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3~2024 일상수행법문

수행에서 체득하는 수카와 삐띠_담마와나선원 법회 (20240714)

담마마-마까 2024. 7. 17. 14:50

https://youtu.be/uMmo2LqQ-uM?si=BlDnNStxL6jhSLVR

 

 * 수행에서 체득하는 수카와 삐띠_담마와나선원 법회 (20240714)
(12:47초부터 녹취됩니다.)

 

오늘 교단 안거로 모인거라요? 아니면 그냥...

(수행자 대답 : 그냥 특별법회 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 날 우리 울주선원에서는 안거입재를 하는데, 여기 소속 재가자들도 그 안거하는 형식들은 조금 있도록 해야됩니다. 이거는 안거 형식이 아니거든. 그냥 일반법회의 형식이기 때문에 ...

 

오늘은 수행에서 체득하는 수카(sukha)와 삐띠(pīti)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기쁨(pīti)과 행복(sukha)이라는 게 수행에서 많이들 경험하죠?
근데 상카라(saṅkhāra)가 소멸되는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기쁨과 행복은 어떨까?

오늘 그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상카라 경험해 본 사람? 상카라는 아비담마에서는 뭐라고 그래요? 웨다나(vedanā)하고, 산냐(sañña)를 뺀 나머지 50가지라고 그렇게 나오죠. 그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 그게 소멸 될 때 어떤 기분일까?

처음 스님이 경험을 했던 게 옛날에 햇볕으로 경험해봤습니다. 등 뒤로 이렇게 햇볕이 쫙 내리 쬐는데 그게 따갑게 느끼져서 ‘따가움’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는데, 다른 작용들은 전혀 안 일어나는 거라. 그러면서 기쁨이 확 일어나는 것들을 보았어요. 그게 인제 맨 처음 상카라가 소멸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삐띠 부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죠? 사실은.

그래서 "상카라의 소멸이 행복이다. 열반으로 가는 그 관문이다" 하는 그런 얘기들을 경전에서는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들을 여러분들이 좀 많이 해봐야 됩니다. 근데 보통은 기쁨 부분을 그냥 일상적인 오욕락이 없어지는 것으로 인해서 경험한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오욕락으로 인해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밤에 잠을 자는데 총소리가 들리는 거라. 울주 선원은 산에 있기 때문에 멧돼지하고 노루들이 많이 있습니다. 농작물을 짓고 하는데 거기에 노루 몇 마리가 들어가서 농작물을 다 파헤치고 막 먹고 있었던 모양이라. 그러니까 이분은 그걸 가지고 삶의 기쁨으로 가지고 사는 분인데 그걸 그래 놓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나쁠 거라. 그래가지고 포수를 불러가지고 죽일라고 해서 그렇게 총을 쏸 거라.

그걸 보면서 저분은 저것 가지고 기쁨을 느끼는데, 스님은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은 전혀 안 일어나거든. 지을 생각도 없고 또 계율상 지어서도 안 되고.

 

그래서 보통 여러분들이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것들은 그런 것들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자식이 잘 됐을 때, 아니면 뭔가 재산이 좀 많이 모였을 때, 사업이 잘 되었을 때, 뭐 이런 것으로 일어나는 것들인데, 그거는 어떻게 보면은 개인적인 기쁨이지 공통적인 기쁨 부분은 아닙니다.

보통 공통적인 기쁨은 어떤 것들로 인해서 일어날까?

오늘 같은 이런 보시 부분들, 그런데 보시를 이런 식으로 하면 기쁨이 일어나질 안 해요.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할 수가 있는데, 보시는 보시할 때의 마음이 중요한 부분인데,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아끼는 귀중한 것들을 스님들에게 드림으로 인해 가지고 스님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수행하고 여러 가지 법을 전해주고, 또 내가 그런 삼보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끔 되는 것들로 인해서 기쁨들이 일어나야 되는데,

어쨌든 이런 보시 부분은 해가 없는 것으로 인해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그런 기쁨들이 됩니다. 그래서 보통 불교도들은 당연히 이것은 해야 되는 것들이고, 그다음에 이제 사무량심 같은 거 그런 것들을 자꾸 기르는 거, 이런 것들이 기쁨을 일으키게끔 합니다.

 

근데 여러분들은 수행하는 분들이죠? 수행하는 분들은 어디에서 기쁨이 일어나야 됩니까? 수행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수행에서!
경험을 해보지 못하면은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이 열반으로 향하질 않습니다. 수행이 진척이 있게 될려고 할 것 같으면은 반드시 수행에서 오욕락을 떠난 상태 그리고 집착하고 밀쳐내고 하는 것으로부터 떠난 상태에서 일어나는 기쁨들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대상을 알아차릴 때 ‘이게 뭔가’ 하고 볼려고 합니다. 그러면 집착을 하게 되는 상태가 되겠죠. 그러면 그걸 정확하게 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은 물론 변하는 것들이 보이곤 하는데 세밀하게 보여지질 못하는 거라.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다리가 이렇게 구부러져 있습니다. 여기 저림이 있다 든지 할 것 같으면, 그러면 보통 이걸 수행자들이 어떻게 관찰하느냐 하면, 통증이나 괴로움으로 관찰을 합니다. 그게 뭐냐면 저린 느낌인데, 아니면 뭔가 쑤시는 느낌인데, 그렇게 관찰이 안 되고 통증으로 관찰해 버린다는 거는 과거에 있어 왔던 상카라가 작용들을 하고, 나는 이미 현재의 정확한 현상들을 사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발 나가버리게 되는 거라.

생각과 사념이 들어가서 이거는 고통으로 와지기 때문에 ‘통증’으로 관찰하는 거라. 그렇게 관찰해 가지고는 어떠한 경우든지 이걸 정확하게 사라지는 걸 보지도 못하고 그 사라지는 것으로 인해 소멸되는 것으로 인해서 아 진짜 기쁨이나 행복감들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거라. 물론 그렇게 관찰하면 속도는 느리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겁니다. 언젠가는 어떤 경우든지 그게 상카라든 아니면 일반적인 현상들이든 그건 당연히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모든 것들은 일어났으면 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사라지는 걸 보긴 할 건데, 그래서 약간의 기쁨은 있을지 몰라도, 그러면 그렇게 해가지고 기쁨이나 행복감들이 일어나면 마음이 당연히 열반으로 향해야 되는데 내 마음은 다시 또 다른 배라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통증이라든지. 이런 데로 향해 버리는 거라. 도돌이표가 돼버리는 거라. 똑같은 상태로.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들의 현상들이 일어났으면 당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일어나고 사라지는 상카라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내 것이 아닙니다. 그거는 집착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냥 놔버려야 됩니다.

놔버리고 있는 현상만 그대로 사띠를 해 나가는 훈련을 자꾸 해야 됩니다.

스님이 그런 경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해도 마음이 현상에 자꾸 가게 되지, 그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빠르게 변하는 게 보이고 또 그거 하고 나면 또 다른 대상들이 빠르게 변하는 게 보이고 사라지는 것만 보이고 계속 이 상태가 계속되는 거라.

 

그래서 ‘어디가 문제일까?’ 이렇게 생각을 해봤어요.
시간이 지나도 그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은 이걸 놓지를 못하고 있는 거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내 마음이 그걸 탁 버려버려야 되는데, 이걸 못 버리는 거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물론 훈련들이 많이 돼야 됩니다. 갑자기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거고, 근데 어느 순간 탁 버려지는 거라.

그러면서 마음이 대상이 없으니까 어떻게 돼요? 열반으로 향하는 거라. 마음이. 그러면서 짧은 찰나에 열반들을 경험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아니면 그 열반을 경험하는 것들이 시간이 점차 늘어나지게 되고, 이런 과정들을 겪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참 우리가 수행한다고 하면서 너무, 그게 뭐 마하시 계통이든 아니면 심념처 계통이든 어떤 계통이든 간에 거기에 틀에 박혀가지고 그 대상만 자꾸 관찰하려고 하지, 그 대상을 놓아버릴 생각들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상은 얼마든지 여러분 곁에 있는데, 그걸 올바르게만 사띠할 것 같으면 그게 대상들이 사라지고 나서 마음은 한 단계 뛰어넘는 단계로 넘어가지게 되는데, 참 그게 ‘너무 틀에 박혀 있어서 힘들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한번 여러분들 안거 기념으로 법회를 하고 있는 거니까 한번들 수행하면서 경험들을 해보십시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아까 스님이 얘기했죠.

햇볕이 내리쬐는데 그냥 그게 따뜻하고 한 것만 그냥 아는 상태가 돼버리는 거라.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 귀를 통해서 소리가 들립니다. 그냥 소리 들린다는 것만 알아차리려고 해보라는 거라. 내용이 어찌 됐든 아니면 뭐 다른 눈에 보이는 것이 있든 없든 간에 무시해 버리고 나서, ‘소리 들림’만 사띠를 한번 해볼려고 해보라는 거라.

그냥 가볍게 단순하게! 그거 하나만 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그걸 합성을 하는 순간 '상카라'는 작동을 합니다. 그게 합성을 하는 순간 '나'라는 것이 작동을 하게 된다는 거라.

그러면 소리 들리는 것이 소리 들린다고만 알아차려지는 게 아니고 의미가 파악이 되어지고, 소리 들리면서 눈에 보는 것이 보이게끔 돼버리는 거라. 계속 업을 짓는 행위들을 해 나가고 있는 상태가 되는 거라.

인제 그만 지어도 안돼?

참 많은 세월들 해왔는데 이제는 좀 뛰어넘어 봅시다!

 

'앗티 수카(atthisukh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뭔가 가진 게 있으면 부당한 방법으로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 올바른 방법으로 취득을 했고 그걸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근데 그거 가지고 있는 거는 압니까? 내가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느냐는 거라. 그거는 알겠지. 자기 재산이 얼마가 되고 뭐 내 가족이 누가누가 있고 하는 건 알겠지.

 

근데 수행자들은 지가 가진 게 얼마나 가졌는지를 알아요?

뭘 가지고 있는데?

바른 집중하는 걸 가지고 있어요?

아니면 순간순간 변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아니면 마음이 평온하고 가볍게 돼있는 상태를 가지고 있어요?

상카라로 벗어나려면 어쨌든 내가 가진 게 뭔지는 분명하게 알아야 될 거 아니라?

오늘부터는 이 2가지는 한번 가질려고 해 보십시오.

 

'에까가 찟따'라고 하는 거하고, '수시마 히따'라고 하는 겁니다.
에까가 찟따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잘 평온한 상태가 돼서 대상이 일어나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돼있는 거라.

'수시마'라는 건 뭐냐면 그래서 그 대상에 대해서 잘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거라.

적어도 그 2개는 가지고 있어야만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수행에서 얻어지는, 체득하는 수카(sukha))를 얻으려면은 이 2가지는 일단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항상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마음을 먼저 고요하고 가볍게 만들어라!"

대상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그리고 대상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는데 무거워가지고 그 대상을 빨리빨리 따라갈 수 있느냐 하면 그렇게 되질 못하는 거라.

 

집중하는 훈련들은 한번 이렇게 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잘 때 배를 관찰하면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관찰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탁 잠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좀 편안하게 잠이 들기는 되는데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게 되는 거라. 그러면은 잠이 들 때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걸 관찰하다가 내가 마지막 순간 정도 될 것 같으면 내가 5시에 일어나야지, 4시에는 일어나야지그런 마음을 가지고 탁 잠에 들었다. 그러면은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되는데 나중에 되면 반드시 그 시간 언저리에서 잠이 깨어지게 됩니다.

대상이 일어났으면 그 대상에 가벼워진 마음으로써 집중해서 오로지 그것만 사띠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훈련이 돼야 됩니다.

그리고 물론 이제 수행들을 많이 해봤으니깐 제 재산이 뭔지는 본인이 잘 알 겁니다.

 

조금 더 높은 수카를 경험하고 싶다 하면,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마음들, 대상에 집중할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됩니다. 그냥 놔줘버려야 됩니다.

여기 카메라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카메라 저걸 갖다가 정확하게 내가 알려면은 이 돌을 잡고 탁 던져 보면은 그 부근에서 탁 떨어집니다.
그러면 ‘아, 이게 어느 정도 위치에 카메라가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데, 그래서 이걸 던지는 것도 저기에 맞는 힘을 조절해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던지는 힘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그걸 겨냥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했는데 인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거라. 이미 그걸 경험으로 알고 있거든. 그러면은 그냥 그것만 바라봐도 그게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는 것이 파악이 되는 거라.

 

이때까지는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기 위해서 대상이 있는 것을 알고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상태라고 할 거 같으면, 인제는 그걸 버려버리라는 거라.

버려버려도 사띠가 있으면은 그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나집니다. 버려버리더라도 여러분이 안 죽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금 의식을 못 하고 있으면은 죽은 목숨 아닌가? 하는데 그러면 여러분들 잠잘 때 다 죽었지 뭐. 근데 안 죽고 있잖아.

 

수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에서도 '위딱까(vitakka), 위짜라(vicāra)'라고 하는 것들이 있어야만이 대상을 알아차린다고 생각할 거 같으면 그 이상을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거 한번 탁 버려보십시오. 버려버리고 나면은 그냥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이 일어나고 행복이 일어나집니다. 사띠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마음은 이미 대상이 일어나면 금방금방 알아차리는 상태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집중하는 상태가 돼있기 때문에 뭘 더 자꾸 만들어 가지고 그 대상을 붙잡으려고 그래요? 그냥 놔버리라는 거라.

 

이제 수행에서는 자기 재산을 만들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은 자기 재산을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상카라가 소멸하는 현상들을 보면서 물론 당황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계속되면은 마음은 당연히 대상을 움켜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열반을 향합니다.

 

그다음에 '보가 수카(bhogasukha)'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뭐 수행하면서 내가 갖추고 있는 게 없으면 어때서? 그냥 해야지 뭐. 어떡할 거라. 그렇잖아. 나는 애써 노력해야만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애써야 되는 거라.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자꾸 잡념이 나온다, 그럼 명칭을 붙여서라도 대상에 붙잡아 둬야 되는 거라. 수행하려는 마음은 있어야 될 것 아니라.

그럼 그거는 여러분들 재산입니다 그것도. 근데 그걸 가지고 누릴 줄은 알아야 될 거 아니라? 보가 수카라는 건 '그것으로 인해서 누린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써 누리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라는 거라. 근데 대부분은 하다가 안 되면 ‘하이고, 힘들어’ 포기해버리는 거라. 지가 가지고 있는데도. 수행 방법 모르는 사람 있어요? 없잖아. 그러면 수행하다 보면 조금 진척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 있는 것들을 분명히 아는데도 그단계로 넘어가지질 않는 거라.

 

활용을 잘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가진 재산들을 잘 활용하듯이 수행해서 얻은 재산들은 여러분들의 재산입니다. 그걸 버릴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그걸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수월합니다.

 

활용한다는 거는 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부족한 게 뭔지 파악을 하라는 겁니다. 스님도 수행하면서 부족한 게 뭔가 하는 것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걸 많이 봤어요. 바라밀 중에서 뭐가 부족한 건지, 아니면 수행할 때 뭔가 발란스가 안 맞는 게 뭔지, 스스로 자꾸 찾아내라는 거라. 찾아내가지고 보충을 해줘야만이 수월하게 넘어가지지 그냥 맹목적으로 그냥 수행한다고 앉아 있으면은 그건 앉은뱅이밖에 안 되는 거라.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하고 수행하고 자꾸 멀어지는 거라. 자기가 가진 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아나냐 수카(ananyasukh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세속적으로는 ‘아, 빚 없이 살아가니깐 참 좋다’ 하는 거하고 마찬가집니다. 수행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이 기대하는 만큼 따라가고 있습니까?
출가한 스님들은 가끔씩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삭발할 때 삭발하면서 ‘그래도 내가 잘 살았지’ 삭발하면서 ‘아, 내가 계가 청정하지’ ‘어긴 거 없지’ 그러면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의 진척이 있든 없든 수행에서 어느 단계에 있든 없든 간에 ‘나는 그동안 오면서 정말 열심히 해왔다’고 할 것 같으면은 여러분은 빚진 것이 없습니다. 안 하니까 문제인 거라.

이 좋은 시절에 이렇게 많은 스님들을 모셔 놔 놓고 공부 안 한다? 언제 할려고 그러는 거라? 언제 또 여러분들한테 부처님 가르침이나 수행에 대해서 얘기해 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라?

 

아까 위에서 스님들하고 얘기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10년만 더 있을 것 같다, 여러분들 하고 같이 있을 것 같다.” 하니까 어느 스님이 5년만 하래. 5년만. 그러면 5년 이후에는 여러분들 곁을 떠나야 된다는 얘기라. 물론 또 다른 스님들이 여러분들한테 법을 전하고 수행에 대해서 잘 지도를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있을 때 하십시오.

공부할려는 마음들이 없으면은 테라와다 불교를 배우는데 반쪽짜리 절름발이밖에 안 됩니다. 열심히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기도 하면서 그것들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수행들은 빠뜨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아나왓자 수카(anavajjasukha)'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끔 여러분들 잘 때 반성들 하죠. ‘오늘 잘 살았는가’ ‘음, 그래. 나 오늘 열심히 잘 살았어’ ‘후회 안 해’ 그런 적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 죽음이 닥쳤을 때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죽음이 닥쳤을 때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죽을 자신있어요?
그거는 해야 될 거 아냐! 적어도 악처에는 떨어지지 않아야 될 거 아니라!

이 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라도 해야 되는 것이 수행입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을 만큼 살아야 됩니다.

수행자들이라고 할 것 같으면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고요한 마음을 지닌 채 죽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죽음이 언제 여러분들께 닥칠지 모르는데 그거 안 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거라.

 

그리고 생활 습관 자체에서 후회하고 미련 가지는 습관들은 되도록이면 안 할려고 해야 됩니다. 이미 저지른 거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해보십시요.
‘그건 내가 받아야지’ 그건 누가 받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받는 건데, 그걸 왜 미련둥이 같이 그걸 후회하고 앉아 있어? 지금 현재를 자꾸 살려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살도록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상카라가 소멸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수카(sukha)들인데, 일상생활에서 자꾸 훈련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현재 머물러야 되지만은 다음 단계로 뛰어넘기 위해서 자꾸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됩니다.
모든 것들은 변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으면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내 것이라고 고집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다는 거라. 그렇게 됐을 때 그 상카라는 버려지게 되는 겁니다. 물론 부처님도 상카라를 가지고 있지만은 업을 짓지는 않거든.

여러분들이 현재에 머물러서 마음을 항상 고요하고 가볍게 가지고 그것들의 대상에 대해서 그 대상만 오로지 이 세상에 있는다고 생각하고 그 대상만 분명하게 집중해서 알아차리는 훈련들을 자꾸 해나가다 보면 상카라를 분명하게 보게 되고 소멸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은 열반으로 향하게 된다는 거라. 열반을 경험을 해보면은 또 다른 차원의 내가 돼 있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인제는 안 하는 것들이 뭐고 떨어져 나간 게 뭔지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끔 됩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재산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재산들은 여러분들 것이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거라. 스스로에게 자꾸 칭찬하면서 더 공부할 수 있는 발판들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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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냐완따 스님 안내말씀
안내 말씀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제가 빤냐완따 스님이 지난 2023년 12월 31일부로 이사장직을 소임을 다 마치고 그다음에 지금 경주에 담마수카 선원의 떼짓사라 이사장스님께 모든 인수 작업을 마쳤는데, 실제로 인수작업을 못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캄보디아 출국하면서 거기에서 마지막 인수작업을 준비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떼짓사라 이사장 스님께서 인사 구성원들을 다 완료해서 협의를 다 마친 상태에서 지금 공지가 올라간 상태인데, 이시장 스님을 대신해서 제가 마지막으로 인수인계 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써 마지막 소임받으신 분의 명단을 다시 한번 호명해드리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국 테라와다 불교 사무총장에 담마락키따님, 한국 테라와다 불교 사무차장에 마한나와님, 그리고 참석은 못했지만 한국 테라와다 불교 재무담당 따루니 수행자님, 그리고 교단 홈페이지 관리 담당 담마삐야 수행자,

그다음에 각 선원별로 1인씩 교단 운영위원으로 선정이 됐어요. 그래서 일단 3분이 올라와 있는데 붓다의길따라 선원의 윗자가또 수행자, 담마와나 선원의 짠디 수행자, 대구 붓다야나 선우회의 사마짜리아 수행자 되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교단 업무는 떼짓사라 이사장 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을 비롯한 그분들이 의논을 해가지고, 모든 의논은 그 운영위원들 통해서 교단이 운영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앞으로 그분들과 건의하시고 의논하시고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 애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 이상으로 불기 2568년도 상가 스님들의 안거 입재를 기념하는 초청 탁발법회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