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안거 기간 동안 불제자들이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들 (20240803)

담마마-마까 2024. 8. 3. 18:21

https://youtu.be/fA4HrVlMM84?si=r3HgkMlSgTLaZYu1

 

"안거 기간 동안 불제자들이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불제자라고 하면 출가자도 있고 재가자도 물론 있습니다.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불제자'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근데 이름만 '부처님 제자다' 하고 이렇게 있으면 안됩니다. 진정한 부처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삽뿌리사(sappurisa) 출가자가 갖춰야 될 것들은 출가자들이 갖추어야 되고, 재가자들이 갖추어야 될 것은 재가자들이 갖추어 나가야 됩니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조금 바꿨으면 하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얻기 어려운 5가지"가 있다고 그럽니다.

첫 번째 부처님 가르침 만나는 것이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그 시기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그렇게 사람으로 태어나도 바른 법을 듣고 실천하기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바른 법을 듣고 실천하긴 하는데 그걸 확신을 가지고 마음에 꽉 채워서 계속 걸어가기는 더더구나 힘들다 하는 겁니다.

다섯 번째가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으로 출가하는 것이 어렵다 하고 얘기합니다.

 

참 얻기 어려운 5가지들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은 현재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일단은 내가 스스로 노력해가지고 선한 일을 행하고 악한 일을 행하지 않을 수가 있고, 또 더더욱 노력해가지고 내가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게 되고 또 노력해가지고 선한 공덕을 더 많이 쌓을 수가 있는 것이고, 이런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난 겁니다.

천상에 태어난 존재들은 물론 행복하겠지만, 오욕락에 젖어 있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기가 참 힘이 듭니다. 더더구나 악처에 태어나는 것은 그보다도 더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되겠죠.

여러분들은 어쨌든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그걸 또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조건을 지녔을 때 바르게 수행하고 바르게 또 공덕들을 쌓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만나기 어려운 것들을 만난 보람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거 기간 동안에 여러분들이 해야 될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첫 번째,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지녀라.

그거는 어떻게 하면 될까?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붓다 · 담마 · 상가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거는 경전 독송입니다. 경을 자꾸 읽고 그걸 이해하려고 하는 것들이 자꾸 되어야 됩니다. 물론 집에서 부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처님한테 삼배 드리고 경전 독송을 하진 못하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경전 독송할 수 있는 조건들은 자꾸 가져야 됩니다.

그게 이제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내가 이해하고 그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 하는 것을 자꾸 다짐할 수 있도록 하게 될 때, 그게 여러분들한테는 부처님을 예배하는 길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불재일날은 팔계를 지키는 거고, 불재일이 아닌 날은 오계를 지키도록 하는 것, 계를 지키는 것들입니다.

계를 지킨다는 거는 형식적인 계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 계를 지켜야 될까? 계가 지켜지지 않으면 선정에 들 수도 없고 깨달음에 이를 수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출가자든 재가자든 계를 지키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완전하게 계를 지킨다는 것이 될 때 그게 수행이 되는 겁니다.

근데 이제 중요한 거는 수행한다는 핑계를 대고 여러 가지 본인이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게 됩니다. 뭐 집에 청소하는 것, 그다음에 부모로서 해야 되는 역할들, 또는 자식으로서 해야 될 역할들, 여러 가지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전부 다 계를 지키는 항목에 다 들어갑니다.

근데 그것들을 하지 않고 수행한다? 그럴 것 같으면 항상 마음에는 장애가 와집니다. 무슨 장애냐 하면 좋은 것만 자꾸 할려고 합니다. 수행에서 편한 것들만 찾게 되는 거라. 힘든 것이 닥치면 그걸 피해버리게 되고 대상을 갖다가 옮겨 가 버리게 되는 역할들을 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본인이 지키고 해야 될 일들을 잘하는 것들이 계를 지키는 데에 선행돼야 되는 조건들입니다.

 

가끔씩 우리 송천님한테 좀 뭐라 하기도 하고 그러지만 마음 속에 ‘고맙다’ 하고 마음을 먹는 게 뭐냐면, 그래도 와서, 선원 부서진 거는 송처님이 와서 다 고쳐! 이렇게 더운 날, 오늘은 안 쳤는데 야외 차양막이라도 치고 하는 건 송천님이 또 인도해가지고 막 치고 그래. 본인 혼자 시원하게 될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 근데 물론 그리하면서 성질을 내 싸서 그게 탈이긴 한데, 그것만 안 하면 참 계를 지키는 데 참 좋은 조건을 타고났다, 그래서 수행을 해도 빨리 선정에 이르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성질만 좀 안 내도록 하십시오.

어쨌든 그런 것들이 계율을 지키는 항목들에 들어가집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보시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

오늘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7가지 중에서 세 번째 있는 보시하는 습관을 자꾸 가지라 하는 것들입니다.

보시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그럽니다.
'삽뿌리사 다나(sappurisa dāna)'라는 게 있고 '아삽뿌리사 다나(asappurisa dān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삽뿌리사 다나(sappurisa dāna)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먼저 보시를 받는 사람이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

그리고 보시하는 사람이 보시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

이 2가지가 다 갖춰졌을 때 그것을 삽뿌리사다나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간편하게 얘기하면은, 보시받는 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법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의미로 쓰여지고 하는 것들을 잘 알아야 됩니다.
또 나를 내세우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도 가지지 않아야 됩니다.

그리고 수행을 항상 해서 사띠가 확립돼 있어서 언제든지 사띠가 일어나도록 되어있는 상태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보시를 할 때 보시를 받는 마음에 감사한 마음을 지닐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보시를 받을 장소인지 아닌지를 또 구분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차이들을 잘 이해해서 그것들을 잘 법에 맞게끔 깨달음을 향해서 인도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이제 "보시받는 자들이 갖춰야 될 조건"들입니다.

그걸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보시 하는 사람이 삽뿌리사 다나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공덕이 돌아가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보시하는 분들의 보시가 삽뿌리사 다나가 되기 위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스님께 보시를 좀 하고 싶다 해가지고 식당을 정해놔 놓고 일정 금액을 줬는지 어쨌는지 줘가지고 “스님! 때가 되면 가서 거기서 식사하십시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마음은 굉장히 고맙습니다. 마음은 굉장히 고마운데, 스님이 거기에 못 내려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 보시가 안 되게 되는 거라.

빠세나디 왕이 매일 같이 500명의 비구 스님들한테 공양을 올렸는데, 부처님이 “그건 공덕이 안 된다” 하고 얘기하는 게 뭐냐면, 본인이 직접 안 했거든. 자기 돈으로 다 차려놔 놓고 스님들한테 모여있는 스님들이 공양하도록 했긴 했는데, 본인이 직접 올리지는 안 한 거라.

 

그래서 "삽뿌리사가 되는 조건 5가지"에 대한 것을 얘기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믿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베풀어라. '삿깟짱 데띠 sakkacaṁ deti'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공양 올릴 때 쿵쿵거리면서 와 가지고 공양 올리진 않죠?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와가지고 ‘아, 이것으로 인해서 스님이 건강을 회복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들에게 좋은 법을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하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공양을 올린다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 공양을 올릴 때는 언제든지 공양 올리기 전의 마음과 공양 올릴 때의 마음과 공양 올린 후의 마음을 지녀야 된다는 거라. 그걸 '찟띠까뜨와 데띠 cittīkatvā deti'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항상 사띠를 한 후에 공양 올리기 전이나 공양 올릴 때 공양하고 나서의 사띠를 지니라는 뜻입니다. 공양 올리기 전에 기쁜 마음을 지니게 되고, 공양 올릴 때 올리는 행위들을 낱낱이 관찰하면서 선한 마음이 일어나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공양 올리고 나서 ‘아, 공양 올린 것으로 인해서 내가 참 행복하구나’ 하는 행복한 마음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사띠를 지니지 않고 공양을 올리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건 내가 이생에서 살아가는 데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된다는 거라. 나를 지탱해 주는 조건이 된다 하는 거라. 이런 선한 것들을 함으로 인해 가지고 내가 악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지렛대 지지대 역할을 한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이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신이 손! '사핫타 데띠 sahatthā deti'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준다는 겁니다.

태국 같은 데서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줘도 왼손으로 주는 건 되게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오른손, 양 손으로 주어야 되는 거라. 그렇게 교육들을 받는데, 어쨌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주도록 하는 버릇들을 들여야 됩니다.

탁발을 나갔을 때 왜 자꾸 스님이 그냥 옆에 놓지 말고, "바리때에다가 터치를 하라" 그러나면 자신이 직접 준다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거는 스님이 받은 것이 아니게 되는 거라.

 

가끔씩 아주 가끔이지만 누군가가 현금을 은행으로 붙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그 몇만 원이지마는 나중에 확인해 보면 누가 몇만 원 들어온 게 있어요. 그건 이미 늦어버린 상태라는 거라. 몇만 원을 보냈으면 “스님 몇만 원을 보냈습니다. 스님 그것 가지고 유용하게 쓰십시오” 할 것 같으면 스님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아, 그래. 이 공양으로 인해서 항상 행복하기를’ 하는 마음을 지니고 보낼 수가 있는데, 그걸 못하는 거라.

어떤 또 사람들은 그렇게 보시를 하고 나서 "스님, 공양보시금 조금 올렸습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스님이 문자로라도 "이당 메 다낭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를 하든지 이렇게 공양 계송들을 해줍니다. 그거는 직접 올리게 되는 형태가 됩니다. 근데 줬는지 안 주는지도 모르고, 본인은 물론 줬겠지. 근데 받은 사람이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떡할 거라? 통장에 들어왔지만 내가 통장을 매일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은행에 가기 전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요.

 

직접 준다고 하는 것은 그걸 스님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오늘 만약에 공양 밑에 해놔 놨으니까 가서 먹는다. 스님이 몇 시에 가서 언제 할 줄 알아서?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거라? "그런 것들은 삽뿌리사 다나에 해당이 안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물론 보시 올린 사람들은 마음을 크게 내고 훌륭한 마음을 냈습니다.
근데 이왕 할 것 같으면 그 보시 올린 공덕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라는 거라. 한 번을 하더라도 직접 스님을 모시고 뭐 식당에 가서 하든지, 아니면 공양을 직접 올리든지 만들어서 올리든지, 뭘 하든지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을 자꾸 택해야 되지 편하게 자꾸 생각을 해버리면 그건 보시공덕이 되지 않는다 하는 걸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세 번째 '사하따 데띠'라고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아나빠윗탕 데띠 anapaviṭṭhaṁ deti'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거는 아마 여러분들이 안 할 겁니다.
나한테 필요 없는 걸 그냥 주듯이 보시하는 것, 그건 안 하죠? 그 부분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아가마나 딧티꼬 데띠 āgamanadiṭṭhiko deti'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보시한다는 건데,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업과 업의 과보, 업의 결과를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알고 보시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행한 선한 행위는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확신을 지니고 보시를 한다는 뜻입니다.

이 5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그것을 삽뿌리사 다나(sappurisa dān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삽뿌리사에게 삽뿌리사 다나가 될 수 있도록 보시하는 것이 바른 보시다" 하는 것들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세 번째 보시하는 습관을 자꾸 가지라 하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자비의 마음을 지닐 것.

어떠한 경우든지 말하고 행동하고 할 때는 자애를 지닌 채 행하도록 자꾸 습관을 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 자애를 받는 것은 둘째 치고, 자기 자신이 자애의 마음을 항상 지니게 되는 거라.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지속되도록 노력하는 것.

그런 일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남에게 법보시를 한다든지 책으로 해서 법보시를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을 남에게 전해주고 얘기해 준다든지 그런 것들이 다 해당이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말하고 행하는 것들이 '아, 참 저 사람은 부처님 제자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아, 저 사람 참 화도 안 내고 욕심도 안 부리면서 잘 베풀고 그렇게 잘 산다. 남에게 항상 선한 마음을 지니고 하니까 잘 산다" 하는 것들을 보게 될 때, 그게 부처님 가르침이 오래도록 퍼지도록 만드는 역할들을 한다는 거라. 그런 노력들을 자꾸 하라는 거라.

 

그다음에 여섯 번째,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사띠를 실천할 것.

수행은 하면 할수록 사띠는 점점 더 강해지고 깊어지고, 마음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평온해집니다. 행복해지는 쪽으로 넘어가지는 거라.

그래서 칠각지를 예를 들어보면,

칠각지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편안해집니다. 그러면서 가벼워지게 됩니다.

처음에 사띠를 실천할 때는 사띠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겠지마는, 사띠는 점점 더 강도가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들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았는데, 그다음에는 일어나는 것이 하나로 일어나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현상으로 일어나는 것들이 보여진다는 거라. 사띠가 깊어지게 되니까 이렇게 보여지는 거라.

그다음에 그 사띠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 보여집니다. 대상이 선명해진다는 뜻입니다.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까지 끝까지 볼 수 있게 되는 거고, 대상이 선명하기 때문에 그게 보이는 거라.

택법 각지라는 거는 그런 겁니다. 대상이 완전하게 선명하게 보여서 그것들이 완전히 일어나는 순간부터 해서 사라지는 순간까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대상이 그렇게 선명하게 분명하게 보이면 어떻게 돼요?
더 노력할려고 하는 거라. 더 수행할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마음은 기쁨이 일어나는 거라. 대상으로 인해서 그게 물질적인 대상이든 정신적인 대상이든 그 대상으로 인해서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진다는 거라.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수행이 쉬워져요 이제는.

굳이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도 대상이 와서 탁 부딪치는 것처럼 대상이 알아차려지는 거라. 그게 인제 경안각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은 마음은 점점 더 안정됩니다.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가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그게 정각지라는 거라.

 

그렇게 하면은 마음은 감정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마음은 외부적인 대상으로 인해서 어떠한 경우든지 동요하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그게 사각지라는 거라. 오로지 대상과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띠 밖에 없는 상태가 되게 되는 거라.

그래서 그 대상이 어떤 대상이든 화내는 화에 대한 대상이든, 아니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빠르게 변하는 괴로운 느낌이든, 그거 하고 관계없이 마음은 평온함에 머무르면서 그걸 대상을 알아차리는 상태라는 거라.

 

그렇게 수행이 자꾸 바뀌어 나가야 됩니다.
칠각지를 자꾸 떼어놓지 말고, 이렇게 수행이 발전돼 나가는 과정이라고 자꾸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사띠를 자꾸 실천하는 습관들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 수행이 끝나고 나면은 그리고 어떤 일을 반드시 행하고 나면, 공덕을 회향하는 습관들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태어난 거는 여러분들이 아무 도움 없이 태어난 것은 없습니다. 다 도움을 받아서 태어나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도움이든 아니면 인간에 대한 인간이 도움을 준 것이든 어쨌든 도움으로 인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들을 돌려줄 책임은 의무는 여러분들에게 있는 겁니다. 내가 지은 공덕들도 그걸 돌려주는 의무에 속합니다.

그래서 공덕을 자꾸 회향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들을 가져야만이 마음이 넓어지고, 그로 인해서 다툼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7가지는 여러분이 안거 기간 동안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자꾸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습관들을 자꾸 지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보시분별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보시와 공덕이 되는 조건들에 대해서 설하신 법문입니다.

* 빠와라나(Pavāraṇā, 自恣) 및 「보시 분별경」 (20111013.안거해제)

* 23. 다나(dāna, 보시) (201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