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BCXuP_zaGk?si=6LMaY3DWuUhW8yPV
*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여섯 가지 잘못된 견해들_뗏목의 비유 (2002 0824)
... 법문하려 했는데 다음 주로 연기를 했습니다. 봉암사에서 한 철을 지내고 와가지고 좋은 법문을 설해주실 겁니다. 인연이 돼야 합니다. 법을 설하는 것은.
... ... ...
자, 이제 스님 말을 잘 듣도록 하십시오.
전에 스님이 뗏목의 비유를 한번 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납니까? (수행자 ...)
뗏목이 강으로 흘러가려면 어떻게 흘러가야 된다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기억난다면서? (수행자 ...)
그때 분명히 8가지인가 얘기를 했죠.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수행자 ...)
그거 말고 뗏목 비유를 했었습니다. 없을 때 얘기했어? 기억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열반으로 잘 인도하기 위해서는 6근과 6경에 대해서 이쪽 언덕 저쪽 언덕 얘기를 하면서 얘기를 한 적이 없나? 육근과 육경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가지고 몸과 마음에서 탐심이 일어나고 집착이 일어나고... (수행자 ...)
분명히 내가 뗏목 비유를 하면서 그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게 머릿속에 생각들이 많으니까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이거든. 그러니깐 간단(간절)하게라도 이렇게 얘기를 하는 부분들을 흘러버리는 거라. 흘려버리기 때문에 그걸 자기 것으로 취하지 못하는 거라.
육근과 육경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얘기한다는 얘긴 했지만, 분명하게 뗏목 비유를 하면서 열반에 이르는 길은 얘기를 했었습니다.
바른 견해라고 하는 삼마딧티는 자연스럽게 열반으로 향하게 한다 하고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만큼 그런 삼마딧티로 인해서 열반으로 흘러가느냐, 그래서 결국에는 고 괴로움 불만족이라는 것의 소멸에 이르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걸 알기 위해서 또 실천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또 모인 것입니다. 그마만큼 이 삼마딧티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마딧티(sammādiṭṭhi)는 뭐라? 바른 견해! 바른 견해가 뭐라?
사성제에 대해서 잘 아는 것! 또? 삼법인에 대해서 잘 아는 것! 또?
자, 그럼 어떤 것이 바르지 않는 견해들인가?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따라 조사 확인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깔라마 경에도 보면 삼마삼붓다(sammāsambuddha)가 뭔지, "삼마삼붓다가 진짜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신 분인지조차도 조사·확인하라" 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부처님이 '깨달았다. 깨달았다.' 하는데 진짜 완전하게 스승 없이 스스로 공부해 가지고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도 조사·확인해 봐라. 그리해서 부처님이 완전하게 그렇게 깨달음을 이루신 정등각자다 할 것 같으면 그분의 말씀을 따라라. 그것도 무조건적으로 따라라 하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 그것이 맞다고 할 거 같으면 그 길을 따라라는 거라. 니가 해보면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안다는 거라.
부처님조차도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바르지 않는 견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바른견해-정법이라 하는 것조차도 결국에는 버려버리라고 했는데 바르지 않는 견해는 더더구나 뭘 할 것인가? 하는 거라.
일반적으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자, 가정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가정을 이루면서 돈을 악착같이 모아가지고 차를 1대 샀다, 요즘 나오는 차를 한 대 샀다. 보통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게 첫 차다 할 것 같으면 소중히 여깁니다. 때 빼고 광내고 마 또 치장할 건 치장하고 그리해도 뭐 그 차가 기스 하나 안 나고 먼지 하나 안 묻고 있을 수 있습니까? 먼지 묻으면 묻은 걸 내 닦아줬다가 누가 기스라도 낼 것 같으면 난리가 납니다.
사람을 잡아 죽일 듯이 그냥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웃 간에 불편하게도 만들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인제 차가 인제 중고 이상 넘어갈 것 같으면 사람들이 웬만하게 옆에 와서 긁어도 “아이, 괜찮습니다” 하고 씨익 웃고 넘어가버리는 거라. 차는 차인데 맨 처음 샀을 때는 조그만 기스도 용납을 못했다가, 근데 이게 조금 헌 게 될 것 같으면 그냥 웬만한 거는 넘어가거든.
왜 그렇게 바뀌는 거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 그런 견해들이 무언가 잘못돼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보통 크게 대별해가지고 한 [여섯 가지 정도 잘못된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6가지가 뭐냐면,
맨 첫 번째가 "이것은 내 차다.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다" 하는 집착!
그래서 '내 것 나의 것 나의 영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해를 가할 경우에는 반발을 하는 그런 나라고 하는 자존심을 내세우게 된다 하는 거라. 그게 맨 첫 번째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이제 차도 샀고 조금 있다가 집도 샀고 돈도 어느 정도 모이고 자식들도 잘 성장을 했고 그러니까 이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단 말입니다.
부와 명예를 얻음으로써 부와 지위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자만심! '나는 그래도 세상을 잘 살아왔지, 내가 너보단 낫다' 너와 남을 가릴려고 하는 자만이 또한 우리는 생겨나진다 하는 겁니다.
인제 조금 더 가다 보면 자기 스스로 길들을 정합니다.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는 거라. 자기 스스로의 견해에 매이는 거라. 그래서 '너는 반드시 이 길로 와야 돼! 내 자식으로 태어났을 것 같으면 틀림없이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돼!' 그렇게 못할 것 같으면 난리가 나는 거라.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길로 가야 돼. 그렇지 않으면 적이 되는 거라. '내가 기도를 해보니까 기도가 참 좋더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를 하는 거라. '아냐 아냐! 다른 거 하지 마! 수행할 필요 없어. 이것만 해!' 그게 바른 길인지 삿된 길인지를 구분을 못하게 된다 하는 거라.
그런 스스로의 견해에 매여서 스스로의 길들을 갖다가 닦아 나왔다고 자신하는 것, 그런 삿된 길에 얽매이는 것. 이것이 세 번째로 드는 병들입니다.
인제 조금 더 살다 보면 나이도 들고 늙고 하니까 좋은 데 태어나고 싶거든요. 잘 죽어가지고 다음 세상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싶다는 거라. 다음 세상에는 천상에 태어나고 싶다는 거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천상에 태어나고 좋은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막 절에다가 희사를 하는 거라. 누구 절 짓는다 그러면 돈 탁 내놔 놓고.
보다 좋은 존재로 태어나고 싶은 희망이 네 번째로 가지는 잘못 견해들입니다.
이렇게 4가지 견해들을 가지게 되는 동안에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내 마음대로 살게 되는 거라. 감각적인 기쁨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거라.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나 스스로 나에게 기쁨이 있을 것 같으면 된다는 생각들을 한다는 거라. 또 내 몸이 피곤하기 때문에 나는 좀 쉬어야 되겠다. 주변 사람들 주변적인 일들을 돌아보지 않고 불성실하게 되는 거라. 개인 중심적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겁니다. 일상적인 삶들이.
그래서 다섯 번째가 바로 그런 감각적인 기쁨을 더욱더 누리려고 하는 것!
젊었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병이 들어서나 혼자가 되나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때나 똑같이 그런 감각적인 기쁨을 최대한 누리려고 하는 마음들, 그것이 다섯 번째 입니다.
당연히 그런 감각적인 기쁨을 스스로 누리려고 하다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내 스스로는 내 스스로에게 성실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실하지 않게끔 된다는 거라. 불성실이라고 하는 것이 인생 전체를 덮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이렇게 6가지가 통상적으로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는 일들이고, 또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견해들입니다.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왜 사는가 하면 돈 많이 벌려고 하고, 명예 높아질려고 하고, 남들에게 조금 더 우쭐대고 싶어서, 그런 목적들로 살기 때문에 이런 6가지 견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이것을 부처님이 뗏목에다가 비유를 해놓은 겁니다.
강물이 흘러가면 어디로 흘러 가지게 됩니까?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 바다로 흘러가지.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라. 강물이 산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 강물은 자기가 가봐야 바다 밖에 못 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려고 할 것 같으면 그 흐르는 길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닥칠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그 흘러가는 강물에 통나무 하나가 띄워져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통나무가 잘 바다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쪽 언덕에도 부딪치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않고,
또 그 뗏목이 물을 머금어서 강바닥으로 가라앉지도 않고,
또는 흘러가는 강 중간중간에 언덕 둔덕 같은 데 걸려서 올라가 버려가지고 흘러가지 못하게 되지도 않고,
또 누군가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저 통나무 나한테 필요한 거구나’ 하고 가져가버릴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천상이 태어나는 걸 바라듯이 우리가 모르는 존재들 그 존재들이 통나무를 갖다가 홀라당 가져가 버릴 수도 있는 거고,
또 그 통나무가 가다가 소용돌이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흘러가다가 물살이 너무 완만해서 바다에 닿기 전에 썩어가지고 없어지기도 하고』 그럴 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과정들을 겪는다는 말이라.
이런 8가지 과정들을 겪지 않아야만이 그 통나무는 순조롭게 바다라고 하는 곳에 도착을 한다 하는 겁니다.
통나무라고 하는, 우리 인간이 잘 수행을 해서 이런 이쪽 언덕이나 저쪽 언덕 가라앉는 것이나 둔덕이나 또는 인간이 가져가는 것이나, 물을 어떤 존재들이 없애버린다든지 소용돌이나 썩지 않고 잘 바다로 흘러가서 열반에 이르게 될려고 할 것 같으면,
이런 여덟 가지 나쁜 견해들 나쁜 경우들을 갖다가 벗어나야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이 뗏목의 비유로서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경전에는 단순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이 뗏목이 나무토막이 강물을 잘 거슬러 내려가서 바다에 닿으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쪽 언덕이나 저쪽 언덕이나 이런 8가지 과정을 잘 피하여서 바다로 내려가야만이 통나무가 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들도 이와 같이 8가지를 잘 피해서 나쁜 견해들을 피해서 깨달음에 이르게 되어야 할 것이니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스님이 법문을 시작을 하면서 왜 이 뗏목의 비유를 들었느냐? 하면, 앞으로 한 2~3주 정도 더 이 뗏목에 대한 얘기들을 할 겁니다.
보통 경전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쪽 언덕"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이비설신의 눈 귀 코 혀 이런 6가지 감각기관들'이라고 얘기합니다.
또 "저쪽 언덕"이라 할 것 같으면 '그 감각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냄새 맡는 것 이런 여러 가지 대상들'
그런 것들로 인해서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마음에서 집착이 일어나고 증오가 일어나고 또 어리석은 생각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돼 나갑니다.
또 나무토막이 강물의 물을 먹어서 가라앉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에든 우리가 집착을 하면 가라앉아 버릴 수밖에 없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에 집착을 하든, 아니면 내가 키우는 동물에 대해서 집착을 하든, 아니면 무생물에 대해서 집착을 하든, 이 좋은 공기 이 맑은 산소 이런 것도 하나의 집착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하는 겁니다.
그런 것에 집착을 하다 보면, 좋은 산소 좋은 공기 있는 곳에 가서 있으려고 집착하게 됩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울 것 같으면 그 고양이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고 고양이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라.
좋은 공기를 마시지 말고 고양이를 키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하면 나무가 강물에 가라앉는 거하고 꼭 마찬가지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집착은 또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가?
어떤 이유로 해서 나에게 발생하게 되는 것인가?
그다음에 둔덕이라고 하는 것, 섬이라고 하는 것은 왜 부처님이 설정해놔서 나무가 그것에 걸릴 수가 있다 하고 얘기했을까?
무언가 내가 높아지려고 하고, 무언가 내가 자꾸 가질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자만심으로 인해서 일어나진다는 겁니다.
또 인간들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가져간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로 인해서 삼법인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태어났으면 죽어야 된다. 항상 살 것같이 생각해도 변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참 불만족스럽다 하는 사실을 갖다가 모르기 때문에 내 것으로 취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 하는 겁니다.
그런 삿된 길들은 어떻게 발생을 하는가?
또 내가 모르는 세계, 모르는 존재들이 그 통나무를 가져갈 수도 있다 하는 겁니다. 경에는 신이 신들이 필요해서 가져간다고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거는 뭐냐 하면 천상의 신이라고 하는 건 내가 보다 더 좋은 존재로서 태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욕망들은 왜 발생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겁니다.
나무토막이 썩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수행을 해 나가는 데 정진력이 없다 하는 뜻입니다.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꾸준함이 없는 것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정진력은 어떻게 키워줘야 될 것인가?
나무토막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그런 감각적인 기쁨들 에 빠져있기 때문에 발전성이 없다는 거라.
그런 감각적인 기쁨에 빠졌을 때는 또 우리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빠져나올 것인가?
하는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키워야 하는 삼마딧티 바른 견해인 것이고.
집착과 자존심 자만심이나 삿된 길들, 보다 좋은 곳에 태어날려고 하는 것, 그리고 감각적인 기쁨이나 성실하지 못한 것들,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견해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이라 하는 겁니다.
그게 수행에서 얼마만큼 악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들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려고 할 것 같으면 이런 잘못된 견해들을 벗어나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부처님이 말한 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얻기가 힘들어진다 하는 겁니다.
바른 견해로 인해서 열반으로 향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영원히 그러면 깨달음으로써는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결과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뗏목의 비유가 참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중요한 몫들을 합니다. 그래서 한 2~3주 예정을 해서 스님이 뗏목에 대한 것들을 수행에 비추어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뭘 의미를 하는가?
그리고 나에게 지금 갖춰져 있는 잘못된 견해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걸 스스로 체크를 할 수 있도록 해서, 그런 것들을 스스로 제거를 해서 깨달음에 이르도록 고통의 소멸에 이르도록 스스로들 노력들을 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법문을 여기서 끝내고 다음 주에 뗏목 2번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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