그 순간에 이미 대상은 놓쳐버립니다.

수행은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사띠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뭐지' 하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거는 나중에 되면은 자동적으로 그게 뭔지 알아차려지게 됩니다. 사띠해지게 되는 것이지 내가 지금 그걸 기억을 해가지고 떠올려서 끄집어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망상에 반응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부정적인 것들을 일으키는 것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가끔씩 저 사람만 만나면 내가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든지 아니면 이러한 상황이 됐을 때 내가 항상 안 좋은 생각이 일어난다든지 이럴 경우들, 부정적인 반응일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그럴 때는 그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마음은 내 마음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내 마음이 반응하는 것들을 볼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그 부정적인 것들을 일으키는 것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미 기억 속에 축적돼있기 때문에, 그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들을 대상으로 해버리면 더욱 부정적인 것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뱀이 기어가는데 뱀을 내가 봤다. 그럼 대부분 어떻게 해요. 뱀을 피할려고 합니다. 이미 뱀은 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이 돼있습니다. 그럼 오히려 피할려고 하다가 뱀한테 물리게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뱀은 공격하지 않는데. 그럴 때 뱀을 봤을 때 무서워한다든지 그걸 피할려고 하는 것보다 뱀을 봤을 때 일어나는 내 마음을 탁 관찰하면 '어, 내가 뱀으로부터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네' 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탁 관찰하고 있으면 내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게 됩니다. 그러면 뱀하고도 관계없이 내 싫어하는 마음을 관찰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은 내가 서서히 움직이면 됩니다.

그러면은 뱀으로부터 물리는 일도 없을 뿐아니라 그 뱀이라는 부정적인 것도 점점 더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주위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을 때는 그걸 대상으로 자꾸 할려고 하지 말고, 그럴 때 마음을 볼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내마음을 보게 될 때 부정적인 것들은 점점 사라지게끔 됩니다.

 

다음에 네 번째,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자꾸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몸·육체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에 의식을 자꾸 돌리는 훈련들을 해보십시요. 마음이 있는 상태면 어떠한 경우든지 그 마음은 반응을 하게끔 됩니다. 그 반응을 하면 몸에서 어떤 느낌이든지 항상 느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느낌을 자꾸 관찰을 하면 그 느낌이 좋고 싫은 것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면 그 느낌들이 좋고 싫은 느낌들로부터 벗어나는 훈련들을 스스로 자꾸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야 됩니다. 좋은 느낌이면 '좋은 느낌'이라고 알아차리게 될 때 그 좋은 느낌이 분명히 바뀌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싫은 느낌이 일어나면 '싫은 느낌'이라고 알아차릴 때 그것들이 변해가는 모습들이 보이게 됩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면 그것이 변하는 것들이 분명히 보입니다. 그러면 그 느낌으로부터 일어나는 이차적인 피해들은 받지 않게끔 됩니다. 그래서 자꾸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릴려고 하고 그것으로 마음을 기울일려고 하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된다는 겁니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과 사고하고는 다른 종류입니다.

느낌은 실재하는 거고 감정과 사고는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념인 것이고 내가 거기에 붙잡힐 때 일어나는 것들이지 실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정들이나 아니면 생각들이 자꾸 일어날 거 같으면 그것으로부터 일어나는 느낌들을 자꾸 볼려고 하라는 겁니다. 실재하는 느낌을 보면 감정이나 생각들로 빨려들어가는 마음은 되돌릴 수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업무가 많아가지고 막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럼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보통 어떻게 해요? 그거로부터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음악을 듣든지 아니면 여행을 가든지 이렇게 마음을 전환을 시켜줍니다.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는 것은 감정과 사고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집중하는 대상이 음악이든지 아니면 여행을 가면서 뭔가를 본다든지 아니면 걸어간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실재하는 느낌으로 전환을 시켜주는 것들입니다. 일상적으로 여러분들이 해오던 것들입니다.

 

그러면 수행자일 거 같으면 스트레스가 많다고 할 거 같으면 차라리 그냥 걸어라는 거라. 걸으면서 '왼발' '오른발' 하면서 왼발 오른발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러면 빨리 그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거라.

실재하는 느낌들을 알아차리면 감정과 망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현대사회가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고 할 거 같으면 그것들로부터 감각을 자꾸 알아차리면서 균형을 맞춰주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들을 자꾸 더 할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것으로부터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로부터 벗어나는 것들이 수행자들이 해야 될 몫입니다. 지금 반응하는 것들이 쓸데없는 것이다, 감정적인 것이고 망상하는 것이다, 할 것 같으면 빨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됩니다.

쓸데없는 반응으로부터 빨리 마음을 벗어나도록 만들어서 여러분들이 안 그래도 바쁜 지금 이 시대에서 조금 더 건강하고 스트레스 없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