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불기2568년8월4일 상가포살일-재가자포살법회-담마와나선원

담마마-마까 2024. 8. 5. 18:05

https://youtu.be/OEPdvwI31Vg?si=QMkgF5Yi_YIvQDgr

 

* 불기2568년8월4일 상가포살일-재가자포살법회-담마와나선원

(12:24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포살일입니다. 스님들은 포살 종류가 2가지 있는 거 알죠?

'오와다 빠띠목카(Ovadā paṭimokkha)' 라고 해서 '훈계하는 빠띠목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거는 혼자 있고 아니면 둘 셋이 있고 할 때 상가를 구성하기 곤란한 상황일 때는 오와다 빠띠목카를 하게 됩니다.

옛날에 과거 부처님 때나 지금 석가모니 부처님 때도 20년까지는 이 오와다 빠띠목카를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뭐냐 하면 "나쁜 짓 하지 말고, 여러분들 잘 알고 있는 착한 일 하면서 마음을 잘 닦아라.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하면서 하는 게송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주로 했고.

 

그런데 이제 지금은 상가가 구성이 되고나면 그 오와다 빠띠목카를 못 합니다.

빠다(?) 빠띠목카라 해가지고 계본을 외워야 됩니다. 비구 계본을 외우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거는 시간적인 여유가 다 될 때는 전체가 전체가 227계를 다 외우는데, 그게 안 될 때는 보통 그 13승잔죄까지 하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는 "이하동문이다" 하면서 이렇게 해가지고 끝내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부분의 불교 사찰에서는 계본을 다 외웁니다. 다 외우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기는 합니다.

 

그래서 비구, 출가한 스님들도 포살일을 보름에 1번씩 그렇게 치릅니다.
8일이나 그다음에 14일, 15일 중에서 하게 됩니다. 1년에 20번너머 빠띠목카가 진행이 되는데, 15일 되는 게 한 3분의2 정도 되고 그다음에 14일 되는 것이 3분의 1정도 진행이 됩니다. 근데 그거는 여러분들도 다 잘 알고 있는 것들인데,

 

재가자들은 포살을 어떻게 할까?

조금 전에 팔계 받았죠! 언제 받는 거라 팔계는? 재가자들은 1주일에 1번씩이죠! 그래서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재가포살이 있고 그냥 일반적인 재가포살이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 며칠이죠? (수행자 : 7월 1일이요.) 그리고 지금은 안거 기간이죠? 이럴 때는 특별한 재가포살에 해당이 됩니다.

'특별한 재가포살'은 물론 경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한데 보통 5개월을 잡습니다. 그러니까 안거 1달 전부터 해가지고 안거 3달, 그다음에 안거 끝나고 나서 1달 뒤, 까티나가 끝나는 기간까지 다 합해서 5개월, 이때는 "특별한 재가포살 달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근데 그때는 특별하기 때문에 포살 당일만 하는 게 아니고 포살 전날도 해서 대부분 다른 사찰들에 가보면 전날에 등 켜가지고 탑돌이를 하는 것을 본 적 있어요? 그게 뭐냐면 포살일 날 전날에 행사입니다.

포살일 당일의 전날과 후에 날까지를 포함을 시킵니다. 보름이 될 경우에는 14일과 그다음에 이제 새로 시작되는 1일날이 해당이 되는 거죠. 이때도 특별한 재가 포살일이라고 합니다. 8일날 일때는 7일날과 9일날이 되는 되고, 14일일 때는 13일날 하고 15일이고, 그렇게 되는데, 복잡하죠.

 

그냥 간단하게 이렇게 생각하십시요. 특별하게 재가포살을 하든 안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인데 일반적으로는 "재가자들은 1주일에 1번씩은 포살을 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십시요.
일반 포살은 어쨌든 일주일에 한번 꼴로 다가와요. 그래서 되도록이면은 자기가 일주일에 한 번씩 날짜를 딱 잡아가지고 이날은 내가 포살일이다. 하고 마음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같으면 여기 담마와나 선원 같으면 일요일날 법회가 있으면, 일요일은 포살 날이다 하고 마음을 먹고 그렇게 지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재가포살을 지켜야 될까?

(수행자 :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그렇지! 계율은 형식적인 게 아니고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문제이고 계가 확립이 안 된 상태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선정에 들 수도 없고, 지혜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를 지키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도 부처님의 종족이었던 석가종족도 안 지켰다고 해서 부처님이 야단친 기록이 있습니다. 뭐 이거 하나도 못 지키느냐고 해가지고 야단친 기록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지키는 게 쉬운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해도 지키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재가포살에 대한 얘기들을 좀 더 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8계를 받았죠! 첫 번째 계율이 뭐였죠? 살생하지 마라.

살생하지 마라는 거는 어떤 의미입니까? 내가 살생하지 마라는 건가요? 그런 의미에요? (수행자 :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여기에는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살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리야(ariya)라고 하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아리야(ariya)라고 하는 것은 세속에서 지키기 진짜 힘들다는 뜻입니다. 지키기 진짜 힘들고, 또 하나의 의미는 어떤 의미냐면 그걸 잘 지킴으로 인해가지고 기쁨이 일어나서 선정에 들기가 쉬워져서 해탈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 때문에 그냥 내가 살생 안 하는 것만 해당이 되지는 않겠죠.

더 적극적인 의미가 뭐가 있겠어요? 안 죽일려면 마음이 어떤 마음이 일어나야 되요? (수행자 : 자애와 연민) 그렇지! 자애의 마음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지. 당연히 나만 안 죽여야 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안 죽이도록 해야 된다는 얘기라.

그래서 이 3가지가 합해졌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일체 죽이는 행위가 없어야 되는 거고, 그걸 어떻게 확인해요? 하루 지나고 나서 ‘나 오늘 아무것도 안 죽였어’ 하는 마음이 들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에 기쁨이 일어납니다. 기쁨이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고, 고요해집니다. 그럼 선정에 들기가 쉬워져서 위빳사나로 전환하기가 쉬워지게 됩니다.

 

그다음 두 번째 너도 죽이지 마라 하는 것은 어떤 의미라? 내 주위에 계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하고 싸우라는 얘기가 아니고. 나는 죽여야 되겠다 할 것 같으면 어쩔 수 없이 그건 놔줘 버려야 되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죽이지 말자. 오늘은 죽이지 말고 불교 공부하고 수행하자” 이렇게 했는데 “그래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했다 할 것 같으면 내 주위에는 점점 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가 어떤 의미라고? 적극적인 의미라고 그랬죠!

적극적으로 내가 죽이는 행위를 넘어서 자애의 마음을 항상 지니도록 해야 된다. 자애의 마음은 나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필요하기 때문에 나로 인해서 방사되는 겁니다 자애는. 그래서 자애의 마음이 가득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죽일 수 있는 행위나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3가지가 같이 갖추어지게 될 때를 갖다가 아리야 실라(ariya sīl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계를 지킨다는 게 마음만큼 쉬운 경우는 아닙니다. 특히 오늘은 포살일이기 때문에 8계를 지켜야 됩니다. 8계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대부분, 하기야 처음에 여기 있는 스님도 비구계 받고 나서 그거 따라가기 바빴어요.
그것 지키기 위해서 그거 어긴 건가 안 어긴건가 보고 어겼으면, 어떨 때는 큰 스님한테 가서 참회하고 어떨 때는 20인이 스님 밑에 가가지고 최하 비구와 같이 있으면서 참회하는 의식들을 행하고, 그걸 별중 의식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 의식도 하고 막 그랬거든. 계의 항목에 묶여가지고 막 살았던 시절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꼭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계는 항목이 많고 적고 또는 언제 지키고 하는 것들 그런 것이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물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닌데,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부분이

"왜 지켜야 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내가 비구계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미 스님들이나 다른 스님들 아니면 비구계의 법랍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위치에 있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꼭 명품백이나 뭐 명품 차를 습득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계는 그렇게 지키려 하면은 그거는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계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항상 가져야 됩니다.

내가 왜 지켜야 되는가? 그걸 지키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에서 기쁨이 일어나도록 돼야 되는 것이지, 기쁨이 일어나지 않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는 계로써의 의미가 없어져버린다는 거라.

 

수행을 잘했으면 수행 잘했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기쁨이 일어납니다. 또는 여러분들이 오늘 스님들한테 보시를 했습니다. 공양을 올렸으면 공양 올린 것으로 인해서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사마타 수행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계수념과 시수념으로 연결되는 이치라.

그렇게 연결되지 않는 계라고 하는 것은 그냥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겁니다. 한번 오늘 지나고 나서 여러분들 마음에서 ‘아, 이렇게 하니깐 정말 마음이 깨끗해지고 기쁘구나’ 하는 것들이 일어나게 될 때, 그때는 계를 잘 지키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빨리 수행을 하라는 거라. 수행을 해서 지혜가 일어나도록 하라는 거라.

 

계를 잘 지키면 어디에 태어날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고로 잘 태어날 수 있는 데가 어디라? (수행자 : 욕계 천상이죠) 천상 세계겠지.

천상 세계에 가기 위해서 필요한 5가지 조건들이 있죠! 처음 뭡니까?

믿음-확신을 가져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는 계를 잘 지켜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는 보시를 잘해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는 법을 잘 들어야 되는 거고, 요 4가지는 일단 여러분이 다 한 겁니다. 그렇죠 오늘. 천상에 태어날 조건은 5개 중에 4개는 갖추었어. 하나가 뭘까? (수행자 : 성냄 없음) 예? 지혜! 지혜입니다.

 

지혜를 어느 정도는 갖춰야 됩니다. 그럴려면 어차피 수행하는 수밖에 없어! 그냥 보시하고 계 잘 지켰다 해가지고 땡 해버리면 천상에 태어날 방법이 없으니까, 반드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조금이라도 수행을 해가지고 수행의 이익을 봐야만이 그 맛을 본 사람만이 점점 더 수행을 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그렇게 나옵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삼빠자나(sampajāna)가 이루어진다"

조금 전 같이 그냥 계를 억지로 지키는 게 아니고 완전하게 계를 잘 지키는 아리야 위나야가 됐을 때, 아리야 실라가 됐을 때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으로 인해서 마음이 통일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들이 커지기 때문에, 삼빠자나가 있게 된다는 거라.

사띠의 힘이 강해지면 대상을 파악을 하는 것이 완전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분명하게 다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보이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마음에서 기쁨들이 일어나집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라.
그렇게 진행이 돼 나가는 것은 이미 사띠(sati)와 삼빠자나(sampajāna)가 계속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계를 하나 지키는 것으로 인해서도 이렇게 삼빠자나가 일어나진다 하고 경전에는 나와 있고.

 

그다음에 사견, 사견을 없애는 것입니다.

뭘 해야 되는지 또 뭘 하지 말아야 되는지를 분명하게 파악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거라. 쓸데없는 건 안 하는 거라.

스님도 처음에 태국에 갔을 때 앉음병에 걸렸어요. "앉음병" 앉아서 수행하려고 하는 거! 그냥 앉아서만 하려고 그러지 경행할라고는 안 해. 왜 그럴까? 경행하면 뒤뚱거리니까 그게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싫은 거야.
그러니까 앉아만 있는 거라. 앉아 있으면 지가 망상을 피우는지 수행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앉아만 있으려고 하는 거라. 근데 실제로는 수행 안 하고 있는 거라. 수행 안 하고 있는 거라. 수행에도 이게 삿된 견해에 속한다는 거라.

수행은 제대로 해야 되는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닙니다. 그거 어디다 쓸라고? 자기 스스로가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감을 얻고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도록 스스로 굳건하게 만들어야 되는 거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세 이렇게 앉죠? 어떤 사람들은 “스님, 저는 앉으면 뻣뻣해갖고 호흡하는 게 힘듭니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여기 앉아 있으면 너무 편안해가지고 잠이 바로 옵니다.” 지가 그렇게 만들어 놔 놓고,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는 거라. 자기가 하고 싶어가지고 호흡이 안 될 정도로 앉아있는 거고, 자기가 하고 싶어가지고 게으름 부릴려고 앉아있는 상태가 되는 거라.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거를 모릅니다. 호흡이 잘 되고 있는지 어떤지. 그런데 본인은 알고 있다는 거라.

그래서 수행할 때도 자세부터 해서 또 여러 가지 대상을 알아차릴 때도 스스로 만드는 습관들 이런 것들을 가지지 말고, 바르게 수행을, 하나를 하더라도 똑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게 계가 굳건하게 서면 가능해집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마음이 변화해진다 하고 얘기합니다. 마음이 변화해진다는 거는 물질적인 것에 너무 끄달려 들어가지를 않고 내가 해탈을 향해서 나아가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어져 나간다 하는 뜻입니다. 어차피 가족을 위해서 해야 될 일들은 해야 되는 거고, 또 어차피 내가 집안을 위해서 해야 될 일들은 해야 되는 거고, 청소하고 밥하고 하는 거는 해야 되지, 안 할 수가 있나? 근데 그걸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불만이 없는 거라. 그걸 하면서도 그것들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재미난 거라. 이미 마음이 바뀌었다는 거라.

 

계를 지켜나가는데도 재미나게 계를 지켜나가는 거라. 전에는 생각 없이 그냥 탁 모기를 죽였는데 모기도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지가 살 권리가 있다고 하는 마음이 탁 들 것 같으면 안 죽이는 거라. 내가 죽여야 될, 나한테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거라. 그럼 살도록 하기 위해서 모기채 같은 걸로 잡아가지고 밖에다 내준다든지, 아니면 정 안 되면 그냥 물리고 견딜 수 있으면 물린다는 거라.

 

각각의 생명은 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고유하게 자기가 누려야 될 생명이 있습니다. 그걸 함부로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생각이 그에 미치면은 더불어서 같이 평화롭고 자유롭고 자비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편들을 스스로 마련을 한다는 거라. 그게 인제 마음이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면 이런 이익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는 것들을 등한시하지 않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시간 다 됐네요.

 

(수행자 : 공양은 11시 15분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좀 더 해드릴게요. 그래서 계를 잘 지키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부처님한테 수행하는 법을 배워가지고 저 산속에 들어가서 수행을 이렇게 했어요. 하고 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라. 그럼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스승이 있으면 스승한테 물어봐야지 자기 스스로 그걸 헤쳐나갈라면 더딥니다.

당연히 부처님 계실 때니까. 부처님한테 가서 다시 좀 점검받고 다시 수행 방법에 대한 것들을 바꾸려고 하는 거라. 그래서 인제 산을 탁 내려가는데 밑에 산불이 나는 거라. 맹렬하게 타오르는 거라. 그래서 내려갈 수가 없어. 오히려 산 높은 데로 더 올라가서 그 불이 꺼지기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거라. 근데 계속적으로 산불이 타고 올라오고 있는 거라.

 

어떤 마음이 들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날까? 아니면 바른 마음이 일어날까?

근데 그 스님은 수행은 잘 못해도 계율 하나는 철저하게 잘 지켰다는 거라. 생각이 거기에 미쳐요. ‘내가 그래도 출가생활을 해가지고 이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잘못한 게 있는가’ 곧 죽게 생겼으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잘못한 게 하나도 없거든. 그래서 마음에 기쁨이 탁 생기는 거라. ‘그래 잘 살았네. 그럼 지금 죽고 나면 다음에 또 사람으로 태어나면은 또 수행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거라.
계를 살펴봐도 계를 어긴 것이 없고 마음에 기쁨이 자꾸 일어나는 거라.

 

그런데 그런 기쁨만 가지고는 안 되죠. 뭐가 일어나야 돼요?

지혜가 일어날려면 번뇌들이 소멸돼야 됩니다. 가만히 보니까 저기 불이 요 나무를 탁 태워가지고 없애버리고, 요 나무를 탁 태워가지고 없애버리고, '번뇌를 없애는 것은 한 번에 내가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나씩 잡아갖고 요놈 탁 없애고 요놈 탁 없애고' 그 마음이 탁 생기는 거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 번에 지혜를 일으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법도 없고! 또는 내가 번뇌를 소멸하려고 하더라도 그걸 한 번에 소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번뇌를 탁 설정을 하라는 거라.

아, 내가 좀 화를 많이 낸다, 아니면 남을 보면 맨날 부정적인 거나 싫은 말이 자꾸 튀어나온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인간관계가 안 좋아진다고 그러면 그걸 목표를 잡아라는 거라. 그걸 목표를 잡고 그걸 없애기 위해서 내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되는가 하는 걸 갖다가 자기가 알아야 되는 거라.

 

그럴 때 이제 스승이 필요합니다.
“스님, 저는 화가 많은데 어떻게 하면 화를 없앨 수 있습니까?”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미워하는 것이 좀 덜 할 수 있습니까?”

스님들에게 안 되면 경전을 찾아보라는 거라.

경전 곳곳에 그런 것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것들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만이 이걸 없앨 수 있는 단서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은 만약에 수행하다 화가 탁 일어난다, 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본다는 거라. ‘어, 내가 화가 일어나는 거는 요것 때문에 화가 일어나는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 그것들을 관찰대상으로 삼아버린다는 거라. 그러면 그것이 싹 사라지는 것들을 보게 되면은 그다음부터는 똑같은 상황에서 그것으로 인해서 화가 일어나는 것이 덜하게 되는 거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것이 일어나더라도 화는 안 일어나는 상태가 되는 걸 본인이 분명하게 아는 거라.

부단하게 노력을 해가지고 그 하나를 다스려 나갈 수가 있다는 거라. 그렇게 해서 다음 거 넘어가고 또 다음 거 넘어가고 그렇게 돼야 되는 것이지, 한 번에 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계를 지키는 것도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계는 어쨌든 완전하게 지켜져야 됩니다. 8계면 8계 전체가 지켜져야지, 내가 이번엔 이거는 안 되니까 요거는 쏙 빼고 7개만 지킨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건 이미 부처님이 확립해 놓은 거기 때문에 계는 완전하게 지켜져야 됩니다.

 

근데 지키더라도 아까 얘기했듯이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어쨌든 지키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러다 점점 가면 나중에는 그 계를 지키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마음에 기쁨들이 일어나게 되고.
점점 더 나아가다 보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사무량심이 점점 더 커져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율의 항목과 관계없이 사무량심은 확립이 되는 상태가 딱 돼 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무량심으로 인해서 선정에 들고 다시 전환해가지고 위빳사나 수행을 하게 되고,

그래서 해탈을 향해서 나아가는 상태가 되고,

이런 상태가 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됩니다.

 

왜 일주일에 한 번씩 부처님이 재가자들한테는 포살을 하라고 했겠어요. 힘드니까! 그마만큼 더 많이 숙련되게끔 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사마타 수행이라 해서 그것을 등한시해도 안 됩니다.
계를 지키는 수행은 사마타 수행에 속합니다. 또는 보시하는 것에 대해서 기쁨을 일으키는 것도 사마타 수행에 속합니다. 거의 대부분 여러분들이 하는 아나빠나사띠도 사마타 수행으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것으로 인해서 선정을 경험을 하고 또는 마음이 고요해지고, 대상에 대해서 휘둘림이 없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전환하는 법들을 익혀 나가게 됩니다. 집착하는 것이 없어진다는 얘깁니다.

 

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항목을 지키려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집착하는 것이 없게 되면은 계는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것이고, 그리고 집착하는 항목들도 점점 떨어져 나가는 것들을 느낍니다.
이만큼 있어야만이 산다는 것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아, 이거 별로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그 시간 동안에 나는 수행하겠다’ 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거고, 이 정도의 위치에 도달해서 남에게 존경받아야 되는데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끔 되는 거라.

 

이때까지 내가 너무 쓸데없는 것에 노력과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은 필요한 것들만 구별하게 되는 거고, 구분을 하게 되는 거라.

지금 해야 될 것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뭔지, 그리고 지금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이 뭔지 하는 것들을 구분하게 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은 자연스럽게 계··혜를 닦는 쪽으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되는 거라.

 

계의 이익은 그런 겁니다.
그냥 단순하게 항목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삶을 바꿔주고, 나를 천상에 인도하고, 나를 해탈에 인도하는 것이다 하고 마음을 먹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불재일을 꼭 지키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43:55 까지 녹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