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2~2013 담마스쿨

수행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테라와다 수행자가 되도록 하라_빤냐와로 스님법문_한국테라와다 하계집중수행법문_120810

담마마-마까 2024. 11. 10. 12:55

https://youtu.be/GQz3IQ_zLsg?si=i9yKlpUrVl80slQ_

 

* 수행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테라와다 수행자가 되도록 하라_냐와로 스님법문_한국테라와다 하계집중수행법문_120810

 

어쨌든 여기까지 오느라고 다들 고생했습니다. 음 오늘부터 2박 3일이죠. 2박 3일 동안 수행하고 가야 되는데 많이 불편할 겁니다.

특히 이제 여기 마하보디 선원 같은 경우에는 방사도 넉넉하지 않고 또 우리 마하보디 선원장 스님께서 워낙 자애로워가지고 이 더위에 선풍기 하나 없이 지내라고, 자연주의가 돼 가지고. 그런데 여러 가지 불편해도 수행하러 왔으니까 수행은 하고 가야죠! 편하게 좀 앉으십시요.

스님은 이제 자주 그런 얘기를 합니다.

 

"수행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테라와다 수행자가 되도록 하라" 하고 자꾸 얘기들을 합니다.

 

그냥 수행자가 되려고 하다가 보면 자신의 수행만 자꾸 챙기게 됩니다.

그래서 남이 그렇게 수행을 안하고 할 것 같으면 좀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가끔씩 다른 수행처나 아니면 우리 선원에 있다가 보면 오는 사람들이 아 자기는 수행을 좀 하고 싶은데 점심때 밥 먹으면서 막 시끄럽게 떠들고 놀거든. 그럼 성질 바락바락 내면서 인제 가요. 그러고 나면 또 우리 선원 수행자나 아니면 다른 데에 있던 수행자들은 이제 그때서야 인제 수행한다고 부지런히 합니다.

그냥 수행자가 될 것 같으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자기수행만 자꾸 닦을려고 하고 또 그러다 보니까 어울리려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자꾸 덜해져 버리게 됩니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보통 2가지가 이제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가 바라밀을 닦는 것들이 부족하다.

대부분 아마 그렇게 길들어져 왔을 겁니다.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되지, 내가 계를 꼭 지켜야 되는가? 아니면 내가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서 보시를 해야 되는가? 뭐 이런 생각들을 잘 못합니다. 그냥 금액 정해진 대로 와서 금액 내고 내가 할 만큼 하고 그냥 간다고 생각을 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바라밀을 닦는 것들이 좀 많이 부족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면, 도반이라는 의식들이 많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분들은 끼리끼리는 도반이죠. 아마 그럴 겁니다. 여기 지금 보니까 앞에 세 사람은 양평팀 같은데, 그렇지? 이 사람들은 셋이서는 도반이라고 할 거라. 근데 다른 사람들하고는 도반이라곤 얘기를 안 합니다.

또 다른 팀들은 다른 팀들끼리는 도반이라 하는데, 또 다른 수행자들하고는 도반이라는 생각을 가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도반이라는 개념이 많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2가지가 부족하다 보면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수행 쪽으로 다 치우쳐 버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립니다. 수행은 안 해도 ‘아, 참 그 사람 보면 잘 살아간다’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야 되는데 그런 게 안 돼. ‘아, 참 그 사람은 열심히 수행하기는 하는데 남에 대한 배려들이 없다’ 하는 그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부처님의 진리는 경전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스왁카또 바가와따 담모, 깔르야나밋따사"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올바르게 설해진 부처님의 가르침은 선우-깔르야나 도반이라 해도 되고, 선우(善友)라 해도 되고 법우(法友)라고 해도 됩니다. 그러니까 그 선우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하는 겁니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개인의 이익과 또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도 있지만은 "그 설해진 진리는 어떠한 경우든지 여러 사람, 같이 수행하는 사람, 또 테라와다 불교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다 적합한 것들, 그 공통적으로 그분들에게 이익이 있고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도 이 출가공동체라고 하는 상가를 만든 겁니다.

 

상가의 가장 기본 되는 것들이 화합하는 것입니다.

"화합이 전제조건이 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하지 마라" 그럽니다.

조그만한 일도 뭐 심지어 수행하는 일도 아니면 어떤 일을 행해나가는 것도 상가 화합이 우선돼있지 않으면 일단은 스톱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이 다같이 화합되고 참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조건이 돼야만이 뭔가를 하게 됩니다. 수행을 하든지 아니면 어디 같이 놀러를 가든지 아니면 같이 마음을 모아 보시를 하든지 이런 것들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일단은 모든 것들을 스톱하게 됩니다. 출가한 스님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게 아니고 일반 재가인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깔르야나 라고 하는데 보통 그걸 선우(善友)라고 이렇게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도반 아니면 우리 해피스님은 법우(法友)라는 명칭을 많이 씁니다. 정확하게 명칭을 할 것 같으면 선우죠! 선한 친구라는 그런 뜻입니다.

선우라는 뜻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거라요? 가장 선한 친구가 누구라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난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 도반을 얻는 것은, 거기서는 도반이라는 게 깔르야나를 얘기합니다. 도반을 얻는 것이 수행의 절반을 얻는 거와 마찬가지다 하고 얘기하니까,

부처님이 "아니다. 수행의 전부와 같다"하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얘기한 것은 그 '도반은 부처님 자'신을 얘기하는 거죠!

 

물론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수행하려는 마음이 없는 상태고 다른 사람들은 수행할려고 한다. 그럴 것 같으면 이 한 사람을 수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끔 다른 사람들이 주위에서 만들어줘야 됩니다. 그런데 꼭 그 한 사람이 수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할 것 같으면 이분은 그 선우에서 떨어져 나와버리게 됩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선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선우라는 의미는 처음에는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선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자!"

여러분들은 마음이 선한 것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까?

만날 나쁜짓 할라고 마음이 나아가고 있죠. 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게으름 부릴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욕심을 부릴까,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좀더 많이 가질까, 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선한 방향으로 아마 나아가지진 잘 않을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떠한 경우도 마음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신 분이죠. 그래서 부처님이 여기서 선우 깔르야나가 있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다 라고 하는 것은, 그냥 그 사람 하는 것 그 사람 말하는 것 뭐 그 사람 수행하는 것 그 모습만 보고 따라가기만 할 것 같으면 자기도 점차적으로 그렇게 물들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존재를 한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다 하고 얘기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아가진다는 거라.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 한국에 있는 테라와다 상가의 각각의 스님들은 여러분들을 이끌어주는 선우와 같은 겁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면서 여러분들의 수행을 지도를 하고 또 여러 가지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여러분들은 큰 행복을 느껴야 됩니다.

 

옛날에는 처음에 한국에 테라와다 불교가 접해졌을 때만 해도 외국 스님들을 무조건 초청해 와가지고 그분들의 법문을 듣고 했습니다. 근데 그분들은 항상 여기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또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물론 그 법문을 듣고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자기 자신이 그런 선우가 되어 가고 있을 것 같으면 참 좋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은 또 나쁜 방향으로 휩쓸리기 때문에 또 그런 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또 초청해서 오고 이런 것이 계속 반복돼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인제 한국에서 그러한 법을 전해줄 수 있는 스님들이 존재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만 해도 마음속에서 ‘아,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지속적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겠다.’ 하는 그런 마음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테라와다에서 처음으로 아마 집중수행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개인의 선원에서는 각각의 나름대로 수행들을 하고 집중수행들을 하고 있지만은, 공통적으로 해서 테라와다 상가라는 이름으로 해서 수련회를 짧게 시작한 것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이게 하나의 촉매제가 돼서 앞으로는 자주자주 이런 일들이 일어나길 바래야 되겠습니다.

 

자! 그게 인제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될 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우가 돼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우가 돼서 주변 사람들이 그 선우의 영향으로 선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도록 만들어줘야 되는 것! 그것이 여러분들이 이제 앞으로 또 해야 될 몫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선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질까?

나쁜 쪽은 좀 되도록이면 생각 안하고 선한 쪽으로 기울여졌으면 좋겠는데,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됩니까? 맞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수행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가 사리뿟따 존자입니다. 사리뿟따 같은 경우에는 부처님의 법을 듣고 2주일 뒤에 깨달음을 이루죠? 아주 빨리 아라한의 상태에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우리는 2주가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겨우 부처님 말씀 이제 겨우 이해하고, 그거 그래도 안 놓칠라고 막 힘들여 가지고들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사리뿟따 존자 같은 경우에는 과거생에 대한 걸 이렇게 쭉 훑어보면 서원을 참 많이 세웠습니다. "내가 이것은 반드시 안 하겠다. 이것은 반드시 하겠다." 하는 마음을 딱 먹고 그것은 그 생에서는 쭉 다 해나가는 거라.

이걸 보통 '사리뿟따 존자의 4대 서원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집착하는 걸 가지지 않겠다. 어떤 경우도 집착하지 않겠다.'

집착 안 할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사회생활을 하는데, 결혼을 하면 집착하는 대상이 생겨버립니다. 그렇죠? 내 자식 내 부인이라는 것들이 생깁니다. 그러면 결혼을 안 해야 됩니다. 그런데 사리불 존자는 과거생에 결혼들을 했죠? 결혼을 했는데 자식은 안 낳았습니다.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살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결혼을 하더라도 자기 부인에 대한 집착을 갖다가 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해나가는 거라.

그다음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 말고도 '남들에 대해서 원한심을 가지지 않겠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그 원한심을 가지지 않겠다는 것만 줄기차게 하는 거라. 그 생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 생에도 이렇게 합니다.

 

대표적으로 사리뿟따 존자가 서원을 세운 것이 크게 나누어서 4가지입니다.

'인색하지 않겠다. 인색함이 없게 하겠다.'

참 힘이 듭니다. 인색함이 없이 한다는 것은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인색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남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을 용서하지 못할 거 같으면 인색해져버리게 됩니다. 금전적인 부분은 오히려 차라리 수월합니다. 근데 마음에서 인색함이 없으려고 할 것 같으면 남을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생에서는 내가 이것을 반드시 해나가겠다.' 할 것 같으면 그것을 철저하게 지켜나갑니다. 그래서 이 생이 끝나고 그다음 생에 가더라도 그 흐름이 있을 것 같으면 다음 생에도 그와 같이 돼 나가집니다.

그래서 그 4가지 처음에 '인색함이 없도록 하겠다' 하는 것.

 

그다음에 조금 전에 여러분들 오계 지켰죠? 오계를 독송했습니다.

'계를 지키도록 하겠다.' 음주를 함으로 인해서 자기도 모르게 술에 취해서 나쁜 말도 하게 되고 나쁜 행위도 하게 되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다시는 내가 술을 먹지 않고 오계를 반드시 지켜나가겠다. 하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이 '집착하는 하는 것들이 없게 하겠다.'

집착하는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수행에서도 집착하는 것들이 있으면 수행을 해나가는 데 굉장히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집착하는 것들을 없도록 하겠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미워하는 것들, 남들에 대해서 어떠한 경우든지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로 인해서 모든 일들을 평등한 마음으로 보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이게 인제 쭉 쌓이다 보니까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금방 깨달음에 이르기가 쉬워져 버립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그와 같은 또는 다른 방향의 바라밀들을 과거 생애부터 얼마나 쌓아왔느냐 하는 거라. 아마 모르긴 해도 그렇게 많이 쌓아온 것 같지는 않아요. 많이 쌓아왔으면 부처님 시대 때 태어났지 뭐하러 이 시대까지 와가지고 이렇게 고생해가면서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느냐는 거라. 그렇지만 늦지는 않다는 거라.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그와 같은 것은 하나씩 정해서 해나가야 됩니다.

 

수행을 해나갈 때 '수행해서 깨달음을 이루겠다.' 할 것 같으면 반드시 그러한 목표들을 하나씩 세워야 됩니다. 그래서 만약에 인색함이 없는 것들을 계속해 나가겠다, 아니면 남을 미워하는 것들을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에 맞게끔 수행 방향이 정해져 버립니다. 만약에 인색함이 없이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일단은 생활하면서 만족할 줄 알아야 되는 거고, 뭔가 집착하려고 하고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들이 없어야 되는 거고, 또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수행해 나가는데 수행은 맨 처음에 자애수행부터 먼저 하고 모든 일상생활에서 자애의 마음들을 가지려고 자꾸 노력을 하게 됩니다. 설혹 위빳사나 수행을 하면서 호흡을 놓쳐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자애의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는 거라. 또는 인색하지 않으려고 하는 넉넉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는 거라.

 

근데 이게 없을 것 같으면 수행하는 것들이 알아차리는 것이 없어짐과 동시에 그냥 바로 악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버립니다.

그마만큼 바라밀은 수행의 기둥을 세워주는 역할들을 해줍니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행을 쭉 해나가다 보면 한단계 한단계 올라갈 때 참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끔씩 스님들은 그걸 이해를 합니다. 왜 이렇게 안 될까? 왜 이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지 못할까? 그러면서 유추를 해봅니다. 그럼 딱 드러나져요.

아! 내가 음식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기후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내가 바라밀이 부족해서 그러는지 무언가의 원인을 이렇게 찾아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고 그걸 메꿔주는데 전념하게 됩니다. 음식이 부족하다, 그럴 것 같으면 그 음식을 섭취하는데 주력을 합니다. 수행에 주력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는 수행해나가는데 기후 때문에 그런다, 그럼 옷을 간편하게 입든지 아니면 옷을 더 덮쳐 입든지 해서 그것을 메꿔줍니다. 또는 수행해나가는데 여러 가지 환경 조건이 부적합하다, 그렇다면 빨리 그 자리를 떠야 돼. 다른 데 가서 해야 되는 거라.

그렇지 않고 바라밀 중에서 내가 인욕하는 것이 부족하다 아니면 노력하는 것이 부족하다 뭐가 부족하다 할 거 같으면 다른 방법으로 그걸 갖다 메꿔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만은 그렇게 하는 동안에 수행하는 마음을 놓치질 않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행하는 것에 알아차림을 계속 지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근데 실제로는 그 부족한 것들을 메꾸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는 거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메꾸는 것이 어느 정도 딱 메꿔지면 알아차림이 아주 분명해져 버리는 거라. 그러면서 다음 단계로 툭 뛰어올라 버리는 거라.

 

이렇게 수월한 걸 왜 몰랐을까? 이렇게 돼버립니다.

근데 그전에는 아무리 해도 안돼. 직접적인 수행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도 영향을 미치고 또 이 생뿐 아니라 계속 윤회하면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여러분들이 닦아야 될 바라밀들입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그렇게 4가지 서원을 세워서 그것으로 인해서 금방 깨달음에 이르렀듯이 여러분들도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막 분명하게 마음을 잡아야 됩니다.

 

지금 2박 3일 수행을 하러 왔습니다.

여러분들 배를 관찰하든 코끝을 관찰하든 아니면 마음을 관찰하든 수행 얼마나 할 것 같아요? 아마 모르긴 해도 요만큼 하고 갈 거라. 음, 오랜만에 또 도반들 만났으니까 호호 헤헤 하고 해야지, 밥 먹을 때 밥 먹어야지, 잠잘 때 잠자야지, 수행한다고 낑낑낑 용은 쓰는데 수행 진척은 없고, 그러면 2박 3일 하고 나면 ‘했는데 별로 뭐 효과도 없다. 수행 지도하는 스님도 수행지도도 잘 안해주고 너들끼리 알아서 해라 자꾸 하니까 잘 못한다.’ 틀림없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려고 할 것 같으면 지금부터라도 딱 하나 마음을 정하십시요.

"23일의 시작으로부터 해서 나는 이생이 끝나고 윤회하는 생애가 끝날 때까지 반드시 이것은 성취하겠다."

가장 여러분들이 부족하고 가장 여러분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을 할려고 자꾸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성취할려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수행의 힘들도 빨리 성취가 돼나갑니다. 할 수 있겠죠? (예) 목소리가 적다.

그래서 그것을 맨 첫 번째로, 스님이 여러분들에게 얘기를 합니다.

 

두 번째 수행을 해나가는 데는 기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수행법으로 수행을 하더라도 반드시 이것은 갖추어져 나가야 됩니다.

 

첫 번째, 마음이 청정하도록 해라.

어떠한 경우도 대상을 알아차릴 때 분명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상태라. 그러면 빨리 마음을 다시 돌려야 됩니다. 그래서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청정함을 항상 유지해야 됩니다.

그것이 어떤 대상이라도 관계없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대한 대상이든 아니면 육체에서 일어나는 호흡에 대한 대상이든 아니면 느낌에 대한 대상이든 아니면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대상이든 어떠한 대상이든 그 대상 자체를 볼 때 청정하게 볼려고 해야 됩니다.

 

자다가 일어나서 앞에 누군가를 볼 것 같으면 흐릿하게 보입니다.

근데 아주 기분이 좋고 또 저 대상을 갖다가 볼려는 마음을 이렇게 착 가질 것 같으면 너무 강하게 가질 것 같으면 안 되지만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볼려고 할 것 같으면 그 대상이 착 깨끗해집니다. 그와 같이 대상을 볼 땐 항상 청정함을 유지할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해나가는데 대상이 청정하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빨리 전환시키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대상을 볼 때는 평온함을 가지고 봐야 됩니다.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 대상으로 인해서 내가 싫고 좋고 하는 느낌이 자꾸 일어난다고 할 것 같으면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어떠한 경우도 대상으로써 바라봐야 됩니다.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같으면 그것은 이미 나라고 하는 것이 개입되든지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개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평온함은 없어져 버립니다. 대상일 뿐입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아주 좋은 상태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마음이 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망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라도 항상 마음을 평온하게 자꾸 유지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게 안 된다. 할 것 같으면 대상을 놔야 됩니다.

그 대상을 놓고 다른 대상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전제 조건이 돼야 되는 것이, 같이 수행하는 사람을 바라봤을 때 측은한 마음이 자꾸 일어나야 됩니다.

아이고, 저 사람에게 내가 조금 더 뭐 뭔가 도와줄 일이 없을까? 뭔가 해줄 일이 없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자꾸 일어나야 됩니다. 어차피 여기에서 수행을 하다 보면 경행하면 부딪치게 되고 또 좌선하면 옆에 땀 냄새나고 또 한 방에 아마 2분씩 자다 보면 피곤하면 이빨 갈기도 하고 싫은 생각들이 자꾸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내가 저 상대방에게 뭘 해줄 게 뭔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한번 일으켜 보십시오.

아 저 사람 나는 그래도 이 부처님 진리를 이렇게 알고 있으니까 아 그걸 좀 더 잘 전해줘야 되겠다. 또 내가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주면 저 사람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되겠다 그런 마음을 자꾸 일으켜야 됩니다.

 

측은한 마음, 그 사람을 위해주는 마음들을 끊임없이 자꾸 일으켜야 됩니다.

사람에게만 그리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수행의 대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일으켜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그것을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대상을 자꾸 객관화시키지 않을 것 같으면 그 대상은 내가 돼 버립니다.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이 되는 거고, 보여지는 것이 다른 그 사람이면 사람 아니면 누구면 누구로 보게 됩니다. 하나의 대상으로 자꾸 보여지는 게 아니고.

그래서 자꾸 측은한 마음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지를 자꾸 찾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이 3가지가 밑바탕이 돼야 되고, 그다음에 또 하나 중요한 밑바탕이 돼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빠 굽따라고 하는 스님이 사리불 존자에게 가서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수행을 해나가는데 신념처 하시는 분들은 그런 얘기들 많이 할 겁니다. “지혜가 일어나야 된다.” 그렇게 많이 듣죠? 누가 신념처 하노? 사사나 스님 따르는 분들 없나? “수행해나가는데 지혜가 일어나야 된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개발하면 됩니까?” 하고 인제 사리불 존자에게 물어봅니다. 근데 사리불 존자 “아닙니다.” 하고 그럽니다.

왜 지혜를 개발하기 위해서 수행들을 하는데 사리불존자는 그렇게 얘기할까?

그러면은 지혜를 개발하지 않고, “그러면 내가 삼매를 경험하고 또는 무색계 선정이나 아니면 멸진정에 이르르고 이런 것들을 열심히 닦으면 됩니까?” “그것도 아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보통 수행을 해나가면서 이 2가지를 닦으려고 그럽니다.

부처님도 명행족이라 해서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신 분 또는 지혜와 삼매를 겸비하신 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통 수행을 하면 이 2가지는 닦여지게 됩니다. 근데 사리불존자는 아니라고 하거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지혜를 개발하다 보면 다른 부분을 놓치게 돼버립니다. 삼매를 개발하다 보, 또 다른 부분을 놓치게 돼버립니다. 그래서 이게 병행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큰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는 거라.

 

그래서 수행을 해나가는데 중요한 네 번째 포인트가 뭐냐면,

어떠한 경우도 그것이 지혜가 일어난 것이든 삼매가 일어난 것이든 어떠한 경우든 그것들의 대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것은 아니다. 하고 치부를 해야 됩니다.

고요하게 앉아서 1시간 동안 수행 열심히 했는데 아주 마음이 고요하고 아주 클리어 하고 평온한데 1시간 동안 그렇게 시간이 후딱 지나갔는데 1시간 동안 뭐했는지를 모르는 거라.

뭔가 대상에 대해서 변하고 있는 걸 끊임없이 관찰하며 지낸 것도 아닌데 1시간이 훅 지나갔다, 그거는 내가 뭔가 하나 빠진 상태라.

 

지혜가 일어날 준비는 돼 있는데, 사마디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깐 이것이 균형이 안 맞아버리는 거라. 고요하고 평온하긴 한데 대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가 돼버리는 거라. 1시간 동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배를 관찰하고 있든 마음을 관찰하고 있든 그것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는 있는데, 또 후딱 1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분명히 그 대상을 알고 있었는데 대상이 변하는 걸 몰랐다. 그러면은 지혜 쪽은 어느 정도 개발했는데 사마디 쪽은 또 묻혀버렸기 때문에 이게 변하는 속성들을 갖다가 모르게 되는 거라.

 

어떠한 경우도 대상 자체가 변하지 않을 것 같으면 지금 현재 균형이 깨졌다고 판단을 해야 됩니다.

변하지 않는 대상은 없습니다! 대상 자체를 어떠한 경우도 변하는 속성으로 자꾸 이해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머무를려고 하지 말고, 그것들에 대해서 붙잡으려고도 하지 말고, 밀치려고도 하지 말고, 변하는 속성으로 자꾸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 4가지는 어떤 수행을 하든지 어떤 방법으로 수행하든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되는 것들이고, 또 일어나야 되는 것들입니다.

수행을 해나가면서 아, 이런 부분은 내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빨리 그걸 떠올려야 됩니다.

그래서 이 4가지는 수행을 해나가면서 중간중간에 자꾸 자기자신을 점검하는 것으로 여겨야 됩니다. 그래서 ‘아, 내가 뭐가 부족하구나’ 하는 것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대상을 대상으로써 알아차리고 대상에 휘말려 들어가지지 않게끔 됩니다.

 

수행을 해나가는 데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될 원칙이 있습니다.

 

이 4가지들이 수행에서 밑바탕이 되려고 할 것 같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될 원칙이 있습니다. 어느 수행처를 가든지 최고 먼저 뭐라고 그럽니까?

'묵언하라' 또 '저녁밥 안 주죠' 또는 '천천히 행동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얘기를 해요? 말을 하면서 말을 알아차리면 되고, 꼭 저녁을 안 굶어도 나는 수행해 나가는데 먹는 것을 알아차리고 또 수행해나가면 되는데 배부르면 배부른 상태에서 수행을 해나가면 되는데, 또는 그냥 평상시대로 걸으면 또 평상시대로 행동하면 되는데 또 천천히 하라고 자꾸 몰아 쌓지, 왜 그렇게 하라고 그럴까? 왜 그래요?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배가 불러 있다든지 아니면 말을 한다든지 아니면 빠르게 아니면 일상적으로 걷고 있다든지 할 것 같으면 그것을 대상으로서 알아차리질 잘 못합니다. 어떠한 경우도 거기에는 감정이 개입을 하고 아니면 '나'라고 하는 것들이 개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정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몸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일 것 같으면 먹는 것도 자제하라 그럽니다.

 

쉽게 얘기하면 행동의 폭을 최소화시켜야 됩니다.

먹는 거는 안 먹는데 경행하는데 일정한 장소에서 안 하고 아,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한다고 저 멀리 나가서 지 혼자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볼 거 다 보고 들을 걸 다 듣고 하면서 알아차린다고 그렇게 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그냥 배고픈데 밥도 먹고 그냥 편안하게 수행할 만큼 하고 또 잘 때 자고 이러는 것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합니다. 대상을 최소화시켜야 됩니다.

 

집중수행 와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최소화시켜야 됩니다. 일어나는 대상들이 되도록이면 없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처에 가면 다들 눈 막고 코 막고 귀 막고 이렇게 하는 그 원숭이들을 갖다가 해놓은 것들이 뭐냐하면 대상 자체를 최소화시키라는 거라.

그럴려면 여러분들은 되도록이면 말하지 말아야 되는 거고, 되도록이면 먹지 말아야 되는 거고, 되도록이면 천천히 행동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수행처에서의 기본 원칙입니다. 행동의 폭을 최소화시키십시오.

 

결재가 되면 스님들은 이번 3달 동안에는 오롯이 내가 수행만 해보겠다 하는 스님들은 만약에 이게 법당이면 "이마스밍 위하레 이망 떼마상 와상 우뻬미" 그렇게 얘기합니다.

보통 "이마스밍 아와세" 이러거든요. 이 사원 구역 내에서 생활하겠다 하고 보통 그렇게 스님들은 하는데, 그 스님은 이 법당 내에서만 생활하겠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3달 동안 여기선 안 나가겠다는 거라. 탁발도 안 나가고 누가 와도 내가 밖으로는 안나가고 요 안에서만 하겠다는 거라. 수행에 길이 안 들었기 때문에 대상을 최소화시켜야 되는 거라. 그래서 이 3달 동안에는 요거해서 최소화시켜서 내가 대상을 분명하게 보는 훈련들을 하겠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2박 3일 동안은 대상을 최소화시키십시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저기 도랑이 있는데, 도랑 밖으로 안 나가고 요쪽을 바운더리로 해서 여기에서만 하겠다. 아니면 이 법당하고 내 방 주위하고 여기만 하겠다 하고 최소화시키도록 하십시요. 그래서 그 안에서 모든 것들을 행해나가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감각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열려 있으면 열려 있는 대로 마음은 밖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도 감각기관을 최소화하도록 하십시요.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수행의 원칙의 첫 번째는 대상을 최소화시키라 하는 겁니다.

 

두 번째, 수행을 해나가는데 두 번째 원칙이 있습니다.

대부분 수행 어떻게 합니까?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을 즉시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영어로 "라이트 나우 라이트 히어" 입니다.

"지금 현재 여기서!"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지금 현재 없는 것은 수행의 대상이 아니라. 나하곤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만 분명하게 알려고 하면 됩니다.

 

놓친 것들에 대해서 되씹을 필요도 없고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1시간 뒤에 밥 먹는다는 거 생각할 필요도 없고 지금 현재! 오로지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들만 분명하게 그것을 알려고만 하십시오. 더 알려고도 하지 말고, 더 이상 사고를 발전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딱 한순간! 요것만 내가 알겠다!" 하고 생각하십시요.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 그것이 호흡이 일어난 것을 알았으면 그걸 알아차리려고 하고, 내가 생각이 일어났으면 생각을 알아차리려고 하고,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그 하고 있는 걸 알아차리려고 하고, 걷고 있으면 걷고 있는 걸 알아차릴려고 하고,

모든 것들 자고 있을 때를 제외한 모든 행위 자체를 지금 현재 일어난 딱 그 순간만을 알려고 자꾸 노력하십시요. 다른 거 일체 놓아버리십시오. 그것이 수행의 두 번째 원칙입니다.

 

그다음에 수행의 세 번째 원칙은 그렇게 아는 것들을 어떻게 알 것이냐?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아니면 호흡을 알아차리는데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여러 가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느낌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느낌의 변화를 분명하게 알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음의 변화를 분명하게 알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느낌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느낌의 변화, 마음의 변화를 분명하게 알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변해가는 속성으로 알게끔 됩니다. 이게 세 번째 수행의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이 원칙만 지켜나갈 것 같으면 그래도 수행 2박 3일 지나고 나면 그래도 ‘아! 수행하는 법을 알겠다’ 하고 이해를 하게끔 됩니다.

 

거기다가 먼젓번에 얘기했듯이 이번 수행에서는 이 윤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반드시 이것은 지키고 이것은 행해나가겠다. 하는 걸 갖다가 마음에 염두에 둘 것 같으면 수행을 해나가면서 바로 그 바라밀들도 같이 닦아나가게 되는 겁니다.

바라밀이 성숙해나가고 수행에서 대상을 놓치지 않는 훈련만 해나갈 것 같으면 여러분들은 언젠가는 닙바나에 이르게 됩니다. 또는 그 언제가 되기 전까지라고 하더라도 지금 해나가는 것들은 선한 방향으로 해나가게 됩니다. 조금 더 많이 선한 행위들을 하게 되고, 조금 더 많이 선한 공덕을 쌓게끔 되고, 그러다 보면 닙바나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러한 원칙들을 지켜나가면서 해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

그다음에 법문하는 거는 스님만 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 2박 3일 동안 지속적으로 다른 스님들이 조금조금씩 여러분들에게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얘기를 해줄 겁니다. 물론 어떤 스님들은 참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어떤 스님들은 조금 재미없다 하는 그런 것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가져야 될 것은 그 어떤 것들도 그냥 있는 그대로 자꾸 받아들일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저번에 우리 선원에 있는 수행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안거가 시작이 됐거든요. 그래서 이 안거 3달 동안에는 "담마 위하리가 되도록 노력하라" 하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담마 위하리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 스님이 태국 갔을 때는 출가한 스님들이 수행하는 줄을 몰랐어요. 가면 뭐 전부 사원에서 스님들이 앉아서 경전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출가해가지고 경전 공부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얼마 안 가서 보니까 스님들이 수행만 하는 스님들이 또 있더라구.

또 얼마 안 가서 또 다른 데 가보니까 스님들이 법을 설하는 것들을 열심히 하는 거를 보게 됩니다.

또 다른 데 또 가보니깐 경전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그걸 암송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다 해봤습니다.

 

여러분들은 테라와다 불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고 싶습니까?

경전공부 열심히 하고 싶습니까?

또는 어떤 구절만 떠올리기만 하더라도 가슴이 절절절하면서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또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수행을 열심히 해서 그 수행하는 것으로 써 한평생을 삼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또는 이 좋은 법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게 다 "담마 위하리"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다 담마 위하리에 속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법을 전해줄려고 하더라도 수행을 안하고 법만 전해주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공염불이 돼버립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이 법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서 이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할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어이구, 쟤는 뭐 생활하는 거는 개차반으로 하면서 뭐 저렇게 얘기하냐?” 이래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그 법에 맞게끔 살아가지 않을 것 같으면 그것은 법을 전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법을 아무리 잘 듣고 또 그 법을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잘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학생들은 그 자리를 딱 떠나고 나면 그 교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가르치긴 잘 가르치는데 실제로 생활하는 거는 그보다도 못하다는 거라.

아무리 내가 경전을 많이 외우고 해서 이 법을 다음생 다음대에까지 전해주려고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법이 죽어있는 법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라.

어떠한 경우도 법과 나를 일치시킬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담마 위하리라고 하는 것은 담마라고 하는 것이 요렇게 감싸고 있는 거라. 위하라 라고 하는 것은 집입니다. 쉽게 말하면. 요렇게 담마가, 담마라고 하는 이 집 안에 내가 들어앉아 있는 거라. 그러니까 이 속에서 내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을 해나간다는 거라 법에 맞게끔. 당연히 그렇게 하니까 오늘같이 비가 오더라도 비를 안 맞게 되는 거고, 천둥 번개가 치더라도 그 영향을 안 받게 되는 거라. 이 집이 나를 보호하게 되는 거라. 담마가 나를 보호해주게 되는 거라. 담마 안에서 살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이 담마 밖으로 나가버리면 비를 맞고 천둥번개를 맞게 되는 거라. 담마에 맞지 않게끔 살아가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그렇게 살아가면서 아무리 법을 전하고 아무리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그건 소용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내가 법에 맞게끔 살아가는 자! 그걸 담마위하리라고 그럽니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전을 많이 배우려고 하든지, 아니면 수행을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나누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이걸 암송을 많이 해가지고 다음 생에까지도 전해줄려고 하든지, 어떤 것을 하든지 담마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된다는 거라.

그래야만이 담마가 여러분들을 보호하고 내가 곧 담마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담마를 보호하게끔 됩니다. 그마만큼 이 부처님의 진리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것이고, 위대한 것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생활을 해나가면서 수행은 조금 못해도 됩니다.

설혹 수행 안 하면 어때?

그런데 담마 안에서 살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담마를 벗어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안에서 자꾸 살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 자들만이 테라와다의 수행자가 되는 겁니다.

테라와다의 불자가 되는 겁니다.

수행자만 될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같이 테라와다 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가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어떠한 경우도 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화합되게 해서 서로 도우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그리고 자기가 한 잘못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그것을 참회할 줄 알고 이러면서 서로 자꾸 뭉치는 그런 역할들을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 오늘은 입재법문 이것만 하면 안 되겠나?