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c2pvH_HsCo?si=CmlXHm81CWGhP1dy
* 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문답_담마와나선원 (20240714)
(※ 음성이 잘 안들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녹취된 법문은 참고로 활용하시고, 음성 법문을 잘 들어보시면서 문맥을 이해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요즘은 제가 교단일을 안 보니깐 너무 좋아. 그거 흥미도 없는 걸 잡고 있을라니까 옛날에는 힘들어 죽겠더만은, 요즘은 이제 밑에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그런 일을 보고, 또 재가자들도 거들어주고 하고 있으니까 참 좋습니다.
그래서 요 4가지만 한번 기억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교단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물론 스님들 노력들도 많이 해야 되는데, 그래서 스님들한테도 내가 야단칠 때는 야단을 치고 합니다. 교단 돈 쓸라고 하면 “안돼!” 왜 그러냐 하면 교단은 스님들하고 재가자들이 떠받쳐 가지고 나아가야 되는 거지, 그 배에 매달려 버리면 교단은 침몰해버립니다. 그래서 “힘들면 니가 그냥 굶어. 그래야지 교단 돈을 가지고 뭘 하려고 하지마. 그 돈은 나중에 다른 일에 좋은 일에 써야 돼.”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오늘 이사장 스님은 힘들어 죽겠다 하는데 “알아서 해”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4가지만 한번 기억을 해보십시요.
여러분들 곁에는 좋은 스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교단도 새롭게 좀 정비가 되고 하면서 포살도 한달에 한번씩 하게 되고, 그러는 게 오늘 완전히 확정이 됐어요.
그전에는 스님이 지금 포살을 같이 안 해야 되는 분들이 같이 하면은 나도 죄를 당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참여를 못했는데, 이번에 다 정리를 좀 했습니다.
그래서 교단의 소속의 스님들만으로 포살을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이번 달은 어쩔 수 없이 우리 붓다의길따라 선원에서 안거를 해야 되기 때문에 안 되고 다음달에는 아마 여기 선원에서 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다음달에도 스님이 와서 포살도 하고 여러분들한테 법문도 좀 하고,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여러분도 좋죠? (수행자 일동 : 예)
4가지, 첫 번째, 여러분을 지도해 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스님 말고도 다른 스님들도 있고 여기 선원장 스님도 있고, 이 선원장 스님을 자주 뵙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어찌 됐든 교단이 잘 굴러가고 할려면은 그 교단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이 가장 핵심인데, 비구 스님들이 바르게 서야 됩니다.
여러분 법문이 중요한 게 아니고, 스님이 그렇게 훈련이 되어져야 됩니다.
법문을 함으로써 ‘아, 내가 수행하는 게 부족하다’ 하면 지가 수행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러면서 인제 교단 스님들이 튼튼하게 도움 될 수 있도록 되는 것이, 그 스님들을 자주 찾아뵙고 법문 듣고 하는 것이 첫 번째 부분입니다.
여기 이사장 스님한테도 그런 얘기했어요.
한 6개월 전엔가, 몇 년 이내에, 2년 이내에 상카루뻭카냐나에 이르러라. 못이르면 처단한다 그랬어요.
왜 그러냐면 선배 스님들은 후배 스님들을 빨리 다독여가지고 빨리 이끌어 나가야 되는 거라. 그래서 이 스님들이 커야만이 우리가 쉴 수가 있거든. 우리가 빠지더라도 이 스님들이 교단을 이끌어나갈 수가 있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스님들이 마음에 안 들고 하는 것들이 왜 없겠어? 그리해도 내가 눈으로 보면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있는 게 보여. 그리해도 그 스님 법문을 들으라는 거라. 내용이 귀에 안 들어오면 그냥 들리는 것으로만 알아차리면 되잖아. 그거 얼마나 좋은 재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거를 반드시 하라는 거라.
그래서 스님들을 자주 찾아뵙는 것이 첫 번째고,
수다원에 이르기 위한 것도 이 4가지 조건입니다. 선지식을 잘 뵈어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법을 듣고 공부하라는 거라.
요즘은 인터넷에 보면 다 나옵니다. 법문들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한 번 듣고 나면 안 들을라고 그래요. 그러면 안 돼. 그 법들은 여러 번 들어도 될 정도의 법들이 틀림없이 올라 올 겁니다. 그럼 첫 번째 들었을 때의 나의 마음 상태하고 두 번째 들었을 때의 마음 상태가 틀리기 때문에, 내가 도움이 되는 것들이 틀림없이 그 속에는 다른 것들을 내가 얻어갈 수가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아, 내가 수행이 요 정도 됐었기 때문에 요 부분이 딱 마음에 들어 가지고 그걸 참조를 했는데, 그다음에는 수행이 또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갖다가 내가 얻어 가지고, 도움 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데 그걸 안 하면 안 되는 거라.
그렇게 해야만이 법을 청해서 하는 스님들도 법에 대해서 바르게 알려고 자꾸 노력합니다. 자기 견해를 섞지 않고! 그렇게 훈련이 돼 나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요니소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라고 알죠? 선한 마음을 지니고 뭔가 행위를 하고 말을 하고 해야 되지, 누구 험담하기 위해서 여기에 오는 건 아니잖아. 공덕이 될 수 있는 행위들을 자꾸 해야 되지, 내 마음에 안 든다 해가지고 내 마음에서 밀쳐낼려고 하는 생각들을 자꾸 가지면 안 되는 거고, 수행도 대상에서 대상을 관찰할 때 요니소마나시까라가 있어야 되는 거고, 그걸 하지 않으면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를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좋은 말로써 좋은 행위들로서 북돋아 줄 수 있고 서로 이끌어 나갈려고 해야지 거기에 매달리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가 담마누담마(dhammanūdhamma)라고 합니다. 어떻게 한다고? 복습하고 예습하고 계속적으로 그걸 훈련을 하는 것들입니다. 수행도 계속적으로 훈련을 안 하면 안 되죠? 안 그러면 툭 떨어집니다. 톡 떨어지면은 다시 또 1단계부터 또 해야 돼. 어쩔 수가 없어. 여러분들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 4단계부터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1단계부터 다시 해야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부터 해가지고 또 해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하다 보면은 어느 순간에 인제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거 필요 없어. 바로 그냥 현상이 변해가는 것만 바로 보여지는 상태가 돼버리게 되면은 밑에 거는 필요 없는 상태가 되지만, 그러기 전에는 끊임없이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도 반복을 해야 되듯이, 여러분 일상 생활들도 계속적으로 반복을 해야만 실수가 없어져버리게 됩니다.
특히 인제 교단 같은 경우에는 수행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이 해야 될 일들이 있고 구성원들이 해야 될 의식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럼 그것들을 잘 배워가지고 그대로 익혀 나가야 되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안 그러면 조금 더 쉽게 편하게 할려고 한다? 그럴 거 같으면 변질돼버리게 되는 거라.
담마와나 선원 특히 명심해요! 쉽게 할려고 하지 마! 정석대로 그냥 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석대로 해나가려고 해야 되지, 그걸 편하게 할 것 같으면 공덕도 생기지 않고 법에 맞지도 않고. 그래서 그것들은 참 유의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만이 지금 기초가 다져져 가지고 있어야만이 그다음 대에 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갈 수가 있게 되지, 지금부터 변형이 되기 시작을 할 것 같으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거는 반복해서 그대로 할려고 하는 습관들을 가져야 됩니다.
특히 인제 수행 같은 경우에는 여러분들이 윤회를 하는 한은 그냥 계속한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반복하고 반복하고 그냥 그게 밥 먹고 숨 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일상이다 생각을 해야 되는 거지, 특정하게 내가 용을 써가지고 금방 이룰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라. 그냥 '살아가는 행위다' 하고 생각하고 계속적으로 사띠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어쩔 수 없이 나는 살아있으면은 수행을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편안하게 그냥, ‘아이, 또 놓쳤네’ 하면 되는 거 아니라? 놓쳤으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사띠하면 되는 거라.
그렇게 편안하게 자꾸 다가가야지 이 수행이 분리가 안 되게 되는 거지, 그냥 내가 뭔가 노력하고 내가 출가만 하면 뭔가 될 것처럼, 절대 그런 법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4가지는 항상 명심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수다원이 될려 해도 이 4가지가 필요한 거고,
교단을 받쳐서 나갈려고 할 때도 이 4가지가 필요한 거기 때문에, 명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서두는 이렇게 꺼냈고, 여러분들 질문 받겠습니다.
Q.수행자 1 질문 : 우리가 정진 위리야(vīriya)라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그 팔정도에서 정진은 삼마 야마미라고 위리야가 아니라 야마미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은데요. 그게 맞습니까? 차이가 야마미하고 위리야가 차이가 있는 겁니까?
A.스님 답변 : 야마미가 아니고 와야마. sammā-vāyāma 삼마 와야마. 차이가 있습니다.
위리야(vīriya)는 물론 정진의 뜻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근데 그 정진이라는 것은 용을 쓰는 정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놓치지 않는 상태가 돼있는 것! 그게 이 위리야의 원래의 의미입니다. vi위 하고 riya리야 하고가 떨어지는데, vi위는 여러 가지라는 뜻입니다.
대상은 여러 가지입니다. 어느 대상이든지 대상이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됩니다. 놓치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사람마다 틀리긴 하겠지만, 되게 용을 써가지고 그걸 안 놓치려고 발악하듯이 이렇게 노력해야 되는 사람도 있고, 또 수행이 잘된 사람들은 그냥 편안하게 오히려 대상을 바라보면 그걸 놓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 거라.
그래서 '사띠(sati)하고 삼빠자나(sampajāna)가 같이 겸해져서 편안한 상태로 대상을 갖다가 끊임없이 알아차려져 나가는 것' 이게 사실은 '위리야'의 의미입니다.
와야마(vāyāma)라고 할 것 같으면 그 경우가 좀 틀립니다.
노력은 뭘 해야 될까? 팔정도에서 노력은? 노력은 균형이 맞아야만이 되지, 지 혼자서 노력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노력이 너무 지나쳐버릴 것 같으면은 집중하는 힘들이 틀림없이 약해집니다. 그럼 집중하는 힘들 하고 사띠 하고 같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아야만이 이 노력하는 힘이 균형을 맞춰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은 노력을 엉뚱한 데 가서 하게 되는 거라. 엉뚱하게.
아까도 오전에도 얘기했지만, 이미 상카라가 일어난 상태에서 그 상카라를 관찰하는 걸 노력의 범주에 넣게 되는 거라. 화가 일어났는데 화가 일어나는 상태에서 그대로 관찰하면 화가 분명히 사라지게 되는데, 이미 나는 화가 일어나 있는 상태가 돼버린 상태로 화를 관찰한다고 할 것 같으면, 실제로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화를 관찰하는 것은, 화는 멈추질 않고 사라지질 않고 계속적으로 화는 나게 되는 거라. 그럼 그럴 때는 대상이 이미 잘못된 거라.
그럴 때는 노력을 갖다가 요 '화'에다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다 해야 되는 거라. 그래서 대상이 바뀌어 버려야 되는 거라.
그래서 집중해야 되는 것들이 뭔지를 분명하게 알고 거기에 맞춰서 집중을 하게 되는 것들을 할 때는 와야마(vāyāma)라! 그게 인제 바르다는 거라. 바른 노력이 되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으면은 8정도는 항상 균형이 맞질 않게 되는 거라.
그래서 위리야 하고 와야마 하고는 분명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 대신에 이 2가지의 공통점은 뭐다? 항상 사띠가 있습니다. 사띠가 있는 상태가 지속이 되는 것들이 이 노력의 공통되는 의미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정도(正道)라고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균형이 맞는 것이 존재를 해야 됩니다. 노력도 마찬가지고 집중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떤 것이든 균형이 맞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딧티(diṭṭhi)'라고 할 때도 팔정도에서 딧티라고 하는 것은 그냥 견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견해가 없는 것들이 '삼마 딧티(sammā-diṭṭhi)' 입니다.
그게 이 '정도(正道)'라고 하는 '삼마(sammā)'에 해당되는 용어가 됩니다.
그냥 일반적인 '딧티'로 쓰는 '딧티'하고, 여기 '삼마 딧티' 할 때의 '딧티' 하고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됐습니까? (예)
Q.수행자 2 질문 : 제 아는 스님 얘기인데요, 제가 여기서 사귀었던 도반인데요. 출가를 했어요 태국으로. 그런데 절 이름이 로이엣 장소에 있는 왓반 사남자이 라는 절로 갔어요. 거기엔 아홉 명의 스님이 계신다고 하고, 그래서 처음에 이제 그런 문자를 받고 ‘아 그러면 큰스님도 계시고 9명이 계시면 골고루 배움도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좋겠구나’ 안심을 했는데, 5개월쯤 뒤에 있다가 거기에 있던 스님이 세운 지방에 있는 거기서 버스로 차로 18시간 떨어진 매홍선에 있는 산의 어떤 절로, 매홍선으로요 18시간을 가서 갔는데, 거기에 스님이 2분 계시더래요. 자기 포함해서. 그 두 분이 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이거 닛사야도 안 끝나고 왜 사람을 보냈을까?’ 저는 궁금했는데, 거기서 그렇게 지내다가 또 몇 달 있다가 또 문자가 왔는데 거기서 다시 1시간 산속으로 들어간 매사풍이라는 사찰로 옮겼는데, 아잔차 스님이 세웠던 곳이고 그 마을도 산속 마을이라 한 15가구 정도밖에 없는 조그만 곳인데 혼자 지낸대요.
그래서 그분이 이제 처음에 그런 얘기를 듣고 저는 전혀 반갑지가 않았어요. 이게 수행을 받아야 되는 입장에서 지금 사찰을 운영해야 되는 입장이 된다는 거는 상당히 저는 되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이게 스님한테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 도반이었고 지금 말할 상대가 없어가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이분이 인제 수행만 열심히 하시는지 예전부터 자애수행이 자기한테 잘 맞았다라고 얘기하셨는데 자애수행을 하다가 이런 질문을 보내왔는데, 이게 재가자가 답할 수 있는 내용이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스님께 한번 짧으니까 읽어드릴게요.
Q.자애수행이 보호수행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자애수행을 닦으면 우뻭카로 4선정까지 갈 수 있고, 자애경에는 아라한까지 되어있지만, 경전에는 불환자까지 성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른 수행의 보호수행 목적이 아니라 본수행으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이렇게 질문을 보내왔는데요. 저는 뭐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일단은 사무량심으로 사선정으로 간다는 얘기는 듣고 경전에도 어느 정도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비담마에도 좀 있고 그런데, 그걸로 도와 과까지 얘기한다는 거는 저는 처음 들어봤거든요. 이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는지,
-스님 : 전환을 하면 되는 것이지.
-수행자 : 네? 전화요?
-스님 : 전환!
-수행자 : 아 전환.
A.스님 답변 : 전에 아마 어디서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법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애수행으로는 어떠한 경우든지 3선정 이상을 갈 수 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3선정 이상을 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자애수행에서 우뻭카로 전환을 해야만이 4선정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겁니다.
-수행자 : 우뻭카라면 사무량심 중에서 자비희사를 ....
-스님 : 그렇죠. 그렇게 되는 건데, 그리고 마찬가지로 불환과 아라한과라고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로 그 사무량심에서 나왔을 때, 나왔을 때 도와 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지, 자애수행을 하면서 불환자가 되고 아라한이 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선정수행하는 사람들이 선정으로 아라한이 된다고 얘기를 하겠지. 근데 아라한이라도 선정에서 나와야만이, 나와서 위빳사나 수행으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상태가 돼야만이 그 성자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는 거라.
-수행자 : 근데 이 질문 중에 그 경전에서 사무량심으로 불환자까지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는 말은
-스님 : 불환자까지는 가능한 게, 그 사무량심만이 아니라 자애수행으로는 그것으로는 되지는 않고 거기서 마음을 전환을 해야 돼요. 전환해서 위빳사나로 전환해야 돼요.
-수행자 : 아, 전환해서, 독립적으로는 안되구요.
-스님 : 독립적으로는 안됩니다. 전환을 하는 것이 찰나 간이기 때문에 바로 전환을 해가지고 불환자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지, 생각을 해 봐요. 사무량심은 사마타 수행입니다. 하나의 대상에 고정돼 있는 상태입니다. 무슨 방법으로 무상·고·무아가 없이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어요? 방법 없습니다.
단지 그 하나의 대상에 몰입돼있는 것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빠져나와서 전환을 할 때 전환하고 나서 성자의 계위로 올라가는 것이 빠를 수가 있는 거지.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서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수행자 : 결국 그러니까 보조수행이네요. 독립적인 수행이 될 수는 없고.
-스님 : 그렇죠. 그거는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스님들도 다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거고, 경전에도 마찬가지고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도와 과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수행자 : 그럼 스님께서 빨리 전환하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전환은 위빳사나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아누빳사나 해서 무상·고·무아를 통찰하고...
-스님 : 아누빳사나 됐든 어떤 것이 됐든 간에 뭐 어쨌든 위빳사나 수행에서 무상·고·무아를 볼 수 있는 변하는 대상이 되어야 되는 것이지, 변하는 대상이 됐을 때 그게 가능해진다는 거라.
Q.수행자 : 어떤 스님은 법문에서 상수멸에 들어갔다 나오면은 그것을 보기도 한다. 그 통찰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
A.스님 : 상수멸은 도와 과 없이 상수멸이 가능합니까?
-수행자 : 아, 도와 과가 먼저입니까?
-스님 : 그럼. 상수멸을 갖다가 도와 과가 없이 상수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근데 무슨 수로 선정에서 상수멸을 할 거라?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지마.
Q.수행자 : 아, 그러면 이거는 충분히 알아듣겠습니다. 근데 이거 말고, 이 분이 이렇게 지금 생활하고 계신 게 밀려서 밀려서 가라는 데로 갔지마는 지금 혼자 생활하는 게 스님 보시기에 ...
A.스님 : 지금 출가한 지 얼마나 됐어요?
-수행자 : 아, 2번 했어요. 한번은 태국 가서 하다가 딸 결혼식이 있어서 나왔고, 다시 지금 두 번째 다시 들어가서 한 게 2023년 7월쯤에 아마 들어왔던 것 같애요.
-스님 : 그럼 아직 1년밖에 안 됐네.
-수행자 : 예. 근데 지금 닛사야도 5년을 못 채운 상태에서 지금 이렇게 해서 지금 조그마한 절이라고 하는데 소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
-스님 : 도피하고 있는 거라요?
-수행자 : 본인의 선택은 아니었어요.
-스님 : 그러니까 본인이 선택이든 뭐든 간에 가라고 한다고 가요 그러면? 그건 본인이 선택하는 거지, 내가 안 가겠다고 그러면 뭐 안 가는 거지.
-수행자 : 그러면 만약에 신청할 수 있다면 다시 원래 지역으로 로이텐인가 거기로 다시 오겠다 ...
-스님 : 그것보다는 스님이 생각할 때는 그냥 한국 오라고 그래요. 거기서 그냥 편안하게 도피해 있지 말고. 출가했다는 명목,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편하게 있지 말고, 그냥 나와야 돼요. 그게 맞는 겁니다. 지금 아마 다시 본 절에 들어가서 5년을 채우라고 할 것 같으면 틀림없이 안 합니다. 게으름에 젖어버리면 요거는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수행자 : 그러니까 한국의 테라와다 상가로 다시 들어오라고 ...
-스님 : 그냥 와서 집에 가라고 그래요.
-수행자 : 아, 재가자로 환속을 하라구요.
-스님 : 환속해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하라고 해야 되지, 지금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할려고 그래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시간이 흐르면 후회하는 생활이 될 건데.
-수행자 : 예. 알겠습니다.
-스님 : 출가했으면 출가의 본분을 다 해야 되거든요. 그렇지 않고 그냥 출가자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거는 스님이 봤을 때는 그거는 아니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이든지 출가하였으면 처음에는 스승님 밑에서 5년 아니면 10년 머무르라는 이유가 그 속에서 경을 외우고 수행을 하고 자기가 혼자서 지낼 수 있는 힘들을 길러놔야 되는 거라. 근데 그걸 키우지 않고 나가버린다고 하는 거는 그 절에서 대중 생활하기 힘드니까 보내버린 거라. 그건 그 사람이 문제인 거지 그 절에서 보낸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안 해요. 지금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합니다. 안 돼서 또 대중 생활 못하니까 또 보내버리고, 혼자 있으니 좋기는 하겠지. 근데 뭐할려고? 그렇게 해가지고.
예. 다른 질문을 받겠습니다.
Q.수행자 3 질문 : 스님, 사념처 수행 관련해가지고요. 수행자 성향별로 조금 더 잘 맞는 염처가 있다든지 이러한 얘기를 들었고, 그중에서 부류를 나눌 때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이 있고 그건 이해가 가는데, 둔한 사람과 예리한 사람은 어떤 걸로 판단을 할 수가 있나요? 둔하고 예리한 거는?
A.스님 답변 : 둔하고 예리하고 하는 거는, 뭐를 대할 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생각을 많이 안 하고 그냥 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판단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뭘 하더라도 분석해 가지고 이렇게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턱 믿어버리고 그냥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걸 둔하고 예리하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뿐이지.
Q.수행자 4 질문 :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둔한 사람인 거죠?
A.스님 답변 : 그렇죠. 근데 오히려 수행은 그런 사람들이 훨씬 잘합니다. 훨씬 잘해요. 특히 예를 들어 볼게요. 여러분 대부분은 보면 무상에 대한 수행들을 합니다. 변하는 것들을 관찰하는 것. 변하는 거는 둔한 사람들이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상한 성품을 가지고 수다원에 이르고 도와 과에 이르고, 그게 대부분입니다. 거의 대부분은 보면 둔한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부터 해서 가장 많이 깨달음을 이루는 계통들이 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래서 믿음이 강한 자가 된다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이라고 해가지고 여덟 가지의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특징적인 것들을 행하는 것들이 믿음이 강한 자는 이거는 무조건 믿는다는 거라.
스님이 얘기하면 ‘응, 맞아’ 무조건 따라가는 거라. 근데 그게 그게 맞는 거라. 원래는 그게 돼야만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거든.
근데 지혜가 강한 사람들은 먼저 "어?" 의심부터 드는 거라. 그런 사람들은 ----가 되기는 하는데 시간이 굉장히 더딥니다.
예를 들어서 사리뿟따하고 목갈라나, 사리뿟따는 둔한 부류입니다. 목갈라나는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가 먼저 깨달음에 이르렀어요? 사리뿟따가 훨씬 먼저 깨달음에 이르렀어요.
-수행자 : 목갈라나
-스님 : 목갈라나가요? 목갈라나는 처음에는 좀 되다가 수다원이 되고 나서 아라한이 되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어요. 그런데 사리뿟따는 바로 그냥 착 무조건 부처님 얘기에 “옛썰” 하고 그냥 툭 가거든.
-수행자 : 목갈라나 존자가 먼저, 반대로 말씀하시네요.
-수행자 : 목갈라나 존자가 먼저 일주일 만에, 일주일 뒤에 사리뿟따 존자가
-스님 : 그렇게 되는 거라?
-수행자 : 경전에는 그렇게 ...
-스님 : 그건 수다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아라한을 얘기하는 것이지.
-수행자 : 예. 아라한이 사리뿟따 존자가 2주 걸리고, 목갈라나 존자가 1주일만에
-스님 : 아, 그럼 내가 반대로 얘기했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들이 빨리 도와 과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오히려 둔한 사람들이 빨리 온다는 거라.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리뿟따하고 목갈라나는 성향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분들이 지혜 제일이고 그다음에 뭐 신통제일이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지혜가 뛰어난 것은 신통을 가지고 있는 목갈라나 존자입니다. 이게 오히려 사리뿟따 존자는 믿음이 강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부처님을 믿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러면 선택을 해야 됩니다. 무상으로 도와 과에 이를 것인지, 고로 도와 과에 이를 것인지 무아로 도와 과에 이르게 될 지를 선택을 해야 됩니다.
오전에 얘기했던 상카라 부분이 소멸되고 나면 반드시 열반을 체험을 하고 나면 그다음엔 내가 선택을 해야 되는 거라. 그러면 내가 닦아온 게 무상한 성품들이 많으면 무상한 것으로 쭉 밀고 나가야 되는 거고. 고면 고쪽으로 밀고 나가야 되는데, 고를 하든 무아를 하든 결국은 무상한 성품이 없으면 이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보면 무상한 성품으로 도와 과에 이르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네 부류의 성인들 3. 일래과와 불환과_수행에서 칠각지와 팔정도의 체험(20061013)
https://blog.naver.com/keh6843/222138769668
사리뿟따 존자하고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불 존자는 보통 뭐라 그럽니까? 지혜제일 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신통제일, 신통제일은 다른 말로 하면 선정이죠! 지혜하고 선정은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마타하고 위빳사나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사라뿟따는 위빳사나 수행을 해가지고 깨달음에 이르렀고, 목갈라나는 사마타를 해서 깨달음에 이르렀는가? 그건 아니죠? 어떻게 해서 깨달음에 이르렀습니까?
경전에 재밌는 게,
사리불 존자는 사선정을 경험하고 상수멸정까지 경험을 하고 깨달음에 이르릅니다.
근데 목갈라나 존자는 그거 없이 사선정 없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른 거고, 그래서 목갈라나 존자는 7일 만에 깨달음에 이르르죠!
사선정이 없다 것은, 사선정은 삼매에 빠진다는 겁니다.
거꾸로 생각했죠? 근데 경전에는 분명하게 그렇게 나와 있거든.
처음에 스님도 경을 공부하면서 ‘아, 이거 뭐 잘못 쓴 게 아닌가’ 해가지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잡아함경 말고도 여러 주석서에 똑같이 그렇게 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그 하는 방법에 따라서 조금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럽니다.
목갈라나 존자 같은 경우에는 오력을 조절하는 능력이 좀 탁월했습니다. 탁월했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빨리빨리 대상을 옮겨주는 수행을 할 수가 있었고,
사리불 존자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목갈라나 존자보다는 떨어졌기 때문에 강한 집중을 많이 키워줬던 상태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수행을 했다 하고 그렇게 통상적으로 얘기합니다.
그분들도 한 분은 신통제일이고 한 분은 지혜제일이라 하더라도 깨달음의 단계에서는 반대의 성향들이 나타났었고, 또 그 깨달음 이후에는 다른 성향으로 바뀌어 나가고 그렇게 해나갑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명심을 하고,
(수행자 질문 ...)
맞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지혜가 출중했던 분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사리불이 먼저 앗사지 존자의 말을 듣고 이 법에 대한 확신들을 가지게 됐거든. 근데 직접들은 사람하고 그 말을 다시 전해 들은 사람하고 똑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거 같으면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당연히 그렇다는 거라.
목련 존자는 그 전해 들은 소리만 듣고도 빨리 그 과정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히려 지혜가 출중했던 분입니다. 그마만큼 상황에 대한 인식판단들은 훨씬 사리불 존자보다 뛰어났습니다. ]]
Q.수행자 4 질문 : 예민한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하는 게 좋습니까?
A.스님 답변 : 예민한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냥 무상한 것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예민한 성품들을 조금 줄이는 게 좋습니다. 예민하다 라고 하는 거는 뭔가 자꾸 분별할려고 그러는 거라. 분별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되는데, 이미 수행하는 초기부터 분별을 해갑니다. 칠각지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사띠가 돼야 만이 분별하는 것들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지.
사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띠가 자동적으로 돼 가지고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는 분별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라. 그거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분별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분별일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성향들이 강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분별하고 하는 것들을 줄이고, 그냥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는 연습들을 하라는 거라. 그렇게 좀 접근해야 되는 것이지, 그냥 자기 성품을 최대한 살려가지고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한다? 안되는 걸 어떡할 거라! 그렇게 보면 됩니다.
Q.수행자 5 질문 : 스님, 무상·고·무아를 선택해야 된다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는, 근데 수행 과정에 무상 고 무아를 보는데 그것이 거의 한순간에 동시간에 있는 얘기가 아니라,
-스님 : 동시에 안 일어납니다.
-수행자 : 예. 안 일어나는데 무상 고 무아를 3가지의 성품을 수행 중에 느끼는 거는...
A.스님 답변 : 그건 충분히 느껴집니다. 그 3가지를 다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상하고 변하고 하는 것들로 인해 가지고 그것들이 괴로움으로 연결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쉽게 말하면 범부인지 성자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고뜨라뷰까지 딱 도달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로 선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개가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모든 것들을 갖다가 딱 끊고 딱 그거 하나만 됩니다. 결합하는 조직이 없어져 버립니다. 결합은 어떤 식으로든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해야만이 결합을 하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완전히 떨어진 건 아니지만, 역할을 못 하기 때문에 결합을 못하게 됩니다.
-수행자 : 근데 어느 순간에는 그 와찌상카라가 제가 의도하지 않고 그냥 스톱되는 그전까지는 내면적인 대화를 자기가 알고 있는데, 그런 대화가 생각이 완전히 끊어진 다음에 호흡도 까야상카라가 거의 스톱은 아닌데 에너지와 같은 그런 것들이 느껴지긴 해요.
-스님 : 그때 어떻게 했는데? 와찌상카라든 까야상카라든 그게 거의 끊어져 버리고 소멸되는 상태가 되면 마음이 어디 갔느냐는 거라.
-수행자 : 마음이 없어졌어요.
-스님 ; 그러니까 그 마음이 없어진다는 건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없는 상태가 됐는데, 그러고 나서 어디로 향했느냐는 거라.
-수행자 : 그래서 제가 하여튼 이거는 교리를 알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 이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알고 있는 그 장소를 보는 것이 그게 열반인가? 이렇게 생각한 적은 있고, 그렇게 한 상태에서 한 몇 초간 지나고 있다가 다시 까야상카라가 톡톡 의식이 돌아오고 내면적인 그런 생각들 이게 내가 이게 뭐였지 하는 이런 그런 분석하는 마음, 약간 알려고 하는 마음 이런 것이 다시 생기면서 계속 해나가는데 그것이 조금씩 반복되는 거는.
-스님 : 그거는 괜찮습니다.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끊어졌을 때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되는 것이 다시 사띠를 일으키려고 하면 안 돼요. 일으키려고 할 것 같으면 제자리로 돌아와 버립니다. 그냥 놔줘 버리라는 거라. 끊어지면 끊어지면 그걸 그냥 편안하게 그냥 보고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어차피 지금은 초보 단계에서 다시 또 다른 대상들이 나타나게끔 돼 있습니다. 그걸 계속 반복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만 길어지면 돼요. 그러면은 나중에 돼서는 그리고 ‘이게 뭐지’ 하고 생각할 필요 없는 것이 나중에 되면은 그게 뭔지가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게 드러나지면서 내가 ‘뭐가 지금 이제는 안 일어나지’ 하는 것이 딱 확연하게 보여집니다. 그때까지는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수행자 : 그런데 그런 상황을 가기까지 내가 사띠를 해야 되겠다 그런 의도를 내지 않고 그냥 사띠가 되는데.
-스님 : 그건 자동으로 되니까 사띠가. 그냥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 대신에 하나의 대상을 자꾸 선택할려고 해야 돼요. 어차피 나중에는 하나의 선택을 하기 때문에, 무상한 성품이면 무상한 성품만 계속 볼려고 해야 돼요. 그래야만이 나중에 끊어지는 그 시간이 오래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내가 그거 시간을 딱 끊어지는 순간 ‘어 내가 1시간 동안은 이대로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오면 거의 그 시간까지 그냥 있게 되는 거고. 그런 상태가 될 때는 그냥 그걸 계속 진행을 해나가면 됩니다.
놀래지만 않으면 됩니다. 놀래지만 않으면. 그럴 때는 주위의 것들이 아주 예리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놀래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에 놀래지 말아요.
-수행자 ; 근데 아까 스님께서 햇볕을 받으셨을 때 그러니까 이게 일상생활이잖아요.
근데 저는 수행 중에서는 굉장히 적막함을 느끼고 정말 너무나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그러는데, 일상생활에서는 그런 느낌을 통해 사띠는 되는데 그러한 거는 ...
-스님 : 상카라 없이 대상이 알아지게 되면은 그것도 4가지 성품으로 알아지게 되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그런 거기 때문에 그게 이불을 덮을 때도 그럴 수도 있고, 옷을 입을 때도 그럴 수도 있고, 아까 같이 햇볕을 받을 때도 그럴 수도 있고, 남이 말하는 걸 들을 때도 그럴 수도 있고, 그래서 상카라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하는 것들을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그런 체험들을 자꾸 해야만이 수행에서 멀어지질 않는 거라.
자, 없으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는 이제 떠납니다. 다음 달 5일인가 4일인가? 4일날 다시 올라오겠습니다.
※ 참고
사무량심 : 압빠만냐 (appamaññā, 한량없이 스며듦) (20070120)
https://blog.naver.com/keh6843/222138845091
자애수행과 열반의 관계(20151001.부산)
https://blog.naver.com/keh6843/222562320851
자애수행할 때 주의깊게 봐야되는 부분_자애수행으로 선정에 들도록(20240420)
https://blog.naver.com/keh6843/223422636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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