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수행할 때 초보자들이 잘하는 실수 (20240706)

담마마-마까 2024. 7. 7. 10:13

https://youtu.be/EOpcFnM2A_o?si=28O184DB7-EIOeTr

 

* 수행할 때 초보자들이 잘하는 실수 (20240706)

 

다음 다음주는 안거 들어가지죠? (예)

원래 안거 들어갈 때 목욕가사를 준비를 해야 됩니다. 누가, 그냥 천을 이렇게 만들면 돼. (수행자 대답 : 작년에 해온 분이 있으니까, 올해도 그렇게 하면...)

그렇죠. 천을 오려 붙이지만 않으면, 조의만 만들지 않으면 되니까.

 

오늘은 아주 쉬운 거 얘기하겠습니다.

배를 관찰을 하는데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걸 못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어요? 어떻게 해요 그럼?

(수행자 대답 : 그냥 느낌이 일어나는 것만 ...)

음, 그렇게 하고 나서는?

(수행자 대답 : 그렇게 하고 ...)

그러고나면 또 어떻게 하는데?

(수행자 대답 : 어느 때는 ...)

 

그런데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관찰하라 해서 관찰할려고 하는데 모르겠는 거라.

이게 불러오는 건지 꺼지는 건지, 또 어떨 때는 수행을 잘하고 있는 분들도 하다가 중간에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모르는 경우들도 허다하게 생기고 그렇게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건데, 스님 입장에서는 최고 난감할 때가 이럴 때입니다.

대상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거기 때문에.

 

그런데 그거는 어떤 누구가 잘못하고 있고 하는 그런 거하고는 관계가 없이 그 사람의 성품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평상시 때 행동이 좀 느리고 좀 느긋한 사람들이 이런 성향들이 좀 강해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할려는 것보다는 그냥 안주할려고 하는 그런 경향이 강한 사람들, 그게 어떤 것이 좋고 나쁘고의 관계가 아니고 그런 성향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보면 대부분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들을 잘 못하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보입니다.

 

우짜면 좋을까? 뭔가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일단 알아차려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건데, 이게 안되니까 조금 전에 우리 수련자님 얘기했듯이 자꾸 느낌을 볼려고 그러는 거라.

그런데 느낌도 명확하게 봐지는 것 같지도 않고 단편적으로 이렇게 자꾸 보게 되는 거고, 그러고 나서 마음을 또 의도적으로 호흡으로 돌리면 그것도 잘 안 보이고, 이러면서 시간이 계속 흘러가버리게 되는 상태들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느낌을 관찰하면 안 됩니다.

느낌은 언제 관찰을 해야 되느냐면 배의 움직임이 (관찰이) 잘되고 어느 정도 불편함이 없이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관찰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어느 정도 보이고, 어느 정도 많이 지속이 되고 나서, 그다음에 느낌을 보는 것으로 넘어가야 그게 자연스러워지지,

그래서 다른 방법들을 좀 동원을 해야 됩니다.

 

배를 관찰하는 게 조금 힘든 사람들은 잘 한번 보십시요. 자꾸 편안히 앉을려고 그럽니다. 편하게 앉을려고. 허리도 힘을 딱 줘가지고 꼿꼿하게 세워서 앉아가지고 할려는 것보다는 조금 자세도 보면 편해지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들이 육체적으로 어느 정도 힘을 써야만이 유지가 돼나가는 상태가 될 때는 마음이 그래도 어느 정도 활기를 띨 수가 있는데 그런 조건들을 아예 안 만드는 거라.

 

그래서 그런 분들한테는 자세를 좀 더 바르게 하는 것들을 권해드립니다. 그게 안 되면 다리를 가부좌를 틀어서라도 허리를 꼿꼿하게 펼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활기있게 움직일 수 있는 조건들을 몸의 포지션으로서 만들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은 처음에는 호흡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억지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을 본인 스스로 만드는 경향들이 있기는 하더라도 일단 그렇게 하더라도 마음이 둔해져 있지는 않게 됩니다.

 

그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게 뭐냐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 관찰할려고 하지 말고!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뭐 뭐가 있을까? 딱 여섯 가지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행·주·좌·와, 걷고 있을 때 걷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서있으면 서있다고 알아차리고, 앉아있으면 앉아있다고 알아차리고, 누워있으면 누워있다고 알아차려야 되고, 그리고 배가 불러올 때는 불러온다고 알아차리고 배가 꺼질 때는 꺼진다고 알아차려야 되고, 움직임을 아는 것은 딱 이 여섯 가지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럼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이 (관찰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앉아있는 걸 관찰하면 됩니다!

그래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고 나서, 그다음에는 앉아있는 걸 빨리 관찰할려고 해야 돼. 그러고 나서 다시 배가 불러올 때 불러온다고 알아차리고 꺼지면 꺼진다고 알아차려야 되고, 그리고 앉아있는 걸 관찰을 하고.

 

짧은 찰나지만 숨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고 나서, 다시 들이쉬기 전에 앉아있는 걸 빨리 관찰할려고 해야 돼.

그게 되면은 인제는 배가 불러올 때 불러오고 나서 앉아있는 걸 관찰하고, 배가 꺼지고 나서 앉아있는 걸 관찰하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늘려주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마음을 자꾸 활기있게 만들어줘야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금 둔화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는 사마디에는 들어가기가 수월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 대상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치명적인 상태가 돼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을 동원을 해주면 됩니다.

자세 포지션을 좀 더 타이트하게 만들어 주든지,

그리고 관찰하는 포인트를 조금 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앉음 포인트'를 넣어서 좀 더 마음을 활기있게 만들어주든지, 그렇게 해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관찰이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게 관찰이 안된다고 해가지고 바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게 되면, 그분은 느낌도 제대로 관찰이 안되고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도 관찰이 잘 안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주의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느낌은 언제 관찰하게 될까?

··심은 같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항상 몸에 대한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만 계속할 수는 없고, 느낌도 관찰이 되어지게 돼있고, 마음도 관찰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거는 반드시 단계들을 거쳐야 되는 상태입니다.

 

이번에 태국에 갔을 때 아침에 좌선을 하고 있는데 냄새가 싹 들어와요.

무슨 냄새가 난다 하고 있는데 좀 있으면 냄새가 사라져. 그래서 사라졌다고 알고 다시 호흡을 관찰하고 있는데, 좀 있으니까 또 똑같은 냄새가 일어나는 거라. 그래서 ‘무슨 냄새일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게 예전에 맡았던 수련 냄새가 나는 거라. 그런데 수련 꽃이 피는 그 연못이라고 해야 되나, 그 못은 선원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거든. 그 냄새가 여기까지 올 수가 없는데 틀림없이 수련 냄새가 나는 거라.

그런데 수련 냄새 비슷한 것이 사원에서도 기르는 것이 있습니다. 자스민도 있기는 한데 자스민은 분명하게 수련 냄새하고는 다릅니다. 그런데 수련목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수련꽃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만 비슷하긴 한데 일반적으로 물가가 아니고 땅에 심는 건데, 그런데 그 냄새는 수련목이라고 하더라도 생김새만 비슷했지 냄새는 틀리거든. 근데 분명히 나는 거는 수련 냄새라.

 

그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주변에는 수련이 있을 수가 없거든. 선원 주위에는.

그래서 궁금해가지고 일어났어요. 일어나가지고 주위를 돌아볼려고 탁 나가는데, 선원 선실 바로 앞에 보니까 조그만한 어항 같은 데다가 수련을 키우고 있었던 거라. 근데 그 수련이 인자 막 봉우리를 펼려고 하는 상태라. 수련은 아침에 피거든. 그게 필려고 할 때 그 냄새가 번지는 거라. 아, 그래서 내가 맡은 게 수련 냄새가 맞기는 맞구나 하는 걸 느끼는 거라.

 

그러면서 생각을 한 게 뭐냐면 보통 여러분들이 느낌이 일어나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들은 분명하게 아는데, 그냥 무덤덤한 것에서 오는 느낌들은 그것이 기쁨으로 다가와지지를 잘 않는 상태인데, 근데 이게 기쁨으로 다가와진다는 거라.

내가 맡은 냄새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안 것으로 인해가지고 일어나는 기쁨들!

그 냄새는 틀림없이 일어났다가도 사라져버렸고, 또다시 일어났다가 사라져버립니다. 그 냄새가 항상 코끝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그 냄새는 싹 사라져버리게 되고, 또 바람이 이쪽으로 불면 그 냄새를 내가 맡게 되는 겁니다. 아주 사소한 건데도 그런 무덤덤한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들이 기쁨으로 다가와지는 걸 알겠더라고요.

 

사람들이 보통 기뻐하는 것들의 패턴이 있습니다.

좋은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들. 내가 뭔가를 했다 했을 때 오는 기쁨들, 아니면 좋은 감촉들 좋은 냄새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들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 말고, 조금 전 같이 무덤덤한 것으로 인해서 일상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건데도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은 느끼는 거라.

 

다른 예를 들어보면, 스님은 음식을 먹을 때 되도록이면 간을 잘 안해서 먹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싱겁다고 그러는데 나는 그게 맛있거든. 다른 사람들은 그게 싱거워서 맛이 없대. 간을 세게 해서 먹는 사람들이 만약에 싱거운 것들을 먹었는데도 그것으로 인해서 맛있는 것들로서 탁 받아들이게 됐을 때 오는 느낌들 그거는 기쁨이라는 거라.

즐겁고 괴로운 것들이 아니라 무덤덤한 것으로 인해서도 기쁨이 일어나게 됐을 때 그거는 기쁨을 잘 관찰하고 있는 겁니다. 느낌들을. 느낌들이 잘 관찰됐을 때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배를 관찰하고 있을 때 틀림없이 느낌들이 일어나집니다. 보통 그게 고통스러운 느낌이든 아니면 시원한 느낌이든 뭔가 다른 느낌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걸 관찰합니다.

그런데 그걸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기쁨으로서 그 느낌들을 관찰할 수가 있습니까? 대부분 그게 잘 안되죠.

 

즐거운 느낌들이 일어나지면 그걸 즐거운 느낌들을 더 취할려고 하게 되고, 괴로운 느낌이 있으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합니다. 그런 관찰하는 것들은 명확하고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게 되는 거라. 느낌들을.

고통스러운 느낌이 있어도 그냥 대상으로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관찰할 수가 있어야만이 이게 고통스러운 느낌이 일어났다가도 싹 사라지는게 보이게 되는데,

 

대상은 내가 움켜잡고 밀치지만 않으면 지 스스로 조건따라서 일어났다가 조건따라서 사라지게끔 돼있습니다.

여러분이 호흡을 관찰한다고 해가지고 그 호흡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호흡을 관찰 안 하고 있다고 해가지고 그 호흡이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조건으로 인해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게 되는 거고, 단지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불러올 때는 불러온다고 알아차리고 꺼질 때는 꺼진다고 알아차리는 것뿐이라.

 

느낌도 마찬가집니다. 즐겁든 괴롭든 그 어떤 느낌이든 간에 조건따라 일어났다가 조건따라 사라지는 상태라. 그걸 관찰할 수 있을 때만이 느낌을 정확하게 관찰되게 되는 거라.

마음이 상당히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에서 가벼워져 있지 않으면,

대부분은 그 느낌들은 좋고 싫음에 따라서 그 느낌들을 관찰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상태가 되기 전에는 그런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그거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무시를 해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좋고 싫음에 따라서 그 느낌들을 관찰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러면은 그것은 오래도록 지속이 돼버리든지, 아니면 그것이 뇌리에 남아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거라.

 

수행 한시간 좌선하고 있다, 일어나는 느낌들 별거 없습니다. 큰 거 여러분들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는 없습니다. 그거 일어났다 해가지고 일어난 것들 느낌들을 알아차린다? 크게 수행에 덕 되는 것들도 별로 없습니다.

“대상이 일어나면 대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라면서요?”

알아차리기는 알아차려야 되는데 지금은 그걸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그냥 냅둬버리라는 거라.

 

냅둬버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연스러운 호흡들을 갖다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고요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그걸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나서, 느낌을 관찰하도록 해라는 거라.

 

배가 불러올 때는 공기가 들어와집니다. 그 고무 이렇게 부는 걸 뭐라고 그래요? (수행자 : 풍선)

풍선, 풍선을 예를 들어봅시다. 풍선에 바람을 훅 집어넣었다, 풍선이 배 있는 쪽만 볼록 불러와집니까? 안 그렇죠! 다른 데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불러와지게끔 됩니다.

숨이 들어오면은 몸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뱉고 나야 다른데 들도 팽창하는 느낌들이 틀림없이 있게끔 됩니다. 팽창하는 것들이 있게끔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좀 더 예리해지면 배가 어떤 부분에서 툭툭 치는 느낌들도 있고, 어떤 데는 배가 아니라 다른 부위가 뭔가 뽈록뽈록 해지는 느낌들이 있고, 그거 왜 그러냐 하면 숨을 들이쉬면은 어떠한 경우든지 몸의 여러 곳에서는 팽창하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게 관찰되어지는 것뿐이라는 거라.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배보다는 더 위쪽으로 더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이 더 잘 관찰되어집니다.

 

그 배꼽 있는 데만 꼭 그렇게 해야 될 이유가 없잖아.

잘 불러와지고 꺼지는 데를 갖다가 관찰을 하라는 거라.

그게 안 되면 그냥 곳곳에서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만 관찰해도 된다는 거라.

들이쉬면 들이쉬는 대로 알아차리고 내쉬면 내쉬는 대로만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고 있으면, 꼭 마찬가지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관찰하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단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마음이 거기에 향해져 있느냐 없느냐로 가지고 따져야 되는 것이지, 꼭 특정 부위를 관찰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먼저 몸에 대한 관찰, 특히 움직임에 대한 관찰들이 어느 정도 잘되어져나가고 자연스럽게 될 때 그 마음은 활기있게끔 되는 거라.

그러고 나서 느낌으로 가지게 되는 거고.

 

그 느낌들로 인해서 틀림없이 망상들이 일어납니다.

아까 스님이 얘기했죠? 냄새 맡아지니까 ‘무슨 냄새지’ 하고 망상 부리는 거라. ‘오, 이건 수련 냄샌데’ 똑 망상이라. 나는 그걸 수련으로 알고 있었던 것뿐인 거고, 그러면 당연히 그럴 때는 그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망상 부리고 있는 걸 관찰해야 되는 거라.

근데 망상 부리고 나서는 어떻게 했어요? 수련이 있는가 찾아보는 거라.

탐심이 일어나니까 그것들을 향해서 가야 되는 거라.

 

그래서 그 망상도 그냥 ‘망상’이라고 처음에는 알아차렸던 것이 이게 탐심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망상인지, 성냄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건지, 아니면 게으름으로서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망상인지를 갖다가 분명하게 알게끔 되는 거라. 그럼 그거는 더이상 발전하지는 안 해.

그게 되고 나면 틀림없이 그 냄새로 인해서 기쁨들은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몸에 대한 관찰과 느낌에 대한 관찰과 마음에 대한 관찰은 동시에 같이 해나갈 수는 있습니다.

근데 그것도 순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라.

움직임이 관찰 안 되는데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느낌을 관찰한다? 할 수는 있는데, 그게 오래 가지는 못한다는 거라. 자연스럽게 관찰되지도 못하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서 바뀌어지질 못한다는 거라.

마찬가지로 망상 부리는 것도 부리는 줄 알면 금방 사라져버린다는 거라.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그냥 망상을 계속하게 되는 거라.

 

그게 어느 정도 되야 만이 법에 대한 관찰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게 느낌인 것이고, 이것이 의도인 것이고, 이것이 분명한 인식이고, 인식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망상들이고, 하는 것들로서 관찰이 돼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뭔가 더 살고자 하는 생존욕구가 있어가지고 계속적으로 뭔가를 구하게 된다는 것들도 알게 되는 거고.

 

그래서 초보자들이 잘하는 실수가 뭐냐면

···법을 같이 하라고 하면 하나가 정확하게 잘 되지도 않는데 다른 것들을 자꾸 할려고 하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되도록이면 가장 기본적인 것은 호흡에 대한 관찰입니다.

호흡이 들이쉬고 내쉬고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어 나갈 때, 그리고 그속에서 어떤 작용도 없이 '나'라는 작용도 없이 지가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보이게 될 때까지는, 그 수행을 어느 정도 계속 지속할 수 있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그다음 단계들로 뛰어넘기에 수월하다는 것들로 이해를 하고 더욱더 노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